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4일 화요일

연수일기 126. 미션 바실리카 샌디에고 데 알칼라

9월 12일 일요일. 232일째 날. 해질 무렵에 토리 파인즈 비치에 다녀왔다. 샌디에고에 와 맨 처음 갔던 해변이다. 그땐 1월이었고 날씨가 쌀쌀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저녁의 해변 바람은 벌써 서늘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이 해변 특유의 반질반질한 몽돌을 줍기도 하고, 모래를 파 작은 조개도 살펴보며 놀았다. 


9월 13일 월요일. 233일째 날. 지난 주에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에 다녀온 뒤 가끔 평일 오전에 나들이를 하기로 아내와 이야기했다. 그때 갔었던 미션이 좋아서 오늘은 샌디에고 미션에 가보기로 했다. 

미션에 가기 전 그 근처의 머리 호수 Lake Murray에 들렀다. 샌디에고의 다른 많은 호수들처럼 이곳도 댐을 막아 생긴 저수지이다. 호숫가엔 피크닉 에어리어, 그리고 주변엔 트레일 코스가 있다. 여기서도 보트를 탈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미라마르 호수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나무 그늘 아래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근처에서 사온 커피를 마셨다. 

샌디에고 미션의 정식 이름은 '미션 바실리카 샌디에고 데 알칼라'이다. 미션을 건축한 해는 1769년으로, 캘리포니아의 21개 미션 중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이전에 보았던 두 개의 미션과 마찬가지로 Junipero Serra 신부가 설립했다. 수도사가 거처하던 숙소와 미사를 드리는 건물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현재도 매일 미사가 진행된다. 종을 치는 시간인 정오 근처가 되자 종탑이 보이는 작은 정원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타종이 끝날 무렵 신부님이 갑자기 나타나 환영 인사와 짧은 기도를 해주었다. 모인 사람들도 함께 성호를 긋고 기도를 했다. 짧지만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잠깐동안 미션이 세워졌던 이백년쯤 전으로 다녀온 느낌이랄까. 

성당 내부

종탑이 보이는 정원

작은 박물관에서 캘리포니아 21개 미션의 모형을 액자에 넣어 전시한 벽면을 만났다. 모양이 제각각인 미션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여행을 할 때 시간이 남는다면 이 미션들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가까이 있는 미션 중 아직 가보지 않은 오션사이드의 미션도 조만간 가보려 한다. 

딸을 데리러 가기 전 시간이 남아 노스 파크로 향했다. 샌디에고의 힙한 동네로 알려져 있다. 카페와 브루어리가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걷다 보면 독특한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중고 서점은 Verbatim Books도 그 중 하나이다. 이곳의 분위기는 설명보단 사진으로 대신하는 것이 좋겠다. 


벽면의 책장은 스티븐 킹의 작품들로만 채워져 있다.

저녁엔 다시 시작한 농구 수업에 아들을 데려다 주었다. 지난 학기와 달리 같은 나이 대의 수업은 집에서 좀 떨어진 오션 에어 레크레이션 센터에만 있다. 이번 학기에도 아침 저녁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2021년 9월 12일 일요일

연수일기 125. 오션사이드 도서관

9월 10일 금요일. 230일째 날. 오늘 연구 미팅엔 한국에서 새로 연수를 오신 내분비내과 H 선생님이 참석했다. 그룹 내에 한국인이 한 명 더 생기니 반갑고 든든한 기분이다. 아무쪼록 즐겁고 보람된 일 많은 연수 기간이 되시길 바란다. 

지난 주말에 펑크가 났던 딸의 워터 폴로 수업을 오늘 보충하기로 해 오후에 다녀왔다. 앞으로는 일요일 오전에 수업을 하게 될 듯 하다. 

내일이 9/11이라, 라디오에선 이번 주 내내 관련 뉴스가 나온다. 이십 년이 지났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깊은 상처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 Rob과도 9/11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는 당시 외상 센터에서 근무했었고, 사건이 난 뒤 전국적으로 테러 경보가 발동되어 퇴근을 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밤을 지샜다고 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나는 7년 전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도 그 사건이 있었던 걸 알고 있었다. 


9월 11일 토요일. 231일째 날. 오션사이드에 다녀왔다. 오늘은 낚시를 하기 전에 도서관과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오션사이드 도서관은 씨티 홀과 이웃해 있고 해변과 달리 이 건물엔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흰색 바탕에 기둥과 아치에 파스텔톤 색을 입힌 지중해풍 느낌의 건물이 특징적이다. 건물 내부도 같은 형식이었는데 천장이 높고 볕이 잘 드는 로비가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1층은 전체가 아이들과 청소년 책으로 채워졌고, 2층은 성인용 책과 열람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도서관도 1층 구석엔 중고 책을 싸게 파는 서점이 있다. 도서관 출입문 앞 광장 가운데 얕은 풀은 말라 있었는데, 물이 채워지면 훨씬 분위기가 좋을 것 같다. 

