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10일 토요일

연수일기 91. 일상으로 복귀

7월 5일 월요일. 163일째 날.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고 여행으로 먼지 투성이가 된 차도 세차했다. 저녁엔 오랜만에 H 선생님 가족과 바베큐장에서 식사를 했다. 아이들 등하교 때마다 매일 얼굴을 보다가 방학을 하면서 만나지 못한지 몇 주 되었다. H 선생님 가족도 우리처럼 지난 주에 세콰이어와 요세미티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아이들 방학이 되면 다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곳으로 여행을 간다.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서로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7월 6일 화요일. 164일째 날. 열흘만에 연구실에 출근했다. 아내는 어제 사온 무로 깍두기를 담았다. 깍두기는 벌써 세 번째 담는 건데, 점점 맛이 나아지고 있다. 저녁엔 딸과 공원을 산책했다. 공원에 나온 것도 오랜만이다. 샌디에고 날씨도 이제 여름을 느낄 수 있다. 기온 자체는 큰 차이가 없지만 햇살이 강해 낮에 바깥에 있으면 땀도 나고 집안 공기도 달라졌다. 그래도 바람이 선선하고 그늘에선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게 한국의 여름과는 차이가 많다. 

작년과 올 상반기에 걸쳐 각 학교와 병원에서 밀려있던 미국행 장기 연수가 재개되어 올 여름에 샌디에고에도 많은 분들이 들어온다고 한다. 들리는 이야기론 연수 보험 업체를 거친 이만 마흔 명 이상이라 하고, 의대 교수들의 샌디에고 단톡방에서 올 여름에 들어올 예정이라 한 분들도 열 분이 넘는다. 나와 같은 아파트로 이미 계약한 선생님들도 다섯 분은 되는 것 같다. 올 여름 첫 순서로 입국한 선생님을 며칠 전에 집에 남는 공구를 드리기 위해 잠깐 만나기도 했다. 어제는 우리 아파트에 들어올 예정인 선생님들 중 한 분이 입주했다. 심장내과 전문의인 L 선생님으로, 모교 후배라 안면이 있다. 밤에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판데믹 상황이 나아지면서 집세와 중고차 가격이 많이 올라 올해 연수 들어올 분들이 애를 꽤 먹을 듯 하다.


7월 7일 수요일. 165일째 날. 오후에 라스아메리카 아울렛에 다녀왔다. 아내와 아이들 옷과 운동화를 샀다. 다음 주부터 아이들 썸머 캠프가 시작된다. 1주일 프로그램 세 개를 붙여 3주간 일정을 만들었다. 세콰이어 패밀리 캠프를 포함해 여름 방학 동안 네 개의 캠프에 참여하는 셈이다. 일부 캠프는 예약할 때 비용을 지불했고, 써핑 캠프와 YMCA 캠프는 시작 일주일 전까지가 결제 기한이라 이번 주에 모두 비용을 지불했다. 아이들 둘의 3주 캠프 비용만 해도 꽤 부담이 된다. 하지만 긴 여름 방학 동안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으면 학교로 돌아갔을 때 다시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과 좋은 경험이 되었음 좋겠다. 

2021년 7월 5일 월요일

연수일기 90. 독립 기념일 연휴, 불꽃놀이

7월 2일 금요일. 160일째 날. 여행 이후 오랜만에 화상 연구 미팅에 참석했다. 오늘은 외부 연자의 발표가 없어 저널 클럽 이후 각자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 뒤 평소보다 일찍 마무리했다. 진행 중인 연구 결과가 정리되면 미팅에서 발표를 하기로 했다. 초기 분석을 한 뒤 한동안 정체된 상태인데, 신경을 좀더 써서 속도를 내야 겠다.


7월 3일 토요일. 161일째 날. 오늘부터 독립 기념일 연휴가 시작된다. 독립 기념일엔 미국 전역에서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데, 매년 이어지던 이 전통도 작년엔 판데믹으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독립 기념일 불꽃놀이의 시작은 독립 선언문이 채택된 1776년 다음 해 부터라고 하니 이백 년이 훌쩍 넘었다. 미국인들의 독립 기념일 불꽃놀이 사랑은 유별나다고 하는데, 작년 한 해를 건너뛰었으니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래서인지 다시 돌아온 불꽃놀이를 알리는 공지와 기사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독립 기념일 전날에도 각 카운티에서 소규모로 불꽃놀이를 한다. 밤엔 집 앞에서도 델 마르 해변 쪽에서 쏘아올린 불꽃을 볼 수 있었다. 


