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9일 수요일

걱정과 불안이 병원을 찾게 한다.

50대 여성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건강 검진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왔다.

건강 검진을 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요즈음은 특별히 불편한 곳이 없어도 1-2년에 한번씩 때가 되면 건강 검진을 챙겨 받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개는 역시 건강 검진을 위해 병원을 방문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최근 위경련이 자주 있어 걱정임.’ 

미리 흝어본 환자 관련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일상적인 질문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이번에 건강 검진 받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불안한 표정의 그녀가 마주앉은 의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다짜고짜 묻는다. 
“위 조직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어떤가요?”
"위에 염증이 있어서 확인차 조직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도 뭔가 찜찜한 표정인 그녀에게 한마디 더 덧붙였다.
"전체적인 결과도 괜찮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들으시면 되요."
그제서야 그녀의 굳어있던 얼굴이 좀 부드러워지고, 본인도 어색함을 느꼈는지 멋쩍게 웃는다.
"검사 받고 불안해서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잤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그녀의 아버지는 위암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그녀 역시 젊어서부터 조금만 신경을 쓰면 소화가 안되곤 했다. 그럴 때면 명치 아래에 돌덩이가 놓여있는 느낌이었다. 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며 대개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럴 때면 꼭 꾀병 환자 취급을 받은 듯해 기분이 상하기 일쑤였다. 용하다는 한의원에서는 비위가 약한 체질이라고 했다. 이곳 저곳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먹었지만 그때 뿐, 시간이 지나면 명치 끝의 돌덩이는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남편은 소화불량을 달고 사는 아내를 보고 예민한 그녀의 성격 탓이라 했다. 결혼 초기와는 달리 그녀의 증상에 심드렁하거나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는 남편에게 종종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녀 자신도 스스로의 성격이 문제겠거니 생각했다. 아버지의 병명을 알게 된 이후로 증상은 더 심해졌고, 이전보다 더 걱정이 되었음에도 한편으론 겁이 나기도 해서 부러 병원을 찾지 않았다. 

위에 무언가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고교 동창의 병문안을 다녀온 날 밤이었다. 명치 끝이 뒤틀리는 통증에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깼고, 결국 구급차를 불러 근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수액과 진경제를 맞고 통증이 가라앉았지만 그날 밤의 경험으로 그녀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응급실 의사는 스트레스로 인한 위경련이라고 했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몸이니 자신의 위에도 암세포가 자라고 있을 것 같았다. 결국 큰맘 먹고 종합 검진을 신청했다. 위내시경 검사가 끝나고 조직검사를 했다는 설명을 듣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에는 불편한 증상이 생겼을 때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만나야할 사람도 많고 보고 들어야 할 매체도 많은 요즘에는 병원을 찾는 이유가 꼭 특정 증상 때문만은 아니다. 증상보다 걱정과 불안 때문에 외래 진료실을 방문하거나 건강 검진을 신청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불안을 키우는 것이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건강 문제일 때도 있고 대중 매체의 잘못된 정보일 때도 있다. 

물론 그녀처럼 원래 있던 증상이 걱정과 불안 때문에 더 심해지기도 한다. 위경련은 위장이 과도하게 수축해서 명치 끝을 비트는 통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위장의 본래 운동 기능이 어그러져서 생기는 증상이다. 우리가 모르는 와중에도 위장은 자율신경의 명령을 받아 열심히 소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걱정과 불안으로 신경 계통의 명령 체계가 흐트러지면 위장도 제대로 운동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종종 위경련이나 기능성 위장장애, 과민성 장질환과 같은 흔한 질환으로 나타난다. 

위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체 장기의 기능성 질환은 대부분 걱정과 불안으로 인해 악화된다. 긴장성 두통, 어지럼증, 근막통, 불면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암과 같은 위중한 질환은 치료가 가능한 초기엔 대개 증상이 없어 병원을 찾지 않는다. 반면에 기능성 질환은 위중하진 않지만 오히려 환자 입장에선 때론 죽을만큼 괴로운 병이기에 병원을 찾는 훨씬 흔한 원인이 되곤 한다.

전반적인 컨디션이 나아지면 밀물에 암초가 잠기듯 증상은 수면 밑으로 자연스레 가라앉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능성 질환의 경우 증상 자체를 없애려 애를 쓰기보다 스스로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과로를 피하고 운동을 통해 체력을 늘리는, 어찌 보면 뻔한 방법이 다양한 기능성 질환의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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