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1일 화요일
TV, 그리고 Back to the Future
2017년 2월 27일 월요일
오래된 기억
우리 가족은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광주로 이사했다. 이사 전에는 탄광이 있는 마을에 살았고 집 앞길에는 석탄 가루를 날리는 덤프트럭이 지나다녔다. 아버지는 약사였다. 나는 약국에 딸린 단칸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의 기억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그나마 남은 기억도 짧은 순간들 뿐이다. 여섯 살 때였나, 후진하는 트럭에 부딪혀 한동안 다리에 깁스를 했다고 한다. 그정도 큰일이라면 기억에 남았을 법도 한데 생각나진 않는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고 이후에도 부잡스레 돌아다녀 깁스를 풀어야 할 때쯤엔 이미 석고가 다 깨져버릴 정도였다 하니 어렸을 적 나는 꽤 개구진 편이었나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도 부실한 내 기억력 때문이겠지만, 아버지가 그다지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깔깔거리며 장난을 치거나 함께 책을 읽거나 놀이를 해줄만한 분은 아니었다. 그때의 아버지들은 흔히 그랬지 않았었나. 옛날 사진 앨범을 보면 가끔은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기도 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던 것 같다. 사진 속 동물원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일찌감치 경제력을 상실한 당신의 부친 덕에 결혼 이후에도 스스로의 가족 뿐 아니라 일곱 남매 중의 장남으로서 여섯 동생들의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던 아버지의 삶은 고단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드문 기억 중 하나는 물놀이에 대한 것이다. 일곱, 아니면 여덟 살쯤이었을까. 햇살이 뜨거웠던 여름 어느날, 나는 아버지의 등에 매달린채 물에 잠겨있었다. 강 건너편에는 바위 절벽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절벽 아래에서 나를 등에 업고 헤엄을 치셨다. 당시에는 깊은 강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 키에 못미치는 얕은 깊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 강에 어떻게 갔는지, 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기억나는 순간은, 그렇게 물 속에 떠있을 때 저만치서 둥둥 떠내려오는 똥덩어리를 보았던 것이다.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저 똥덩어리가 어디서부터 왔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똥덩어리가 천천히 떠가는 인상깊은 광경은 그 순간에 느꼈던 다른 감각들도 함께 뇌리에 뿌리를 내리게 했다. 눈 앞에 있던 아버지의 넓은 어깨, 그리고 내 팔에 느껴지던 아버지의 목덜미 감촉이 생각난다. 강가의 풍경을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뒤돌아보면 그날의 기억을 잊지않게 된 것은 똥덩어리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의 감각들은 그날의 다른 일들이 모두 잊혀진 뒤에도 또렷하게 각인되어서 아버지에 대한 몇 안되는 기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나저나 똥덩어리가 선사해준 아버지와의 추억이라니. 참 없어보이긴 하다.
얼마 전 아이들과 안동의 한 서원에 갔을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 서원 앞엔 너른 모래밭 옆으로 강이 흘렀고 강 건너편엔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그 풍경은 예전 일곱 아님 여덟살 쯤의 기억 속 그것과 닮아있었다. 수백년 전의 건물 안에서 내내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던 아들은 강을 보자 모래밭을 단숨에 뛰어 물가에 다다랐다. 차가운 날씨라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게 못내 아쉬운 듯 했다. 혹시 얕은 물가에 헤엄치는 피라미라도 있지 않을까 한참을 찾던 아이는 조약돌을 주워 강에 던지기 시작했다. 늦겨울의 바람은 문득문득 싸늘하게 느껴졌지만 오후의 햇살이 잔물결 위에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들도 어른이 된 뒤엔 나처럼 어렸을적 대부분의 일들을 잊을 것이다. 아이 옆에서 함께 물수제비를 뜨며, 어른이 되서도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을 좀더 많이 추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고 바랬다. 하지만 난 아들이 자라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게될지 모른다. 내가 아버지의 등에 매달려 보았던 똥덩어리는 지난 주말 물결에 부서지던 오후의 햇살일 수도, 바람에 모양이 바뀌던 보랏빛 구름일 수도, 강기슭에서 주운 소라껍질일 수도 있다. 또한 자기 전에 함께 침대에 누워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일 수도, 영화관에서 먹었던 캬라멜팝콘의 달콤한 맛일 수도, 캐치볼을 할 때 손바닥에 꽂히던 얼얼한 느낌일 수도 있다. 내가 물 속에서 아버지의 등에 매달려있던 그 순간을 우연히 기억하는 것처럼, 아이가 기억하게 될 순간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기에 그저 같은 경험을 하고 아이가 기억하는 순간들에 운좋게 함께 서있던 존재가 되려 노력할 뿐이다.