7월 4일 일요일. 162일째 날. 독립 기념일이다. 델 마르 페어그라운드에서 불꽃놀이를 보기로 했다. 경마장이자 박람회나 전시 장소로 쓰이는 이곳에선 마침 지역 축제를 하고 있었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독립 기념일 불꽃놀이는 9시에 예정되어 있었다. 일찍 가서 축제를 구경하다가 불꽃놀이를 보기로 하고, 6시 입장 티켓을 구입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것은 각종 푸드 트럭이었다. 입구에서부터 고기를 굽는 매캐한 연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푸드 트럭의 스케일도, 음식의 크기도 다 어마어마했다. 대왕 핫도그와 돼지고기 구이로 배를 채우고 전시장을 구경했다. 


실외에는 푸드 트럭, 실내에는 쇼핑을 할 수 있는 각종 부스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이들 장난감, 옷, 장신구 등 작은 상품들도 있었지만 정원의 수도 호스, 쿨링 팬, 바베큐 그릴, 침대, 마사지기 등 이런 걸 왜 여기서 파나 싶은 물건들도 많았다. 심드렁해 하던 아이들의 흥미를 사로잡은 건 새끼 돼지 경주장이었다. 다행히 마지막 경주를 볼 수 있었다. 돼지들이 달리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귀여운 돼지들의 레이스를 보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우리 아이들도 흔히 볼 수 없는 색다른 광경에 즐거워했다. 


돼지 레이스가 끝나고 불꽃놀이를 잘 볼 수 있는 서쪽 입구로 자리를 옮겼다. 아홉 시가 되자 불꽃이 터지기 시작해 십여 분간 계속되었다. 한국에서도 여의도 불꽃 축제가 유명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교통이 복잡해 한 번도 직접 보러 간 적은 없다. 불꽃의 규모는 생각보다 소박했지만 아이들에겐 오늘 저녁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2021년 7월 2일 금요일

연수일기 89. 샌 루이스 오비스포, 게티 빌라

7월 1일 목요일. 159일째, 여행 8일째 날. 호텔에서 나와 가까운 소도시인 샌 루이스 오비스포 다운타운에 주차를 하고 근처 카페에서 베이컨과 계란 요리, 아보카도로 아침 식사를 했다. 이 조그만 도시의 아침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카페의 베이컨은 지금까지 미국에서 먹은 베이컨 중 제일 맛있었다. 

커피를 사 들고 시내를 구경했다. 미션 샌 루이스 오비스포가 가까이에 있었다. 18-19세기 초에 걸쳐 스페인 수도사들에 의해 지어진 캘리포니아의 21개 미션 중 하나이다. 1772년에 지어진 이 성당은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이름이 나있다. 종탑과 전실을 둘 다 가지고 있는 성당은 캘리포니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다른 성당들과 달리 본당의 제단 우측에 비슷한 크기의 신도석이 있는 L자 형의 건물인 것도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 세 개의 종탑이 있는 새하얀 건물이 아름다웠다. 성당 안에선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회색곰을 흔히 볼 수 있었던 예전엔 이 도시를 '곰들의 계곡'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성당 앞마당엔 곰 조형물과 연못이 있다.

정면에 세 개의 종탑이 있는 성당 주 건물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인 gum wall을 찾았다. 구글 맵의 위치가 잘못 표기되어 있어 찾는 데 좀 애를 먹었다. 골목의 양쪽 벽은 사람들이 씹던 껌으로 뒤덮여 있다. 시애틀에도 비슷한 껌 벽이 있다고 하는데, 지저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색다른 곳이고 사진을 찍기 좋다. 골목 입구에선 달달한 풍선껌 냄새가 났다. 

Blast 825 taproom을 찾아 오면 된다.

여기서부터 집까지는 다섯 시간이 넘는 거리이다. 중간에 들를 곳을 찾다 눈에 띈 곳이 산타 모니타의 게티 빌라였다. LA의 게티 센터와 함께 게티 재단의 소장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예약이 필요해 어제 미리 해두었다. 입장은 무료이지만 주차료는 받는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과 예술품도 볼만 하지만, 이곳을 대표하는 건 고대 로마 양식으로 지어진 빌라 자체가 아닐까 싶다. 건축물과 잘 꾸며진 정원이 감탄을 자아낼만큼 아름다웠다. 

Outer Peristyle

사자 가죽을 든 Hercules

게티 빌라를 나와 산타모니카 시내에서 식사를 했다. 퓨전 비빔밥을 파는 체인 식당이었는데,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지나쳤다. 여기서부터 집으로 가는 길은 그래도 익숙한 느낌이다. 5번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 된다. 중간에 딸이 화장실이 급해 5번 고속도로를 타기 전 우회로로 나가 마트에 들렀다. 다시 차에 타 구글맵을 켜고 운전을 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고를 연결하는 5번 도로는 차가 많은 편인데, 오늘 따라 차가 거의 없었다. 주변 풍경도 삭막한 평지가 아니라 나무가 많고 중간중간 경사가 있는 언덕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통행 요금을 내라는 표지판도 보였다. 

