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렸을 적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 가족은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광주로 이사했다. 이사 전에는 탄광이 있는 마을에 살았고 집 앞길에는 석탄 가루를 날리는 덤프트럭이 지나다녔다. 아버지는 약사였다. 나는 약국에 딸린 단칸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의 기억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그나마 남은 기억도 짧은 순간들 뿐이다. 여섯 살 때였나, 후진하는 트럭에 부딪혀 한동안 다리에 깁스를 했다고 한다. 그정도 큰일이라면 기억에 남았을 법도 한데 생각나진 않는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고 이후에도 부잡스레 돌아다녀 깁스를 풀어야 할 때쯤엔 이미 석고가 다 깨져버릴 정도였다 하니 어렸을 적 나는 꽤 개구진 편이었나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도 부실한 내 기억력 때문이겠지만, 아버지가 그다지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깔깔거리며 장난을 치거나 함께 책을 읽거나 놀이를 해줄만한 분은 아니었다. 그때의 아버지들은 흔히 그랬지 않았었나. 옛날 사진 앨범을 보면 가끔은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기도 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던 것 같다. 사진 속 동물원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일찌감치 경제력을 상실한 당신의 부친 덕에 결혼 이후에도 스스로의 가족 뿐 아니라 일곱 남매 중의 장남으로서 여섯 동생들의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던 아버지의 삶은 고단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드문 기억 중 하나는 물놀이에 대한 것이다. 일곱, 아니면 여덟 살쯤이었을까. 햇살이 뜨거웠던 여름 어느날, 나는 아버지의 등에 매달린채 물에 잠겨있었다. 강 건너편에는 바위 절벽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절벽 아래에서 나를 등에 업고 헤엄을 치셨다. 당시에는 깊은 강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 키에 못미치는 얕은 깊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 강에 어떻게 갔는지, 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기억나는 순간은, 그렇게 물 속에 떠있을 때 저만치서 둥둥 떠내려오는 똥덩어리를 보았던 것이다.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저 똥덩어리가 어디서부터 왔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똥덩어리가 천천히 떠가는 인상깊은 광경은 그 순간에 느꼈던 다른 감각들도 함께 뇌리에 뿌리를 내리게 했다. 눈 앞에 있던 아버지의 넓은 어깨, 그리고 내 팔에 느껴지던 아버지의 목덜미 감촉이 생각난다. 강가의 풍경을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뒤돌아보면 그날의 기억을 잊지않게 된 것은 똥덩어리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의 감각들은 그날의 다른 일들이 모두 잊혀진 뒤에도 또렷하게 각인되어서 아버지에 대한 몇 안되는 기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나저나 똥덩어리가 선사해준 아버지와의 추억이라니. 참 없어보이긴 하다.
얼마 전 아이들과 안동의 한 서원에 갔을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 서원 앞엔 너른 모래밭 옆으로 강이 흘렀고 강 건너편엔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그 풍경은 예전 일곱 아님 여덟살 쯤의 기억 속 그것과 닮아있었다. 수백년 전의 건물 안에서 내내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던 아들은 강을 보자 모래밭을 단숨에 뛰어 물가에 다다랐다. 차가운 날씨라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게 못내 아쉬운 듯 했다. 혹시 얕은 물가에 헤엄치는 피라미라도 있지 않을까 한참을 찾던 아이는 조약돌을 주워 강에 던지기 시작했다. 늦겨울의 바람은 문득문득 싸늘하게 느껴졌지만 오후의 햇살이 잔물결 위에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들도 어른이 된 뒤엔 나처럼 어렸을적 대부분의 일들을 잊을 것이다. 아이 옆에서 함께 물수제비를 뜨며, 어른이 되서도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을 좀더 많이 추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고 바랬다. 하지만 난 아들이 자라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게될지 모른다. 내가 아버지의 등에 매달려 보았던 똥덩어리는 지난 주말 물결에 부서지던 오후의 햇살일 수도, 바람에 모양이 바뀌던 보랏빛 구름일 수도, 강기슭에서 주운 소라껍질일 수도 있다. 또한 자기 전에 함께 침대에 누워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일 수도, 영화관에서 먹었던 캬라멜팝콘의 달콤한 맛일 수도, 캐치볼을 할 때 손바닥에 꽂히던 얼얼한 느낌일 수도 있다. 내가 물 속에서 아버지의 등에 매달려있던 그 순간을 우연히 기억하는 것처럼, 아이가 기억하게 될 순간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기에 그저 같은 경험을 하고 아이가 기억하는 순간들에 운좋게 함께 서있던 존재가 되려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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