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0일 월요일

비타민 D와 건강


비타민 D는 뼈의 성장과 유지, 체내 칼슘과 인의 항상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칼슘 흡수와 분배가 제대로 안돼 뼈가 약해지고, 성장기 아동에서는 구루병, 성인에서는 골연화증과 골다공증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식품을 통해서만 섭취할 수 있는 다른 비타민과는 달리 비타민 D는 식품을 통한 섭취보다 햇빛의 자외선을 받아 피부에서 합성되는 양이 더 많습니다. 햇빛 또는 식품으로부터 공급된 비타민 D는 간과 신장을 거쳐 활성화되고, 최종적으로 장에서 칼슘과 인의 흡수를 촉진시킵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혈중의 칼슘이 부족해짐에 따라 뼈에 있는 칼슘이 빠져나오므로 결국 뼈가 약해지게 됩니다.

최근에는 뼈에 대한 영향 이외에 비타민 D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데, 다수의 연구에서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지며, 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 암 발생의 위험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비타민 D 수치를 높여주었을 때 이러한 질병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부족한가?

비타민 D혈액 검사를 통해 부족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타민 D의 대사 물질인 25(OH)-vitamin D 수치를 측정하는 것인데, 전문가들은 30ng/mL 이상을 적정 수치로 권하며 20ng/mL 미만은 결핍(deficiency)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햇빛이 비교적 풍부해 비타민 D 부족이 적을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실제로는 야외 활동 감소, 자외선 차단제 사용, 비만 등의 원인으로 비타민 D 부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47%, 여성의 65%20ng/mL 미만이었으며, 적정 수치인 30ng/mL 이상인 경우는 남성의 13%, 여성의 7%에 불과했습니다. 10명 중 1명만 적정 수준이며, 5명은 비타민 D 부족 상태인 것입니다.

    어떻게 높일 수 있나?

비타민 D 부족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햇빛을 쬐는 것입니다. 햇빛이 많은 한낮에 하루 15~20, 3회 이상 팔다리를 내놓고 일광욕을 하는 것으로 예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낮에 햇빛을 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고 한낮에는 건물 안에서 업무를 하는 직장인, 집 안에서만 주로 생활을 하는 주부, 하루 내내 학교나 도서관에서 생활을 하는 학생들, 이런 현대인의 생활습관이 앞에서 언급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와 같은 비타민 D 부족 상태를 만든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비타민 D 부족의 위험이 더 높아집니다. 비타민 D 수치는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겨울에는 일조량이 부족하고 두꺼운 옷을 입게 되므로 비타민 D 합성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계절에 따른 비타민 D 수치를 비교해보면 여름-초가을이 가장 높고, 겨울-초봄이 가장 낮습니다. 여름에 비타민 D 권장 수치를 유지하던 사람도 겨울이 되면 부족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타민 D 수치를 높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음식을 통한 섭취입니다. 고등어, 연어, 참치, 정어리 같은 기름진 생선, 계란 노른자, 우유, 버섯, 새우, 대구 간유 등이 비타민 D가 많이 포함된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음식을 통한 섭취가 어려울 경우 별도로 비타민 D 보충제를 복용할 수 있는데, 종합비타민제의 경우 일반적으로 100-200단위(IU) 가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영양학회의 경우 음식과 보충제를 합해 소아와 성인에서 200IU, 50세 이상에서 400IU를 섭취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대한골대사학회에서는 50세 이상에서 800IU 섭취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비타민 D를 과량 섭취했을 때는 체내에 칼슘 축적이 과도해져 독성이 생길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상한섭취량인 2400IU 이상으로 보충제를 섭취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먼저 혈액 검사로 확인하고, 햇빛과 음식을 통한 보충이 우선되어야

비타민 D는 혈액 검사를 통해 부족 여부를 쉽게 체크할 수 있는 비타민입니다. 주로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경우 비타민 D 부족을 의심할 수 있고, 노인이나 비만한 사람의 경우에도 검사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비만 환자의 경우 체지방이 비타민 D를 흡수해버려 비타민 D 부족에 취약해지며, 노인의 경우 비타민 D 합성 능력이 떨어지므로 권장 섭취량이 높아지는 50대 이후에는 보다 적극적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20ng/mL 미만인 결핍 상태로 확인된다면 어떻게 보충할지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햇빛을 더 쬘 수 있도록 야외 활동과 운동 시간을 늘리고, 평소 비타민 D가 풍부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도록 합니다. 너무 과도하게 햇빛을 쬐면 일광화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비타민 D 부족이 심하거나 골다공증이 있는 등 보다 적극적인 섭취가 필요한 경우는 보충제를 복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비타민 D가 심혈관질환이나 암 예방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이들 질환의 예방을 위해 비타민 D 보충제를 복용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Before Sunset

수많은 인상적인 대사들과 아름다운 장면들로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비포 선라이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그들을 담아내던 순간이 아니었다. 영화의 마지막, 두 사람이 반나절동안 지나쳤던 장소를 하나하나 다시 짚어가는 카메라는 그 짧은 시간동안 그들이 얼마나 멋진 시간을 보냈는지를 수십마디 대사보다 더 끝내주게 이야기 해 준다. 그 순간만큼은 영화 밖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제시와 셀린느는 한명은 버스에서, 한명은 기차에서 창 밖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감성은 특별하다. 짧게 이야기하면 하룻밤동안의 원나잇 스탠드 정도로 정리될 수도 있을만한 이야기. 먼 곳으로의 여행은 늘 사람을 어느정도는 들뜨게 하니까. 하지만 그는 독특한 대사의 리듬과 내용, 그들의 미묘한 감정선들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면서 그들의 하룻밤 사랑을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인생에 있어서 잊혀지지 않는 경험으로 만드는 솜씨를 보여준다.  

