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연수일기 141. 두 번째 신용카드 도용, 달고나 만들기

10월 18일 월요일. 268일째 날. 오전에 델 마르 브랜치 도서관에 들렀다가 근처 Stratford Court Cafe에서 점심을 먹었다. 델 마르에 산책을 왔을 때 레스토랑 분위기가 좋아보여 한 번 들러보겠다 생각했었다. 베이컨이 든 스크램블은 괜찮았고, 소시지 요리는 별로였다. 날씨가 쌀쌀해 오래 앉아있기 어려웠다. 

새벽에 신용카드 승인 알람을 받았다. 해외에서 승인된 건이라 확인 문자와 메일이 함께 왔다. 확인해보니 네덜란드에 위치한 처음 보는 이름의 회사였다. 내가 사용한 건이 아니라고 확인을 하니 바로 카드가 정지되었다. 두 번째 신용카드 도용인데 지난 번엔 이런 확인 알람이 없었다.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몇 개월 사이에 두 번이나 도용을 당할 정도니 이곳에서 이런 사고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간다. 카드 도용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이곳의 시스템에 좋은 점도 있지만 비효율적이라 느끼는 부분이 많은데, 은행 업무와 관련된 것도 포함된다. 사회 전체로 볼 때 이런 문제에 낭비되는 리소스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안된다.


10월 19일 화요일. 269일째 날. 저녁에 아이들과 달고나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만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매끄럽게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국자에 베이킹소다를 넣어 적당하게 부풀리는 것도, 국자와 철판에 엉겨붙지 않게 마무리하는 것도 매번 실패다. 어렸을 때 학교 가는 골목에서 보았던 달고나 아저씨는 젓가락을 몇 번 젓기만 해도 국자 안 설탕물이 금새 부풀어 올랐고, 고운 설탕을 뿌린 철판에 손목 스냅을 이용해 국자를 떨구면 말랑한 상태의 달고나 덩어리가 탁 하고 깨끗하게 떨어졌다. 그 손놀림은 어찌 그렇게 쉬워 보였던 걸까. 그래도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럴 듯한 모양의 달고나를 완성했다. 딸은 별모양판을 찍은 달고나를 손에 들고 신이 났다. 

달고나 만들기

10월 20일 수요일. 270일째 날. 아들의 스케이트 보드 수업은 오늘로 여섯 번째이다. 이제 경사진 트랙을 내려오기도 한다. 경사가 조금만 높아져도 넘어지기 일쑤이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농구 실력도 마찬가지이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딱 맞던 바지는 이제 복숭아뼈가 보일 정도로 짧아져서 조만간 또 옷을 사야할 것 같다. 아들에 비해 더디 자라는 것처럼 보이던 딸도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긴팔 셔츠를 오랜만에 입히니 옷이 좀 작게 보인다. 

오랜만에 저녁 수영을 했다. 가을이 되면서 수영장에 사람이 줄어 한적하다. 자쿠지에서 저녁 노을을 보는 것도, 해가 완전히 져 어두워진 밤하늘과 별을 보는 것도 좋다. 딸은 이곳 수영장을 너무나 좋아해 요즘 이틀에 한 번은 수영장에 가자고 하는데 그동안엔 그만큼 따라가 주지 못했다. 딸의 기억 속에 수영장에서 보낸 시간이 많이 남을 것이다. 그 안에 아빠도 자주 등장하길. 앞으론 더 자주 같이 가줘야겠다.

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연수일기 140. 할리우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10월 16일 토요일. 266일째 날. 풀러턴에 살고 계신 지인을 방문했다. 점심을 먹기 전에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동네가 깨끗하고 살기 편해 보였다. 가까운 써니힐 고등학교가 유명해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직접 차려주신 점심도, 식사 이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눈 대화도 반갑고 좋았다. 오랜만에 먹는 정통 한식인데다 음식 솜씨가 좋으셔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들은 갈비를, 딸은 시래기 나물을 너무 좋아했다. 집을 나설 때는 잡채와 나물을 잔뜩 싸주셨다.  

LA 근처에 와서 그냥 가긴 서운해서 하룻밤을 머물고 내일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기로 계획했다. 숙소에 가기 전에 할리우드에 들러 워크 오브 페임 거리를 걸었다. LA를 여행 온 많은 이들이 이 거리를 찾는다. 직접 본 거리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마리화나 냄새, 그리고 LA 도심 특유의 어수선하고 칙칙한 느낌이 이 거리에도 배어있었다. 아이들도 불편해 했다. 저녁 시간이라 더 그렇게 느꼈을 것 같기도 하다. LA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샌디에고와 LA는 이웃한 도시임에도 너무도 다르다. 한 시간쯤 거리를 구경하고 숙소인 호텔로 일찍 들어갔다. 

