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0일 화요일

개학날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이었다.

방학 내내 늦잠을 자는데 익숙해졌던 아들은 한 시간 먼저 일어나 잠이 덜깬 얼굴로 식탁에 앉았다. 밥알을 한알한알 세듯 입을 오물거리던 아이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아빠. 근데 왜 오늘은 늦게 출근해?"
"오늘은 아침에 진료가 없어. 개학날이기도 해서, 너랑 같이 나가려구."
"그렇구나."

심드렁하게 대답한 아이는 숟가락으로 밥공기를 뒤적거렸다.

남자 아이의 등교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를 닦고, 까치집이 생긴 머리칼에 물을 묻혀 가라앉히고, 허물을 벗었다가 새 껍질을 쓰듯 옷 속으로 몸을 집어넣고, 두터운 자켓을 입고, 가방을 메고 현관에 서기까진 십분 정도면 충분했다.

영하 십도를 훌쩍 넘는 아침 날씨였다. 며칠째 한파였으므로 단단히 채비를 하고 나왔지만 코끝이 시렸다.

"아빠가 하나 들어줄게."

개학날이라 들고갈 준비물과 과제가 많았다. 양손에 든 가방 중 하나를 선뜻 건네지 않고 망설이던 아이는 머뭇거리며 로봇영재 수업 가방을 내밀었다.

학교까진 오 분이 채 안되는 거리이다. 어제까지와 달리 아파트단지 내 인도는 학교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약간의 흥분과 소란스러움이 섞인 공기가 볼을 간질였다. 딱 하루 차이인데 아침 풍경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새로 출현한 포켓몬에 대해 이야기하던 아이는 학교가 가까워지면서 불편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빠, 이제 그 가방 나한테 줘."
"왜, 얼마 안남았잖아. 그냥 아빠가 들어주고 싶어서 그래."
"아이참. 내가 들 수 있어. 그냥 줘."

녀석은 아빠와 나란히 등교를 하는게 부끄러운 눈치였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결국 녀석이 이겼다. 가방을 건네받아 양손에 짐을 든 아이가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아빠, 나 간다."

녀석은 재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 재잘대는 아이들 틈에 끼어 학교 후문 안으로 사라졌다. 한번쯤 뒤돌아 손을 흔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그사이 아빠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 것 같았다.

2017년 9월 1일 금요일

가정의학교실 20주년을 축하하면서

전공의 근무를 시작한 게 2003년이니 14년이 지났습니다. 의대를 다니면서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을 이웃처럼 돌보는 동네 의원의 원장이 되겠다는 바램을 가졌었고, 가정의학과를 선택한 것도 개원의가 되기에 가장 적당한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가정의학과는 개원의가 되기 위한 경험을 쌓고 마음가짐을 준비하기에 딱 맞는 곳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내 환자가 호소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의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어찌 보면 오만한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때는 분만이나 수술까지도 척척 해냈다는 선배들의 무용담스러운 일화를 들으면서 좀더 일찍 의사 생활을 하지 못했던 걸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동네 의원이 아닌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기도 하지만, 설사 오래 전 바램처럼 동네 의원을 차린다 해도 내가 그런 의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제3세계 오지 마을이라면 모를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한 명의 의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의학의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한 명의 의사가 의학 전반에 걸쳐 발전하는 학문과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고 소화해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환자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둘째치고 내 전공에 해당하는 문제만 해결하기에도 버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문제를 직접 책임지기 어려운 것도 이유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특정 과의 전문의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현실에선 내 전공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깊이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문제를 담당하는 다른 전문의에게 맡기면 그만입니다.
의료는 점점 전문화, 세분화 되어갑니다. 이러한 흐름이 의학의 발전에 일조했음은 사실이지만 전문화, 세분화된 의료는 파편화, 개별화로 인한 부작용을 동반합니다. 부작용은 온전히 환자들의 몫입니다. 내과에도 순환기, 호흡기, 소화기 등 여러 개의 분과가 있고 소화기내과에도 위장, 간, 췌장을 보는 의사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종합병원에서 웬만한 경험이 없는 환자라면 길을 잃고 헤메기 십상입니다. 종합병원의 의사가 이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대개는 해당 과의 질병이 아니란 뜻이며, 당신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환자는 어렵게 찾아간 진료실을 나와 막막한 심정으로 다시 다른 과 의사를 찾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내 건강 문제를 잘 알고 있는 단골 의사가 있어 그와 상의한다면 애초에 병원을 찾아 맴도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전문화, 세분화 되어가는 의료 환경에서 환자의 다양한 증상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고 적절한 지침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더욱 필요한 이유입니다.
동네 의사로 환자를 보며 의원을 꾸려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렵다고 합니다. 유명무실한 의료 전달 체계 아래 대형 종합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은 심해져 갑니다.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여전히 가정의학과 수련의 목표이지만, 가정의학을 전공하는 후배들은 이전만큼 동네 의사를 꿈꾸지 않습니다. 일차 의료가 위기에 빠진 것이 모두 가정의학과의 책임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차 의료를 떼어놓고 가정의학과의 역할과 미래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함은 자명합니다. 이를 위해선 미래에 대한 통찰과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일찍부터 이러한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노력해오신 선후배들께는 어줍잖은 제언이 된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일차 의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을 이끌어 갈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십여 년 전의 바램처럼 언젠가 동네 의원의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는 상상을 하며, 환자의 단골 주치의 역할을 하는 선생님들이 좀더 뿌듯함을 느끼는 환경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7.8.

