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4일 화요일

외할머니




당신은 1928년 남도의 어느 마을에서 유지의 첫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딸이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어려서 방문 밖으로 들리는 한자책 읽는 소리만을 듣고 전체를 기억할만큼 영특했다고 합니다. 나중 어른들 말씀으론 고등교육을 받았다면 뛰어난 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요. 

머리가 좋아 천재로 소문이 났던 오빠는 인물도 훤칠해 많은 동네 처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지만, 그 시대에 태어난 죄인지 아님 너무 영리했기 때문인지 어느날 순사에게 잡혀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꽃다운 열일곱 나이에, 어려서부터 일본에서 고학한 건너 마을 남자를 소개받아 결혼을 했어요. 문밖으로 몰래 훔쳐본 남편감의 모습이 은근히 맘에 들었고, 남편이 될 청년은 일본에서 가져온 화장품과 노리개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두 해가 지나 첫 딸이,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 기다리던 첫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당시론 늦게 가진 편이라 정이 많은 남편은 뛸뜻이 기뻐했고, 아이들을 당신 무릎에 앉히다시피 해 키웠지요. 그랬기에 어린 첫째 아들이 무언가를 잘못 먹고 탈이 나 앓기 시작한지 며칠만에 죽었을 때 그 슬픔은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스물셋 나이에 한국 전쟁이 일어났고 마을에서도 군인들 사이의 총질이 있었지만 가족들은 다행히 큰 탈 없이 무사히 종전을 맞았습니다. 그 시대의 여인네들이 그랬지만, 손재주가 뛰어나 남편의 양복을 직접 만들 정도였지요. 음식 솜씨도 좋은데다 손도 커서 명절엔 늘 주변에 음식을 나눠주곤 했었어요. 

첫째 아들을 잃은 뒤 몇 년이 지나 아들 셋, 딸 하나를 더 낳았고, 다행히 아이들은 건강하게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성격을 닮아 반듯하게 자랐고, 하나같이 따뜻하고 성실했지요. 이제 부모로서 해야할 일을 다 했으니 앞으로는 행복하고 평온하게 늙어가리라 생각했습니다. 군 제대를 앞둔 둘째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군용차를 몰다 생긴 교통사고였습니다. 수술실 앞에서 몇 번을 까무라쳤을까. 뇌출혈을 비롯한 외상으로 몇차례 큰 수술을 받은 아들은 목숨은 건졌지만 네살 아이 지능으로 되돌아가버렸고, 이후로는 보호자가 없으면 길을 잃을까봐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문을 잠궈두어야하는 아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 속 큰 짐의 무게는 더해갔겠지요. 매달 적지 않은 금액의 연금이 나와 생활에 도움이 되었지만, 쾌활하고 정많던 듬직한 아들을 영영 잃어버린 값이라 생각하면 때론 문득문득 숫자가 찍힌 통장을 찢어버리고픈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당신은 항상 따뜻한 어머니이자 할머니였지요. 

세상을 떠난 뒤 남게 될 둘째 아들에 대한 걱정을 부쩍 입밖에 내게 된 건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기력이 쇠해 자주 병원 생활을 하면서도 퇴원해 집에 가면 굽은 허리로 늘상 하던 집안일을 억척스레 해낸 것도 남겨질 아들에 대한 걱정때문이었겠지요. 돌아가시기전 마지막 입원 이후엔 이전보다 더 자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와 동생을 끔찍히 돌보던 첫째 아들에게, 남은 동생을 잘 봐 달라고 자주 이야기하셨대요. 음식을 스스로 삼키지 못해 코에서 위로 연결되는 관을 통해 죽을 넣어야했고 눈을 떠있는 시간보다 감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이후에도 꽤 오랜 기간 살아계셨던 건, 끝까지 이생에 대한 끈을 접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없었을 미약한 존재가, 이렇게 당신의 삶을 다시 생각하며 그래도 편안히 가시길 염치없이 기도합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만큼 많은 걸 받았지만 아무것도 돌려드리질 못했어요. 


2012.6.30.

2012년 12월 2일 일요일

기억


'응급실에 가야겠어요. 지환이가 혈변을 봤어요.'

아내의 문자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확 들었다.

새벽에 깬 아이는 다시 긴 잠을 자지 않고 울며 보챘다. 태어난지 두해가 되도록 큰 병치레는 커녕 심하게 보채본 적도 없는 아이였다. 어딘가 불편한지 자지러지듯 울음을 터뜨리길 몇 차례, 설사를 하길래 장염이구나 싶었다. 아내가 변 색깔이 좀 이상하다고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이때문에 평소보다 출근 준비가 늦어 마음이 조급해진 아침이었다. 아이를 봐주는 아주머님이 오시자 동네 소아과에 아이를 데리고 가보도록 부탁하고 집을 나섰다. 아내의 문자를 받은건 사람들 사이에 꽉 끼어 한발짝 옆으로 내디디기도 힘든 출근길 2호선 지하철 안에서였다.

아주머님의 연락을 받은 아내는 출근 도중에 집으로 다시 돌아간 상황이었다. 왜 좀더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았을까. 기저귀 색깔이 평소와 다르다고 했을 때 바로 확인했어야 했다. 휴대폰 액정에 선명하게 찍힌 '혈변'이란 단어는 후회와 함께 한동안 잊고있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십년쯤 전이었다. 나는 전공의 1년차였고, 그날은 첫 파견 병원에서 한달간의 소아과 근무를 마치는 마지막 주말이었다. 병동 당직 근무를 하며 응급실에 오는 소아 환자에 대한 호출을 받아야했다. 2차병원의 특성상 병동엔 폐렴이나 장염 등의 단기 입원 환자들이 많았고 몇번의 응급실 당직 근무 때에도 상태가 위중한 아이는 없었다. 비교적 평온한 한달이었다. 적어도 그날 응급실에서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봄날의 토요일 오후였고, 바깥의 날씨는 너무나 좋았다. 응급실은 여느때와 같이 환자들로 가득했지만, 날씨 때문인지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철제 침대에 누운 여자 아이는 초등학교 3-4학년 쯤 되어보였고 단발머리에 나들이 복장을 하고 있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채로 학교 야외 활동을 했는데 열이 나고 구토를 해서 데려왔단다. 창백한 얼굴에 약간 졸려하는 것 빼고는 진찰과 초기 응급 검사 결과 아이에게 큰 이상 소견은 없었다. 탈수가 심한 상태여서 해열제와 수액을 처방하고 입원을 시켰다.