할리우드 밤거리


10월 17일 일요일. 267일째 날. 드디어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간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디즈니랜드에 대해선 수없이 들었지만 놀이기구 타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에겐 급히 가야할 곳은 아니었다. 재개장을 한 이후에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그중 하나를 가보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싱가포르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갔었다. 무더운 날씨 탓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돌아다니기 딱 좋은 쾌적한 날씨였다. 개장 시간에 맞춰 도착했어도 주차장에 차들이 많다. 시티 워크를 지나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상징인 지구본 구조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첫 목적지는 역시 해리포터 존. 포비든 저니부터 탑승. 무슨 어트랙션인지 모르고 얼떨결에 탄 딸은 놀이기구가 움직이는 내내 비명을 지르고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그래도 이전에 싱가포르에선 놀이기구 하나를 타고 다른 건 안타겠다고 했는데 이젠 좀 컸는지 그 정도의 반응은 아니다. 호그와트 성과 다이애건 앨리를 돌아보며 금새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올리밴더스 입장을 기다리며 버터 맥주를 마셨다. 올리밴더스 지팡이 가게는 기념품샵임과 동시에 마법사가 지팡이를 골라주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체험을 하고 나면 지팡이를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술의 끝판왕) 우리도 헤르미온느 지팡이를 샀다. 인터랙티브 기능이 있는 (비싼) 지팡이로 간단한 주문을 실행해볼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했다. 거리 곳곳에서 호그와트 가운을 입은 아이들이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호그와트 성

해리포터 존에서만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Lower Lot으로 내려가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트랜스포머와 쥬라기 월드 어트랙션을 탔다. 둘 다 싱가포르 유니버셜과 비슷했다. 딸에게 무서운 놀이기구가 아니라고 안심을 시켰는데, 쥬라기 월드에선 마지막에 경사를 내려올 때 깜짝 놀랐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가 무서운 거 아니라며~ 엉엉~~" 싱가포르에서 미이라 어트랙션을 타고 공포에 떨었던 아들은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한지 이번엔 탑승 거부.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다시 Upper Lot으로 돌아와 스튜디오 투어에 입장했다. 버스를 타고 돌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데, 킹콩, 분노의 질주, 죠스 등의 세트에선 중간중간 체험을 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다. 폭우와 물난리가 나는 영화 장면 체험도 있고 파괴된 여객기를 그대로 재현해 둔 우주 전쟁 세트도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한 시간이 금새 지나간다. 캘리포니아 유니버셜은 해리포터와 스튜디오 투어가 다 먹여살리는 느낌. 

쿵푸 팬더 극장에서 짧은 4D 영화를 보고 마지막으로 해리포터 존을 다시 돌아보았다. 두 번을 들렀는데도 자세히 보지 못한 가게와 소품들이 많다. 사실 이곳에서만 하루 종일 있어도 모자란 느낌일 것 같다. 아들은 그리핀도르 머플러를 샀다. 할로윈 코스튬으로 미리 사두었던 가운과 함께 걸치면 좋을 것이다. 딸은 마법 지팡이를 몇 번 더 휘둘렀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보다 다이애건 앨리를 떠나는 게 아쉬웠다. 이번 주말 아이들의 일기는 당연히 해리포터 이야기.

2021년 10월 16일 토요일

연수일기 139. 부스터샷

10월 15일 금요일. 265일째 날. 샌디에고 카운티는 80%의 완전 접종률을 달성했고, 1회 이상 접종자는 89.2%이다.

  • 완전 접종은 얀센 1회, 화이자나 모더나 2회 접종 후 2주가 지난 경우를 말하고, 80% 수치는 접종 대상 연령(12세 이상) 수를 분모로 한 것.
  • 같은 기준을 적용할 때, 미국 전체는 완전 접종 66%, 부분 접종 77%.
  • 하지만 12세 이상이 아닌, 전체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미국 전체 접종률 수치는 완전 접종 57%, 부분 접종 66%.
이런 수치는 CDC 뿐 아니라 NY times 등의 언론사 페이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접종률이 궁금해 질병관리청 홈페이지를 확인해보았다. 질병관리청의 백신 접종 현황 페이지에선 일일 접종자 수(실적)만 알 수 있고, 접종률 수치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의 총 인구 수와 연령별 인구 수를 알고 있어서 금방 접종률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가장 궁금한 건 오늘 몇 명이 접종을 했느냐가 아니고, 그래서 오늘까지 국민의 몇 퍼센트가 접종을 했느냐이다. 언론 기사에선 접종률 수치를 간간이 확인할 수 있다. 이 수치는 어디서 왔을까? 질병관리청 홈페이지를 뒤지다가 답을 찾았다. 보도자료 메뉴에서 매일 hwp와 pdf 문서로 접종 현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의 접종률은 전 인구를 기준으로 완전 접종 61.6%, 부분 접종 78.3%이다. 이 놀라운 수치를 보도자료를 찾아야만 볼 수 있는 게 아쉽다. 다음이나 네이버 등의 포털에서는 접종률을 포함해 좀더 직관적인 수치와 현황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서 이런 서비스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FDA expert 패널에서는 모더나 백신의 부스터 접종을 만장일치로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 조만간 모더나 부스터에 대한 FDA 응급 승인 결정이 날 듯. 나도 미국을 떠나기 전 세 번째 접종을 받게 될 것 같다. 접종 대상은 화이자 백신과 동일하다. 하지만 용량은 절반으로 줄여 승인이 될 예정인데, 만장일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 외에 (부스터를 맞고 있는 화이자 백신 접종자와 비교해) 모더나 백신 접종자에 대한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모더나 백신은 FDA에서 제시하는 일반적으로 부스터 샷이 충족해야 할 여러 조건 중 딱 하나만 만족했을 뿐이다.