포켓몬 인형 뽑기

툭, 하고 인형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집게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려있던 파이리 인형이 구멍 속으로 떨어진 뒤였다. 떨어졌다기 보다는 빨려들어간 것 같았다.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아이는 눈이 동그래져 나를 쳐다보았다. 파이리 인형을 손에 든 아이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지만, 나는 순간 뒷골이 싸늘해짐을 느꼈다. 아니나다를까, 엄마와 함께 이상해씨가 가득 들어있는 기계 앞에 딱 달라붙어 있던 둘째가 오빠의 손에 들려있는 파이리 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뿔싸. 
몇 달 전 일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쳤다.

육 개월 전, 아이들과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에 들렀던 아울렛 매장에서의 일이었다. 식당 입구에 포켓몬 인형 뽑기 기계가 두 대 있었다. 한 번 뽑아볼까?
아내가 매장을 둘러보러 간 사이 무료함을 달래보고자 아이들에게 제안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만원에 열 두판. 이브이 인형을 목표로 삼았지만 무심한 집게는 인형 얼굴을 긁기만 하거나 어렵게 잡아올렸다가도 힘없이 떨어뜨리길 반복할 뿐이었다. 오 분도 안되는 시간에 만원을 날린 뒤 깨끗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첫째는 아쉬운 얼굴로 돌아섰지만 문제는 뽑기 기계 앞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딸이었다. 딸아이는 이브이 인형과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이 기계에서는 돈을 더 써도 뽑을 수가 없고, 기계 안의 인형은 따로 살 수도 없다고 되풀이해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인터넷으로 사주겠다고, 바로 주문해 주겠다고 해도 통하지 않았다.
- 이브이~ 이브이~
- 인터넷으로 산 거는 지금 안오잖아~ 엉엉
인형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땅바닥에 철퍽 주저앉아 우는 아이를 달래다 결국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나도 함께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곁눈질을 하며 수군거렸다. 결국 쇼핑은 시작도 못하고 그냥 서울로 돌아왔고, 그 뒤로도 주문했던 이브이 인형이 도착할 때까지 이틀을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오늘 신천역 인형 뽑기 방에서도 그때와 같은 일이 반복되진 않을까. 나는 빠르게 딸아이의 눈치를 살폈고, 오빠를 원망스럽게 보는 딸아이의 눈망울 속에서 짧은 순간 동공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일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상해씨가 든 기계로 다가가 지폐를 넣고 스틱을 움직였다. 몇 차례 시도했지만 아까와 같은 행운은 따르지 않았고, 기계 안을 살펴보니 한 마리의 인형 탈출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최대한 태연하고 쿨하게 행동해야 했다.

- 이상해씨는 오늘 안되겠다.

뒤돌아선 아빠의 말에 딸아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잔뜩 긴장을 했지만 이번엔 소리를 지르거나 떼를 쓰진 않았고 이상해씨를 목놓아 부르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서럽게 울 뿐이었다. 겨우 육 개월만에 생긴 엄.청.난. 변화였다. 나는 아내와 눈짓을 교환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이리 인형을 안고 촐싹대는 첫째에게 눈을 부라리며 딸아이를 안고 토닥이자 아이는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눈물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 아빠, 이상해씨는 언제 와?




2017년 3월 22일 수요일

심장 질환이 없는 분들은 오메가-3 드시지 마세요.

미국심장학회에서 최근 오메가-3 보충제의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2002년 이후 15년만에 업데이트 된 관련 보고이며, 이후 발표된 무작위대조임상연구 결과를 근거로 합니다. 
아래는 관련 기사 링크입니다.AHA, "오메가3 심혈관질환 일차예방 효과 없다"일반인에서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 있다는 근거 부족…이차예방에서는 효과 있어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867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상을 다음과 같이 나누었을 때
1) 건강한 일반인의 경우 
2) 당뇨병 환자나 심혈관질환 위험 요인을 많이 가진 환자 
3) 관상동맥질환이 이미 있는 환자
4) 심부전 환자
1, 2번은 심장 질환이 없는 사람이므로 일차 예방에 속하며, 3, 4번은 질환이 이미 있는 환자이므로 이차 예방에 속합니다. 
결론은, 일차 예방(1, 2번)의 경우 효과가 없고 이차 예방(3, 4번)의 경우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적인 변화는 2)번에 있습니다. 
당뇨병 환자나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은 환자들의 경우, 오메가-3 복용으로 예방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과거 지침에는 그러한 뉘앙스의 언급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오메가-3 보충제 시장이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커지는데 일조를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러 연구들에서 이러한 환자들의 경우에서도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가 없다고 보고되었고, 이번 보고서에 반영된 것입니다. 


