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우리에겐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

출근길에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데 문득 구두를 보니 앞코가 뿌옇다. 며칠 전부터 닦아야지 생각했는데 일이 많은 연말이라 영 시간이 나지 않던 참이었다. 근처에 보이는 구두 닦이 노점에 들어갔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손님을 맞는다. 구두를 건네고 삼선슬리퍼를 신고 구석에 앉았다. 쌀쌀한 날씨지만 전기 난로가 피워진 노점 안은 훈훈하다.

닳아빠진 뒷굽을 갈 때도 된 듯해 수선을 부탁했다. 아저씨가 돋보기 안경을 걸쳐 쓰고 구두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오른짝 가죽과 밑창 이음새가 떨어져 구멍이 나있다. 저 상태로 잘도 신고 다녔구나. 아저씨는 혀를 쯧쯧 차고는 연장통에서 순간접착제를 꺼내 익숙한 손길로 떨어진 이음새에 꼼꼼이 칠하기 시작했다. 접착제가 마를 때쯤 손가락에 헝겊 조각을 야무지개 감고 구두약을 묻혀 문지르니 금새 광이 난다.

구멍난 이음새가 접착제만으로 수선이 될까 싶었는데, 손질이 끝난 구두를 살펴보니 그럭저럭 신을 만했다. 노점을 나와 다시 바삐 걷는데 어째 좀 처량한 생각이 든다. 구두 닦을 여유도 없이 구멍이 난줄도 모르고 한참을 신고 다녔다니. 참 정신 없이 바쁘게도 일했다.

- 구두를 닦았는데 한 짝 옆이 터져 있어서 접착제로 붙였어요. 굽을 간 김에 아까워 좀더 신는데 오래는 못 갈 것 같아요.

점심 시간에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고, 바로 아내의 답신이 왔다.

- 이런... 구두 하나 당장 사야겠어요. 진즉 샀어야 했는데.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 건 내 처량한 심정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었다. 이런 유치한 바램을 넌지시 표현할 상대로 아내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업무가 늘어나 심신이 지쳐가는 중에, 짧게 오고간 문자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구두야 뭐 좀 있다 사도 되지.

위로라는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내가 힘들 때 누군가 그걸 알아준다는 것. 위로의 출발점은 바로 그 지점부터이다. 더 좋은 해결책을 찾아준다거나 건설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굳이 그렇지 않아도 된다. 내 힘듦을 그가 알고있다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

- 그 영화 아주 잘 만들었다더라.

주말에 올라오신 장인께서 식사 중에 갑작스레 언급하신 건 관객 수 천만을 훌쩍 넘겼다는 그 영화였다. 이런 말씀은 영화를 보고싶다는 속내를 에둘러 표현하신 것이다. 아내도 나도 보지 않은 영화라 잘됐다 싶어 식사를 마치고 다같이 iptv를 볼 수 있는 작은 방에 둘러앉았다.

고향이 이북인 장인은 46년생이시니 전쟁이 벌어진 해에 다섯 살이셨다. 흥남 부두의 철수를 직접 겪진 않으셨지만 전쟁 이후 부산에서 주욱 사셨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하셨으니 영화 속에서 그려진 시대를 고스란히 지내오신 셈이다. 워낙 화제가 되었던 영화라 대략 내용은 알고 있었기에 장인께서 보고싶어하시는 것도 이해가 갔다.


훌륭한 영화는 아니었다. 몇몇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지만, 캐릭터는 전형적이고 플롯은 엉성했다. 그래도 두 시간동안 지루함을 느끼진 못했고 이산가족 상봉 방송 장면에선 눈물도 났다. 하긴 50년 이후 이 나라의 현대사 자체가 숨이 찰만큼 극적인 드라마인데 그 가운데 굵직굵직한 사건을 주욱 되짚기만 해도 지루할 틈이 있겠는가.

장인은 영화를 보는 중에 종종 탄식 비슷한 소리를 내셨다. 어허,,, 그 참, 어허,,, 그 참. 말은 안하셨지만 당신이 젊었을 적 풍경이 재현된 화면을 보며 옛날 생각이 나셨으리라. 영화와 장인의 반응을 함께 경험하며 이 영화가 왜 화제가 되었는지, 왜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든 몇 안되는 영화에 꼽히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중의 취향과 흐름을 저격하는 감독의 재능은 역시 뛰어났다.

'Ode to My Father'인 영문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아버지 세대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만든 영화라고 했다.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가 아버지들을 위로해주었을까.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하고 울먹이는 덕수를 위로한 사람은 아버지의 환영 뿐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 이야기를 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익숙치 않았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영화를 보며 조금은 위로를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퍽퍽했던 시대에 온 몸으로 가족을 지탱해 온 우리의 평범한 부모들이 그동안 제대로 된 위로를 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이 영화를 향한 대중의 이상(異常)적 열광은 제대로 위로하지 못했음에 대한 자기 고백이 아닐었을까 싶다.

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햄, 베이컨, 소시지… 가공육 먹어도 되나요?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베이컨과 소시지 등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해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 이후 이 내용을 보도한 기사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가공육이 담배나 석면만큼 위험한 발암물질로 분류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WHO가 발암물질로 구분한 식품에는 햄과 베이컨, 소시지와 함께 핫도그, 햄버거 등도 포함되었습니다. 햄이나 소시지는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으로도 흔히 쓰이는 식품입니다. 물론 가공육이 건강에 이로운 식품은 아니라는 것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과연 소시지를 먹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암 발생 위험을 높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1군 발암물질에는 담배, 석면, 벤젠과 같은 전통적인 위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가공육이 이들 물질과 같은 군에 포함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1군에 포함된 물질들이 모두 같은 정도의 위험이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영국 암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모든 암의 19%가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반면, 가공육 섭취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분율은 3%라고 합니다.


