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잡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잡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0년 1월 28일 화요일

반짝반짝 빛나는

- 스케이트랑 달리기랑 뭐가 더 좋아?
- 스케이트!
- 스케이트랑 고양이랑 뭐가 더 좋아?
- 고양이!

집 근처 스케이트장에 가는 길이었다. 스케이트 타는 데 재미를 붙인 터라 최근 아이들은 거의 매일 스케이트장에서 한두시간 씩을 보낸다. 어제는 설 연휴 때문에 닷새만의 방문이었다.

스케이트장에 갈 땐 대개 친구와 함께이다. 함께 걷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아이의 발걸음은 조금씩 다르다. 단짝 친구와 함께일 땐 평소보다 반박자쯤 빠르고 경쾌하게. 발걸음 뿐 아니라 목소리의 형태도 바뀐다. 크기는 십데시벨쯤 커지고 말투는 진폭이 넓어진다. 주파수를 그린 선을 멀리서 본다면 매끈했던 선이 아몬드가 잔뜩 박힌 초콜릿 표면처럼 오돌토돌해졌을 것이다.

- 그럼 이번엔... 스케이트랑 너네 아빠랑 뭐가 더 좋아?
- 스케이트!

아이는 친구의 연이은 질문에 냉큼 답을 하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소리가 어찌나 맑고 쨍한지, 흐리게 내려앉은 하늘 높이가 조금만 더 낮았다면 잔뜩 젖은 공기 틈새로 구멍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짐짓 모른 척 뒤돌아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 듯이 웃음끝을 흐리며 한 마디 덧붙인다.

- 농담이야.

커다란 웃음 소리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한번 더 허공에 흩뿌려진다. 찬바람과 흥분으로 발갛게 상기된 아이의 얼굴을 보며, 휴일 아침에 단짝 친구와 나란히 걷는 아홉살 여자아이의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했다.

이백밀리 사이즈의 주황색 렌탈 스케이트와 노란 헬멧을 씌워 얼음판에 들여보냈다. 연휴 마지막 날이어선지 얼음판은 오전부터 붐볐다. 얼음판 밖에도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많았다.

얼음판 밖이나 안이나 온도는 비슷할텐데 안과 밖 공기는 신기할 정도로 다르다. 얼음판 안은 웃음과 장난기로 가득하다. 아이들 뿐 아니라 스케이트화를 신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도,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을 때도. 반면 바깥엔 지루함과 피로의 기운이 찬바람을 타고 떠돈다. 가끔 아이들의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거나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 때 미소를 짓지만 한 순간일 뿐이다. 마치 얼음판 가장자리를 따라 투명 돔이 씌워져있고 돔 안쪽에만 웃음가스로 가득 찬 것 같다. 표정에 담긴 즐거움의 높이로만 따진다면 양재대로를 사이에 둔 신축 래미안 아파트와 판자촌 구룡마을만치나 차이가 커 보였다.

스케이트화를 신은 것은 대여섯번 쯤 되었지만 아직 아이의 자세는 신통치 않다. 비슷한 기간에 벌써 물 찬 제비마냥 씽씽 달리는 오빠와는 천지차이이고, 함께 스케이트를 타는 단짝 친구와 비교해도 서툴다. 얼음을 지친다기 보다는 종종걸음에 가깝다. 그렇게 트랙을 따라 그저 뒤뚱뒤뚱 몇 바퀴를 걷는게 전부이다. 트랙 한 바퀴를 도는 동안만도 몇 번씩 넘어지고, 그러면서도 얼굴에선 웃음기가 떠나질 않는다. 강습을 받게 해볼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온라인 신청 시간에 맞출 수가 없어 포기했다. 제대로 속도를 내질 못하니 영 재미가 없을 법도 한데, 그래도 계속 타겠다고 의욕을 보이는 게 대견하기도 하다.

밤에 나란히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아이가 문득 생각난듯 소곤거렸다. 아빠, 내일 또 탈래. 밤기운 가득한 방은 컴컴한데 웃음기 가득한 눈만 반짝인다. 그래 그렇게 하렴. 종종걸음이든 물 찬 제비이든 뭐 그리 중요할까. 얼음 위에서 걷다 보면 언젠가 스케이트 날에 몸을 싣는 법도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이다. 설사 그렇게 되지 못한대도 또 어떤가.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로 가득한데.


2020년 1월 7일 화요일

눈뭉치 던지기

일요일에 아이들과 눈썰매장에 갔다. 슬로프 대기 줄이 어찌나 긴지, 서울 시내 아이 있는 집은 모조리 다 출동한 것 같았다. 막상 썰매는 몇 번 타지 못하고 썰매장 한켠 다져진 눈밭에서 눈덩이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올 겨울 아직 눈구경을 제대로 못한 아이들은 사람들 발에 밟혀 본래의 색을 구분하기 힘든 눈밭에서도 손발 시린줄 모르고 고맙게도 한참을 논다.

첫째 녀석이 조그만 눈뭉치를 던지는데 제법 멀리까지 간다. 싱긋 웃더니 나에게도 슬쩍 눈짓을 보낸다. 아빠가 어디까지 던질 수 있을지 보겠다는 눈치다. 괜한 승부욕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눈덩이를 적당히 뭉쳐 크게 팔매질을 했다. 눈뭉치는 긴 포물선을 그리며 아이의 눈덩이가 떨어졌던 지점을 훌쩍 너머 야트막한 담장을 넘어갔다. 아이는 순간 짧은 탄성을 내뱉고는 존경심을 담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별것 아니라는 듯 무심한 눈빛으로 답했다. 아빠의 존재감이 오래간만에 휘황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오래된 형광등도 가끔은 밝은 빛을 내고, 사그라드는 모닥불도 때로는 밝은 불똥을 튀기는 법이다. 그 빛이 오래가질 않아서 문제지만. 두어 차례 더 눈뭉치를 던져보았지만 처음처럼 우아하고 긴 포물선은 그려지지 않았다. 아이는 금새 눈뭉치 던지기에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눈밭을 파고 있었다. 팔매질을 그만둔 건 다시 담장을 넘기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른쪽 어깨에 뻐근한 통증을 느꼈던 것도 이유였다. 저녁이 되면서 통증이 더 심해져 소염진통제 한 알을 먹었다. 언젠가부터 관절이든 근육이든 여기저기 자주 문제가 생겨 소염진통제는 항상 준비해두어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통증은 여전했다. 어깨를 올리는 게 수월치 않아 옷을 입을 때도 평소보다 동작이 굼떠졌다. 아마 어깨 관절을 싸고있는 인대 중 하나에 탈이 났을 것이다. 지금 상태라면 다행히 소염진통제와 며칠의 시간으로 나아지겠지만, 손상이 조금 더 심했다면 오십견이 생겼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오십이 가까운 나이이니 오십견이 생겨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만, 새삼스레 이제 눈뭉치도 살살 던져야하는 낡은 나이가 되어가는구나 싶어 실소가 나왔다. 오후부턴 비도 오는 궂은 날씨라니 퇴근 전에 미리 파스라도 붙여야 할까보다.


2019년 11월 7일 목요일

순수함의 형태

아이들 독감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단골 소아청소년과에 가는 길이었다. 가을 바람에 부드럽게 부딪히는 햇살이 눈부셨다. 아직 주사 맞을 때마다 울음을 터뜨리는 초등 1학년 꼬맹이는 아침부터 잔뜩 긴장한 상태다. 병원 가기 싫은데... 란 말을 벌써 수십번째 하고 있었다. 반면 주사에 대한 공포를 이미 극복한 오빠는 소풍가듯 평온한 태도로 몇 걸음 앞서 걷는다. 옆에서 종종걸음을 치던 꼬맹이가 내 손을 잡았다. 땀에 젖은 손바닥이 촉촉했다.

- 근데 아빠. B형 독감에 걸렸었는데 또 주사를 맞아야 하는거야?

-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매년 조금씩 모양이 바뀌거든. 그래서 매년 다시 맞아야해.

- 근데 난 독감 걸린지 얼마 안되었잖아. 작년이 아니잖아.

어,,, 그랬었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난 겨울 독감 시즌은 유난히 길었고, 꼬맹이가 B형 독감 진단을 받은 것은 올해 4월 초였다. 독감 진단은 아이가 당장 다음날부터 학교를 못간다는 의미였지만 우리에겐 급히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당일 저녁 꼬맹이만 데리고 무안의 외갓집에 내려가 맡긴 뒤 밤기차로 다시 서울에 올라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덕분에 둘이서만 때아닌 기차여행을 했었다.