그러니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환자분들 오메가-3 사드시지 마세요. 이미 심근경색을 앓으신 분들은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여지가 있으니 의사와 상의해 결정하시면 됩니다.


추가로, 오메가-3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고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효과 없으니 역시 사드시지 마세요. 콜레스테롤이 아닌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는데는 효과가 있으니 중성지방이 많이 높은 분들도 의사와 상의해 결정하시면 됩니다. 


아래는 미국심장학회 보고서의 권고 내용입니다. 



2017년 3월 21일 화요일

TV, 그리고 Back to the Future

3년 전 쯤 거실의 평면TV가 고장난 뒤 TV를 새로 사지 않았다. 사실 난 TV 보는 걸 좋아한다. 그냥 좋아한다가 아니라 매우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없이 살기로 한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학령 전 아이들에게 TV가 유익한 물건이 아니라는 증거는 도처에 널려있다. 
2년 전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생각했다. TV는 못 봐도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니터는 있어야겠다. 내친김에 결혼 전 혼자 살 때 그랬던 것처럼 프로젝터를 이용한 홈씨어터 시스템을 꾸미기로 했다.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달고 2인용 소파를 구입했다. 그렇게 해 서재는 작은 영화감상실이 되었다. 
하지만 이 그럴듯한 영상 기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생각해 TV를 없앴지만 지금도 아이들은 거의 매일 TV를 본다. 서재의 프로젝터에 물려둔 IPTV 때문이다. 그래도 리모컨 버튼을 한 번 누르는 단순한 행동에 비해 스크린을 내리고 프로젝터와 앰프와 셋톱박스의 전원을 각각 켜는 작업은 꽤 수고로운 일이고, 이러한 수고로움은 시청에 제한을 두는데도 도움이 된다. 평일은 20분짜리 만화 2개, 토요일은 3개, 일요일은 4개씩. 어렸을 적 평일 저녁이면 개구리 왕눈이나 모래요정 바람돌이를, 일요일 아침이면 은하철도999나 천년여왕을 봤던걸 생각하면 그때보다 스크린 앞에 노출되는 시간은 더 길지만 그럭저럭 무난한 규칙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훨씬 복잡한 세상이고 바야흐로 조기 교육이 대세인 시대 아닌가. 
주말에 내키면 극장용 만화를 보기도 했다.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 스튜디오와 미야자키하야오를 비롯해 웬만한 개봉 애니메이션은 다 섭렵했다. 언젠가부턴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주말이면 오늘은 뭘 볼까 뒤적이는게 일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볼 영화를 고를 때 부딪히는 문제는 더빙이 된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IPTV에 더빙판이 있는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오래된 작품의 경우 종종 더빙판이 없고 아예 작품 자체를 찾을 수 없을 때도 많다. 이럴 때면 어둠의 경로를 따라 뒤지기도 하는데, 요즘은 그나마도 아이템이 동났다. 그런데도 아들 녀석은 으레 주말 저녁이면 영화를 볼 수 있겠거니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나다를까 이번 일요일에도 묻는다. 
"아빠, 오늘 저녁엔 뭐 볼까?" 
최근엔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를 선택하기도 했는데, 해리포터는 시리즈가 진행되며 성인이 되어가는 주인공들과 부활해가는 볼드모트의 어두운 기운을 따라가기 버거웠던지 당분간 거부한 상태이고 최근에 본 드래곤이 나오는 영화는 심심한 스토리와 구성에 영 반응이 좋지 않았던 터다. 다른 적당한 영화가 없을까 DVD 목록을 살펴보다가 갑작스레 떠오른 것이 백투더퓨쳐였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이야기라 소개하니 아들도 솔깃해하는 눈치이다. 

