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워치를 꽤 오랫동안 사용했다. 운동할 때 활용하기 좋다고 하는데 이런 기기를 사용해 그날의 운동량을 타인과 공유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내 경우 그저 이 기기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운동량이 늘거나 체형이 바뀌는 기적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고 달린 거리와 경로를 보며 그저 감탄하거나 부러워할 뿐이다. 가끔 메시지 알림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일 때도 있지만 결국 나에게는 스마트 워치도 아직까진 그저 시계인 것이다.
몸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이 기기를 사용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평일 아침에 집을 나서서 퇴근할 때까지 보통 육천보 정도를 걷는다거나, 올해 평균 걸음 수가 작년에 비해 오백보 적다거나, 하루에 걷기로 소비하는 칼로리가 겨우 밥 한공기 수준이라거나, 뭐 그런 사소한 것들 말이다. 일어서는 횟수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도 그중 하나인데, 하루 목표인 열두 번을 채우는 날이 별로 없다. 그래도 진료실도 가야하고 화장실도 가고 점심 먹으러도 움직이는데 이렇게 드물게 일어설까 싶어 하루 일상을 복기해 보았더니 실제로 그럴만했다. 배뇨와 식사. 필수적인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이동 말고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도통 움직이질 않는거다.
일어설 시간입니다! 라고 친절하게 울리는 알람의 의미는 한 시간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문득 허리가 뻐근한 것 같아 상체를 슬쩍 뒤로 젖혀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벌떡 일어서진 않는다. 그래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면에서라면 도움이 된 셈이다. 걷기, 운동하기 외에 왜 하필 '일어서기'를 활동 항목에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일어서기가 걷거나 운동하는 행위와 같은 취급을 받을만한 신체활동은 아닐텐데. 물론 운동을 하기 위해선 대개 일어서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마련이지만.
손목에서 울리는 알람을 무시하고, 두 시간째 진득하게 앉아 강의 자료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았다. 학생들이 교장의 강압적인 명령에 불복하고 일어서 책상에 올라섬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드러내고 키팅 선생님에게 작별을 고하는 그 장면.
'stand'란 단어는 어떤 사안에 대한 공개적인 태도나 입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어서기가 신체적인 것 뿐 아니라 사회적인 행위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떠올려보면, 난 본래도 잘 일어서지 않는 편이었다. 여러 사람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즐기지 않고 말주변도 없다. 강의나 발표를 해야 하는 직업이라 피할 수 없는 자리가 반복되면서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런 상황은 불편하다. 말주변이 없어서인지 머리 속의 생각이 입을 거쳐 발화될 때 본래의 빛깔을 잃는 듯 느껴질 때가 많은데, 그에 대한 두려움이 한몫했던 것 같다. 아마 소심한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자리에서든 대개 침묵을 선호했고, 그 역할은 주목받지는 않지만 적어도 책임을 지거나 비판을 받을 위험은 없었다.
손목에 찬 시계도 일어서기를 격려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과거보다 더 자주, 다양한 방식의 일어섬을 목격한다. 스스로는 하루 열두 번도 채 일어서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엔 더 많은 일어섬이 필요하며, 모든 일어서는 행위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행위가 같은 무게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일어서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일어서기 전까지의 부동과 침묵이기 때문이다. 부동과 침묵이 드리운 그림자가 짙고 길수록 일어서는 행위의 의미는 커지고, 보편적 공감과 연대 의식을 넘어 때로는 감동까지도 만들어낸다. 반면 부동과 침묵 없이 발화된 일어섬은 번잡한 삶에 피로를 더할 뿐이다.
행위의 결과가 항상 해피 엔딩이 될 순 없다. 키팅 선생님은 결국 떠나고 아이들은 남는다. 스크린을 벗어난 현실에서, 사람들은 대개 다시 자리에 앉아 부동과 침묵의 그림자에 몸을 감춘다. 그러므로 부동과 침묵은 곳곳에 존재하며 우리는 대개 어떤 방식으로든 부동과 침묵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좀더 겸허해지고, 타인의 일어서는 행위에 대해서 보다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일어서서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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