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이제 혼자서도 이를 닦지만 네살 딸은 아직 이를 닦아줘야 한다. 이닦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욕실에 들어가 칫솔을 물게 하려면 여러 차례 실랑이를 해야한다. 이를 닦으라고만 하면 도망을 가서 종종 번쩍 안아다 억지로 세면대 앞에 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이닦기가 시작된다.
잠들기 전엔 꼭 책을 두세 권씩 읽어주어야 하는데, 이를 닦기 전에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한다. 밤에 아이들 옆에 누워 책을 읽어줄 때쯤이면 대개는 녹초가 된 상태로 책을 읽어주며 졸다 깨다 하는 적도 많다. 그럴 땐 다시 일어나 이를 닦이는게 또 힘든 일이라 이를 먼저 닦지 않겠다고 하는 딸에게 짜증을 낼 때도 있다. 어제 밤의 문제도 이를 먼저 닦느냐 책을 먼저 읽느냐 하는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책을 먼저 읽어달라는 딸에게 오늘은 이부터 닦는거라 선포를 했다. 역시 여느 때처럼 아이는 책을 먼저 읽겠다 고집을 부렸고, 책을 읽어주지 않자 울음을 터뜨렸다. 최근엔 떼를 쓰다가도 잘 타이르고 달래면 말을 듣곤 했지만 어제 밤엔 영 막무가내였다. 졸음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은 졸리면 괜한 떼를 더 쓰게 마련이다.
딸은 네 살 터울 오빠보다 훨씬 고집이 세고 떼도 많았다. 제 뜻대로 안되면 떼를 쓰는 버릇을 이번에야말로 고치고 말리라. 어른답게 차분하고 단호하게. 왜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아이와의 대화는 같은 말의 무한 반복이었다.
"책 읽고 이 닦을래."
"안돼. 이 먼저 닦고 책 읽는거야."
아이는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왜, 왜, 왜 이 먼저 닦아야 하는데. 늘 책 먼저 읽어줬잖아. 사실 왜 이를 먼저 닦아야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차분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던 마음가짐은 5분도 되지 않아 무너졌고, 어느새 나도 아이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어른답게 대했다면 아이가 이렇게 심하게 떼를 쓰진 않았을까.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랫집과 층간 소음으로 말썽이 있던 터라 아이 울음 소리에 또 민원이 접수될 수도 있었다. 아이가 떼를 쓰며 발을 동동 구르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았다. 숨이 넘어갈듯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기도 했다.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모습에 놀랐는지 딸은 더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는데 완벽하게 실패한 상태였고, 내 아이를 향한 스스로의 폭력적인 행동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그만두어야 하나. 아니, 여기서 물러서면 버릇이 더 나빠질지도 몰라. 제발, 이제 아빠 말좀 들어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30분이 넘는 혼돈의 상황을 끝낸 것은 울먹거리느라 알아듣기도 힘든 아이의 말이었다.
아빠, 말대로, 이, 닦고, 책, 읽을께.
아이도 나도 땀 범벅이었다. 드디어 고집을 꺾었다는 안도감은 개뿔, 후회와 자책감이 엄청나게 밀려왔다. 혼자서 이도 잘 못닦는 네살짜리 딸을 데리고 뭐하는 짓인가. 이를 먼저 닦든 책을 먼저 읽든 그게 뭐그리 문제인가. 나는 제대로 된 아빠인가.
이를 닦아주는데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내 행동이 상처가 되어 오래 남진 않을까. 당분간 아빠를 본체만체 하면 어떡하나. 이를 닦는 동안 딸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까 많이 화내서 미안해. 아빠 말 들어줘서 고마워. 내 사과를 받아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란히 누워 책을 읽을 때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졸음이 쏟아지는지 눈을 깜빡깜빡하며 비비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아이는 씩 웃으며 한 마디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나 아빠 말대로 이 먼저 닦고 책 읽었어. 오늘은.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이제 혼자서도 이를 닦지만 네살 딸은 아직 이를 닦아줘야 한다. 이닦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욕실에 들어가 칫솔을 물게 하려면 여러 차례 실랑이를 해야한다. 이를 닦으라고만 하면 도망을 가서 종종 번쩍 안아다 억지로 세면대 앞에 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이닦기가 시작된다.
잠들기 전엔 꼭 책을 두세 권씩 읽어주어야 하는데, 이를 닦기 전에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한다. 밤에 아이들 옆에 누워 책을 읽어줄 때쯤이면 대개는 녹초가 된 상태로 책을 읽어주며 졸다 깨다 하는 적도 많다. 그럴 땐 다시 일어나 이를 닦이는게 또 힘든 일이라 이를 먼저 닦지 않겠다고 하는 딸에게 짜증을 낼 때도 있다. 어제 밤의 문제도 이를 먼저 닦느냐 책을 먼저 읽느냐 하는 것이었다.
딸은 네 살 터울 오빠보다 훨씬 고집이 세고 떼도 많았다. 제 뜻대로 안되면 떼를 쓰는 버릇을 이번에야말로 고치고 말리라. 어른답게 차분하고 단호하게. 왜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아이와의 대화는 같은 말의 무한 반복이었다.
"책 읽고 이 닦을래."
"안돼. 이 먼저 닦고 책 읽는거야."
아이는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왜, 왜, 왜 이 먼저 닦아야 하는데. 늘 책 먼저 읽어줬잖아. 사실 왜 이를 먼저 닦아야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차분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던 마음가짐은 5분도 되지 않아 무너졌고, 어느새 나도 아이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어른답게 대했다면 아이가 이렇게 심하게 떼를 쓰진 않았을까.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랫집과 층간 소음으로 말썽이 있던 터라 아이 울음 소리에 또 민원이 접수될 수도 있었다. 아이가 떼를 쓰며 발을 동동 구르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았다. 숨이 넘어갈듯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기도 했다.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모습에 놀랐는지 딸은 더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는데 완벽하게 실패한 상태였고, 내 아이를 향한 스스로의 폭력적인 행동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그만두어야 하나. 아니, 여기서 물러서면 버릇이 더 나빠질지도 몰라. 제발, 이제 아빠 말좀 들어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30분이 넘는 혼돈의 상황을 끝낸 것은 울먹거리느라 알아듣기도 힘든 아이의 말이었다.
아빠, 말대로, 이, 닦고, 책, 읽을께.
아이도 나도 땀 범벅이었다. 드디어 고집을 꺾었다는 안도감은 개뿔, 후회와 자책감이 엄청나게 밀려왔다. 혼자서 이도 잘 못닦는 네살짜리 딸을 데리고 뭐하는 짓인가. 이를 먼저 닦든 책을 먼저 읽든 그게 뭐그리 문제인가. 나는 제대로 된 아빠인가.
이를 닦아주는데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내 행동이 상처가 되어 오래 남진 않을까. 당분간 아빠를 본체만체 하면 어떡하나. 이를 닦는 동안 딸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까 많이 화내서 미안해. 아빠 말 들어줘서 고마워. 내 사과를 받아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란히 누워 책을 읽을 때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졸음이 쏟아지는지 눈을 깜빡깜빡하며 비비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아이는 씩 웃으며 한 마디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나 아빠 말대로 이 먼저 닦고 책 읽었어.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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