2021년 2월 14일 일요일

연수일기 12. 아이들의 첫 등교, 무빙세일 물품 받기, 유홀 트럭

2월 8일 월요일. 16일째 날.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가는 날이다. 

한국에서 생각했던 곳과 다른 동네에 집을 얻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학교 문제였다. 두 아이 생일이 4월, 7월로 미국에서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이라 한국에서보다 6개월을 앞서서 각각 7학년, 3학년 2학기로 편입해야 한다고 했다. 7학년이면 중학교에 해당했다. 평범한 시기에 왔다면 별 생각 없이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중학교도 온라인 위주로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몇 번 씩은 대면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선생님, 친구들과 부딪히며 학교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이곳 생활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첫째를 되도록 6학년으로 보내고 싶었고, 해당 district와 학교에 몇 차례 메일을 보냈지만 나이 원칙에 따라 학년이 정해진다는 답신만 받았다. 

입국 후 갑자기 동네를 변경하게 된 것은 애초 생각했던 아파트에 적당한 집이 없었기도 했지만, A 아파트가 속한 Del Mar Union School District (DMUSD)와 학교에서 6학년 편입이 가능하다는 답신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초등학교는 매일 등교해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입국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DMUSD는 이웃한 solana district와 달리 아이들의 생일보다 한국에서 학년을 마치고 왔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은 1월 말에 출국했으므로 공식적으로 학년을 마치지 않았고, 그래서 한국에서 다니던 학년을 그대로 유지해 편입하게 된다고 했다. 서로 이웃한 교육구인데도 원칙에 차이가 있다는 게 이상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한 학기 동안 두 아이가 매일 함께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

아이들 선생님께서 안내 메일과 반 아이들의 명단을 보내주셨다. 6학년인 아들은 열다섯명, 2학년인 딸은 열아홉명이 각각 한 반이다. 지난 일 년간 줄곧 띄엄띄엄 등교를 했던 아이들은 학교에 매일 가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되나 보다. 익숙치 않은 환경의 새 학교라 더 그럴 것이다. 그래도 둘째는 새 친구들을 만나는 게 기대가 된다고 하는데, 첫째는 친구를 만나는 기대보단 영어를 듣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아침 여덟 시에 맞추어 학교에 도착했다. 지난 주에 학교를 둘러보러 한 번 왔었던 길이다. 걸어서 등하교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지만, 집에서 출발해 차로 5분 정도면 갈 수 있어서 부담이 되는 거리는 아니다. 집에 올 때는 종종 걸어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교문 앞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나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동안 입학 관련해 안내를 해주었던 직원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단한 안내를 들은 후에 아이들을 각자의 교실로 보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뒤돌아 걸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교실에서 첫날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아이들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다.

처음 학교에 간 아이들에 대한 생각도 잠시, 하교 시간에 맞춰 다시 데리러 가기 전까지 무빙세일로 받기로 한 침대와 가구들을 서둘러 옮겨야 했다. 연수를 떠나기 전, 집과 살림살이는 연수를 끝내고 돌아가는 분에게 물려받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조건이 맞는 분을 찾기 어려웠고, 결국 살림살이만 무빙세일을 통해 구하기로 했다. SDSARAM 게시판을 통해 마침 우리에게 적당한 침대와 식탁, 소파 등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C 선생님과 연락이 되었다. 살림살이를 받는 날짜가 입국 2주 뒤였기 때문에 아파트 입주 후에도 일주일은 거실에 이불과 침낭을 깔고 자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2월에는 연수를 시작하고 끝내는 이들이 많아서 우리와 더 일정이 맞는 분을 천천히 찾아도 되었겠지만, 당시에는 마음이 급해 좀 일찍 거래 약속을 한 것 같다. 결과적으론 깨끗하고 상태 좋은 물품들이어서 만족할 수 있었지만.
세 개의 침대와 소파, 식탁과 의자를 옮기려면 트럭이 필요했다. 처음 계획은 한인 이사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살림을 받아와야 하는 날엔 예약이 불가능했다. 이 업체의 요금은 3시간 기본에 330불이었는데, 다른 현지 업체들은 가격이 훨씬 비쌌다. 이사 업체를 알아보다가 미국은 트럭만 빌려서 하는 셀프 이사가 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홀 U-Haul 트럭은 웹페이지를 통해 쉽게 예약할 수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A 아파트로 집 주소가 정해진 다음 유홀 웹페이지에서 트럭과 함께 무빙 헬퍼 서비스를 함께 예약했다. 헬퍼 서비스는 유홀에서 중개를 하는 형식이다. 짐을 옮기기 전날 배정된 헬퍼로부터 일정 확인 이메일을 받았다.
당일 아침, 집에서 가장 가까운 유홀 지점을 방문했다. 미리 웹사이트를 통해 인적사항과 국제운전면허증 등을 올리고 체크인을 해두어서 금새 트럭 운전석에 오를 수 있었다. 트럭 운전은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출발 전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지 못해 알람이 울리긴 했지만. 살림을 받기로 한 집까지 트럭을 운전해 두 명의 헬퍼를 만나고, 짐을 싣고 다시 A 아파트로 돌아와 모두 내리기까지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헬퍼 중 한 분은 대학생처럼 앳된 외모의 백인 청년이었는데, 호리호리한 체형에도 가구를 옮기는 솜씨가 좋았다. 가구와 물건들 상태가 모두 깔끔해 마음에 들었다. 가구를 옮기는 동안 살림을 넘겨주신 C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록에 없던 자잘한 물건과 주방 물품, 양념들까지도 꼼꼼하게 박스에 넣어 챙겨주셨고, 감사하게도 아이가 입을만한 옷까지 함께 받을 수 있었다. 트럭 운전도, 타국에서의 이사도 처음이었지만 무사히 잘 마무리 되었다는 생각에 트럭을 다시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