아뭏든, 제시와 셀린느가 그렇게 9년만에 다시 만났다. 9년 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들의 만남을 위해 별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다. 그저 그녀가 그를 보려고 찾아왔을 뿐. 두 사람이 만나기 전의 짧은 시간동안 카메라는 앞으로 두사람이 한시간여 동안 지나치게 될 곳들을 슬쩍 미리 거꾸로 되짚어서 그들이 만나게 되는 작은 서점으로 이동한다.



9년의 세월을 한꺼번에 만회하리라 마음먹기라도 한 듯, 그들은 9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단어를 짧은 순간동안 멀미 날 정도로 쏟아낸다. 9년 전에 비해 산만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 긴 시간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본론으로 들어가기까지 소비한 시간은 지나칠 정도로 짧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만나서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9년 전의 하루가 그들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또 어떤 것들을 잃어버렸는지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한다. 제시는 자신의 의미없는 결혼생활에 대해 탄식하며 약속한 날에 나타나지 않았던 그녀를 원망하고, 셀린느는 그를 만난 이후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더이상 로맨틱한 사랑을 찾을 수 없었다며 투정을 부린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어차피 더 나아가봐야 불륜... 각각 자신의 방식대로 그 두사람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를 두 사람의 아내와 남편에 대한 배려는 두 사람이 회포 풀기에도 바쁜 시간동안 끼어들 틈 전혀 없이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줄곧 결국 서로를 찾아 헤메던 시간들을 설명해주기 위한 양념처럼 곁들여져 있을 뿐이다.


그래. 그래도 그럴 수 있다. 날마다 이어지는 의미없는 일상,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나타난 멋진 옛 사랑. 영화같은 로맨틱한 하룻밤을 보냈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마음 한구석 동요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참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 아름답기만 한 기억이 마음 속을 비집고 들어와 오랜 시간동안 되풀이해 반복되었다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이들을 이해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불편해질 법도 한데. 역시 그런 불편함을 잊게 해주는 건 보일 듯 말듯 잠깐 잠깐 내비치는 그들의 감정을 놓치지 않고 찰나의 느낌에 무한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외면하기 힘든 달콤한 선물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느끼며 셀린느의 집 계단을 오르고,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쓸데없는 기대따윈 버리라고 쏘아붙이던 그녀는 그를 위해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며 그를 살살 유혹한다. 게다가 재즈 싱어 흉내를 내고 춤을 추며 떠는 귀염까지. 그녀에게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일지라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만한 행동인데, 하물며 제시야. 
영화는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6개월 뒤에 다시 만나게 될까, 아닐까를 묻는 것 자체를 그다지 의미없게 만들었던 전작과는 사뭇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근데, 너... 이러다가 비행기 놓치는 거 아냐?"
"나도 알아." 

아마 제시는 떠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 사실을 셀린느도 충분히 알고 있었겠지. 그리고 그 다음은... 글쎄...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9년이나 지난 지금, 나만큼이나 나이를 먹어버린 두사람. 애초부터 이전처럼 쿨한 결말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지점에서 영화는 빛을 잃고 현실로 내려앉는다.

이제는 좀 나이들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을 다시 한 곳에서 본다는 것만으로 반가운, 그들의 재회에 대한 소고는 여기까지.


2005.2.12




2011년 11월 17일 목요일

피로하시다구요?


컵에 물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컵 밖의 바닥에 물이 흘렀습니다. 왜일까요?

먼저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컵이 깨졌거나 구멍이 났다.

'피로'때문에 병원을 찾는 환자의 생각은 이와 같습니다. 피로라는 증상이 생기면 내 몸 어딘가가 깨졌거나 구멍이 났다고 생각하는거지요.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할만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인데, 피로가 아닌 다른 증상이 생긴 경우에도 대개 이렇게들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론 다음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 컵 크기보다 많은 물이 들어와서 넘쳤다.

'증상'이란 현상은 바닥에 흐른 물과 같습니다. 잘 닦여있어야 할 식탁 위를 적신 물.

만약 컵 어딘가가 깨지거나 구멍이 났다면 찾아서 고치고 때워야합니다. 병원에서 하는 검사는 그 부위를 찾는 과정이며, 적절한 치료는 찾은 구멍을 고치고 때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컵에 난 구멍이 아니라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온 물이었다면, 해결책은 물이 지나치게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겠지요. '피로'라는 증상으로 생각해보면 과로를 했거나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라 할 수 있고, 그 해결책은 일을 줄이거나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됩니다.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가장 흔한 경우는 세번째의 경우입니다.

- 담겨있는 물은 그대로이나, 컵의 크기가 줄어들어서 넘쳤다.