2017년 1월 24일 화요일
유혹하는 글쓰기
그는 단문을 즐겨쓴다. 짧게 끊어치는 듯한 문장은 그의 소설의 특징인 빠른 속도감을 유지하는데 주된 역할을 한다. 반면에 어떤 부분에서의 묘사는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작가가 만든 리듬에 따라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 그 와중에서도 군데군데 유머를 섞어 심각한 상황에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위는 이전에 내가 알고있던 그가 쓴 글의 특징이다. 스티븐 킹은 50여 편의 장편과 200여 편의 단편을 발표했지만 그의 명성에 비해 그의 작품 중에서 막상 읽은 책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사실 책보다 영화를 통해 접한 작품이 더 많다-. 그럼에도 그의 문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작가의 개성이 그만큼 강해서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 특징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며 그 의도가 독자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절반이 자서전이고 나머지 절반은 작문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을 느낄만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설사 글쓰기에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다 해도 따분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가 현존하는 지구 최고의 썰쟁이 중 하나 아닌가.
예컨대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이 직설적인 발언에 대해 딴지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쉬운 단어를 쓰라거나-여기서 그의 태도는 어줍잖은 내공으로 어렵고 화려한 단어를 남발하는 행위를 조롱하는 것에 가깝다-, 수동태를 쓰지 말라, 부사를 남발하지 말라 등의 지침은 익숙한 내용이다. 문장이 아닌 문단이 글쓰기의 기본 단위라거나 '수정본 = 초고 - 10%'의 공식 역시 새겨두어야 할 조언이다. 이외에도 킹이 알려주는 괜찮은 작가가 되기 위한 팁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소설의 요소에 대한 언급이었다.
'소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A지점에서 B지점을 거쳐 마침내 Z지점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는 서술, 독자에게 생생한 현실감을 주는 묘사,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말을 통하여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대화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플롯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대답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아니 이보시요 작가양반. 플롯이 없다니. 일찌기 교과서에서 소설의 3요소는 주제, 구성, 문체이고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 배웠다. 반면 그가 말하는 3요소는 서술, 묘사, 대화라 할 수 있겠다. 사실적인 묘사와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글을 읽고 쓸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주제나 구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패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들을 첫 번째로 꼽기는 어려울 것이다.
'플롯보다 직관에 의존하며,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다. (중략) 상황이 제일 먼저 나온다. 등장 인물은 그 다음이다. 마음 속에서 그런 것들이 정해지면 비로소 서술하기 시작한다. 종종 결말이 어렴풋이 보일 때도 있지만 등장 인물들에게 내 방식대로 움직이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다. 나는 오히려 그들이 '자기 방식대로' 움직이기를 바란다.'
여기까지 읽으면 앞의 세 가지 요소 이전에 상황과 인물이란 요소를 더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그는 우선 갈등이 생길만한 어떤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 몇몇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전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서술하고 묘사하며 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 곧 그의 소설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읽다가 마치 자신을 관찰자와 같이 이야기하는 이 부분에서 허탈해지고 말았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올렸을 뿐이라는 수상 소감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워드프로세서가 인공지능을 장착한 것도 아닐텐데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움직이다니. 정신만 차리고 써 나아가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는 건가. 직관과 본능이 이끄는대로 키보드를 두드리라는 뜻이고 그 결과가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라면 역시 그는 천재이고 평범한 작가 지망생들이 따라할 수 없는 초식을 구사하는 셈이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에게는 킹과 같이 매일 2천 단어 이상씩의 분량을 쓰는 것은 고사하고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닥치고 글을 써보라는 유혹의 기술이 워낙 훌륭해서, 이 책을 읽으면 괜찮은 글을 쓰고싶고 제법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물론 그 글을 다시 읽고 이불킥을 하고픈 충동을 얼마나 오랫동안 참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참고로 그가 처음으로 출판을 위한 소설을 썼던 것은 13세 때였고 <캐리>가 출판된 것은 1974년으로 그의 나이 27세 때였으며 이 작품의 보급판 판권은 40만달러였다.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어떤 단어를 처음 배운 날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똥통과 방역복
2016년 10월 6일 목요일
메타분석 범람의 시대
[바이오토픽] 생의학 분야의 리뷰 논문, 너무 많아서 탈!