세 시간 동안 이사를 책임져준 트럭



2021년 2월 12일 금요일

연수일기 11. 두 번째 맞는 주말, 코스트코 회원 가입

2월 6일 토요일. 14일째 날. 입국해 두 번째 맞는 주말이다. 

코스트코 회원 가입을 꼭 해야 할까? 몇 년 전 한국에서도 회원 가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매장엔 딱 한 번 가고 말았다. 식료품이든 생활용품이든 모두가 대용량이라 우리 가족 생활 패턴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미국에 연수 온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코스트코 회원 가입을 권한다. (심지어 인계장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다.) 일 년에 60불을 내는 골드 회원이 아니라 120불을 내고 2% 리워드를 받을 수 있는 이그제큐티브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결국 이득이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소고기가 싸고 퀄리티가 워낙 좋아서 고기만 사먹어도 이득이란 후기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마트의 고기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론 이곳에 와서 며칠간 먹었던 랄프스와 트레이더 조의 고기도 훌륭했다. 회원 가입을 권하는 이들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시각을 잃고 스스로의 경험에 기인한 자기 위안에 빠진 것 아닐까. 쓸데없이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였다. 회원 가입을 할까 말까 망설이길 수차례, 결국 이날 오전에 가입하고 말았다. 그것도 골드 회원을 생각했다가 가입 창구의 직원 설득에 홀랑 넘어가 이그제큐티브 회원으로. 앞으로 고기는 무조건 코스트코에서 사먹어야 할 것 같다. 아, 물론 들었던 바와 같이 맛있긴 했다. 

무빙세일로 받기로 한 TV는 32인치였다. 아무래도 더 큰 TV가 필요할 것 같아 중고 장터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에서 가져온 47인치 LG TV를 무료로 준다는 글이 막 올라와 눈에 띄었다. 이런 물품은 타이밍의 싸움이다. 바로 연락해 받아오기로 했다. SDSARAM 게시판을 샌디에고 당근마켓이라고도 부르던데,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품들은 참으로 많고 다양하다. 갓 입국한 이들에게 유용한 탁자와 의자 같은 물품들은 올라오기가 무섭게 팔리곤 한다. TV도 그런 물품 중의 하나였다. 연식이 오래되었고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TV도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애플TV를 연결하면 굳이 케이블 TV 신청은 필요 없을 것이다. 변압기를 추가로 사야 했지만 역시 중고로 10불 정도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무료로 가져온 TV에 한국에서 가져온 닌텐도 스위치를 연결해 아이들과 수퍼마리오 오딧세이를 했다. 모든 걸 갖추고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걸리고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살림을 하나씩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2월 7일 일요일. 15일째 날. 오전에 미션베이 공원을 산책했다. 휴일 오전이라 그런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변을 따라 미션베이 공원을 포함해 세 개의 공원이 이어져 있고 그 길이만 해도 2.5마일 가까이 된다. 미국의 다른 도시들도 그렇겠지만 어디서든 가까운 공원을 갈 수 있다는 건 이곳 생활에서 큰 장점인 것 같다. 이 공원에서 조금 더 가면 샌디에고 관광의 필수 코스인 씨월드에 갈 수 있다. 지난 주말 샌디에고 동물원에 이어서 이번 주말엔 씨월드도 재개장을 한다고 들었는데, 조만간 가보게 될 것이다. 공원 산책 후에 UCSD 캠퍼스에 잠깐 들렀다. 캠퍼스 내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곳 주차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해 오래 머물진 못했다. 

리버티 스테이션의 스톤 브루잉 Stone Brewing에서 점심을 먹었다. 샌디에고에도 브루어리가 많고 그만큼 다양한 로컬 맥주가 있다고 들었다. 1996년에 오픈한 스톤 브루잉은 미국에서 아홉 번째로 큰 양조장이라고 한다. 브루어리는 대개 야외 테이블을 운영하고 있어서 지금과 같은 거리두기 상황에서도 어렵지 않게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과 같았다. 레스토랑의 음식 가격이 워낙 비싸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하기엔 브루어리도 괜찮은 것 같다. 훌륭한 크래프트 맥주와 함께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쳤다. 라켓과 공은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이사 후 일주일간 아마존을 통해 받은 택배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 아마존 프라임 가입은 코스트코와 더불어 필수라고 들었는데, 역시 족보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는 요즘이다.  

미션베이 공원

2021년 2월 10일 수요일

연수일기 10. 조금씩 일상으로

2월 3일 수요일. 11일째 날. 입국하고 만 열흘이 지났다. 매달 첫 주에 있는 방문 학자와 유학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물론 온라인으로. 살림이 들어오지 않아 휑한 방에 앉아 밥솥 박스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멀뚱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오리엔테이션 끝무렵에 cultural adjustment를 위한 팁을 알려주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 뿐 아니라 살면서 겪는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을 듯 하다.