- 그랬었지. 그때 가연이가 아빠랑 할머니 댁에 가면서 오빠한테 편지 써놓고 갔잖아.

- 무슨 편지?

- 가연이 없는 동안 방에 있는 물건 건드리지 말라고.

- 아 맞다. 생각나.

꼬맹이는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잠시나마 긴장이 풀린 얼굴로 키득거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 나 그때 할머니 집에 있을 때 아빠가 많이 보고싶었는데.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때 느꼈던 감정도 생각이 났어. 그냥 그랬어. 이런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충분했다. 대화의 맥락으로 보자면 굳이 필요치 않은 말이었지만 아이의 말투가 너무나 밝고 자연스러워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나 그때 할머니 집에서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순간 직면했던 것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만약 가슴이 벅찰 정도로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함에 형태가 주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잠깐 모습을 비춘 순간이었을 것이다. 달리 어떤 것이 더 있을 수 있을까.


2019년 10월 31일 목요일

아이의 일기장을 읽으며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문학적 문장은 '명료하면서도 저속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평범한 말과 생소한 말을 적절히 섞어 쓰는 '중용'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너무 꾸미지도 말고 너무 평범하게도 쓰지 않도록, 명료함과 고상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라는 뜻일 것이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여느 아이들처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내주는 분량만큼, 일주일에 이삼일씩. 일기 숙제는 늘 있었지만 5학년이 된 올해는 다른 해와 조금 달랐다. 담임선생님께서 여러 개의 주제를 주고 매달 그 중에서 골라 중간중간 일기 대신 짧은 에세이를 쓰도록 한 것이다. '나에게 램프의 요정이 생긴다면' 같은 노멀한 것부터 '30년 후 내 자녀에게'와 같은 다소 철학적인 주제나 '똥 맛 카레가 맛있을까 카레맛 똥이 맛있을까'와 같은 엉뚱한 주제까지 다양했다. 아이들이 쓴 글에는 선생님이 깨알같은 감상평을 남겨주신다. 대부분 긍정적이고 공감을 표하는 내용이다. 선생님이 아이들과 소통하기에 유용한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두어 편씩 업데이트 되는 일기장을 보는 것은 나름 쏠쏠한 재미였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을 때도 있었고 위트있는 표현에 웃음을 짓게 될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글솜씨가 늘어가는 게 보여 흐뭇하기도 했다. 때로는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일기 쓰기가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마 선생님의 반응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떤 날은 선생님이 제가 쓴 일기가 재미있다며 칭찬을 해주셨다고 으쓱해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도 짤막한 감상평을 전달하곤 했다.

근래 들어 아이의 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글의 소재나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표현에서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읽는 이를 의식하고 쓴다 할까. 물론 아이의 일기는 애초부터 혼자만 간직할 수 있는 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최근의 글에선 재미나고 독특하게 표현하려는 의도가 이전보다 더 엿보였다. 꾸밈이 많아진 글은 본래의 자연스러움이 줄었고 때로는 과하게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타인에게 읽히지 않는 글은 거의 없다. 심지어 지극히 사적인 일기마저도 후대에 책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운명에 처하곤 하지 않던가. 우리가 쓰고 접하는 대부분의 글은 미래의 독자를 의식하고 쓰는 것이며, 독자를 의식하고 나아가 이해할 때 더 좋은 글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진다. 모 소설가는 글을 쓰는 것이 연애 편지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는데, 일정부분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연애 편지는 내 역량을 총동원해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를 위한 표현을 고민한다는 면에서 가장 좋은 글쓰기가 될 수 있다.

예전 일기가 더 좋았어. 며칠 전 아이의 일기를 읽은 아내가 내게 말했다. 아내도 같은 느낌을 받았나보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하면 중용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쓰는 글의 변화를 목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웠다. 욕심을 부려 잠시 균형을 잃었을지 몰라도, 아이의 글쓰기는 또 제 나름의 균형을 찾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글들을 쓰게 될까. 그리고 그 글을 쓰는 아이는 어떻게 변화할까.

2019년 9월 24일 화요일

일어서기에 대한 소고小考

스마트 워치를 꽤 오랫동안 사용했다. 운동할 때 활용하기 좋다고 하는데 이런 기기를 사용해 그날의 운동량을 타인과 공유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내 경우 그저 이 기기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운동량이 늘거나 체형이 바뀌는 기적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고 달린 거리와 경로를 보며 그저 감탄하거나 부러워할 뿐이다. 가끔 메시지 알림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일 때도 있지만 결국 나에게는 스마트 워치도 아직까진 그저 시계인 것이다.

몸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이 기기를 사용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평일 아침에 집을 나서서 퇴근할 때까지 보통 육천보 정도를 걷는다거나, 올해 평균 걸음 수가 작년에 비해 오백보 적다거나, 하루에 걷기로 소비하는 칼로리가 겨우 밥 한공기 수준이라거나, 뭐 그런 사소한 것들 말이다. 일어서는 횟수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도 그중 하나인데, 하루 목표인 열두 번을 채우는 날이 별로 없다. 그래도 진료실도 가야하고 화장실도 가고 점심 먹으러도 움직이는데 이렇게 드물게 일어설까 싶어 하루 일상을 복기해 보았더니 실제로 그럴만했다. 배뇨와 식사. 필수적인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이동 말고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도통 움직이질 않는거다.

일어설 시간입니다! 라고 친절하게 울리는 알람의 의미는 한 시간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문득 허리가 뻐근한 것 같아 상체를 슬쩍 뒤로 젖혀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벌떡 일어서진 않는다. 그래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면에서라면 도움이 된 셈이다. 걷기, 운동하기 외에 왜 하필 '일어서기'를 활동 항목에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일어서기가 걷거나 운동하는 행위와 같은 취급을 받을만한 신체활동은 아닐텐데. 물론 운동을 하기 위해선 대개 일어서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마련이지만.

손목에서 울리는 알람을 무시하고, 두 시간째 진득하게 앉아 강의 자료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았다. 학생들이 교장의 강압적인 명령에 불복하고 일어서 책상에 올라섬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드러내고 키팅 선생님에게 작별을 고하는 그 장면.

'stand'란 단어는 어떤 사안에 대한 공개적인 태도나 입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어서기가 신체적인 것 뿐 아니라 사회적인 행위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떠올려보면, 난 본래도 잘 일어서지 않는 편이었다. 여러 사람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즐기지 않고 말주변도 없다. 강의나 발표를 해야 하는 직업이라 피할 수 없는 자리가 반복되면서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런 상황은 불편하다. 말주변이 없어서인지 머리 속의 생각이 입을 거쳐 발화될 때 본래의 빛깔을 잃는 듯 느껴질 때가 많은데, 그에 대한 두려움이 한몫했던 것 같다. 아마 소심한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자리에서든 대개 침묵을 선호했고, 그 역할은 주목받지는 않지만 적어도 책임을 지거나 비판을 받을 위험은 없었다.

손목에 찬 시계도 일어서기를 격려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과거보다 더 자주, 다양한 방식의 일어섬을 목격한다. 스스로는 하루 열두 번도 채 일어서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엔 더 많은 일어섬이 필요하며, 모든 일어서는 행위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행위가 같은 무게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일어서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일어서기 전까지의 부동과 침묵이기 때문이다. 부동과 침묵이 드리운 그림자가 짙고 길수록 일어서는 행위의 의미는 커지고, 보편적 공감과 연대 의식을 넘어 때로는 감동까지도 만들어낸다. 반면 부동과 침묵 없이 발화된 일어섬은 번잡한 삶에 피로를 더할 뿐이다.

행위의 결과가 항상 해피 엔딩이 될 순 없다. 키팅 선생님은 결국 떠나고 아이들은 남는다. 스크린을 벗어난 현실에서, 사람들은 대개 다시 자리에 앉아 부동과 침묵의 그림자에 몸을 감춘다. 그러므로 부동과 침묵은 곳곳에 존재하며 우리는 대개 어떤 방식으로든 부동과 침묵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좀더 겸허해지고, 타인의 일어서는 행위에 대해서 보다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일어서서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다.


2019년 8월 28일 수요일

확증편향


- 등기 수령 메모 못 봤어요? 버린 것 같아서 휴지통을 뒤져도 없네.

