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빠진 뒷굽을 갈 때도 된 듯해 수선을 부탁했다. 아저씨가 돋보기 안경을 걸쳐 쓰고 구두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오른짝 가죽과 밑창 이음새가 떨어져 구멍이 나있다. 저 상태로 잘도 신고 다녔구나. 아저씨는 혀를 쯧쯧 차고는 연장통에서 순간접착제를 꺼내 익숙한 손길로 떨어진 이음새에 꼼꼼이 칠하기 시작했다. 접착제가 마를 때쯤 손가락에 헝겊 조각을 야무지개 감고 구두약을 묻혀 문지르니 금새 광이 난다.
구멍난 이음새가 접착제만으로 수선이 될까 싶었는데, 손질이 끝난 구두를 살펴보니 그럭저럭 신을 만했다. 노점을 나와 다시 바삐 걷는데 어째 좀 처량한 생각이 든다. 구두 닦을 여유도 없이 구멍이 난줄도 모르고 한참을 신고 다녔다니. 참 정신 없이 바쁘게도 일했다.
- 구두를 닦았는데 한 짝 옆이 터져 있어서 접착제로 붙였어요. 굽을 간 김에 아까워 좀더 신는데 오래는 못 갈 것 같아요.
점심 시간에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고, 바로 아내의 답신이 왔다.
- 이런... 구두 하나 당장 사야겠어요. 진즉 샀어야 했는데.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 건 내 처량한 심정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었다. 이런 유치한 바램을 넌지시 표현할 상대로 아내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업무가 늘어나 심신이 지쳐가는 중에, 짧게 오고간 문자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구두야 뭐 좀 있다 사도 되지.
위로라는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내가 힘들 때 누군가 그걸 알아준다는 것. 위로의 출발점은 바로 그 지점부터이다. 더 좋은 해결책을 찾아준다거나 건설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굳이 그렇지 않아도 된다. 내 힘듦을 그가 알고있다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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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영화 아주 잘 만들었다더라.
주말에 올라오신 장인께서 식사 중에 갑작스레 언급하신 건 관객 수 천만을 훌쩍 넘겼다는 그 영화였다. 이런 말씀은 영화를 보고싶다는 속내를 에둘러 표현하신 것이다. 아내도 나도 보지 않은 영화라 잘됐다 싶어 식사를 마치고 다같이 iptv를 볼 수 있는 작은 방에 둘러앉았다.
고향이 이북인 장인은 46년생이시니 전쟁이 벌어진 해에 다섯 살이셨다. 흥남 부두의 철수를 직접 겪진 않으셨지만 전쟁 이후 부산에서 주욱 사셨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하셨으니 영화 속에서 그려진 시대를 고스란히 지내오신 셈이다. 워낙 화제가 되었던 영화라 대략 내용은 알고 있었기에 장인께서 보고싶어하시는 것도 이해가 갔다.
훌륭한 영화는 아니었다. 몇몇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지만, 캐릭터는 전형적이고 플롯은 엉성했다. 그래도 두 시간동안 지루함을 느끼진 못했고 이산가족 상봉 방송 장면에선 눈물도 났다. 하긴 50년 이후 이 나라의 현대사 자체가 숨이 찰만큼 극적인 드라마인데 그 가운데 굵직굵직한 사건을 주욱 되짚기만 해도 지루할 틈이 있겠는가.
장인은 영화를 보는 중에 종종 탄식 비슷한 소리를 내셨다. 어허,,, 그 참, 어허,,, 그 참. 말은 안하셨지만 당신이 젊었을 적 풍경이 재현된 화면을 보며 옛날 생각이 나셨으리라. 영화와 장인의 반응을 함께 경험하며 이 영화가 왜 화제가 되었는지, 왜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든 몇 안되는 영화에 꼽히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중의 취향과 흐름을 저격하는 감독의 재능은 역시 뛰어났다.
'Ode to My Father'인 영문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아버지 세대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만든 영화라고 했다.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가 아버지들을 위로해주었을까.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하고 울먹이는 덕수를 위로한 사람은 아버지의 환영 뿐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 이야기를 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익숙치 않았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영화를 보며 조금은 위로를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퍽퍽했던 시대에 온 몸으로 가족을 지탱해 온 우리의 평범한 부모들이 그동안 제대로 된 위로를 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이 영화를 향한 대중의 이상(異常)적 열광은 제대로 위로하지 못했음에 대한 자기 고백이 아닐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