NY times 기사 링크

화이자 백신에 비해 모더나 백신의 효과가 더 좋고 오래 간다는 점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는데, 이로 인해 부스터 샷의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A/S가 덜 필요한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타 회사의 제품에 비해 매출이 줄어들 만한 상황. 회사 입장에선 부스터 샷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할 것 같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부스터 샷의 효과가 얼마나 갈까 하는 점이다. 몇 개월이 될지, 몇 년이 될지. 이에 대해선 아무도 답을 할 수 없다. 한국에서도 백신 접종이 의료진에 대한 부스터샷을 시작했다.

오늘 연구 미팅에선 노스웨스턴 대학 Philip Greenland 교수의 의학 논문 작성법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그는 JAMA의 senior editor 세 명 중 한 명이다. 내게는 어느 정도 익숙한 내용의 강의였지만 JAMA의 논문 심사 시스템이나 editor로서의 관점을 엿볼 수 있었던 점은 흥미로웠다. 함께 연구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postdoc과 학생들에겐 탑 저널의 에디터를 만날 수 있는 이런 시간이 무척 귀중할 것이다. 판데믹 이후 JAMA의 투고 논문이 50% 늘었다고 한다. 1만4천 건의 투고 원고 중 저널에 실리는 건 4백 편에 불과하니 3퍼센트가 안되는 수치이다. 금요 세미나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이 언젠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와 같은 이 확률을 뚫는 연구 성과를 낼 수 있기를.

서론을 쓰는 법

딸은 오늘 친구 J와 슬립 오버를 한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슬립 오버라 며칠 전부터 기대가 많았다. 사실 지난 달에 약속을 해두었다가 당일 우리가 다른 일로 정신이 없어 잊어버리는 바람에 울고불고 하는 딸을 달래느라 혼이 났었다. 방 안에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 몇 달간 아이들은 친구와 노는 시간이 늘 부족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과 이곳에서 경험하는 다른 것들이 조금이나마 부족함을 채워주었기를 바란다. 

2021년 10월 15일 금요일

연수일기 138. 오징어 게임, 할로윈 코스튬

10월 13일 수요일. 263일째 날. 미국에서 느끼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꽤나 놀랍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며 로컬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아침 시간엔 청취자를 연결해 시시껄렁한 연예 퀴즈를 내고 맞춘 이들에게 상품을 주는 코너가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데뷔한 연도나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넘버원 히트곡이 실린 앨범 이름 같은 걸 묻는 식이다. 그런데 며칠 전 문제 중 하나가 이랬다.

'최근 핫한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한국의 놀이 이름은?'
아내와 매주 채팅을 하는 그룹은 평균 연령 70대 이상의 할머님들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이를 무색케 하는 할머님들의 지식과 활동력에 놀라게 된다. 다들 교육 수준이 높고, 캘리포니아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분들이라는 편향이 있긴 하지만. 그동안 화상 채팅을 하다 판데믹 상황이 나아지면서 최근엔 공원에서 직접 만나 모임을 한다. 그런데 오늘은 모임 내내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했다고. 할머님 대부분이 드라마를 보셨단다.

할로윈 파티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아이들은 촌스러운 초록색 추리닝과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그려진 마스크와 핑크 유니폼을 코스튬으로 준비하고 있다. 웬만한 상품은 하루이틀 만에 배송이 되는 아마존이지만, 이들 코스튬은 지금 주문해도 2주가 남은 할로윈까지 받아보기 쉽지 않다. BTS가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고 각종 기록을 냈다지만 내가 십대가 아니어선지 이곳에서 BTS의 인기는 실감하기 어렵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연령 불문 진짜인 듯 하다.

딸이 아이스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서울에선 겨울이면 집 근처 올림픽 공원 스케이트장에서 놀곤 했었다. 샌디에고에서 겨울 스포츠를 하게 될 거란 생각은 안했는데, 친구 J가 아이스 스케이트를 탄다고 하니 예전 생각이 났나보다. 샌디에고에도 아이스 링크가 몇 개 있다. 집에서 가까운 미라 메사의 아이스 아레나에 등록했다. 수업은 주 1회에 겨우 30분으로 짧지만, 수업료가 그리 비싸지 않고 수업 외 시간에도 자유 스케이팅을 할 수 있어서 괜찮은 것 같다. 오랜만에 아이스 스케이트를 탄 딸은 신이 났다. 