집배원이 대문에 붙이고 간 우편물 도착 안내문을 찾는 중이었다. 맞벌이 부부가 등기 우편물을 첫 번째 배달 때 직접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에도 현관 눈높이에 얌전히 붙어있는 안내문을 서재 책상에 놓아 두었었다. 쪽지에는 재방문 일시와 집배원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재방문일 아침, 집배원에게 미리 연락해 아파트 보안실에 맡겨달라 부탁하려는데 안내문이 안보였다. 책상에 함께 놓아둔 다른 우편물들과 섞여 버려졌나 싶어 휴지통을 뒤져도 보이질 않았다.

- 아침에 관리비 고지서랑 같이 버렸는데, 왜요?


역시 아내가 버린 것이었다. 다시 휴지통을 뒤졌지만 몇 안되는 종이쪼가리들 틈에서 안내문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종량제 봉투를 꺼내어 뒤집었다. 봉투에 담겨있던 쓰레기와 함께 시큼한 냄새가 쏟아졌다. 다른 종이와 함께 구겨졌나 싶어 이번엔 종이 쓰레기를 하나하나 펴보았다. 아이들 방학 생활 안내문,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와 전단지들 사이에서 그제야 익숙한 우체국 마크가 눈에 띄었다. 안내문을 발견하고 나서 왜 처음에 바로 눈에 띄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안내문은 어른 손바닥 정도의 크기였는데, 나는 A4 용지만한 종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함께 놓여있던 다른 서류들과 같은 크기라고 착각했었던 것 같다. 안내문은 반으로 접힌 채였다. 머리 속에 큰 종이를 미리 그려놓았기에 손바닥 절반만한 크기의 안내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이런 오류가 선천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류의 역사만큼은 오래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카이사르도 인간은 자기가 보고싶은 현실만을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확증편향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그 실험 결과를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우리는 가까이에서 쉽게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특정 지역에 대한 비하, 외국인 노동자나 성소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답정너의 자세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주말밤 TV 토론에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의견과 댓글에 대댓글 싸움으로 차고 넘치는 SNS 담벼락에서.

사람은 듣고싶은 것만 듣고 보고싶은 것만 본다는 것, 나를 포함한 세상은 오류와 편향으로 가득하며 지면과 모니터를 가득 메운 말의 상찬이 부질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평론가 신형철의 글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니 답을 찾기 어려운 때일수록 단순하게 사실을 인지하고, 나아가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천천히.

기껏해야 10리터 크기의 종량제 봉투 안에도 깨달음은 있는 법이다.

2019년 5월 3일 금요일

구두 밑창을 갈며

길건너에 있는 구두 수선 노점에 들렀다. 구두를 자주 닦는 편은 아니다. 길가다가 문득 생각이 날 때 가까운 노점을 찾는 정도라 막상 회사 근처에 있으면서도 오랜만에 방문한 곳이었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선지 노점 안의 손님은 중년 신사 한 명 뿐이었다. 희끗희끗한 스포츠 머리에 다부진 체격의 주인이 손을 재게 놀리며 낡은 검정 구두를 닦고 있었다. 밑창과 굽을 갈아달라는 말에 그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 국산으로 하면 밑창하고 굽 각각 만오천원, 수입으로 하면 각각 이만오천원입니다.

구두를 닦던 손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은 채였다. 벗은 구두를 작업대 옆에 놓은 뒤 삼선슬리퍼를 신고 노점 한켠의 벤치 의자에 엉거주춤 앉았다. 바닥에 열선이 깔렸는지 엉덩이가 뜨끈했다. 닦던 구두를 마무리하고 손님을 보낸 그가 밑창 샘플을 내밀었다. 좀더 두껍고 오래 간다는 수입산 제품을 선택했다. 밑창과 굽 합쳐 오만원이다. 구두를 살펴보던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좋은 구두네요. 아무래도 두꺼운 게 더 나을 겁니다.

닳아버린 뒷굽을 그라인더로 갈아내 평평하게 만들고 구두 바닥에 본드를 바른다. 새 밑창과 굽에도 본드를 바르고 드라이기로 가열한 뒤 구두에 단단히 붙인다. 새로 붙인 밑창이 들뜨지 않도록 모서리 부분을 꾹꾹 누르며 힘을 줄 때마다 세월에 단련되었음직한 그의 팔뚝 근육이 꿈틀거렸다. 구두를 돌려가며 접착 상태를 확인한 뒤 끌칼로 기존 굽과 밑창에 맞춰 새 밑창을 잘라내는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거침이 없었다.

새 손님이 방문했다. 기다리는 손님이 생기자 구두를 매만지는 그의 손놀림은 더 빨라졌다. 새 밑창과 굽으로 갈아신은 구두는 다시 작업대에 올랐다. 광택을 내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것이다. 장인의 손길이 다시 물흐르듯 움직였다. 팔뚝 길이만한 흰 천을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 야무지게 두르고는 느슨해지지 않도록 엄지에 다시 돌려 감는다. 천을 두른 손가락으로 젖은 스펀지를 두드린 뒤 갈색 구두약을 발라 구두 가죽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물광을 내기 위함이다. 약통과 구두를 오가는 리드미컬한 움직임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우아했다.

뜨끈한 의자때문에 중간중간 엉덩이를 움찔거려야 했지만 삽십분 남짓한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늘 그렇지만 구두를 닦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오히려 즐겁기까지 하다. 가끔은 그 과정이 숙련된 예술가의 공연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오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을 때 나는 마치 그의 노동력에 대한 댓가가 아니라 그의 행위에 대한 관람료를 지불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평이 채 안되는 공간이었으나 공연은 훌륭했고 그는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그러므로 까만 구두약 때가 잔뜩 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지폐를 받는 그를 향해 나 역시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9년 3월 18일 월요일

확실과 불확실

아이에게 수학 문제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었다.
"이 삼각형을 포함하는 삼각형이라는 건, 이 작은 삼각형을 품고있는 큰 삼각형을 말하는 거야."
"아니, 근데 포함하는 거면 이 삼각형도 되고 다른 삼각형도 되는 거잖아."
"그러러면 이 삼각형을 포함해서라고 되어 있었어야지."
"그러니까, 이 삼각형도 넣어서 세어야 한다는 거잖아."
같은 대화가 몇 번 더 오고가면서 결국 언성이 높아져버렸다.
"포함해서가 아니고 포함하는이라니까!"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나서 아차 싶었다. 아이가 억울한 표정으로 한참 문제집을 내려보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휙 제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부모 역할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은 여전히 불쑥 찾아온다. 팽팽해진 고무줄이 툭 끊어지는 것처럼. 또 그러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왔다.
아이에게 사과를 한 뒤에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포함하는'과 '포함해서'의 차이를 설명할 그럴싸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선생님들은 이런 차이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는 걸까.) 그렇지만 역시 어미가 다른 이 두 단어가 같은 뜻으로 쓰일 수는 없다. 더군다나 수학 문제에서라면. 아름다운 수학 문제라면 문제의 모든 단어는 하나의 답을 향해서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기 마련이다. 일단 답이 정해진 수학 문제에서 '포함하는'과 '포함해서'의 차이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만큼이나 명확히 다른 것이다.
하지만 살면서 접하는 일들이란 수학 문제처럼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삶은 불확실함으로 가득하다. 오늘 내가 보고 들었던 것 중에 진실은 얼마나 있었을까. 짧은 말과 행동과 사건의 이면엔 대개 그 몇 배의 맥락이 있고 그 흐름 어느쯤에 발을 담구었느냐에 따라 그 일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진실이란 알기보다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이 확실함을 가장해 내뱉는 말은 공허한 푸념이 되거나 실제 그 흐름 가운데에 있었던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이다.
쉽게 판단하는 것을 경계한다. 단호하게 말하기 위해선 그 전에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를 반복해 되묻는다. 우유부단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의학자로 살면서 배인 태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의학이란 불확실 투성이의 학문이다. 이십여년 전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 중 지금까지 쓸만한 것은 많지 않다. 그때 찬란한 진리로 우러렀던 교과서는 지금은 쓸 수 없는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시골집 창고처럼 활용할 수 없는 지식을 담고 먼지가 쌓인 채 책장 구석에 박혀있다. 그러니 오랫동안 진리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고 남아있는 의학적 발견이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낮추는 것이 좋다.'라는 단순한 명제와 같은 것들. 물론 어디서부터가 고혈압인가, 또는 혈압을 얼마만큼 낮추어야 하는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새로운 논란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역시 의학이란 불확실 투성이라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적당히' 낮추면 뇌졸중과 심근경색과 같은, 살면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병들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아직까진 흔들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약을 써야 하는가란 문제로 가면 역시 불확실성의 힘이 강해진다. 진료실에서 낯선 처방전을 조심스럽게 내미는 환자들을 종종 만난다. 복용 중인 약이 괜찮은지 확인해달라는 것인데, 고혈압 약도 그 중 하나이다. 고혈압 약은 성분명 만으로도 수십 종류가 있지만 대개는 어떤 종류를 선택해도 무방하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피해야 할 약도 있지만, 그럴만한 문제가 없는 환자의 경우 선택의 기준은 기껏해야 경험적인 선호일 뿐인 것이다. 그런 경우 그가 복용하는 약은 선택이 가능한 수십 가지 약들 중 하나이며, 그보다 더 나은 최적의 약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할 일은 처방전에 인쇄된 약 이름을 주의깊은 태도로 살펴보고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다.
'아주 좋은 약입니다. 선생님께서 처방을 잘 해주셨네요.'
편안한 얼굴로 돌아서는 환자를 보며 생각한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곳에서도 때로는 일부러 확실함을 가장한 태도를 보여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태도가 지나쳐 강요가 되진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아이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칠 때와 같은 상황에서는.


