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7일 화요일

연수일기 123. 이틀 간의 식사 초대

9월 5일 일요일. 225일째 날. 어제 밤 두 시가 넘어 집에 도착해 아이들도 나도 아침에 늦잠을 잤다. 딸의 워터 폴로 스플래쉬 수업 시간이 갑자기 금요일에서 일요일 오전으로 바뀌어 시간에 맞춰 연습 장소인 고등학교에 갔는데 정문이 닫혀 있었다. 정문 앞엔 수업에 온 차들이 줄지어 서서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고. 수업 스케줄 전달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자체 시설이 아닌 고등학교 수영장을 빌려서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겠지만,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를 애써 데리고 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약간 짜증도 난다. (그랬다가도 다시 저렴한 수업료를 생각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후배인 S 선생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방문했다. 의국 동기인 S 선생님은 한국에 있을 때 종종 보았지만, 가족들은 몇 년 전 샌디에고로 이사한 이후엔 만나질 못했다. 아주 오래 전 한국에서 봤을 땐 꼬마였던 아이들이 몰라보게 커서 이젠 고등학생이다. 큰 애는 얼마 전 SAT를 봤다고 한다. 

작년에 이사를 했다는 집은 우리 집에서도 멀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파트가 아닌 단독 주택을 처음 구경하게 되었다. 널찍한 거실과 2층이 있어 아이들이 좋아했다. 뒤뜰에는 자그마치 월풀 욕조가. 손님 치르는 솜씨가 훌륭하신 제수씨 덕에 음식과 다양한 안주(와 술)를 배가 부르게 먹었다. 집도 음식도, 미국 생활을 오래 한 경험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도 좋았다. 분위기에 취해 그만 또 과음을 한 것 외엔.  


9월 6일 월요일. 226일째 날. 미국의 노동절 휴일이다. Rob에게 커뮤니티 가든에서 하는 바베큐 점심 초대를 받았다. 이전에 잠깐 구경을 하고 포도를 받았던 가든이다. 그땐 몰랐는데 이 가든은 장로 교회에 딸린 것이었다. Rob과 제인, 샘과 더불어 사진으로만 보았던 딸 니나까지 모여 환대를 해주었다. 니나는 UCSD에 입학해 첫 학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Rob이 그릴에 차콜을 채우고 불을 붙였다. 미국에서 경험하는 정통 미국 가정식 바베큐. 손잡이가 깨진, 십년은 되었음직한 그릴은 오랫동안 써온 듯 했다. 소세지와 양념이 된 소고기, 닭다리를 차례로 구웠다. 우리 입맛에 소세지와 닭다리는 짜고 고기의 양념은 너무 셌다. 하지만 Rob 가족과의 대화는 늘 그렇듯 즐거웠다. 못 알아들어 되물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누구랑 이야기한들 그렇지 않을까. 중국인인 제인의 영어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제인도 우리 영어를 알아듣기 힘들었을 것이다), 준비한 음식을 권하는 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불 피우기 전

가든 탐험 중

아이들은 정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꽃도 땄다. 아들은 사다리에 올라가 포도를 수확했고, 제인은 대파와 허브를 뽑아서 우리에게 선물했다. 민트를 심을 화분도 함께 받았다. 

2021년 9월 6일 월요일

연수일기 122.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9월 4일 토요일. 224일째 날.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에 다녀왔다. 이번 주말이 뉴문이라 별 보기에 적당한 시기이다. 10월까지 보인다는 은하수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슈아 트리는 샌디에고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 공원으로, 공원 서쪽 입구에 있는 비지팅 센터까지는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코스트코에 들러 주유와 점심을 해결하고 팜 스프링스의 풍력 발전 단지에서 차를 멈추고 잠시 사진도 찍었다. 팜 스프링스의 온도는 화씨 100도가 넘어 잠깐 차에서 내렸는데도 등판에 땀이 맺혔다. 마치 건식 사우나에 있는 것 같았다. 공원 안에서 많이 걷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원에 들어가기 전에 Pioneertown 파이오니어타운에 들렀다. 유카 밸리 북쪽의 아주 작은 마을로, 과거 서부 영화의 세트장으로 쓰였고 지금도 영화와 광고 사진의 무대로 활용된다고 한다. 메인 스트리트에 들어서니 마치 옛날 영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메인 스트리트는 아주 짧아 구경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지만 모든 곳이 포토 스팟이다. 

Pioneertown main street

마을을 나와 조슈아 트리 브루어리에서 맥주 두 캔을 샀다. 비지터 센터에서 스탬프를 찍고 공원 서쪽 입구로 입장. 이로써 미국 국립 공원 열 개의 스탬프를 채우는 기록을 달성했다. 오후 네 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입구엔 직원이 없었다. 퇴근 시간 이후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더운 날씨 때문에 일찍 철수를 한 모양이다. 시선이 향하는 곳 어디서든 조슈아 트리를 볼 수 있다. 이곳이 조슈아 트리를 재배하는 농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원의 이름을 짓는데 이 선인장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첫 번째 목적지 스컬 락에 도착하니 해골 모양의 바위가 우리를 반겼다. 해골 모양 바위 뒤쪽으로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기 좋은 바위들이 여러 개 있었다. 

