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3일 목요일

연수일기 74. CDC의 변경된 마스크 관련 지침에 대해

6월 2일 수요일. 130일째 날.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CDC의 5월 13일 발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발표로 인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마스크를 벗게 됨으로써 새로운 환자 발생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를 했다. 반면에 백신 접종을 하면 마스크를 벗고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백신 접종을 주저하던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을 동기를 줄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있었다.

NY Times의 오늘 칼럼을 보면 긍정적 전망에 조금 더 기대어봐도 될 것 같다. 이 칼럼에서는 그 근거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5월 13일 이후에도 새로운 환자 발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CDC 발표 이후 실제로 일부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도 마스크를 벗고 있지만, 환자 발생 추이를 바꿀 만큼 영향이 크진 않았을 것으로 분석한다. 물론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어도 바이러스를 퍼뜨릴 위험이 극히 낮다.
둘째는 4월 중순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던 백신 접종자 수가 CDC 발표 이후 감소 추세를 멈추었다는 점이다.(접종 대상 연령으로 새로 추가된 12-15세 청소년을 더하면 하루 백신 접종자 수는 오히려 늘었다.) CDC 발표가 있던 날, 내 주변의 백신 접종 장소를 안내하는 vaccines.gov 사이트의 트래픽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후에도 발표 이전에 비해 늘어난 트래픽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접종자 수 추이의 변화에 CDC의 발표가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가 일시적으로 건강 관련 행동을 바꿀 수 있지만, 이러한 효과는 제한적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포가 가져온 효과는 오래 가기 힘들고 필연적으로 저항과 반작용을 만나게 된다. 반면 '희망'이 불러일으킨 행동 변화는 좀더 오랫동안 유지 가능하다. 그러므로, 백신을 맞지 않으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다라는 무시무시한 메세지만으로 끝나선 안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메세지가 필요하며, 그 내용은 구체적일 수록 좋다. 백신을 맞으면 더이상 자신의 삶을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친구들을 만나고 친척들과 포옹을 나눌 수 있다는 것. 대중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 주는 효과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으며, 이는 긍정적 강화가 사람들의 건강 관련 행동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사례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백신을 맞으면 할 수 있는 일들
출처: https://www.cdc.gov/coronavirus/2019-ncov/vaccines/fully-vaccinated.html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도 백신 접종자는 거리두기 완화가 가능하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언론도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다.(최근 주요 신문의 논조는 개인적으로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만큼의 태세 전환인데, 내가 한국에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지는 모르겠다.) 백신 접종자가 600만명을 넘어서고, 하루 50만명 씩 접종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노쇼 백신을 예약하기가 어렵다는 소식도 있었다. 미국에서 목격하는 희망적인 추세가 계속 이어지기를, 그리고 한국에서도 '희망'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모두가 경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1년 6월 2일 수요일

연수일기 73. 어지럼증 병상 일기

6월 1일 화요일. 129일째 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시야가 핑 돌았다. 방 천장이 반원의 원주를 따라 돌았다가 다시 곧바로 되돌아오는 식으로 계속 돈다. 몸을 일으켰다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가 없어 다시 누웠다. 최근 며칠간 아침 기상 시에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는데,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어지럼증 외에 다른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빙빙 도는 시야 때문에 울렁거림이 생겨 눈을 감고 어지럼증의 원인이 뭘지 생각했다. 아무래도 양성발작성두위현훈(Benign Paroxysmal Positional Vertigo, BPPV)이 생긴 것 같았다. 

BPPV는 어지럼증의 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이석증이라고도 불리는데, 내이의 이석기관에서 떨어져 나온 이석이 반고리관을 자극해 어지럼증이 생긴다. 주로 아침 기상 시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지만 머리의 위치를 변화시키면 어지럼증이 유발되고,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면 대개 1분 이내에 가라앉는다. 어지럼증과 함께 특징적인 안진(nystagmus)이 발생한다. 내 증상은 아주 전형적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도 해야 하니 그래도 일어나보려 했다. 화장실로 가는데 가라앉았던 어지럼증이 다시 확 밀려와 화장실 앞에서 주저앉았다. 기어가다시피 욕조로 가 구토를 했다. 오늘 집에서 나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아이들은 아내가 데려다 주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오늘 연구실에는 나가지 못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BPPV의 치료는 빠져나온 이석을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이석 정복술'이다. 대개는 의사가 환자에게 머리 방향을 지시하고 동작을 도와 시행하지만 방법을 잘 안다면 환자 스스로도 시행할 수 있다. 내친 김에 시도해 보기로 했다. 우선 Dix Hallpike 유발 검사를 통해 어지럼증과 안진이 발생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앉은 자세에서 뒤로 누우면서 머리를 45도 정도 옆으로 돌려 침대 아래로 떨어뜨리고 증상 여부를 확인한다. 왼쪽은 심하지 않았지만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유발 검사를 하니 바로 증상이 생겼다. 안진은 내 자신이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석 정복술 방법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가끔 시행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스스로 해보게 될 줄은 몰랐다. 유발 검사와 정복술을 셀프 시행하는 과정에서 또 화장실로 가 구토를 해야 하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마무리를 했다. 정복술 뒤에는 한동안 머리를 세우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일어나긴 힘들어 침대에 기대어 한참동안 쉬었다. 속이 울렁거려 책을 읽기도 힘들고 움직일 수도 없으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Epley maneuver at home