최근 화제가 되었던 스카이캐슬을 보진 않았지만, 김서형 씨의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란 대사는 인상적이었다. 대사와 말투, 표정 모두에서 느껴지는 단호함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와 같은 이질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이유와는 다르겠지만, 말들로 가득찬 드라마에서 그녀의 대사가 남겨진 것은 불확실로 가득한 세상을 사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확실함을 대하는 기분을 선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019년 1월 5일 토요일

올리버 색스의 유작을 읽고.

올리버 색스의 유작(고맙습니다. Gratitude)을 읽었다. 어려서부터 숫자와 주기율표를 친구로 삼았던 이 특이한 학자가 생일을 맞이하는 방식은 나이에 해당하는 번호의 원소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열한 번째 생일은 나트륨, 일흔아홉 번째는 금,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네 개의 에세이 중 첫 번째는 그가 여든 번째 생일을 앞두고 쓴 '수은'이란 제목의 글이다. 새해에 처음 읽은 글이 삶에 대한 통찰과 애정으로 가득한 것이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주기율표에 대해 생각했다.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수소H의 시기에서 생을 시작한 두 명의 아이들은 이제 열 번째 네온Ne과 여섯 번째 탄소C의 시기가 되었다. 화학에 대해선 까막눈인 내게 두 원소는 금속이 아니라는 것 말고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인다. 두 아이는 네온과 탄소의 거리만큼이나 판이하게 다르다. 순한 성격인 오빠와 달리 둘째는 까탈스럽고 고집이 세다. 식습관도 달라서 간식을 따로 준비해주곤 한다. 첫째는 단맛을 좋아하지만 둘째는 그렇지 않다. 달걀 프라이도 첫째는 완숙, 둘째는 반숙이다.

십년 뒤쯤의 아이들 모습을 상상해보지만 쉽게 그려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기율표 상단의 오른쪽 끄트머리, 네온의 위치를 보며 생각한다. 눈부신 빛은 오래 바라보기 어렵다. 눈이 부실만큼 밝진 않아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주홍빛 네온 조명처럼 온기를 전달해주는 존재로 성장하길. 그리고 탄소. 탄소가 없는 삶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탄소에서 출발한 변주에 불과하지 않던가. 탄소는 어디에나 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부드러운 흑연부터 가장 강한 물질인 다이아몬드까지. 지금 내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생기를 불어넣는 이 존재는 시간이 지나 무엇이 될까.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아이의 미래는 그저 바램일 뿐, 역시 나는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알지 못한다.

처음 만났던 열몇 해 전에 나와 아내는 갈륨Ga과 니켈Ni이었고,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루테늄Ru과 나이오븀Nb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둘 다 지구상엔 지극히 적은 금속이라고 한다. 갈륨과 루테늄의 사이를 지나는 동안 큰 풍랑은 없었던 것 같다. 비교적 평온한 항해를 했던 것에 대해 감사해야 마땅하지만, 요즘엔 무채색의 세상 한가운데서 그저 꾸역꾸역 판에 찍어낸 듯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불안한 마음이 문득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그런 순간, 지구상에 드문 존재인 이 금속의 이름을 되뇌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다.

지난 연말, 오랜만에 컴퓨터에 저장해둔 사진을 살펴보았다. 마우스 스크롤을 길게 당길 때마다, 겨우 몇 년 사이의 일인데 까맣게 잊고 있던 장면을 발견하곤 했다. 내가 찍었던 사진임은 분명한데 이곳에 갔었던가 싶은 풍경도 있었다. 장소가 어딘지 헷갈릴 때는 사진에 숨겨진 지오태깅을 확인했다. 기록을 남겨두지 않은 기억은 잊는다. 잊혀지는 것이 많아질수록 기억을 붙잡아두고 싶어진다. 언젠가부터 익숙하지 않은 곳을 지나칠 때 사진을 더 찍어두려 하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이다.

루테늄은 백금 원소이고 하드디스크를 만드는 데 쓰인다. 디스크 밀도를 높여 안정적으로 저장 용량을 늘리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역할을 하는 것은 겨우 원자 세 개 두께의 루테늄 층이다.(물론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Pixie Dust(요정의 먼지)'라 부른다고 한다. 팅커벨이 막대를 흔들 때 나오는 반짝이는 가루 말이다. 오늘도 건망증 때문에 치매를 걱정하는 환자에게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인걸요. 그리고 주기율표의 딱 중간쯤에 위치한, 이제 조금은 친숙해진 느낌이 드는 원소 이름을 보며 부질없이 생각했다. 해가 갈수록 휘발성이 강해지는 기억 장치를 위해 루테늄의 시기가 끝나기 전 내 머리 위에서도 요정이 막대를 한 번 흔들어 주었으면.

2019년 1월 2일 수요일

의사가 되길 원하는 학생들에게

의대 진학이 목표라는 네 명의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멀리 대구에서부터 찾아왔다. 앳된 얼굴이지만 뽀얀 피부에 가벼운 화장을 하고 비슷한 색깔의 틴트를 바른 입술이 요즘 학생들다웠다.

내가 할 일은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것 뿐이었다. 아이들이 준비한 질문은 다양했다. 전공을 선택할 때 뭘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 의대 졸업 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문제점이나 의사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한계 등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것들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눈높이에 맞지 않는, 너무 주관적이고 지엽적인 내용만 꼰대처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의사가 되길 준비하면서 읽었으면 싶은 책 리스트를 뒤늦게 문자로 보내주었다. 아이들은 오늘 처음 만난 의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이내 잊을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문답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 대학 생활을 하면서, 수련을 받으면서 꼭 해야할 활동이 있나요?

- 구체적인 활동을 추천하긴 어렵지만 의사가 될 분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어요. 학교와 병원에서 배우고 공부할 것들이 많아 힘들거에요. 그래도 학교와 병원 밖에서 생기는 일들에 대해서 관심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의사가 된 다음,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해 좌절도 하고 때로는 분노를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병원과 의료계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더 많은 부조리와 문제들이 있고, 내 문제만큼이나 타인의 문제도 중요하다는 걸 잊으면 안됩니다. 적절한 균형 감각이 필요해요. 
지금 의사를 둘러싼 여러 문제는 저를 포함한 의사들이 나와 타인의 문제 인식에 있어 균형 감각을 잊은 채 살아온 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내 문제야 나만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없지만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는 그렇지 않을테니,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금새 균형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다양한 책을 읽어도 좋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도 좋아요. 어떤 방식이든 외부에 대한 관심의 끈, 그걸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2018년 12월 7일 금요일

진주장 이야기

"번데기탕도 파는데, 사갈까요?"

퇴근길이었다. 며칠새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잰걸음을 더 재촉하던 참이었다. 전화기 너머 아내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고춧가루를 푼 뜨끈한 번데기탕 맛이 떠올라 입안에 침이 고였다.

길 건너 아파트 단지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수요일마다 장이 선다. 아파트 이름을 앞에 붙여 **장이라 불리지만 파는 것은 먹거리들 뿐이다. 그래도 종류는 꽤나 다양하다. 아파트 단지 특성상 닭강정, 돈가스, 꽈배기, 만두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간식들이 많다. 잔치국수와 육개장은 저녁 식사 대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족발, 순대, 곱창볶음과 같은 음식은 소주 한잔 곁들여 먹기에 좋다.

