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에 물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컵 밖의 바닥에 물이 흘렀습니다. 왜일까요?
먼저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컵이 깨졌거나 구멍이 났다.
'피로'때문에 병원을 찾는 환자의 생각은 이와 같습니다. 피로라는 증상이 생기면 내 몸 어딘가가 깨졌거나 구멍이 났다고 생각하는거지요.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할만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인데, 피로가 아닌 다른 증상이 생긴 경우에도 대개 이렇게들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론 다음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 컵 크기보다 많은 물이 들어와서 넘쳤다.
'증상'이란 현상은 바닥에 흐른 물과 같습니다. 잘 닦여있어야 할 식탁 위를 적신 물.
만약 컵 어딘가가 깨지거나 구멍이 났다면 찾아서 고치고 때워야합니다. 병원에서 하는 검사는 그 부위를 찾는 과정이며, 적절한 치료는 찾은 구멍을 고치고 때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컵에 난 구멍이 아니라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온 물이었다면, 해결책은 물이 지나치게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겠지요. '피로'라는 증상으로 생각해보면 과로를 했거나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라 할 수 있고, 그 해결책은 일을 줄이거나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됩니다.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
가장 흔한 경우는 세번째의 경우입니다.
- 담겨있는 물은 그대로이나, 컵의 크기가 줄어들어서 넘쳤다.
이 경우에도 물이 바닥으로 흐르는, 즉 '증상'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내 몸이 고장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일이나 스트레스가 많아진 것도 아닙니다. 컵에 구멍이 나거나 깨진 것이 아니니 병원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피로를 느끼는데 피로가 생길만한 이유를 잘 모르겠고, 병원을 찾아도 이상이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체력이 떨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컵의 크기, 즉 체력이 줄어드는 제일 흔한 이유는 나이가 드는 것입니다. 40대가 되었는데 2-30대 때의 체력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50대가 되었는데 40대 때의 체력과 같을 수도 없지요. 나이가 많아질수록 5, 10년 정도가 아니라 당장 1, 2년 뒤가 다릅니다. 내 컵의 크기는 줄어드는데도 직책이 높아지면서 직장과 사회에서 내게 요구하는 것은 더 많아집니다. 가사를 담당하는 여성의 경우도 육아 부담이 늘어나고 아이가 커가면서 나에 대한 주변의 요구는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이 경우에도 물을 덜어내는 것, 즉 업무나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겠습니다. 어떤 환자분의 경우엔 아예 이직을 하거나 시골로 내려갔더니 증상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쉽게 할 수 없고, 내가 일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다고 바로 줄일 수 있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외부의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결국 나 스스로를 바꿔야합니다. 컵의 크기, 즉 내 체력을 다시 키워야한다는 것입니다. 흡연 중이라면 금연을 하고, 잦은 과음을 피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건강 관리의 원칙만 잘 지켜도 컵의 크기는 늘어납니다.
대부분의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닙니다. |
이런 기본적인 건강 관리는 재미도 없고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도 않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우리는 재테크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건강에 대해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투자한 효과가 당장 드러나지 않으니 기초 체력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에 인색합니다. 보다 쉬운 방법을 찾기 위해 피로의 원인이 간때문이 아닌데도 간장약을 찾기도 하고, 보약이나 영양제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이 잘 되어있지 않다면 컵의 크기는 쉽게 줄어들어 물이 넘치고, 그때마다 병원을 찾게 됩니다.
프로 운동 선수의 예를 생각해볼까요? 시즌이 시작되고 잘 나가던 성적이 시즌 중반을 지나면서 떨어지는 경우를 흔히 보는데, 대개는 동계 훈련을 착실히 하지 않아 체력이 부족한 경우입니다. 운동으로 밥을 먹고 사는 프로 선수들도 한 시즌을 보내다보면 체력이 문제가 되는데, 스포츠 한 시즌보다 훨씬 길고 치열한, 삶이란 레이스를 펼쳐나가는 우리들은 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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