이 영화는 내 유년을 지배했던 영화들 중 하나였다. 영화가 개봉한 것이 1987년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가장 많이 되풀이해 본 영화일 것이다. 영화의 첫머리에서 커다란 스피커를 앞에 두고 기타를 멘 마티를 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마티가 드로리안을 타고 30년을 거슬러가는 장면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난 그만큼의 시간을 거슬러 가 있게 될 것임을.
막상 영화는 시작되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깨알같은 복선은 둘째치고 영화의 스토리만이라도 이해할까 싶었다. 하지만 아들은 이내 영화에 빠져들어 꼼짝도 않는다. 브라운 박사가 죽는 장면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왜 나타난 것인지를 헷갈려 묻기도 했지만. 중간중간 쟤는 왜 저런 것 같아? 하고 물어보는데, 대부분 맥락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플루토늄이 아닌 쓰레기와 고철을 연료로 간지나게 떠올라 날아가는 드로리안의 섬광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막상 영화가 끝나고 나니 30년 전의 엄마가 마티에게 들이대는 장면을 보며 혼란스럽진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다.(이 내용이 문제가 되어 국내 개봉이 2년 늦어졌다고 한다.) 1987년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고, 그때의 나는 마티와 30년 전 엄마의 관계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지만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은 다르지 않을까. 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한데. 
침대에 함께 누워 슬쩍 질문을 했다. 영화 재미있었어? 하니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나도 타임머신 있었으면 좋겠다." 
하긴. 이 영화를 본 뒤의 매우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겠다.
"있으면 뭐 하고 싶은데?"
눈을 반짝이며 하는 대답을 듣고 그만 실소를 짓고 말았다. 
"어제로 돌아가서 주말동안 텔레비젼 실컷 볼래." 
그래. 아쉽지만 토요일은 20분짜리 세 개란다 아들아. 그래도 영화의 내용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이상 묻는걸 그만두었다. 2편이 있다고 했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음주에 당장 보겠다고 조른다. 그나저나 더빙이 된 2편은 또 어디서 구하나.

꼬리. 예나 지금이나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마티가 아이들이 타고있던 나무판으로 보드를 만들어 거리를 질주하는 추격씬, 그리고 이 장면이였다.


2017년 2월 27일 월요일

오래된 기억

난 어렸을 적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 가족은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광주로 이사했다. 이사 전에는 탄광이 있는 마을에 살았고 집 앞길에는 석탄 가루를 날리는 덤프트럭이 지나다녔다. 아버지는 약사였다. 나는 약국에 딸린 단칸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의 기억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그나마 남은 기억도 짧은 순간들 뿐이다. 여섯 살 때였나, 후진하는 트럭에 부딪혀 한동안 다리에 깁스를 했다고 한다. 그정도 큰일이라면 기억에 남았을 법도 한데 생각나진 않는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고 이후에도 부잡스레 돌아다녀 깁스를 풀어야 할 때쯤엔 이미 석고가 다 깨져버릴 정도였다 하니 어렸을 적 나는 꽤 개구진 편이었나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도 부실한 내 기억력 때문이겠지만, 아버지가 그다지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깔깔거리며 장난을 치거나 함께 책을 읽거나 놀이를 해줄만한 분은 아니었다. 그때의 아버지들은 흔히 그랬지 않았었나. 옛날 사진 앨범을 보면 가끔은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기도 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던 것 같다. 사진 속 동물원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일찌감치 경제력을 상실한 당신의 부친 덕에 결혼 이후에도 스스로의 가족 뿐 아니라 일곱 남매 중의 장남으로서 여섯 동생들의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던 아버지의 삶은 고단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드문 기억 중 하나는 물놀이에 대한 것이다. 일곱, 아니면 여덟 살쯤이었을까. 햇살이 뜨거웠던 여름 어느날, 나는 아버지의 등에 매달린채 물에 잠겨있었다. 강 건너편에는 바위 절벽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절벽 아래에서 나를 등에 업고 헤엄을 치셨다. 당시에는 깊은 강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 키에 못미치는 얕은 깊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 강에 어떻게 갔는지, 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기억나는 순간은, 그렇게 물 속에 떠있을 때 저만치서 둥둥 떠내려오는 똥덩어리를 보았던 것이다.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저 똥덩어리가 어디서부터 왔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똥덩어리가 천천히 떠가는 인상깊은 광경은 그 순간에 느꼈던 다른 감각들도 함께 뇌리에 뿌리를 내리게 했다. 눈 앞에 있던 아버지의 넓은 어깨, 그리고 내 팔에 느껴지던 아버지의 목덜미 감촉이 생각난다. 강가의 풍경을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뒤돌아보면 그날의 기억을 잊지않게 된 것은 똥덩어리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의 감각들은 그날의 다른 일들이 모두 잊혀진 뒤에도 또렷하게 각인되어서 아버지에 대한 몇 안되는 기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나저나 똥덩어리가 선사해준 아버지와의 추억이라니. 참 없어보이긴 하다.