이케아에서 첫째 아이 방에 넣을 탁자와 식탁 의자, 샤워 커튼을 샀다. 열흘 동안 이케아는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앞으로도 몇 차례 더 오게 될 것 같다. H 마트에서 김치와 식재료를 사고 뚜레쥬르에서 식빵을 샀다. 입국하고 주유를 처음으로 했다. 예전에 하와이에서 렌트카 주유를 했을 때도 한국과 주유기 지불 시스템이 달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얼마 전 만든 데빗 카드를 사용해서인지 중간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이곳에서는 생활하면서 겪는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걸림돌을 만나곤 한다.

아이들 학교에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학교에 나갈 수 있다는 반가운 메일이 도착했다. 첫째는 6학년, 둘째는 2학년이고 교실과 선생님도 정해졌다. 다음 주부턴 조금 더 일상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2월 4일 목요일. 12일째 날. 아침에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고 트레이더 조에서 간단히 장을 보았다.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쇼핑몰이 있는 건 앞으로 살면서 큰 장점이 될 것 같다. 오후에는 다음 주부터 아이들이 갈 학교를 둘러보았다. 단층으로 된 학교 건물이 예쁘고 햇볕이 잘 드는 내부도 널찍하다. 첫째는 등교 후 영어로 대화를 해야할 것에 대한 걱정으로 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고, 둘째는 학교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학교 로비 모습

학교를 구경하고 나와 아파트 근처에 있는 퍼시픽 하이랜즈 랜치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 공원도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레크레이션 센터, 작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와 농구 코트, 간이 야구장, 스케이드 보드장과 펌프 트랙 등이 갖춰진 공원이다. 잔디밭에서 미식축구 수업 여러 클래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공원도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곳이다. 

아들은 학교 구경을 하고 온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우리 반에도 한국인이 한 명 있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오늘 학교에 가서 영어를 못해서 느끼는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수업이 끝난 뒤라 학교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학교 안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컸고 운동장 역시 한국과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건물이 세련되진 않았지만 아주 예뻤다. 중앙 광장 같은 곳도 있었고 도서관도 있었다. 

청소부 아저씨게 길을 물어서 교실을 찾았다. 사람들이 항상 먼저 도와주려고 하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 내 반 교실을 찾아 갔는데 옆 반 선생님께서 나와서 뭘 찾고있냐고 물으셨다. 옆 반 선생님이지만 가끔씩 내 반으로 와서 수업을 하신다고 한다. 선생님이 공감하는 태도로 친절하게 말씀해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덕분에 불안감이 많이 줄었던 것 같다. 친절한 선생님이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어른들 말에 믿음도 좀 생겼다. 

얼핏 보니까 교실에 의자가 열 개 정도 있던데 학생 수가 아주 적나보다."


2월 5일 금요일. 13일째 날. 아파트 바베큐장에서 H 선생님 가족과 점심을 먹었다. 지난 주에 이어 두 번째로 함께 하는 식사이다. 가스 화로가 처음 써보는 방식이라 혼자였다면 불을 붙이는 데에도 애를 먹었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생활 팁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게 당분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오후에 아이들은 제각각 시간을 보냈다. 아직 아이들 방 가구가 들어오질 않아 거실의 임시 탁자에 모여있게 되지만, 각자의 일을 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둘째는 다음 주에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줄 발렌타인 카드를 열심히 만들었다. 아파트 우편함 안 이름표도 함께 만들어 붙였다. 이런 소소한 일상은 추억이 되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2021년 2월 9일 화요일

연수일기 9. 공식적인 첫 날이었지만

2월 1일 월요일. 9일째 날. 공식적으로 연수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날이다. 하지만 아직 UCSD 교정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판데믹 때문에 연수가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일도 많고, 막상 연수를 와서도 달라진 게 많다. 학교 교정과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지만 언제쯤 이전처럼 자유롭게 학교와 병원을 왕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연수 첫 날인 오늘은 대면 미팅 대신 오후에 Academic Resource Center 담당자와 온라인 onboard meeting이 예정되어 있다. 

오전에 BOA 스마트폰 어플로 지난 번 계좌를 만들어준 담당 직원과의 미팅을 예약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아내의 데빗카드와 지난번 신청한 신용카드의 발급 거절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간단한 업무라도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 생소하다. 번거롭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합리적이기도 하다. 아내의 데빗카드는 2-3일 내로 도착할 예정임을 확인했고, 승인 거절된 신용카드 대신 300불 한도의 secured credit card를 발급받았다. 한국에서 확실한 직업과 소득이 있었다 해도 미국에서 신용 점수가 없다면 일반 신용카드를 바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한다. 한 달에 300불 한도는 너무 낮은데, 6개월쯤 뒤 한도가 올라갈 수 있다고 했지만 연수 기간 내에 많은 혜택을 받긴 어려울 것 같다. 그저 이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는 의미 정도로 생각하려 한다. (secured credit card의 한도를 300~4,900불 사이에서 정할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고, 이후 3천불로 조정했다. 이날 상담할 때는 한도에 대한 은행 직원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과 다른 계좌 체계는 처음엔 이해하기 쉽지 않고, 이런 시행착오를 흔히 거칠 수 있으니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한국인 직원과 상담하는 것이 좋다.)