Skull Rock

바위를 오르내리며 놀다가 다음 장소인 히든 밸리 피크닉 에어리어로 향했다. 공원에서 트레일을 하기에 가장 좋다고 들었다. 준비해간 주먹밥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히든 밸리 트레일 코스를 걸었다.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평지를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삼십 분 정도면 걸을 수 있다. 팜 스프링스에서 날씨가 너무 더워 걱정을 했는데,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서 기온도 다소 낮아지고 바위산에 가려진 트레일 코스에 그늘이 많아 걷기에 괜찮았다. 조슈아 트리와 유카 등 사막 식물들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길을 따라 펼쳐진 풍경도 아름다워 아이들과 산책하기에도 참 좋았다. 

트레일 입구로 나와 일몰을 보기 위해 Keys view 키스 뷰로 향했다. 조슈아 트리 공원은 그동안 갔던 다른 국립 공원에 비해 사람이 훨씬 적었다. 아직은 더운 날씨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공원에 들어온 이후 키스 뷰 주차장에서 가장 많은 차를 만났다. 주차할 자리가 없어 길 바깥에 차를 세워야 했다. 일몰 시간이 되면 모두가 이곳에 모일테니, 해 지는 걸 보려면 조금 일찍 와서 주차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뷰포인트에 오르니 탁 트인 전망이 펼쳐졌다. 아래 코첼라 밸리 너머 멀리 팜 데저트까지 볼 수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빛을 배경으로 지는 해를 지켜보았다. 해가 지는 광경은 어디서든 아름답다. 


해가 지고 나니 금새 어둠이 깔린다. 키스 뷰를 내려와 별을 보기 위한 장소로 가는 길에 하늘은 완전히 깜깜해졌고, 숨어있던 별들이 거짓말처럼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차창을 열고 하늘을 보던 아이들이 벌써 탄성을 지른다. 공원 내 어디서든 별을 볼 수 있지만, 공원 입구에서 먼 안쪽으로 갈 수록 별이 더 잘 보인다고 한다. 군데군데 길 가에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마다 차를 세우고 별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별을 볼 곳은 화이트 탱크 캠프 그라운드 근처의 공터였다. 이곳은 주차 공간 옆으로 풀숲이 없는 널찍한 공간이 있어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보기 적당했다. 

돗자리를 깔고 낮은 비치 의자 두 개를 놓고 자리를 잡았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와 별무리가 보석을 흩뿌린 듯 반짝였다. 머리 위를 가득 메운 별무리가 쏟아질 듯 했다. 별이 쏟아질 듯 보인다는 표현은 이젠 다른 곳에서는 쓸 수 없을 것 같다. 간간이 별똥별이 떨어졌다. 사방이 적막했다. 풀벌레 소리, 멀리 다른 곳에서 별을 보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밤공기에 실려 두런두런 들렸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리가 혼자 있는 게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별 보러 가는 길

은하수

밤이 되자 기온이 내려가 선선해졌지만 아직은 춥진 않았다. 10월 이후가 되면 밤엔 쌀쌀할테니 따뜻한 옷이나 담요가 필요할 것 같다. 가스 버너로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고, 믹스 커피와 브루어리에서 사온 캔 맥주도 마시며 별을 보다 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열 시에 공원을 나올 계획이었지만 떠나는 게 아쉬워 미적거리다 보니 막상 공원 입구를 나온 건 열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돌아오는 길 내내 뒷자리에서 쌕쌕거리며 잠을 자던 아이들은 별무리 사이를 나는 꿈이라도 꾸었을까. 

2021년 9월 4일 토요일

연수일기 121.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

9월 2일 목요일. 222일째 날. 샌디에고 북쪽에 있는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5번 도로를 타고 LA 쪽으로 1시간 남짓 올라가다 보면 이 작은 도시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 미션이 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캘리포니아의 미션은 1769년 샌디에고를 시작으로 1823년 샌프란시스코 북부까지 모두 21개가 아래 지도의 위치에 만들어졌다. 이 미션의 건축이 스페인의 지배 이후 시작된 캘리포니아 근대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 미션을 이어주는 길을 '왕의 길'이라는 뜻의 'El Camino Real'이란 이름으로 불렀고, 지금도 샌디에고의 카멜 밸리에서 오션사이드까지 이어지는 같은 이름의 길이 남아있다. 이후로 스페인의 통치에서 멕시코가 독립하면서 이 미션들도 멕시코 영토에 있다가 1848년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이기면서 미국 영토에 편입되었다.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 미션은 캘리포니아 미션의 아버지로 불리는 Junipero Serra 신부가 만든 아홉 개의 미션 중 하나이다. 두 달 전에 방문했던 샌 루이스 오비스포의 미션 역시 Serra 신부가 건립했다.