10월 14일 목요일. 264일째 날. 아이들 할로윈 코스튬을 샀다. 학교에서는 할로윈 전 금요일에 코스튬을 입고 등교하는 걸 허용하는 대신 나이에 맞지 않는 의상은 피하도록 안내를 해준다. 할로윈 주말에 사탕을 받으러 돌아다닐 때도 코스튬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엔 코스튬 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매장이 많고 샌디에고에도 여러 군데 있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코스튬이 많았다. 아들은 호그와트의 그리핀도르 가운과 넥타이를 샀다. 딸은 마음에 드는 코스튬이 없다고 한다. 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특별한 옷을 입기는 싫다고. 평소와 같은 옷차림은 오히려 어색할 것 같아 오랜 상의 후에 악마 머리띠와 꼬리, 삼지창 정도만 준비하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Plague Doctor

미용실에서 아들 머리를 잘랐다. 삼개월 전과 같은 미용실이다. 아들은 미용실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전과 같이 거침없는 바리깡질을 당할까 봐 불안해했다. 다행히 이번엔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 미용사 분이 가위를 잡으셨는데 지난 번 미용사보다 솜씨가 훨씬 좋았다. 이번에는 아들도 만족. 

2021년 10월 13일 수요일

연수일기 137. Sam

10월 11일 월요일. 261일째 날. S 선생님, L 선생님 부부와 캐롤라인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지난 주엔 폭우도 오고 날씨가 구름이 많이 끼고 쌀쌀한 편이었는데 오늘도 바람이 셌다. 캐롤라인 카페의 야외 좌석은 평소에도 바닷 바람이 센 편이다. 바람을 너무 맞아서 아내는 감기 기운이 생겼다. 며칠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괜히 열감기라도 생기거나 아이들에게 감기가 옮기라도 하면 또 번거로운 일이 생긴다. 

아들이 부엉이를 조각하던 큰 호박이 썩었다. 어제 호박 안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 걱정을 했는데 오늘 보니 파내고 남은 호박 살점이 썩어 곤죽이 되었다. 절반쯤 파낸 부엉이가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이 호박은 쓰레기통 행. 나중에 알고 보니 속을 비운 호박에 곰팡이가 슬거나 썩는 일이 아주 흔하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할로윈 밤에 쓸 호박 랜턴은 하루이틀 전에 만드는 게 좋다고. 할로윈 전에 다시 만들기로 했다.

딸 학교에서 파는 후드티를 주문했다. 학교 로고와 함께 상징인 말 그림이 프린트 되어 있어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추억거리가 되줄 것이다. 


10월 12일 화요일. 262일째 날. Rob과 Sam을 만날 때면 요즘엔 Sam이 다음 번 만날 장소를 정한다. 오늘은 베트남 식당이었다. 연구실과 아주 가까운 곳이라 산책하듯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지난 주엔 가기로 했던 베트남 식당이 화요일에 문을 닫아서 근처의 파네라 브레드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었었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Sam이 원하던 식당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갑자기 옮겨야 하는 상황을 바로 따를지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문이 닫힌 식당 앞을 잠시 맴돌다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순순히 차를 탔다. 예전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대한 미국 교육에 관해 이야기하다 Rob이 말했다. 적절한 교육이 없었다면 Sam이 지금과 같이 살지 못했을 거라고. 기본적인 독립 생활이 가능하고 마트에서 일까지 하고 있는 Sam을 보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우리 교육 시스템의 부족함이 떠올라 씁쓸한 마음이 든다. 

식사를 마치고 여느 때와 같이 Sam이 다음 주 만날 식당을 정했다. 구글 맵으로 문을 닫지 않는 식당을 확인했다고 한다. 밝게 인사를 한 그가 먼저 떠나는데, 세워둔 자전거를 타려다 옆에 주차된 차 안을 들여다 본 모양이다. 젊은 남자가 화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Rob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운전자에게 다가가 Sam에게 자폐가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남자가 이내 굳었던 표정을 풀고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오히려 사과를 했다. 장소가 서울의 어느 식당이었다면 어땠을까. 혹시라도 왜 문제 있는 아들을 식당에 데리고 왔느냐고 성을 내진 않았을까. 

2021년 10월 11일 월요일

연수일기 136. LA 공항 코로나 검사

10월 10일 일요일. 260일째 날. 장인 장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날이다. 밤 11시 비행기라 애초엔 낮에 LA 관광 후 공항에 가려 했는데, 그동안의 일정에 지치셨는지 LA 구경을 원치 않으셔서 집에서 쉬다가 느지막히 공항에 가는 걸로 계획을 바꿨었다. 

문제는 금요일에 받았던 코로나 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1-2일 내에 결과가 나오는 게 보통이지만 검사가 많은 날엔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지난 번 라스베가스에서 받았던 딸의 검사 경험을 믿고 다음날 결과가 나올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던 게 실수였다. 공항 수속 전까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항공편 탑승 날짜를 미뤄야 할 수도 있었다. 