알고 보니 5번 도로가 아니라 73번 도로를 탄 것이었다. 오렌지 카운티의 어바인 근처에는 유료 도로가 몇 개 있다. 주변 지리에 익숙치 않은 운전자가 무심코 유료 도로를 통과해 통행료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길이 73번이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평소 구글맵의 네비게이션에 '유료 도로 제외' 항목을 체크해두어야 한다. 이전엔 이 항목을 체크해두었었다. 국립공원의 경우 매표소를 지나는 길은 모두 유료이지만 이 길 외엔 들어갈 수 없으므로, 유료 도로를 제외해두어도 유료 도로라는 알림과 함께 해당 길을 알려주어 특별한 불편이 없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다리를 건너는 유료 도로를 안내받으려고 체크를 풀었다가 깜빡하고 다시 체크를 해두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결국 다음 날 8불 가량의 통행료를 납부했다. 오렌지카운티 유료 도로의 경우 통과한 날부터 5일 이내에 웹사이트에서 통행료를 납부할 수 있다. 오늘은 300마일을 운전했다. 

2021년 7월 1일 목요일

연수일기 88. 캘리포니아 1번 도로, 파소 로블레스

630 수요일. 158일째, 여행 7일째 날. Cannery Row의 스타벅스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 거리의 원래 이름은 Ocean View Avenue였는데, 이곳을 무대로 한 존 스타인벡의 소설 ‘Cannery Row’를 기리기 위해 소설과 같은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작은 광장에서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로 만들어진 조형물을 볼 수 있었다. 

몬테레이에는 경치 좋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17마일 드라이브' 길이 있다. 페블 비치와 퍼시픽 그로브를 따라 이어진 왕복 2차선의 이 도로는 대부분 바다를 끼고 있으며, 사유지라 이 길을 운전하려면 양쪽 끝의 게이트에서 요금을 내야 한다. 짧은 길이지만 중간중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어 차에서 내려 바람을 쐬고 놀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모스 비치

바다와 변화 무쌍한 해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샌디에고에도 아름다운 해변이 많아 특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다 반대쪽은 대부분 골프장이 이어져 있는데,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좀더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US 오픈을 개최한 최초의 퍼블릭 코스이며 미국 내 퍼블릭 골프장 순위에서 매년 1위에 오르는 페블 비치 골프 링크스도 이곳에 있다. 

길 중간쯤에 있는 Bird rock vista point에서 수백마리의 새들로 가득한 바위섬을 볼 수 있었다. 바위섬은 새똥이 켜켜이 덮여 다른 바위들과 달리 흰색으로 눈에 띠었다. 왜 여기만 새들이 많은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근처 지형이나 조류 때문에 먹이가 될 만한 것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해변에 사는 다람쥐 몇 마리를 만났는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다람쥐들과 놀며 시간을 보냈다. 

카멜바이더시에서 17마일 드라이브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1번 도로를 따라 멀지 않은 곳에 포인트 로보스 Point Lobos 스테이트 자연 보호 지역이 있다. 10불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해변 절벽을 따라 난 길을 따라 짧은 트레킹을 할 수 있다. 경치도 좋고 꽃이 많이 핀 길도 예뻐서 아이들과 걸을만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1번 도로 일주이다. 30분쯤 가면 절벽 사이 사이를 잇는 creek bridge 들을 만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1번 도로 관련 사진이나 기념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Bixby creek bridge이다. 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어 여기서 잠시 차를 세울 수 있다. 

마그넷에서 보던 풍경
 

빅서어에서 주유를 했다. 갤런당 5.7불로 미국에 와서 가장 비싼 가격이었는데, 7불이 넘는 가격에 주유를 했던 이도 있다고 들었다. 몬테레이에서 오늘 숙소인 파소 로블레스까지는 130마일 거리지만 구글맵으로 세 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 구간 대부분이 굴곡이 많은 절벽 위 도로라 속도를 낼 수가 없어 그럴 것이다. 차창을 통해 보이는 주변 풍경은 멋졌지만 운전을 하기엔 쉽지 않은 길이라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두어 시간쯤 운전을 하니 뒷목이 뻐근했다. 


파소 로블레스 Paso Robles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다섯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파밸리 못지 않게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 와이너리를 가볼까 했는데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이 다섯 시 전에 문을 닫았다. 호텔 체크인 후 직원에게 이 시간에 방문이 가능한 와이너리로 추천받은 CaliPaso winery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이 함께 있는 와이너리였는데 테이스팅은 제공하지 않았다. 테이스팅 룸은 다운타운 쪽에 따로 있다고 한다. 레스토랑에 딸린 정원,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주변 풍경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간 거라 식사와 함께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식사 후 다운타운을 구경하며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은 140마일을 운전했다. 

