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8일 토요일

Covid-19 백신 뉴스 기사에 대한 생각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TV 뉴스를 켠다. 아이들을 깨우고 함께 아침을 먹고 등교와 출근 준비를 하며 보는 것이다. Covid-19와 백신 관련 기사는 매일 빠지지 않는다. 미국은 2억 명 접종의 마일스톤을 넘겼다. CDC 자료에 따르면 18세 이상 미국 성인의 40% 이상이 접종을 완료했고, 60% 가까이 최소 1회 접종을 받았다. 

https://covid.cdc.gov/covid-data-tracker/#vaccinations

이곳 뉴스에선 매일 백신 접종률을 보도한다. 접종 시작 이후 애초의 목표를 넘어서는 접종률을 기록하며 순항함에 따라 정부는 몇 차례 목표를 상향해왔다. Real world data 분석에서는 화이자와 모더나 2회 접종을 한 경우 90%의 예방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내에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해져 간다. 변이 바이러스와 최근 둔화된 접종 속도 때문이다. 주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존슨앤존슨 백신의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후로 접종을 꺼리는 사람이 늘어났고 2차 접종을 미루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이전보다 접종 예약도 수월해졌다. 접종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일찍 접종을 받았고 현재 남은 사람들 중에선 접종을 꺼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접종 속도가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접종을 꺼리는 현상(vaccine hesitancy)은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제일 것이나, 사회 문제가 될 정도의 안티 백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에도 '안아키'와 같은 카페가 존재하지만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소수이다.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시키지 않아 홍역과 백일해가 다시 유행했던 미국이나 유럽만큼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될 정도의 영향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안티 백서들이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들을 때면 이 나라의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 수준이나 의료 체계의 문제 등을 떠올리며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국은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선 과학과 미신을 구별할만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한국의 뉴스에선 낮은 접종률, 그리고 순조로운 접종을 위한 전략보다는 접종의 부작용을 다루는 기사가 더 눈에 띈다. 기사는 반복해 재생산되고 SNS를 통해 확산된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접종을 꺼린다.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 목적인 백신의 경우, 무엇보다 안전성이 중요한 문제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과학적 근거가 마련되었다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접종을 진행한 나라들의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백신의 이득과 위험은 빠르게 수치화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는 AZ 백신의 위험보다 이득이 훨씬 크다고 말한다. 여기서 전문가는 감염병과 백신 부작용, 그리고 공중보건 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를 말하며, 이러한 지식이 없는 의사들은 일반 대중과 큰 차이가 없다. 

접종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의료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이 이와 같은 문제를 현명하게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는 이득과 위험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골치아픈 일이며, 이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충분하고 객관적인 정보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를 전달할 의무가 있지만 이러한 의무를 다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을 보도한 어떤 기사도, AZ 백신으로 인한 혈전증의 빈도가 백만분의 일 정도이며 이로 인한 사망보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4-10배 높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기고문 참고). 과학적 근거를 담은 기사는 쓰기도 쉽지 않겠지만 독자의 흥미를 끌기도 어렵다. 이에 반해 부작용 사례에 대한 기사는 쉽게 관심을 일으킬 수 있고, 독자의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우리에겐 특정 사건이 눈에 많이 띄거나 감정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경우 해당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견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현상을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이라고 한다. 대중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객관적인 판단에 필요한 경험이나 정보가 부족할 경우 치우치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심각한 부작용만을 다룬 기사가 늘어날수록 백신 접종에 대한 판단에 부작용 사례가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실제 확률과 별개로 내가 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커진다.



이곳에서 한국의 인터넷 뉴스를 많이 보진 않지만 최근의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은 또 한 번 언론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경찰의 조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일부 기사들은 이미 옆에 있던 친구를 용의자로 단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보도가 온전히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기사들에서 백신 부작용에 대한 기사를 볼 때와 비슷한 기시감을 느낀 건 나 뿐이었을까.