일주일 내내 오늘 저녁엔 뭘 해먹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동네에서 열리는 장은 하루 저녁이나마 고민을 덜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우리 집도 수요일 저녁은 장에서 사온 음식들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닭강정과 잔치국수를 즐겨 먹는다. 지난 수요일 저녁에도 아내가 장에 간다기에 내 몫으로는 순대를 주문해놓은 터였는데, 옆집에서 번데기탕을 판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단지 앞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애들은 제 몫의 국수와 닭강정을 해치운 뒤였다. 작은 냄비 안에서 번데기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소주잔을 챙겨 식탁에 앉았다. 순대 한 접시와 번데기탕이 든 냄비를 함께 놓으니 넉넉한 한 상이 된다.

"닭강정집 쿠폰을 열 장 다 모았네."

싱크대 앞에 서있던 아내가 혼잣말처럼 이야기했다. 말투에 힘이 없다. 아내는 연말에 직장 일이 많아지면서 표정이 어두워졌다. 원체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보단 자신이 나서는 성격이라 일이 많은 편이다. 스스로도 일은 타고난 것 같다고, 전생에 무수리였나 보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늘 씩씩하게 헤쳐가는 그녀이다. 그럼에도 요즘은 지나치게 버거운 상황에 힘겨운 것 같아 걱정이다. 오늘도 어깨가 축 처져보인다.
아내가 고개를 돌려 웃으며 덧붙였다.

"열 장 모으면 닭강정 1인분이 공짜거든요.”

멀뚱한 표정인 나를 보며 아내는 말을 이었다. 

“근데 추운 날씨에 너무 고생하면서 팔고 있어가지구, 미안해서 쿠폰을 못쓰겠어요.”

일전에 아이들 손을 잡고 닭강정을 사러 갔을 때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 활기찬 표정으로 응대하던 젊은 사장님이 생각나 난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겨우 만원어치 쿠폰 열 장에 대한 짧은 이야기였다.

아내의 이야기는 이내 오후에 들었던 둘째 어린이집 소식을 거쳐 요즘 날씨에 대한 것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일 날씨는 조금 더 포근해질 거라 했다. 거실 형광등 빛 아래 아내의 어깨가 조금은 더 단단해져 보였다.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문제는 호르몬

감성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우는 남자가 환영받기란 어렵다. 박보검이나 송중기가 아닌 평범한 중년의 아재가 아무데서나 눈물을 보였다간 주접을 떤다거나 찌질하다는 핀잔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본래 눈물이 많은 편이었다. 책이나 드라마를 보며, 음악을 들으며 훌쩍거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면 그다지 슬픈 장면이 아님에도 흘러나오는 눈물에 주변의 눈치를 보며 민망함을 느낀 적도 많았다.

근래에 뜬금없이 눈물이 나 당황스러울 때가 많아진 건 호르몬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면 남성호르몬은 줄고 여성호르몬이 늘어난다고 하니까. 지난 겨울, 아이들과 소파에 앉아 스노우보드 경기를 보는 중이었다. 하프파이프 끝에서 로켓처럼 튀어올라 몸을 몇 차례 비튼 뒤 곡예사처럼 우아하게 착지를 해대는 경이로운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 찬란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 순간 엉뚱하게도 코끝이 찡해져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피했던 기억이 난다.

더 당황스러운 순간은 아이들을 나무랄 때이다. 아이들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호통을 치는 찰나에 매번 눈물이 핑 돌아버리는데, 이럴 때면 아이들에게 들킬까 상황을 아내에게 맡기고 잠시 자리를 피했다 돌아와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화는 잠깐이다. 처음의 기세등등하던 태도는 금새 사라지고, 감정을 이기지 못한데 대한 자괴감과 실망감이 해일처럼 밀려오곤 한다. 몇마디 훈계를 더해보긴 하지만 매번 경기는 결국 내 패배로 끝난다. 큰애는 예전과 달리 이제 아빠가 야단을 쳐도 여간해선 울지 않는데, 이쯤이면 그냥 패배가 아니라 콜드게임 패 정도인 셈이다.

4학년 아이들의 학예회 날이었다. 아이들은 머리만큼이나 큰 리본을 가슴에 달고 탬버린 춤을 추고, 양손에 든 깃발을 음악에 맞춰 돌려대고, 다양한 악기를 들고 합주를 하고, 수화를 응용한 율동을 하고, 스케치북을 한장한장 넘겨가며 카드섹션 무대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몸짓은 서툴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사실 무엇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제작년보다 한뼘씩은 더 큰 아이들의 모습 자체만으로도 놀랍고 신비로웠다. 아이들 모두가 '자기 자신'에 성큼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음악은 경쾌하고 아이들의 표정은 발랄했지만 이상하게 난 또 코끝이 시큰거렸다.

역시 호르몬이 문제인가 보다.


2018년 4월 6일 금요일

의뢰회신서

장인께서 다음 주에 수술을 받으실 예정이다. 언젠가부터 한쪽 눈이 어른어른하다시더니, 근처 안과 진료 결과 망막에 주름이 잡혔다고 한다. 모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보고 수술 날짜를 받은게 두어달 전이다. 

입원 날짜, 수술 날짜가 정해졌고 지난 주엔 입원 전 검사를 위해 병원에 다녀가셨다. 검사 잘 하고 돌아가셨느냐고 통화를 하는데, 입원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신 모양이다. 수술 이틀 전에 입원을 하고, 수술 이후에도 며칠은 병원에 계셔야할 것 같은데 입원 기간에 대한 설명을 못들으신 모양이다. 
예기치 않게 일상을 비워야하는 환자 입장에선 얼마동안의 공백을 준비해야할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설명이 없었던걸까, 아님 검사실과 진료실을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 당신이 들었던 것을 잊으신걸까. 

외래에 전화해 입원 기간을 물어볼까 싶었지만 내가 직원임에도 막상 환자 보호자 입장이 되니 선뜻 문의하기가 망설여진다. 결국 '망막 수술 입원 기간' 등을 구글링하고 있노라니 늘상 느끼는 거지만 이 병원도 아직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출근하니 책상 위에 봉투가 놓여있다. 안에 든 건 지난달에 외부 병원으로 의뢰한 환자의 회신서였다. 

이곳에서 모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으로 의뢰하는 것은 대개 환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만 이루어지는 흔치 않은 일이다. 이렇게 회신서를 받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회신서야 해당 병원의 행정 시스템에 따라 보내졌을 것이다. 흔한 시술이고 회신 내용도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보냈던 환자에 대한 치료가 별탈 없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게 되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치료를 담당한 선생님께 조금은 고맙기도 했다.


회신서를 보내는 것은 의뢰를 한 의료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일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론 환자를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와 이후에도 환자를 보내달라는 뜻이 깔려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간에 회신서를 챙겨보내는 것은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를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예전 모 대학병원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일일이 회신서를 작성해 보내셨다는 일화도 있지만, 대개 행정적인 지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행정적인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신경쓰지 않는 병원들도 있다. 그런 곳은 굳이 이런 애프터서비스를 하지 않아도 환자로 넘쳐나서일텐데, 또 환자가 많은 병원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무수히 많은 환자 의뢰서를 받고있는, 내가 속한 이 병원은 답장을 몇 통이나 보내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늘상 느끼는 거지만 역시나 아직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2017. 4. 6)


2018년 2월 22일 목요일

다이하드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 저녁이면 아이들과 영화를 본다. 웬만한 초딩용 애니는 두루 섭렵한고로 그렇잖아도 최근엔 애니 외의 장르를 곁눈질한 터였다.(무엇보다 디즈니건 드림웍스건 픽사건 이제 엄마 아빠가 더이상 애니는 못보겠어!) 더빙판을 구할 수 없어 자막으로 보았던 '프리윌리'의 경우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재미있게 본 눈치였다. 그에 반해 '인디아나존스’에 대한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아이와 함께 볼 영화로 '(키아누리브스와 산드라블럭의) 스피드'를 골랐는데 아이가 손에 땀을 쥐어가며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다는 모 페친의 글을 보고, 우리 집에서도 며칠 뒤 같은 영화를 상영하기로 했다. (두 초딩은 같은 나이다.) 만화가 아니란 소식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던 우리 집 초딩 역시 영화의 줄거리를 대강 이야기해줬더니 나름 관심을 보인다.
20년이 넘은 영화는 세월만큼이나 때깔이 구리고 대사는 유치하며 편집은 툭툭 끊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 녀석은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가끔은 영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늦게 엉뚱한 소리를 하긴 하지만. 여섯 살 둘째는...... 뭐 그냥 패스하자. 아이들과 함께 볼 명목으로 골랐건만 막상 가장 신이 난 관객은 대학 초년생 시절 이 영화를 보고 키아누리브스의 팬이 되었던 아내였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평점이 나쁘지 않음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은 아빠와 엄마는 올디스벗구디스를 외치며 당분간 추억의 걸작 시리즈를 상영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다이하드'.
다이하드가 어떤 영화인가. 80년대 최고의 액숀 영화이고 브루스윌리스를 일약 최고의 액숀 배우로 만들어 주었으며, 한국에선 서울올림픽 기간에 개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 대박을 일으킨 영화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론 단체 관람 후 엔딩크레딧을 보며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던, 십대 시절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던 것이다.
생김새가 다른 서양 배우들의 얼굴을 구별하기 어려워하는 아이가 가끔 우리 편과 나쁜 놈들을 헷갈리긴 했지만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껄쩍지근한 뒷맛이 남은 건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열광적인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는데, 내친김에 이번 주말엔 다이하드 2를 보기로 했다. 참고로 난 존 맥티어넌의 1편보단 레니 할린의 2편을 더 좋아한다.