놀란 아내가 응급실에라도 가야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BPPV의 경우 딱히 다른 치료법이 없다. 증상이 워낙 전형적이고 정복술도 했으니 기다려보기로 했다. 일단 응급실에 가면 여러가지 복잡한 절차를 겪어야 할 것이고, 정확한 감별을 위해 행여 MRI와 같은 영상 검사를 받기라도 하면 진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이다. 의사인 나는 자가 진단과 조치가 가능했지만, 의사가 아니었다면 바로 응급실로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장 이런 문제가 생기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했을까? 911을 부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청구될 것이다. 내가 가입한 여행자 보험이 이 비용을 모두 커버해 줄 수 있을까? 새삼 이곳 의료 체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생활을 준비할 때 모든 이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의료 문제이다. 사고로 응급실에 갔다가 청구서에 프린트 된 엄청난 금액에 까무러칠 뻔했다는 경험담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되도록 병원엔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다. 보험이 없다면 문제가 더 크겠지만, 보험이 있어도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이런저런 귀찮은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오기 전에 미리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가 필요한 문제를 미리 해결하려 한다. 미국행 비행기 짐엔 상비약을 잔뜩 넣는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연수를 떠나기 몇 달 전부터 준비했다. 나는 1년 전부터 말썽이던 오른쪽 어깨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MRI를 찍었다. 예상대로 인대의 손상이 발견되었고, 손상 정도가 꽤 심하긴 하지만 수술을 받지 않고 스트레칭을 하며 지켜볼 수도 있겠다는 의견을 받았다. 만약 미국행 일정이 없었다면 수술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미국에 온 이후 통증은 많이 나아진 상태이다. 아들은 제작년에 다친 무릎이 좋지 않아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역시 MRI 촬영을 했고 큰 문제는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연수가 미뤄지면서 출국을 기다리는 동안 아들의 무릎은 다행히 좋아졌다. 역시 미국에 올 계획이 없었다면 MRI를 찍지 않고 좀더 기다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평소 치아가 썩 좋지 않은 아내는 출국 전에 점검을 위해 다니던 치과 진료를 받았다. 

오전 내내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오후엔 증상이 한결 나아져 침대에서 내려와 걸어다닐 수 있었다. 이 정도로 큰 문제가 없이 나아질 수 있어 다행이다. 아내의 경우 이전에도 각막에 상처가 나고 염증이 종종 생겼는데, 얼마 전에도 비슷한 증상이 생겨 한국에서 처방을 받아 가져온 안연고를 꾸준히 넣고 증상이 좋아졌다. 물론 한국이었다면 동네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을 것이다. 이곳 생활에선 나와 아내가 의사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고나 외상이라도 생기는 경우엔 별 수 없이 이곳 병원에 가야 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길.

2021년 6월 1일 화요일

연수일기 72. 엘핀 포레스트(Elfin Forest) 트레일

5월 30일 일요일. 127일째 날.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를 가기로 했었는데 어제 밤에 예약을 취소했다. 현재는 티켓 구매와 별도로 방문을 미리 예약해야 하며, 하루 전까지는 예약 취소가 가능하다. 재개장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거리두기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운영하지 않는 놀이 시설도 있는 데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공연을 하지 않는 상태이다. 어드벤처 파크에서 하는 '프로즌' 뮤지컬 공연도 작년 3월 이후 닫혔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어벤져스 캐릭터들도 개점 휴업 상태라고 하니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던 분위기를 느끼긴 어려울 것 같다. 