모든 영국인이 담배를 끊으면 64,500례의 암 발생을 줄일 수 있으며, 가공육을 끊으면 8,800례를 줄일 수 있습니다.(Cancer Research UK의 그래픽) 

WHO는 발암물질을 1군부터 4군까지로 나누고 있는데, 그 기준은 발암물질과 암의 관련성이 얼마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입니다. 기존 역학 연구들을 검토했을 때 사람에서 암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1군에 포함됩니다. 또한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암과의 관련성을 의심할만한 근거가 있는 경우는 2, 위험성이 약한 경우는 3군 이하로 분류합니다. WHO의 발표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가공육을 ‘1(group)’이 아닌 ‘1(grade)’ 발암물질로 보도했는데 이러한 부주의한 보도가 논란을 키운 면이 있습니다. 관련성이 확실하다는 의미의 발표가 위험의 정도가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 것입니다.

가공육 제조 과정 중 형성되는 N-nitroso compound, 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 등의 화학 물질로 인해 암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기전은 잘 모릅니다. 많은 국내 전문가들은 가공육을 과다 섭취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합니다. 지나친 육류 섭취가 심혈관질환, 암 등의 질병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가공육에 대한 이번 1군 발암물질 분류에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WHO의 이번 발표에 따르면 가공육 50g을 매일 먹는 것이 대장암 위험을 18% 높인다고 합니다. 50g은 핫도그형 소시지 1, 비엔나 소시지 5, 슬라이스 햄 5장 정도입니다. 하지만 국민건강영양조사(2010~2012)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1일 가공육 섭취량은 6g 정도에 불과한다고 하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참고로 섭취량 상위 5% 이내에 든 사람은 하루 14g, 1% 이내인 사람은 151g을 섭취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많이 먹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참고: http://www.who.int/features/qa/cancer-red-meat/en/

2015년 9월 19일 토요일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은 일요일 오후처럼 짧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은 일요일 오후처럼 짧습니다.

어렸을 적에 살던 주공아파트 단지엔 여느 아파트 단지가 그렇듯 군데군데 작은 놀이터가 있었어요. 모래 바닥에 미끄럼틀과 시소, 그네, 뺑뺑이가 있는 평범한 놀이터였지요. 요즘이야 놀이 기구들도 알록달록 예쁘고 모양도 다양하지만 그땐 다 생긴게 뭉툭하니 비슷했어요. 철제로 된 미끄럼틀은 여기저기 칠이 벗겨져있었고 아이들의 손이 닿는 곳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났죠.

일요일 저녁, 동네 아이들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해가 뉘엿뉘엿 아파트 옥상에 가까워지고 주변 풍경이 노랗게 물들 때. 아마 저녁 여섯시쯤 될거에요. 그 시간이면 늘 아파트 단지 안 교회에서 차임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익숙한 찬송가였는데 무슨 노래였는지 지금은 생각나질 않네요. 혼자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아파트 사이로 멀리 보이는 밭두렁 길을 바라보며 그 소리를 들으면 이제 일요일이 다 가버렸다는게 실감나면서 괜히 서글퍼지곤 했습니다. 열서넛 나이의 사춘기 소년이 품을만한 고민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이라거나 친구라거나, 또 미래라거나 뭐 그런 것들이었겠지요. 아쉬움과 불안함이 섞인 감정이 밀물처럼 차오릅니다.

몸을 부르르 떤 건 때마침 불어온 서늘한 저녁 바람 때문일 겁니다. 해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내려앉습니다. 그 변화가 어찌나 빠른지. 다른 생각에 빠졌다가도 문득 주변을 돌아볼때면 매번 흠칫 놀라게 됩니다. 짙어지는 그림자와 차가워지는 공기와 깊어지는 교회 차임벨의 울림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고즈넉한 주변 풍경은 슬로우 비디오로 보이지만 이 시간이면 이상하게도 나를 둘러싼 공기와 시간만이 두 배 빨리 보기 속도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초능력을 간절히 바라곤 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지금. 일요일 오후 어둠이 깔리는 놀이터에서의 시간, 열서넛 소년의 기분을 다시 느낍니다. 우리를 둘러싼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흐릅니다. 당신도 느끼나요? 이런 기분을 나만 느낀다면 못견디게 억울해질 거에요.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딸아이와의 전쟁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이제 혼자서도 이를 닦지만 네살 딸은 아직 이를 닦아줘야 한다. 이닦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욕실에 들어가 칫솔을 물게 하려면 여러 차례 실랑이를 해야한다. 이를 닦으라고만 하면 도망을 가서 종종 번쩍 안아다 억지로 세면대 앞에 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이닦기가 시작된다.

잠들기 전엔 꼭 책을 두세 권씩 읽어주어야 하는데, 이를 닦기 전에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한다. 밤에 아이들 옆에 누워 책을 읽어줄 때쯤이면 대개는 녹초가 된 상태로 책을 읽어주며 졸다 깨다 하는 적도 많다. 그럴 땐 다시 일어나 이를 닦이는게 또 힘든 일이라 이를 먼저 닦지 않겠다고 하는 딸에게 짜증을 낼 때도 있다. 어제 밤의 문제도 이를 먼저 닦느냐 책을 먼저 읽느냐 하는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책을 먼저 읽어달라는 딸에게 오늘은 이부터 닦는거라 선포를 했다. 역시 여느 때처럼 아이는 책을 먼저 읽겠다 고집을 부렸고, 책을 읽어주지 않자 울음을 터뜨렸다. 최근엔 떼를 쓰다가도 잘 타이르고 달래면 말을 듣곤 했지만 어제 밤엔 영 막무가내였다. 졸음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은 졸리면 괜한 떼를 더 쓰게 마련이다.