캘리포니아 미션 지도

입구로 들어가면 앞 뜰, 그리고 사각형으로 중정을 둘러싼 이루어진 미션 건물을 차례로 볼 수 있다. 농작물을 키우는 밭과 초, 비누 등을 만드는 작업장 등 당시 수도사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공간을 구경했다. 스페인 통치 이전에 이곳에서 살던 원주민(Acjachemen 이라 부른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도 있었다. 1812년 심한 지진으로 무너진 그레이트 스톤 처치는 건물의 일부만 남아있는데, 부서지지 않았다면 미션 전체가 더 웅장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근세 유럽의 느낌을 주는 건물 안을 걷다 보니 팜트리만 없다면 유럽의 어느 마을에 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션 입구

미션을 나와 한 블럭만 걸으면 Los Rios Street Historic District을 만난다.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이 역사 지구는 1794년에 조성되었으며 캘리포니아 내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라고 한다. 작고 예쁜 길 가엔 엔틱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 하나인 Ramos House Cafe에서 점심을 먹었다. 커피는 평범했지만 음식 맛은 꽤 좋았다. 레스토랑 야외 좌석에서는 식당 바로 앞을 지나는 기차를 볼 수 있다. 솔라나비치에서 오션사이드를 거쳐 이곳까지 기차를 타고 올 수도 있다. 언젠가 한번쯤 기차 여행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레스토랑 야외 좌석 앞을 지나는 기차

식당을 나와 20분 정도 거리 샌 클레멘테에 있는 Casa Romantica Cultural Center and Garden에 들렀다. 1927년에 만들어진 건물로 과거엔 샌 클레멘테를 건립한 Ole Hanson의 집이었고, 여러 사람을 거쳐 현재는 문화 센터로 쓰이는 곳이다. 각종 전시와 공연을 포함해 한 해에 백여 회의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뒤뜰엔 공연을 위한 작은 원형 극장도 있었다. 학생들의 교육 장소로도 쓰인다고 했다. 수첩을 들고 건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학생도 볼 수 있었다. 건물 뒤편에 있는 다이닝룸 창밖으로 해변이 보인다. 가까이에 있는 샌 클레멘테 피어도 한눈에 들어왔다. 뒤뜰로 나가니 파란 하늘과 바다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니 참 팔자 좋은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공황 때 이 집을 포함해 도시의 많은 건물을 잃었다고 한다. 이곳에 앉아 하루 종일도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지만 예쁘게 꾸며진 정원도 좋았다. 

뒤뜰에서 보이는 풍경


9월 3일 금요일. 223일째 날. 미국 동부를 덮친 허리케인 아이다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가 보다. 뉴욕에 나이애가라 폭포 수준의 물벼락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뉴스를 보니 도시 곳곳이 침수되고 지하철까지 물바다가 되었다. 애초의 계획대로 노동절 연휴에 뉴욕 여행을 갔다면 꽤 애를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피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어 수업 시간에 에세이 쓰기를 망쳤다고 자책을 하는 아들을 데리고 Linda Vista 스케이트 파크에 갔다. 며칠 전 처음 알아봤던 곳보다 저렴한 수업을 찾았고, 오늘 첫 수업을 하는 날이다. 1회 수업을 받아보고 괜찮다면 4회 패키지 수업을 예약할 생각이다. Linda Vista 스케이트 파크는 슬로프 모양도 다양하고 규모도 무척 컸다. 집 근처 공원보다 실력이 뛰어난 보더들이 많는 듯 했다. 보더들은 몸을 비틀고 점프를 하며 슬로프 위를 날아다닌다. 

강사인 Mike는 다섯 살 때부터 보드를 탔다고 한다. 자그만 체구에 인상이 좋았다. 농구장 평지 위에서 30분 정도 연습을 한 뒤 스케이트 파크로 옮겨 야트막한 경사를 내려가는 연습을 했다. 혼자 집 앞에서 보드를 타는 연습을 조금이라도 했던 게 도움이 되었나 보다. 그것도 방학 이후론 한동안 하지 않았지만. 첫 연습은 나쁘지 않았는지 계속 해보겠다고 한다. 다음 주 수업부턴 집 근처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Linda Vista Skate Park. 반대편에 연결된 슬로프가 또 있다.

저녁은 Katsu cafe에서 먹었다. 키어니 메사의 일본 라면 식당으로, 맛집 찾기 어려운 샌디에고에서 그나마 맛있는 집으로 손꼽을 만한 곳이다. 가격도 저렴한 편.


2021년 9월 2일 목요일

연수일기 120. Rob의 선물

8월 30일 월요일. 219일째 날. 오전에 카멜 밸리 도서관에 들렀다. 카멜 밸리 도서관은 지금까지 가 본 카운티 내 도서관 중 가장 규모가 작고 평범하다. 그래도 집 앞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이런 도서관이 없다는 건 아쉽다. 나는 일을 하고 아내는 책을 빌려 읽었다. 

점심은 클레어몬트의 멕시칸 음식점에서 먹었다. 이전에 Rob과 점심을 먹었던 곳이다. 갈릭 소스에 볶은 새우 화이타와 타코를 주문했다. 새우 화이타가 맛있었고, 처음 먹어본 비프 하드 타코는 그저 그랬다. 또띠야를 튀겨 바삭하게 만든 하드 타코보다 내겐 소프트 타코가 낫다. Rob에게 이 식당에 왔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가까운 곳에 있다고 들르겠다고 한다. 식사가 끝날 때쯤 도착한 그와 잠깐 대화를 나눴다. 