얼마 전 아이들과 안동의 한 서원에 갔을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 서원 앞엔 너른 모래밭 옆으로 강이 흘렀고 강 건너편엔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그 풍경은 예전 일곱 아님 여덟살 쯤의 기억 속 그것과 닮아있었다. 수백년 전의 건물 안에서 내내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던 아들은 강을 보자 모래밭을 단숨에 뛰어 물가에 다다랐다. 차가운 날씨라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게 못내 아쉬운 듯 했다. 혹시 얕은 물가에 헤엄치는 피라미라도 있지 않을까 한참을 찾던 아이는 조약돌을 주워 강에 던지기 시작했다. 늦겨울의 바람은 문득문득 싸늘하게 느껴졌지만 오후의 햇살이 잔물결 위에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들도 어른이 된 뒤엔 나처럼 어렸을적 대부분의 일들을 잊을 것이다. 아이 옆에서 함께 물수제비를 뜨며, 어른이 되서도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을 좀더 많이 추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고 바랬다. 하지만
난 아들이 자라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게될지 모른다. 내가 아버지의 등에 매달려 보았던 똥덩어리는 지난 주말 물결에 부서지던 오후의 햇살일 수도, 바람에 모양이 바뀌던 보랏빛 구름일 수도, 강기슭에서 주운 소라껍질일 수도 있다. 또한 자기 전에 함께 침대에 누워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일 수도, 영화관에서 먹었던 캬라멜팝콘의 달콤한 맛일 수도, 캐치볼을 할 때 손바닥에 꽂히던 얼얼한 느낌일 수도 있다. 내가 물 속에서 아버지의 등에 매달려있던 그 순간을 우연히 기억하는 것처럼, 아이가 기억하게 될 순간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기에 그저 같은 경험을 하고 아이가 기억하는 순간들에 운좋게 함께 서있던 존재가 되려 노력할 뿐이다.



2017년 1월 24일 화요일

유혹하는 글쓰기







그는 단문을 즐겨쓴다. 짧게 끊어치는 듯한 문장은 그의 소설의 특징인 빠른 속도감을 유지하는데 주된 역할을 한다. 반면에 어떤 부분에서의 묘사는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작가가 만든 리듬에 따라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 그 와중에서도 군데군데 유머를 섞어 심각한 상황에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위는 이전에 내가 알고있던 그가 쓴 글의 특징이다. 스티븐 킹은 50여 편의 장편과 200여 편의 단편을 발표했지만 그의 명성에 비해 그의 작품 중에서 막상 읽은 책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사실 책보다 영화를 통해 접한 작품이 더 많다-. 그럼에도 그의 문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작가의 개성이 그만큼 강해서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 특징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며 그 의도가 독자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절반이 자서전이고 나머지 절반은 작문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을 느낄만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설사 글쓰기에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다 해도 따분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가 현존하는 지구 최고의 썰쟁이 중 하나 아닌가.

예컨대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이 직설적인 발언에 대해 딴지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쉬운 단어를 쓰라거나-여기서 그의 태도는 어줍잖은 내공으로 어렵고 화려한 단어를 남발하는 행위를 조롱하는 것에 가깝다-, 수동태를 쓰지 말라, 부사를 남발하지 말라 등의 지침은 익숙한 내용이다. 문장이 아닌 문단이 글쓰기의 기본 단위라거나 '수정본 = 초고 - 10%'의 공식 역시 새겨두어야 할 조언이다. 이외에도 킹이 알려주는 괜찮은 작가가 되기 위한 팁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소설의 요소에 대한 언급이었다.

'소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A지점에서 B지점을 거쳐 마침내 Z지점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는 서술, 독자에게 생생한 현실감을 주는 묘사,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말을 통하여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대화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플롯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대답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아니 이보시요 작가양반. 플롯이 없다니. 일찌기 교과서에서 소설의 3요소는 주제, 구성, 문체이고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 배웠다. 반면 그가 말하는 3요소는 서술, 묘사, 대화라 할 수 있겠다. 사실적인 묘사와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글을 읽고 쓸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주제나 구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패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들을 첫 번째로 꼽기는 어려울 것이다.

'플롯보다 직관에 의존하며,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다. (중략) 상황이 제일 먼저 나온다. 등장 인물은 그 다음이다. 마음 속에서 그런 것들이 정해지면 비로소 서술하기 시작한다. 종종 결말이 어렴풋이 보일 때도 있지만 등장 인물들에게 내 방식대로 움직이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다. 나는 오히려 그들이 '자기 방식대로' 움직이기를 바란다.'

여기까지 읽으면 앞의 세 가지 요소 이전에 상황과 인물이란 요소를 더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그는 우선 갈등이 생길만한 어떤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 몇몇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전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서술하고 묘사하며 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 곧 그의 소설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읽다가 마치 자신을 관찰자와 같이 이야기하는 이 부분에서 허탈해지고 말았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올렸을 뿐이라는 수상 소감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워드프로세서가 인공지능을 장착한 것도 아닐텐데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움직이다니. 정신만 차리고 써 나아가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는 건가. 직관과 본능이 이끄는대로 키보드를 두드리라는 뜻이고 그 결과가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라면 역시 그는 천재이고 평범한 작가 지망생들이 따라할 수 없는 초식을 구사하는 셈이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에게는 킹과 같이 매일 2천 단어 이상씩의 분량을 쓰는 것은 고사하고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닥치고 글을 써보라는 유혹의 기술이 워낙 훌륭해서, 이 책을 읽으면 괜찮은 글을 쓰고싶고 제법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물론 그 글을 다시 읽고 이불킥을 하고픈 충동을 얼마나 오랫동안 참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참고로 그가 처음으로 출판을 위한 소설을 썼던 것은 13세 때였고 <캐리>가 출판된 것은 1974년으로 그의 나이 27세 때였으며 이 작품의 보급판 판권은 40만달러였다.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어떤 단어를 처음 배운 날