개고생을 하는 와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맥클레인 형사 캐릭터는 액션과 함께 영화를 이끄는 두 축이다. 하지만 그가 던지는 (지금은 촌시러우나 당시엔 그렇지 않았을) 유들유들한 멘트들을 열 살 관객이 이해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계속되는 총격전과 폭파씬이 좀 지루해졌는지 약간 삐딱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데, 예를 들면.
악당들의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조용히 추적하는 맥클레인
- 쟤네가 다 나쁜 놈들 아냐? 근데 왜 그냥 보내?
좁은 송풍기 통로로 들어가기 전 윗옷을 벗어던지는 맥클레인
- 옷은 왜 벗는 거야?
맥클레인의 총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악당들
- 저기 나오는 나쁜 놈들은 다 바보인 것 같아.
자동 소총 탄피가 우박처럼 쏟아지는 총격전 중에
- 영화에서 나오는 건 다 가짜 총 아냐?
"야, 그렇게 생각하면 아예 영화를 보지 말아야지. 또 만화는 뭐 하러 보냐? 다 그림인데."
향수에 젖은 40대 관객들의 흥을 딱딱 끊어주는 말에 짜증이 나서 한마디 던지니 입을 다물고 샐쭉해진 녀석. 악당의 비행기가 폭파되고 엔딩크레딧과 함께 '렛 잇 스노우'가 울려퍼지는데 마지막 멘트를 날리고 휙 나간다.
"정말 다이 하드(Die Hard)네."
브루스 형님. 욕 보셨어요.

2018년 2월 20일 화요일

가족이 해야할 일

- 네 아버지가 말이다.

아이들이 잠들자 어머니께서 방바닥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보통은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기 전에 안녕히 주무시란 인사를 드리고 안방 중문을 닫고 나오는데, 하고싶었던 말씀이 있었나보다. 어머니의 말씀은 평소보다 더 길게 이어졌지만 내용은 그간 종종 들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환갑을 넘으시면서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 흉을 보셨다. 그렇다고 친구나 이웃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성격은 아니신지라 아버지에 대한 넋두리를 듣는건 자연스레 누님과 나의 몫이 되었다. 겨우 두세달에 한번씩 본가에 갔었던 나에 비해 가까운 곳에 사는 누님은 훨씬 자주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었을 것이다. 지난 일년간 누님이 조카의 입시 준비 때문에 왕래가 줄어들자 그동안 쌓인 게 많으셨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말씀이 이어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은 추임새를 넣었을 뿐이다. 설 전날 밤늦게 시작된 모자간의 대화는 내가 또 아들에게 괜히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았구나 하는 어머니의 자조 섞인 후회로 끝이 났다.

설날엔 처가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평소와 같이 반주를 얼큰하게 하신 장인께선 일찍 잠이 드셨다. 건넌방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책상에 앉았는데 거실에서 장모님과 아내가 나누는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린다.

- 네 아빠가 말이다.

장녀인 아내는 장모님을 닮은 걸로는 외모와 성격 모두 딸 셋 중 제일이다. 그래서인지 장모님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내이다. 아내는 꼼꼼하고 모든 일들을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걱정이 많아지는 성격인데, 장모님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장인께선 다소 즉흥적이고 급한 성격이시라 종종 말다툼이 생기곤 한다. 최근엔 처제의 결혼을 앞두고 신경을 쓰시면서 두 분 사이에 충돌이 늘어난 것 같았다.

방에 들어온 아내가 난처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머님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하고싶은 말씀이 많으셨나 봐. 따로 이야기하실 곳도 없을텐데 이럴 때라도 잘 들어드려야죠.”

연휴 마지막 날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 아내와 다음 주에 있을 처제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들 녀석이 짜증 섞인 말투로 이야기한다.

- 내 이야기 좀 들어보라니깐.

제딴에는 나름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가 귀기울여 듣지 않고 다른 대화만 하고 있으니 골이 났나보다. 열한살이 되었지만 아직까진 조잘조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내용이라 해봐야 친구랑 했던 놀이, 최근에 봤던 만화책이나 티비에서 보았던 만화 영화 이야기 정도가 다이지만. 요즘엔 하는 이야기의 절반 정도는 포켓몬고 게임에 대한 것이다. 주말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포켓몬들의 소식을 반복해 듣고 있노라면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엄마 아빠에게 자주 말을 건네주는 걸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남자 아이는 사춘기가 되면 말수가 확 줄어든다는데 언젠가 그 시기가 오면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할까 미리 걱정을 하기도 한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렸을 적엔 나도 어머니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많이 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랑 했던 놀이, 문구점에 들러 했던 뽑기 이야기나 텔레비젼 만화 이야기 정도가 대부분이었을 테지만.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이젠 짐작이 간다. 그땐 주로 내가 말을 하고 어머니가 그걸 들어주셨겠지만 내가 중년이 된 지금은 어머니가 말을 하고 나는 듣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방통행에 가까운 대화이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때로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가족간에 가장 중요한 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개학날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이었다.

방학 내내 늦잠을 자는데 익숙해졌던 아들은 한 시간 먼저 일어나 잠이 덜깬 얼굴로 식탁에 앉았다. 밥알을 한알한알 세듯 입을 오물거리던 아이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아빠. 근데 왜 오늘은 늦게 출근해?"
"오늘은 아침에 진료가 없어. 개학날이기도 해서, 너랑 같이 나가려구."
"그렇구나."

심드렁하게 대답한 아이는 숟가락으로 밥공기를 뒤적거렸다.

남자 아이의 등교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를 닦고, 까치집이 생긴 머리칼에 물을 묻혀 가라앉히고, 허물을 벗었다가 새 껍질을 쓰듯 옷 속으로 몸을 집어넣고, 두터운 자켓을 입고, 가방을 메고 현관에 서기까진 십분 정도면 충분했다.

영하 십도를 훌쩍 넘는 아침 날씨였다. 며칠째 한파였으므로 단단히 채비를 하고 나왔지만 코끝이 시렸다.

"아빠가 하나 들어줄게."

개학날이라 들고갈 준비물과 과제가 많았다. 양손에 든 가방 중 하나를 선뜻 건네지 않고 망설이던 아이는 머뭇거리며 로봇영재 수업 가방을 내밀었다.

학교까진 오 분이 채 안되는 거리이다. 어제까지와 달리 아파트단지 내 인도는 학교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약간의 흥분과 소란스러움이 섞인 공기가 볼을 간질였다. 딱 하루 차이인데 아침 풍경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새로 출현한 포켓몬에 대해 이야기하던 아이는 학교가 가까워지면서 불편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빠, 이제 그 가방 나한테 줘."
"왜, 얼마 안남았잖아. 그냥 아빠가 들어주고 싶어서 그래."
"아이참. 내가 들 수 있어. 그냥 줘."

녀석은 아빠와 나란히 등교를 하는게 부끄러운 눈치였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결국 녀석이 이겼다. 가방을 건네받아 양손에 짐을 든 아이가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아빠, 나 간다."

녀석은 재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 재잘대는 아이들 틈에 끼어 학교 후문 안으로 사라졌다. 한번쯤 뒤돌아 손을 흔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그사이 아빠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 것 같았다.