토요일에 조슈아 트리에 가기로 했다. 문 캘린더를 확인해보니 당분간은 매달 초순이 뉴문 시기이다. 보름달을 피해 은하수를 볼 수 있는 11월 이전에 가려면 이번 주말이 적당해 보인다. 


8월 31일 화요일. 220일째 날. 여느 때와 같이 UTC 몰에서 Rob을 만나기로 했다. 그가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들고 나타났다. 아들을 위한 턱걸이 봉, 그리고 딸을 위한 책 두어 권이었다.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는 지금도 매일 턱걸이를 하루 100개씩 한다고 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비결이 있었다. 그는 나와 만날 때도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온다. 그가 짜준 근력 운동 프로그램에 따라 아들 Sam이 매일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가 유태인 혈통이라는 것도, MIT를 나왔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역시 천재였어......)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Sam도 도착했다. Sam이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점심을 사 왔다. 우리 아이들도 판다 익스프레스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더니 Rob이 본인의 근사한 은퇴 계획을 알려준다. 그 계획이란 Speedy Panda란 체인을 만들어서 성공을 시킨 다음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인수를 하도록 해 큰 돈을 버는 것. 그의 계획이 성공하길.

아이들 선물


9월 1일 수요일. 221일째 날. 9월의 첫째 날이다. 이제 이곳에서의 시간이 딱 다섯 달이 남았다. 미국 동부에선 허리케인 아이다의 영향으로 물난리가 났다. 아이다는 15년 전 1800명의 사망자를 만든 카트리나보다 위력이 더 세다고 한다. 뉴올리언스와 루이지애나와 같은 주에선 피해가 크다고 한다. 서부는 산불의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뉴스는 허리케인과 산불, 그리고 covid-19에 대한 내용으로 모두 채워진 것 같다. 

헐리우드 영화의 장면을 보는 듯한 요즘 뉴스만 보면 전 세계에 곧 종말이 닥칠 것 같은데, 이곳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나날의 연속이다. 새 달의 첫째 날도 평온하게 지나간다. 앞으로 남은 날들도 그렇게 흘러가길. 

아들을 위한 스케이트보드 수업을 알아보고 있다. 여름 캠프 시즌이 아닌 평소에 참여할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 수업은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캘리포니아의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보드를 타는 게 생활이라 막상 수업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 듯 하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울 때 따로 수업을 받지 않는 것처럼. 한 곳에 전화를 해봤는데 수업료가 너무 비쌌다. 그렇잖아도 영어를 알아듣기 힘든데, 수업료에 대해선 맨 나중에 알려주어 머리가 멍해진 상태에서 내용을 파악하느라 힘들었다. 일단 1회 수업을 예약했는데, 조금 더 저렴한 수업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2021년 8월 30일 월요일

연수일기 119. Back to School Night 2

8월 26일 목요일. 215일째 날. 오늘은 아들 학교의 Back to School Night 행사 날이다. 초등학교와 달리 아들 중학교에선 구글 클래스룸과 구글 미츠를 이용해 온라인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한 과목 당 10분씩 담당 선생님이 본인과 과목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행사에서도 느꼈지만 학년 초에 이런 시간을 가지는 건 바람직하다. 담임이 아닌 개별 과목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좋다. 모니터를 통한 만남이라 좀 아쉬운 면도 있었지만, 반면에 온라인이라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줄어 더 많은 선생님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딸은 오늘 오전 간식 시간에 도시락통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운동장에 나가서 간식을 먹고 나서 통을 깜빡 두고 왔는데 다시 가보니 없었다고. 점심으로 가져간 김밥을 먹지 못해 emergency lunch를 받았다. 신청자에 한해 유료로 급식을 제공하는 업체에서 이런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점심을 준비해놓는다고. 비용은 메일로 청구되었다. 점심을 굶지 않아 다행이지만, 급식으로 나온 핫도그는 역시나 맛이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에도 도시락을 싸 갔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할 것 같다. 


8월 27일 금요일. 216일째 날. 딸은 오랜만에 워터 폴로 수업을 다녀왔다. 방학동안 캠프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방과 후 운동 수업들도 이제 새 학기가 되면서 가을 시즌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아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농구 수업에 참여할 계획이고, 딸 역시 워터 폴로를 계속하려 한다. 10세 미만 아이들은 여전히 정식 훈련은 아닌 스플래쉬 클래스이다. 가을부턴 스플래쉬 클래스는 주 1회로 횟수가 줄었다. 고등학교 수영장 사정에 따라 스케줄 변동이 잦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2개월 반 동안 12회 수업에 85불이니 이곳의 일반적인 운동 수업 등록비를 생각하면 참으로 혜자가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수영과 물놀이를 한 아이가 즐거워했다. 

저녁엔 샌디에고에 지난 주에 새로 오신 C 선생님, H 선생님 부부를 초대해 식사했다. H 선생님은 나와 같은 UCSD A 교수님 연구실에서 1년 연수 예정이다. 


8월 28일 토요일. 217일째 날. 아이들과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그동안엔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를 주로 보았다. 최근엔 <The Good Place>를 보고 있다. 호흡이 긴 영화를 보고싶은 마음에 넷플릭스를 뒤졌는데 아이들과 볼만한 자막이 있는 영화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몇 개의 영화를 골라 두고, 그 중에서 <2012>를 선택했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는 투모로우 이후로 보지 않았었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스토리가 파악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역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도 재난 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아이들은 그럭저럭 재미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의 재난 3종 세트가 연이어 펼쳐지는 장면은 아이들도 볼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양한 드라마와 유튜브로 다져진 눈높이의 아이들은 스토리의 허술함이 느껴질 때마다 꼬집어 지적하길 여러 차례. 