오후에는 zoom을 통해 ARC 담당자와 짧은 미팅을 했다. 그도 재택 근무를 하고 있었다. 메일로만 수 차례 소식을 나누었던 이와 모니터 안에서나마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이전이라면 student service center에서 직접 대면해 진행했을 것이다. DS-2019, 비자 스탬프, I-94 등 서류도 온라인으로 제출했다. 미팅은 10여분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이제 며칠 뒤면 UCSD 메일 계정이 생길 것이다.

늦은 오후에 월마트에 들러 구경했다. 다른 마트에 비해 볼만 한 것들이 없었다. 미국에 온 뒤로 매일 만지던 슬라임을 만들지 못해 아쉬워하던 딸아이를 위해 슬라임 재료를 샀다. 이곳 마트들은 대부분의 물품이 크고 여러 개씩 묶여있어서 불필요한 소비를 더 하게 되는 것 같다. 슬라임 재료도 용량이 무지 컸다. 

2월 2일 화요일. 10일째 날. 아이들 옷을 사기 위해 아울렛을 방문했다. 샌디에고에서 가까운 아울렛은 북쪽과 남쪽에 하나씩 있는데 남쪽은 멕시코 국경과 매우 가까워 깜빡하면 국경을 넘어갈 수 도 있을 것 같다. 오늘 간 곳은 20마일 정도 북쪽에 있는 칼스배드 아울렛이었다. 평일이라 사람이 적어 한적해 쇼핑하기 적당했다. 
점심을 먹고 솔라나 비치 Solana beach에 들렀다. 지난 주에 갔던 토리파인스 스테이트 비치와 달리 해변이 모래사장이었고, 너무나 넓고 아름다웠다. 날씨가 더 따뜻해져 써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이런 해변이 있다니. 해변을 걸으며 해가 질 때까지 머물렀다. 


솔라나 비치의 석양



2021년 2월 8일 월요일

연수일기 8. 아파트 입주

1월 31일 일요일. 8일째 날. 입국한지 일주일 만에 드디어 A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이다. 리싱 오피스 운영 시간인 10시에 맞춰 도착했다. 바로 집에 들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입주 비용이 지불되지 않아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아파트 웹페이지에서 입주에 필요한 서류들을 확인하고 계약서에도 사인하게 되어 있는데 중간 서류 중 하나에 사인을 하지 않아 정식 계약서와 렌트비 지불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사무실 컴퓨터로 남은 과정을 처리했다. 여러 장에 걸쳐 입주자 주의 사항이 빼곡히 적혀있었지만 자세히 읽어보지 못했다. 나중 여유가 있을 때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첫 달 렌트비가 포함된 입주 비용을 계산해야 했는데, 역시 계좌를 만들 때 받은 personal check로는 지불이 안된다고 했다. 당장 현금이나 데빗카드가 없어 한국 신용카드로 계산해야 했다. 한국 신용카드는 해외 결제 시 1-2퍼센트의 수수료가 부과되므로 집 렌트비와 같이 큰 금액이라면 수수료도 무시하기 어렵다. 카맥스에서처럼 ePay가 가능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전에는 BOA에서 계좌를 만들 때 정식 데빗카드가 오기 전 사용할 수 있는 임시 데빗카드를 주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계좌를 만들 때는 이제 임시 데빗카드는 발행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우리처럼 자동차와 집 렌트비 지불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결국 현금을 가지고 있거나 계좌를 만들 때 cashiers check를 따로 구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새 집이 생겼다. 가구 하나 없이 휑해도 아이들은 신이 나서 집 안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떠든다. 임시 숙소에서 열어보지도 못한 이민가방들 안 물품들도 오랜만에 햇볕을 보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짐 정리를 하는 동안 SDSARAM을 통해 받기로 한 작은 탁자와 간이 의자, 협탁 등의 중고 가구를 가지러 다녀왔다. 이 탁자는 아이 책상으로 쓰기 적당할 것 같았다. 일주일 뒤 무빙세일 살림을 받을 때까지는 좀 불편하더라도 이 가구들을 식탁과 작업대로 번갈아 쓰며 지내려 한다. 짐 정리를 마치고 집 근처 트레이더 조에서 처음 제대로 장을 보고, 라이트 에이드에서 생필품들을 샀다.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쇼핑몰이 있어 다행이다.

텅 빈 집에서도 역시 스마트폰 게임!


지난 수요일에 신청했던 스펙트럼 인터넷 셀프 설치 키트가 이미 도착한 상태였다. 모뎀과 한국에서 가져온 무선공유기를 연결하니 첫 설치 후 인식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잘 작동한다. 거실 바닥은 다행히 카페트가 아닌 나무이다. 2층의 발소리가 실시간으로 중계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국 사람들에겐 훨씬 나을 것 같다. 무빙세일로 받기로 한 침대가 들어올 때까지 거실 바닥에 이불과 침낭을 깔고 자야겠지만, 그래도 우리 집 지붕 아래 있으니 마음이 훨씬 여유로워지는 기분이다.

