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토요일. 119일째 날. 2주 전 아들이 봤던 Integrated Math B Honors Rediness Test (IMBHRT) 결과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이 테스트에서 70%를 넘으면 8학년 과정 수학 수업을 선택할 수 있다. 결과는 73.17%. 수학 용어를 묻는 문제 중 모르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기준을 넘었다. 테스트를 신청한 건 이곳 중학교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다. 안내문에는 Math B Honors를 선택하는 경우, 8학년 때는 9학년 과정을 듣게 되며 9학년 수학은 다른 학교에서 통합 수업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부모가 라이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차피 그때쯤엔 한국에서 수업을 듣고 있겠지만.
한국에서 온 아이들은 대개 수학을 잘 하지만 영어 수준은 낮고, 이곳 공립 학교는 각각의 과목에 대해 아이의 레벨에 맞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추가적인 인프라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학습 능력에 따라 다양한 수업을 받을 수 있다면 교육 효과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학교의 교육 방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 키는 아닐 것이다. 한국의 공교육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의 학습 능력에 따라 다른 레벨의 수업을 제공하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한계가 사교육 시장을 키우는 데에 일조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의 현실에 맞으면서도 모든 아이들이 좀더 나은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5월 23일 일요일. 120일째 날. 입국한 지 만 4개월째 되는 날이다.
아들은 오전 내내 학교 숙제인 포스터를 만들었다. 지난 번 동영상에 이어 아시아의 문화에 대한 내용으로 러시아 음식을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 왜 하필 평생 한번도 안 먹어본 러시아 음식으로 정했는지를 물었더니, 뭔가 색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나. 음식 사진을 골라 출력하고 소개글을 작성하는 모습이 나름 진지했다. 학교 숙제는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러시아도 아시아에 포함이 되던가?
오후엔 문라이트 비치에 다녀왔다. 캘리포니아는 covid-19 신규 환자 수가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다. 미국 전체 기준으로도 오늘 확진자 수는 3만명 미만으로 1년 만에 최저 숫자를 기록했다. CDC의 백신 접종자에 대한 마스크 착용 완화 방침에도 기존의 거리두기 제한을 유지했던 캘리포니아와 샌디에고 카운티도 6월 15일 부턴 제한을 모두 풀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주말 오후의 햇볕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보았던 해변의 풍경 중에 오늘이 가장 사람도 많고 활기차 보였다.
바람막이 텐트를 설치하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햇살을 받은 다리 살갗이 간질간질했지만 따가울 정도는 아니었다. 주변의 공기는 적당한 활기와 듣기 좋은 소음으로 넘실거렸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아이들의 웃음 소리, 맨발에 밟히는 모래 소리, 물결에 햇살이 부서지는 소리. 파도 위를 미끄러지는 서퍼들은 기울어가는 오후의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