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수요일. 347일째 날. 오늘은 에버글레이즈 국립 공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정이다. 플로리다는 캘리포니아보다 세 시간이 빨라 아이들은 아직 아침에 잠을 깨기 힘들어한다.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하니 벌써 열 시가 넘었다. 근처 작은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었다. 에그 베네딕트와 오믈렛 맛이 괜찮았다.
그제는 샤크 밸리 비지터 센터 쪽으로 들어가 공원의 북쪽을 구경했다. 오늘은 공원의 남쪽 길을 따라 끝까지 들어가는 코스이다. 마이애미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니 한적한 시골길이 나타난다. 처음 방문한 곳은 어니스트 F. 코 비지터 센터이다. 이곳은 국립 공원 게이트 바깥에 있어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방문할 수 있다. 에버글레이즈에서 방문했던 세 곳의 비지터 센터 중에서 가장 크고 내부 시설도 잘 되어 있다. 국립 공원의 특징에 대한 정보도 많은데, 첫날 샤크 밸리 투어 때 들었던, 엘리게이터와 크로커다일의 차이점도 정리되어 있었다. 비지터 센터 뒤엔 작은 연못이 있었다. 물이 맑아 안이 다 비쳐 보였다.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유유히 헤엄을 쳤다. 비지터 센터와 연결된 정자에서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니 오늘 일정을 헤아리며 부산했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Alligator vs. Crocodile |
투어가 예약된 세 시 전까진 플라밍고 비지터 센터에 도착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국립 공원에 왔다면 트레일은 필수. 공원 게이트에서 삼십분 정도 거리에 있는 마호가니 해먹 트레일을 선택했다. 코스가 짧고 데크가 깔려 있어 아이들과 걷기에도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천천히 걸어도 이십 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였다. 전체 트레일 코스를 도는 동안 다른 사람을 서너 번 마주쳤을까. 사람보다 새가 더 많은 곳이다. 늪지 사이로 이어진 데크 길 주변엔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특별함은 없지만, 소박함과 고요함이 좋았다. 이번 에버글레이즈는 미국에서 방문한 열한 번째 국립 공원이다. 그동안 방문했던 열 곳의 국립 공원은 모두가 제각각 개성이 있었다. 이곳 역시 그랜드 캐년의 장대함이나 옐로 스톤의 다채로움 같은 건 없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밀림 속을 걷는 듯한, 데크가 깔린 트레일 |
두시 반쯤 플라밍고 비지터 센터에 도착했다. 남쪽으론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의 끝에 있는 센터이다. 식당, 롯지, 캠프장이 있고 남쪽 해안을 따라 이어진 긴 트레일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카누와 카약도 타기 좋은 곳이다. 우리는 오늘 보트 투어를 예약했다. 선착장에 딸린 작은 스토어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보트에 올랐다.
자그마한 보트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탑승객은 우리 가족 넷을 포함해 여섯 명. 선장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긴 갈색 곱슬머리를 나풀거리는 백인 청년이었다. 선착장을 출발한 보트는 수로를 따라 북쪽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좁은 수로에서 카약을 탄 이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선장은 속도를 줄여 물결이 낮아지도록 배려한다. 수로 양쪽엔 맹그로브 숲이 빽빽히 이어져 있고, 목이 기다란 새들이 나무 위를 옮겨다니며 물고기를 사냥한다.
맹그로브 숲이 우거진 수로를 따라 |
이틀 전 트램 투어 가이드는 두 시간 내내 한시도 입을 쉬지 않고 설명을 했는데, 이 보트 투어 가이드는 무척 과묵한 편이라 투어 내내 침묵을 지켰다. 간간이 새들과 악어, 나무에 대해 짧은 설명을 해주었다. 맹그로브 나무가 자라는 습지는 민물 반, 바닷물 반인 곳이라 염분이 많다. 맹그로브는 염분이 많은 물에서도 잘 사는데 뿌리로 빨아들인 염분 대부분은 잎을 통해 배출한다고 한다. 그래서 잎 뒷면에 소금 결정이 맺힌 걸 볼 수도 있다고. 염분을 품은 오래된 잎은 노랗게 변색되어 떨어지고, 덕분에 남은 잎과 줄기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이런 잎들을 'sacrificial leaves'라고 한다.
수로를 지나 쿳 만, 다시 수로를 지나 화이트 워터 만으로 나가니 사방이 탁 트여 이곳이 호수인지 바다인지 헷갈린다. 습지와 바다가 섞인 곳이지만 이곳은 바다에 가까울 것이다. 카누들은 이곳까지 멀리 나오진 않는다. 장애물이 없는 곳에서 보트는 바다 위를 시원하게 달린다. 바람을 좋아하는 아들은 연신 싱글벙글.
저녁 식사는 플로리다 시티 숙소 근처의 타이 음식점. 지금까지 가본 어느 타이 음식점보다 맛이 형편없는 식당을 이곳에서 만났다. 호텔에 가기 전 플로리다 케이스 아울렛을 들렀다. 규모가 작고 상품도 빈약해 오래 머물지 않고 나왔다. 아이들 운동화라도 살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나이키 스토어의 운동화 종류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가짓수도 적고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