도서관 입구

도서관 1층 로비

도서관 건너편 아티스트 앨리 골목에서 예술가들이 독특한 미술품과 장신구 등을 파는 벼룩 시장을 구경했다. 오션사이드의 메인 스트리트 구역엔 레스토랑, 카페, 펍 등이 많았다. 

피어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번까지 사용한 싱커가 파도가 센 바다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가벼운 것 같아 베이트 샵에서 좀더 무게가 나가는 걸 샀다. 싱커를 낚싯대에 다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아직은 낚시 채비를 하는 것도 익숙하진 않다.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한동안 고기가 잡히질 않자 아들은 무거운 싱커 때문인 것 같다고 툴툴거린다. 옆 자리 나이 지긋한 할아버님이 팔뚝만한 물고기를 잡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징어 미끼가 문제인가 싶어 옆에서 새우를 얻어 써보기도 했지만 영 입질이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결국 오늘은 빈손으로 접기로. 다음 번엔 미리 채비를 단단히 하고 오기로 했다. 

저녁은 피어 입구에 있는 틴 피쉬에서 먹었다. 야외 좌석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해산물 튀김과 타코 등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생선과 새우 튀김, 그리고 딸을 위해 치킨 너겟 세트도 하나 샀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니 피어 주변은 분위기가 더 들떠 오른다. 피어 옆 원형 극장은 흥겨운 음악에 맞춰 롤러 스케이트와 보드를 타는 이들로 채워졌다.

2021년 9월 10일 금요일

연수일기 124. 오랜만에 캠퍼스

9월 7일 화요일. 227일째 날. 오늘도 연구실 퇴근 후 딸을 미술 수업에 데려다 주고 근처 도서관에 갔다가 다시 딸을 집으로 데려가는 일정이다. 미술 수업 시작 때까지는 항상 시간이 좀 남아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요즘 하는 생각들, 얼마 전에 다녀왔던 여행 이야기. 오늘처럼 갑자기 레몬 사탕이 먹고 싶어 손을 잡고 마트에 들르기도 한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건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딸이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 수업까지 2주 동안 그린 곰을 완성해 보여주었다. 커다란 곰 얼굴로, 나름 공들여 그린 티가 난다. 무료 수업을 포함해 세 번을 참여했는데 아직까진 수업이 재미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9월 8일 수요일. 228일째 날. 오전에 아내는 EIA 프로그램 미팅을, 나는 DS-2019에 travel sign을 받기 위해 UCSD에 들렀다. 연수 기간 중에 해외 여행을 하기 위해선 담당 기관인 IFSO의 사인을 미리 받아야 한다. 아직까진 학내 서비스가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아서 이 사인을 받으려면 우편으로 신청을 해야하는 듯 하다. 번거롭기도 하고 비용도 드는지라, IFSO에선 미리 신청을 받아 사인이 된 서류를 방문해 받을 수 있는 픽업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장소는 캠퍼스 안 주차장이었다. 연구실이 외부에 있어 캠퍼스에 들어온 건 지난 5월이 마지막이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서류를 받고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서점에서 마그넷을 하나 사고, 얼마 전 부분 개관을 한 가이젤 도서관도 구경했다. 도서관 안을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아직까진 1, 2층 일부 열람실만 개관한 상태라 썰렁했다. 다음 주에는 완전 개관을 하고 학생 뿐 아니라 일반인도 입장할 수 있다고 하니 이후에 다시 와봐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걷는 캠퍼스가 반갑고 좋았다. 무리를 지어 밝은 얼굴로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보니 내 마음에도 활력이 도는 듯 했다. 

Geisel 도서관 2층 열람실

잔디밭에 그물 해먹도 있는 한가로운 캠퍼스

오후엔 아들의 스케이트 보드 수업을 위해 카멜 밸리 스케이트 파크에 다녀왔다. 지난 주에 갔던 린다 비스타 파크보단 슬로프 규모가 작았다. 이번 주엔 기온이 높고 햇살도 따가워 낮에 돌아다니기 부담스러운 날씨인데, 한 시간 수업을 끝낸 아들은 땀에 흠뻑 젖었다. 아직은 서툴지만 혼자 연습할 때와 달리 기술을 배우는 게 재미있나 보다. 


9월 9일 목요일. 229일째 날. 저녁에 딸과 수영장에 있는데 번개가 여러 번 치더니 천둥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내려갔던 기온이 9월 들어 다시 높아져 내륙 지역은 다시 폭염이라고 한다. 샌디에고는 그래봐야 큰 차이가 없지만. 산불, 태풍, 폭염으로 요즘은 기상 관련 뉴스도 더 많아졌는데, 오늘 서해안 쪽은 국지성 호우가 내린다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주먹만한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밤 늦게까지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이곳에서 듣기 어려운 시원한 빗소리가 좋았다. 