6월 4일에는 개장 준비 중인 생텀과 어벤져스 본부를 포함해 어벤져스 캠퍼스(https://youtu.be/r8t28WOEZNA)도 완전 개장을 한다. 6월 15일까지는 캘리포니아 주민만 입장이 가능해 붐비지 않을 거란 장점은 있지만, 그래도 티켓 가격이 후덜덜하니 즐길 거리가 더 많아진 이후에 가기로 했다. 그동안 아이들과 같이 어벤져스 시리즈나 다시 복습해야겠다. 일정이 급 취소된 덕분에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다. 


5월 31일 월요일. 128일째 날. 메모리얼 데이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엘핀 포레스트 Elfin forest recreational reserve에 다녀왔다. 샌디에고 시 북쪽, 에스콘디도 근처로 집에선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입구 주차장엔 슬롯이 많지 않고 만차여서 입구 바깥의 갓길에 주차를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입구 바깥 갓길은 주차를 할 수 없는 곳이라 견인이 될 수 있다고 하니 따로 있는 보조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주차장 안쪽의 트레일 헤드를 지나면 작은 강 Escondido creek을 만난다. 강이라기 보다는 시냇물 정도인데, 한국에선 동네 뒷산을 가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샌디에고 주변의 트레일에서 이런 물길을 보는 건 드문 일이다. Escondido creek의 물길은 에스콘디도 동쪽의 Lake Wohlford에서 시작해, 얼마 전 애니스 트레일에서 보았던 San Elijo Lagoon 까지 이어지고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한다. 

Escondido creek

정상까지 이어진 Way up trail의 길이는 1.4마일 정도인데, 경사가 꽤 있는 언덕길이라 등산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상의 높이는 1300피트(390미터) 정도이니 서울의 남산이나 아차산 보다 높다. 서울 시내만 해도 이보다 높은 산들이 많고 이 정도가 그리 험한 등산 코스라 할 수 없지만, 이곳에선 쉽게 경험하지 못할 만한 코스일 것이다. 샌디에고 사람들에겐 색다른 트레일 코스일 수도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등산 코스로 보면 올라가는 길이 너무 밋밋해 한국의 산들에 비하면 오르는 재미가 덜하다. 

Olivenhain Reservoir

정상 가까이 가면 Olivenhain Dam & Reservoir를 만나게 된다. 높은 곳에 댐과 저수지가 있는 풍경이 색다르다. Ray Brooks Overlook의 그늘막 아래에 앉아 바람을 쐬니 햇볕의 열기와 땀이 금새 식고 시원함을 느낀다. 준비해 간 과일과 물을 마시며 30분 정도 쉬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올라갈 땐 1시간 반, 내려올 땐 1시간 정도가 걸렸다.  

2021년 5월 30일 일요일

연수일기 71. 쿠야마카 호수(Lake Cuyamaca) 피크닉

5월 29일 토요일. 126일째 날. 쿠야마카 호수 Lake Cuyamaca에 다녀왔다. 

3월에 줄리안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들렀던 곳이다. 당시엔 흐리고 비까지 오늘 날씨 때문에 줄리안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었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오는 길에 들러볼 곳을 찾았고, 그게 이 호수였다. 지도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까운 곳에 호수가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호수 쪽으로 운전대를 잡았는데, 주차료를 내지 않고는 호숫가에 정차할 만한 곳이 없어 주변 풍경만 둘러보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샌디에고 근교에 캠핑과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는 호수였다. 집에서 1시간 거리로 나들이 삼아 다녀오기 적당해 언젠가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 생각했던 터였다. 

한적한 호숫가


줄리안에서 79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호수를 만나게 된다. 이곳의 댐은 1888년에 건설되었고,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고 한다. 호수 서쪽에 있는 레스토랑과 낚시 샵 옆으로 주차장 입구가 있다. 이곳에 주차를 하려면 입장료 10불을 내야 한다. 입구 안쪽의 호수 기슭에는 바베큐 그릴이 딸린 피크닉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다. 휴일 소풍을 나온 가족들이 많았고,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도 꽤 있었다. 낚시를 하려면 캘리포니아 라이센스(하루 17불)와 퍼밋(성인 8불)을 구입해야 한다. 이 호수에선 커다란 송어도 낚을 수 있다고 한다. 

