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금요일. 251일째 날.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라스베가스에 짧은 주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이들 학교가 끝나자마자 출발을 해도 오후 3시이다. 금요일 오후에 정체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9시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미국 도로에서 만나본 것 중 최고의 정체를 만날 줄은 몰랐다. 테메큘라에서 바스토우까지의 도로는 내내 막혔다 풀렸다를 반복했다.
저녁을 먹기로 한 바스토우의 인앤아웃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곱 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주유를 하고 인앤아웃에 잠깐 들른 것 말고는 줄곧 운전을 했지만 결국 밤 열 시가 넘어 라스베가스 메인 스트립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매점에 다녀오는 길에 잠깐 카지노를 구경하는 걸로 오늘 일정은 마무리.
10월 2일 토요일. 252일째 날. 한식당에서 곰탕으로 아침을 먹고 가까운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점심 먹거리를 산 뒤 그랜드 캐년 웨스트 림으로 향했다. 라스베가스에서 웨스트 림까지는 두시간 반이 걸린다.
두 분이 머무시는 동안 일정을 어떻게 구성할까에 대해 아내와 상의를 많이 했다. 미국 서부는 처음이시니 세도나를 거쳐 그랜드 캐년에 가시면 좋겠다 싶었는데, 주말 동안 우리가 모시고 가긴 힘들 것 같아 가이드 투어를 우선 알아보았다. 그런데 다리가 불편하신 장모님이 오랜 시간 차를 타시긴 어려울 것 같았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같아 결국 그랜드 캐년 대신 가까운 데스 밸리와 조슈아 트리 가이드 투어를 가시는 걸로 계획했다. 대신 주말엔 우리가 모시고 라스베가스 정도는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스베가스에서 토요일 낮에 뭘 할까 생각하다 그랜드 캐년 웨스트 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우스 림보다는 못하지만 캐년의 분위기를 느끼기엔 괜찮을 것 같았다. 애초에 가보려 했던 후버댐도 돌아오는 길에 들를 수 있다.
정오가 지나 웨스트 림 입구에 도착했다. 웨스트 림은 국립 공원이 아닌 인디언 자치구에 포함되어 국립 공원 애뉴얼 패스를 사용할 수 없다. 딱 두 개인 뷰포인트에 일인 당 45불의 입장료는 좀 과하다 싶다. 게다가 바닥이 투명한 전망대인 스카이 워크는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웹페이지에선 스카이 워크나 집라인 등을 패키지로 묶은 티켓을 우선 보여주고 일반 입장 티켓은 찾기 어렵게 해두었다. 너무 장삿속이 보이는 것 같지만 웨스트 림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의 생계에 관광 수입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걸 생각하면 이해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랜드 캐년의 3분의 1 이상 면적이 후알라파이 인디언 자치 구역이다. 스카이 워크로 유명해지기 전까진 방문객 수가 사우스 림의 10%도 안되었다고 한다. 스카이 워크가 처음 생길 때 환경 훼손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는데, 사우스 림이었다면 절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랜드 캐년의 분위기와 썩 어울리지 않는 스카이 워크가 이곳 인디언들에겐 생계를 책임지는 명물이 된 것이다. 이날 우린 스카이 워크엔 올라가지 않았다. 멀리서 본 스카이 워크는 좀 서글퍼 보였다.
웨스트 림 안에선 개인 차량을 이용할 수 없고, 뷰포인트를 순환하는 셔틀 버스를 타야 한다. 이글 포인트와 구아노 포인트를 차례로 보았다. 사우스 림과 비교하면 산책로나 편의 시설도 부족하고 황량한 느낌이지만, 끝없이 펼쳐진 장대한 캐년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그랜드 캐년을 처음 보는 장인께서는 감탄을 연발하신다. 이 풍경 만으로 두시간 반을 달려온 게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구아노 포인트에서 보는 전경 |
피크닉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에 후버 댐을 잠시 구경했다. 숙소인 미라지 호텔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쇼를 보기 위해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로 이동했다. 한동안 문을 닫았던 공연장 중 상당 수가 다시 쇼를 시작했다. 오늘 예약한 쇼는 태양의 서커스 'Mystere'이다. 몇 년 전 라스베가스에 왔을 때 KA 쇼와 비틀즈 Love를 보았었는데 모두 볼 만했다. 최근 미국에선 중단했던 공연과 콘서트 등을 다시 시작하는 도시가 많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극장도 개장을 했는데, 입장하기 위해선 백신 접종 증명서나 검사 음성 증명서를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라스베가스 쇼엔 그런 조건이 없었다. 공연장 좌석은 거의 가득 찼고, 마스크를 벗고 팝콘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공연 내내 마스크를 절대 벗으면 안될 것 같았다. 무대 위의 단원들도 모두 마스크를 쓴 채 공연을 했다. 관객들은 한동안 중단했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보였지만 화려한 쇼를 보면서도 마음이 썩 편하진 않았다.
쇼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엔 대마초 냄새가 가득하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미라지의 화산쇼를 구경했다. 라스베가스에 이전에 두 번을 왔어도 화산쇼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쇼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짧았지만 아이들은 즐겁게 보았다.
10월 3일 일요일. 253일째 날. 한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메인 스트립 근처의 CVS에 들러 예약한 딸의 covid-19 검사를 시행했다. 다음 주에 예약한 콘서트 때문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 후 M&M 스토어에 들렀다. 지난 번 라스베가스에 왔을 때 딸이 이곳에 가고싶어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 들르지 못했고, 이번에는 꼭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딸은 노란 쿠션과 초콜릿 캐릭터가 그려진 노트를 골랐다.
돌아올 때는 부모님께서 황량한 사막의 풍경을 느껴보실 수 있도록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는 길을 선택했다. CF에 등장할만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막상 장인어른께선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고 인적도 드문 도로에서 자동차가 고장나거나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셨지만. 장인어른은 사막을 벗어나 주유소가 보인 뒤에야 마음을 놓으셨다. 미국 횡단 도로인 66번 도로에 있는 이 오래된 모텔 주유소는 지난 번 그랜드 서클 여행 때 들렀던 곳으로 위키피디아에도 올라간 유서 깊은 곳이다. 그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먼지를 뒤집어쓴 주유 미터기가 작동을 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실제 주유를 할 수 있는 기계였다. 직원이 직접 계기판을 손으로 돌려 금액을 맞추고 주유를 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미국에서 처음으로 셀프가 아닌 주유소를 경험했다. 주유를 하는 동안 장인어른께선 66번 도로 기념품을 사셨다.
골동품 수준의 주유기 |
팜스프링스 풍력 발전 지대를 지나쳐 데저트힐 아울렛을 들렀다가 집에 도착하니 여덟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빡빡한 일정에다 사흘 동안 내내 운전을 하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미국 서부를 처음 보신 부모님께서 즐거워하셔서 흡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