오후 늦게 병실을 찾았을 때 아이의 상태엔 변화가 없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병동 스테이션에 돌아와 입원 시 시행한 검사 결과를 확인했을 때였다. 신장 기능을 나타내는 수치가 정상을 크게 벗어나있었다. 윗년차 전공의에게 전화로 상태를 보고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병실로 돌아가는데, 병실에서 아이의 부모가 뛰쳐나왔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아이가 혈변을 본 것이었다. 침대 시트가 선홍색으로 물들어있었다.

*

"엑스레이 찍었는데 장중첩증 같대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엔 불안이 가득했다. 아이는 몇차례 더 보챘고, 그만큼 혈변을 더 보았다. 소아 환자를 안본지 오래 되었다지만 왜 미리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자책이 다시한번 밀려왔다. 항문을 통해 압력을 주어 장을 풀어주면 대부분 나아지지만, 막상 내 아이의 문제가 되었을 땐 그런 교과서적 지식과 통계는 의미가 없는 법이다. 도통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외래 진료를 보면서도, 머리 속에선 이미 좋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초기 치료가 잘 안되어 수술을 해야했던 몇몇 사례들이 떠올랐다.

십년 전 그날 병실에 있던 아이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의식은 응급실에서 확인했던 것보다 확실히 나빠져있었다. 더이상 이곳에서 관찰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모병원으로 전원하기로 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소견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아이는 온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짧은 파도처럼 지나간 몇 차례의 경련 이후 찾아온 심한 발작은 항경련제를 최대 용량까지 올려 주사를 해도 멈추질 않았다. 아이의 부모는 패닉 상태였고, 시시각각 급속도로 악화되는 상태를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당황스러움을 넘어 공포감에 떨고 있었다. 서둘러 아이를 앰블런스에 실어보내고 나니 바깥은 이미 어둠이 걷히고 동이 튼 뒤였다.

전원 이후 아이는 곧바로 모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며칠 뒤 확인된 병명은 전격성 바이러스 뇌염이었다. MRI로 본 뇌는 폭격을 맞고 난 폐허처럼 끔찍할 정도로 여기저기 얼룩이 져 있었다. 파견 병원에서 돌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한 상태였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매일 아침 중환자실 환자 명단을 확인했고, 아이의 이름이 남아있으면 일단 안심을 했다. 아이는 힘겹게 버티고 있었고, 나는 처음 본 의사가 내가 아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 모른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환자실 주치의는 병세가 워낙 빠르게 진행되어 일찍 전원되었다 해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을거라 했지만 그 말이 위안이 되진 않았다. 소아중환자실은 일부러 피해다녔고 밤이면 악몽을 꾸기도 했다.

용기를 내어 아이를 보러 간 건 한달 쯤 지난 뒤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방문한 그 시간은 부모의 면회시간이었고, 침대 곁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더이상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아빠는 마스크 위 텅빈 시선으로 아이의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의 어깨가 몇번쯤 들썩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나는 면회 시간이 끝나기 전에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떠났다.

다시 두달간의 지방 병원 파견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중환자실 환자 명단에서 그 아이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속에 얹혀있던 무거운 돌덩어리를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아이가 집으로 돌아갔는지,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었는지, 아님 그 힘겨운 싸움을 영영 그만둔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남아있는 의무기록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는 기록을 찾아보지 않았다. 그날의 공포스런 기억과 일부러 다시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고, 그 아이가 어떻게 병원을 나갔는지 알게되는 걸 피하고 싶었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새로운 환자들이 입원하고 퇴원했고,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자연스레 조금씩 묻혀져갔다.

*

아이는 제 엄마 품에 안겨 잠들어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아내와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나왔다. 미안할 따름이었다. 미안한 마음은 대수롭지 않게 무시했던 내 아이와 아내를 향한 것이기도, 십년 전 그 아이와 부모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그 아이의 기억은 문득문득 신경통증을 일으키는 오래된 흉터처럼 그동안에도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 부모의 마음은 이제서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환자들에 대한 기억 중엔 흐뭇하고 뿌듯한 것도 많지만 아프고 안타까운 순간들도 있다. 어느 의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뿌듯한 것이든 안타까운 것이든, 의사로서의 삶을 지속해가는데 도움이 되는 기억들이다. 그 아이와의 만남 이후에도 또다른 아프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꾸덕꾸덕 굳어진 상처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다시 아련한 통증을 일으키곤 한다. 한동안 잊고있던 십년 전 기억이 헤집혀져 뿌옇게 떠올랐다가 가라앉던 오늘처럼.

십년 전 그 봄날의 오후와 같이 환자와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만나야 할 의사들로 북적이는 응급실에서의 일이었다.

2012년 2월 7일 화요일

소금과 건강

고대의 나트륨 섭취량은 100mg(소금으로 0.25g)도 안되었다고 합니다. 5천년 전 중국에서 염장법(음식을 소금에 절여 보관하는 법)이 발명된 뒤 자연스럽게 소금 섭취가 늘어났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냉장고를 사용하면서 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염장은 불필요해졌지만, 가공식품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소금 섭취는 다시 증가하게 됩니다.

소금의 주요 성분인 염화나트륨은 몸에 필요한 미네랄 중 하나입니다. 너무 많아도 문제지만 부족하면 뇌부종 등 신경계 이상을 일으키며, 탈수를 교정하는 수액에 소금 성분이 포함된 것은 이때문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나트륨이 한국인에게나쁜미네랄로 인식된 배경은 짜게 먹는 전통적인 식습관 때문입니다.


