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일요일. 204일째 날. 한 달쯤 전 집을 찾아온 자원봉사자를 통해 아이들 새 학기 학용품 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넘겼다. 두 번째 방문을 받고는 호기심이 생겨 알려준 웹페이지에 이메일 주소와 아이들 학년 등 간단한 정보를 적었다. 이후 연락이 없어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된 자원봉사자 분이 아이들 백팩과 학용품을 가져다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막상 연락을 받고 보니 좀 당황스러웠다. 이런 지원을 받아도 되나 싶기도 했는데, 이미 쇼핑을 하고 휴가 스케줄을 피해 가져다 줄 날짜까지 확인하니 안 받겠다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오늘 물품을 받기로 했다. 그냥 간단한 학용품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집 앞에서 만난 봉사자 분은 남자 아이 둘의 엄마였다. 아이들 둘도 함께 데리고 왔다. 백팩은 지금 아이들이 쓰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제품이었고, 집에 돌아와 백팩을 열어보니 노트, 펜, 연필, 색연필, 자, 컴퍼스, 필통 등 학교에서 쓸만한 학용품이 종류별로 가득했다. 마침 아쉬웠던 물통까지 있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좋아했지만 나와 아내는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그냥 중간에라도 받지 않겠다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봉사자 분께 다시 감사 문자를 보냈다. 우리 아파트 정도면 소득이 아주 낮은 가족은 없을텐데 왜 여기까지 이런 안내를 해주었을까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 옆에 임대 주택 단지가 있어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임대 주택이라고 해도 겉으로 보기엔 우리 아파트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학용품 나눔은 92130 cares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92130 zip code 지역의 자치 운동으로, 자원봉사를 통해 기부 활동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신청을 할만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조만간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선물한 분에게 한국 음식이라도 만들어 선물해야 하지 않을까 싶고, 우리도 이곳에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울 기회를 찾아봐야겠다.
저녁을 먹고 솔라나 비치에 갔다. 샌디에고에 와서 가장 자주 왔던 해변이다. 개인적으론 샌디에고 해변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곳 해변에서 보는 일몰 풍경은 모두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솔라나 비치의 일몰은 특별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구름 빛깔, 반짝이는 파도, 바닷물에 젖어 반들거리는 모래사장. 멀리 해변을 따라 병풍처럼 선 황톳빛 절벽 아래로 파도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고 있자면 이곳이 현실 세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샌드 크랩을 잡으며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