이 경우에도 물이 바닥으로 흐르는, 즉 '증상'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내 몸이 고장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일이나 스트레스가 많아진 것도 아닙니다. 컵에 구멍이 나거나 깨진 것이 아니니 병원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피로를 느끼는데 피로가 생길만한 이유를 잘 모르겠고, 병원을 찾아도 이상이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체력이 떨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컵의 크기, 즉 체력이 줄어드는 제일 흔한 이유는 나이가 드는 것입니다. 40대가 되었는데 2-30대 때의 체력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50대가 되었는데 40대 때의 체력과 같을 수도 없지요. 나이가 많아질수록 5, 10년 정도가 아니라 당장 1, 2년 뒤가 다릅니다. 내 컵의 크기는 줄어드는데도 직책이 높아지면서 직장과 사회에서 내게 요구하는 것은 더 많아집니다. 가사를 담당하는 여성의 경우도 육아 부담이 늘어나고 아이가 커가면서 나에 대한 주변의 요구는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이 경우에도 물을 덜어내는 것, 즉 업무나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겠습니다. 어떤 환자분의 경우엔 아예 이직을 하거나 시골로 내려갔더니 증상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쉽게 할 수 없고, 내가 일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다고 바로 줄일 수 있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외부의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결국 나 스스로를 바꿔야합니다. 컵의 크기, 즉 내 체력을 다시 키워야한다는 것입니다. 흡연 중이라면 금연을 하고, 잦은 과음을 피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건강 관리의 원칙만 잘 지켜도 컵의 크기는 늘어납니다.

대부분의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기본적인 건강 관리는 재미도 없고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도 않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우리는 재테크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건강에 대해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투자한 효과가 당장 드러나지 않으니 기초 체력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에 인색합니다. 보다 쉬운 방법을 찾기 위해 피로의 원인이 간때문이 아닌데도 간장약을 찾기도 하고, 보약이나 영양제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이 잘 되어있지 않다면 컵의 크기는 쉽게 줄어들어 물이 넘치고, 그때마다 병원을 찾게 됩니다.

프로 운동 선수의 예를 생각해볼까요? 시즌이 시작되고 잘 나가던 성적이 시즌 중반을 지나면서 떨어지는 경우를 흔히 보는데, 대개는 동계 훈련을 착실히 하지 않아 체력이 부족한 경우입니다. 운동으로 밥을 먹고 사는 프로 선수들도 한 시즌을 보내다보면 체력이 문제가 되는데, 스포츠 한 시즌보다 훨씬 길고 치열한, 삶이란 레이스를 펼쳐나가는 우리들은 더하겠지요.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위약 효과(Placebo Effect)

위약(僞藥; Placebo; 라틴어로서 '마음에 들다'라는 뜻)은 흉내낸, 혹은 조작된 의학적인 처치를 말한다. 위약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 주관적인 병세의 호전이나 실제 호전을 보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위약 효과(Placebo Effect)라고 한다.
- 출처: 위키피디아


새로 개발된 약이 시판되려면 그 약이 치료하려는 질병에 대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한 집단에서 약을 먹기 전후만을 비교하면 질병의 경과 변화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상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치료약과 가짜약(위약)을 먹여 반응의 차이를 비교한다. 이러한 위약대조연구에서는 위약을 먹인 그룹도 흔히 증상의 호전을 보이는데, 치료약의 효과가 이를 확실히 뛰어넘을 때 비로소 그 약의 효과가 증명된다.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위약으로 2-30%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특히 통증, 구역 증상, 천식, 공포증 등에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최고 권위의 의학학술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올해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위약의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40여명의 천식 환자들을 상대로 위약과 실제 치료제의 효과를 비교했다. 천식에 실제로 쓰는 진짜 흡입제(알부테롤), 가짜 흡입제(위약), 가짜 침 치료를 교대로 받게한 뒤 환자가 느끼는 증상 정도(주관적 지표)와 폐기능검사(객관적 지표)를 치료 전후에 측정했다.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폐기능검사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20% 좋아졌지만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에는 7% 정도에 그쳤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50% 좋아졌다고 느꼈는데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에도 45% 좋아졌다고 느꼈다. 진짜 치료든 가짜 치료든,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의 변화 정도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임상시험이나 실제 진료에서 위약이 투여되는지 여부는 환자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위약이라는 것을 알고 먹는 경우에는 어떨까. 언뜻 생각해보면 이 경우엔 병이 좋아질 것이란 믿음을 갖기 어려워 효과가 없을 것 같은데, 또 다른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작년 'PLoS One' 학술지를 통해 발표한 연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연구는 80명의 과민성장증후군(Irritable Bowel Syndrome)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는데, 먼저 모든 대상자에게 다음 네 가지 측면을 강조하는 15분 가량의 설명을 듣도록 했다.
1) 위약의 효과가 실제로 크다.
2) 우리 몸은 위약에 대해 조건반사와 같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3) 긍정적인 태도가 도움이 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4) 믿음을 가지고 위약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위약군과 무치료군으로 나누어 위약군에는 위약이라 쓰여진 젤라틴 캡슐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도록 하고 무치료군에는 아무런 처치도 하지 않았다.
3주 뒤에 평가했을 때 위약을 먹은 사람들이 먹지 않은 사람들보다 증세가 호전되었고, 호전된 정도는 과민대장증후군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 최신 치료약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놀랍게도 환자가 위약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위약은 경우에 따라 실제 치료와 맞먹는 큰 효과를 보이는데, 객관적인 검사 결과나 질병 자체의 경과보다는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적절한 치료가 안될 경우 점점 진행해 만성 염증이 기관지를 망가뜨릴 수 있는 천식과 같은 병의 경우엔, 위약으로 주관적인 증상이 좋아졌다 해도 결국 질병의 경과는 나빠지게 될 것이다. 반면에 증상 자체가 문제인 과민성장질환과 같은 기능적 질환의 경우엔 위약이 보다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특정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좋아졌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위약 효과일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좋아지는 것은 본인의 느낌일 뿐, 실제 내 몸에 미치는 객관적인 효과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좋아질 것이란 믿음이 클수록 주관적인 효과를 느낄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구입한 제품이 약만큼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막상 먹을 때는 '그래도 도움이 되겠지.'란 생각을 가지기 마련이며,두번째 연구의 결과와 같이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먹는 것만으로 증상이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판매되는 많은 제품들 중 위약 효과를 광고하는 경우는 절대 없으며, 대부분의 구매자는 근거가 부족한 과장된 광고와 통념을 믿고 비싼 금액을 지불한다. 실제 효과가 아닌 위약 효과라 해도 증상이 나아지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같은 돈으로 대신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기부를 하는 것도 고려해보시길. 좋은 사회적 관계나 선행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도 충분히 많으니 말이다.