2021년 5월 6일 목요일

연수일기 57. Teachers day, 중학교 수학 테스트

5월 4일 화요일. 101일째 날. Teachers day이다. 아이들이 손으로 쓴 카드와 함께 아마존 기프트 카드를 준비했다. 담임 선생님을 좋아하는 둘째는 영어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단어란 단어는 모두 카드에 쓴 것 같다. 2학년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아 곧 선생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벌써부터 아쉽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아직도 친구들과는 어색함이 남아 있지만 선생님의 밝고 유머러스한 성격 덕분에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 달 남짓 남은 학기를 아쉬워하며, 선생님은 ABC countdown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앞으로 남은 26일 동안 A부터 Z까지 알파벳 글자로 시작하는 주제의 작은 파티를 매일 여는 것이다. 여름 방학 이후 생일을 맞아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중간 중간 아이들의 가상 생일도 넣어 주셨다. 아이는 벌써부터 첫째 날인 내일, Animal day에 가져갈 동물 인형을 고르느라 신이 났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 뭘 좋아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신다. 

앞으로 남은 매일이 아이들에겐 파티날


5월 5일 수요일. 102일째 날. 오후에 아들은 Integrated Math B Honors Readiness Test (IMBHRT)를 받았다. 테스트에 대해선 얼마 전 이 글에서도 설명한 바 있다. 7학년 지원자를 대상으로 8학년 수학 과정을 들을 수 있는지 학습 능력을 확인하는 시험이다. 점수가 70% 이상이 되어야 8학년 과정을 들을 수 있다. 테스트는 구글 meet를 통해 진행되었다. 시작 시간이 되자 오늘 참여할 아이들이 화상 회의 화면에 나타났다. 20명이 채 안되는 수였고, 오늘을 포함해 총 3일 중에 선택해 참여할 수 있으니 이 테스트를 보는 아이들이 많진 않은 것 같다. 

테스트가 시작되면 부모는 함께 있을 수 없다. 시험은 1시간 45분 동안 진행되었다. 이런 정식 시험을 보는 건 처음이라 좀 긴장을 했는지 끝나는 시간이 되어 방에서 나오는데 기운이 쭉 빠져 보인다. 하지만 핸드폰 게임을 시작하고는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 낄낄거리는 녀석. 

저녁으론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스팸과 어묵을 볶고 시금치도 데쳐 단무지와 함께 넣었다. 한국에선 자주 사먹던 김밥을 여기선 만들어 먹는데, 그때마다 한국 생각이 많이 난다. 누군가 김밥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 했던가. 

한국에선 오늘이 어린이날이다. 한국에 있다면 아이들이 선물을 받았을텐데.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축하 인사와 용돈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2021년 5월 4일 화요일

연수일기 56. 펫코 파크 야구 관람

5월 3일 월요일. 100일째 날. 

샌디에고 파드리스의 홈 경기가 있는 날이다. 메이저리그는 작년엔 무관중 단축 시즌으로 운영했지만 올해는 관중 입장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야구 개막 이후 종종 경기 스케줄을 찾아보곤 했다. 티켓은 MLB 공식 제휴 업체인 ticketmaster 외에도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stubhub이나 seatgeek 등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한국과는 달리 티켓 가격은 구단마다 천차만별인데 인기 구단일 수록 가격이 비싸고, 같은 구단이라도 경기 일정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고 한다. 지난 주말에 티켓 가격을 검색했는데 마침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주중 3연전 경기 티켓이 다른 경기에 비해 저렴해 월요일 경기로 예약했다. 티켓을 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구매처로는 stubhub에 대한 추천이 많았고 경기 임박한 시간이 되면 기존 가격보다 훨씬 싸게 살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낮은 가격의 티켓은 티켓마스터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현재는 좌석에 따라 covid-19 검사 결과나 백신 접종 증명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 있는데 3층의 저렴한 좌석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다운타운은 대부분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고, 야구장 근처도 마찬가지이다. 2004년에 개장한 펫코 파크를 둘러싼 길은 내셔널리그 타격왕을 8회 수상한 Tony Gwynn과 통산 600세이브를 기록한 마무리의 전설 Trevor Hoffman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보안 검사대에서 경기장에 가방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해 주차장에 다시 돌아갔다 와야 했다. 1시간 일찍 여유있게 도착했던지라 그래도 경기 시작 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경기장 입구 안쪽 벽면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파드리스 출신 선수들의 동판 장식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토니 그윈의 동판은 앞쪽에 따로 모셨다. 경기장 시설은 훌륭했다. 한국에선 잠실, 수원 구장과 광주 챔필을 가 본 경험이 있었는데 어느 구장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라운드 안 시설은 물론이고 다양한 종류의 매점, 그라운드 밖의 다양한 볼거리들이 경기장을 찾은 관객들을 더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들