결국 아침에 LA 공항의 코로나 검사를 예약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선 PCR 검사만 유효하다. 1시간 이내에 결과가 나오는 rapid PCR은 199불이었고, 오늘 당일 슬롯은 다 차서 예약이 불가능했다. 다행히 3-5시간 이내에 결과가 나오는 PCR 검사 슬롯이 충분히 남아있어서 오후 1시로 예약했다. 비용은 1인당 125불이었고 예약 시에 결제를 해야 했다. 현재는 아래 링크에서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flylax.com/travelsafely#CovidTest

LAX covid-19 test 장소

아침을 대충 먹고 급히 공항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예약한 시간에 검사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Parking structure 6번 옆의 공터였다. 이곳에선 부스의 직원이 직접 검체를 채취했지만 방식은 역시 anterior nasal sweb이었다. 

검사 후 한인 타운에서 점심을 먹었고, 덕분에 계획에 없던 한인 타운을 구경하게 되었다. 한인 타운은 한국의 8-90년대 변두리 거리를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식사 후 아울렛을 보고싶어하는 장모님을 위해 Citadel outlet을 들렀다. 샌디에고의 아울렛들보다 규모가 작고 사람이 많아선지 좀 답답하게 느껴졌다. 주차도 불편하다. 오래 머물진 않고 그냥 공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침 검사 결과 이메일도 도착했다. 검사 후 네 시간 만이었다. 

공항 터미널의 아시아나 수속 창구가 아직 열리지 않아서 기다려야 했다. 그전에 검사 결과를 출력하는 일이 남았다. 공항 근처에 Fedex office와 같은 프린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었지만 일요일엔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았다. Target과 같은 마트는 사진 출력만 가능하다. 아침에 검사를 예약할 때 결과 출력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게 그냥 집에 있는 프린터를 가져오는 방법이었다. 터미널 구석에서 전원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찾아 프린터 전원을 켜고 함께 준비해간 노트북을 연결했다. 공항 와이파이 망을 이용해 검사 결과를 다운받은 뒤 출력에 성공. 두 장의 결과지를 손에 들고 나니 맥이 탁 풀렸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장인장모님을 무사히 배웅해드렸다. 금요일에 받았던 CVS 검사 결과가 나온 건 두 분이 게이트로 들어가고 20분 뒤였다. 지금 생각하면 검사 예약을 좀더 서둘러서 하루 일찍 받았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2021년 10월 10일 일요일

연수일기 135. 할로윈 시즌

10월 7일 목요일. 257일째 날. 골프를 좋아하시는 장인어른을 모시고 토리 파인즈 골프 코스에 다녀왔다. 워낙 유명한 골프 코스라 골프를 하지 않는 나와 아내도 이전부터 한 번쯤 구경을 가봐야겠다 생각했었다. 입구의 연습장과 골프샵에서만 봐도 필드의 전망이 근사해보였다. 올해 있었던 US오픈 여파로 잔디 상태가 좋진 않았다. 장인께서 필드에 나가셨다면 더 좋았겠지만, 기념품 몇 가지를 사는 걸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샌디에고 미션도 구경시켜 드리고, 오후 늦게는 솔라나 비치에도 다녀왔다. 저녁은 아파트 앞 몰에 얼마 전 오픈한 한국식 치킨집에서 먹었다. 간장 소스 치킨 맛이 괜찮았다. 이곳 치킨은 한국에서 먹던 배달 치킨보다 훨씬 크다. 닭다리 두께가 두 배쯤은 되는 것 같다. 

할로윈 시즌이 다가오면서 대부분의 마트 입구에 호박이 산처럼 쌓였다. 랄프스에서 할로윈 장식용 호박을 샀다. 큰 호박 하나와 작은 호박 하나. 작은 호박 하나는 내일 딸이 잭오랜턴을 만드는데 쓸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도 할로윈 장식을 한 집들이 많아졌다. 우리도 할로윈 장식과 아이들 코스튬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10월 8일 금요일. 258일째 날. 오늘 연구 미팅엔 하버드 JoAnn E. Manson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Brigham and Women's Hospital 예방의학 교실의 주임 교수이자 VITAL 연구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VITAL은 비타민D와 오메가-3에 대한 무작위 대조군 시험으로 오래 전부터 나 역시 관심을 두고 있던 연구이다. 연구 책임자가 직접 설명하는 연구 결과와 의미를 들을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장인 장모님은 일요일 출국을 앞두고 CVS에 예약해 두었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비행기 탑승 전, 72시간 이내의 검사 결과가 있어야 한다. 지난 번에 라스베가스에서 딸이 검사를 받았던 경험도 있고, 당시 결과가 다음 날 바로 나오기도 해서 CVS에서 검사를 받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딸은 S 선생님 집에서 언니들과 어제 샀던 작은 호박을 깎아 장식을 만들었다. 처음이었지만 호박 장식을 만든 경험이 많은 언니들이 잘 도와주었다. 만들어 온 걸 보니 제법 그럴 듯 했다. 큰 호박으로는 아들이 부엉이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딸이 호박 장식을 만드는 동안 델 마르 플라자에서 시간을 보냈다. 금요일 저녁이었고, 바다가 보이는 데크엔 칵테일을 마시며 라이브 밴드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밴드의 음악과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대화 소리가 섞인 적당한 소음이 좋았다. 몇몇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우리도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벤치에서 맥주를 마셨다. 