지난 일주일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힘들기도 했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직접 부딪혀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게 즐겁고 뿌듯하기도 했다. 미국 도착 초기에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 경우엔 정착 도우미의 도움을 받지 않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면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연수일기 7. 발보아 공원, 라호야 코브

1월 29일 금요일. 6일째 날. 지금까지 집, 은행 계좌, 차를 해결했다. 가장 중요한 일들은 얼추 다 해결한 셈이다. 아파트 입주일까지 급하게 할 일은 없어서 남은 이틀간은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보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기 전에 아파트 계약 조건에 포함된 renters insurance에 가입했다. 자동차보험을 담당했던 설계사를 통해서였고, 두 가지 플랜 견적 중에 아파트에서 요구하는 최소 조건으로 가입했다.  

이케아는 한국에서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직접 가보니 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파트 입주 뒤에 필요한 가구와 물품들을 미리 살펴보고 간단한 주방용품을 구입했다. 다음으로는 근처의 베스트바이에서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구입했다. 아이패드는 한국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아이폰은 tax를 포함해도 더 저렴했다. 반스앤노블을 들렀지만 아직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인지 살만 한 책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오후에는 비가 내려 날씨가 쌀쌀했다. 입국 후 비가 내린 날이 벌써 사흘이다. 샌디에고에선 비오는 걸 구경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1월 30일 토요일. 7일째 날. 입국하고 처음 맞는 주말이다. 오늘은 발보아 공원 Balboa Park과 라호야 코브 La Jolla Cove를 둘러보기로 했다.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화창했다. 샌디에고 동물원이 문을 닫았다가 두 달 만에 재개장하는 날이라 매표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만 매일 1만명 이상의 covid-19 환자가 새로 생기고 600명 이상이 사망한다. 신규 환자가 4만명씩 발생하던 1월 중순에 비해서는 나아진 셈이다. 환자가 줄었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건 여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랜만의 동물원 개장이어선지 줄 선 사람들 표정은 밝기만 하다. 우리는 한적한 공원을 따라 spenish village art center를 지나 공원 입구의 광장까지 산책을 했다.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모두 운영을 안하고 있어 아쉬웠다. 상황이 나아져서 들어가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라호야 코브로 향했다. 라호야 비치 근처가 부촌이라 들었는데, 해변을 따라 이어진 고급 주택과 상가들을 보니 실감이 났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Ellen Browning Scripps Park 공원으로 내려왔다. 점심 메뉴가 맘에 들지 않았던 딸아이에게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는데,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갈매기가 아이스크림을 채가버렸다.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갈매기에게 심통스런 혼잣말을 하던 아이는 공원 앞 부머 비치 Boomer Beach에서 바다사자와 물개를 보고서야 기분이 나아졌다.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한인 마트인 시온마트 Zion Market을 들렀다. H마트보다 규모가 더 컸고 마트 안에 한국 브랜드 상점들도 입점해 있었다. 김치와 1인용 전기요를 샀다. 샌디에고에선 난방을 틀 일이 없다지만, 나와 아이들과 달리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에겐 필요할 것이다. 

Ellen Browning Scripps Park. 갈매기도 보인다.


2021년 2월 6일 토요일

연수일기 6. 자동차 구입

1월 28일 목요일. 5일째 날. 자동차를 구입하기로 한 날이다. 입국 전부터 미리 카맥스 Carmax 웹사이트에서 구입할 차량의 대략적인 가격을 살펴보았다. 렌트한 크라이슬러 미니밴을 며칠 이용해보니 역시 미니밴을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착 초기에 큰 짐을 실을 일이 많을 것이고, 아이들과 여행을 하거나 방문 온 지인들과 동행할 때도 유용할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카맥스 매장은 키어니메사였지만 조건이 맞는 적당한 차량이 없었다. 대신 에스콘디도 매장에 있는 도요타 시에나 2017년 모델을 방문 하루 전에 free hold 했다. 

테스트 드라이브 가능 시간은 11시였고, 30분 전에 매장에 도착했다. 매장 앞에서 만난 첫 딜러와 상담을 시작했다. 그런데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면 테스트 드라이브는 해볼 수 없다고 했다. 직접 운전을 해보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좀더 살펴보기로 하고 hold 했던 차량의 내외부를 살펴보았다. 선루프의 패킹에 약간의 문제가, 운전석 가죽 시트 뒤편에 작은 찢긴 상처가 있었다.(뒷자리에 아이들이 탔음이 분명하다) 선루프 패킹은 바로 수리해주기로 했고, 가죽 시트는 가까운 키어니메사 매장에서 가능한 날짜를 확인해 수리할 수 있다고 했다. 수명이 다 된 배터리도 교체하기로 했다. 운행 거리가 6만 마일로 연식에 비해 길긴 했지만 차량 상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결국 구입을 하기로 결정했다. 