아이들이 깨어있을 때 귀가하는 날은 잠들기 전에 함께 누워 책을 읽어준다. 잠자리 책 후보는 우선 그날의 내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개 피곤함의 정도와 책의 글자 수가 반비례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몇 가지 옵션을 제시할 뿐이고 결국 최종 선택권은 아이에게 있다. 첫째가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선택을 하는 것은 둘째의 몫이 되었다. 가끔 내 기대와는 달리 두꺼운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날이면-매우 잦은 일이다- 졸음을 참으며 책을 읽다가 읽고 있는 대목을 놓쳐서 아이들의 타박을 받기 일쑤이다. 

첫째의 경우 글밥이 적은 책부터 시작해 나이에 맞게 서서히 책의 두께를 늘렸지만, 이제 겨우 만 네 살이 된 둘째는 일찍부터 오빠가 읽는 책들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요즘엔 초등학생 대상의 만화책들을 선택하곤 한다. 오빠가 읽은 책의 내용을 다 소화해내고 말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스스로 먼저 그만두겠다는 경우는 없는데, 읽다보면 과연 내용을 얼마나 이해할지 궁금해지곤 한다. 문제는 줄곧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선택하는 이 아이가 원체 오빠보다 질문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질문은 때를 가리지않고 튀어나온다. 요즘 읽는 책은 모바일 게임 캐릭터인 쿠키들이 등장하는 학습 만화이다. 그 질문을 만난 것은 각종 쿠키들이 바다를 탐험하는 과정에서였다.

"근데 해구가 뭐야?"

졸음때문에 머리가 멍한 상태여서인지 해구(海溝)라는 단어의 뜻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바다 밑바닥의 튀어나온 곳이었던가? 아님 움푹 들어간 골짜기를 말하는 단어였던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당황스러울 때는 수없이 많은데,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그런 순간이다. 밤 열시가 넘었지만 졸음이라고는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튀어나온 곳일지 움푹 들어간 곳일지 선택을 해야했고, 어떤 단어를 써서 설명을 할지도 신중히 결정해야 했다. 

- 바다 밑바닥은 평평하지 않거든. 높은 산도 있고 깊은 골짜기도 있어. 거기 있는 골짜기를 말하는 거야. 
- 골짜기가 뭔데? (도대체 골짜기라는 단어의 급수는 몇급쯤 될까.)

- 바다 밑바닥에 있는 깊은 우물같은거야. 
- 응. 근데 우물은 뭐야? 

- 바다 밑바닥은 평평하지 않고 올라간 곳도 있고 들어간 곳도 있는데...
- 왜 평평하지 않은데?

섣불리 대답을 했다간 이런 사태가 생기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그러나저러나 좀더 멋지고 능숙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걸까. 이럴 때면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에 이골이 났을 선생님들의 자문을 구하고 싶다. 그들은 뭔가 좀 다를 것 같다. 매순간 당황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하게, 가장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지 않을까. 

대개 이러한 장면은 아이들에게 첫 번째 순간이고, 그 의미는 이런 것이다. 해구나 골짜기라는 단어부터 '곤죽이 되다'라거나 '쌍수를 든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바다 밑바닥이 왜 평평하지 않은지와 바다 색깔이 왜 시시각각 바뀌는지에 대해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해 주는 이가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매일 하고있다 생각하면 일종의 성직자가 된 듯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그때문에 긴장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의미 가득하고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다 밑바닥에 있는 아주 깊은 구멍 같은 걸 말하는 거야."

해구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딸아이는 설명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 했지만 다른 질문을 하진 않았다. 아마 나름의 방식으로 머릿 속에 그림을 그리고 어느 구석에 이 괴상한 단어를 갈무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 단어를 다시 만날 때면 이 순간의 설명이 떠오를 것이다. 그다지 멋진 설명은 아니었지만 때로는 그걸로 족하다. 오늘 이 단어의 의미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수준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신심 충만한 신부나 목사의 말씀을 주일마다 듣는 와중에서도 기껏해야 열 개인 신의 계명조차 늘상 잊어버리곤 하지 않던가.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똥통과 방역복