○ 한국인 하루 섭취량, 권장기준의 2배 이상 초과

세계 보건기구(WHO)와 한국영양학회에서는 하루 소금 섭취 목표량으로 5g (나트륨 2g)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소금 섭취량은 12~13g(나트륨 4.6g)이며, 국민의 87%가 목표섭취량 이상을 섭취하고 있습니다.(2009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주된 급원 식품은 김치, 양념류(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 쌈장), 라면, 국수 등이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에서 가공식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참고로 미국인의 소금 섭취량은 8.5g(나트륨 3.4g)이며, 75%가 가공식품을 통한 섭취입니다.

짜게 먹는 습관은 고혈압, 심혈관 질환, 만성신장병의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인에게 흔한 암인 위암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고혈압은 소금과 관련된 대표적인 질환입니다. 소금 섭취가 직접적으로 고혈압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지만, 권장량에 맞추어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식습관이 혈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DASH-Sodium 연구에서 다른 식습관을 그대로 둔 채 소금섭취만 절반으로 줄여도 수축기 혈압이 7 mmHg 가량 낮아졌습니다. 특히 고혈압 환자의 30~50% 가량에 해당하는 염분 민감성(salt sensitive) 고혈압의 경우에는 소금 섭취에 따른 혈압의 변화가 큽니다. 하지만 본인이 염분 민감성 고혈압에 해당하는지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므로 일단 고혈압이 진단되면 소금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고혈압 환자에서 저염식의 혈압 강하 효과는 65세 이상, 비만, 신장 기능이 저하된 경우에 더 큽니다. 따라서 이런 분들이 싱겁게 먹었을 때는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중풍, 심장병의 원인인 고혈압은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립니다.

○ 소금 섭취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인 인식과 노력이 필요

외국에서는 소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일찍부터 국가적으로 소금 섭취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 왔습니다. 영국에서는 최근 국가 차원의 캠페인과 대국민 교육을 통해 소금 섭취량을 10% 가량 성공적으로 줄인 바 있으며 일본, 핀란드, 포르투갈 등의 나라도 비슷한 방법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50년대 뇌졸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의 하나였던 일본은 이후 10년간 소금 섭취를 10%가량 줄였는데, 지방 섭취와 비만, 흡연, 음주율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뇌졸중 사망률이 80% 줄어든 것은 이 같은 변화 덕분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식습관과 현재의 소금 섭취량을 고려할 때 소금 섭취 5 g 미만은 우리나라 국민이 하루아침에 달성하기 어려운 기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 10 g 이내의 소금 섭취를 일차적인 목표로 싱거운 음식을 선택하거나 먹는 방법을 조절하여 소금 섭취량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국물을 남기면 약 1 g의 소금 섭취를, 김치 섭취량을 평소보다 1/2 접시 정도 줄이면 약 1 g의 소금 섭취를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한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면 하루 세끼 식사 때 국물을 남기고 김치 섭취량을 줄이는 것으로 5~6 g 정도의 소금 섭취량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또한 식단에 나트륨 함량이 많은 가공식품이 포함되어 있다면 소금 섭취를 줄이는 것이 어려우므로, 가공식품(라면, , 통조림, 스낵, 빵류 등), 염장음식(김치, 젓갈, 장아찌, 자반 등), 국물음식(찌개, , 스프 등), 소스음식(간장, 된장, 고추장, 토마토소스, 데리야키소스 등)은 가급적 식단에서 줄입니다.


주요 식품의 나트륨 함량: 왼쪽보다 오른쪽 컬럼의 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 건강에 좋다는 저염소금

소금은 지하의 암염 광산이나 바닷물에서 만들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바닷물을 말려서 소금을 얻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천일염이고 이를 정제한 것이 정제염입니다. 천일염에는 나트륨 외에 칼슘, 칼륨,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이 더 많기 때문에 흔히 건강에 이롭다고 합니다. 하지만 천일염에 있는 미네랄은 매우 소량으로 일반적인 한국인 소금 섭취를 기준으로 했을 때 칼슘, 칼륨의 경우 권장 섭취량의 2-3% 정도밖에 안됩니다. 천일염으로 미네랄을 충분히 섭취하려면 나트륨 섭취 또한 엄청나게 많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염소금은 나트륨 대신 칼륨을 섞어 짠맛은 유지하면서도 나트륨 함량을 50% 가량으로 줄인 소금입니다. 나트륨을 적게 먹어야 하는 고혈압, 심장질환 환자들을 위한 대용 소금이라 할 수 있는데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인기가 높아져 일반 소금에 비해 3-4배 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염소금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아직 부족하며, 나트륨 대신 포함된 칼륨을 과도하게 섭취했을 때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 전체적인 식습관 관리가 우선되어야

이처럼 소금을 골라 먹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확실치 않습니다. 소금을 골라 먹는 것보다 이미 소금이 많이 들어간 가공 식품, 인스턴트 식품을 적게 먹고 외식을 줄이는 등 평소 식습관을 바꾸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굳어진 식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으므로 어릴 때부터 싱겁게 먹도록 식습관을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이미 짠 음식에 길들여졌다면 서서히 입맛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외국의 예처럼 가정에서뿐 아니라 판매되는 음식의 소금 함량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 역시 병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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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t and Lifestyle Recommendations. 2011 American Heart Association, Inc. http://www.heart.org/HEARTORG/GettingHealthy/Diet-and-Lifestyle-Recommendations_UCM_305855_Article.jsp Accessed August 18, 2011.
American Heart Association. CDC report on usual sodium intake compared with dietary recommendations [press release]. October 20, 2011. http://newsroom.heart.org/pr/aha/cdc-report-on-usual-sodium-intake-217757.aspx Accessed January 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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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Standards Agency. Agency research reveals a drop in British salt consumption. http://www.food.gov.uk/news/newsarchive/2007/mar/saltresearchmar07 Accessed August 24, 2011.
National Center for Social Research. An assessment of dietary sodium levels among adults (aged 19-64) in the UK general population in 2008, based on analysis of dietary sodium in 24 hour urine samples. June 2008. http://www.food.gov.uk/multimedia/pdfs/08sodiumreport.pdf Accessed January 13, 2012.
Davis BR, Oberman A, Blaufox MD, et al. Lack of effectiveness of a low-sodium/high-potassium diet in reducing antihypertensive medication requirements in overweight persons with mild hypertension. TAIM Research Group. Trial of Antihypertensive Interventions and Management. Am J Hypertens. 1994;7:926-932.
Bibbins-Domingo K, Chertow GM, Coxson PG, et al. Projected effect of dietary salt reductions on future cardiovascular disease. N Engl J Med. 2010:36:590-599.
Smith-Spangler CM, Juusola JL, Enns EA, Owens DK, Garber AM. Population strategies to decrease sodium intake and the burden of cardiovascular disease: a cost-effectiveness analysis. Ann Intern Med. 2010;152:481-487, W170-W173.
Stolarz-Skrzypek K, Kuznwtsova T, Thijs L, et al. Fatal and nonfatal outcomes, incidence of hypertension, and BP changes in relation to urinary sodium excretion. JAMA. 2011;305:1777-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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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FJ, MacGregor GA. Salt reduction lowers cardiovascular risk: meta-analysis of outcome trials. Lancet. 2011;378:380-382.