2021년 6월 30일 수요일

연수일기 87. 팔로알토, 몬테레이

629 화요일. 157일째, 여행 6일째 날. 오늘은 팔로알토를 거쳐 몬테레이 까지의 일정이다. 팔로알토의 스탠포드 대학에 가는 길에 구글 본사에 들렀다. 판데믹 이후 비지팅 센터가 닫혔고 직원들도 아직까진 재택 근무를 하는지 회사 근처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스크를 쓴 채 비어있는 회사를 외롭게 지키고 있는 안드로이드 조형물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안녕, 누가!


스탠포드 대학에 도착해 비지터 센터에 주차를 했다. Cantor art center는 오픈을 했고 미리 예약을 하면 입장할 수 있지만 화요일은 휴무라 오늘은 들어갈 수 없다. 조각 가든의 로댕 작품들을 보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다. 사진으로만 보던 지옥의 문과 Three shades를 직접 가까이에서 보고 만져볼 수 있었다. 지옥의 문은 전 세계에서 일곱 군데에만 전시되어 있는데(한국의 플라토 미술관 폐관 이후 여섯 곳이 되었다.) 미술관이 아닌 곳은 스탠포드 대학교가 유일하다고 하니 이 대학교의 특별한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지옥의 문


또 다른 대표적인 작품인 칼레의 시민도 추모 교회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었다. 추모 교회는 아직 닫혀 있어 바깥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교회 건물과 앞뜰 만도 참 아름다웠다. 서점에 들러 아들 책을 한 권 샀다. 대학교 서점 치고는 규모가 크고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아이들을 위한 책 코너를 포함해 일반 서점 못지 않게 다양한 책 구성이 잘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추모 교회 모습

 

점심은 팔로알토 다운타운에서 먹기로 했다. 일본 라면집인 Ramen Nagi는 근처에서 평점이 높은 식당으로 항상 웨이팅이 있다고 했는데, 10분 정도 기다려 자리에 앉았다. 도쿄의 라면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맛이었다. 식사 후 블루보틀에서 커피를 마셨다. 극장으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한 매장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지만 매장의 아름다움에 비해 커피 맛은 평범했다. 팔로알토에는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장소도 많다고 한다. 그중 한 곳인 휴렛팩커드 garage에 들렀다. 작은 집에 불과하지만 'Birthplace of Silicon Valley'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곳이다. 

 

Birthplace of Silicon Valley


팔로알토를 떠나는 길에 쿠퍼티노 애플 파크의 애플 스토어에 들렀다. 팔로알토도 집 값이 비싸기로 유명하고 이곳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모인 쿠퍼티노의 교육열은 서울의 강남 못지 않다고 들었다. 이곳 애플 스토어는 카페를 겸하고 있었다. 다른 애플 스토어 중에서도 커피를 파는 곳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카페 디자인도, 화장실의 인테리어도 딱 애플 다웠다. 


오늘 숙소는 몬테레이의 하얏트 리젠시 몬터레이 호텔  스파이다. 골프장을 겸한 리조트로 몬테레이에선 가성비가 좋은 호텔인 것 같다. 국립공원 랏지와 에어비앤비가 섞인 일정이었지만 룸 컨디션만 본다면 이번 여행에서 묵었던 곳 중 가장 만족스런 숙소였다. 체크인을 하고 몬테레이의 올드 피셔맨스 와프에 구경을 갔다. 어제 보았던 샌프란시스코의 피셔맨스 와프보다 훨씬 작은 부두였지만 소도시다운 소박함과 정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Old Fisherman's Wharf

Clam chowder를 파는 식당들이 많았다. 저녁 겸 사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트레이더 조에서 장을 본 뒤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140마일을 운전했다.

원래 생각했던 일정은 내일 1번 해안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중간중간 구경까지 하고 가기엔 너무 빠듯할 것 같아 파소 로블레스에서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 이번 기회에 와이너리를 가 보는 것도 좋겠다. 

2021년 6월 29일 화요일

연수일기 86. 샌프란시스코

6월 28일 월요일. 156일째, 여행 5일째 날. 아침에 일어나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물놀이를 하는 사람이 없어 가라앉은 해조류 덕분에 호수의 물이 어제보다 맑았다. 