오늘 경기엔 김하성 선수가 선발로 출전했다. 지금은 주전도 아니고 성적이 뛰어나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뛰는 한국 선수를 직접 보니 뿌듯함과 흥분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2회엔 실점 위기에서 멋진 다이빙 캐치로 이닝을 끝내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관객들의 응원 열기는 한국 야구장이 훨씬 뜨겁지만, 관중석에서 직접 느낀 이곳 분위기 역시 단체 응원을 하지 않을 뿐 경기에 대한 열정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김하성 선수 타석

입장하는 길, 2층과 3층 통로에서 보이는 바다와 항구 풍경도 멋졌지만 관중석에서 보는 그라운드와 외야 바깥의 스카이라인은 정말 아름다웠다. 가장 아름다운 구장으로 손꼽히는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는 얼마나 멋질지 모르겠다. 시간이 많지 않아 경기장 내부를 꼼꼼히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다음 번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해가 지고 나니 날씨가 쌀쌀해지고 가연이가 추워해 6회가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경기 결과는 파드리스의 2:0 승리. 생각보단 아이들도 지루해하지 않고 경기장 분위기를 좋아해 다음에 또 올 수 있을 것 같다. 

연수일기 55. 해변 달리기, 신용카드 한도 문제

4월 30일 금요일. 97일째 날. 아침에 솔라나 비치를 뛰었다. 모래사장 바닥이 단단한 편이라 달리기를 하기에도 괜찮았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지 아침부터 써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해변은 세 번째 방문이고, 올 때마다 느끼지만 참 아름답다. 러닝 후엔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해변 달리기

오늘의 연구 미팅 발표 주제는 pulse wave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심혈관질환 예측 지표에 대한 것이었다. MESA 코호트를 대상으로 해당 측정 결과가 실제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반영함을 확인한 결과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진행 중인 연구와 같은 코호트를 대상으로 했던 연구라 흥미롭게 들었다. 나도 조만간 자료 정리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분석을 시작해야 한다. 


5월 1일 토요일. 98일째 날. 방학 때 가기로 했던 세콰이어 국립공원 내 패밀리 캠프 잔금을 오늘 지불해야 했다. 2월에 예약을 하면서 예약금은 한국 신용카드로 지불했었다. 한국 신용카드는 해외 결제에 수수료가 붙으므로, BOA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뒤엔 대부분의 결제 건에 이 카드를 사용해왔다. 현재 내 secured credit card의 한도는 3천불이다. 그런데 이 금액이 넘는 캠프 비용을 이 카드로 지불할 수 있을까? 신용카드 계좌에 미리 돈을 넣어 잔고(balance)를 마이너스로 맞추고 해당 결제 후에 잔고가 3천불을 넘지 않게 한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카드에 1%의 캐시백이 있으므로 이 카드로 결제를 할 수 있다면 이득이 쏠쏠하다.

일단 해당 건 결제는 가능했고 pending 상태로 넘어갔지만, 다음 날 문제가 생겼다. 식당에서 신용카드 결제가 거절되어 계좌를 확인해보니 카드를 사용한 금액이 한도인 3천불로, 사용 가능한 금액(available credit)이 0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 상태에선 카드 결제가 거절되는 것이 당연하다. 나중에 은행 직원에게 문의해 들은 이야기론 3천불 한도의 secured card라면 3천불이 넘어가는 금액 결제 건은 대개 처음부터 진행이 안된다고 한다. 은행 직원도 해당 건의 결제가 가능했던 게 이상하다며 승인이 완료될 때까지 지켜보라고 했다. 이틀 동안 묶여있던 credit은 pending 상태였던 결제 건이 승인이 되면서 다시 회복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신용카드 관련 업무는 은행 본사의 관할이므로 담당자의 재량이 중요할 것 같다. 은행과 신용카드 관련 그동안의 경험은 모아서 나중에 따로 정리해보려 한다.


5월 2일 일요일. 99일째 날. 가까운 트레일 코스에 가려 했는데 점심 때까지 비가 와서 다음으로 미뤘다. 저녁은 크랩헛 Crab Hut에서 먹었다.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고, 샌디에고에 다녀온 지인에게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샌디에고엔 크랩헛 지점이 세 군데 있다. 한인 마트에 들를 일이 있어 콘보이 지점을 선택했는데, 주차가 불편하고 매장도 작아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이곳보단 미라메사 지점이 더 편할 것 같다. 새우와 킹크랩을 주문했는데 맛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마늘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소스가 너무 짜고 자극적이어서 둘째는 많이 먹지 못했고, 첫째는 먹고 나서 속이 불편해 한동안 고생했다.  