8월 29일 일요일. 218일째 날. 지난 주에 이어 오션사이드 피어에 다녀왔다. 석양을 보려고 오후에 출발했는데 도착할 때쯤부터 비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30분 만에 낚싯대를 접어야 했다. 파도가 세서 물놀이나 서핑을 하던 이들도 모두 물 밖으로 나왔다. 이번 주 내내 여름 날씨 같지 않게 선선해서 이상 기온이라고 하던데, 오늘 날씨도 종잡을 수가 없다. 

날씨가 좋았다면 낚시가 처음이라는 L 선생님 아이들이 좀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곳 피어에 늘 나타나는 펠리컨들을 보고 신기해했다. 지난 번에 테이크 아웃 했던 피자집으로 철수해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곁눈질 하는 펠리컨들

2021년 8월 26일 목요일

연수일기 118. Rancho Peñasquitos Branch Library

8월 23일 월요일. 212일째 날. 연구실에 가지 않는 날 아침엔 공원을 뛴다. 아이들이 개학을 하면서 이전의 루틴을 다시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여유로운 시간은 좋지만 적당한 자극이 없으면 무의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별 것 아닌 일이라도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그런 상황을 피하는데 유용하기도 하다. 여름 방학도 즐거웠지만, 아이들도 역시 학교에 가야 한다. 아직도 정상 등교를 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아이들 상황이 상대적으로 마음에 걸린다. 

마트에 할로윈 카드 코너가 벌써 등장했다. 아직 두 달도 더 남은 시기에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싶은데, 이곳 아이들이 할로윈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올해는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행사를 할 수 있게 될까.


8월 24일 화요일. 213일째 날. 딸은 미술 학원 첫 정식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은 보통 주어진 그림에 대한 모작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지난 번에 너무 쉬운 그림이 주어져서 이번엔 높은 단계의 과제를 준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패드를 붙잡고 그림을 그리는지라 같은 나이 아이들보다 그림에 대한 손재주는 조금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학원은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이지만, 집에 왔다 가기는 또 시간이 아깝다. 마침 도서관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YMCA와 이웃해 있는 Rancho Peñasquitos Branch Library는 샌디에고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온 적이 있다. 그땐 도서관은 닫혔고 온라인으로 빌린 책에 대한 픽업만 가능해서 안에 들어가보진 못했었다. 카멜 밸리 도서관보다 넓은 것 같다. 역시 아이들 책이 많았다. 이곳의 공립 도서관은 어디나 좋다. 1인용 독서실 책상도 있었다. 덕분에 오전에 하던 자료 분석 작업을 이어서 한 시간 정도 집중해 할 수 있었다.  

Rancho Peñasquitos Branch Library


8월 25일 수요일. 214일째 날. 추수 감사절 연휴에 뉴욕 항공권을 예매했다. 최근 동부 여행의 시기와 내용에 대해 아내와 계속 상의를 했다. 처음엔 날씨가 좋은 9월 쯤에 뉴욕과 보스턴을 갈까 했는데, 아이들 학교를 빠져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중학교 과목들에 대한 안내를 보니 결석을 하게 되면 미리 과목 선생님들께 알려야 하고 빠진 숙제도 해야 한다. 여행을 다녀오는 게 아들에게 괜한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았다. 한 학기만 다니게 되겠지만, 그래도 되도록 학교를 빠지진 않아야 하겠다. 최근엔 아내가 크리스마스 연휴에 뉴욕을 가는 걸로 마음을 바꾸었다가, 다시 추수 감사절 연휴로 계획을 수정했다. 아내는 추위를 많이 타고, 뉴욕의 겨울 바람은 살을 엔다고 한다. 뉴욕의 높은 물가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고 언제든 비슷하겠지만, 크리스마스 보단 추수 감사절이 경비를 절약하기엔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5박 6일 일정 중 온전히 여행을 할 수 있는 건 나흘로, 뉴욕 맨해튼에만 머물게 될 것 같다. 

저녁에 후배의 부탁으로 미국의 판데믹 상황에 관한 짧은 방송 인터뷰를 했다. 


2021년 8월 23일 월요일

연수일기 117. 오션사이드 피어 낚시

8월 22일 일요일. 211일째 날. 캘리포니아에서 낚시를 하려면 라이센스와 퍼밋이 있어야 하지만, Pier에선 이들 없이도 낚시를 할 수 있다. 외갓집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와 낚시를 종종 다녔던 아들은 언젠가부터 낚시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내가 낚시를 즐기지 않아 그동안 선뜻 데리고 가지 못했다. 얼마 전 쿠야마카 호수에서 처음 낚시를 하고 고기를 잡지 못했어도 즐거워하는 아들을 보고 조만간 바다 낚시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샌디에고 시티엔 퍼시픽 비치와 오션 비치 피어가 있고, 조금 멀리 가면 카운티 내의 임페리얼 비치와 오션사이드에 낚시를 할 수 있는 피어가 있다. 오늘은 오션사이드 피어에 가보기로 했다. 