P의료원은 읍내 외곽에 자리잡고 있었다. 8월의 토요일이었다. 시골 분들은 새벽녘에 일어나 선선한 아침에 일을 하고 기온이 높아진 낮에는 집에서 쉬거나 낮잠을 잔다. 때문에 무더운 여름 한낮엔 환자도 적은 편이다.
도립 의료원 응급실엔 대학병원에서 보기 어려운 환자들이 많았다. 광견병이 의심되는 개에 물려 온 환자들도 종종 있었고, 가을철 진드기에 물려 생기는 쯔쯔가무시 병 환자를 처음 만난 곳도 여기였다. 상처에 된장을 바르고 오는 환자를 만나는 것은 일상이었다. 낫질을 하다가 팔에 열상이 생겼는데 균이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비닐로 밀봉을 하고 며칠을 둬 상처가 곪고 썩어가는 상태로 온 환자도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자살 시도를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십중팔구 농약 음독이었다.
파견 인턴들은 의료원 건물 뒤편의 직원 기숙사 일부를 당직 숙소로 썼다. 기숙사 건물에서 병원 본관 건물까지는 1분도 안되는 거리였으므로, 정규 업무가 끝난 당직 시간에는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응급실 당직인 경우 환자가 많은 시간이 아니라면 숙소에 있다가 콜을 받고 나가곤 했다. 응급실에서 전화가 온 것은 토요일 오전 정규 업무를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 식당 점심 메뉴가 뭘까 궁금해하고있을 때였다.

"똥통에 빠진 환자가 온대요. 얼른 오셔야겠어요."
파견 근무가 어느덧 세 달째였지만 이런 콜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저수지나 불어난 계곡물에 빠진 환자야 종종 보았지만 똥통이라니. 응급실 담당 간호사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상황이 뭐 그리 나쁘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던 내 앞에 펼쳐진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환자는 젊은 엄마와 서너살쯤 되어보이는 아이였다. 응급실 앞 복도는 아수라장이었다. 이동용 베드 주변은 똥투성이였고, 응급실 간호사들은 똥범벅에 허연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아이의 몸을 부산하게 물걸레로 닦고 있었다. 그 주말 응급실 당직은 현진건의 소설 속 B사감을 연상시키는 내과 과장이었는데, 엄마의 상태를 확인해야할 이분은 복도 저만치 끝에 서서 반복해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 "아이만 닦지 말고 우리 환자도 좀 닦아줘욧!" 엄마와 아이 모두 의식이 없었으나 아이의 안색이 더 나빠보였다. 퇴근차 병원을 나가다 급히 불려온 소아과 과장의 지시로 아이에겐 곧바로 비강 프롱을 통해 산소가 투여되었다.
엄마는 아이를 업은 상태로 재래식 화장실에 갔다고 했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조그만 아이가 똥통에 빠진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똥통에 뛰어든 엄마는 아이가 똥에 잠기는 것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함께 가스에 질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의 산소포화도는 다행히 회복되는 추세였다. 아이와 엄마의 활력 징후는 안정을 찾았지만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곧바로 이웃한 E시 종합병원으로의 이송이 결정되었다. 그날의 당직 인턴은 나였으므로 함께 앰블런스에 타야했다. 아이의 아빠가 도착한 것은 앰블런스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이었다. 얼굴은 땀 범벅이었고, 일을 하다 달려왔는지 작업복 바지 여기저기엔 황토흙이 묻어있었다.
환자의 이송이 시급했으므로 보호자에게 환자들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은 앰블런스 안에서 초보 인턴에 의해 이루어져야 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아이와 엄마가 똥통에 빠졌고,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아이의 호흡이 약했지만 산소와 수액 투여 후에 일단 안정이 된 상태이다. 가스에 의한 중독이 해결되려면 큰 병원에서의 집중치료가 필요하다. 넋이 나간 채 아이의 손을 꽉 잡고있던 아빠는 내가 띄엄띄엄 말을 잇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
E시로 통하는 국도는 꽉 막혀있었다. 토요일 오후엔 늘 그렇기 마련이다. 보통 30분이면 갈 거리였지만 이런 상황에선 1시간이 넘어 걸릴지 모른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외에 환자들의 상태는 안정적이었으나, 문제는 좁은 앰블런스 내부를 가득 채운 냄새였다.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가족을 다 잃을지도 모르는 남자 옆에서 겨우 똥냄새를 피하려 하는 티를 낼 수 있겠는가. 나는 최대한 무거운 표정과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후각은 피로함을 가장 빠르게 느끼는 기관이라는데 망할 후각 신경은 왜 이 과도한 자극에도 기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건지. 위중한 환자들과 슬퍼하는 보호자 앞에서 겨우 이런 실존적인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는 과연 의사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이 괴로움은 냄새 때문인지 내 앞에 있는 환자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 보호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목적지인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내가 앰블런스가 채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쳐나간 것은 오로지 신속한 환자 인계를 위함이었음을 밝혀둔다. 사전에 전화로 연락을 취해놓았기 때문인지 의료진이 대기 상태였다. 여느 응급실 복장과는 달랐는데, 의사와 간호사 모두 수술용 모자, 마스크와 글러브를 착용하고 가운 위에 두꺼운 앞치마를 덧입고 있었다. 당시 상황으로선 완벽한 준비였다. 의사는 아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인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쪽 의료진의 복장은 영화에서나 보는 전문 의료진을 연상시켰고, 겨우 비닐장갑 하나만 끼고 있던 내 처지에서 보기에 무척이나 믿음직해 보였다.
작년 여름도 십수년 전과 같이 심한 무더위였다. 병원 바깥은 역병으로 뜨거웠지만 전쟁터가 되었던 몇몇 곳 외엔 많은 병원이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뉴스에선 응급실 감염 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파헤치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갑작스레 감염병 전문가가 되었고 응급실은 서둘러 이번 사태의 원흉이 되었다. 안면보호구가 딸려있어야 했지만 사안에 맞는 방역복을 입지 않았던 것이 의료진 감염의 원인이었다고도 했다. 덕분에 레벨 A부터 D까지 종류도 다양한 방역복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의 사진을 본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오래 전 똥통에 빠진 모자를 인계하던 그 때를 떠올렸다. 예나 그때나 응급실은 그대로 쉼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2016년 10월 6일 목요일

