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3일 목요일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래요.

건강검진이 처음이시라는 50대 여성.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데 얼굴에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사소한 소견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드립니다.

"간에 낭종이 있는데 이건 물혹이고 치료할 필요가 없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네? 물혹이 있다구요?"
"네. 하지만 말씀드린대로 이건 문제가 안되는 소견이에요. 그리고 위내시경에서 위염이..."
"간에 있다는 그 물혹은 크기가 큰가요?"
"아뇨. 작습니다. 1센티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럼 그게 커지거나 암 같은 걸로 자랄 수도 있는 건가요?"
"드물게 크기가 커질 수도 있지만 실제 문제를 일으킬 정도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리고 암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아직도 불안해하는 표정이시라,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이런 물혹은 다른 분들한테도 매우 흔합니다. 바깥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전체적인 검사를 해보면 한두개 쯤은 다 가지고 있을거에요."

이 말을 들은 그녀가 비로소 표정이 밝아지는걸 보고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

여러가지 검사가 포함된 건강검진의 경우 결과를 받고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운 용어도 많지요. 낭종(물혹), 결절(딱딱한 혹), 종양(비정상적인 덩어리), 용종(위장이나 담낭 등의 점막에 생기는 혹) 등등. 요즘은 의사들도 환자가 알아듣기 쉽게 풀어 설명하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환자 입장에서 이런 의학 용어들은 생소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드라마나 소설에서 주인공을 죽이는 병은 모두 암이고, 암은 몸 속에 나쁜 혹이 자라는 병으로 알려져있으니 내 몸 속에 혹이 있다는 이야길 들으면 어떤 종류의 혹이든 일단 놀라는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앞의 예에서 나온 것처럼 치료가 불필요하고 추후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그저 변화가 있는지 여부만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건강검진은 증상이 없을 때 큰 병을 미리 잡아내고, 나중에 큰 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건강위험요인을 알게해서 이를 일찍부터 관리하고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소견으로 인해 불필요한 걱정을 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선 불필요한 추가 검사까지 하게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정밀 검사가 필요한 정도의 이상 소견이라면 추가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마음 고생을 하더라도 검사를 진행해야겠지만, 앞의 예처럼 큰 의미 없는 유소견이 나온 경우라면 불필요한 걱정과 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검사 결과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의사와 환자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겠지요.

하루에도 수십번씩 검사 결과를 전달해야하는 의사 입장에서 검사 결과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의학적으로 곧이 곧대로 설명하면 이해하기도 힘들고 괜한 걱정을 키우기 쉬운데, 직접적인 설명보다 해당 결과가 얼마나 흔한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예처럼 말이지요.

허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요.'란 말이, 내게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진료실에서도 그 말은 큰 위력을 발휘하곤 합니다. 오늘도 걱정스런 표정의 환자에게 한번 더 이야기합니다.

"다른 분들도 다들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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