Pubmed에서 메타분석[타이틀] 키워드를 넣어보면, 1996년에 250편이었던 것이 급격히 늘어 2006년 1021편, 2016년 현재 9400편이 검색된다. 최근 10여년만 봐도 10배 정도로 불어난 것이다. 칼럼에서는 중국 저자들의 유전적 연관분석연구(genetic association study)가 특히 많이 늘었으며, 2014년에 발표된 메타분석의 63퍼센트를 차지했다고 한다. 실제 검색을 해보면 유전 관련 이외의 영역에서도 중국 연구자들의 논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칼럼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몇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저비용 고효율
연구자가 직접 data를 모아 진행하는 역학 연구나 임상 시험은 규모에 따라 수백만-수억원의 연구비가 들지만, 메타분석의 경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기존 발표 논문을 검토하는 작업이 대부분이므로 막말로 연구 시작부터 끝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끝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분석 논문은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그 성과란 저명한 저널에 출판을 하고, 해당 논문의 피인용지수가 높아지는 것이다.) 메타분석 논문이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것처럼 양산되는 요즘엔 사정이 좀 다르지만, 메타분석 방법론의 역사가 짧아 새로운 논문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주된 이유이다. 개인적으론 저널에서 메타분석 논문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려왔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본다.
Review
체계적 고찰과 메타분석은 연구 방법 면에서 근거수준이 가장 높기 때문에 많은 저널에서 환대를 받아왔다. 연구자 입장에선 본인 논문이 출판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는데다 비용도 안들기 때문에 해볼만한 일이다. 그로 인해 메타분석 논문은 급격히 늘었지만 메타분석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진 리뷰어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또한 체계적 문헌 고찰과 메타분석 논문을 검토하려면 개별 논문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리뷰어는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하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결함이 있는 논문이 리뷰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출판되는 일도 잦아지게 된다.
Garbage in, Garbage out
환자대조군 연구나 코호트 연구라 가정하면 연구대상자의 포함/제외 기준이 잘못된 것인데, 이렇게 시작부터 잘못된 연구가 좋은 연구가 될리 만무하다. 이러한 문제를 줄이려면 칼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검색과 선정 과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해야하고, 현재는 많은 저널에서 이것을 요구하는 추세이다.
근거수준 피라미드 |
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우리에겐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
닳아빠진 뒷굽을 갈 때도 된 듯해 수선을 부탁했다. 아저씨가 돋보기 안경을 걸쳐 쓰고 구두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오른짝 가죽과 밑창 이음새가 떨어져 구멍이 나있다. 저 상태로 잘도 신고 다녔구나. 아저씨는 혀를 쯧쯧 차고는 연장통에서 순간접착제를 꺼내 익숙한 손길로 떨어진 이음새에 꼼꼼이 칠하기 시작했다. 접착제가 마를 때쯤 손가락에 헝겊 조각을 야무지개 감고 구두약을 묻혀 문지르니 금새 광이 난다.
구멍난 이음새가 접착제만으로 수선이 될까 싶었는데, 손질이 끝난 구두를 살펴보니 그럭저럭 신을 만했다. 노점을 나와 다시 바삐 걷는데 어째 좀 처량한 생각이 든다. 구두 닦을 여유도 없이 구멍이 난줄도 모르고 한참을 신고 다녔다니. 참 정신 없이 바쁘게도 일했다.
- 구두를 닦았는데 한 짝 옆이 터져 있어서 접착제로 붙였어요. 굽을 간 김에 아까워 좀더 신는데 오래는 못 갈 것 같아요.
점심 시간에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고, 바로 아내의 답신이 왔다.
- 이런... 구두 하나 당장 사야겠어요. 진즉 샀어야 했는데.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 건 내 처량한 심정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었다. 이런 유치한 바램을 넌지시 표현할 상대로 아내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업무가 늘어나 심신이 지쳐가는 중에, 짧게 오고간 문자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구두야 뭐 좀 있다 사도 되지.
위로라는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내가 힘들 때 누군가 그걸 알아준다는 것. 위로의 출발점은 바로 그 지점부터이다. 더 좋은 해결책을 찾아준다거나 건설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굳이 그렇지 않아도 된다. 내 힘듦을 그가 알고있다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
- 그 영화 아주 잘 만들었다더라.