2021년 9월 7일 화요일

연수일기 123. 이틀 간의 식사 초대

9월 5일 일요일. 225일째 날. 어제 밤 두 시가 넘어 집에 도착해 아이들도 나도 아침에 늦잠을 잤다. 딸의 워터 폴로 스플래쉬 수업 시간이 갑자기 금요일에서 일요일 오전으로 바뀌어 시간에 맞춰 연습 장소인 고등학교에 갔는데 정문이 닫혀 있었다. 정문 앞엔 수업에 온 차들이 줄지어 서서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고. 수업 스케줄 전달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자체 시설이 아닌 고등학교 수영장을 빌려서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겠지만,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를 애써 데리고 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약간 짜증도 난다. (그랬다가도 다시 저렴한 수업료를 생각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후배인 S 선생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방문했다. 의국 동기인 S 선생님은 한국에 있을 때 종종 보았지만, 가족들은 몇 년 전 샌디에고로 이사한 이후엔 만나질 못했다. 아주 오래 전 한국에서 봤을 땐 꼬마였던 아이들이 몰라보게 커서 이젠 고등학생이다. 큰 애는 얼마 전 SAT를 봤다고 한다. 

작년에 이사를 했다는 집은 우리 집에서도 멀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파트가 아닌 단독 주택을 처음 구경하게 되었다. 널찍한 거실과 2층이 있어 아이들이 좋아했다. 뒤뜰에는 자그마치 월풀 욕조가. 손님 치르는 솜씨가 훌륭하신 제수씨 덕에 음식과 다양한 안주(와 술)를 배가 부르게 먹었다. 집도 음식도, 미국 생활을 오래 한 경험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도 좋았다. 분위기에 취해 그만 또 과음을 한 것 외엔.  


9월 6일 월요일. 226일째 날. 미국의 노동절 휴일이다. Rob에게 커뮤니티 가든에서 하는 바베큐 점심 초대를 받았다. 이전에 잠깐 구경을 하고 포도를 받았던 가든이다. 그땐 몰랐는데 이 가든은 장로 교회에 딸린 것이었다. Rob과 제인, 샘과 더불어 사진으로만 보았던 딸 니나까지 모여 환대를 해주었다. 니나는 UCSD에 입학해 첫 학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Rob이 그릴에 차콜을 채우고 불을 붙였다. 미국에서 경험하는 정통 미국 가정식 바베큐. 손잡이가 깨진, 십년은 되었음직한 그릴은 오랫동안 써온 듯 했다. 소세지와 양념이 된 소고기, 닭다리를 차례로 구웠다. 우리 입맛에 소세지와 닭다리는 짜고 고기의 양념은 너무 셌다. 하지만 Rob 가족과의 대화는 늘 그렇듯 즐거웠다. 못 알아들어 되물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누구랑 이야기한들 그렇지 않을까. 중국인인 제인의 영어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제인도 우리 영어를 알아듣기 힘들었을 것이다), 준비한 음식을 권하는 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불 피우기 전

가든 탐험 중

아이들은 정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꽃도 땄다. 아들은 사다리에 올라가 포도를 수확했고, 제인은 대파와 허브를 뽑아서 우리에게 선물했다. 민트를 심을 화분도 함께 받았다. 

2021년 9월 6일 월요일

연수일기 122.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9월 4일 토요일. 224일째 날.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에 다녀왔다. 이번 주말이 뉴문이라 별 보기에 적당한 시기이다. 10월까지 보인다는 은하수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슈아 트리는 샌디에고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 공원으로, 공원 서쪽 입구에 있는 비지팅 센터까지는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코스트코에 들러 주유와 점심을 해결하고 팜 스프링스의 풍력 발전 단지에서 차를 멈추고 잠시 사진도 찍었다. 팜 스프링스의 온도는 화씨 100도가 넘어 잠깐 차에서 내렸는데도 등판에 땀이 맺혔다. 마치 건식 사우나에 있는 것 같았다. 공원 안에서 많이 걷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원에 들어가기 전에 Pioneertown 파이오니어타운에 들렀다. 유카 밸리 북쪽의 아주 작은 마을로, 과거 서부 영화의 세트장으로 쓰였고 지금도 영화와 광고 사진의 무대로 활용된다고 한다. 메인 스트리트에 들어서니 마치 옛날 영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메인 스트리트는 아주 짧아 구경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지만 모든 곳이 포토 스팟이다. 