딸은 네 살 터울 오빠보다 훨씬 고집이 세고 떼도 많았다. 제 뜻대로 안되면 떼를 쓰는 버릇을 이번에야말로 고치고 말리라. 어른답게 차분하고 단호하게. 왜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아이와의 대화는 같은 말의 무한 반복이었다.

"책 읽고 이 닦을래."
"안돼. 이 먼저 닦고 책 읽는거야."

아이는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왜, 왜, 왜 이 먼저 닦아야 하는데. 늘 책 먼저 읽어줬잖아. 사실 왜 이를 먼저 닦아야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차분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던 마음가짐은 5분도 되지 않아 무너졌고, 어느새 나도 아이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어른답게 대했다면 아이가 이렇게 심하게 떼를 쓰진 않았을까.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랫집과 층간 소음으로 말썽이 있던 터라 아이 울음 소리에 또 민원이 접수될 수도 있었다. 아이가 떼를 쓰며 발을 동동 구르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았다. 숨이 넘어갈듯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기도 했다.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모습에 놀랐는지 딸은 더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는데 완벽하게 실패한 상태였고, 내 아이를 향한 스스로의 폭력적인 행동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그만두어야 하나. 아니, 여기서 물러서면 버릇이 더 나빠질지도 몰라. 제발, 이제 아빠 말좀 들어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30분이 넘는 혼돈의 상황을 끝낸 것은 울먹거리느라 알아듣기도 힘든 아이의 말이었다.
아빠, 말대로, 이, 닦고, 책, 읽을께.
아이도 나도 땀 범벅이었다. 드디어 고집을 꺾었다는 안도감은 개뿔, 후회와 자책감이 엄청나게 밀려왔다. 혼자서 이도 잘 못닦는 네살짜리 딸을 데리고 뭐하는 짓인가. 이를 먼저 닦든 책을 먼저 읽든 그게 뭐그리 문제인가. 나는 제대로 된 아빠인가.

이를 닦아주는데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내 행동이 상처가 되어 오래 남진 않을까. 당분간 아빠를 본체만체 하면 어떡하나. 이를 닦는 동안 딸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까 많이 화내서 미안해. 아빠 말 들어줘서 고마워. 내 사과를 받아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란히 누워 책을 읽을 때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졸음이 쏟아지는지 눈을 깜빡깜빡하며 비비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아이는 씩 웃으며 한 마디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나 아빠 말대로 이 먼저 닦고 책 읽었어. 오늘은.



2015년 7월 22일 수요일

남딘과 서울의 아이들

하노이 공항에서 밤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아침,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부모 참여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부모 참여 수업은 아내보다 스케줄을 조정하기 수월한 내가 참석하는 편이었다. 다행히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라 미리 휴가를 내둔 상태였다. 참여 수업 날이 출장 기간과 겹쳤다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야할 뻔 했다.

푸른반 아이들은 이십여명. 엄마 아빠와 함께 옹기종기 모여 간식을 먹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시범에 맞춰 노래와 율동을 했다.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잤다지만 충분했을리 없었기에 중간중간 하품이 나왔다. 딸이 이름표가 붙어있는 자기 자리와 뒤편에 앉아있던 아빠 무릎 위를 수시로 왔다갔다 하지 않았다면 잠시 졸았을지도 모른다. 손씻기에 대한 선생님들의 짧은 연극이 끝나고 아이들은 절반으로 나뉘어 손세정제 만들기와 유리드믹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물론 엄마 아빠들도 함께.

베트남에서의 학생 봉사는 주로 유치원에서의 교육 활동 참여로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3세 이상의 취학 전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연습했다. 스스로 만들고 연습해온 것들이었기에 학생들은 각각의 프로그램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제안한 프로그램의 반응에 따라 신나하거나 풀이 죽어 있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론 자석 낚시나 바구니에 공 던져넣기, 기차 놀이 등을, 좀더 큰 아이들을 대상으론 그림 그리기나 카드 맞추기 등을 진행한다. 중간 중간 음악을 듣고 베트남 동요를 함께 부르며 율동을 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 입장에선 아주 익숙한 내용들이었다. 내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의 놀이 방식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들려주거나 함께 부르며 춤을 추고 몸을 부딪히며 장난을 치는 것은 유리드믹스라는 좀더 거창한 이름의 프로그램과 그리 다를게 없었다.

어쩌다보니 베트남과 한국에서 연이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남딘의 유치원은 건물도, 놀이기구도, 아이들의 물품도 모두 낡았고 청결 상태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의 유치원은 어른들이 생활하는 여느 건물과 시설보단 훨씬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그곳 사람들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시설은 차이가 많았지만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과 해맑은 웃음에 있어선 남딘과 서울이 다르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든 아이들은 모두 즐겁고 행복해보였다.

유엔의 world happiness report에 따르면 조사 대상 158개국 중 한국의 행복 지수는 47위, 베트남은 75위이다. 물론 행복감을 평가해 비교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과거 다양한 행복 지수 조사의 결과가 제각각인 이유는 주관적 지표 위주였기 때문인데, 이 조사는 GDP, 기대 수명 등 행복과 관련된 보다 객관적인 지표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10년 뒤, 이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우리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2015년 7월 19일 일요일

어느 오후

소나기가 한판 쏟아진 뒤였기에 무더위는 약간 사그러들었지만 공기는 눅진했다. 지방 출장 때문에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한 날이었고, 오후가 되어 서울에 돌아와 다시 인천행 지하철을 탔을 때는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출장과 연구 미팅을 같은 날 잡는게 아니었는데. 이럴 때면 무뎌진 몸의 속도는 느릿해지지만 날카로워진 신경은 몸과 같이 느릿하게 반응하다가도 갑작스레 제멋대로 폭주하게 마련이다.