딸이 만든 잭오랜턴

10월 9일 토요일. 259일째 날. 부모님을 모시고 미드웨이 뮤지엄, 시포트 빌리지, 카브릴로 국가 기념물을 차례로 들렀다. 미드웨이 뮤지엄은 처음이었는데, 항공모함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구경할 곳도 많았다. 부모님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보기 좋은 곳이었다. 베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장인어른께서 특히 좋아하셨다. 10월엔 샌디에고 내 많은 박물관에서 12세 미만 아이들 무료 입장 행사를 한다. 덕분에 딸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2021년 10월 7일 목요일

연수일기 134. Maroon 5 콘서트

10월 4일 월요일. 254일째 날.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라호야 코브에 다녀왔다. 1월에 오고 두 번째이다. 그때처럼 해변에 바다사자가 가득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바다는 투명하고 하늘은 파랗다. 아이들이 날리는 비누방울이 바람을 타고 흘러다녔다. 띄엄띄엄 늘어선 노점에선 옷과 모자, 숄, 조잡한 장신구와 돌조각 등 국적을 알 수 없는 각종 기념품을 팔았다. 칠드런스 풀까지 짧은 산책 후 언제 가도 좋은 캐롤라인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부터 구름이 많아지더니 아파트 바베큐장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하는데 비가 떨어진다. 비는 금새 폭우로 변했다. 수영장 옆의 캐노피에서 들이치는 비를 피해가며 저녁을 먹었다. 하늘엔 번개가 번쩍였다. 금새 멈출 비가 아닐 것 같았는데 결국 밤새도록 비가 왔다. 10월의 샌디에고에서 보기 드문 날씨의 밤이었다. 


10월 5일 화요일. 255일째 날. 아침 일찍 데스밸리 국립 공원 투어를 떠나는 장인 장모님을 배웅하고 출근했다. 지난 주말 라스베가스에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그 도시를 싫어하는 Rob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랜드 캐년 이야기엔 다시 화색이 돌며 Sam과 Nina가 그랜드 캐년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Maroon 5의 공연을 보러 다녀왔다. 나와 아내는 원래 좋아하던 그룹이고, 로컬 라디오 방송에서 이들의 음악이 워낙 자주 나오다 보니 아들도 나름 팬이 되었다. 샌디에고에 투어를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티켓 예매를 했었다. 원래 예정되었던 공연 일정이 판데믹으로 연기되었던 모양이다. 공연장은 출라비스타의 노스 아일랜드 크레딧 유니온 앰피씨어터 North Island Credit Union Amphitheatre. 오랜만에 제대로 된 콘서트를 보는 것도 좋았고 미국 본토에서 보는 팝음악 공연은 어떤 분위기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입장에 필요한 백신 접종 카드를 집에 두고 와서 중간에 집에 돌아갔다 오는 소동도 있었지만 공연 시작인 일곱시 전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야구장과 마찬가지로 가방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는데, 미리 알고 백팩은 가져가지 않았지만 아내의 작은 손가방까지 크기 제한에 걸려 다시 주차장에 다녀와야 했다. 총과 같은 무기 소지를 막기 위해서일텐데, 애초에 일반 대중에게 총기에 대한 제한을 한다면 이런 번거로운 규정이 필요없을 것이다.

백신 카드나 코로나 음성 검사 결과가 필요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정말 많았다. 주차장에 다시 갔다 오느라 공연장 안에 입장한 것은 일곱시 반쯤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주차장 입구에 차가 늘어서 있었고 입장 줄도 길게 남아 있었다. 미처 검사 결과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즉석 항원 검사 데스크에도 줄이 길게 늘어섰다. 공연장 안에 술과 스낵을 파는 매점과 부스가 많았다. 맥주와 나초를 사서 원형 극장 맨 뒤의 잔디밭에 비치 타올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여덟 시가 되어서야 게스트의 공연이 시작되었고, 막상 Maroon 5가 무대에 오른 건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지루할 만도 했지만 관객들 누구도 시간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처럼 여유 있는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 사이에 있다 보니 우리도 덩달아 느긋해진다.  

게스트 공연이 끝나고 쉬는 시간

본 공연이 시작되자 잔디밭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떼창을 하는 모습은 여느 콘서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도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며 분위기를 즐겼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있고 싶었지만 열 시가 넘어 아쉽지만 일어나기로 했다. 공연을 다 보고 나간다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릴 것이다. 아들은 'Memories'를 듣지 못하고 나온 걸 못내 아쉬워 했다. 내일 아이들 등교만 아니었다면 끝까지 있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애덤 리바인의 목소리를 반복해 들으며 흥얼거렸다. 


10월 6일 수요일. 256일째 날. 특별한 일 없이 집에서 쉬었다. 장인 장모님은 오늘 조슈아 트리에 들렀다가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셔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연이은 여행에 조금은 지치신 눈치이다. 남은 기간엔 샌디에고 안에서 가까운 곳들을 둘러볼 생각이다. 