해변 주변 도로 노상 주차장 미터기는 동전만 사용 가능했는데, 다행히 차 안에 보관해둔 동전들이 있었다.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해변에서 한 블럭 뒤에 있는, 좀더 넓고 저렴한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해변은 피어가 있는 임페리얼 비치와 비슷했는데, 그곳보다 세련되고 관광지같은 분위기였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파도가 센 편이라 서핑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드럼이나 기타를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들도 있었고, 주변에 레스토랑과 카페 등 즐길 거리도 더 많았다. 

피어 곳곳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간엔 낚시 소도구와 미끼를 파는 베이트 샵이 있다. 이곳에서 낚싯대 렌탈도 가능하다. 지난 번 쿠야마카 호수에서 산 낚싯대와 아마존에서 구입한 낚싯대에 바늘을 달아 바다에 던졌다. 펠리컨 한 마리가 하늘을 돌다 피어 난간에 앉았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도 꼼짝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게 귀찮은 모양이다. 멋진 해변 풍경이 있어 물고기가 걸리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낚시 용품 외에 간단한 기념품과 음료수를 살 수 있다.

가까이에 있는 피자 전문 식당에서 작은 사이즈의 피자 한 판을 사왔다.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아이들이 잘 먹어 한 판을 더 사왔다. 피자를 사러 다녀오는 동안 아들 낚싯대에 연달아 두 마리가 걸렸다. 처음엔 작은 꽁치가 아닌가 했는데, 나중 검색을 해보니 바다에서 사는 빙어 종류(smelt)인 것 같다. 물고기를 잡은 아들은 의기양양. 

두 번째 잡은 물고기

낚시를 하다 보니 두어 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해가 저물 때쯤 되어 돌아올 채비를 했다. 볼낙이나 고등어 같은 물고기도 잡힌다고 하는데 다음 기회에. 돌아오는 길에 시내를 지나쳤다. 지중해 풍 도서관 건물이 아름다웠는데, 다음에 오면 도서관과 오션사이드 시내를 구경해도 좋을 것 같다. 

2021년 8월 22일 일요일

연수일기 116. Rob과의 점심 식사

8월 20일 금요일. 209일째 날. 아내가 EIA 프로그램 첫 미팅을 했다. 신청한 지는 꽤 되었는데, 처음 매칭된 leader의 개인 사정으로 만남이 연기된 후 약속을 잡기가 어려워지면서, 다른 leader 매칭을 요청했다. 두 번째 분이 연결되고 미팅은 금방 잡혔다. 우리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 사는 분이라 약속을 잡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미팅 후에 아내 이야기를 들으니 좋은 분인 것 같다. 은퇴한 간호사인데, 이번이 네 번째 참여자와 연결이고 지난 세 번 모두 한국인이었다고. 

오늘 연구 미팅에선 워싱턴 대학 역학 교실 H교수께서 brain volume과 white matter injury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MESA 코호트 내 흑인에서 white matter injury가 더 심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인종 간의 차이를 분석한 것이 내 연구 주제와도 유사한 면이 있어 흥미롭게 들었다. 이 코호트에서 brain MRI는 일부 참여자들에게 한 차례만 시행했으므로 단면 연구가 될 수밖에 없으며 연구 대상자 수의 한계도 있다.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White matter injury 관련 연구는 우리 센터에서도 관심이 있는 주제이고 유사한 연구 결과들도 발표한 바 있다. 훨씬 더 방대한 수의 반복 측정 brain MRI 자료를 가지고 있으므로 더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8월 21일 토요일. 210일째 날. Rob과 아내인 Jane을 집에 초대해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도 아내가 한국식 돼지 등갈비 요리로 실력 발휘를 했다. Jane은 중국인이었는데 Rob과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 보인다. 아들인 Sam도 함께 오기로 했는데,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해 오지 않았다고 한다. 

Rob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걸 좋아한다. 은퇴 전 teaching hospital에서 주로 일을 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 원체 성격이 그런 것 같기도. 나에겐 많은 도움이 된다. 이번에도 집에 오기 전에 초대와 관련된 동양과 미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중국에선 초대한 손님을 왕처럼 모시고, 손님이 배부르게 먹는 것에서 호스트가 만족을 느끼지만 미국에선 그렇지 않다는 것. 이전에 중국인 가정에 초대를 받았을 때, 땅콩 알러지가 있는데도 땅콩이 든 음식을 계속 권해 실랑이를 하다가 초대했던 분 마음이 상했다고. 미국인은 호스트가 가까운 친구와 같이 대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는 양쪽 모두와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중국 쪽에 더 가까울 듯 하다. 

Rob과의 문자 메세지

맛있는 음식과 유쾌한 대화. Rob이 사온 멕시코 맥주도 곁들였다. 미국인 가족을 집에 초대한 것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즐거운 점심 식사였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Rob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계속 질문을 던졌다. 아들은 곧잘 대화를 한다. 쑥스럼쟁이인 딸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귓속말로 나와 아내에게 확인을 한다. 학교에서 한국인 친구가 옆에 있어 영어만으로 말해야 하는 환경이 아닌 것도 이유일 것이다. 

