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기 수령 메모 못 봤어요? 버린 것 같아서 휴지통을 뒤져도 없네.
집배원이 대문에 붙이고 간 우편물 도착 안내문을 찾는 중이었다. 맞벌이 부부가 등기 우편물을 첫 번째 배달 때 직접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에도 현관 눈높이에 얌전히 붙어있는 안내문을 서재 책상에 놓아 두었었다. 쪽지에는 재방문 일시와 집배원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재방문일 아침, 집배원에게 미리 연락해 아파트 보안실에 맡겨달라 부탁하려는데 안내문이 안보였다. 책상에 함께 놓아둔 다른 우편물들과 섞여 버려졌나 싶어 휴지통을 뒤져도 보이질 않았다.
- 아침에 관리비 고지서랑 같이 버렸는데, 왜요?
역시 아내가 버린 것이었다. 다시 휴지통을 뒤졌지만 몇 안되는 종이쪼가리들 틈에서 안내문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종량제 봉투를 꺼내어 뒤집었다. 봉투에 담겨있던 쓰레기와 함께 시큼한 냄새가 쏟아졌다. 다른 종이와 함께 구겨졌나 싶어 이번엔 종이 쓰레기를 하나하나 펴보았다. 아이들 방학 생활 안내문,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와 전단지들 사이에서 그제야 익숙한 우체국 마크가 눈에 띄었다. 안내문을 발견하고 나서 왜 처음에 바로 눈에 띄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안내문은 어른 손바닥 정도의 크기였는데, 나는 A4 용지만한 종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함께 놓여있던 다른 서류들과 같은 크기라고 착각했었던 것 같다. 안내문은 반으로 접힌 채였다. 머리 속에 큰 종이를 미리 그려놓았기에 손바닥 절반만한 크기의 안내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이런 오류가 선천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류의 역사만큼은 오래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카이사르도 인간은 자기가 보고싶은 현실만을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확증편향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그 실험 결과를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우리는 가까이에서 쉽게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특정 지역에 대한 비하, 외국인 노동자나 성소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답정너의 자세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주말밤 TV 토론에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의견과 댓글에 대댓글 싸움으로 차고 넘치는 SNS 담벼락에서.
사람은 듣고싶은 것만 듣고 보고싶은 것만 본다는 것, 나를 포함한 세상은 오류와 편향으로 가득하며 지면과 모니터를 가득 메운 말의 상찬이 부질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평론가 신형철의 글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니 답을 찾기 어려운 때일수록 단순하게 사실을 인지하고, 나아가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천천히.
기껏해야 10리터 크기의 종량제 봉투 안에도 깨달음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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