2021년 10월 4일 월요일

연수일기 133. 주말 여행: 라스베가스, 그랜드 캐년 웨스트림

10월 1일 금요일. 251일째 날.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라스베가스에 짧은 주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이들 학교가 끝나자마자 출발을 해도 오후 3시이다. 금요일 오후에 정체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9시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미국 도로에서 만나본 것 중 최고의 정체를 만날 줄은 몰랐다. 테메큘라에서 바스토우까지의 도로는 내내 막혔다 풀렸다를 반복했다.

저녁을 먹기로 한 바스토우의 인앤아웃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곱 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주유를 하고 인앤아웃에 잠깐 들른 것 말고는 줄곧 운전을 했지만 결국 밤 열 시가 넘어 라스베가스 메인 스트립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매점에 다녀오는 길에 잠깐 카지노를 구경하는 걸로 오늘 일정은 마무리. 


10월 2일 토요일. 252일째 날. 한식당에서 곰탕으로 아침을 먹고 가까운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점심 먹거리를 산 뒤 그랜드 캐년 웨스트 림으로 향했다. 라스베가스에서 웨스트 림까지는 두시간 반이 걸린다. 

두 분이 머무시는 동안 일정을 어떻게 구성할까에 대해 아내와 상의를 많이 했다. 미국 서부는 처음이시니 세도나를 거쳐 그랜드 캐년에 가시면 좋겠다 싶었는데, 주말 동안 우리가 모시고 가긴 힘들 것 같아 가이드 투어를 우선 알아보았다. 그런데 다리가 불편하신 장모님이 오랜 시간 차를 타시긴 어려울 것 같았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같아 결국 그랜드 캐년 대신 가까운 데스 밸리와 조슈아 트리 가이드 투어를 가시는 걸로 계획했다. 대신 주말엔 우리가 모시고 라스베가스 정도는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스베가스에서 토요일 낮에 뭘 할까 생각하다 그랜드 캐년 웨스트 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우스 림보다는 못하지만 캐년의 분위기를 느끼기엔 괜찮을 것 같았다. 애초에 가보려 했던 후버댐도 돌아오는 길에 들를 수 있다. 

정오가 지나 웨스트 림 입구에 도착했다. 웨스트 림은 국립 공원이 아닌 인디언 자치구에 포함되어 국립 공원 애뉴얼 패스를 사용할 수 없다. 딱 두 개인 뷰포인트에 일인 당 45불의 입장료는 좀 과하다 싶다. 게다가 바닥이 투명한 전망대인 스카이 워크는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웹페이지에선 스카이 워크나 집라인 등을 패키지로 묶은 티켓을 우선 보여주고 일반 입장 티켓은 찾기 어렵게 해두었다. 너무 장삿속이 보이는 것 같지만 웨스트 림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의 생계에 관광 수입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걸 생각하면 이해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랜드 캐년의 3분의 1 이상 면적이 후알라파이 인디언 자치 구역이다. 스카이 워크로 유명해지기 전까진 방문객 수가 사우스 림의 10%도 안되었다고 한다. 스카이 워크가 처음 생길 때 환경 훼손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는데, 사우스 림이었다면 절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랜드 캐년의 분위기와 썩 어울리지 않는 스카이 워크가 이곳 인디언들에겐 생계를 책임지는 명물이 된 것이다. 이날 우린 스카이 워크엔 올라가지 않았다. 멀리서 본 스카이 워크는 좀 서글퍼 보였다.

웨스트 림 안에선 개인 차량을 이용할 수 없고, 뷰포인트를 순환하는 셔틀 버스를 타야 한다. 이글 포인트와 구아노 포인트를 차례로 보았다. 사우스 림과 비교하면 산책로나 편의 시설도 부족하고 황량한 느낌이지만, 끝없이 펼쳐진 장대한 캐년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그랜드 캐년을 처음 보는 장인께서는 감탄을 연발하신다. 이 풍경 만으로 두시간 반을 달려온 게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구아노 포인트에서 보는 전경

피크닉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에 후버 댐을 잠시 구경했다. 숙소인 미라지 호텔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쇼를 보기 위해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로 이동했다. 한동안 문을 닫았던 공연장 중 상당 수가 다시 쇼를 시작했다. 오늘 예약한 쇼는 태양의 서커스 'Mystere'이다. 몇 년 전 라스베가스에 왔을 때 KA 쇼와 비틀즈 Love를 보았었는데 모두 볼 만했다. 최근 미국에선 중단했던 공연과 콘서트 등을 다시 시작하는 도시가 많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극장도 개장을 했는데, 입장하기 위해선 백신 접종 증명서나 검사 음성 증명서를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라스베가스 쇼엔 그런 조건이 없었다. 공연장 좌석은 거의 가득 찼고, 마스크를 벗고 팝콘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공연 내내 마스크를 절대 벗으면 안될 것 같았다. 무대 위의 단원들도 모두 마스크를 쓴 채 공연을 했다. 관객들은 한동안 중단했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보였지만 화려한 쇼를 보면서도 마음이 썩 편하진 않았다. 