숙소에서 나오는 길에 Black Cabin Coffee에 들러 커피를 샀다. 로컬 커피 가게는 여행 중에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이다. 브랜드 커피에서 느끼기 어려운 훌륭한 맛을 볼 수 있는데, 이곳 커피도 그랬다. 레이크 타호는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경계에 있어 주 경계를 넘을 수 있다. 커피 가게 근처 공원 안에 주 경계선이 있어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네바다와 캘리포니아 사이

버클리 코스트코에서 주유를 하고 오클랜드의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다. 근처 베트남 식당에서 점심을 사 숙소에서 먹은 뒤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오클랜드 베이 브리지를 건넜다. 이전에는 다리를 건널 때 현금으로 통행료를 냈다고 하는데, 지금은 미리 등록한 차량이 아니라면 추후 차량 소유자의 주소로 통행료 invoice가 온다고 한다. (실제로 2-3주 뒤 인보이스가 든 우편물을 받아 온라인으로 6불의 통행료를 납부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선 운전과 주차가 부담스러워 차를 세워두고 리프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도 유리를 깨고 물건을 훔쳐가는 일이 흔히 있다고 들었는데, 피셔맨스 와프 근처의 주차장들은 구글 후기에서도 도난을 당했다는 경험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차량 털이 사건이 집계되는 것만 해도 하루에 백여 건씩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이 적은 다운타운 안쪽의 주차 건물에 차를 세워두기로 했다. 이곳 주차장은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어 도난의 위험은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아니나다를까, 길을 걷다 보니 곳곳에 차량 내부의 도난을 조심하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었다. 

맨 처음 목적지인 롬바드 가는 멀지 않은 곳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경사가 심한 도로를 올라가다 보니 이 도시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롬바드 가는 차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너비의 급경사에 여덟 번의 급커브 일방 통행로로 유명한 거리이다. 할리우드 영화 여러 편의 차량 추격 씬에도 등장했다고 한다. 경사 도로에 구불구불 난 길로 차들이 줄지어 내려오는 광경이 독특했다.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경사진 도로를 가득 메운 수국과 도로 주변의 예쁜 집들이 포토 스팟으로 이름날 만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일렬로 내려오는 차들

우리도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피셔맨스 와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Maritime 국립역사공원 표지판을 만나기 전까진 도심 한가운데에 국립공원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비지터 센터가 닫혀있어 아쉬웠다. Maritime garden에서 잠시 쉬었다가 피셔맨스 와프를 따라 피어 39까지 걸었다. 딸이 바다사자를 보고싶어 했는데, 막상 가 보니 몇 마리 보이지 않았다. (바다사자는 역시 샌디에고의 라호야 코브......)   

반가운 국립공원 표지판


리프트를 타고 페인티드 레이디스로 이동하는 길에 버블티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Boba guys에 들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핫하다는 버블티 카페로 스트로베리 마차라떼가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로 맛은 그닥...... 알라모 스퀘어 공원을 가로질러 가니 빅토리아 풍의 파스텔 톤 색 주택 몇 채가 줄지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림 엽서에 나올 만한 풍경이었다.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집


페인티드 레이디스로 가는 길부터 날이 쌀쌀해지고 바람이 심해졌다. 날씨가 좀더 따뜻했다면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을텐데. 바다를 끼고 있는 같은 지중해성 기후라 해도, 이 도시의 날씨는 흐리고 비가 많이 온다고 들었다. LA나 샌디에고보다 기온이 낮고 바람도 많이 분다던데 이날 날씨가 딱 그랬다.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가 힘들어해 오늘 더 돌아다니긴 힘들 것 같았다. 

엽서에서 보던 다리


금문교를 보고 일찍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도심에서 보낸 시간은 겨우 반나절 정도에 불과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샌디에고보다 더 자유로운 도시라 느껴졌다. 오늘은 200마일을 운전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찾아 오클랜드로 건너가는 길에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저녁 식사를 주문했다. 오클랜드란 도시는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연고지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와 이웃해 있으니 크게 다르지 않겠거니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오클랜드의 분위기는 건너편과 완전히 달라서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거리 곳곳이 허름하고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다. 낮에 숙소에 들어갈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저녁 시간이 되니 지나다니는 사람도 적었다. 오클랜드가 범죄가 많고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도시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에어비앤비 숙소 가격이 샌프란시스코와 차이가 커 별 생각 없이 오클랜드로 숙소를 잡은 건데,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그냥 샌프란시스코 쪽에서 찾았을 것이다. 미국의 빈부, 지역 격차를 조금이나마 체험한 하루였다. 결국 별다른 일은 없이 숙소는 잘 이용했지만.

2021년 6월 28일 월요일

연수일기 85. 레이크 타호

6월 27일 일요일. 155일째, 여행 4일째 날. 레이크 타호로 가는 날이다. 웨스트 게이트 랏지 근처의 Tangled Hearts Bakery에서 아침을 먹었다. 웨스트 게이트 근처에서 구글 평점이 높은 식당이었는데, 아주 작고 소박한 곳이었지만 팬케잌이 맛있었다. 