2021년 4월 30일 금요일

연수일기 54. 샌디에고 보태닉 가든

4월 28일 수요일. 95일째 날. 아이들과 오후에 앤시니터스의 보태닉 가든에 갔다. 샌디에고에 처음 오는 관광객은 대개 발보아 공원의 보태닉 가든(Botanical building and Lily pond)을 떠올릴텐데, 이곳이 훨씬 크고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다. 평소라면 샌디에고 주민은 화요일에 무료 입장을 할 수 있지만 판데믹 재개장 이후에는 아직 무료 입장은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샌디에고와 캘리포니아의 자생종들은 물론 사막의 선인장들에서 열대의 숲까지, 허브와 꽃, 과일 나무와 대나무까지 각 대륙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식물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모험 소설의 나무 위 집을 연상시키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도 있었다. 꽃이 피는 시기라 더 그랬겠지만 한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꽃들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꽃과 나무들 사진을 찍느라 열중인 아내와는 달리 심드렁하던 아이들은 연못에서 거북이들을 만나고서야 기분이 좋아졌다. 

공들여 가꾼 꽃들

거북이 안녕!

각 지역을 테마로 한 정원들 사이로 걷기 좋은 길이 이어져 있어 아이들과 걷기에도 좋았다. 두 시간 정도 보태닉 가든을 둘러보고 딸아이 수영복을 사러 칼스배드 아울렛에 들렀다. 이웃해 있는 플라워필드의 꽃밭이 아울렛 안에서도 보였다. 봄이 되면 플라워필드에도 가보려고 했는데, 우리 가족에겐 나들이 장소로 오늘 갔던 보태닉 가든보단 못할 것 같다.  

어제 백신 접종 때문인지 하루 내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전엔 집에서 쉬어야 했다. 열은 없었지만 근육통과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다행히 타이레놀을 먹고 좀 나아져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컨디션은 밤이 되어서야 회복이 되었다. 

오늘은 아들의 생일이다. 아침에 아내가 미역국을 끓였다. 저녁엔 아이가 좋아하는 초코 케잌에 불을 붙였다. 에어팟을 갖고 싶다고 했는데 얼마 전 코스트코에 갔을 때 마침 세일을 하고 있어서 생일 선물로 샀다. 한국에서라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파자마 파티도 했을텐데. 고학년 아이들 반에선 생일을 먼저 축하해주진 않는 것 같고, 따로 친구들에게 생일을 알리기도 애매하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을 못내 서운해하는 눈치라 마음에 걸렸다.  


4월 29일 목요일. 96일째 날. 저녁에 아파트 리싱 오피스 앞으로 타코 푸드트럭이 왔다. 며칠 전부터 아파트 뉴스레터를 통해 홍보를 해서 먹어봐야겠다 생각했었다. 매일매일 힘들게 삼시세끼를 찍고 있어서 끼니를 해결할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색다른 경험이긴 했지만 음식 맛은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려웠다. 오히려 Rubio's taco 체인이 왜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된 셈이다. 

2021년 4월 28일 수요일

연수일기 53. Covid-19 백신 2차 접종

4월 26일 월요일. 93일째 날. 아내가 두 번째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서 탈락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공교롭게 시험 도중에 굵어졌고, 도로 갓길에 세워 후진을 하는 과정에서 비 때문에 사이드 미러가 잘 보이지 않아 핸들을 여러 번 양쪽으로 돌렸는데 fail로 체크되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다시 실기 시험 예약을 했다. 두 번째 불합격이라 아내의 상심이 컸다.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고 우리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 지장을 주는 일도 아닌데. 그래도 속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텍사스 레인저스에 스플릿 계약을 했던 양현종 선수가 메이저리그 경기에 데뷔했다. 그동안 원정 경기마다 택시 스쿼드로 동행을 해서 조만간 콜업을 기대하긴 했는데, 올라오자마자 당일 경기에 등판할 줄은 몰랐다. 결과는 4.1이닝 5피안타 2실점. 실시간으로 경기를 볼 수는 없었지만 게시판을 통한 소식과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흐뭇했다. 