월척이다... (출처: https://www.lakecuyamaca.net/)

낚시 도구 샵에서 낚싯대를 빌리려 했는데, 지금은 거리두기 때문에 대여는 하지 않고 판매만 한다고 했다. 낚시 도구를 다 구입하기엔 부담이 되어 이번엔 낚시는 포기하고 대신 보트를 빌리기로 했다. 모터가 달린 나무 보트를 35불에 오후 반나절 동안 빌릴 수 있다. 운전법은 매우 간단해서, 전진/중립/후진 기어와 엑셀에 해당하는 바에 대한 설명으로 끝. 원칙은 성인만 운전할 수 있지만,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가능할 듯 했다.(실제로 호수 가운데서 아들이 잠깐 운전을 체험해보기도 했다.) 라이프 자켓은 아이들에게만 준다. 안전 교육이나 주의 사항도 없다. 말은 안 했지만 '호수에 빠지더라도 당연히 다들 수영은 할 수 있지?'라는 듯한 태도.  

(출처: https://www.lakecuyamaca.net/)


호수 중간에서 닻을 내려 정박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보트에서 낚시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 시간 정도 보트를 타고 나와 피크닉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호수 주변으로 피크닉과 캠핑이 가능한 구역은 서쪽과 북쪽에 모두 세 군데가 있다. 피크닉과 캠핑 구역 외에 캐빈과 콘도도 있어 좀더 편한 숙박도 가능했다. 다음 번에 레이크뷰 캐빈을 예약해 다시 오기로 했다. 그땐 낚싯대를 준비해오면 좋을 것 같다. 떠나기 전에 보트를 한 번 더 탔다. 

사진만 다시 봐도 힐링이 되는 느낌

돌아오는 길에 줄리안의 맘스 파이에서 애플 사이다를 샀다.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사과 쥬스였다. 사과 외에 배즙을 넣어 새콤달달했다. 쥬스를 까다롭게 고르는 딸아이도 맛있어 해 한 병을 더 샀다.

2021년 5월 29일 토요일

연수일기 70. 도서관 책 빌리기, 옐로스톤 국립공원 숙소 예약

5월 27일 목요일. 124일째 날. 아내가 카멜 밸리 도서관에서 책 두 권을 빌렸다. 도서관 카드를 만든 건 꽤 오래 되었지만 실제 책을 빌린 건 처음이다. 예년과 같이 도서관이 열렸다면 책을 좋아하는 아내가 자주 갔을 것이다. 아직까진 대면 서비스가 제한되어 있어서 도서관 안에서 책을 고르거나 읽을 수는 없고 온라인을 통해 신청한 책에 대한 픽업만 가능하다. 샌디에고 공립 도서관의 회원이 되면 홈페이지(https://www.sandiego.gov/public-library)에서 책을 고르고 픽업할 도서관을 선택할 수 있고, 책이 준비되면 메일이나 문자 알림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아니라 아내가 읽을 책


얼마 전 김치를 샀던 한식 반찬 가게에서 바베큐와 반찬 세트 공구를 신청해 받아왔다. 돼지 목살과 LA갈비, 소불고기와 제육볶음 등 다양한 종류의 고기에 두세 번은 먹을 수 있는 양이라 가격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 곱창도 포함되어 있어서 저녁에 구워 먹었다. 곱창은 몇 달 만에 먹는 것 같다. 

8월 첫 주에 갈 옐로스톤 국립공원 숙소를 예약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을 다 정하지 못했지만, 옐로스톤도 워낙 넓어서 하루 이틀 정도는 국립공원 안의 랏지에서 묵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요세미티 내부의 랏지도 그렇지만 성수기엔 일찍 예약이 차서 몇 달 전에 서둘러 예약을 해야 한다. 무료 취소가 가능해 취소 자리가 자주 난다고 해서 최근엔 매일 예약 사이트를 확인했는데, 마침 올드페이스풀에 위치한 랏지에 이틀 연박 자리가 나서 바로 예약했다. 올드페이스풀 근처가 가장 예약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다행이다. 이제 국립공원 외부 숙소와 솔트레이크 행 항공편을 예약할 차례이다.


5월 28일 금요일. 125일째 날. 오늘 연구 미팅에 모신 연자는 워싱턴 대학의 Joel Kaufman 교수이다. 대기 오염과 건강에 대한 연구 영역에서 손꼽히는 연구자이며, MESA 서브 코호트인 MESA-AIR 연구의 책임 연구자이기도 하다. NEJM, Lancet 등 유수의 저널에 논문을 발표했고,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의 편집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은 미세먼지가 심혈관질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소개했다. Covid-19로 연구 미팅은 모두 화상으로 진행하고 있고, 대학의 업무가 정상화 된다면 과거와 같이 오프라인 미팅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미국 전역의 저명한 연구자를 만날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그동안 화상회의에 익숙해졌고 그 장점도 명확하기에, 거리두기가 풀린다 해도 연구 미팅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해도 좋을 것 같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Father's day 선물을 만들어왔다. Father's day는 다음 달이지만, 아마 학교에서 방학 전에 선물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나 보다. 