2012년 1월 30일 월요일

비타민 D와 건강


비타민 D는 뼈의 성장과 유지, 체내 칼슘과 인의 항상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칼슘 흡수와 분배가 제대로 안돼 뼈가 약해지고, 성장기 아동에서는 구루병, 성인에서는 골연화증과 골다공증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식품을 통해서만 섭취할 수 있는 다른 비타민과는 달리 비타민 D는 식품을 통한 섭취보다 햇빛의 자외선을 받아 피부에서 합성되는 양이 더 많습니다. 햇빛 또는 식품으로부터 공급된 비타민 D는 간과 신장을 거쳐 활성화되고, 최종적으로 장에서 칼슘과 인의 흡수를 촉진시킵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혈중의 칼슘이 부족해짐에 따라 뼈에 있는 칼슘이 빠져나오므로 결국 뼈가 약해지게 됩니다.

최근에는 뼈에 대한 영향 이외에 비타민 D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데, 다수의 연구에서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지며, 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 암 발생의 위험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비타민 D 수치를 높여주었을 때 이러한 질병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부족한가?

비타민 D혈액 검사를 통해 부족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타민 D의 대사 물질인 25(OH)-vitamin D 수치를 측정하는 것인데, 전문가들은 30ng/mL 이상을 적정 수치로 권하며 20ng/mL 미만은 결핍(deficiency)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햇빛이 비교적 풍부해 비타민 D 부족이 적을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실제로는 야외 활동 감소, 자외선 차단제 사용, 비만 등의 원인으로 비타민 D 부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47%, 여성의 65%20ng/mL 미만이었으며, 적정 수치인 30ng/mL 이상인 경우는 남성의 13%, 여성의 7%에 불과했습니다. 10명 중 1명만 적정 수준이며, 5명은 비타민 D 부족 상태인 것입니다.

    어떻게 높일 수 있나?

비타민 D 부족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햇빛을 쬐는 것입니다. 햇빛이 많은 한낮에 하루 15~20, 3회 이상 팔다리를 내놓고 일광욕을 하는 것으로 예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낮에 햇빛을 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고 한낮에는 건물 안에서 업무를 하는 직장인, 집 안에서만 주로 생활을 하는 주부, 하루 내내 학교나 도서관에서 생활을 하는 학생들, 이런 현대인의 생활습관이 앞에서 언급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와 같은 비타민 D 부족 상태를 만든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비타민 D 부족의 위험이 더 높아집니다. 비타민 D 수치는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겨울에는 일조량이 부족하고 두꺼운 옷을 입게 되므로 비타민 D 합성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계절에 따른 비타민 D 수치를 비교해보면 여름-초가을이 가장 높고, 겨울-초봄이 가장 낮습니다. 여름에 비타민 D 권장 수치를 유지하던 사람도 겨울이 되면 부족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타민 D 수치를 높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음식을 통한 섭취입니다. 고등어, 연어, 참치, 정어리 같은 기름진 생선, 계란 노른자, 우유, 버섯, 새우, 대구 간유 등이 비타민 D가 많이 포함된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음식을 통한 섭취가 어려울 경우 별도로 비타민 D 보충제를 복용할 수 있는데, 종합비타민제의 경우 일반적으로 100-200단위(IU) 가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영양학회의 경우 음식과 보충제를 합해 소아와 성인에서 200IU, 50세 이상에서 400IU를 섭취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대한골대사학회에서는 50세 이상에서 800IU 섭취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비타민 D를 과량 섭취했을 때는 체내에 칼슘 축적이 과도해져 독성이 생길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상한섭취량인 2400IU 이상으로 보충제를 섭취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먼저 혈액 검사로 확인하고, 햇빛과 음식을 통한 보충이 우선되어야

비타민 D는 혈액 검사를 통해 부족 여부를 쉽게 체크할 수 있는 비타민입니다. 주로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경우 비타민 D 부족을 의심할 수 있고, 노인이나 비만한 사람의 경우에도 검사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비만 환자의 경우 체지방이 비타민 D를 흡수해버려 비타민 D 부족에 취약해지며, 노인의 경우 비타민 D 합성 능력이 떨어지므로 권장 섭취량이 높아지는 50대 이후에는 보다 적극적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20ng/mL 미만인 결핍 상태로 확인된다면 어떻게 보충할지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햇빛을 더 쬘 수 있도록 야외 활동과 운동 시간을 늘리고, 평소 비타민 D가 풍부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도록 합니다. 너무 과도하게 햇빛을 쬐면 일광화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비타민 D 부족이 심하거나 골다공증이 있는 등 보다 적극적인 섭취가 필요한 경우는 보충제를 복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비타민 D가 심혈관질환이나 암 예방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이들 질환의 예방을 위해 비타민 D 보충제를 복용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Before Sunset

수많은 인상적인 대사들과 아름다운 장면들로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비포 선라이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그들을 담아내던 순간이 아니었다. 영화의 마지막, 두 사람이 반나절동안 지나쳤던 장소를 하나하나 다시 짚어가는 카메라는 그 짧은 시간동안 그들이 얼마나 멋진 시간을 보냈는지를 수십마디 대사보다 더 끝내주게 이야기 해 준다. 그 순간만큼은 영화 밖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제시와 셀린느는 한명은 버스에서, 한명은 기차에서 창 밖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감성은 특별하다. 짧게 이야기하면 하룻밤동안의 원나잇 스탠드 정도로 정리될 수도 있을만한 이야기. 먼 곳으로의 여행은 늘 사람을 어느정도는 들뜨게 하니까. 하지만 그는 독특한 대사의 리듬과 내용, 그들의 미묘한 감정선들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면서 그들의 하룻밤 사랑을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인생에 있어서 잊혀지지 않는 경험으로 만드는 솜씨를 보여준다.  