Pioneertown main street

마을을 나와 조슈아 트리 브루어리에서 맥주 두 캔을 샀다. 비지터 센터에서 스탬프를 찍고 공원 서쪽 입구로 입장. 이로써 미국 국립 공원 열 개의 스탬프를 채우는 기록을 달성했다. 오후 네 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입구엔 직원이 없었다. 퇴근 시간 이후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더운 날씨 때문에 일찍 철수를 한 모양이다. 시선이 향하는 곳 어디서든 조슈아 트리를 볼 수 있다. 이곳이 조슈아 트리를 재배하는 농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원의 이름을 짓는데 이 선인장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첫 번째 목적지 스컬 락에 도착하니 해골 모양의 바위가 우리를 반겼다. 해골 모양 바위 뒤쪽으로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기 좋은 바위들이 여러 개 있었다. 

Skull Rock

바위를 오르내리며 놀다가 다음 장소인 히든 밸리 피크닉 에어리어로 향했다. 공원에서 트레일을 하기에 가장 좋다고 들었다. 준비해간 주먹밥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히든 밸리 트레일 코스를 걸었다.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평지를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삼십 분 정도면 걸을 수 있다. 팜 스프링스에서 날씨가 너무 더워 걱정을 했는데,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서 기온도 다소 낮아지고 바위산에 가려진 트레일 코스에 그늘이 많아 걷기에 괜찮았다. 조슈아 트리와 유카 등 사막 식물들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길을 따라 펼쳐진 풍경도 아름다워 아이들과 산책하기에도 참 좋았다. 

트레일 입구로 나와 일몰을 보기 위해 Keys view 키스 뷰로 향했다. 조슈아 트리 공원은 그동안 갔던 다른 국립 공원에 비해 사람이 훨씬 적었다. 아직은 더운 날씨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공원에 들어온 이후 키스 뷰 주차장에서 가장 많은 차를 만났다. 주차할 자리가 없어 길 바깥에 차를 세워야 했다. 일몰 시간이 되면 모두가 이곳에 모일테니, 해 지는 걸 보려면 조금 일찍 와서 주차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뷰포인트에 오르니 탁 트인 전망이 펼쳐졌다. 아래 코첼라 밸리 너머 멀리 팜 데저트까지 볼 수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빛을 배경으로 지는 해를 지켜보았다. 해가 지는 광경은 어디서든 아름답다. 


해가 지고 나니 금새 어둠이 깔린다. 키스 뷰를 내려와 별을 보기 위한 장소로 가는 길에 하늘은 완전히 깜깜해졌고, 숨어있던 별들이 거짓말처럼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차창을 열고 하늘을 보던 아이들이 벌써 탄성을 지른다. 공원 내 어디서든 별을 볼 수 있지만, 공원 입구에서 먼 안쪽으로 갈 수록 별이 더 잘 보인다고 한다. 군데군데 길 가에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마다 차를 세우고 별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별을 볼 곳은 화이트 탱크 캠프 그라운드 근처의 공터였다. 이곳은 주차 공간 옆으로 풀숲이 없는 널찍한 공간이 있어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보기 적당했다. 

돗자리를 깔고 낮은 비치 의자 두 개를 놓고 자리를 잡았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와 별무리가 보석을 흩뿌린 듯 반짝였다. 머리 위를 가득 메운 별무리가 쏟아질 듯 했다. 별이 쏟아질 듯 보인다는 표현은 이젠 다른 곳에서는 쓸 수 없을 것 같다. 간간이 별똥별이 떨어졌다. 사방이 적막했다. 풀벌레 소리, 멀리 다른 곳에서 별을 보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밤공기에 실려 두런두런 들렸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리가 혼자 있는 게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별 보러 가는 길

은하수

밤이 되자 기온이 내려가 선선해졌지만 아직은 춥진 않았다. 10월 이후가 되면 밤엔 쌀쌀할테니 따뜻한 옷이나 담요가 필요할 것 같다. 가스 버너로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고, 믹스 커피와 브루어리에서 사온 캔 맥주도 마시며 별을 보다 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열 시에 공원을 나올 계획이었지만 떠나는 게 아쉬워 미적거리다 보니 막상 공원 입구를 나온 건 열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돌아오는 길 내내 뒷자리에서 쌕쌕거리며 잠을 자던 아이들은 별무리 사이를 나는 꿈이라도 꾸었을까. 