선택 항목에 Beer or Soju?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녁에 H 선생님 가족과 식사했다. 랄프스에서 사온 닭다리로 아내가 양념 치킨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보내온 양념 치킨 소스를 지난 번에 다 써버려서 이번엔 소스까지 직접 만들었는데, 마지막에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갔나보다. 양념 치킨을 잘 먹는 딸아이가 후라이드 치킨만 먹었다. 물론 어른들에겐 너무나 만족스런 메뉴였지만.  

2021년 5월 27일 목요일

연수일기 69. 학교 운동회(Field Day), 미라마르 호수(Lake Miramar) 피크닉

5월 25일 화요일. 122일째 날. 어제는 아이들 학교의 Field day 였다. 운동회를 영국에선 Sports day, 미국에선 Field day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제 아이들을 데리러 갔을 때 운동장에서 풍선 말을 타고 이어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잠깐 볼 수 있었다. 대형 에어 미끄럼틀도 설치되어 있었는데 딸아이 말로는 이걸 통과하는 게임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께서 사진을 보내주셨다. 


5월 26일 수요일. 123일째 날. 오후에 미라마르 호수로 피크닉을 다녀왔다. 3월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미라마르 호수는 댐을 막아 생긴 저수지로, 콜로라도 강과 북부 캘리포니아를 거쳐 모인 이곳의 물은 샌디에고 시민 50만 명의 식수로 쓰인다. 5마일 길이의 산책로가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 나들이나 운동을 하기 좋은 곳이다. 지난 번 방문 때 닫혀있던 매점도 문을 열었다. 매점에선 간단한 간식을 살 수 있고, 보트를 대여하는 것도 가능했다. 갈매기와 오리가 많았는데, 호수 주변을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커다란 오리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별표 위치가 주차장과 피크닉 장소
호수 동쪽 기슭엔 전망 좋은 레이크 뷰 공원이 있다.

낚시와 개인 보트 permit fee

카약이나 보트를 탈 수도 있다.


호수와 주변 풍경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날씨가 따뜻해져 햇볕을 쬐며 앉아있기 좋았다. 피크닉 테이블 주변엔 바베큐 그릴도 있어 숯과 고기를 준비해와도 좋을 것 같았다. 미국엔 캠핑장 뿐 아니라 공원에서도 바베큐를 할 수 있는 그릴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처음엔 이런 곳에서 고기를 굽는 게 생경하게 느껴졌지만 이젠 이런 광경에 익숙해졌나 보다. 고기는 없었지만, 볕이 잘 드는 테이블에 앉아 준비해간 버너와 냄비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2021년 5월 25일 화요일

연수일기 68. 신용카드 도용 문제, 코스트코 치킨

5월 24일 월요일. 121일째 날. 

특별한 일이 없어도 BOA 어플을 종종 들어가보는 편이다. 주말 동안 내가 알지 못하는 거래처에서 1센트가 결제되었다가 다시 환불되는 일이 두 차례 있었다. 다행히 그 이상의 금액 결제 건은 없었다. 혹시 누군가 내 카드 번호를 도용해 결제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어 오늘 아침 은행 담당 직원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계좌를 확인한 은행 직원도 누군가 카드 번호를 도용해 실제 결제가 되는지 확인해본 것 같으니 기존 카드를 정지시키고 새로 카드를 신청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BOA 어플리케이션에서 기존 카드의 replace를 신청할 수 있다. 신청 과정에서 사유를 missing/stolen으로 선택하면 새로 받을 카드의 번호를 기존 카드와 다르게 변경 가능하다. 신청을 끝내자 기존 카드는 곧바로 정지되었고 어플에서도 해당 카드는 비활성화 상태가 되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어플에서 변경된 카드 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실물 카드는 우편으로 배송된다고 한다. 새 카드 발급 수수료는 없었는데, 다른 사유를 선택하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전화 통화를 하지 않고 어플에서 신청할 수 있어 도용이 의심되면 바로 조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 무엇보다 은행 어플에 자주 들어가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번거로운 절차 외에 다행히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이런 일을 경험하니 미국의 신용카드 서비스에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식당이나 술집에선 내가 아닌 직원의 손에 카드가 맡겨지고, 팁이 더해지는 과정에서 결제 정보가 매장에 남겨진다. 온라인 결제 과정에선 대부분 별도의 인증 절차가 없고, 한국과 같은 결제 후 문자나 푸시 알림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는다. 카드 도용으로 인한 피해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곳 사람들도 이런 시스템의 문제를 모르진 않을텐데, 왜 개선을 하지 않는걸까? 