평일 오후 인천행 1호선 전철은 한산했다.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참으로 다양한 각종 소음이었다. 구일역을 지나 모기 퇴치제를 파는 잡상인이 가방을 끌고 홍보를 시작했다. 복식 호흡을 배웠는지 그의 목소리는 지하철 칸 전체를 울릴만큼 충분히 우렁찼다. 이 약이 효과가 없으믄요, 이런 큰 제약회사 이름을 걸고 팔겠습니까. OO 제약. 그의 말투는 걸음걸이와 박자를 맞추어 그만큼 느렸지만, 제약회사의 이름과 같이 중요한 단어를 말할 때는 두 배쯤 빨라졌다. 하지만 큰 제약회사에서 만든 모기 퇴치제가 왜 평일 오후 지하철 안에서 팔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몇 개의 모기 퇴치제를 판매하는데 성공한 잡상인의 소음이 옆 칸으로 통하는 통로를 따라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곧바로 휴대폰에서 울리는 음악 소리가 대신했다. 헬로 헬로 나의 친구 카봇.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추임새를 넣고 있는 건 다섯 살쯤 되어보이는 남자 아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각선 방향에 앉은 그 꼬마를 째려봤지만 다른 승객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통화를 하거나 책을 보고 있었다. 꼬마의 옆에 할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작은 목소리로 훈계를 했지만 그 태도는 단호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얼굴은 오히려 아이가 사랑스러워 못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

카봇 주제가가 세 번째 반복되었다. 건너편으로 달려가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순간 전철 문이 열리고 카봇 꼬마는 할머니의 등에 업혀 전철을 빠져나갔다. 온수역을 지나 부평역이었던가? 몇 개의 역을 지나치는 동안 휴대폰의 벨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울려댔다. 옆자리의 중년 여성은 지난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그녀는 이 대화 안에서 여러 번 미친X이 되었다-에 대해 이야기했고, 노약자석에 앉은 남성은 잘못된 주문을 넣어 계약을 망친 회사 직원을 두들겨팼고, 건너편의 여대생은 앳된 콧소리로 애인과 사랑을 속삭였다. 미친X이 된 동창 친구와 계약을 망친 부하 직원과 사랑 고백을 듣는 애인 옆에서, 나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 2호선 안에서 만큼이나 호흡 곤란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동인천역까진 몇 정거장 남지 않았다. 객실 내엔 열 명 남짓 뿐이었다. 다시 열차 문이 열렸다. 노란색 등산복에 배낭을 맨 노인 남성이 활기찬 걸음으로 들어왔다. 그와 함께 입장한 것은 쿵짝 쿵짝 이박자의 트럼펫 반주와 악단의 연주였다. 음악은 그가 들고있는 파란색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건 정말 예상치 못했던 공격이다.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사계절 모두 봄봄봄 웃음꽃이 피니까. 등산복 노인은 이 구성진 노래야말로 자신 뿐 아니라 전철의 모든 승객들이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어쩌면 음악을 함께 감상할 승객의 숫자가 얼마되지 않음에 아쉬워했을지도 모른다. 전철 안을 가득 채운 트로트 가락에도 승객들은 동요하지 않고 꿋꿋하게 졸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통화를 했다. 강적들 같으니라고. 그런데 저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였더라. 아, 문희옥.

두 번째 노래가 시작되었다. 젠장. 이건 정말 처음 들어보는 노래인데. 그렇게 난 인천행 1호선 전철 안에서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듣고싶지 않은 트로트의 제목과 가수가 누구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세 번째 노래가 끝날 때쯤 전철의 문이 다시 열렸고 노란색 등산복의 노인과 악단이 모든 관객들과 함께 퇴장했다. 갑작스레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정적이 찾아왔다. 마치 노인이 퇴장하면서 주변의 모든 소음을 휩쓸어 가버린 것 같았다. 다시 승강장의 열기와 소음 속에 토해내질 때까지 남은 것은 한 정거장. 평화로운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2015년 6월 17일 수요일

자전거 배우기

아이는 한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페달 옆에 파워레인저가 그려진 빨간색 안장의 자전거는 3년 전 외할아버지가 사주신 것이었다. 18인치 휠이라 처음엔 안장 높이를 가장 낮추고도 페달에 올린 발이 조금은 버거워보였지만, 오래지 않아 맞춤인 높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빠르게 큰다. 아이의 키에 맞춰 빨간색 안장도 조금씩 높아져갔다.

자전거를 타는 횟수가 뜸해진 건 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부터였다. 친구들은 어느새 보조 바퀴가 없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아파트 단지 내의 작은 축구장에서 딱 한 번 보조 바퀴를 떼고 연습을 시킨게 서너달 전이었는데, 그날은 영 균형을 잡지 못했다.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아직 때가 아닌가 싶어 그 이후로 연습은 미뤄두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아직 저만 보조 바퀴를 떼지 못한게 자전거를 잘 안타는 이유인가 싶기도 했다.

얼마전 파란색 새 자전거가 갖고 싶다고 엄마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갖고있는 자전거도 아직은 충분히 탈만 할 것 같아서 보조 바퀴를 떼고 스탠드를 달기 위해 동네 자전거 매장에 들렀다. 자전거를 손보던 직원은 아이를 안장에 앉혀보더니, 두 발 연습이 끝나면 22인치 휠의 자전거를 사는게 좋겠다고 했다. 아빠가 새 자전거를 사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실망한 표정이었던 녀석은 직원의 말을 듣곤 금새 얼굴이 밝아졌다.