2017년 9월 1일 금요일

포켓몬 인형 뽑기

툭, 하고 인형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집게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려있던 파이리 인형이 구멍 속으로 떨어진 뒤였다. 떨어졌다기 보다는 빨려들어간 것 같았다.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아이는 눈이 동그래져 나를 쳐다보았다. 파이리 인형을 손에 든 아이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지만, 나는 순간 뒷골이 싸늘해짐을 느꼈다. 아니나다를까, 엄마와 함께 이상해씨가 가득 들어있는 기계 앞에 딱 달라붙어 있던 둘째가 오빠의 손에 들려있는 파이리 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뿔싸. 
몇 달 전 일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쳤다.

육 개월 전, 아이들과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에 들렀던 아울렛 매장에서의 일이었다. 식당 입구에 포켓몬 인형 뽑기 기계가 두 대 있었다. 한 번 뽑아볼까?
아내가 매장을 둘러보러 간 사이 무료함을 달래보고자 아이들에게 제안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만원에 열 두판. 이브이 인형을 목표로 삼았지만 무심한 집게는 인형 얼굴을 긁기만 하거나 어렵게 잡아올렸다가도 힘없이 떨어뜨리길 반복할 뿐이었다. 오 분도 안되는 시간에 만원을 날린 뒤 깨끗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첫째는 아쉬운 얼굴로 돌아섰지만 문제는 뽑기 기계 앞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딸이었다. 딸아이는 이브이 인형과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이 기계에서는 돈을 더 써도 뽑을 수가 없고, 기계 안의 인형은 따로 살 수도 없다고 되풀이해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인터넷으로 사주겠다고, 바로 주문해 주겠다고 해도 통하지 않았다.
- 이브이~ 이브이~
- 인터넷으로 산 거는 지금 안오잖아~ 엉엉
인형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땅바닥에 철퍽 주저앉아 우는 아이를 달래다 결국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나도 함께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곁눈질을 하며 수군거렸다. 결국 쇼핑은 시작도 못하고 그냥 서울로 돌아왔고, 그 뒤로도 주문했던 이브이 인형이 도착할 때까지 이틀을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오늘 신천역 인형 뽑기 방에서도 그때와 같은 일이 반복되진 않을까. 나는 빠르게 딸아이의 눈치를 살폈고, 오빠를 원망스럽게 보는 딸아이의 눈망울 속에서 짧은 순간 동공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일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상해씨가 든 기계로 다가가 지폐를 넣고 스틱을 움직였다. 몇 차례 시도했지만 아까와 같은 행운은 따르지 않았고, 기계 안을 살펴보니 한 마리의 인형 탈출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최대한 태연하고 쿨하게 행동해야 했다.

- 이상해씨는 오늘 안되겠다.

뒤돌아선 아빠의 말에 딸아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잔뜩 긴장을 했지만 이번엔 소리를 지르거나 떼를 쓰진 않았고 이상해씨를 목놓아 부르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서럽게 울 뿐이었다. 겨우 육 개월만에 생긴 엄.청.난. 변화였다. 나는 아내와 눈짓을 교환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이리 인형을 안고 촐싹대는 첫째에게 눈을 부라리며 딸아이를 안고 토닥이자 아이는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눈물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 아빠, 이상해씨는 언제 와?




2017년 3월 21일 화요일

TV, 그리고 Back to the Future

3년 전 쯤 거실의 평면TV가 고장난 뒤 TV를 새로 사지 않았다. 사실 난 TV 보는 걸 좋아한다. 그냥 좋아한다가 아니라 매우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없이 살기로 한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학령 전 아이들에게 TV가 유익한 물건이 아니라는 증거는 도처에 널려있다. 
2년 전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생각했다. TV는 못 봐도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니터는 있어야겠다. 내친김에 결혼 전 혼자 살 때 그랬던 것처럼 프로젝터를 이용한 홈씨어터 시스템을 꾸미기로 했다.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달고 2인용 소파를 구입했다. 그렇게 해 서재는 작은 영화감상실이 되었다. 
하지만 이 그럴듯한 영상 기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생각해 TV를 없앴지만 지금도 아이들은 거의 매일 TV를 본다. 서재의 프로젝터에 물려둔 IPTV 때문이다. 그래도 리모컨 버튼을 한 번 누르는 단순한 행동에 비해 스크린을 내리고 프로젝터와 앰프와 셋톱박스의 전원을 각각 켜는 작업은 꽤 수고로운 일이고, 이러한 수고로움은 시청에 제한을 두는데도 도움이 된다. 평일은 20분짜리 만화 2개, 토요일은 3개, 일요일은 4개씩. 어렸을 적 평일 저녁이면 개구리 왕눈이나 모래요정 바람돌이를, 일요일 아침이면 은하철도999나 천년여왕을 봤던걸 생각하면 그때보다 스크린 앞에 노출되는 시간은 더 길지만 그럭저럭 무난한 규칙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훨씬 복잡한 세상이고 바야흐로 조기 교육이 대세인 시대 아닌가. 
주말에 내키면 극장용 만화를 보기도 했다.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 스튜디오와 미야자키하야오를 비롯해 웬만한 개봉 애니메이션은 다 섭렵했다. 언젠가부턴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주말이면 오늘은 뭘 볼까 뒤적이는게 일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볼 영화를 고를 때 부딪히는 문제는 더빙이 된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IPTV에 더빙판이 있는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오래된 작품의 경우 종종 더빙판이 없고 아예 작품 자체를 찾을 수 없을 때도 많다. 이럴 때면 어둠의 경로를 따라 뒤지기도 하는데, 요즘은 그나마도 아이템이 동났다. 그런데도 아들 녀석은 으레 주말 저녁이면 영화를 볼 수 있겠거니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나다를까 이번 일요일에도 묻는다. 
"아빠, 오늘 저녁엔 뭐 볼까?" 
최근엔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를 선택하기도 했는데, 해리포터는 시리즈가 진행되며 성인이 되어가는 주인공들과 부활해가는 볼드모트의 어두운 기운을 따라가기 버거웠던지 당분간 거부한 상태이고 최근에 본 드래곤이 나오는 영화는 심심한 스토리와 구성에 영 반응이 좋지 않았던 터다. 다른 적당한 영화가 없을까 DVD 목록을 살펴보다가 갑작스레 떠오른 것이 백투더퓨쳐였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이야기라 소개하니 아들도 솔깃해하는 눈치이다. 

이 영화는 내 유년을 지배했던 영화들 중 하나였다. 영화가 개봉한 것이 1987년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가장 많이 되풀이해 본 영화일 것이다. 영화의 첫머리에서 커다란 스피커를 앞에 두고 기타를 멘 마티를 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마티가 드로리안을 타고 30년을 거슬러가는 장면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난 그만큼의 시간을 거슬러 가 있게 될 것임을.
막상 영화는 시작되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깨알같은 복선은 둘째치고 영화의 스토리만이라도 이해할까 싶었다. 하지만 아들은 이내 영화에 빠져들어 꼼짝도 않는다. 브라운 박사가 죽는 장면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왜 나타난 것인지를 헷갈려 묻기도 했지만. 중간중간 쟤는 왜 저런 것 같아? 하고 물어보는데, 대부분 맥락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플루토늄이 아닌 쓰레기와 고철을 연료로 간지나게 떠올라 날아가는 드로리안의 섬광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막상 영화가 끝나고 나니 30년 전의 엄마가 마티에게 들이대는 장면을 보며 혼란스럽진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다.(이 내용이 문제가 되어 국내 개봉이 2년 늦어졌다고 한다.) 1987년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고, 그때의 나는 마티와 30년 전 엄마의 관계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지만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은 다르지 않을까. 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한데. 
침대에 함께 누워 슬쩍 질문을 했다. 영화 재미있었어? 하니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나도 타임머신 있었으면 좋겠다." 
하긴. 이 영화를 본 뒤의 매우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겠다.
"있으면 뭐 하고 싶은데?"
눈을 반짝이며 하는 대답을 듣고 그만 실소를 짓고 말았다. 
"어제로 돌아가서 주말동안 텔레비젼 실컷 볼래." 
그래. 아쉽지만 토요일은 20분짜리 세 개란다 아들아. 그래도 영화의 내용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이상 묻는걸 그만두었다. 2편이 있다고 했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음주에 당장 보겠다고 조른다. 그나저나 더빙이 된 2편은 또 어디서 구하나.

꼬리. 예나 지금이나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마티가 아이들이 타고있던 나무판으로 보드를 만들어 거리를 질주하는 추격씬, 그리고 이 장면이였다.