이젠 진짜 메이저리거

4월 27일 화요일. 94일째 날. covid-19 백신 2차 접종을 받았다. 15일부터 접종 대상이 모든 성인으로 확대되어서인지 지난 번보다 대기 인원이 많았다. 주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존슨앤존슨 백신의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후로 접종을 꺼리는 사람이 늘어났고, 2차 접종을 미루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이전보다 접종 예약도 수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억 명 접종의 마일스톤을 넘겼다. 

접종 장소 바깥까지 길게 늘어선 대기 줄

접종을 꺼리는 현상(vaccine hesitancy)은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제일 것이나, 이전에는 한국은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선 상식과 과학을 받아들이는 의견이 대다수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이곳 뉴스에선 매일 경주를 다루듯 백신 접종률을 보도하고 접종을 권한다. 한국에는 접종을 독려하기보단 접종의 부작용을 다루는 뉴스가 더 많아 보인다. 백신의 안전성은 물론 중요한 문제이고 철저한 확인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체계와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의 언론 보도 과정은 이 기본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뉴스들은 다시 재생산되고 SNS 등을 통해 확산된다. AZ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는 이득이 위험을 훨씬 상회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실제 많은 사람들이 편향된 뉴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백신 접종을 꺼리는 의료진이 많다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의료진의 백신에 대한 태도는 다른 직군에 비해 일반 대중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내 직장에서도 상당 수의 의사들이 아스트라제네카 1차 접종을 맞지 않았다고 했다. 

접종 장소 출구에 걸린 축하 장식

오후가 되니 지난 번과 같이 접종 부위의 통증이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다. 2차 접종 부작용이 더 심하다고 하는데 큰 불편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2021년 4월 27일 화요일

연수일기 52. 뉴스 이야기, 총격 사건

4월 24일 토요일. 91일째 날. 특별한 계획이 없는 주말이다. 3주 연속 주말에 여행지에 있다 보니 아이들도 집에서 쉬고싶어 했다. 

한국에선 집에 TV가 없었지만 이곳에선 아침에 일어나면 TV를 켠다. 아이들을 깨우고 함께 아침을 먹고 등교와 출근 준비를 하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 주로 ABC뉴스 클립을 배경 음악처럼 틀어둔다. 리스닝에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실제론 영어보단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여론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최근 클립의 절반 정도는 covid-19와 백신 관련 기사이다. CDC 발표에 따르면 22일 기준 미국의 18세 이상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접종을 완료했고, 50% 이상이 최소 1회 접종을 받았다. Real world data 분석에서 화이자와 모더나 2회 접종을 한 경우 90%의 예방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작년에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기사도 재판이 진행되면서 매일 한두 꼭지 방송된다. 뉴스를 통해 며칠 전 피고인 전직 경찰이 유죄 평결을 받은 것도 알게 되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시위대의 구호가 된 "Black Lives Matter" 문구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창문에 걸린 이 구호를 볼 수 있다. 경찰에 의한 사망 뉴스는 끊이지 않는다. 당장 지난 달에도 시카고에서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이인 13세 소년이, 이번 달엔 미네소타에서 20대 청년이 경찰의 총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총격 사건은 더 흔한 뉴스이다. 입국 후 세 달 동안 뉴스에서 본 여러 사람이 사망한 총격만 해도 대여섯 건은 되는 것 같다. 위키피디아에 2021년에 발생한 mass shooting 리스트가 정리되어 있는데, 오늘까지 126건이 발생했고 142명이 사망했다. 총격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날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mass_shootings_in_the_United_States_in_2021

이틀 전엔 샌디에고 다운타운의 가슬램프쿼터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져 한 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쳤다. 이 뉴스는 샌디에고가 총격 사건에서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지난 달에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던 레스토랑에서 겨우 한 블럭 떨어진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총기 소유를 규제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수정헌법 2조와 미국의 역사, 연방제 정치 제도와 인종 갈등에까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라 이곳에서 오래 살아오지 않은 이방인 입장에선 의견을 정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곳에서 총기 사고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고, 나와 가족도 총격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은 항상 존재한다. 어제 아이들을 데리고 올드타운과 사람들이 많이 모인 레스토랑에 갔을 때도 문득 총격 사건이 떠올랐다. 일상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슬픈 일이다.

2021년 mass shooting map. 전체 총기 사고로 확대하면 훨씬 많다.