배터리 교체를 하는 동안 근처의 Denny's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자동차 보험에 가입했다. 미리 Farmers와 Geico의 견적을 받아보았는데, 비슷한 조건을 적용했을 때 Farmers가 약간 저렴했다. Farmers는 한국인 설계사와 메일로 상담했고, 한국 무사고 증명서와 박사 학위로 보험료를 낮출 수 있다고 했다. Geico는 웹페이지를 통한 다이렉트 견적이었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려울 것 같다. 보험 가입 후기들을 보면 많은 이들이 Geico의 보험료가 더 저렴하다고 했는데 보험료에 가장 영향이 큰 보장 범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례가 생길 수 있을 듯 하다. 우리는 다소 높은 보장 범위를 선택했다. 그래도 6개월에 900불이 넘는 금액을 보험료로 지불해야 하니 부담이 되긴 한다. 캘리포니아 운전 면허를 취득하면 보험료를 다시 산정해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매장으로 돌아왔다. 차량 대금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매장 매니저가 BOA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받은 personal check로는 지불이 어렵다고 했다. 수표를 사용하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personal check와 cashiers check이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장 큰 금액을 BOA에서 출금해오기도 어려워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딜러가 매니저와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온라인을 통해 ePay로 지불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여권, 비자, 집 계약서와 거주 증명서(SDGE 신청 후 웹페이지에서 pdf로 받을 수 있다)를 확인했다. 이제 다 되었나 싶었는데 이번엔 매장에서 만든 ePay 링크에 기입할 정보 중에 은행 계좌의 routing number와 account number가 뭔지 몰라 이를 확인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BOA 어플리케이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임시 등록증이 준비되길 기다려야 했다. 오후 3시에 렌트카를 반납해야 해서 마음이 바빴지만 매장의 직원들은 느릿느릿 움직였다. 

꽃 달아주는 시간도 아까웠다...

미국에서 첫 자동차 구입의 감회를 느낄 새도 없이 급히 운전석에 앉아 카맥스 매장을 떠났을 때는 이미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차량 구입에 4시간이 넘게 걸린 셈이었다. 렌트카 사무실에 30분까진 추가 금액이 없음을 확인했지만, 30분이 아니라 사무실이 닫는 시간인 4시까지도 도착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여차하면 하루 치 렌트 비용을 더 내야 할 수도 있었다. 주유소 단말기에서는 한국 신용카드 인식이 되지 않았고, 카운터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주유는 포기했다. 다행히 사무실 문이 닫히기 5분 전에 도착했고 늦은 반납에 대한 비용도 부과되지 않았지만 부족한 기름에 대해 직접 넣는 것보다 두 배가 넘는 금액을 내야 했다.

* 오늘의 교훈: 미국 정착 초기에 큰 금액을 지불할 때는 현금이 최고다. Casher's check을 미리 구입해두는 것도 좋다.


2021년 2월 5일 금요일

연수일기 5. 집 계약, 은행 계좌 만들기, 그리고 전기와 가스 신청

1월 26일 화요일. 3일째 날. 아침에 A 아파트에 가서 집을 계약했다. 리싱 오피스에서 계약과 아파트 관리까지 하는 시스템이 한국과는 달라 생소했다. covid-19로 대부분의 리싱 오피스가 예약제로 운영된다고 한다. 오픈 시간에 맞춰 닫힌 사무실 문을 노크하니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계약 신청은 아파트 웹사이트에서 해야 하므로 돌아가서 온라인으로 하라고 한다. 판데믹 상황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좀더 나이가 많은 매니저가 다시 문을 열고 나와서 사무실 안의 컴퓨터로 계약 진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숙소에 돌아가는 일 없이 아파트 홈페이지에서 새로 계정을 만들고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했다. 12개월 계약에 1개월 치 렌트비를 할인해주는 조건이다. 종종 이런 프로모션을 한다고 한다. Holding deposit 500불과 application fee 50불을 지불했다. 이 돈은 입주 전 첫 달 렌트비에서 제외하게 된다. 가능한 입주일은 닷새 뒤였다. 그동안 웹페이지에서 정식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첫 달 렌트비가 포함된 입주비를 지불해야 한다. 아파트 이름이 쓰여진 파일에 담긴 여러 장의 서류를 받고 나니 집을 계약한 게 조금은 실감났다. 입국 후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를 해결했다.

다음은 은행 계좌를 만들 차례였다. 근처 쇼핑몰에 있는 Bank of America 지점을 방문했다. 거리두기 지침으로 건물 내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에 제한을 두고 있어서 십 분 정도 줄을 서 기다린 뒤 입장했다. 지점 내에는 뱅커들의 사무실이 있고, 계좌 개설 업무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내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체크 계좌와 세이빙 계좌를 만들고 데빗카드를 신청했다. 신용 점수가 없는 상태에서 신용카드는 만들기 어렵다고 알고 있었는데, 담당 뱅커가 신용카드 신청도 권해 함께 진행했다. 신청한 카드는 일주일 정도 내에 집 주소로 배송된다고 한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온라인 뱅킹 신청까지 마무리한 뒤 한국에서 환전했던 현금 4만불을 입금했다. 큰 돈을 가지고 다니며 불안해했던 아내가 이제야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쇼핑몰 안에 있는 판다익스프레스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매장 내 식사가 안되는 곳이 많아 식사할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매장이 넓거나 외부에 간이 식탁과 의자를 둔 식당 정도가 선택 가능했다.