아뭏든, 제시와 셀린느가 그렇게 9년만에 다시 만났다. 9년 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들의 만남을 위해 별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다. 그저 그녀가 그를 보려고 찾아왔을 뿐. 두 사람이 만나기 전의 짧은 시간동안 카메라는 앞으로 두사람이 한시간여 동안 지나치게 될 곳들을 슬쩍 미리 거꾸로 되짚어서 그들이 만나게 되는 작은 서점으로 이동한다.



9년의 세월을 한꺼번에 만회하리라 마음먹기라도 한 듯, 그들은 9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단어를 짧은 순간동안 멀미 날 정도로 쏟아낸다. 9년 전에 비해 산만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 긴 시간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본론으로 들어가기까지 소비한 시간은 지나칠 정도로 짧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만나서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9년 전의 하루가 그들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또 어떤 것들을 잃어버렸는지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한다. 제시는 자신의 의미없는 결혼생활에 대해 탄식하며 약속한 날에 나타나지 않았던 그녀를 원망하고, 셀린느는 그를 만난 이후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더이상 로맨틱한 사랑을 찾을 수 없었다며 투정을 부린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어차피 더 나아가봐야 불륜... 각각 자신의 방식대로 그 두사람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를 두 사람의 아내와 남편에 대한 배려는 두 사람이 회포 풀기에도 바쁜 시간동안 끼어들 틈 전혀 없이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줄곧 결국 서로를 찾아 헤메던 시간들을 설명해주기 위한 양념처럼 곁들여져 있을 뿐이다.


그래. 그래도 그럴 수 있다. 날마다 이어지는 의미없는 일상,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나타난 멋진 옛 사랑. 영화같은 로맨틱한 하룻밤을 보냈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마음 한구석 동요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참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 아름답기만 한 기억이 마음 속을 비집고 들어와 오랜 시간동안 되풀이해 반복되었다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이들을 이해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불편해질 법도 한데. 역시 그런 불편함을 잊게 해주는 건 보일 듯 말듯 잠깐 잠깐 내비치는 그들의 감정을 놓치지 않고 찰나의 느낌에 무한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외면하기 힘든 달콤한 선물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느끼며 셀린느의 집 계단을 오르고,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쓸데없는 기대따윈 버리라고 쏘아붙이던 그녀는 그를 위해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며 그를 살살 유혹한다. 게다가 재즈 싱어 흉내를 내고 춤을 추며 떠는 귀염까지. 그녀에게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일지라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만한 행동인데, 하물며 제시야. 
영화는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6개월 뒤에 다시 만나게 될까, 아닐까를 묻는 것 자체를 그다지 의미없게 만들었던 전작과는 사뭇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근데, 너... 이러다가 비행기 놓치는 거 아냐?"
"나도 알아." 

아마 제시는 떠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 사실을 셀린느도 충분히 알고 있었겠지. 그리고 그 다음은... 글쎄...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9년이나 지난 지금, 나만큼이나 나이를 먹어버린 두사람. 애초부터 이전처럼 쿨한 결말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지점에서 영화는 빛을 잃고 현실로 내려앉는다.

이제는 좀 나이들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을 다시 한 곳에서 본다는 것만으로 반가운, 그들의 재회에 대한 소고는 여기까지.


2005.2.12




2011년 11월 17일 목요일

피로하시다구요?


컵에 물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컵 밖의 바닥에 물이 흘렀습니다. 왜일까요?

먼저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컵이 깨졌거나 구멍이 났다.

'피로'때문에 병원을 찾는 환자의 생각은 이와 같습니다. 피로라는 증상이 생기면 내 몸 어딘가가 깨졌거나 구멍이 났다고 생각하는거지요.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할만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인데, 피로가 아닌 다른 증상이 생긴 경우에도 대개 이렇게들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론 다음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 컵 크기보다 많은 물이 들어와서 넘쳤다.

'증상'이란 현상은 바닥에 흐른 물과 같습니다. 잘 닦여있어야 할 식탁 위를 적신 물.

만약 컵 어딘가가 깨지거나 구멍이 났다면 찾아서 고치고 때워야합니다. 병원에서 하는 검사는 그 부위를 찾는 과정이며, 적절한 치료는 찾은 구멍을 고치고 때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컵에 난 구멍이 아니라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온 물이었다면, 해결책은 물이 지나치게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겠지요. '피로'라는 증상으로 생각해보면 과로를 했거나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라 할 수 있고, 그 해결책은 일을 줄이거나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됩니다.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가장 흔한 경우는 세번째의 경우입니다.

- 담겨있는 물은 그대로이나, 컵의 크기가 줄어들어서 넘쳤다.

이 경우에도 물이 바닥으로 흐르는, 즉 '증상'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내 몸이 고장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일이나 스트레스가 많아진 것도 아닙니다. 컵에 구멍이 나거나 깨진 것이 아니니 병원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피로를 느끼는데 피로가 생길만한 이유를 잘 모르겠고, 병원을 찾아도 이상이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체력이 떨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컵의 크기, 즉 체력이 줄어드는 제일 흔한 이유는 나이가 드는 것입니다. 40대가 되었는데 2-30대 때의 체력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50대가 되었는데 40대 때의 체력과 같을 수도 없지요. 나이가 많아질수록 5, 10년 정도가 아니라 당장 1, 2년 뒤가 다릅니다. 내 컵의 크기는 줄어드는데도 직책이 높아지면서 직장과 사회에서 내게 요구하는 것은 더 많아집니다. 가사를 담당하는 여성의 경우도 육아 부담이 늘어나고 아이가 커가면서 나에 대한 주변의 요구는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이 경우에도 물을 덜어내는 것, 즉 업무나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겠습니다. 어떤 환자분의 경우엔 아예 이직을 하거나 시골로 내려갔더니 증상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쉽게 할 수 없고, 내가 일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다고 바로 줄일 수 있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외부의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결국 나 스스로를 바꿔야합니다. 컵의 크기, 즉 내 체력을 다시 키워야한다는 것입니다. 흡연 중이라면 금연을 하고, 잦은 과음을 피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건강 관리의 원칙만 잘 지켜도 컵의 크기는 늘어납니다.