주말에 올라오신 장인께서 식사 중에 갑작스레 언급하신 건 관객 수 천만을 훌쩍 넘겼다는 그 영화였다. 이런 말씀은 영화를 보고싶다는 속내를 에둘러 표현하신 것이다. 아내도 나도 보지 않은 영화라 잘됐다 싶어 식사를 마치고 다같이 iptv를 볼 수 있는 작은 방에 둘러앉았다.
고향이 이북인 장인은 46년생이시니 전쟁이 벌어진 해에 다섯 살이셨다. 흥남 부두의 철수를 직접 겪진 않으셨지만 전쟁 이후 부산에서 주욱 사셨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하셨으니 영화 속에서 그려진 시대를 고스란히 지내오신 셈이다. 워낙 화제가 되었던 영화라 대략 내용은 알고 있었기에 장인께서 보고싶어하시는 것도 이해가 갔다.
훌륭한 영화는 아니었다. 몇몇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지만, 캐릭터는 전형적이고 플롯은 엉성했다. 그래도 두 시간동안 지루함을 느끼진 못했고 이산가족 상봉 방송 장면에선 눈물도 났다. 하긴 50년 이후 이 나라의 현대사 자체가 숨이 찰만큼 극적인 드라마인데 그 가운데 굵직굵직한 사건을 주욱 되짚기만 해도 지루할 틈이 있겠는가.
장인은 영화를 보는 중에 종종 탄식 비슷한 소리를 내셨다. 어허,,, 그 참, 어허,,, 그 참. 말은 안하셨지만 당신이 젊었을 적 풍경이 재현된 화면을 보며 옛날 생각이 나셨으리라. 영화와 장인의 반응을 함께 경험하며 이 영화가 왜 화제가 되었는지, 왜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든 몇 안되는 영화에 꼽히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중의 취향과 흐름을 저격하는 감독의 재능은 역시 뛰어났다.
'Ode to My Father'인 영문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아버지 세대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만든 영화라고 했다.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가 아버지들을 위로해주었을까.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하고 울먹이는 덕수를 위로한 사람은 아버지의 환영 뿐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 이야기를 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익숙치 않았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영화를 보며 조금은 위로를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퍽퍽했던 시대에 온 몸으로 가족을 지탱해 온 우리의 평범한 부모들이 그동안 제대로 된 위로를 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이 영화를 향한 대중의 이상(異常)적 열광은 제대로 위로하지 못했음에 대한 자기 고백이 아닐었을까 싶다.
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햄, 베이컨, 소시지… 가공육 먹어도 되나요?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베이컨과 소시지 등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해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 이후 이 내용을 보도한 기사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가공육이 담배나 석면만큼 위험한 발암물질로 분류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WHO가 발암물질로 구분한 식품에는 햄과 베이컨, 소시지와 함께 핫도그, 햄버거 등도 포함되었습니다. 햄이나 소시지는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으로도 흔히 쓰이는 식품입니다. 물론 가공육이 건강에 이로운 식품은 아니라는 것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과연 소시지를 먹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암 발생 위험을 높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1군 발암물질에는 담배, 석면, 벤젠과
같은 전통적인 위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가공육이 이들 물질과 같은 군에 포함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1군에 포함된 물질들이 모두 같은 정도의 위험이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영국
암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모든 암의 19%가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반면, 가공육 섭취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분율은 3%라고 합니다.
모든 영국인이 담배를 끊으면 64,500례의 암 발생을 줄일 수 있으며, 가공육을 끊으면 8,800례를 줄일 수 있습니다.(Cancer Research UK의 그래픽) |
WHO는 발암물질을 1군부터 4군까지로 나누고 있는데, 그 기준은 발암물질과 암의 관련성이 얼마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입니다. 기존 역학 연구들을 검토했을 때 사람에서 암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1군에 포함됩니다. 또한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암과의 관련성을 의심할만한 근거가 있는 경우는 2군, 위험성이 약한 경우는 3군 이하로 분류합니다. WHO의 발표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가공육을 ‘1군(group)’이 아닌 ‘1급(grade)’ 발암물질로 보도했는데 이러한 부주의한 보도가 논란을 키운 면이 있습니다. 관련성이 확실하다는 의미의 발표가 위험의 정도가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 것입니다.