2021년 9월 4일 토요일

연수일기 121.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

9월 2일 목요일. 222일째 날. 샌디에고 북쪽에 있는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5번 도로를 타고 LA 쪽으로 1시간 남짓 올라가다 보면 이 작은 도시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 미션이 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캘리포니아의 미션은 1769년 샌디에고를 시작으로 1823년 샌프란시스코 북부까지 모두 21개가 아래 지도의 위치에 만들어졌다. 이 미션의 건축이 스페인의 지배 이후 시작된 캘리포니아 근대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 미션을 이어주는 길을 '왕의 길'이라는 뜻의 'El Camino Real'이란 이름으로 불렀고, 지금도 샌디에고의 카멜 밸리에서 오션사이드까지 이어지는 같은 이름의 길이 남아있다. 이후로 스페인의 통치에서 멕시코가 독립하면서 이 미션들도 멕시코 영토에 있다가 1848년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이기면서 미국 영토에 편입되었다.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 미션은 캘리포니아 미션의 아버지로 불리는 Junipero Serra 신부가 만든 아홉 개의 미션 중 하나이다. 두 달 전에 방문했던 샌 루이스 오비스포의 미션 역시 Serra 신부가 건립했다.

캘리포니아 미션 지도

입구로 들어가면 앞 뜰, 그리고 사각형으로 중정을 둘러싼 이루어진 미션 건물을 차례로 볼 수 있다. 농작물을 키우는 밭과 초, 비누 등을 만드는 작업장 등 당시 수도사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공간을 구경했다. 스페인 통치 이전에 이곳에서 살던 원주민(Acjachemen 이라 부른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도 있었다. 1812년 심한 지진으로 무너진 그레이트 스톤 처치는 건물의 일부만 남아있는데, 부서지지 않았다면 미션 전체가 더 웅장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근세 유럽의 느낌을 주는 건물 안을 걷다 보니 팜트리만 없다면 유럽의 어느 마을에 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션 입구

미션을 나와 한 블럭만 걸으면 Los Rios Street Historic District을 만난다.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이 역사 지구는 1794년에 조성되었으며 캘리포니아 내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라고 한다. 작고 예쁜 길 가엔 엔틱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 하나인 Ramos House Cafe에서 점심을 먹었다. 커피는 평범했지만 음식 맛은 꽤 좋았다. 레스토랑 야외 좌석에서는 식당 바로 앞을 지나는 기차를 볼 수 있다. 솔라나비치에서 오션사이드를 거쳐 이곳까지 기차를 타고 올 수도 있다. 언젠가 한번쯤 기차 여행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레스토랑 야외 좌석 앞을 지나는 기차

식당을 나와 20분 정도 거리 샌 클레멘테에 있는 Casa Romantica Cultural Center and Garden에 들렀다. 1927년에 만들어진 건물로 과거엔 샌 클레멘테를 건립한 Ole Hanson의 집이었고, 여러 사람을 거쳐 현재는 문화 센터로 쓰이는 곳이다. 각종 전시와 공연을 포함해 한 해에 백여 회의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뒤뜰엔 공연을 위한 작은 원형 극장도 있었다. 학생들의 교육 장소로도 쓰인다고 했다. 수첩을 들고 건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학생도 볼 수 있었다. 건물 뒤편에 있는 다이닝룸 창밖으로 해변이 보인다. 가까이에 있는 샌 클레멘테 피어도 한눈에 들어왔다. 뒤뜰로 나가니 파란 하늘과 바다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니 참 팔자 좋은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공황 때 이 집을 포함해 도시의 많은 건물을 잃었다고 한다. 이곳에 앉아 하루 종일도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지만 예쁘게 꾸며진 정원도 좋았다. 

뒤뜰에서 보이는 풍경


9월 3일 금요일. 223일째 날. 미국 동부를 덮친 허리케인 아이다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가 보다. 뉴욕에 나이애가라 폭포 수준의 물벼락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뉴스를 보니 도시 곳곳이 침수되고 지하철까지 물바다가 되었다. 애초의 계획대로 노동절 연휴에 뉴욕 여행을 갔다면 꽤 애를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피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어 수업 시간에 에세이 쓰기를 망쳤다고 자책을 하는 아들을 데리고 Linda Vista 스케이트 파크에 갔다. 며칠 전 처음 알아봤던 곳보다 저렴한 수업을 찾았고, 오늘 첫 수업을 하는 날이다. 1회 수업을 받아보고 괜찮다면 4회 패키지 수업을 예약할 생각이다. Linda Vista 스케이트 파크는 슬로프 모양도 다양하고 규모도 무척 컸다. 집 근처 공원보다 실력이 뛰어난 보더들이 많는 듯 했다. 보더들은 몸을 비틀고 점프를 하며 슬로프 위를 날아다닌다. 

강사인 Mike는 다섯 살 때부터 보드를 탔다고 한다. 자그만 체구에 인상이 좋았다. 농구장 평지 위에서 30분 정도 연습을 한 뒤 스케이트 파크로 옮겨 야트막한 경사를 내려가는 연습을 했다. 혼자 집 앞에서 보드를 타는 연습을 조금이라도 했던 게 도움이 되었나 보다. 그것도 방학 이후론 한동안 하지 않았지만. 첫 연습은 나쁘지 않았는지 계속 해보겠다고 한다. 다음 주 수업부턴 집 근처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Linda Vista Skate Park. 반대편에 연결된 슬로프가 또 있다.