식사 후에 샌디에고에서 가스와 전기 공급을 담당하는 기관인 SDGE에 가서 가스와 전기 신청을 해야 했다. SDGE 서비스 신청은 가스와 전기 사용을 위한 것이지만, 거주지를 증명하는 역할도 한다. 아이들 학교 편입 시 대개 두 개 이상의 거주지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SDGE의 확인서가 그 중 하나이다. 웹페이지를 통한 서비스도 제공했지만 이를 통한 신규 신청은 안되는 것 같았고, 전화로 신청을 할 수도 있었지만 다운타운 쪽도 구경할 겸 직접 가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따라다니느라 힘들었는지 아이들은 금새 뒷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다운타운까진 20마일 정도 되었지만 20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 지도 상의 거리는 멀어도 고속도로를 통해 가니 오래 걸리진 않는다.

SDGE에 도착했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문 앞을 지키는 직원이 안내문을 주면서 covid-19 때문에 방문 접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별다른 소득 없이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차를 주차해둔 곳으로 가는데 둘째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다운타운에선 공중 화장실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일단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급히 쇼핑몰에 들렀는데 너무 급했는지 차에서 막 내리자마자 화장실을 찾기도 전에 쉬를 하고 말았다. 하루 종일 잔뜩 긴장을 했던 상태라 맥이 풀리면서 피곤이 밀려왔다.

근래에 이렇게 긴 하루를 보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전기와 가스 서비스는 전화로 신청했다. 다행히 콜센터는 저녁 여덟 시까지 운영을 하고 있었다. 발음이 정확치 않으니 전화로 인적사항, 새 주소와 이메일을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중간에 전화가 끊겨 다시 전화가 연결되기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콜센터 직원이 알려준 이메일로 photo ID를 보내야 했는데 직원의 이메일을 제대로 받아 적었는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직원의 이메일 답신을 받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한국에서라면 몇 시간이면 되었을 일들이 이곳에선 두세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1월 27일 수요일. 4일째 날. 인터넷을 신청했다. 스펙트럼과 AT&T를 많이 이용하는 것 같고, 아파트에서 준 파일에도 두 회사의 전단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서비스 내용과 가격은 비슷했다. 인터넷 신청은 웹페이지에서 가능해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직접 방문이나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니 이런 황홀한 서비스가 있나!) 한국과 달리 배송된 모뎀을 고객이 직접 연결해야 한다. A 아파트는 동축케이블 단자가 설치되어 있어서 연결이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오래된 아파트나 주택은 어떨지 모르겠다. 비용을 추가하면 무선 공유기를 함께 신청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쓰던 iptime 공유기를 가져와서 따로 신청하진 않았다.(실제 사용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도착 후 사흘 동안 집 계약, 은행 계좌 만들기, 전기와 가스 신청, 인터넷 신청을 끝냈다. 아내와 나에게도 잠시 휴식이, 아이들에게도 숨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점심을 먹기 전에 가까운 해변에 가보기로 했다.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토리 파인즈 스테이트 Torrey Pines State 비치에 들렀다. 아직은 겨울 날씨가 쌀쌀한 편이라 - 그래도 섭씨 15도이다 -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간간이 서퍼들은 볼 수 있었다. 바닷바람이 상쾌하다. 며칠간 받았던 스트레스도 바람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아이들도 예쁜 자갈과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Torrey Pines State Beach

점심은 키어니메사 Kearny Mesa 의 한인 고기 뷔페 식당에서 먹었다. 거리두기로 매장 입장에 제한이 있었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국 후 며칠간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던 나도 아이들도 오랜만에 한국식 고기 구이를 배부르게 즐겼다.

식사 후에 근처 H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를 샀다. 샌디에고의 한인 마트는 H마트와 시온마켓 두 곳을 꼽는다고 하는데 앞으로 수없이 오게 될 것 같다. 마트 회원 카드를 만들었다. 아파트 입주일 전까지는 지금 묵는 레지던시에서 지내야 한다. 음식을 조리할 도구가 많지 않아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선택하다 보니 즉석식품 위주로 고를 수 밖에 없었다.

숙소에 들렀다가 무빙세일을 받기로 한 C 선생님 댁에 방문했다. 샌디에고 한인 웹사이트인 SDSARAM을 통해 거래 약속을 했고, 살림은 입국 2주 후에 받기로 했다. 아파트 입주 후에도 일주일 정도는 가구와 살림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내야겠지만, 새로 구입하거나 개별로 중고물품을 받는 것보단 되도록 살림 전체를 한꺼번에 받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받을 물품을 체크하면서 자질구레한 도구들도 무료로 받기로 했다.

2021년 2월 3일 수요일

연수일기 4-1. Gabe's diary: 미국 옴

1월 26일 화요일 날씨 비

사흘 전 미국에 도착했다. 이후로 오늘까지 호텔에 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짐 이만큼(글씨 두 배 큼) 끌고 버스를 타고 렌트카 사무실에 가서 렌트카를 빌리고 호텔에 가서 짐을 풀고 자고 일어나 집 보러 다니고, 매우 심심하고 피곤하다. 집을 빨리 구할 줄 알았는데 이틀동안 이렇게 있다니. 아니, 사흘인가? 일요일이 두 번 반복되다 보니까 날짜 계산이 안된다. 사실 오늘이 며칠인지도 헷갈린다. 