참고문헌
Hrobjartsson A, Gøtzsche PC. Is the placebo powerless? An analysis of clinical trials comparing placebo with no treatment. N Engl J Med. 2001 May 24;344(21):1594-602.
Hrobjartsson A, Gøtzsche PC. Placebo interventions for all clinical conditions.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0 Jan 20;(1):CD003974.
Wechsler ME, Kelley JM, Boyd IO, Dutile S, Marigowda G, Kirsch I, Israel E, Kaptchuk TJ. Active albuterol or placebo, sham acupuncture, or no intervention in asthma. N Engl J Med. 2011 Jul 14;365(2):119-26.
Ted J. Kaptchuk, Elizabeth Friedlander, John M. Kelley, M. Norma Sanchez, Efi Kokkotou, Joyce P. Singer, Magda Kowalczykowski, Franklin G. Miller, Irving Kirsch, Anthony J. Lembo. Placebos without Deception: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in Irritable Bowel Syndrome. PLoS One. 2010; 5(12): e15591.

당신이 영양제를 먹는 이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질문을 해보았다.

"당신이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먹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질문에 대한 답은 최근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족이 챙겨줘서, 선물을 받아서, 음식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의사의 권유로, 의무감으로, 남들이 다 먹으니까 등이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넓게 보면 결국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것이다.

집에서 먹는 일상적인 식사 이외의 다른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이 뭘까? 선택한 음식이 맛이 있다거나, 그 음식을 파는 식당의 분위기가 좋다는 등의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이런 가치 판단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정할 수 있고, 타인의 경험이 반영되기도 하지만 결국 선택의 기준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wikipedia

영양제나 건강식품을 고를 때는 어떠한가? 맛이나 포장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품의 가치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기준은 그 제품이 내 건강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는 것일텐데 그에 대한 근거는 크게 두가지, 경험과 과학적 사실로 구분된다.

첫번째 근거인 경험에는 다른 사람의 경험과 나 자신의 경험이 모두 해당된다. 나 자신의 경험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처음 선택할 때는 주변 사람이나 관련 웹사이트 등을 통해 '이 제품을 써봤더니 좋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영양제를 구입한다. 먼저 먹어본 사람의 평가를 듣고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해서 결국 스스로 먹어보고 경험한 뒤 먹는걸 중단할지, 추가로 더 구입해 계속 먹을지 판단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경험을 통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 실제 그 제품의 효과가 아니라 위약(placebo) 효과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새로 개발된 치료약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는 단순히 치료약을 먹기 전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치료약과 가짜약(위약)을 먹여 반응의 차이를 비교한다. 이러한 위약대조연구에서는 위약을 먹인 그룹도 증상의 호전을 흔히 보이는데, 치료약의 효과가 이를 뛰어넘을 때 비로소 그 약의 효과가 증명된다. 질병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위약으로 30%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니, 열명 중 세명은 효과가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효과를 느꼈을 때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확률이 더 높기때문에, 이러한 경험은 쉽게 확대 재생산된다.



두번째 근거인 과학적 사실의 경우는 믿을만한가? 경험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어디까지 '과학적'으로 볼 것인가부터 문제가 되는데, 특정 성분의 효과에 대해 상반된 결과를 보이는 연구는 흔히 찾을 수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 영역에서 실험실 연구나 동물 연구는 그 근거수준이 가장 낮기때문에,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에서 광고하는 '과학적' 근거의 상당수는 실험실 연구나 질이 낮은 소규모 연구들을 과장한 것이다. 부정적인 연구는 제외하고 효과가 있다고 보고된 연구만 모아 그 효과를 부풀리는 경우도 흔한데,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다.

경험적인 근거를 과학적인 근거로 포장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다는 것인데, 질병의 기전이 충분히 알려져있지 않고 치료 수단도 부족했던 시대에 사용했던 방법이 현재에도 유효하고 안전할까. 역사로만 따지면 현대 의학보다 주술이나 점의 효과를 믿어야할 것이다.

특정 종류의 영양제가 피로나 신체기능에 단기적으로 좋은 효과가 있다는 믿을만한 연구 결과들도 있다. (물론 반대되는 연구 결과도 많다.) 하지만 효과 못지않게 고려해야 할 것은 부작용일 것이다. 영양제가 인기가 많은 것은 약과 달리 부작용이 없다는 믿음때문이기도 한데, 그러한 믿음 역시 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고용량의 베타카로틴을 비롯한 항산화제가 흡연자에게 오히려 폐암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으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타민E 보충제는 전립선암의 위험을 높이고 셀레늄은 당뇨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제제를 복용하는 경우 오히려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들은 모두 근거 수준이 높은, 매우 잘 짜여진 대규모 연구들이다.