메타분석 범람의 시대

꽤 많은 메타분석연구와 논문에 참여하면서, 나 역시 아래 칼럼과 같은 생각을 한 바 있다.

[바이오토픽] 생의학 분야의 리뷰 논문, 너무 많아서 탈!

Pubmed에서 메타분석[타이틀] 키워드를 넣어보면, 1996년에 250편이었던 것이 급격히 늘어 2006년 1021편, 2016년 현재 9400편이 검색된다. 최근 10여년만 봐도 10배 정도로 불어난 것이다. 칼럼에서는 중국 저자들의 유전적 연관분석연구(genetic association study)가 특히 많이 늘었으며, 2014년에 발표된 메타분석의 63퍼센트를 차지했다고 한다. 실제 검색을 해보면 유전 관련 이외의 영역에서도 중국 연구자들의 논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칼럼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몇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저비용 고효율

연구자가 직접 data를 모아 진행하는 역학 연구나 임상 시험은 규모에 따라 수백만-수억원의 연구비가 들지만, 메타분석의 경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기존 발표 논문을 검토하는 작업이 대부분이므로 막말로 연구 시작부터 끝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끝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분석 논문은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그 성과란 저명한 저널에 출판을 하고, 해당 논문의 피인용지수가 높아지는 것이다.) 메타분석 논문이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것처럼 양산되는 요즘엔 사정이 좀 다르지만, 메타분석 방법론의 역사가 짧아 새로운 논문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주된 이유이다. 개인적으론 저널에서 메타분석 논문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려왔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본다.

Review

체계적 고찰과 메타분석은 연구 방법 면에서 근거수준이 가장 높기 때문에 많은 저널에서 환대를 받아왔다. 연구자 입장에선 본인 논문이 출판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는데다 비용도 안들기 때문에 해볼만한 일이다. 그로 인해 메타분석 논문은 급격히 늘었지만 메타분석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진 리뷰어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또한 체계적 문헌 고찰과 메타분석 논문을 검토하려면 개별 논문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리뷰어는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하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결함이 있는 논문이 리뷰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출판되는 일도 잦아지게 된다.

Garbage in, Garbage out

메타분석이라는 방법론 자체는 유용하지만 그 방법을 원칙에 따라 적용하지 않았을 때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방법론의 연구이든, 연구에 쓰인 raw data나 data를 모으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면 좋은 결과물을 내긴 어렵다. 체계적 문헌 고찰은 대개 수백, 수천편의 논문을 검토해야 하는, 노가다에 가까운 힘든 과정이다. 연구자는 검토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되도록 줄이려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누락되는 연구들이 생길 위험이 크다. 또한 개별 연구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으면 포함되지 않아야 할 연구들이 포함될 수 있다.
환자대조군 연구나 코호트 연구라 가정하면 연구대상자의 포함/제외 기준이 잘못된 것인데, 이렇게 시작부터 잘못된 연구가 좋은 연구가 될리 만무하다. 이러한 문제를 줄이려면 칼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검색과 선정 과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해야하고, 현재는 많은 저널에서 이것을 요구하는 추세이다.

근거수준 피라미드

특정 연구 방법이 연구의 질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전통적 연구 방법이든 메타분석이든, 함량 미달 논문은 늘 존재한다. 연구 방법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주제에 맞는 방법으로 잘 수행된 연구라면 어떤 것이든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은 가장 높은 근거수준을 가진 연구 방법이지만 근거수준이 높다는 것이 곧 우월한 방법이라는 의미는 아니며, 메타분석으로 보고된 결과를 무작정 신뢰해서도 안된다. 제대로 수행되지 않은 메타분석은 증례보고만도 못한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