2017년 2월 27일 월요일

오래된 기억

난 어렸을 적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 가족은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광주로 이사했다. 이사 전에는 탄광이 있는 마을에 살았고 집 앞길에는 석탄 가루를 날리는 덤프트럭이 지나다녔다. 아버지는 약사였다. 나는 약국에 딸린 단칸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의 기억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그나마 남은 기억도 짧은 순간들 뿐이다. 여섯 살 때였나, 후진하는 트럭에 부딪혀 한동안 다리에 깁스를 했다고 한다. 그정도 큰일이라면 기억에 남았을 법도 한데 생각나진 않는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고 이후에도 부잡스레 돌아다녀 깁스를 풀어야 할 때쯤엔 이미 석고가 다 깨져버릴 정도였다 하니 어렸을 적 나는 꽤 개구진 편이었나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도 부실한 내 기억력 때문이겠지만, 아버지가 그다지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깔깔거리며 장난을 치거나 함께 책을 읽거나 놀이를 해줄만한 분은 아니었다. 그때의 아버지들은 흔히 그랬지 않았었나. 옛날 사진 앨범을 보면 가끔은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기도 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던 것 같다. 사진 속 동물원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일찌감치 경제력을 상실한 당신의 부친 덕에 결혼 이후에도 스스로의 가족 뿐 아니라 일곱 남매 중의 장남으로서 여섯 동생들의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던 아버지의 삶은 고단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드문 기억 중 하나는 물놀이에 대한 것이다. 일곱, 아니면 여덟 살쯤이었을까. 햇살이 뜨거웠던 여름 어느날, 나는 아버지의 등에 매달린채 물에 잠겨있었다. 강 건너편에는 바위 절벽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절벽 아래에서 나를 등에 업고 헤엄을 치셨다. 당시에는 깊은 강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 키에 못미치는 얕은 깊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 강에 어떻게 갔는지, 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기억나는 순간은, 그렇게 물 속에 떠있을 때 저만치서 둥둥 떠내려오는 똥덩어리를 보았던 것이다.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저 똥덩어리가 어디서부터 왔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똥덩어리가 천천히 떠가는 인상깊은 광경은 그 순간에 느꼈던 다른 감각들도 함께 뇌리에 뿌리를 내리게 했다. 눈 앞에 있던 아버지의 넓은 어깨, 그리고 내 팔에 느껴지던 아버지의 목덜미 감촉이 생각난다. 강가의 풍경을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뒤돌아보면 그날의 기억을 잊지않게 된 것은 똥덩어리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의 감각들은 그날의 다른 일들이 모두 잊혀진 뒤에도 또렷하게 각인되어서 아버지에 대한 몇 안되는 기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나저나 똥덩어리가 선사해준 아버지와의 추억이라니. 참 없어보이긴 하다.

얼마 전 아이들과 안동의 한 서원에 갔을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 서원 앞엔 너른 모래밭 옆으로 강이 흘렀고 강 건너편엔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그 풍경은 예전 일곱 아님 여덟살 쯤의 기억 속 그것과 닮아있었다. 수백년 전의 건물 안에서 내내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던 아들은 강을 보자 모래밭을 단숨에 뛰어 물가에 다다랐다. 차가운 날씨라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게 못내 아쉬운 듯 했다. 혹시 얕은 물가에 헤엄치는 피라미라도 있지 않을까 한참을 찾던 아이는 조약돌을 주워 강에 던지기 시작했다. 늦겨울의 바람은 문득문득 싸늘하게 느껴졌지만 오후의 햇살이 잔물결 위에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들도 어른이 된 뒤엔 나처럼 어렸을적 대부분의 일들을 잊을 것이다. 아이 옆에서 함께 물수제비를 뜨며, 어른이 되서도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을 좀더 많이 추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고 바랬다. 하지만
난 아들이 자라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게될지 모른다. 내가 아버지의 등에 매달려 보았던 똥덩어리는 지난 주말 물결에 부서지던 오후의 햇살일 수도, 바람에 모양이 바뀌던 보랏빛 구름일 수도, 강기슭에서 주운 소라껍질일 수도 있다. 또한 자기 전에 함께 침대에 누워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일 수도, 영화관에서 먹었던 캬라멜팝콘의 달콤한 맛일 수도, 캐치볼을 할 때 손바닥에 꽂히던 얼얼한 느낌일 수도 있다. 내가 물 속에서 아버지의 등에 매달려있던 그 순간을 우연히 기억하는 것처럼, 아이가 기억하게 될 순간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기에 그저 같은 경험을 하고 아이가 기억하는 순간들에 운좋게 함께 서있던 존재가 되려 노력할 뿐이다.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어떤 단어를 처음 배운 날

아이들이 깨어있을 때 귀가하는 날은 잠들기 전에 함께 누워 책을 읽어준다. 잠자리 책 후보는 우선 그날의 내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개 피곤함의 정도와 책의 글자 수가 반비례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몇 가지 옵션을 제시할 뿐이고 결국 최종 선택권은 아이에게 있다. 첫째가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선택을 하는 것은 둘째의 몫이 되었다. 가끔 내 기대와는 달리 두꺼운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날이면-매우 잦은 일이다- 졸음을 참으며 책을 읽다가 읽고 있는 대목을 놓쳐서 아이들의 타박을 받기 일쑤이다. 

첫째의 경우 글밥이 적은 책부터 시작해 나이에 맞게 서서히 책의 두께를 늘렸지만, 이제 겨우 만 네 살이 된 둘째는 일찍부터 오빠가 읽는 책들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요즘엔 초등학생 대상의 만화책들을 선택하곤 한다. 오빠가 읽은 책의 내용을 다 소화해내고 말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스스로 먼저 그만두겠다는 경우는 없는데, 읽다보면 과연 내용을 얼마나 이해할지 궁금해지곤 한다. 문제는 줄곧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선택하는 이 아이가 원체 오빠보다 질문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질문은 때를 가리지않고 튀어나온다. 요즘 읽는 책은 모바일 게임 캐릭터인 쿠키들이 등장하는 학습 만화이다. 그 질문을 만난 것은 각종 쿠키들이 바다를 탐험하는 과정에서였다.

"근데 해구가 뭐야?"

졸음때문에 머리가 멍한 상태여서인지 해구(海溝)라는 단어의 뜻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바다 밑바닥의 튀어나온 곳이었던가? 아님 움푹 들어간 골짜기를 말하는 단어였던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당황스러울 때는 수없이 많은데,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그런 순간이다. 밤 열시가 넘었지만 졸음이라고는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튀어나온 곳일지 움푹 들어간 곳일지 선택을 해야했고, 어떤 단어를 써서 설명을 할지도 신중히 결정해야 했다. 

- 바다 밑바닥은 평평하지 않거든. 높은 산도 있고 깊은 골짜기도 있어. 거기 있는 골짜기를 말하는 거야. 
- 골짜기가 뭔데? (도대체 골짜기라는 단어의 급수는 몇급쯤 될까.)

- 바다 밑바닥에 있는 깊은 우물같은거야. 
- 응. 근데 우물은 뭐야? 

- 바다 밑바닥은 평평하지 않고 올라간 곳도 있고 들어간 곳도 있는데...
- 왜 평평하지 않은데?

섣불리 대답을 했다간 이런 사태가 생기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그러나저러나 좀더 멋지고 능숙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걸까. 이럴 때면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에 이골이 났을 선생님들의 자문을 구하고 싶다. 그들은 뭔가 좀 다를 것 같다. 매순간 당황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하게, 가장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지 않을까. 

대개 이러한 장면은 아이들에게 첫 번째 순간이고, 그 의미는 이런 것이다. 해구나 골짜기라는 단어부터 '곤죽이 되다'라거나 '쌍수를 든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바다 밑바닥이 왜 평평하지 않은지와 바다 색깔이 왜 시시각각 바뀌는지에 대해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해 주는 이가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매일 하고있다 생각하면 일종의 성직자가 된 듯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그때문에 긴장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의미 가득하고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다 밑바닥에 있는 아주 깊은 구멍 같은 걸 말하는 거야."

해구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딸아이는 설명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 했지만 다른 질문을 하진 않았다. 아마 나름의 방식으로 머릿 속에 그림을 그리고 어느 구석에 이 괴상한 단어를 갈무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 단어를 다시 만날 때면 이 순간의 설명이 떠오를 것이다. 그다지 멋진 설명은 아니었지만 때로는 그걸로 족하다. 오늘 이 단어의 의미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수준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신심 충만한 신부나 목사의 말씀을 주일마다 듣는 와중에서도 기껏해야 열 개인 신의 계명조차 늘상 잊어버리곤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