- 거봐, 저 아저씨도 새로 사야한다고 하잖아.

보조 바퀴를 뗀 자전거는 거추장스런 짐을 벗어버린 것처럼 가벼워 보였다. 내친김에 자전거를 아파트 단지 안 학교 운동장에 가지고 갔다. 연습을 하기엔 바닥이 평평한 농구 코트가 좋을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신호에 맞춰 페달을 밟는다. 몇 달 전 연습 때완 다르게 제법 균형을 잡고 페달을 굴렸다. 뒤에서 안장을 잡고 따라가는데 금방 숨이 찼다. 코트를 서너 바퀴 돌았을까, 안장을 잡은 손에서 힘을 빼고 손가락만 받쳐주어도 무리없이 잘 간다. 손을 살짝 뗐다.

- 아빠 방금 손 뗐다.

- 진~짜?

녀석 눈이 동그래졌다. 자전거를 따라 뛰면서 안장에서 손을 떼 등을 두드려주니 씩 웃는다.

- 진짜네~

아이는 그날 오후 내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오랜만에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니 정말 자전거가 작아보인다. 페달을 밟는데 곧 무릎이 핸들에 닿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곧 파란색 새 자전거를 사주어야 할 것 같다.

언제 또 이렇게 커버렸나.

2015. 6. 14
여덟살 지환군 처음 두 바퀴 자전거 탄 날




2015년 5월 22일 금요일

병아리 키우기

삐약이 입주 3주째.

며칠 전 아침에 머리를 감고 있는데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욕실로 뛰어들어왔다.
"탈출했어! 탈출했다구!"

아내는 처음부터 병아리를 탐탁치 않아했다. 아니, 탐탁치 않아했다기 보다 무서워 했다는게 맞겠다. 운동회 날 아이가 졸라 사오긴 했지만 곤충과 조류를 끔찍히 싫어하는 지라 병아리 곁엔 가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삐약이라고 이름붙인 병아리를 데리고 노느라 매일 신이 났다. 산책시킨다고 상자 밖에 풀어놓을 때면 깔깔거리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아이 친구들의 병아리는 며칠만에 죽었다고 했다. 추우면 죽는다길래 상자에 백열 전구를 켜두었더니 삐약이는 별 탈 없이 잘 커갔다. 똥을 얼마나 자주 싸는지 하루 한 번씩 상자 바닥의 신문지를 갈아주어야 했다. 문제는 이녀석이 하루가 다르게 너무 빠른 속도로 자란다는 것이었다. 솜털이 빠지고 날개부터 깃털이 제법 자리를 잡으면서 병아리인지 닭인지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 2주째부터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그날 아침 드디어 제 힘으로 상자를 탈출한 것이다.

탈출한 병아리는 다시 잡혀서 상자로 들어갔고, 그날 이후 상자엔 비닐 천장이 씌워졌다. 병아리 모이만 먹었을 뿐인데 2주 남짓한 기간에 부쩍 커진 녀석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병아리 때의 귀여움이 줄어든게 아쉽기도 했다. 조만간 어딘가로 보내야할 듯 싶다.

*

매주 한 번 정도 오전 진료가 없을 때면 첫째 아이와 함께 출근을 해왔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엔 집을 나서는 시간이 다소 일러졌고 어린이집 대신 학교를 들르게 되었지만 아침 풍경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와 잠깐이나마 함께 걷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같이 어린이집에 갈 때면 손을 꼭 잡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던 아이가 입학 후 두 달쯤 지나자 등교길에 이전보다 말수가 적어졌다. 같은 반 친구를 따라 앞으로 종종걸음을 쳐 뒤에서 슬금슬금 따라가야 하는 일도 잦았다. 급기야 지난 주엔 교문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서 머뭇거리더니 아빠는 이제 가라고 눈치를 준다. 그러고보니 혼자 등교하는 남자 아이들이 많다. 제딴에는 친구들은 혼자 오는데 아빠가 교문 앞까지 따라오는게 멋적었나 보다.

혼자 하려는게 또 늘었구나 싶어 기특하기도 하고 벌써 쑤욱 커버린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아이들이 크면 막상 시간이 나서 함께하려 해도 쉽지 않으니 힘들더라도 어릴 때 부대끼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데. 아이들이 커갈수록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순간이 늘어나지만 늘 변화는 갑작스레 찾아온다. 이번 주부턴 당장 작은 즐거움 하나가 없어질 것 같아 걱정이다.


2015년 5월 14일 목요일

5월 이후

"일어나봐."

어머니가 어깨를 가만히 흔드셨다. 단잠을 자던 소년은 영문을 모르고 눈을 떴다. 아직 안방에 텔레비젼이 켜져있는 모양인지 두런두런 소리가 들렸다. 수명이 다된 형광등 빛이 파르르 떨렸다.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큰일이 나부렀어야..."

어머니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걱정으로 가득해보였지만 어머니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셨다. 소년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자고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긴걸까. 1987년 겨울, 소년은 열네살이었다. 텔리비젼에선 밤늦게까지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날은 새 대통령이 선출된 날이었고, 뉴스의 내용과 어머니의 어두운 표정이 무언가 관련이 있을거라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새 대통령은 '보통 사람'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그날 이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날 밤의 일은 소년의 기억에 봉인되었다. 소년은 몇 년이 지나 성인이 되서야, '보통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날 어머니의 표정이 왜 그리 어두웠는지 알게 되었다.