저녁은 Katsu cafe에서 먹었다. 키어니 메사의 일본 라면 식당으로, 맛집 찾기 어려운 샌디에고에서 그나마 맛있는 집으로 손꼽을 만한 곳이다. 가격도 저렴한 편.


2021년 9월 2일 목요일

연수일기 120. Rob의 선물

8월 30일 월요일. 219일째 날. 오전에 카멜 밸리 도서관에 들렀다. 카멜 밸리 도서관은 지금까지 가 본 카운티 내 도서관 중 가장 규모가 작고 평범하다. 그래도 집 앞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이런 도서관이 없다는 건 아쉽다. 나는 일을 하고 아내는 책을 빌려 읽었다. 

점심은 클레어몬트의 멕시칸 음식점에서 먹었다. 이전에 Rob과 점심을 먹었던 곳이다. 갈릭 소스에 볶은 새우 화이타와 타코를 주문했다. 새우 화이타가 맛있었고, 처음 먹어본 비프 하드 타코는 그저 그랬다. 또띠야를 튀겨 바삭하게 만든 하드 타코보다 내겐 소프트 타코가 낫다. Rob에게 이 식당에 왔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가까운 곳에 있다고 들르겠다고 한다. 식사가 끝날 때쯤 도착한 그와 잠깐 대화를 나눴다. 

토요일에 조슈아 트리에 가기로 했다. 문 캘린더를 확인해보니 당분간은 매달 초순이 뉴문 시기이다. 보름달을 피해 은하수를 볼 수 있는 11월 이전에 가려면 이번 주말이 적당해 보인다. 


8월 31일 화요일. 220일째 날. 여느 때와 같이 UTC 몰에서 Rob을 만나기로 했다. 그가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들고 나타났다. 아들을 위한 턱걸이 봉, 그리고 딸을 위한 책 두어 권이었다.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는 지금도 매일 턱걸이를 하루 100개씩 한다고 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비결이 있었다. 그는 나와 만날 때도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온다. 그가 짜준 근력 운동 프로그램에 따라 아들 Sam이 매일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가 유태인 혈통이라는 것도, MIT를 나왔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역시 천재였어......)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Sam도 도착했다. Sam이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점심을 사 왔다. 우리 아이들도 판다 익스프레스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더니 Rob이 본인의 근사한 은퇴 계획을 알려준다. 그 계획이란 Speedy Panda란 체인을 만들어서 성공을 시킨 다음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인수를 하도록 해 큰 돈을 버는 것. 그의 계획이 성공하길.

아이들 선물


9월 1일 수요일. 221일째 날. 9월의 첫째 날이다. 이제 이곳에서의 시간이 딱 다섯 달이 남았다. 미국 동부에선 허리케인 아이다의 영향으로 물난리가 났다. 아이다는 15년 전 1800명의 사망자를 만든 카트리나보다 위력이 더 세다고 한다. 뉴올리언스와 루이지애나와 같은 주에선 피해가 크다고 한다. 서부는 산불의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뉴스는 허리케인과 산불, 그리고 covid-19에 대한 내용으로 모두 채워진 것 같다. 

헐리우드 영화의 장면을 보는 듯한 요즘 뉴스만 보면 전 세계에 곧 종말이 닥칠 것 같은데, 이곳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나날의 연속이다. 새 달의 첫째 날도 평온하게 지나간다. 앞으로 남은 날들도 그렇게 흘러가길. 

아들을 위한 스케이트보드 수업을 알아보고 있다. 여름 캠프 시즌이 아닌 평소에 참여할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 수업은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캘리포니아의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보드를 타는 게 생활이라 막상 수업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 듯 하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울 때 따로 수업을 받지 않는 것처럼. 한 곳에 전화를 해봤는데 수업료가 너무 비쌌다. 그렇잖아도 영어를 알아듣기 힘든데, 수업료에 대해선 맨 나중에 알려주어 머리가 멍해진 상태에서 내용을 파악하느라 힘들었다. 일단 1회 수업을 예약했는데, 조금 더 저렴한 수업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2021년 8월 30일 월요일

