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4일 금요일

아버지의 전화

휴대폰에 아버지의 전화번호가 뜨면 설핏 긴장하게 된다. 아버지가 먼저 전화 하시는 일은 일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고, 뭔가 특별한 용건이나 부탁이 있을 때 뿐이다.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는 어색하다. 기껏해야 1-2분 남짓한 대화도 중간에 끊기기 일쑤이다. 뜨뜻미지근한 안부 인사 뒤에 본론이 불쑥 튀어나오고 용건에 관한 대화가 끝나면 성급하게 마무리되는 식이다. 아버지와 다 큰 아들 사이는 다 그런거라고, 시시콜콜 무슨 말이 필요있냐고 하지만 몇년 전까지 내게 그 말의 속뜻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에 더 가까웠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는 그저 어머니와 우리들 곁에 무심코 서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문득 문득 아버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됨을 깨닫는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더 많아지거나 아버지를 더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물이 흐르듯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일이다. 내가 처음 서게 된 자리에 이미 아버지의 발자국이 수없이 찍혀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내가 처음 알게된 것들 역시 이전에 아버지가 수없이 고민했던 것이란 걸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불혹이 넘은 나이이지만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갈팡질팡 할 뿐인데, 아버지처럼 삼십년을 더 살면 세상의 이치를 더 깨닫게 될지는 모르겠다. 단지 내가 당신의 뒤를 잘 따라가고 있다고, 십년 전보다 당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더 늦기 전에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내가 아버지를 이전보다 더 많이 이해하는 것처럼,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벌써 다 알고계실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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