중간 지점인 샌 안드레아스에서 주유를 하고 엘도라도 내셔널 포레스트를 가로질러 레이크 타호 에메랄드 베이 인스피레이션 포인트에 도착했다. 에메랄드 베이와 호수 가운데 있는 파네트 섬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경계에 있는 레이크 타호는 북미에서 가장 큰 고산 호수로, 깊이도 미국에서 두 번째로 깊다고 한다. 여름엔 워터 스포츠를, 겨울엔 스키를 즐길 수 있어 휴양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에메랄드 베이 백사장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호수 서쪽 방향으로 조금 더 가서 주립공원에 주차를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 답게 사람들도 많고 차도 많았다. 에메랄드 베이의 유명세에 비해 주립공원 주차장은 파킹 랏이 터무니없이 적어 유료임에도 주차가 쉽지 않다. 주차 금지 구역인 주변의 갓길에 세워진 차들도 많았다. 주차장 안에서 조금 기다려 다행히 자리가 났다. 오후에 온다면 구경 후 떠나는 차들이 종종 있어 주차장이 만차이더라도 좀 기다려보는 게 좋을 듯 하다.

전망대에서 본 에메랄드 베이


30분쯤 걸어 호숫가 모래사장과 피크닉 장소에 도착했다. 내부 투어를 할 수 있는 Vikingsholm이라는 목사관이 있었는데 우리에겐 바깥에서 보는 것 만으로 충분했다.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하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약과 보트를 빌려 타고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레이크 타호는 요세미티에 비해 역시 잘 꾸며진 휴양지의 느낌이 훨씬 컸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오늘은 190마일을 운전했다. 오늘 묵을 숙소는 사우스 레이크 타호에 있는 비치 리트릿&로지 앳 타호이다.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체크인을 한 뒤 바로 숙소 앞 비치에 나갔다. 모래사장이 넓고 호수 밑바닥도 모래에다 멀리까지 경사가 완만해 물놀이를 하기에 좋았다. 기슭에서 보기엔 호수의 물이 생각보다 탁해 보였는데, 들어가서 보니 얕은 곳은 해조류 때문에 맑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요세미티의 호수들을 보고 와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허리 높이의 깊이까지 들어가니 물이 좀더 맑게 보였다. 아이들과 물놀이를 한참 하고 백사장에서 모래놀이도 하다 문득 하늘을 보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숙소 앞 백사장


숙소 바로 건너편에 세이프웨이 마트가 있어 저녁거리를 사왔다. 발코니에서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며 맥주를 한잔 하니 몸이 노곤해진다. 내일은 샌프란시스코로 갈 예정이다. 


2021년 6월 27일 일요일

연수일기 84. 요세미티 여행- Mirror lake, 요세미티 밸리

6월 26일 토요일. 154일째, 여행 3일째 날. 밸리 랏지 스타벅스에서 아침을 먹고 비지터 센터에 들렀다. 비지터 센터와 박물관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국립공원 스탬프를 찍고, 근처의 인디언 마을과 Angel Adams gallery를 구경했다. 멋진 흑백 사진들을 구경하는 것 외에 책과 소품을 살 수 있는 코너도 있었다. 

오전엔 미러 레이크 트레일을 걷기로 했다. 비지터 센터에서 출발해 한 시간 남짓 걸으면 미러 레이크에 도착할 수 있다. 아래쪽 호수에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쪽 호수엔 생각보다 물이 많지 않았는데, 산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 모인 호수라 봄에 가장 수량이 많고 여름 이후엔 말라버린다고 한다. 그래도 노스돔과 하프돔을 포함해 호수를 둘러싼 산과 절벽이 그림처럼 수면에 비쳐 보였다. 

이름처럼 거울같다.


밸리 랏지로 돌아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래 계획은 글래셔 포인트에 가는 것이었다. 글래셔 포인트에서 태프트 포인트까지 걷는 길을 추천받기도 했다. 그런데 거리는 가까워 보여도 자동차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포인트만 보고 내려오는 데에도 2시간 이상 소요될 것 같았다. 이동 시간이 길어 아이들도 힘들어 할 것 같아 그냥 밸리에 좀더 머물기로 했다. 브라이덜 베일 폭포를 보기 위해 갔는데, 폭포 주변 정비 공사로 주차장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주차장 입구에서 사진만 찍었다.

