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목욕 봉사

목욕을 마치고 나온 할머님의 젖은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말려드리고 조심조심 빗질을 한 뒤 무릎을 굽혀 눈을 맞춘다.
"이쁘시네요."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눈매가 가늘어지며 새초롬하게 웃는다.
"이쁘다고 해준께 좋네."

"할머니, 우리 같이 사진 찍어요."
손녀 뻘의 우리 병원 직원들이 양쪽에 착 앵겨붙는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할머니 얼굴도, 조금 전까지 그분 몸을 밀어드리던 직원들 얼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힌채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잠깐만, 내가 요 마후라 목에다 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겉옷 색깔과 맞춘 분홍색 머플러를 주섬주섬 챙겨 목에 두르신다.
"어르신, 멋쟁이시네요."
"그럼, 내가 얼마나 팻숀에 신경을 쓰는디."
할머님들도 천상 여자이시다.

일흔 여덟 김복례 할머님은 관절염으로 보행기에 기대 걷는다. 욕실에서 나올 때도 행여 넘어지시기라도 할까 싶어 부축을 해야 했다. 머리를 말려드리겠다니 극구 사양을 하다 못이기는 척 의자에 앉으신다.
"어르신도 혼자 사세요?"
복지관에 목욕 봉사를 받으러 오는 할머님들은 대부분 독거 상태이다. 수십번 들은 질문이었을텐데, 목욕 후 노곤한 마음에 '혼자'란 단어가 갑작스레 사무치게 들리셨을까. 하던 말씀을 뚝 끊고 고개만 주억거리신다. 지난 주에 동네 미장원에서 했다는 빠마머리에 물기가 사라지는데 유난히 오래 걸리는 듯 느껴졌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할머님들께 병원 봉사단 소식지에 실을 글을 한마디씩 부탁드렸다. 백지 한 장이 돌아가고, 할머님들은 모나미 볼펜을 꼭 붙잡고 시험 답안이라도 작성하듯 정성스레 쓰신다. 종이가 얼추 한 바퀴 돌았을 때쯤, 한 분이 종이를 들고 다가오셨다.
"여그다 내 이름 좀 써 주시요잉. 박월순이요."
가져오신 종이를 보니 정중한 감사 인사를 쓰신 분도 있었지만 몇 분은 본인 이름만 겨우 적기도 하셨다. 할머님은 다른 분들 이름 아래 빈 곳을 가리키며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글을 못쓰요. 그래도 감사 편지에 내 이름은 꼭 넣어야것기에..."
삐뚤빼뚤한 할머님들의 글씨 사이에 쓰인 멀끔한 글씨체가 어색하다. 채워넣은 자신의 이름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려는 듯 찬찬히 쳐다보던 할머님은 만족한 표정으로 종이를 건네주시며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허리를 굽히셨다.
"복 받으시요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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