저녁엔 아내가 닭계장을 만들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괜찮은 상품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로티세리 치킨은 가성비 최고의 상품이라 생각한다. 코스트코에 갈 때 두 번에 한 번쯤은 4.99불 짜리 이 치킨을 사온다. 크기도 해서 네 식구가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처음 사왔을 땐 남는 게 별로 없었는데, 이젠 처음보단 감흥이 떨어져서인지 먹는 양이 줄어 살코기가 제법 남는다. 남은 살코기는 잘 발라서 샐러드 재료로 쓰기도 하고, 닭 뼈와 함께 냉동실에 넣었다가 필요할 때 끓여 육수를 우려낸 다음 칼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오늘 만든 닭계장도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뼈와 살코기를 활용했다. 칼칼한 국물이 시원했다. 4.99불 짜리 치킨으로 두 끼 이상이 해결되니 어찌 이 상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공손히 두 다리를 모은 이 치킨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품도록 하자.

사진은 미처 찍질 못해 구글링으로...


2021년 5월 24일 월요일

연수일기 67. IMBHRT 결과, 문라이트 비치(Moonlight Beach) 피크닉

5월 22일 토요일. 119일째 날. 2주 전 아들이 봤던 Integrated Math B Honors Rediness Test (IMBHRT) 결과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이 테스트에서 70%를 넘으면 8학년 과정 수학 수업을 선택할 수 있다. 결과는 73.17%. 수학 용어를 묻는 문제 중 모르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기준을 넘었다. 테스트를 신청한 건 이곳 중학교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다. 안내문에는 Math B Honors를 선택하는 경우, 8학년 때는 9학년 과정을 듣게 되며 9학년 수학은 다른 학교에서 통합 수업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부모가 라이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차피 그때쯤엔 한국에서 수업을 듣고 있겠지만. 

한국에서 온 아이들은 대개 수학을 잘 하지만 영어 수준은 낮고, 이곳 공립 학교는 각각의 과목에 대해 아이의 레벨에 맞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추가적인 인프라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학습 능력에 따라 다양한 수업을 받을 수 있다면 교육 효과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학교의 교육 방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 키는 아닐 것이다. 한국의 공교육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의 학습 능력에 따라 다른 레벨의 수업을 제공하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한계가 사교육 시장을 키우는 데에 일조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의 현실에 맞으면서도 모든 아이들이 좀더 나은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5월 23일 일요일. 120일째 날. 입국한 지 만 4개월째 되는 날이다. 

아들은 오전 내내 학교 숙제인 포스터를 만들었다. 지난 번 동영상에 이어 아시아의 문화에 대한 내용으로 러시아 음식을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 왜 하필 평생 한번도 안 먹어본 러시아 음식으로 정했는지를 물었더니, 뭔가 색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나. 음식 사진을 골라 출력하고 소개글을 작성하는 모습이 나름 진지했다. 학교 숙제는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러시아도 아시아에 포함이 되던가?

오후엔 문라이트 비치에 다녀왔다. 캘리포니아는 covid-19 신규 환자 수가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다. 미국 전체 기준으로도 오늘 확진자 수는 3만명 미만으로 1년 만에 최저 숫자를 기록했다. CDC의 백신 접종자에 대한 마스크 착용 완화 방침에도 기존의 거리두기 제한을 유지했던 캘리포니아와 샌디에고 카운티도 6월 15일 부턴 제한을 모두 풀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주말 오후의 햇볕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보았던 해변의 풍경 중에 오늘이 가장 사람도 많고 활기차 보였다. 



바람막이 텐트를 설치하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햇살을 받은 다리 살갗이 간질간질했지만 따가울 정도는 아니었다. 주변의 공기는 적당한 활기와 듣기 좋은 소음으로 넘실거렸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아이들의 웃음 소리, 맨발에 밟히는 모래 소리, 물결에 햇살이 부서지는 소리. 파도 위를 미끄러지는 서퍼들은 기울어가는 오후의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 


2021년 5월 22일 토요일

연수일기 66. 아내의 신용 카드 신청과 운전면허 합격

5월 19일 수요일. 116일째 날. UTC 근처의 반스앤노블에서 책을 두 권 샀다. 자동차 보험 회사에 보내야 하는 mileage survey 서류가 있어 이웃해 있는 USPS에도 들렀다. 서류 한 장을 보내는 데 50센트 정도가 들었다. 