폭포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 그냥 나가기가 아쉬워 한적한 갓길 주차 공간에 차를 세웠다. 밸리 안의 메르세드 강 양쪽으로 난 길에는 차를 세우고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게 성에 안 찼는지 아이들은 결국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를 시작했다. 계곡만 보자면 한국에도 좋은 곳이 많지만 요세미티는 광대한 넓이에 계곡을 둘러싼 높고 전망 좋은 산, 평원과 호수를 포함해 다양한 경치를 볼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입수 본능


한 시간을 물에서 더 놀고 밸리를 빠져나왔다. 오늘 숙소는 요세미티 웨스트 게이트 랏지이다. 요세미티 밖에 있지만 웨스트 게이트에서 가까워 인기가 많은 숙소이다. 그렇다 해도 밸리 랏지에선 1시간 가까이 걸린다. 

오늘은 40마일을 운전했다. 웨스트 게이트 랏지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앞마당에 수영장도 있고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다. 방 상태도 깨끗하고 마음에 들었다. 바닥이 카펫이 아닌 것도 좋았다. 이곳에선 코인 세탁기를 이용해 빨래와 건조도 할 수 있다. 밀린 빨래를 하고 컵라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보았던 요세미티는 전체의 십분의 일도 안될 테지만, 이곳에서 보냈던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21년 6월 26일 토요일

연수일기 83. 요세미티 여행- Mono lake, Tenaya lake, 요세미티 밸리

6월 25일 금요일. 153일째, 여행 2일째 날. 맘모스 레이크스에서 맞는 아침. 숙소에서 추천한 스토브 Stove에서 아침을 먹었다. 오믈렛과 팬케잌이 맛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다.  

첫 목적지는 모노 호수 Mono Lake 의 South Tufa 에어리어이다. 고산의 사막 지대에 있는 이 호수는 물이 모이기만 할 뿐 빠져나가는 강이 없어 증발을 통해서만 물이 줄어들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미네랄 성분 때문에 바닷물보다 2.5배 짜고 100배 더 알칼리성을 띤다고 한다. 소금과 베이킹파우더를 잔뜩 풀어놓은 셈인데, 실제 만져보니 미끈미끈하고 혀에 대니 짜고 쓴 맛이 느껴졌다. 이런 이유로 이 호수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지만, 미생물을 먹고 사는 작은 새우들이 많다. 기슭을 까맣게 메우고 있는 건 파리들인데, 이 파리를 인디언 말로 Mono라고 부른다. 호수의 이름은 이 파리의 이름을 따서 붙인 셈이다. 요세미티를 포함한 산맥이 미국 서부의 상수원 역할을 하면서 모노 호수의 수위도 줄어들어 왔는데 이로 인해 호수의 생태계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 불시착해 만난 풍경처럼 보인다.


지하수가 솟아 오르면서 만들어진 석회 기둥(tufa)들은 호수의 수위가 내려가면서 물 밖으로 드러나게 된 것으로, 거울처럼 미끈거리는 호수 물빛과 어울려 마치 외계의 어느 행성에 온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호수의 수위를 지키려는 활동 덕분에 현재는 수위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런 일이다. 새우와 파리 외에 이 호수를 서식처로 삼은 동물은 수백만 마리의 새들이다. 호숫가에서 만난 친절한 자원봉사자 덕분에 망원경으로 새를 관찰할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한 노신사 분이었는데, 알고보니 은퇴한 호흡기내과 의사였다. 아이들에겐 돋보기가 달린 통에 담긴 새우도 볼 수 있게 해주셨다. 

다음 목적지인 테나야 호수 Tenaya lake로 가는 길에 요세미티 국립공원 동문을 지나게 된다. Tioga road라 불리는 120번 도로는 봄까지 막혀있는 경우가 많아 이 길을 이용할 계획이라면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개통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지금은 요세미티 주변 도로가 다 뚫린 상태지만 국립공원 내에 들어가려면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단 우리처럼 국립공원 내 숙소를 이용하는 경우엔 공원 입장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요세미티 밸리 랏지 예약 바우처를 제시하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입장 예약을 하지 않아 입구에서 돌아가는 차량도 있었다. 

테나야 호수에 주차를 하고 호숫가 피크닉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물이 너무나 맑았다. 아이들은 금새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 속에 뛰어들었다. 호수 동쪽 기슭은 모래사장과 솔밭이라 피크닉을 하기에도 좋았다. 여러 나라 여러 도시에서 호수를 봤지만 오늘, 이곳만큼 아름다운 곳을 보지 못했다. 호수를 둘러싼 풍경이 어찌나 평화로운지 이 공간 안에 앉아있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한 시간 남짓 시간을 보냈다. 하루 종일 앉아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차에 몸을 실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 것 같다.