대부분의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기본적인 건강 관리는 재미도 없고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도 않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우리는 재테크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건강에 대해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투자한 효과가 당장 드러나지 않으니 기초 체력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에 인색합니다. 보다 쉬운 방법을 찾기 위해 피로의 원인이 간때문이 아닌데도 간장약을 찾기도 하고, 보약이나 영양제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이 잘 되어있지 않다면 컵의 크기는 쉽게 줄어들어 물이 넘치고, 그때마다 병원을 찾게 됩니다.

프로 운동 선수의 예를 생각해볼까요? 시즌이 시작되고 잘 나가던 성적이 시즌 중반을 지나면서 떨어지는 경우를 흔히 보는데, 대개는 동계 훈련을 착실히 하지 않아 체력이 부족한 경우입니다. 운동으로 밥을 먹고 사는 프로 선수들도 한 시즌을 보내다보면 체력이 문제가 되는데, 스포츠 한 시즌보다 훨씬 길고 치열한, 삶이란 레이스를 펼쳐나가는 우리들은 더하겠지요.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위약 효과(Placebo Effect)

위약(僞藥; Placebo; 라틴어로서 '마음에 들다'라는 뜻)은 흉내낸, 혹은 조작된 의학적인 처치를 말한다. 위약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 주관적인 병세의 호전이나 실제 호전을 보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위약 효과(Placebo Effect)라고 한다.
- 출처: 위키피디아


새로 개발된 약이 시판되려면 그 약이 치료하려는 질병에 대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한 집단에서 약을 먹기 전후만을 비교하면 질병의 경과 변화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상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치료약과 가짜약(위약)을 먹여 반응의 차이를 비교한다. 이러한 위약대조연구에서는 위약을 먹인 그룹도 흔히 증상의 호전을 보이는데, 치료약의 효과가 이를 확실히 뛰어넘을 때 비로소 그 약의 효과가 증명된다.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위약으로 2-30%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특히 통증, 구역 증상, 천식, 공포증 등에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최고 권위의 의학학술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올해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위약의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40여명의 천식 환자들을 상대로 위약과 실제 치료제의 효과를 비교했다. 천식에 실제로 쓰는 진짜 흡입제(알부테롤), 가짜 흡입제(위약), 가짜 침 치료를 교대로 받게한 뒤 환자가 느끼는 증상 정도(주관적 지표)와 폐기능검사(객관적 지표)를 치료 전후에 측정했다.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폐기능검사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20% 좋아졌지만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에는 7% 정도에 그쳤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50% 좋아졌다고 느꼈는데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에도 45% 좋아졌다고 느꼈다. 진짜 치료든 가짜 치료든,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의 변화 정도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임상시험이나 실제 진료에서 위약이 투여되는지 여부는 환자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위약이라는 것을 알고 먹는 경우에는 어떨까. 언뜻 생각해보면 이 경우엔 병이 좋아질 것이란 믿음을 갖기 어려워 효과가 없을 것 같은데, 또 다른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작년 'PLoS One' 학술지를 통해 발표한 연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연구는 80명의 과민성장증후군(Irritable Bowel Syndrome)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는데, 먼저 모든 대상자에게 다음 네 가지 측면을 강조하는 15분 가량의 설명을 듣도록 했다.
1) 위약의 효과가 실제로 크다.
2) 우리 몸은 위약에 대해 조건반사와 같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3) 긍정적인 태도가 도움이 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4) 믿음을 가지고 위약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위약군과 무치료군으로 나누어 위약군에는 위약이라 쓰여진 젤라틴 캡슐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도록 하고 무치료군에는 아무런 처치도 하지 않았다.
3주 뒤에 평가했을 때 위약을 먹은 사람들이 먹지 않은 사람들보다 증세가 호전되었고, 호전된 정도는 과민대장증후군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 최신 치료약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놀랍게도 환자가 위약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위약은 경우에 따라 실제 치료와 맞먹는 큰 효과를 보이는데, 객관적인 검사 결과나 질병 자체의 경과보다는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적절한 치료가 안될 경우 점점 진행해 만성 염증이 기관지를 망가뜨릴 수 있는 천식과 같은 병의 경우엔, 위약으로 주관적인 증상이 좋아졌다 해도 결국 질병의 경과는 나빠지게 될 것이다. 반면에 증상 자체가 문제인 과민성장질환과 같은 기능적 질환의 경우엔 위약이 보다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특정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좋아졌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위약 효과일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좋아지는 것은 본인의 느낌일 뿐, 실제 내 몸에 미치는 객관적인 효과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좋아질 것이란 믿음이 클수록 주관적인 효과를 느낄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구입한 제품이 약만큼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막상 먹을 때는 '그래도 도움이 되겠지.'란 생각을 가지기 마련이며,두번째 연구의 결과와 같이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먹는 것만으로 증상이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판매되는 많은 제품들 중 위약 효과를 광고하는 경우는 절대 없으며, 대부분의 구매자는 근거가 부족한 과장된 광고와 통념을 믿고 비싼 금액을 지불한다. 실제 효과가 아닌 위약 효과라 해도 증상이 나아지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같은 돈으로 대신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기부를 하는 것도 고려해보시길. 좋은 사회적 관계나 선행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도 충분히 많으니 말이다.


