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수요일. 11일째 날. 입국하고 만 열흘이 지났다. 매달 첫 주에 있는 방문 학자와 유학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물론 온라인으로. 살림이 들어오지 않아 휑한 방에 앉아 밥솥 박스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멀뚱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오리엔테이션 끝무렵에 cultural adjustment를 위한 팁을 알려주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 뿐 아니라 살면서 겪는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을 듯 하다.
이케아에서 첫째 아이 방에 넣을 탁자와 식탁 의자, 샤워 커튼을 샀다. 열흘 동안 이케아는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앞으로도 몇 차례 더 오게 될 것 같다. H 마트에서 김치와 식재료를 사고 뚜레쥬르에서 식빵을 샀다. 입국하고 주유를 처음으로 했다. 예전에 하와이에서 렌트카 주유를 했을 때도 한국과 주유기 지불 시스템이 달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얼마 전 만든 데빗 카드를 사용해서인지 중간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이곳에서는 생활하면서 겪는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걸림돌을 만나곤 한다.
아이들 학교에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학교에 나갈 수 있다는 반가운 메일이 도착했다. 첫째는 6학년, 둘째는 2학년이고 교실과 선생님도 정해졌다. 다음 주부턴 조금 더 일상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2월 4일 목요일. 12일째 날. 아침에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고 트레이더 조에서 간단히 장을 보았다.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쇼핑몰이 있는 건 앞으로 살면서 큰 장점이 될 것 같다. 오후에는 다음 주부터 아이들이 갈 학교를 둘러보았다. 단층으로 된 학교 건물이 예쁘고 햇볕이 잘 드는 내부도 널찍하다. 첫째는 등교 후 영어로 대화를 해야할 것에 대한 걱정으로 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고, 둘째는 학교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학교 로비 모습 |
아들은 학교 구경을 하고 온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우리 반에도 한국인이 한 명 있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오늘 학교에 가서 영어를 못해서 느끼는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수업이 끝난 뒤라 학교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학교 안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컸고 운동장 역시 한국과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건물이 세련되진 않았지만 아주 예뻤다. 중앙 광장 같은 곳도 있었고 도서관도 있었다.
청소부 아저씨게 길을 물어서 교실을 찾았다. 사람들이 항상 먼저 도와주려고 하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 내 반 교실을 찾아 갔는데 옆 반 선생님께서 나와서 뭘 찾고있냐고 물으셨다. 옆 반 선생님이지만 가끔씩 내 반으로 와서 수업을 하신다고 한다. 선생님이 공감하는 태도로 친절하게 말씀해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덕분에 불안감이 많이 줄었던 것 같다. 친절한 선생님이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어른들 말에 믿음도 좀 생겼다.
얼핏 보니까 교실에 의자가 열 개 정도 있던데 학생 수가 아주 적나보다."
2월 5일 금요일. 13일째 날. 아파트 바베큐장에서 H 선생님 가족과 점심을 먹었다. 지난 주에 이어 두 번째로 함께 하는 식사이다. 가스 화로가 처음 써보는 방식이라 혼자였다면 불을 붙이는 데에도 애를 먹었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생활 팁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게 당분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오후에 아이들은 제각각 시간을 보냈다. 아직 아이들 방 가구가 들어오질 않아 거실의 임시 탁자에 모여있게 되지만, 각자의 일을 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둘째는 다음 주에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줄 발렌타인 카드를 열심히 만들었다. 아파트 우편함 안 이름표도 함께 만들어 붙였다. 이런 소소한 일상은 추억이 되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