집에서 가까운 쇼핑몰엔 UPS가 있는데, 아마존 환불이나 교환 상품의 반송이 가능해 종종 가게 된다. 언젠가 아마존 서비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환불과 반송 시스템은 대부분 매우 편하다. ('대부분'이라는 조건을 단 것은 프라임 적용 상품이 아닌 경우 판매자 정보를 잘 살피지 않으면 환불과 반송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기 때문이다.) 계정의 QR 코드만으로 UPS에서 바로 반송이 가능하고 포장을 따로 할 필요도 없어, 한국의 택배 반송보다 더 편하게 느껴진다. UPS는 사설 택배 회사라 USPS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고 한다. 

저녁엔 아내가 아들 머리를 잘랐다. 미용은 벌써 두 번째인데, 지난번엔 거실에서 자르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치우느라 한참 고생을 해서 이번엔 욕조 안에 의자를 놓고 앉혔더니 청소하기가 훨씬 나았다. H 선생님에게 빌린 바리깡도 도움이 되었다. 


5월 20일 목요일. 117일째 날. 오후에 BOA 미라메사 지점에 다녀왔다. BOA에서의 상담은 네 번째이고, 이 지점의 한국인 직원을 만난 것은 두 번째이다. 이번엔 아내의 신용카드를 신청했다. 처음 내 카드와는 달리 secured가 아닌, 디파짓이 없는 2천불 한도의 일반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3개월 간의 거래 실적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내 카드는 캐쉬 리워드였고 이번에 발급받는 아내의 카드는 트래블 리워드 카드이다. 두 카드를 사용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들을 수 있었다.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은행과 보험 업무는 관련 용어와 시스템이 워낙 생소해 영어로 의사소통이 웬만큼 된다 해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가능하다면 한국인 직원을 통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5월 21일 금요일. 118일째 날. 아내의 운전 면허 실기 시험이 있었다. 세 번째 시도라서 이번에도 합격하지 못하면 필기 시험부터 다시 봐야 한다. 지난 번에 문제가 되었던 갓길 주차 후 후진을 여러 번 연습했다. 클레어몬트 DMV에는 연습을 포함해 여러 차례 오다 보니, 주변 도로를 외울 정도가 되었다. 세 번의 시험은 모두가 감독관이 달랐는데, 이번엔 여성 감독관이 동승했다. 아내는 DMV로 가는 내내 초긴장 상태였다. 설마 이번까지 떨어질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과는 다행히 합격이었다. 채점표를 보니 6점 감점으로 내가 합격했을 때보다 점수가 나았다. 

딸아이가 엄마에게 만들어준 축하 카드

홀가분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일본식 라멘과 우동, 캘리포니아 롤을 파는 Katsu cafe에 들러 스파이스 씨푸드 반자이 라멘과 연어 샐러드를 시켰다. 한인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곳들 중엔 실망스런 식당도 있었지만 이곳은 분위기도, 음식 맛도 만족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곧바로 자동차 보험 담당자에게 연락해 보험 상품을 변경했다. 나와 아내 모두 캘리포니아 운전 면허를 받았으므로 같은 조건의 보다 저렴한 상품 가입이 가능하다. 기존 상품은 900불이 넘는 금액이었지만 오늘 가입한 상품은 그보다 300불 가량이 더 낮았다. 기존의 보험료 중 남은 기간 만큼의 금액을 수표로 받기로 했다.

저녁엔 아파트에서 마련한 풀사이드 무비 행사에 참석했다. 리싱 오피스의 직원들이 수영장 풀 옆에 스크린과 스피커를 설치했다. 팝콘과 물, 아이들을 위한 초코볼과 같은 간식도 준비해 주었다. 영화는 얼마 전 개봉한 디즈니의 'Raya and the Last Dragon'이었다. 자막이 없어 대사를 다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엔 큰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도 즐겁게 본 눈치였다.



2021년 5월 19일 수요일

연수일기 65. 미국 수돗물은 건강에 안 좋을까?

5월 18일 화요일. 115일째 날. 