80년 5월에 소년은 국민학교 1학년이었다. 탄광촌에서 약국을 하시던 아버지는 소년이 입학하던 해에 시내로 이사를 했다. 새로 이사온 집은 시의 가장 변두리였기 때문에 늘 조용한 편이었다. 5월의 그 열흘간이 어떠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휴교를 했기에 동네 친구들과 늘 하던 술래잡기나 구슬치기 같은 걸 했을 것이다. 부모님이 함부로 나다니지 않도록 주의를 주셨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저녁, 약국 앞길을 지나던 트럭에서 내린 청년들에게 아버지가 박카스 몇 박스를 주었던 것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것은 시커먼 총을 든 청년들의 비장한 표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소년이 모르고 있었지만, 그 열흘간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했다. 10년쯤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 금남로 지하도를 지나던 소년이 본 시뻘건 사진들은 그때 죽은 사람들이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시내 지하도 벽엔 비슷한 사진들이 붙었다가 떼어지길 반복했다. 그 사진 앞을 지날때면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처음 멋모르고 다가가 사진을 보고 메슥거림을 느낀 뒤로, 소년은 다신 그 사진들 가까이 가지 않았다. 80년 5월에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게된 것은 광주를 떠나 대학에 들어간 이후였다.

열네살 소년이 단잠을 깨던 날, 어머니의 불안 가득한 표정은 7년 전의 일이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7년 전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죽음을 당했고, 그날은 그 군인들이 다시 통치권을 쥐게 된 날이었다. 되돌아보면 지나친 걱정이었지만, 그 도시에서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었던 이들이라면 당연히 가질 법한 공포였다. 어머니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밤 불안은 도시 전체를 진득하게 뒤덮고 있었을 것이다.

1987년 겨울,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밤 어머니가 했던 말은 아이에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그것을 알게된 뒤로 해마다 5월이 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을 오랜 세월동안 괴롭혔을 악몽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모와 삼촌,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 모두가 그런 불안과 공포를 십수년간 느꼈을 것이란 사실은 소년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곤 했다. 아직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총성을 직접 듣지 않은 소년에게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은 그런 것이었다. 

2015년 5월 13일 수요일

진짜 문제는 가짜 백수오가 아니다.

최근 백수오 파동으로 매스컴이 뜨겁습니다. 모 회사에서 백수오 대신 이엽우피소를 제품 원료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해당사의 주가는 곤두박질하고 홈쇼핑 업체엔 환불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엔 유행이 있습니다. 홍삼이나 종합비타민 등 꾸준히 인기가 있는 스테디셀러도 있지만, 특정 제품이 갑작스레 인기를 끌었다가 또 금새 사그러들기도 합니다. 그 인기에는 대개 책이나 매스컴의 보도 등이 영향을 미칩니다. 백수오의 인기가 늘었다고 느낀 것은 1-2년 전부터였습니다. 백수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년 여성 환자들이 부쩍 많아진게 그쯤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백수오 파동의 핵심이 해당 회사가 백수오라고 믿고 구입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저버렸다는데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백수오는 확실히 효과가 있고 이엽우피소는 효과가 없을까요? 백수오는 여성 갱년기 증상 개선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백수오(cynanchum wilfordii)와 이엽우피소(cynanchum auriculatum) 이름으로 국내, 국제 학술지 데이터베이스(RISS, Pubmed, Embase, Cochrane Library)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보인 실험실 연구나 동물 연구들이 있었지만, 사람에게도 같은 효과를 보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의약품이 출시되기까지 여러 차례의 사람 대상 임상 시험을 거치고, 건강기능식품의 허가에 최소한의 임상 시험 결과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내 학술지 164건 중 해당 물질과 관련한 논문은 총 21편이었으며 이 중 19편은 실험실 연구나 동물실험 연구였고 단 2편 만이 사람을 대상으로 시행된 임상 시험이었습니다. 이중 1편은 20대 여성의 월경전증후군에 대한 것이었고, 나머지 1편이 갱년기 여성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이 연구는 2003년 한국생물공학회지에 발표되었으며, 백수오 효능에 대한 첫 임상 시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48명의 폐경기 여성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은 백수오, 속단, 마른 생강, 당귀, 대두, 해조칼슘, 아미노산, 다양한 종류의 비타민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복합추출물을, 다른 그룹에게는 가짜약을 투여했습니다. 3개월 뒤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을 섭취한 그룹은 58.3%가 폐경 증상 호전을 보인 데 비해 대조 그룹은 21.7%만 증상 호전을 나타내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이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국제 학술지로 검색된 논문 중 백수오는 20편, 이엽우피소는 42편이었습니다.(이엽우피소의 효과에 대한 연구가 오히려 더 많습니다.)

이중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2012년 Phytotherapy Research에 발표된 논문이 유일합니다. 64명의 폐경기 여성을 둘로 나누어 각각 백수오, 당귀, 속단의 3가지 혼합물인 에스트로지-100(EstroG-100)와 가짜약을 12주간 복용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에스트로지-100 그룹은 가짜약을 복용한 그룹에 비해 폐경기 증상이 유의하게 개선되었습니다.

이들 연구는 N사가 백수오 제품의 건강기능식품 허가를 받고 백수오의 효과를 홍보할 때 활용해온 연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연구 모두 연구 대상자 수가 적어 이 결과를 일반화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효과를 보인 성분이 백수오인지, 백수오와 함께 투여된 기타 성분 중 하나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다른 문제는 두 연구 모두 N사의 지원으로 이루어졌거나 이 회사의 대표가 공동 저자로 포함된 연구라는 것입니다. 의학 연구에서 이해관계(conflict of interest)는 연구의 신뢰성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 현재까지 백수오와 갱년기 여성에 대한 연구는 2편에 불과합니다. 
- 두 연구 모두 연구대상자 수가 작아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 두 연구 모두 백수오를 단독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갱년기 증상 완화에 백수오가 도움이 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 두 연구 모두 백수오 제조 회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었습니다.