진료실에서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의 장점이 대부분 과장된 것이고,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길 하면 환자들은 흔히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가능하면 쉬운 방법으로 건강을 챙기려 하지만 치료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에도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방법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흡연과 과음을 피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원칙을 지키는 것은 재미도 없고 노력도 필요하지만, 영양제가 건강에 미치는 위해에 대해 최근 보고되는 많은 연구 결과는 기본을 지키지 않고 쉽게 건강을 유지하려고 하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Spiegel D. Placebos in practice. BMJ. 2004 Oct 23;329(7472):927-8.
Haskell CF, Robertson B, Jones E, Forster J, Jones R, Wilde A, Maggini S, Kennedy DO. Effects of a multi-vitamin/mineral supplement on cognitive function and fatigue during extended multi-tasking. Hum Psychopharmacol. 2010 Aug;25(6):448-61.
Kennedy DO, Veasey R, Watson A, Dodd F, Jones E, Maggini S, Haskell CF. Effects of high-dose B vitamin complex with vitamin C and minerals on subjective mood and performance in healthy males. Psychopharmacology (Berl). 2010 Jul;211(1):55-68.
Bjelakovic G, Nikolova D, Gluud LL, Simonetti RG, Gluud C. Mortality in randomized trials of antioxidant supplements for primary and secondary prevention: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AMA. 2007 Feb 28;297(8):842-57.
Klein EA, Thompson IM Jr, Tangen CM, Crowley JJ, Lucia MS, Goodman PJ, Minasian LM, Ford LG, Parnes HL, Gaziano JM, Karp DD, Lieber MM, Walther PJ, Klotz L, Parsons JK, Chin JL, Darke AK, Lippman SM, Goodman GE, Meyskens FL Jr, Baker LH. Vitamin E and the risk of prostate cancer: the Selenium and Vitamin E Cancer Prevention Trial (SELECT). JAMA. 2011 Oct 12;306(14):1549-56.
Mursu J, Robien K, Harnack LJ, Park K, Jacobs DR Jr. Dietary Supplements and Mortality Rate in Older Women: The Iowa Women's Health Study. Arch Intern Med. 2011 Oct 10;171(18):1625-33.

2011년 11월 3일 목요일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래요.

건강검진이 처음이시라는 50대 여성.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데 얼굴에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사소한 소견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드립니다.

"간에 낭종이 있는데 이건 물혹이고 치료할 필요가 없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네? 물혹이 있다구요?"
"네. 하지만 말씀드린대로 이건 문제가 안되는 소견이에요. 그리고 위내시경에서 위염이..."
"간에 있다는 그 물혹은 크기가 큰가요?"
"아뇨. 작습니다. 1센티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럼 그게 커지거나 암 같은 걸로 자랄 수도 있는 건가요?"
"드물게 크기가 커질 수도 있지만 실제 문제를 일으킬 정도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리고 암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아직도 불안해하는 표정이시라,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이런 물혹은 다른 분들한테도 매우 흔합니다. 바깥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전체적인 검사를 해보면 한두개 쯤은 다 가지고 있을거에요."

이 말을 들은 그녀가 비로소 표정이 밝아지는걸 보고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

여러가지 검사가 포함된 건강검진의 경우 결과를 받고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운 용어도 많지요. 낭종(물혹), 결절(딱딱한 혹), 종양(비정상적인 덩어리), 용종(위장이나 담낭 등의 점막에 생기는 혹) 등등. 요즘은 의사들도 환자가 알아듣기 쉽게 풀어 설명하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환자 입장에서 이런 의학 용어들은 생소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드라마나 소설에서 주인공을 죽이는 병은 모두 암이고, 암은 몸 속에 나쁜 혹이 자라는 병으로 알려져있으니 내 몸 속에 혹이 있다는 이야길 들으면 어떤 종류의 혹이든 일단 놀라는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앞의 예에서 나온 것처럼 치료가 불필요하고 추후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그저 변화가 있는지 여부만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건강검진은 증상이 없을 때 큰 병을 미리 잡아내고, 나중에 큰 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건강위험요인을 알게해서 이를 일찍부터 관리하고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소견으로 인해 불필요한 걱정을 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선 불필요한 추가 검사까지 하게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정밀 검사가 필요한 정도의 이상 소견이라면 추가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마음 고생을 하더라도 검사를 진행해야겠지만, 앞의 예처럼 큰 의미 없는 유소견이 나온 경우라면 불필요한 걱정과 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검사 결과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의사와 환자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겠지요.

하루에도 수십번씩 검사 결과를 전달해야하는 의사 입장에서 검사 결과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의학적으로 곧이 곧대로 설명하면 이해하기도 힘들고 괜한 걱정을 키우기 쉬운데, 직접적인 설명보다 해당 결과가 얼마나 흔한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예처럼 말이지요.

허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요.'란 말이, 내게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진료실에서도 그 말은 큰 위력을 발휘하곤 합니다. 오늘도 걱정스런 표정의 환자에게 한번 더 이야기합니다.

"다른 분들도 다들 그래요."

2011년 10월 25일 화요일

영양제 어떻게 먹어야할까?