미국의 수돗물(tap water)은 석회가 많은 센물(hard water)이라 개수대나 세면대에 물이 마른 뒤 남아있는 석회 자국을 쉽게 볼 수 있다. 설겆이를 해도 그릇에 남은 허연 얼룩이 지저분해 보인다. 석회가 섞인 물이라니, 마치 걸러지지 않은 흙탕물을 먹는 것 같아 꺼림칙할 수도 있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그리 신경쓰진 않는 것 같다. 한국인들 중엔 건강을 걱정해 생수를 사 먹거나 연수 기능이 있는 정수기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석회가 섞인 물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빈약하다. Hard water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도 있다. 심혈관 질환에 대한 것인데, 이에 대해선 꽤 많은 연구를 찾을 수 있다. 주된 가설은 hard water에 많이 포함된 마그네슘이 심혈관 질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WHO의 보고서에서도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연구들 사이에서도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 명확한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 

WHO 보고서에서는 hard water가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습진이나 아토피 피부염과 같은 피부 질환은 악화시킬 수 있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이 역시 근거는 확실치 않다. 설사 관련성이 있다 해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물 때문인지, 아님 비누나 샴푸 등의 사용 환경 변화(거품이 잘 나지 않아 비누를 더 많이 쓰게 되고, 비누가 잘 씻겨나가지도 않는다)나 옷 세탁 후 섬유에 남은 미네랄 성분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미국에 와서 푸석해진 머리결이나 피부 트러블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론 물 성분의 변화가 이런 문제엔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든다. 

건강과 관련해 좀 더 광범위한 내용은 이 리뷰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연구에서는 심혈관 질환 외에도 암, 뇌졸중, 신경계 질환 등 다양한 문제와의 관련성에 대해 기존의 과학적 근거를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질환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엔 근거가 부족함을 확인할 수 있다. 

Hard water는 칼슘과 마그네슘이 주 성분이다. 탄산칼슘(CaCO3)으로 물 1리터당 120mg 이상은 hard, 180mg 이상은 very hard로 구분한다. 아래 지도에서 아리조나, 유타, 뉴멕시코, 콜로라도, 텍사스 등이 very hard water 지역에 속한다. 샌디에고가 포함된 캘리포니아 남부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하루 2리터의 물을 마시는 A씨가 한국에서 샌디에고로 이사를 했다면, 이곳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 식수를 통해 하루에 대략 탄산칼슘 400mg을 더 먹게 되는 것이다. 

Hard water의 나라

한국 성인의 칼슘 권장 섭취량은 700mg 이상이며, 골다공증이 있는 경우엔 1000-1200mg 섭취를 권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실제 평균 섭취량은 500mg 정도에 불과하다. 칼슘은 한국인에게 가장 부족한 영양소 중 하나이다. 여기서의 칼슘 양은 칼슘 원소(elemental calcium)를 말하는 것으로, 칼슘의 형태에 따라 포함된 칼슘 원소의 양이 다르다. 

탄산칼슘에 포함된 칼슘 원소의 양은 40%이다. 앞에서 들은 A씨의 예와 같이 식수를 통해 하루 400mg의 탄산칼슘을 먹는다면, 이를 통해 실제 섭취하는 칼슘 원소의 양은 160mg가 된다. 결국 한국인 평균인 500mg의 칼슘을 섭취하는 경우 샌디에고의 수돗물만 마셔도 하루 권장 섭취량인 700mg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칼슘 섭취가 부족한 한국인의 경우엔 미국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건강기능식품인 칼슘 보충제에는 보통 이보다 훨씬 많은 1000mg 이상의 탄산칼슘이 포함되어 있다. 

마그네슘의 권장 섭취량은 300-400mg이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2리터의 물을 마시는 경우 이를 통해 soft water는 2.3mg, hard water는 52.1mg의 마그네슘을 섭취하게 된다고 한다. 마그네슘 보충제 역시 함량이 이보다 훨씬 높은, 100mg이 넘는 제품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우리가 마시는 수돗물은 이런 보충제를 쪼개서 녹인 물이라고 생각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칼슘 또는 마그네슘 보충제도 과하면 건강에 해가 될 수 있지만, 물에 포함된 해당 미네랄 성분의 양은 일반적인 보충제 함량보다 낮다. 샌디에고 시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수돗물 조사 보고서에서는 기타 중금속 등의 유해 성분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샌디에고 수돗물 1L엔 이 칼슘보충제 1/3알이 들어있다.

그러니 미국의 수돗물을 마시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저 입맛에 맞는 물을 마시면 되지 않을까. 우리 집의 경우 수돗물의 맛 때문에 그냥 마시진 않고 끓여서 보리차를 우러내 마시는데, 식탁에 항상 함께 올라오는 생수 병은 보리차를 좋아하지 않는 둘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