저녁엔 한국의 B 선생님 부부와 랜선 술자리를 가졌다. 우리 부부와 가장 가깝고 매년 국내외 여행도 함께 다니던 사이이다. 못 보던 사이에 부쩍 커버린 아이들과도, 고양이와도 인사했다. 11월에 샌디에고에 오기로 했는데 한국 상황이 좋지 않아 걱정이다. 계획대로 이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길.  

2021년 8월 21일 토요일

연수일기 115. 미술 수업, Back to School Night

8월 18일 수요일. 207일째 날. 아침 등교길엔 여전히 차가 많지만 어제보단 정리가 된 느낌이다. 교통 정리를 하는 선생님들께서 지난 학기보다 고생이 많다.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지난 학기보다 1시간 늦어졌지만 일찍 하교하는 수요일은 12시 30분으로 동일하다. 오늘은 딸 친구 J의 엄마가 이른 하교 시간을 잊어서 우리가 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지난 학기에 우리도 한 번 잊은 적이 있었는데, 수요일엔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수업이 끝난 뒤 딸을 데리고 노드스트롬 랙에서 운동화와 크록스 신발을 샀다. 다행히 아이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찾을 수 있었다. 내 반바지와 아내 옷도 몇 벌 샀다. 샌디에고에서 6개월 동안 쇼핑을 한 결과 옷과 신발은 노드스트롬 랙에서 사는 것이 제일 낫다는 결론. 

하교할 때부터 피곤해 보이던 딸은 방광염 증상이 생겼다. 어제도 밥을 잘 안 먹었는데 몸이 좋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개학을 맞아 잔뜩 긴장을 해 탈이 났나 보다. 열이 함께 있었다면 또 코로나 검사를 하고 학교도 쉬어야 할 뻔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항생제를 먹이고 오후엔 낮잠을 재웠다. 다행히 저녁 무렵엔 컨디션이 나아졌다. 한국에서 여러 종류의 약을 준비해 왔지만 그동안 해열제와 소염진통제 외엔 거의 쓸 일이 없었다. 약을 찾을 일이 없는 게 가장 좋겠지만 집에 있는 약만으로 해결될 일이라면 그래도 다행이다.


8월 19일 목요일. 208일째 날. 진행 중인 연구는 초기 분석 후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분석이 거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오늘은 연구의 방향을 바꿔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상보다 진도가 잘 안나가니 조급한 마음도 드는데, 또 꼬이지 않으려면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학교가 끝나고 딸과 미술 스튜디오에 갔다. 이번 학기엔 방과 후 활동을 좀더 해보려 한다. 아이가 미술 수업을 받아보고 싶다고 해 며칠 전부터 적당한 학원을 검색했다. 마침 무료 수업이 가능한 곳이 있어 오늘 참여해 보기로 했다. 한시간 반 수업이 끝나고 아이를 데려오며 수업에 대해 물으니 재미있었다고 한다. 워낙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나 보다. 함께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나 선생님과 소통이 많이 이루어지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 실제 등록을 할지 고민이 좀 된다. 

오랜만에 저녁은 집 앞 쇼핑몰에서 외식. 지나다닐 때마다 한번 들러봐야겠다 생각한 일본 라면집이다. 분위기는 괜찮지만 음식 맛이 기대 이하였다. 다시 가진 않을 것이다.

저녁엔 딸아이 초등학교에서 Back to School 행사가 있었다. 매년 있는 행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오는 특별한 해인 올해는 초, 중학교 모두 같은 이름의 행사가 있다. 학교와 아이들의 교실을 둘러보고 담임 선생님의 소개 말씀을 들었다. 지난 학기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전 학교 안을 잠깐 둘러보긴 했지만 교실 안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잘 정돈된 교실엔 아이들 네 명씩 앉는 책상과 의자, 책장이 있다. 아이들 키에 맞는 책꽃이엔 책이 수북했다. 아이들의 학용품도 선반에 차례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벽면은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로 꾸며졌다. 한쪽 벽엔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본따 만든 종이 인형이 손에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었다. 인형의 얼굴 색이 다양했다. 

E6 교실

선생님과 학교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선생님과 잠깐 대화를 했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교실을 둘러보고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한국의 참여 수업은 아이들의 수업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어수선한 분위기라 선생님과 교감을 나누긴 어렵다.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도 더 힘들 것이다. 책상 위엔 아이들이 남겨놓은 편지가 있었다. 뒷면에 부모가 답장을 하는 란이 있어 짧은 편지를 남겼다. 

2021년 8월 18일 수요일

연수일기 114. Back to School

8월 16일 월요일. 205일째 날. 초등학교 개학이다. 어제 밤에 딸을 재우려 방에 들어가니 엉덩이를 쳐들고 침대에 엎드려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일 학교에서 잘 할 수 있기를, 새 학년엔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기를 빌었다고 한다. 

- 지난 학기에도 잘 했잖아. 

- 영어도 잘 못하고 미국 친구도 못 사귀었는걸. 

침대에 나란히 누워 볼을 토닥여줘도 평소랑 달리 입술을 비죽거린다. 지난 학기에 담임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는데, 새 선생님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충분히 잘 했어. 영어 못하고 단짝 친구 없어도 괜찮아. 새 학년에선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아이를 다독여 재웠다. 