연수일기 119. Back to School Night 2

8월 26일 목요일. 215일째 날. 오늘은 아들 학교의 Back to School Night 행사 날이다. 초등학교와 달리 아들 중학교에선 구글 클래스룸과 구글 미츠를 이용해 온라인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한 과목 당 10분씩 담당 선생님이 본인과 과목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행사에서도 느꼈지만 학년 초에 이런 시간을 가지는 건 바람직하다. 담임이 아닌 개별 과목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좋다. 모니터를 통한 만남이라 좀 아쉬운 면도 있었지만, 반면에 온라인이라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줄어 더 많은 선생님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딸은 오늘 오전 간식 시간에 도시락통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운동장에 나가서 간식을 먹고 나서 통을 깜빡 두고 왔는데 다시 가보니 없었다고. 점심으로 가져간 김밥을 먹지 못해 emergency lunch를 받았다. 신청자에 한해 유료로 급식을 제공하는 업체에서 이런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점심을 준비해놓는다고. 비용은 메일로 청구되었다. 점심을 굶지 않아 다행이지만, 급식으로 나온 핫도그는 역시나 맛이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에도 도시락을 싸 갔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할 것 같다. 


8월 27일 금요일. 216일째 날. 딸은 오랜만에 워터 폴로 수업을 다녀왔다. 방학동안 캠프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방과 후 운동 수업들도 이제 새 학기가 되면서 가을 시즌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아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농구 수업에 참여할 계획이고, 딸 역시 워터 폴로를 계속하려 한다. 10세 미만 아이들은 여전히 정식 훈련은 아닌 스플래쉬 클래스이다. 가을부턴 스플래쉬 클래스는 주 1회로 횟수가 줄었다. 고등학교 수영장 사정에 따라 스케줄 변동이 잦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2개월 반 동안 12회 수업에 85불이니 이곳의 일반적인 운동 수업 등록비를 생각하면 참으로 혜자가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수영과 물놀이를 한 아이가 즐거워했다. 

저녁엔 샌디에고에 지난 주에 새로 오신 C 선생님, H 선생님 부부를 초대해 식사했다. H 선생님은 나와 같은 UCSD A 교수님 연구실에서 1년 연수 예정이다. 


8월 28일 토요일. 217일째 날. 아이들과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그동안엔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를 주로 보았다. 최근엔 <The Good Place>를 보고 있다. 호흡이 긴 영화를 보고싶은 마음에 넷플릭스를 뒤졌는데 아이들과 볼만한 자막이 있는 영화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몇 개의 영화를 골라 두고, 그 중에서 <2012>를 선택했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는 투모로우 이후로 보지 않았었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스토리가 파악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역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도 재난 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아이들은 그럭저럭 재미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의 재난 3종 세트가 연이어 펼쳐지는 장면은 아이들도 볼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양한 드라마와 유튜브로 다져진 눈높이의 아이들은 스토리의 허술함이 느껴질 때마다 꼬집어 지적하길 여러 차례. 


8월 29일 일요일. 218일째 날. 지난 주에 이어 오션사이드 피어에 다녀왔다. 석양을 보려고 오후에 출발했는데 도착할 때쯤부터 비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30분 만에 낚싯대를 접어야 했다. 파도가 세서 물놀이나 서핑을 하던 이들도 모두 물 밖으로 나왔다. 이번 주 내내 여름 날씨 같지 않게 선선해서 이상 기온이라고 하던데, 오늘 날씨도 종잡을 수가 없다. 

날씨가 좋았다면 낚시가 처음이라는 L 선생님 아이들이 좀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곳 피어에 늘 나타나는 펠리컨들을 보고 신기해했다. 지난 번에 테이크 아웃 했던 피자집으로 철수해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곁눈질 하는 펠리컨들

2021년 8월 26일 목요일

연수일기 118. Rancho Peñasquitos Branch Library

8월 23일 월요일. 212일째 날. 연구실에 가지 않는 날 아침엔 공원을 뛴다. 아이들이 개학을 하면서 이전의 루틴을 다시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여유로운 시간은 좋지만 적당한 자극이 없으면 무의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별 것 아닌 일이라도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그런 상황을 피하는데 유용하기도 하다. 여름 방학도 즐거웠지만, 아이들도 역시 학교에 가야 한다. 아직도 정상 등교를 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아이들 상황이 상대적으로 마음에 걸린다. 

마트에 할로윈 카드 코너가 벌써 등장했다. 아직 두 달도 더 남은 시기에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싶은데, 이곳 아이들이 할로윈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올해는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행사를 할 수 있게 될까.


8월 24일 화요일. 213일째 날. 딸은 미술 학원 첫 정식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은 보통 주어진 그림에 대한 모작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지난 번에 너무 쉬운 그림이 주어져서 이번엔 높은 단계의 과제를 준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패드를 붙잡고 그림을 그리는지라 같은 나이 아이들보다 그림에 대한 손재주는 조금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학원은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이지만, 집에 왔다 가기는 또 시간이 아깝다. 마침 도서관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YMCA와 이웃해 있는 Rancho Peñasquitos Branch Library는 샌디에고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온 적이 있다. 그땐 도서관은 닫혔고 온라인으로 빌린 책에 대한 픽업만 가능해서 안에 들어가보진 못했었다. 카멜 밸리 도서관보다 넓은 것 같다. 역시 아이들 책이 많았다. 이곳의 공립 도서관은 어디나 좋다. 1인용 독서실 책상도 있었다. 덕분에 오전에 하던 자료 분석 작업을 이어서 한 시간 정도 집중해 할 수 있었다.  