참고문헌
Hrobjartsson A, Gøtzsche PC. Is the placebo powerless? An analysis of clinical trials comparing placebo with no treatment. N Engl J Med. 2001 May 24;344(21):1594-602.
Hrobjartsson A, Gøtzsche PC. Placebo interventions for all clinical conditions.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0 Jan 20;(1):CD003974.
Wechsler ME, Kelley JM, Boyd IO, Dutile S, Marigowda G, Kirsch I, Israel E, Kaptchuk TJ. Active albuterol or placebo, sham acupuncture, or no intervention in asthma. N Engl J Med. 2011 Jul 14;365(2):119-26.
Ted J. Kaptchuk, Elizabeth Friedlander, John M. Kelley, M. Norma Sanchez, Efi Kokkotou, Joyce P. Singer, Magda Kowalczykowski, Franklin G. Miller, Irving Kirsch, Anthony J. Lembo. Placebos without Deception: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in Irritable Bowel Syndrome. PLoS One. 2010; 5(12): e15591.

당신이 영양제를 먹는 이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질문을 해보았다.

"당신이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먹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질문에 대한 답은 최근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족이 챙겨줘서, 선물을 받아서, 음식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의사의 권유로, 의무감으로, 남들이 다 먹으니까 등이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넓게 보면 결국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것이다.

집에서 먹는 일상적인 식사 이외의 다른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이 뭘까? 선택한 음식이 맛이 있다거나, 그 음식을 파는 식당의 분위기가 좋다는 등의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이런 가치 판단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정할 수 있고, 타인의 경험이 반영되기도 하지만 결국 선택의 기준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wikipedia

영양제나 건강식품을 고를 때는 어떠한가? 맛이나 포장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품의 가치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기준은 그 제품이 내 건강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는 것일텐데 그에 대한 근거는 크게 두가지, 경험과 과학적 사실로 구분된다.

첫번째 근거인 경험에는 다른 사람의 경험과 나 자신의 경험이 모두 해당된다. 나 자신의 경험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처음 선택할 때는 주변 사람이나 관련 웹사이트 등을 통해 '이 제품을 써봤더니 좋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영양제를 구입한다. 먼저 먹어본 사람의 평가를 듣고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해서 결국 스스로 먹어보고 경험한 뒤 먹는걸 중단할지, 추가로 더 구입해 계속 먹을지 판단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경험을 통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 실제 그 제품의 효과가 아니라 위약(placebo) 효과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새로 개발된 치료약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는 단순히 치료약을 먹기 전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치료약과 가짜약(위약)을 먹여 반응의 차이를 비교한다. 이러한 위약대조연구에서는 위약을 먹인 그룹도 증상의 호전을 흔히 보이는데, 치료약의 효과가 이를 뛰어넘을 때 비로소 그 약의 효과가 증명된다. 질병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위약으로 30%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니, 열명 중 세명은 효과가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효과를 느꼈을 때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확률이 더 높기때문에, 이러한 경험은 쉽게 확대 재생산된다.



두번째 근거인 과학적 사실의 경우는 믿을만한가? 경험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어디까지 '과학적'으로 볼 것인가부터 문제가 되는데, 특정 성분의 효과에 대해 상반된 결과를 보이는 연구는 흔히 찾을 수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 영역에서 실험실 연구나 동물 연구는 그 근거수준이 가장 낮기때문에,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에서 광고하는 '과학적' 근거의 상당수는 실험실 연구나 질이 낮은 소규모 연구들을 과장한 것이다. 부정적인 연구는 제외하고 효과가 있다고 보고된 연구만 모아 그 효과를 부풀리는 경우도 흔한데,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다.

경험적인 근거를 과학적인 근거로 포장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다는 것인데, 질병의 기전이 충분히 알려져있지 않고 치료 수단도 부족했던 시대에 사용했던 방법이 현재에도 유효하고 안전할까. 역사로만 따지면 현대 의학보다 주술이나 점의 효과를 믿어야할 것이다.

특정 종류의 영양제가 피로나 신체기능에 단기적으로 좋은 효과가 있다는 믿을만한 연구 결과들도 있다. (물론 반대되는 연구 결과도 많다.) 하지만 효과 못지않게 고려해야 할 것은 부작용일 것이다. 영양제가 인기가 많은 것은 약과 달리 부작용이 없다는 믿음때문이기도 한데, 그러한 믿음 역시 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고용량의 베타카로틴을 비롯한 항산화제가 흡연자에게 오히려 폐암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으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타민E 보충제는 전립선암의 위험을 높이고 셀레늄은 당뇨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제제를 복용하는 경우 오히려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들은 모두 근거 수준이 높은, 매우 잘 짜여진 대규모 연구들이다.

진료실에서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의 장점이 대부분 과장된 것이고,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길 하면 환자들은 흔히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가능하면 쉬운 방법으로 건강을 챙기려 하지만 치료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에도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방법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흡연과 과음을 피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원칙을 지키는 것은 재미도 없고 노력도 필요하지만, 영양제가 건강에 미치는 위해에 대해 최근 보고되는 많은 연구 결과는 기본을 지키지 않고 쉽게 건강을 유지하려고 하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Spiegel D. Placebos in practice. BMJ. 2004 Oct 23;329(7472):927-8.
Haskell CF, Robertson B, Jones E, Forster J, Jones R, Wilde A, Maggini S, Kennedy DO. Effects of a multi-vitamin/mineral supplement on cognitive function and fatigue during extended multi-tasking. Hum Psychopharmacol. 2010 Aug;25(6):448-61.
Kennedy DO, Veasey R, Watson A, Dodd F, Jones E, Maggini S, Haskell CF. Effects of high-dose B vitamin complex with vitamin C and minerals on subjective mood and performance in healthy males. Psychopharmacology (Berl). 2010 Jul;211(1):55-68.
Bjelakovic G, Nikolova D, Gluud LL, Simonetti RG, Gluud C. Mortality in randomized trials of antioxidant supplements for primary and secondary prevention: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AMA. 2007 Feb 28;297(8):842-57.
Klein EA, Thompson IM Jr, Tangen CM, Crowley JJ, Lucia MS, Goodman PJ, Minasian LM, Ford LG, Parnes HL, Gaziano JM, Karp DD, Lieber MM, Walther PJ, Klotz L, Parsons JK, Chin JL, Darke AK, Lippman SM, Goodman GE, Meyskens FL Jr, Baker LH. Vitamin E and the risk of prostate cancer: the Selenium and Vitamin E Cancer Prevention Trial (SELECT). JAMA. 2011 Oct 12;306(14):1549-56.
Mursu J, Robien K, Harnack LJ, Park K, Jacobs DR Jr. Dietary Supplements and Mortality Rate in Older Women: The Iowa Women's Health Study. Arch Intern Med. 2011 Oct 10;171(18):1625-33.