그래도 한국보다 살기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음식 문제가 있긴 하지만 날씨가 정말 좋고, 집 보러 다닐 때 본 동네도 모두 한적하고 좋았다. 우리 가족은 주택처럼 생긴 아파트에서 살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은 호텔에 있고 일주일 뒤에 이사를 할 것이다. 그곳엔 한국인도 많이 산다고 한다. 아까 그곳에 사는 아빠 후배 아저씨네 집에서 점심도 먹었다. 가까워서 자주 놀러갈 수 있을 것이다. 만화에서만 봤던 옆집에 떡 가지러 가는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선 재욱이네에 떡 가져다주려면 이십분을 뛰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 살기 위해 아직 할 일이 산더미다. 빨리 끝내고 집에 들어가 살고 싶다. 학교에 가서 친구를 사귀면 영어 실력이 늘지 않을까. 사람들이 모두 친절해서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미국 꼬맹이들 너무 귀엽다. 

연수일기 4. 입국, 집 구하기

1월 24일, 생경할 정도로 한적한 인천 공항을 출발해 LA 공항에 도착했다. LA 공항은 터미널 밖 정류장에서 렌트카 회사의 순환 셔틀을 기다려야 한다. 각자의 배낭 외에 이민 가방 5 개, 대형 캐리어 1개, 기내용 캐리어 1개, 짐가방 2개를 카트 세 개에 실어 옮겼다. 렌트카는 크라이슬러 Dodge 미니밴을 빌렸고, 공항에서 받아 나흘 뒤 임시 숙소인 레지던시 근처에서 반납하기로 했다. 그동안 차를 구입해야 한다.

인천공항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처음 봤다.

LA 공항에서 샌디에고 숙소까지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체크인을 하고 근처의 마트에 들러 간단한 저녁거리와 빅웨이브 맥주를 샀다. 이곳은 해가 일찍 저문다. 5시 반이 되니 벌써 컴컴해졌다. 밤에는 장대비가 내렸다. 샌디에고에서 비를 보는 건 드문 일이라던데, 이번 주 내내 비 예보가 많다. 내일과 모레는 돌풍 경보가 내려졌다고 한다. 며칠간 계속 이동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1월 25일 월요일. 2일째. 집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애초 염두에 두었던 동네에 선택할 수 있는 3 베드룸 집은 많지 않았다. 일주일 전 S 아파트와 H 아파트 투어를 예약했다. 초등학교, 중학교와 대형 쇼핑몰, 도서관 등을 걸어서 30분 내에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1순위였던 S 아파트는 비어있던 유닛 1개가 출국 이틀 전에 계약되어 버렸고, 남은 H 아파트는 예약했던 시간에 투어가 어렵다는 렌트 담당자 답신이 왔다. 여러 차례의 연락 끝에 H 아파트 투어 시간은 오후 시간으로 조정할 수 있었지만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출국 전날 3마일 정도 떨어진 다른 동네의 A 아파트와 L 아파트 투어를 예약했다. 이날 처음 방문한 곳이 이 A 아파트였다. 비어있는 서너 채 중 큰 도로와 떨어진 집 1개의 위치가 제일 나아보였지만 이전 입주자가 막 나간 뒤 카펫 청소를 시작해 들어가볼 수 없었다. 비바람으로 어둑한 날씨 때문에 아파트의 분위기를 꼼꼼히 살펴보기도 어려웠다. 곧바로 근처의 L 아파트를 방문했다. 가장 최근 지어진 듯한 이 아파트는 호텔처럼 긴 복도를 따라 여러 채의 집들이 이웃하는 구조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두 군데 아파트를 구경한 뒤, 한 달 전부터 A 아파트에 살고 있는 후배 H 선생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입국 초기에 바쁘게 돌아다니며 아이들 식사를 챙기는 게 제일 힘들었다며 식사 초대를 해준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점심을 먹으며 아파트와 아이들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아파트의 경우 애초 생각했던 동네와는 학군이 달랐는데, 이곳에서 배정될 초등학교는 첫째가 6학년으로 편입 가능해 우리 아이들이 6학년, 2학년으로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카멜 밸리 지역은 Solana beach school district(SBSD)와 Delmar union school district(DMUSD)에 속한 학교들이 섞여 있는데 SBSD는 나이를 기준으로 학년을 정하고 DMUSD는 한국에서 다니던 학년을 기준으로 정한다.

오후에는 애초에 보려 했던 곳 중 하나인 H 아파트를 구경했다. 오래된 아파트라 집안 시설에 세월의 흔적이 많았다. 아파트의 위치는 더 나을 것 같았지만 아이들 학교 문제와 단지 내 오피스가 없어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관리가 어려울 것 같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와 상의를 했다. 애초에 생각했던 동네라면 첫째는 7학년이라 중학교로 들어가야 했다. 출국 전 학교와 교육청 담당자에게 여러 차례 문의를 했지만 나이에 맞춰 배정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던 상태였다. 하지만 중학교는 아직 온라인 수업 위주라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 A 아파트라면 아이들이 매일 함께 등교할 수 있을 것이고, 초등학교라 첫째가 학교에 적응하기도 더 수월할 것이다. 결국 A 아파트의 비어있는 집들 중에서 큰 도로와 떨어진 집으로 결정했다. 입주할 때까지 집 내부를 볼 수 없다는 게 맘에 걸렸지만 아파트 내부 구조는 동일하니 큰 문제는 없을 듯 했다. 아내는 2층이 아닌 걸 아쉬워했지만 모든 게 생소하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백 퍼센트 우리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긴 어려울 것이다. 마음을 비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