옴스테드 포인트에 잠깐 들러 사진을 찍고 숙소인 요세미티 밸리 랏지에 도착하니 오후 네시 경이었다. 오늘은 120마일을 운전했다. 체크인을 하고 바로 요세미티 폭포로 향했다. 밸리 랏지는 폭포 바로 옆에 있어 폭포와 밸리 안을 둘러보기 좋다. 멀리서는 upper fall을, 가까이 가니 lower fall을 볼 수 있었다. 듣던대로 폭포의 높이가 까마득했다. 여름이 되면 수량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한 달쯤 일찍 왔다면 더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쿡스 미도우 Cook’s meadow를 따라 한 바퀴 걸었다. 멀리 요세미티의 상징인 하프돔이 보였다. 아이들과 걷기 좋은 길이었다. 작은 강과 계곡 주변에는 물놀이와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래밭에서 노는 아이들 사이로 사슴 두 마리가 강을 건너 어슬렁어슬렁 지나갔다. 

쿡스 미도우에서 본 하프 돔

꼬마 친구들, 안녕!

밸리 랏지 식당에 들러 저녁을 사 숙소에 돌아왔다. 국립공원 안에 있어 낡고 고풍스러운 랏지를 상상했었는데, 밸리 랏지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식당, 카페(스타벅스도 있다), 기념품샵 등도 잘 꾸며져 있었다. 위치와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요세미티 숙소로는 역시 가장 좋은 선택일 것 같다.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쉽지 않아서 문제겠지만.


2021년 6월 25일 금요일

연수일기 82. 요세미티 여행- 로네 파인, 비숍, 맘모스 레이크스

6 24 목요일. 152일째, 여행 첫날. 아침 7시에 출발해 중간에 주유를 하고 여섯 시간 만에 이스턴 시에라 비지터 센터에 도착했다   그랜드 캐년 로드 트립 때만 해도  위에서 보는 모든 풍경에 감탄을 했었는데, 이젠 끝이 안 보이는 직선 도로도, 사막도, 산과 평원을 봐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요세미티에 들어갈  서쪽 입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우리는 120 도로(Tioga road) 통해 동쪽 입구로 들어갈 예정이다시에라 산맥 동쪽의 395 도로를 타고 산맥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120 도로를 만날 예정이다비지터 센터 앞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며 시에라 산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멀지 않은 작은 타운인 로네 파인의 ‘ 그릴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와 어니언링이 맛있었다

시에라 산맥이 멀리 보인다.

식당에 가는 길에 ‘The museum of Western Film History’ 이름의 영화 박물관이 눈에 띠었다이런 작은 도시에 웬 생뚱맞은 영화 박물관이 있을까 궁금해져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성인    5불의 도네이션을 받았다박물관 안은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았다웨스턴 무비의 배우에 대한 자료와 소품들이 가득했는데 웨인과  포드의 자료들도 한켠을 차지했다촬영에 쓰인 카메라나 도구들도   있었다 안쪽에는 아이언맨 슈트 모형과 아이언맨 1편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입었던 양복이 전시되어 있었다서부 영화 박물관과 어울리지 않는 물품들이라 의아했는데안내문을 읽어보니  영화의 전반부 장면을 앨라배마 힐스에서 찍었다고 한다앨라배마 힐스는 로네 파인 서쪽 바로 시에라 산맥 자락에 있는 마을이다바위가 많은 황량한 평원 지역이라 오래 전부터 서부 영화의 촬영 장소로 쓰였고 트랜스포머글래디에이터스타트랙  많은 헐리우드 영화들도 이곳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작은 도시에 그럴듯한 영화 박물관이 있는 이유를 이제야   같았다

토니 스타크가 입었던 수트

박물관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인 비숍으로 향했다. Epic Schat’s Bakery 100년이 넘은 빵집으로 이곳을 지나는 여행자들도 많이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호밀빵과 시나몬롤을 샀다호밀빵은 약간 새콤하고 짭짤한 맛이 독특했다. 근처 주유소에서 요세미티에 들어가기  마지막 주유를 했다

오늘 숙소는 맘모스 레이크스로, 맘모스 산에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하는 도시이다그래서인지 마을 전체가 리조트 같았다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Minaret vista 올랐다백두산보다 높은 해발 9265피트에서 주변의 경치를   있는 곳이다. 스키 곤돌라 케이블이 산 꼭대기까지 이어졌는데, 꼭대기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건 여간한 실력이 아니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전경


맘모스 레이크스에 올라오기 전엔 기온이 30도가 넘었는데 이곳 전망대에선 바람이 세서 두꺼운 겉옷이 필요했다일몰을 보고 내려갈까 생각도 했지만 기온이 차고 오랜 운전으로 피곤하기도 해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간단히 컵라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오늘은 400마일을 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