Rancho Peñasquitos Branch Library


8월 25일 수요일. 214일째 날. 추수 감사절 연휴에 뉴욕 항공권을 예매했다. 최근 동부 여행의 시기와 내용에 대해 아내와 계속 상의를 했다. 처음엔 날씨가 좋은 9월 쯤에 뉴욕과 보스턴을 갈까 했는데, 아이들 학교를 빠져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중학교 과목들에 대한 안내를 보니 결석을 하게 되면 미리 과목 선생님들께 알려야 하고 빠진 숙제도 해야 한다. 여행을 다녀오는 게 아들에게 괜한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았다. 한 학기만 다니게 되겠지만, 그래도 되도록 학교를 빠지진 않아야 하겠다. 최근엔 아내가 크리스마스 연휴에 뉴욕을 가는 걸로 마음을 바꾸었다가, 다시 추수 감사절 연휴로 계획을 수정했다. 아내는 추위를 많이 타고, 뉴욕의 겨울 바람은 살을 엔다고 한다. 뉴욕의 높은 물가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고 언제든 비슷하겠지만, 크리스마스 보단 추수 감사절이 경비를 절약하기엔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5박 6일 일정 중 온전히 여행을 할 수 있는 건 나흘로, 뉴욕 맨해튼에만 머물게 될 것 같다. 

저녁에 후배의 부탁으로 미국의 판데믹 상황에 관한 짧은 방송 인터뷰를 했다. 


2021년 8월 23일 월요일

연수일기 117. 오션사이드 피어 낚시

8월 22일 일요일. 211일째 날. 캘리포니아에서 낚시를 하려면 라이센스와 퍼밋이 있어야 하지만, Pier에선 이들 없이도 낚시를 할 수 있다. 외갓집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와 낚시를 종종 다녔던 아들은 언젠가부터 낚시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내가 낚시를 즐기지 않아 그동안 선뜻 데리고 가지 못했다. 얼마 전 쿠야마카 호수에서 처음 낚시를 하고 고기를 잡지 못했어도 즐거워하는 아들을 보고 조만간 바다 낚시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샌디에고 시티엔 퍼시픽 비치와 오션 비치 피어가 있고, 조금 멀리 가면 카운티 내의 임페리얼 비치와 오션사이드에 낚시를 할 수 있는 피어가 있다. 오늘은 오션사이드 피어에 가보기로 했다. 

해변 주변 도로 노상 주차장 미터기는 동전만 사용 가능했는데, 다행히 차 안에 보관해둔 동전들이 있었다.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해변에서 한 블럭 뒤에 있는, 좀더 넓고 저렴한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해변은 피어가 있는 임페리얼 비치와 비슷했는데, 그곳보다 세련되고 관광지같은 분위기였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파도가 센 편이라 서핑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드럼이나 기타를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들도 있었고, 주변에 레스토랑과 카페 등 즐길 거리도 더 많았다. 

피어 곳곳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간엔 낚시 소도구와 미끼를 파는 베이트 샵이 있다. 이곳에서 낚싯대 렌탈도 가능하다. 지난 번 쿠야마카 호수에서 산 낚싯대와 아마존에서 구입한 낚싯대에 바늘을 달아 바다에 던졌다. 펠리컨 한 마리가 하늘을 돌다 피어 난간에 앉았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도 꼼짝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게 귀찮은 모양이다. 멋진 해변 풍경이 있어 물고기가 걸리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낚시 용품 외에 간단한 기념품과 음료수를 살 수 있다.

가까이에 있는 피자 전문 식당에서 작은 사이즈의 피자 한 판을 사왔다.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아이들이 잘 먹어 한 판을 더 사왔다. 피자를 사러 다녀오는 동안 아들 낚싯대에 연달아 두 마리가 걸렸다. 처음엔 작은 꽁치가 아닌가 했는데, 나중 검색을 해보니 바다에서 사는 빙어 종류(smelt)인 것 같다. 물고기를 잡은 아들은 의기양양. 

두 번째 잡은 물고기

낚시를 하다 보니 두어 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해가 저물 때쯤 되어 돌아올 채비를 했다. 볼낙이나 고등어 같은 물고기도 잡힌다고 하는데 다음 기회에. 돌아오는 길에 시내를 지나쳤다. 지중해 풍 도서관 건물이 아름다웠는데, 다음에 오면 도서관과 오션사이드 시내를 구경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