좀더 건강해지고자 하는 바램을 갖고 있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에 자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은 예전같지 않고 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운동할 시간은 부족합니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기도 하고, 이전에 없던 두통이나 어지럼증도 자주 느끼곤 합니다. 주변에서 이런 저런 병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내가 너무 건강을 챙기지 않고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영양제를 포함한 건강기능식품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건강기능식품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국내에 출시된 건강기능식품은 수천여 종에 달하며,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비타민이나 미네랄 등의 ‘영양제’입니다. 이외에 홍삼, 오메가-3, 감마리놀렌산, 글루코사민, 프로폴리스 등이 대표적인 인기 품목입니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매출이 총 2조원에 육박한다고 하니, 우리나라 일년 의약품 소비량이 20조원인 것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규모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건강식품의 종류가 많다 보니 어떤 제품을 선택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좋다는 것을 다 구입해 먹기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어떤 영양제를 먹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건강기능식품이 인기가 많은 것은 비방이나 약초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약과 달리 건강기능식품은 부작용이 없다는 생각도 원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간에 부담을 주어 독성 간염과 같은 심각한 질환도 생길 수 있습니다. 건강기능식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타민이나 미네랄에 있어서도 부작용에 있어 예외는 아닙니다. 2007년 덴마크 연구진이 세계적 권위의 의학저널인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발표한 후 큰 반향을 일으켜 ‘코펜하겐 쇼크’라 불렸던 연구 결과는 비타민A, 베타카로틴, 비타민E, 비타민C, 셀레늄 같은 항산화비타민을 알약 형태로 복용하면 사망 위험이 5% 이상 높아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이와 비슷하게 부작용이 있다는 결과를 보인 다수의 연구들이 발표되었지만, 부작용이 없다는 반대 내용의 연구 결과도 역시 많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르지만, 현재는 적어도 영양제가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영양제도 과량을 먹었을 때 건강에 해가 될 수 있고, 알약 형태의 보충제보다 같은 영양소를 음식을 통해 먹는 것이 더 낫다는 것 역시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통해 음식으로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먹고 있다면 대개 추가적인 건강기능식품 복용은 불필요합니다. 하지만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면 부족한 영양소의 보충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단백질, 칼슘, 칼륨, 비타민D 등의 영양소 섭취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 전반에 대한 결과이므로 나와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의 질병 상태에 따라 필요한 영양소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건강기능식품을 올바르게 먹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나의 건강상태와 식습관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평가입니다. 이는 의사, 영양사 등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보다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부족하거나 과한 부분이 있다면 먼저 식습관 교정을 통해 건강하게 먹는 법을 배우고, 나의 질병 상태와 식습관 평가 결과에 따라 부가적으로 영양제를 비롯한 건강기능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연말 건강한 음주문화를 위해

술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소비되는 기호식품이다. 많은 경우에 사교적 소통과 인간관계를 증진시키는 촉매제가 될 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 가족 의식의 목적으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어 이미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깊이 뿌리내려져 있다. 하지만, 술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가족적인 측면에서 볼 때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성격이 있어 적절한 음주를 할 경우 여러 가지 득을 주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해악을 주는 경우가 많다.
OECD 'Health Data 2007' 음주관련 지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주류 소비 수준은 OECD 30개국 중 22위에 해당한다. 또 우리나라의 1인당 음주량은 8.1L OECD 국가의 평균인 9.5L에 못 미치는 수준이나, 폭음하는 비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술 마시는 문화가 사회적으로 조성된 우리나라는 음주에 대해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직장 생활을 하려면 술은 마실 줄 알아야 하고, 남자라면 술을 잘 먹는 게 자랑할만한 일이 되는 게 우리나라 문화이다. 진료실에서도 알코올 중독 수준의 음주를 하면서 스스로는 전혀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환자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음주로 인한 영향은 개인 삶의 모든 측면뿐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며,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비용도 크다. 직장인의 경우 음주로 인한 업무능력 저하, 지각, 결근, 직무수행 차질 및 생산성의 손실, 의료비용과 사회비용의 증가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며, 2007년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교통사고의 13%, 교통사고 사망의 16.1%가 음주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모임과 행사가 많은 연말에는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을 해치지 않는 음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것이 어떨까. 음주와 건강에 대해 흔히 궁금해하는 내용을 문답식으로 구성해보았다.


평소에 조금씩 꾸준히~음주를 하는 것과 연말연시 등으로 일년에 몇 번 폭음을 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건강에 위험한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적절한 음주량은 65세 미만의 성인 남성의 경우 일주일에 평균 14잔 이하, 1회 최대 음주량 4잔 이하이며 여성이나 65세 이상인 경우는 그 절반 정도입니다. 표준 1잔은 알코올 10-14g에 해당하는 양으로, 맥주 340 cc, 포도주 140 cc, 소주 70cc, 양주 40 cc 가량이며 각 술의 술 종류에 맞는 술잔으로 한잔에 해당합니다.(맥주의 경우는 캔 맥주 1, 알코올 함유량이 21%인 소주의 경우 보통 크기의 소주잔으로 1.5) 그 이상을 마시면 과음, 또는 폭음이 되는데 이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음주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적절한 음주는 심혈관 계통에 일부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과음은 관상동맥질환, 부정맥 등의 심장병,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간경화, 치매, 등의 위험을 높이며, 암의 경우 구강, 인후, 식도, 간암을 1012배 이상, 대장, 유방, 난소암 위험도 1.23.5배 높입니다.
폭음은 급성 알코올 독성으로 인한 증상, 사고로 인한 사망률을 높이고, 폭음이 반복되면 알코올 남용이나 알코올 의존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폭음과 장기적인 과음이 미치는 영향은 다르겠지만, 모두 건강에 유해한 것은 분명합니다.

술을 자주 마시면 주량이 늘어나나요?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는 두 가지 효소가 작용을 합니다. 흡수된 대부분의 알코올은 아세트알데하이드탈수소효소(ALDH)의 역할로 분해되는데, 술을 자주 꾸준히 마시게 되면 이 효소 이외에 마이크로좀에탄올산화효소(MEOS)의 활성이 증가됩니다. 알코올 분해에서 가장 중요한 ALDH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며 그 양이 변하지 않지만, MEOS는 술을 자주 마시면 활성이 약간 증가하게 되므로 술이 약한 사람도 자주 술을 마시게 되면 평소의 주량에도 취기가 오르지 않아 술이 세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MEOS라는 효소는 간이 담당하는 다른 대사작용에도 관여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약물인데, 결국 약물을 분해, 대사하는 과정에 영향을 주어 알코올-약물 상호작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알코올성 간질환의 진행에도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술을 자주 마셔서 주량이 세졌다고 느낀다면 간기능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미 간 건강에 위험이 오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는 것이지요.