이번 논란으로 진짜 백수오의 인기가 더 높아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백수오나 이엽우피소나 그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저마다의 속도



아이는 본래부터 물을 무서워했다.


머리를 감을 때면 얼굴에 물이 흐르지 않을까 걱정하며 주먹을 꼭 쥐고 온몸에 힘을 주었다. 친구들과 욕조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도 물이 눈에 들어갔다고 자주 울음을 터뜨렸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워터파크에서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물에 몸도 제대로 못 담그고 나올 때면 괜히 아이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커가면서 예전처럼 욕조에서 울음을 터뜨리진 않고 유아용 풀에선 제법 놀 줄도 알게 되었지만, 가슴 깊이 정도의 풀 앞에선 늘 잔뜩 긴장을 했다.

따뜻한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한 것은 마침 아내가 잠깐 일을 쉴 수 있게 되어서였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와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 학부형이 되는 부모들이 으레 그렇겠지만, 우리도 앞으로 경험할 일들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되면 달라져야 한다고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는 통에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를 탄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난번엔 첫 날 리조트 수영장에 들어가지도 않겠다고 하던 아이가 막상 좀 적응이 되어 놀 만한 상태가 된 건 떠나기 전날이었다. 이제 좀 더 컸으니 작년보단 더 금방 적응해 놀거라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아이는 물에 이전보다 빨리 친숙해졌다. 둘째 날이 되자 허리 깊이 키즈풀 안을 뛰어다녔다. 조금이라도 깊어보이는 곳엔 가까이 가지도 않았지만.

리조트 풀 가까이엔 해변이 있었고, 산호 바다 특성상 얕고 잔잔했다. 물이 맑아 바깥에서도 다리 옆을 헤엄치는 열대어들을 볼 수 있었다. 물고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신나할 것 같아 풀로 돌아와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 저기 옆에 바다에서 놀지 않을래? 

잠깐 망설이던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 저기 깊지도 않고 물고기도 많아. 

- 싫어. 난 여기서 놀래. 

어르고 달래기를 몇 차례 했지만 아이는 고집을 부렸다. 순간 열이 확 올랐다. 몇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 겨우 아이들 풀에서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아빠가 이렇게 여러번 이야기하면 좀 들어야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아이는 풀이 죽어 걸음을 옮겼다. 손을 붙잡고 바닷물에 들어와선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며 깊이를 확인하더니 안심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변 얕은 바다엔 스노클링을 즐기는 아이들이 많았다. 내친김에 이번 기회에 우리 아이에게도 가르쳐보기로 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오는 길에 어느 아빠와 아이가 눈에 띄었다. 남자 아이가 우리 아이 또래여서 눈길이 갔나보다. 아빠가 아이를 물 위에 눕히려는 듯 했다. 물에 뜨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이리라. 

여기 이렇게 누워봐. 
아빠한테 매달리지 말고. 아빠가 잡아준다니까. 
괜찮으니까 한 번만 해보라고. 

점점 커져가는 남자의 목소리엔 답답함과 짜증이 묻어있었고, 표정에선 아이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느껴졌다. 오늘 아이가 물에 뜨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일까. 그는 그순간 너무 앞서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아이가 겁에 질려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사람은 그 애의 아빠 뿐이었다. 

그날 아이에게 스노클링을 가르치는 것은 포기했다. 아이는 스노클링 대신 물안경을 쓴 채 코를 붙잡고 얼굴을 물에 담그어 물고기들을 보길 반복하며 한참을 놀았다. 겨우 몇 초쯤 수면 아래에 머물 뿐이었지만 아이는 잠수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 봤어? 봤어? 저 물고기 말이야. 아이가 얼굴을 스스로 물에 담그며 노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노클링은 언젠가 때가 되면 배우게 될 것이다. 아이가 저만의 속도로 천천히 커가고 있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내가 해야할 일은 아이의 옆에서 얼굴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함께 들어주는 것. 때론 너무 앞서가서 아이의 부름을 듣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 

늦었지만 입학 축하해 아들.




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목욕 봉사

목욕을 마치고 나온 할머님의 젖은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말려드리고 조심조심 빗질을 한 뒤 무릎을 굽혀 눈을 맞춘다.
"이쁘시네요."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눈매가 가늘어지며 새초롬하게 웃는다.
"이쁘다고 해준께 좋네."

"할머니, 우리 같이 사진 찍어요."
손녀 뻘의 우리 병원 직원들이 양쪽에 착 앵겨붙는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할머니 얼굴도, 조금 전까지 그분 몸을 밀어드리던 직원들 얼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힌채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잠깐만, 내가 요 마후라 목에다 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겉옷 색깔과 맞춘 분홍색 머플러를 주섬주섬 챙겨 목에 두르신다.
"어르신, 멋쟁이시네요."
"그럼, 내가 얼마나 팻숀에 신경을 쓰는디."
할머님들도 천상 여자이시다.