쇼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엔 대마초 냄새가 가득하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미라지의 화산쇼를 구경했다. 라스베가스에 이전에 두 번을 왔어도 화산쇼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쇼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짧았지만 아이들은 즐겁게 보았다. 


10월 3일 일요일. 253일째 날. 한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메인 스트립 근처의 CVS에 들러 예약한 딸의 covid-19 검사를 시행했다. 다음 주에 예약한 콘서트 때문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 후 M&M 스토어에 들렀다. 지난 번 라스베가스에 왔을 때 딸이 이곳에 가고싶어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 들르지 못했고, 이번에는 꼭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딸은 노란 쿠션과 초콜릿 캐릭터가 그려진 노트를 골랐다. 

돌아올 때는 부모님께서 황량한 사막의 풍경을 느껴보실 수 있도록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는 길을 선택했다. CF에 등장할만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막상 장인어른께선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고 인적도 드문 도로에서 자동차가 고장나거나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셨지만. 장인어른은 사막을 벗어나 주유소가 보인 뒤에야 마음을 놓으셨다. 미국 횡단 도로인 66번 도로에 있는 이 오래된 모텔 주유소는 지난 번 그랜드 서클 여행 때 들렀던 곳으로 위키피디아에도 올라간 유서 깊은 곳이다. 그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먼지를 뒤집어쓴 주유 미터기가 작동을 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실제 주유를 할 수 있는 기계였다. 직원이 직접 계기판을 손으로 돌려 금액을 맞추고 주유를 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미국에서 처음으로 셀프가 아닌 주유소를 경험했다. 주유를 하는 동안 장인어른께선 66번 도로 기념품을 사셨다. 

골동품 수준의 주유기

팜스프링스 풍력 발전 지대를 지나쳐 데저트힐 아울렛을 들렀다가 집에 도착하니 여덟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빡빡한 일정에다 사흘 동안 내내 운전을 하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미국 서부를 처음 보신 부모님께서 즐거워하셔서 흡족했다. 

2021년 10월 1일 금요일

연수일기 132. 장인 장모님의 방문

9월 28일 화요일. 248일째 날. 아침에 아이들 도시락을 준비했다. 한국에서도 이곳에서도 요리는 대부분 아내의 몫이다. 한국에서보다 집밥을 더 많이 먹으니 식사 준비에도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나도 시간 여유가 더 있으니 진즉 함께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번 주부터는 나도 일주일에 하루 아침과 도시락 준비를 하기로 했다. 

오늘 도시락 메뉴는 스팸무스비. 내가 만들었던 몇 안되는 음식 중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이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나름 부지런히 준비했지만 아이들 등교 시간에 겨우 맞출 수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아이들 도시락을 챙겨 온 아내에게 새삼 감사할 따름이다. 

저녁은 아파트 앞 몰의 Flora에서 먹었다. 이곳도 이번 주엔 레스토랑 위크 저녁 코스 메뉴를 제공한다. 프리 픽스 메뉴와 함께 피자와 파스타도 주문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론 근처 상가의 레스토랑 중엔 가장 나은 것 같다. 오늘 메뉴도 맛이 괜찮았다. 


9월 29일 수요일. 249일째 날. 장인 장모님이 오시는 날이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LA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항공편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착륙을 해 늦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두 분이 게이트에서 나오기 오 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판데믹 상황 때문에 처제들과 다른 가족들이 함께 오지 못해 아쉽지만, 두 분이라도 오실 수 있어 감사하고 반갑다. 

오랜만에 직접 아이들 얼굴을 보고 즐거워하는 두 분을 보니 나도 마음이 좋았다. 아파트도 구경하고, 아들이 스케이트 보드 수업을 받는 모습도 보고 공원도 구경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를 미국에 보내고 매일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까. 그래도 직접 와서 사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시는 눈치이다. 


9월 30일 목요일. 250일째 날. 오늘 점심은 델 마르 비치의 Jake's Del Mar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델 마르 해변의 전망 좋은 식당으로 인기가 많다. 아들의 졸업식 때 왔던 이후로 두 번째이다. 메뉴는 역시 레스토랑 위크 코스. 샐러드와 샌드위치 등의 비교적 간단한 코스 메뉴가 20불이었다. 행사 메뉴 네 가지를 모두 하나씩 시켰는데 다 맛있고 양도 적당했다. 식사 후 장인 장모님과 델 마르 해변을 구경했다. 

오후엔 한인 마트를 구경시켜 드릴 겸 H 마트에서 함께 장을 봤다. 연어 회와 초밥용 장어, 타마고를 사서 집에서 초밥을 만들었다. 이전에도 처가에 가면 종종 해먹던 방식이다. 회나 초밥은 너무 비싸서 한국에서만큼 자주 사 먹기가 부담스러운데, H 마트의 회 코너가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곤 한다. 미소 된장국과 장모님이 가져오신 김치, 그리고 소주를 곁들이니 한국에서 먹던 것과 다르지 않은 그득한 한상이 되었다. 

근사한 저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