가공육 제조 과정 중 형성되는 N-nitroso compound, 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 등의 화학 물질로 인해 암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기전은 잘 모릅니다. 많은 국내 전문가들은 가공육을 과다 섭취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합니다. 지나친 육류 섭취가 심혈관질환, 암 등의 질병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가공육에 대한 이번 1군 발암물질 분류에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WHO의 이번 발표에 따르면 가공육 50g을 매일 먹는 것이 대장암 위험을 18% 높인다고 합니다. 50g은 핫도그형 소시지 1개, 비엔나 소시지 5개, 슬라이스 햄 5장 정도입니다. 하지만 국민건강영양조사(2010~2012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1일 가공육 섭취량은 6g 정도에 불과한다고 하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참고로 섭취량 상위 5% 이내에 든 사람은 하루 14g, 1% 이내인 사람은 151g을 섭취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많이 먹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참고: http://www.who.int/features/qa/cancer-red-meat/en/
2015년 9월 19일 토요일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은 일요일 오후처럼 짧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지금. 일요일 오후 어둠이 깔리는 놀이터에서의 시간, 열서넛 소년의 기분을 다시 느낍니다. 우리를 둘러싼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흐릅니다. 당신도 느끼나요? 이런 기분을 나만 느낀다면 못견디게 억울해질 거에요.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딸아이와의 전쟁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이제 혼자서도 이를 닦지만 네살 딸은 아직 이를 닦아줘야 한다. 이닦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욕실에 들어가 칫솔을 물게 하려면 여러 차례 실랑이를 해야한다. 이를 닦으라고만 하면 도망을 가서 종종 번쩍 안아다 억지로 세면대 앞에 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이닦기가 시작된다.
잠들기 전엔 꼭 책을 두세 권씩 읽어주어야 하는데, 이를 닦기 전에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한다. 밤에 아이들 옆에 누워 책을 읽어줄 때쯤이면 대개는 녹초가 된 상태로 책을 읽어주며 졸다 깨다 하는 적도 많다. 그럴 땐 다시 일어나 이를 닦이는게 또 힘든 일이라 이를 먼저 닦지 않겠다고 하는 딸에게 짜증을 낼 때도 있다. 어제 밤의 문제도 이를 먼저 닦느냐 책을 먼저 읽느냐 하는 것이었다.
딸은 네 살 터울 오빠보다 훨씬 고집이 세고 떼도 많았다. 제 뜻대로 안되면 떼를 쓰는 버릇을 이번에야말로 고치고 말리라. 어른답게 차분하고 단호하게. 왜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아이와의 대화는 같은 말의 무한 반복이었다.
"책 읽고 이 닦을래."
"안돼. 이 먼저 닦고 책 읽는거야."
아이는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왜, 왜, 왜 이 먼저 닦아야 하는데. 늘 책 먼저 읽어줬잖아. 사실 왜 이를 먼저 닦아야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차분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던 마음가짐은 5분도 되지 않아 무너졌고, 어느새 나도 아이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어른답게 대했다면 아이가 이렇게 심하게 떼를 쓰진 않았을까.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랫집과 층간 소음으로 말썽이 있던 터라 아이 울음 소리에 또 민원이 접수될 수도 있었다. 아이가 떼를 쓰며 발을 동동 구르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았다. 숨이 넘어갈듯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기도 했다.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모습에 놀랐는지 딸은 더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는데 완벽하게 실패한 상태였고, 내 아이를 향한 스스로의 폭력적인 행동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그만두어야 하나. 아니, 여기서 물러서면 버릇이 더 나빠질지도 몰라. 제발, 이제 아빠 말좀 들어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30분이 넘는 혼돈의 상황을 끝낸 것은 울먹거리느라 알아듣기도 힘든 아이의 말이었다.
아빠, 말대로, 이, 닦고, 책, 읽을께.
아이도 나도 땀 범벅이었다. 드디어 고집을 꺾었다는 안도감은 개뿔, 후회와 자책감이 엄청나게 밀려왔다. 혼자서 이도 잘 못닦는 네살짜리 딸을 데리고 뭐하는 짓인가. 이를 먼저 닦든 책을 먼저 읽든 그게 뭐그리 문제인가. 나는 제대로 된 아빠인가.
이를 닦아주는데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내 행동이 상처가 되어 오래 남진 않을까. 당분간 아빠를 본체만체 하면 어떡하나. 이를 닦는 동안 딸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까 많이 화내서 미안해. 아빠 말 들어줘서 고마워. 내 사과를 받아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란히 누워 책을 읽을 때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졸음이 쏟아지는지 눈을 깜빡깜빡하며 비비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아이는 씩 웃으며 한 마디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나 아빠 말대로 이 먼저 닦고 책 읽었어.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