평소엔 몇 번을 깨워야 일어나던 딸은 아침 여섯 시에 잠에서 깼다. 일찌감치 옷을 챙겨입고 아침과 도시락 준비를 하는 엄마를 도왔다. 이번 학기엔 등교 시간이 판데믹 이전과 같아져서 수업 시작 시간인 8시 이전에 교실에 들어가야 한다. 이전보다 일찍 나왔는데도 길이 막혀 학교 주차장까지 가는데 오래 걸렸다. 지금까지 겪은 등교길 중 가장 차가 많은 날이었다. 새로 입학하는 아이들에다 그동안 원격 수업에만 참여했던 아이들까지 더해졌으니 더 붐빌 것이다. 

교문 앞엔 새 학기를 축하하는 장식과 풍선이 걸렸다. 교문 앞은 차와 사람들이 얽혀 어수선했다. 손을 잡고 종종걸음을 치는 아이와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약간은 흥분된 표정이었다. 원격 수업을 하다 일년 반 만에 학교에 온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와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중학교 개학은 내일이다. 집으로 돌아와 학부모 포털에 올라온 아들의 시간표를 확인했다. 이번 학기에 수강할 과목은 역사, 체육, 세계사, 수학, 영어, 선택 과목인 오케스트라, 이렇게 여섯 과목이다. 시간표와 교실을 출력해 아들과 학교에 갔다. 개학 전날인 오늘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학교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행사 이름을 'Mosey Monday'라고 부른다.

학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이들이 건물을 옮겨다니며 내일부터 들어갈 교실을 찾아다녔다. 교실 안은 볼 수 없었지만 미리 붙여진 과목 라벨과 선생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 강의동은 두 개였다. 음악과 미술을 위한 강의동, 다목적 강의동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 체육관은 꽤 넓었다. 카페테리아에선 실내 식사는 안되고 창구를 통해 실외에서 급식을 받는 형태로 운영하려는 듯 했다. 학교 내부와 건물, 시설 모두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내일의 동선을 확인한 아들은 이전보단 마음이 놓이는 듯 했지만, 무리를 지어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또 조금은 위축된 것 같다. 아들이 좋아하는 인앤아웃에서 점심을 먹었다. 

학교 안을 자유롭게 구경하는 아이들

8월 17일 화요일. 206일째 날. 오늘도 아이들은 일찍 일어났고, 학교로 가는 길엔 어제보다 더 차가 많았다. 중학교 개학날이라 그럴 것이다. 딸을 데려다 주고 연구실에 출근했다. 

Rob과 네 번째 만나는 날이다. 오늘은 그의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멕시칸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 스페인어에 능숙한 그는 멕시코인 종업원과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대화한다. 그는 새우 화이타를, 나에겐 브리또를 주문해 주었다. 이전에 한번 얻어먹은 적이 있어 이번엔 내가 계산했다. Rob은 항상 1불짜리 지폐를 가지고 다니며 팁을 잊지 않는다. 미국의 팁 문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는데, 그는 20퍼센트의 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10퍼센트 팁을 주면 된다고 했다. 레스토랑 직원은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걸 그와의 대화에서 처음 알았고, 그래서 여전히 팁을 제외한 급여만으론 생활할 수 없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최저임금은 13불 정도로 미국 내에선 높은 편이다. 연방 최저임금은 7.25불인데 21개 주가 연방 최저임금을, 약 10개 주가 7.25-10불 정도를, 나머지는 10불 이상을 적용한다. 10-13불로 계산하면 연봉 2만-2만7천불이 된다. 이 돈으론 샌디에고와 같은 도시에선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을 것이다. 

Rob의 아들인 Sam이 뒤늦게 도착해 점심을 함께 먹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Sam은 독립심이 강해 혼자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나에 대해선 아버지에게 미리 들었나 보다. 내 이름을 부르며 하이파이브로 반갑게 첫 인사를 했다. 일주일에 이틀 마트에서 일을 하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한다. 식사 후에 Rob이 동네의 커뮤니티 가든으로 안내해 포도를 따 주었다. 한국의 주말 농장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은데, 30가구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식 주말 농장

연구실에 들렀다가 딸을 픽업해 집으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간에 아들도 하교. 중학교 첫날 일정을 마친 아들은 어제보단 표정이 편해 보였다. 큰 문제는 없었나 보다. 아침 등굣길에 다른 고등학교 입구로 잘못 들어가서 헤메다 물어물어 제 학교를 찾아간 것 빼고는. 둘은 전혀 다른 학교이고, 이웃해 있긴 하지만 학교가 워낙 넓은지라 입구는 한참 다르다. 어제 학교 답사를 갈 때는 차를 타고 가서 오늘 걸어가는 길이 익숙치 않았나 보다. 첫날이라 수업은 간단한 소개 정도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각 과목마다 있었던 공지 사항을 다 적지 못하고 두 과목만 적어 왔다. 처음엔 나와 아내가 매일 확인을 해야할 듯. 모든 수업이 구글 클래스룸을 이용하는데, 학교에서 정한 아이디를 받게 되면 조금 더 수월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