일흔 여덟 김복례 할머님은 관절염으로 보행기에 기대 걷는다. 욕실에서 나올 때도 행여 넘어지시기라도 할까 싶어 부축을 해야 했다. 머리를 말려드리겠다니 극구 사양을 하다 못이기는 척 의자에 앉으신다.
"어르신도 혼자 사세요?"
복지관에 목욕 봉사를 받으러 오는 할머님들은 대부분 독거 상태이다. 수십번 들은 질문이었을텐데, 목욕 후 노곤한 마음에 '혼자'란 단어가 갑작스레 사무치게 들리셨을까. 하던 말씀을 뚝 끊고 고개만 주억거리신다. 지난 주에 동네 미장원에서 했다는 빠마머리에 물기가 사라지는데 유난히 오래 걸리는 듯 느껴졌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할머님들께 병원 봉사단 소식지에 실을 글을 한마디씩 부탁드렸다. 백지 한 장이 돌아가고, 할머님들은 모나미 볼펜을 꼭 붙잡고 시험 답안이라도 작성하듯 정성스레 쓰신다. 종이가 얼추 한 바퀴 돌았을 때쯤, 한 분이 종이를 들고 다가오셨다.
"여그다 내 이름 좀 써 주시요잉. 박월순이요."
가져오신 종이를 보니 정중한 감사 인사를 쓰신 분도 있었지만 몇 분은 본인 이름만 겨우 적기도 하셨다. 할머님은 다른 분들 이름 아래 빈 곳을 가리키며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글을 못쓰요. 그래도 감사 편지에 내 이름은 꼭 넣어야것기에..."
삐뚤빼뚤한 할머님들의 글씨 사이에 쓰인 멀끔한 글씨체가 어색하다. 채워넣은 자신의 이름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려는 듯 찬찬히 쳐다보던 할머님은 만족한 표정으로 종이를 건네주시며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허리를 굽히셨다.
"복 받으시요잉."


2015년 1월 20일 화요일

환자의 마음, 부모의 마음

- 마포 사무실 이사.

"새로 옮기신 사무실은 맘에 드세요?"
당뇨병으로 세 번째 진료를 받는 50대 환자였다. 사람좋은 웃음을 띄고있던 표정이 더 한껏 밝아지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나이 들어 변화가 생긴다는게 쉽지 않네요."

- 남편 위암 수술.

"남편분 건강은 어떠세요?"
여느 때처럼 고혈압 약 처방을 받고 일어서던 참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내 환자가 아니었지만 지난번에 남편의 암 진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터였다. 눈빛에 울듯 말듯한 기운이 스친다.
"이제 많이 안정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 부서 이동. 스트레스.

"새 부서에 적응하느라 힘들진 않으세요?"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생각해서인지 환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패션 업체의 과장이었다. 심장병에 대한 불안이 많은 편이었고 오늘도 진료 중에 걱정을 내비친 뒤였지만, 질문에 대답하는 그의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았다.
"이쪽 일이 그렇죠. 3D 업종입니다."

환자에 대해 기록할 때 병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을 종종 적어둔다. 사람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는데 소질이 없는 편이라 환자를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까싶어 적는 것이다.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주치의가 나에 대해 잘 알고있길 바라는 환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다른 방법으로나마 채우고자 하는 얄팍한 바램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런 기록을 적절히 활용하는 순간 진료실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진다. 환자는 종종 약간의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하는데, 그 순간 나에 대한 신뢰도 게이지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차트에 짧게 기록된 내용 중엔 가족이 병에 걸렸거나 직장을 옮겼다거나 하는 큰 변화도 있지만, 악기 연습을 시작했다거나 강아지를 새로 키운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들도 있다. 효과는 사소한 일들에서 더 크게 발휘된다. 의학적으로도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가 치료 효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론 기억하지 못하면서 기억하는 척 하며 환자의 마음을 받는 것이 꼼수를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땐 환자의 치료에도 도움이 될거라 합리화 해본다.

환자가 꺼내는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대개는 알고 있었던 것처럼 슬쩍 넘어가지만 눈치빠른 환자의 경우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는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그 이면에는 그저 수많은 환자 중의 하나에 그치지 않고 내게 보다 특별한 환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속내를 넌지시 비출 때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지상정인 것을.

*

둘째는 갓난아기 때부터 울음이 많은 아이였다. 한번 울음보가 터지면 쉽게 그치지 않았다. 예민하기도 해서 밤에 자주 깨 엄마 아빠의 수면 사이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낮잠을 재울 때에 잠든 아이를 조심조심 눕히면 등이 땅에 닿는 순간 자지러지게 울어서 다시 안아야 잠이 들곤 했다.

8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을 보내야하는 상황이 되면서 까탈스런 아이를 선생님께서 어떻게 감당하실까 걱정이 많았다. 매일 등원을 시킬 때마다 교실이 떠나가라 울었고 중간중간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독 자주 보채 첫 선생님이 애를 먹었다.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아이는 조금씩 어린이집에 익숙해졌다.

해가 바뀌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던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두돌이 지나고 말문이 트이면서 늘어난 떼와 고집에 아이와 실랑이를 해야하는 일이 잦았지만, 선생님은 늘 아이를 귀여워해주었다. 어린이집 수첩엔 매일 그날 찍은 아이 사진과 함께 아이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가 꼼꼼히 적혀있었다. 저녁에 아이의 어린이집 수첩을 펼쳐보는 것은 우리 부부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했던 말과 행동을 읽고 가끔은 놀라기도 했고, 그럴 때면 우리 아이가 특별할지도 모른다는 팔불출같은 기대도 했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얼마 전, 여느 때처럼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열었는데 수첩이 2개 들어있었다. 다른 아이의 수첩이 함께 딸려온 것이었다. 선생님이 다른 아이에게 어떤 이야길 적어주셨는지 궁금했다. 다른 아이의 사적인 부분을 엿보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결국 조심스레 몇 장을 흝어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수첩의 내용은 우리 아이 것과 대동소이했고, 복사한 것과 같은 문장도 군데군데 있었다.
- 오늘 그림 그리기 활동을 했는데 너무 잘그려서 깜짝 놀랐어요.
- OO이는 피카소가 되려나봐요.

선생님이 아이들을 똑같이 대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선은 안도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선생님에게 있어 우리 아이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 살짝 아쉽기도 했다. 부모의 못난 욕심이겠지만 어쩌겠는가. 인지상정인 것을. 내 진료실을 찾는 환자의 마음도 이와 비슷한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