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7일 화요일

어떤 단어를 처음 배운 날

아이들이 깨어있을 때 귀가하는 날은 잠들기 전에 함께 누워 책을 읽어준다. 잠자리 책 후보는 우선 그날의 내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개 피곤함의 정도와 책의 글자 수가 반비례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몇 가지 옵션을 제시할 뿐이고 결국 최종 선택권은 아이에게 있다. 첫째가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선택을 하는 것은 둘째의 몫이 되었다. 가끔 내 기대와는 달리 두꺼운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날이면-매우 잦은 일이다- 졸음을 참으며 책을 읽다가 읽고 있는 대목을 놓쳐서 아이들의 타박을 받기 일쑤이다. 

첫째의 경우 글밥이 적은 책부터 시작해 나이에 맞게 서서히 책의 두께를 늘렸지만, 이제 겨우 만 네 살이 된 둘째는 일찍부터 오빠가 읽는 책들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요즘엔 초등학생 대상의 만화책들을 선택하곤 한다. 오빠가 읽은 책의 내용을 다 소화해내고 말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스스로 먼저 그만두겠다는 경우는 없는데, 읽다보면 과연 내용을 얼마나 이해할지 궁금해지곤 한다. 문제는 줄곧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선택하는 이 아이가 원체 오빠보다 질문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질문은 때를 가리지않고 튀어나온다. 요즘 읽는 책은 모바일 게임 캐릭터인 쿠키들이 등장하는 학습 만화이다. 그 질문을 만난 것은 각종 쿠키들이 바다를 탐험하는 과정에서였다.

"근데 해구가 뭐야?"

졸음때문에 머리가 멍한 상태여서인지 해구(海溝)라는 단어의 뜻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바다 밑바닥의 튀어나온 곳이었던가? 아님 움푹 들어간 골짜기를 말하는 단어였던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당황스러울 때는 수없이 많은데,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그런 순간이다. 밤 열시가 넘었지만 졸음이라고는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튀어나온 곳일지 움푹 들어간 곳일지 선택을 해야했고, 어떤 단어를 써서 설명을 할지도 신중히 결정해야 했다. 

- 바다 밑바닥은 평평하지 않거든. 높은 산도 있고 깊은 골짜기도 있어. 거기 있는 골짜기를 말하는 거야. 
- 골짜기가 뭔데? (도대체 골짜기라는 단어의 급수는 몇급쯤 될까.)

- 바다 밑바닥에 있는 깊은 우물같은거야. 
- 응. 근데 우물은 뭐야? 

- 바다 밑바닥은 평평하지 않고 올라간 곳도 있고 들어간 곳도 있는데...
- 왜 평평하지 않은데?

섣불리 대답을 했다간 이런 사태가 생기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그러나저러나 좀더 멋지고 능숙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걸까. 이럴 때면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에 이골이 났을 선생님들의 자문을 구하고 싶다. 그들은 뭔가 좀 다를 것 같다. 매순간 당황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하게, 가장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지 않을까. 

대개 이러한 장면은 아이들에게 첫 번째 순간이고, 그 의미는 이런 것이다. 해구나 골짜기라는 단어부터 '곤죽이 되다'라거나 '쌍수를 든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바다 밑바닥이 왜 평평하지 않은지와 바다 색깔이 왜 시시각각 바뀌는지에 대해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해 주는 이가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매일 하고있다 생각하면 일종의 성직자가 된 듯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그때문에 긴장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의미 가득하고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다 밑바닥에 있는 아주 깊은 구멍 같은 걸 말하는 거야."

해구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딸아이는 설명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 했지만 다른 질문을 하진 않았다. 아마 나름의 방식으로 머릿 속에 그림을 그리고 어느 구석에 이 괴상한 단어를 갈무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 단어를 다시 만날 때면 이 순간의 설명이 떠오를 것이다. 그다지 멋진 설명은 아니었지만 때로는 그걸로 족하다. 오늘 이 단어의 의미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수준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신심 충만한 신부나 목사의 말씀을 주일마다 듣는 와중에서도 기껏해야 열 개인 신의 계명조차 늘상 잊어버리곤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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