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똥통과 방역복

P의료원은 읍내 외곽에 자리잡고 있었다. 8월의 토요일이었다. 시골 분들은 새벽녘에 일어나 선선한 아침에 일을 하고 기온이 높아진 낮에는 집에서 쉬거나 낮잠을 잔다. 때문에 무더운 여름 한낮엔 환자도 적은 편이다.
도립 의료원 응급실엔 대학병원에서 보기 어려운 환자들이 많았다. 광견병이 의심되는 개에 물려 온 환자들도 종종 있었고, 가을철 진드기에 물려 생기는 쯔쯔가무시 병 환자를 처음 만난 곳도 여기였다. 상처에 된장을 바르고 오는 환자를 만나는 것은 일상이었다. 낫질을 하다가 팔에 열상이 생겼는데 균이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비닐로 밀봉을 하고 며칠을 둬 상처가 곪고 썩어가는 상태로 온 환자도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자살 시도를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십중팔구 농약 음독이었다.
파견 인턴들은 의료원 건물 뒤편의 직원 기숙사 일부를 당직 숙소로 썼다. 기숙사 건물에서 병원 본관 건물까지는 1분도 안되는 거리였으므로, 정규 업무가 끝난 당직 시간에는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응급실 당직인 경우 환자가 많은 시간이 아니라면 숙소에 있다가 콜을 받고 나가곤 했다. 응급실에서 전화가 온 것은 토요일 오전 정규 업무를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 식당 점심 메뉴가 뭘까 궁금해하고있을 때였다.

"똥통에 빠진 환자가 온대요. 얼른 오셔야겠어요."
파견 근무가 어느덧 세 달째였지만 이런 콜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저수지나 불어난 계곡물에 빠진 환자야 종종 보았지만 똥통이라니. 응급실 담당 간호사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상황이 뭐 그리 나쁘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던 내 앞에 펼쳐진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환자는 젊은 엄마와 서너살쯤 되어보이는 아이였다. 응급실 앞 복도는 아수라장이었다. 이동용 베드 주변은 똥투성이였고, 응급실 간호사들은 똥범벅에 허연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아이의 몸을 부산하게 물걸레로 닦고 있었다. 그 주말 응급실 당직은 현진건의 소설 속 B사감을 연상시키는 내과 과장이었는데, 엄마의 상태를 확인해야할 이분은 복도 저만치 끝에 서서 반복해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 "아이만 닦지 말고 우리 환자도 좀 닦아줘욧!" 엄마와 아이 모두 의식이 없었으나 아이의 안색이 더 나빠보였다. 퇴근차 병원을 나가다 급히 불려온 소아과 과장의 지시로 아이에겐 곧바로 비강 프롱을 통해 산소가 투여되었다.
엄마는 아이를 업은 상태로 재래식 화장실에 갔다고 했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조그만 아이가 똥통에 빠진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똥통에 뛰어든 엄마는 아이가 똥에 잠기는 것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함께 가스에 질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의 산소포화도는 다행히 회복되는 추세였다. 아이와 엄마의 활력 징후는 안정을 찾았지만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곧바로 이웃한 E시 종합병원으로의 이송이 결정되었다. 그날의 당직 인턴은 나였으므로 함께 앰블런스에 타야했다. 아이의 아빠가 도착한 것은 앰블런스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이었다. 얼굴은 땀 범벅이었고, 일을 하다 달려왔는지 작업복 바지 여기저기엔 황토흙이 묻어있었다.
환자의 이송이 시급했으므로 보호자에게 환자들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은 앰블런스 안에서 초보 인턴에 의해 이루어져야 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아이와 엄마가 똥통에 빠졌고,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아이의 호흡이 약했지만 산소와 수액 투여 후에 일단 안정이 된 상태이다. 가스에 의한 중독이 해결되려면 큰 병원에서의 집중치료가 필요하다. 넋이 나간 채 아이의 손을 꽉 잡고있던 아빠는 내가 띄엄띄엄 말을 잇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
E시로 통하는 국도는 꽉 막혀있었다. 토요일 오후엔 늘 그렇기 마련이다. 보통 30분이면 갈 거리였지만 이런 상황에선 1시간이 넘어 걸릴지 모른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외에 환자들의 상태는 안정적이었으나, 문제는 좁은 앰블런스 내부를 가득 채운 냄새였다.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가족을 다 잃을지도 모르는 남자 옆에서 겨우 똥냄새를 피하려 하는 티를 낼 수 있겠는가. 나는 최대한 무거운 표정과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후각은 피로함을 가장 빠르게 느끼는 기관이라는데 망할 후각 신경은 왜 이 과도한 자극에도 기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건지. 위중한 환자들과 슬퍼하는 보호자 앞에서 겨우 이런 실존적인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는 과연 의사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이 괴로움은 냄새 때문인지 내 앞에 있는 환자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 보호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목적지인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내가 앰블런스가 채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쳐나간 것은 오로지 신속한 환자 인계를 위함이었음을 밝혀둔다. 사전에 전화로 연락을 취해놓았기 때문인지 의료진이 대기 상태였다. 여느 응급실 복장과는 달랐는데, 의사와 간호사 모두 수술용 모자, 마스크와 글러브를 착용하고 가운 위에 두꺼운 앞치마를 덧입고 있었다. 당시 상황으로선 완벽한 준비였다. 의사는 아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인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쪽 의료진의 복장은 영화에서나 보는 전문 의료진을 연상시켰고, 겨우 비닐장갑 하나만 끼고 있던 내 처지에서 보기에 무척이나 믿음직해 보였다.
작년 여름도 십수년 전과 같이 심한 무더위였다. 병원 바깥은 역병으로 뜨거웠지만 전쟁터가 되었던 몇몇 곳 외엔 많은 병원이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뉴스에선 응급실 감염 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파헤치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갑작스레 감염병 전문가가 되었고 응급실은 서둘러 이번 사태의 원흉이 되었다. 안면보호구가 딸려있어야 했지만 사안에 맞는 방역복을 입지 않았던 것이 의료진 감염의 원인이었다고도 했다. 덕분에 레벨 A부터 D까지 종류도 다양한 방역복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의 사진을 본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오래 전 똥통에 빠진 모자를 인계하던 그 때를 떠올렸다. 예나 그때나 응급실은 그대로 쉼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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