H 선생님 가족과 아파트 바베큐장에서 저녁을 먹었다. 바베큐장 옆에 파이어링이 있어 분위기가 괜찮다. 오전 내내 날씨가 흐려 쌀쌀했는데 오후엔 해가 나서 다행이었다. 


4월 25일 일요일. 92일째 날. 아마존에 주문했던 해먹이 어제 도착해 파티오에 설치하고 늦은 브런치를 먹었다. 한국에선 캠핑을 가서 설치해 아이들과 놀곤 했다. 가연이가 특히 좋아해 하루 종일 해먹에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2021년 4월 26일 월요일

불확실의 바다 위를 걷는 법

환자와의 진료실 대화 주제는 처음 병원을 찾은 직접적인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사, 자녀의 유학, 가족의 사망과 같은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이 될 수도 있고, 최근에 새로 생긴 건강 문제일 때도 있다. 만남이 반복되면서 대화의 주제는 다양해지고 그럴수록 환자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그 과정은 대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며, 평탄한 길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만족감과 무력감, 생명을 다루는 보람과 그 책임으로 인한 부담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난기류 가득한 복잡계의 항로와 같다.

50대의 그녀가 처음 진료실을 찾은 건 고혈압 때문이었다. 그녀는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는 환자였고 혈압 조절도 잘 되는 편이어서 서너 달에 한 번 오는 진료 시간은 대개 특별한 변화 여부만 확인하는 걸로 이루어졌다. 작년에는 폐경기 증상이 찾아와 힘들어하기도 했다. 나는 걷기 운동을 권했고, 그녀는 그 처방 역시 충실히 따랐다. 남편과 함께 동네의 둘레길을 걸으면서 불편했던 증상도 차차 누그러졌다. 딸에 대해 알게 된 건 그녀에게 갑자기 생긴 비염 증상 때문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원인이었다. 딸이 키우던 고양이인데 유학을 가면서 다른 곳에 보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려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동물이라면 질색이었고 고양이를 떼어 놓으면 해결될 증상이었지만, 이젠 정이 들어버려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연신 재채기를 했는데, 이후 그녀와 고양이 사이의 문제는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외래 진료 전날엔 다음 날 예약된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미리 살펴본다. 그날도 다음 날 예약된 환자들의 기록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익숙한 그녀의 이름과 며칠 전에 시행한 혈액 검사 결과가 눈에 띄었다.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 수치가 정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졸음으로 무겁던 눈꺼풀이 번쩍 뜨였다. 이 결과 만으로 결론을 내리긴 어려웠지만, 악성 혈액 질환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나는 그녀의 과거 혈액 검사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몇 달 전의 검사 결과엔 가벼운 빈혈 소견 만이 있었고, 다음 진료 때 변화를 확인하는 것으로 계획했었다. 그 재검 결과가 이번 수치였다.

진료 시간에 맞춰 찾아온 그녀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그녀에겐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 혈액 검사 결과는 그녀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정확한 병명을 말하긴 이른 상황이었다. 혈구 세포들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며 이유에 대한 확인을 해야 한다고, 다시 검사가 필요하며 골수 검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약간 놀란 듯 했지만 추가적인 검사를 위해서 혈액 내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권유에 순순히 따랐다. 진료실 밖에서 대기 중인 환자 수를 어림하며 신속하게 말을 이어가는 동안, 나는 만약 몇 달 전 발견한 빈혈의 원인을 그때 바로 찾았다면 어땠을지를 생각했다. 

한 달 뒤, 진료 예약자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다. 원래 예약된 일정보다 이른 날짜였다. 그동안의 진료 기록을 확인했다. 골수 검사 결과는 급성 백혈병이었다. 그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빠른 항암 치료였고,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지금 그녀가 나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이 무거웠다.