술 깨는 약, 숙취방지약 등은 효과가 있습니까?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것들은 어떻게 도움이 되는 것이고, 어느 정도 효과가 있나요?

일정량의 술을 섭취한 이후엔 충분한 시간이 지나기 이전까지 숙취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숙취는 알코올이 분해될 때 생기는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독성 물질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자율신경계통에 강한 영향을 미쳐 오심/구토, 과호흡, 기면, 혈관확장, 빈맥, 저혈압 등을 일으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술 깨는 약이나 숙취방지약은 이러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는 효소의 활성을 도와주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 효과가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큰 것은 아닙니다. 알코올의 효과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숙취로 인해 생기는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대증치료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음주 측정을 할 때 재는 혈중알코올 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성인 남성이 1잔의 술을 마시고 알코올을 완전히 분해하려면 일반적으로 1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이미 혈액으로 흡수된 알코올을 분해하는 속도는 알코올의 양에 무관하게 일정하기 때문에, 결국 술이 깨는 시간은 얼마나 많은 알코올을 섭취하였는가에 정비례합니다. 두 잔을 마시게 되면 한 잔을 걸칠 때 보다 두 배의 시간이 흘러야 술이 깨게 됩니다
일단 혈중에 흡수된 알코올 농도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음주 측정기는 호흡 속에 있는 알코올 농도를 감지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껌, 구강청정제, 물 등으로 입 안을 청소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음주측정과 상관없이 술에서 깨고 숙취를 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알코올은 그 자체로 이뇨작용을 일으키고,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는 수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탈수가 되면 숙취로 인한 증상 역시 심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일단 혈액으로 흡수된 알코올을 분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실 때 알코올이 덜 흡수되도록 하는 것도 좋습니다. 섭취한 알코올의 20%는 위 점막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천천히 마셔서 위 배출 시간을 늦추거나 음식을 함께 먹어서 위의 알코올 농도를 희석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도수가 높은 술일수록 흡수가 잘 되기 때문에 폭탄주는 삼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술 마신 다음날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이유는?

음주 후에는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간의 본래 업무인 포도당 생성 작용이 방해를 받으므로 공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갈증은 알코올의 분해 과정에서 수분을 소비하고, 알코올 자체가 이뇨작용이 있어 소변 배출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주독을 푸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은 무엇이 있나요?

주독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증거가 충분한 음식은 없습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휴식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콩나물이나 북어 등은 경험적으로 해장국 재료로 많이 쓰이며 포함된 성분이 알코올 분해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효과가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단지 과음 후의 불편한 증상들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요.

술을 마실 때 여자라서 더 주의해야 하는 점이 있나요?

여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주량이 약하고, 알코올에 취약합니다. 몸무게가 적게 나간다는 것 이외에도, 몸 안에 수분이 적기 때문에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 이유입니다. 여성호르몬이 알코올 분해 효소의 작용을 억제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결국 장기적인 음주로 인한 신경계, 심혈관계, 간 질환 등이 남성에 비해 쉽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의 경우 적정 음주는 남성의 절반 정도로 정해두고 있습니다.
특히 임산부의 경우 술은 금기인데, 태아가 적은 양의 알코올에 노출되더라도 저체중, 낮은 지능지수, 기형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건강검진 잘 받게 해드리려면


웰빙 바람을 타고 건강검진이 효도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정의달인 5월이면 빠지지 않고 발표되는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 선물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현금과 함께 1, 2위를 다투는 것이 건강검진이다. 하지만 막상 이런 저런 건강문제를 갖고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떤 검진센터의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할지, 다양하고 많은 개별 검사항목들 중에선 또 어떤 항목을 추가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어떤 질병에 대해 검진을 받아야 하나?

부모님들의 연세인 50~60대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나쁜 생활습관과 만성질환으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하는 시기이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증상이 없는 만성질환으로 인해 생기는 중풍이나 심혈관질환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사망원인 1위인 암 역시 50대 이후에 급격하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므로 50~60대 이후의 부모님 검진 시에는 기본 검사 이외에 위, 대장, 유방, 자궁경부암 등의 주요암검진이 항목에 포함되어야 한다. , 대장내시경과 유방촬영, 초음파, 부인과 검사 항목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생활습관과 만성질환 등 위험요인에 따라 뇌혈관과 심혈관에 대한 검진항목이 적절히 포함되어야 하는데, 운동부하검사, 동맥경화검사 등 혈관 상태를 알 수 있는 검사가 해당된다. 최근에는 심장의 관상동맥 컴퓨터촬영(Cardiac CT), 뇌 혈관자기공명촬영(MRA) 등의 첨단 검사를 통해서도 이전보다 혈관 상태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첨단 검사는 비교적 고가이기 때문에 검사를 선택하기 전에 상담을 통해 검사의 의미와 검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잘 따져보는 것이 좋다.

 
관상동맥 컴퓨터촬영 사진
뇌혈관 자기공명촬영 (MRA)


어떤 검진센터를 선택해야 하나?