2011년 11월 3일 목요일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래요.

건강검진이 처음이시라는 50대 여성.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데 얼굴에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사소한 소견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드립니다.

"간에 낭종이 있는데 이건 물혹이고 치료할 필요가 없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네? 물혹이 있다구요?"
"네. 하지만 말씀드린대로 이건 문제가 안되는 소견이에요. 그리고 위내시경에서 위염이..."
"간에 있다는 그 물혹은 크기가 큰가요?"
"아뇨. 작습니다. 1센티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럼 그게 커지거나 암 같은 걸로 자랄 수도 있는 건가요?"
"드물게 크기가 커질 수도 있지만 실제 문제를 일으킬 정도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리고 암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아직도 불안해하는 표정이시라,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이런 물혹은 다른 분들한테도 매우 흔합니다. 바깥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전체적인 검사를 해보면 한두개 쯤은 다 가지고 있을거에요."

이 말을 들은 그녀가 비로소 표정이 밝아지는걸 보고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

여러가지 검사가 포함된 건강검진의 경우 결과를 받고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운 용어도 많지요. 낭종(물혹), 결절(딱딱한 혹), 종양(비정상적인 덩어리), 용종(위장이나 담낭 등의 점막에 생기는 혹) 등등. 요즘은 의사들도 환자가 알아듣기 쉽게 풀어 설명하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환자 입장에서 이런 의학 용어들은 생소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드라마나 소설에서 주인공을 죽이는 병은 모두 암이고, 암은 몸 속에 나쁜 혹이 자라는 병으로 알려져있으니 내 몸 속에 혹이 있다는 이야길 들으면 어떤 종류의 혹이든 일단 놀라는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앞의 예에서 나온 것처럼 치료가 불필요하고 추후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그저 변화가 있는지 여부만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건강검진은 증상이 없을 때 큰 병을 미리 잡아내고, 나중에 큰 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건강위험요인을 알게해서 이를 일찍부터 관리하고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소견으로 인해 불필요한 걱정을 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선 불필요한 추가 검사까지 하게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정밀 검사가 필요한 정도의 이상 소견이라면 추가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마음 고생을 하더라도 검사를 진행해야겠지만, 앞의 예처럼 큰 의미 없는 유소견이 나온 경우라면 불필요한 걱정과 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검사 결과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의사와 환자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겠지요.

하루에도 수십번씩 검사 결과를 전달해야하는 의사 입장에서 검사 결과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의학적으로 곧이 곧대로 설명하면 이해하기도 힘들고 괜한 걱정을 키우기 쉬운데, 직접적인 설명보다 해당 결과가 얼마나 흔한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예처럼 말이지요.

허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요.'란 말이, 내게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진료실에서도 그 말은 큰 위력을 발휘하곤 합니다. 오늘도 걱정스런 표정의 환자에게 한번 더 이야기합니다.

"다른 분들도 다들 그래요."

2011년 10월 25일 화요일

영양제 어떻게 먹어야할까?


좀더 건강해지고자 하는 바램을 갖고 있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에 자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은 예전같지 않고 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운동할 시간은 부족합니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기도 하고, 이전에 없던 두통이나 어지럼증도 자주 느끼곤 합니다. 주변에서 이런 저런 병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내가 너무 건강을 챙기지 않고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영양제를 포함한 건강기능식품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건강기능식품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국내에 출시된 건강기능식품은 수천여 종에 달하며,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비타민이나 미네랄 등의 ‘영양제’입니다. 이외에 홍삼, 오메가-3, 감마리놀렌산, 글루코사민, 프로폴리스 등이 대표적인 인기 품목입니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매출이 총 2조원에 육박한다고 하니, 우리나라 일년 의약품 소비량이 20조원인 것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규모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건강식품의 종류가 많다 보니 어떤 제품을 선택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좋다는 것을 다 구입해 먹기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어떤 영양제를 먹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건강기능식품이 인기가 많은 것은 비방이나 약초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약과 달리 건강기능식품은 부작용이 없다는 생각도 원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간에 부담을 주어 독성 간염과 같은 심각한 질환도 생길 수 있습니다. 건강기능식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타민이나 미네랄에 있어서도 부작용에 있어 예외는 아닙니다. 2007년 덴마크 연구진이 세계적 권위의 의학저널인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발표한 후 큰 반향을 일으켜 ‘코펜하겐 쇼크’라 불렸던 연구 결과는 비타민A, 베타카로틴, 비타민E, 비타민C, 셀레늄 같은 항산화비타민을 알약 형태로 복용하면 사망 위험이 5% 이상 높아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이와 비슷하게 부작용이 있다는 결과를 보인 다수의 연구들이 발표되었지만, 부작용이 없다는 반대 내용의 연구 결과도 역시 많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르지만, 현재는 적어도 영양제가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영양제도 과량을 먹었을 때 건강에 해가 될 수 있고, 알약 형태의 보충제보다 같은 영양소를 음식을 통해 먹는 것이 더 낫다는 것 역시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통해 음식으로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먹고 있다면 대개 추가적인 건강기능식품 복용은 불필요합니다. 하지만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면 부족한 영양소의 보충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단백질, 칼슘, 칼륨, 비타민D 등의 영양소 섭취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 전반에 대한 결과이므로 나와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의 질병 상태에 따라 필요한 영양소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건강기능식품을 올바르게 먹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나의 건강상태와 식습관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평가입니다. 이는 의사, 영양사 등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보다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부족하거나 과한 부분이 있다면 먼저 식습관 교정을 통해 건강하게 먹는 법을 배우고, 나의 질병 상태와 식습관 평가 결과에 따라 부가적으로 영양제를 비롯한 건강기능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