그녀는 현재 상태에 대해 내게 한 번 더 설명을 듣길 원했다. 대부분의 의사는 자신이 직접 치료 중인 문제가 아니라면 환자의 상태나 치료 방침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만큼 알기 어렵고, 해당 분야의 전문의가 아니라면 부정확한 정보로 괜한 혼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대개 환자가 원하는 정보의 수준은 높지 않으며, 보편적인 지식을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녀와 같은 환자들이 받는 치료에 대한 내 설명을 묵묵히 듣던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께 진료도 꼬박꼬박 받았는데, 왜 더 일찍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항상 담담하던 그녀의 말투는 떨렸고, 나는 그 뒤에 담긴 후회와 원망을 느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마치 이전 검사 결과에서 보였던 빈혈을 왜 그냥 지나쳤는지를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가벼운 빈혈이 있는 중년 여성에서 백혈병이 발견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빈혈의 원인을 빈도 순으로 나열한다면 급성 백혈병은 한참 뒤에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 추가적인 검사를 했다 해도 바로 진단이 가능했을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만약 그때 진단이 되었다면, 몇 개월의 차이가 미치는 영향은 과연 없었을까. 이것 역시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몇 달 뒤 그녀를 다시 진료실에서 만났다. 지난 번보다 표정이 밝았다. 항암 치료 결과가 좋았고, 앞으로도 치료가 남아있지만 골수 이식 없이 항암 치료 만으로 완치가 될 수도 있을 거라 들었다고 했다. 환자의 경과는 그동안의 진료 기록으로 대략 알고 있었지만, 편안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직접 대하니 나도 더 기뻤다. 

"항암 치료를 받을 땐 참 힘들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제때 발견해 치료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래도 운이 좋은가 보네요. 선생님께 감사하단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행운에 감사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였을지도 모른다. 진료실에서의 일상이란 불확실의 바다 위를 건너는 줄타기와 같다고 종종 생각한다. 교과서를 통해 얻은 지식은 환자 개개인에 대해선 정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불확실은 도처에 존재한다. 의사인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저 최선을 다해야 할 뿐이다. 그 가운데서 의사도 환자와 마찬가지로 불안해 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통해 의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을 믿는다. 그 믿음을 발판 삼아 나는 오늘도 불확실의 바다 위를 걷는다. 

2021년 4월 25일 일요일

연수일기 51. 기타 구입, 올드타운 마켓

4월 22일 목요일. 89일째 날. 오늘도 오전 내내 비가 왔고 오후에도 하늘이 흐렸다. C 선생님, L 선생님과 점심을 먹었다. 세 명 다 같은 시기에 UCSD로 연수를 왔고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어쩌다보니 이제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세 집 다 두 명의 아이들이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런데 입국 초기 아이들의 학교를 정하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은 가장 가까운 학교를 배정받았지만 이후에 정원이 차서 다른 두 집의 아이들은 각각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다. 다른 학교라 해도 자동차로 가면 기껏해야 5분 정도 차이가 날 뿐이지만. 조만간 아파트 바베큐장에서 다시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4월 23일 금요일. 90일째 날. 어쿠스틱 기타를 샀다. 기타에서 아예 손을 뗀지 십여 년은 되었다. 연수를 가면 꼭 기타를 사서 다시 연습해보겠다 생각했고, 연수를 떠나기 전 두세 달 동안 집 근처 기타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구입이 좀 늦었다. 기타를 산 건 거의 이십 년 만이다. 요즘 기타 브랜드나 모델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악기점 직원의 권유에 맞춰 Eastman PCH1-D 모델을 선택했다. 한국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모델이지만 이곳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입문용으로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이제 연습만 하면 된다...

저녁을 먹기 전 올드타운에 들렀다. 이곳이 예전엔 멕시코 영토였음을 상기할 수 있을만한 곳이다. 고작 200년 전만 해도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국 서남부 전체가 멕시코 땅이었다는 것과 그 땅이 미국 국경 안으로 들어오게 된 과정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옛날 서부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한 분위기의 건물들과 남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멕시코 고유 명절인 망자의 날을 기념하는 해골 마그넷을 샀다. 영화 코코 때문인지 해골을 소재로 한 기념품이 많았다. 

저녁은 필즈 BBQ에서 먹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선 샌디에고 맛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거리두기로 좌석을 줄여서 운영하는 듯 했다. 평소에도 대기를 해야 입장 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들어서 더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닐지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듣던대로 기본 메뉴인 폭립과 사이드 메뉴의 양이 하나같이 많았다. 양념이 좀 과하긴 했지만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아이들도 잘 먹었다. 