50-60대 이후의 나이에 많이 발생하는 질병과, 질병에 대한 개인의 위험 정도를 고려한 검진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요즈음은 많은 검진센터들이 나이에 따른 검진프로그램을 마련해두고 있는데, 이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선택 과정에서 상담을 통해 과거력, 생활습관 등을 고려한 검진항목 조정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또한 부모님이 걱정을 하는 질병에 대한 충분한 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검진센터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르신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은 자식에게 짐이 되는 암과 중풍, 치매이다. 치매의 경우는 뇌 자기공명촬영(MRI)나 컴퓨터촬영(CT)만으로 진단할 수 없으며 의료진에 의한 인지기능평가와 상담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치매에 대한 검진을 원한다면 이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와 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검진 당일, 검사를 진행하기 전에 의사와 예비상담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패키지형 검진프로그램에는 본인에게 필요한 검사가 누락되거나, 맞지 않는 검사가 포함된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검사 항목 구성이 똑같다 하더라도 검사의 품질이 차이가 날 수도 있으므로 병원 시설과 의료진을 체크해보는 것이 좋다. 또한 연세가 많으신 경우 많은 검사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 자체가 고생스러운 일이므로 필요한 항목들을 한 곳에서 모두 검사받을 수 있는지, 검사 과정에서 직원들의 배려나 휴식공간이 충분히 제공되는지도 중요하다.

검진비용은 어느정도?

검진항목과 서비스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대학병원 검진센터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질병에 대한 검진프로그램 비용은 100만원대 초중반 정도이며 MRI 등의 고가 검사가 포함된다면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종합병원의 경우 일반적으로 100만원 미만의 비용에서 비슷한 항목의 검진을 받을 수 있다.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암검진을 이용하는 것도 현실적인 좋은 방법이다. 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에 대한 기본적인 검진을 2년마다 무료로 받을 수 있으므로 이를 기본으로 필요한 검진 항목을 추가한다면 검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부모님의 나이에 따른 공통적인 기본 검진항목은 정해져 있으나 이에 더불어 개별 건강상태에 맞는 구체적인 검진 항목을 결정하는 데에는 전문가의 맞춤 권고가 필요하다. 또한 일회적인 건강검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검진 결과 발견된 질환이나 건강위험요인에 대한 사후관리와 치료가 잘 이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무엇보다 건강검진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검진에서 사후관리까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서비스를 받는다면 부모님의 건강을 보다 잘 지킬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영화 <인사이더>와 담배 소송


"인사이더"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99년 마이클만 감독이 만든 영화로 담배회사에서 판매량을 늘일 목적으로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의도적으로 담배에 포함시켜 담배를 제조하였다는 사실을 방송을 통해 폭로하고자 하는 PD와 그에 협조하는 담배회사의 중역에 관한 내용입니다. 알파치노와 러셀크로의 연기가 볼만했던 영화이죠.

 같은 해 7월 미국 플로리다주 법원은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의 유족 등 흡연피해자 50만명이 필립모리스 등 5개의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에서 원고들에게 2천억달러(약 240조원)를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배상금이며 담배 소송상 가장 큰 승리를 이끌어 낸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당시 담배 회사들은 <인사이더>가 평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배심원들이 이 영화를 보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여 법원의 승낙을 얻기도 했습니다.

 1994년 이전까지의 미국의 담배소송은 원고패소 판결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 피고측인 담배회사들이 폈던 전술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담배가 해롭고 흡연하면 폐암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제조자인 담배회사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상당히 효과를 발휘하여 여러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이를 받아들여 피고측의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둘째는 담배가 해롭다는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운 것은 본인의 잘못이라는 주장입니다. 당시만 해도 니코틴 중독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피고측의 주장이 판결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담배회사들의 이러한 전술은 1994년 Brown & Williamson사의 비밀문건이 공개되면서 위기에 처합니다. 이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외부 발표와는 달리 담배회사는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둘째, 담배는 마약인 니코틴의 전달 물질이기 때문에 니코틴의 함량을 늘리거나 또는 니코틴의 효과를 상승시키기 위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실시하여 제품 생산과 판매에 활용하였습니다.
 셋째, 미래의 담배회사의 운명은 청소년과 여성이 얼마나 담배를 피워주는가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집중적인 광고와 판촉을 실시하였습니다.
 넷째, 제3국가에 담배를 수출하기 위하여 정치가들과 고급 공무원을 매수하여 제3국에 공정무역거래라는 논리를 내세워 압력을 가하여 담배의 수입을 자유화하도록 하였습니다.
 다섯째, 각 국가의 학자들을 매수하여 담배가 별로 해롭지 않다 또는 간접 흡연의 피해는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주장하게 하였습니다.
 여섯째, 덜 해로운 담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지만 담배회사 스스로 담배가 해롭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됨으로써 이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영화 <인사이더>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언론에 폭로한 Brown & Williamson 사의 Jeffrey Wigand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Jeffrey Wigand 

 담배에 수많은 발암물질과 독성물질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담배를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회사들이 훨씬 오래 전부터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숨겼으며 오히려 의존성과 중독성을 강화시켜 흡연자로 하여금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끊기 힘들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담배는 내가 끊으려면 언제든 끊을 수 있다.”라거나 “흡연은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담배회사가 만든 교묘한 전술의 성공적인 결과겠죠. 생각해보면 정말 괘씸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강에 폐수를 몰래 버리는 것은 범죄이고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발암 물질을 직접 들이마실 수 있도록 잘 포장해 만들어 파는 것은 여전히 합법적입니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국영사업이었고 현재 민영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공기업이나 마찬가지죠. 유해성이 분명함에도 담배 판매로 인해 생기는 이득이나 세금이 너무나 커서 주체가 국가이든, 기업이든 건드리지 못하는 현실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2004.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