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베이컨과 소시지 등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해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 이후 이 내용을 보도한 기사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가공육이 담배나 석면만큼 위험한 발암물질로 분류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WHO가 발암물질로 구분한 식품에는 햄과 베이컨, 소시지와 함께 핫도그, 햄버거 등도 포함되었습니다. 햄이나 소시지는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으로도 흔히 쓰이는 식품입니다. 물론 가공육이 건강에 이로운 식품은 아니라는 것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과연 소시지를 먹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암 발생 위험을 높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1군 발암물질에는 담배, 석면, 벤젠과
같은 전통적인 위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가공육이 이들 물질과 같은 군에 포함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1군에 포함된 물질들이 모두 같은 정도의 위험이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영국
암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모든 암의 19%가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반면, 가공육 섭취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분율은 3%라고 합니다.
모든 영국인이 담배를 끊으면 64,500례의 암 발생을 줄일 수 있으며, 가공육을 끊으면 8,800례를 줄일 수 있습니다.(Cancer Research UK의 그래픽) |
WHO는 발암물질을 1군부터 4군까지로 나누고 있는데, 그 기준은 발암물질과 암의 관련성이 얼마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입니다. 기존 역학 연구들을 검토했을 때 사람에서 암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1군에 포함됩니다. 또한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암과의 관련성을 의심할만한 근거가 있는 경우는 2군, 위험성이 약한 경우는 3군 이하로 분류합니다. WHO의 발표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가공육을 ‘1군(group)’이 아닌 ‘1급(grade)’ 발암물질로 보도했는데 이러한 부주의한 보도가 논란을 키운 면이 있습니다. 관련성이 확실하다는 의미의 발표가 위험의 정도가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 것입니다.
가공육 제조 과정 중 형성되는 N-nitroso compound, 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 등의 화학 물질로 인해 암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기전은 잘 모릅니다. 많은 국내 전문가들은 가공육을 과다 섭취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합니다. 지나친 육류 섭취가 심혈관질환, 암 등의 질병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가공육에 대한 이번 1군 발암물질 분류에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WHO의 이번 발표에 따르면 가공육 50g을 매일 먹는 것이 대장암 위험을 18% 높인다고 합니다. 50g은 핫도그형 소시지 1개, 비엔나 소시지 5개, 슬라이스 햄 5장 정도입니다. 하지만 국민건강영양조사(2010~2012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1일 가공육 섭취량은 6g 정도에 불과한다고 하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참고로 섭취량 상위 5% 이내에 든 사람은 하루 14g, 1% 이내인 사람은 151g을 섭취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많이 먹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참고: http://www.who.int/features/qa/cancer-red-mea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