2021년 4월 22일 목요일

연수일기 50. 중학교 선택 과목과 시험 등록

4월 19일 월요일. 86일째 날. 아침에 공원에서 러닝 후 아파트 풀 사이드의 캐노피에서 글을 썼다.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지면서 아파트 클럽하우스도 문을 열었다. 내부를 돌아보는데 어느 한국 분이 작년에 이사 온 이후로 클럽하우스가 계속 닫혀 있었기 때문에 이제야 처음 들어와 본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가족은 아직 3개월이 채 안되었으니 사정이 나은 편이라 해야 하나. 오후엔 딸아이와 친구들이 클럽하우스에서 놀았다. 포켓볼 당구대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가끔 이곳에서 일을 해도 좋을 것 같다. 


4월 20일 화요일. 87일째 날. 아들의 중학교 수학 과정을 정하기 위한 시험을 등록했다. 학군에 따라 6학년부터 중학교 과정에 들어가는 곳도 있고, 여기와 같이 7학년부터 중학교 과정인 곳도 있다. 입학에 필요한 서류는 한 달 전에 보냈었다. 7학년은 총 여섯 과목의 수업을 듣는다. 수학, 영어, 세계사, 과학, 체육의 다섯 과목이 필수이고, 이 학교의 경우 미술, 보컬 트레이닝, 밴드, 오케스트라, 리더쉽, 교지 편집, STEM, 스페인어 중 한 과목을 추가로 선택할 수 있다. 선택 과목들 중 우선 순위를 정하는데 아이가 한국에서 첼로를 배웠던 경험이 있어서 오케스트라를 첫 번째 순위로 선택했다.

7학년 과목 선택 서류
 

중학교 영어와 수학은 학생의 수준에 따라 적절한 단계를 선택하도록 한다. 수학 과정은 Integrated Math A와 B로 나뉘어지고, 각 level은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자신에게 적합한 과정을 선택하는데, 7학년은 기본적으로 Math A 과정 세 단계(A Essentials - A - A Honors)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중학교 학군 교육청에서 시행하는 수학 진단 능력 평가 결과를 참고해 결정할 수 있다. 나중에 우편으로 도착한 테스트 결과를 보니 Math A Honors 단계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이 결과에 따라 추후 입학 전에 단계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준다. 

Mathematics Diagnostic Testing Project Score
 

7학년이지만 8학년 과정인 Integrated Math B Honors를 들을 수도 있다. 대신 이를 선택하려면 Integrated Math B Honors Readiness Test (IMBHRT) 점수가 70% 이상이어야 한다. 이 테스트는 신청한 학생들 만을 대상으로 따로 시행하며, 5월에 온라인으로 예정되어 있다. 학교에서 받은 예시 문제가 담긴 자료를 살펴보니 8학년 과정도 괜찮을 것 같아 테스트에 등록해보기로 했다. 결국 7학년 수학 한 과목만 해도 학생의 수준에 따라 네 단계로 나누어 배우게 되는 것이다. 교과목 선택 과정을 전반적으로 경험해보니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맞춤식 교육을 제공하는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테스트는 교육의 결과가 아닌, 적절한 교육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한국에선 이런 방식의 시험을 보지 않는다.  

아파트 근처 쇼핑몰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 쇼핑몰에도 식당이 몇 개 있는데 지난 달에 브런치를 먹었던 곳 외에 두 번째 식당이다. 화요일 저녁은 피자 데이라 피자 하나를 시키면 같은 피자를 하나 더 받을 수 있다. 나이 지긋한 중년 직원의 서빙이 마음에 들었고, 음식 맛도 괜찮았다. 앞으로 종종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식사 후 아들이 농구 수업에 참여하는 동안 딸아이와 공원 놀이터에서 놀았다. 저녁 날씨가 꽤 쌀쌀했다.


4월 21일 수요일. 88일째 날. 오전에 비가 와서 Gym에서 운동했다. 4월 말인데 흐린 날엔 아직도 쌀쌀하다. 그동안엔 서울보다 이곳 기온이 줄곧 높았지만 이제 서울 기온이 더 따뜻한 날도 있다. 서울은 벌써 초여름 날씨라고 한다.

다음 주 아내의 운전면허 실기 시험을 대비해 아내가 운전을 해 클레어몬트 DMV 근처를 돌아보았다.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 번엔 처음이라 긴장한 티를 너무 많이 냈었던 것 같다. 시험을 보았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감독관에 따라 규칙을 깐깐하게 적용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여기서도 운전은 주로 내가 맡아왔지만, 시험 전까지는 되도록 아내가 운전을 하기로 했다. 이번 시험은 큰 실수 없이 잘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