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6일 화요일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대해

올해 첫 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고전임에도 막상 읽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책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된 건 우습게도 아들이 학교에 제출할 독서 감상문 때문이었다. 같은 조에 속한 괴팍한 취향의 친구 때문에 아이에겐 어렵기 짝이 없는 이 책을 고르는 재앙스러운 일이 생겼단다. 미궁에 빠진 감상문에 대해 이야기하다 무심코 펼친 책의 첫 장 머리말에 빠져들어 나머지 네 개의 장과 해제까지 이어서 읽고 말았다.

1859년에 쓰여진 책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 쓰여진 책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이 가득한 글이다. 책에 좋은 글귀가 너무나 많았다. 줄을 그어가며 읽은 책은 정말 오래만이었다. 인상적이지 않은 구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 글귀를 옮기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다. 

밀은 세살 때 그리스어를, 여덟살 때 라틴어를 배웠다고 하는데, 천재였음에 틀림없다. 책을 읽으면서 감탄했던 점은 그가 자신의 주장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펼치고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게 아니라 거대하고 정교한 사유의 건축물이 세워지는 과정을 목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주로 선택하는 증명 방식은 반대 의견의 강화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논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날카로운 비판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걸 다시 논파하곤 한다. 그 치열한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주장이 책에 담겼기에 17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그 견고함에 감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는 '관습의 독재'란 표현을 사용해 사회의 눈치와 관습이 개인의 개성을 말려 죽이는 상황을 경계했다. 더불어 유럽이 발전한 이유를 다양성에서 찾으면서 그 반대 사례로 중국을 비롯한 동양 국가들을 언급하는데, 이 지점에서 제국주의와 유럽 우월주의적인 시각이 엿보인다는 것이 흠이라면 유일한 흠이었다. 지금 보기엔 동양은 관습에 얽매여 있고 서양은 자유롭다는 식의 이분법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편향되게 느껴지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순응이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본질적인 메시지의 가치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하긴 19세기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서 일을 했고 전 생애를 유럽에서 보냈던 그가 당시의 시각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천재인 그도 인간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이겠지.  

그가 구축한 지적인 논리 유희를 좇는 즐거움이 컸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거대한 천재를 접하는 평범한 인물임을 스스로 실감하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가 택한 방식처럼 모든 의견에 반론을 허용하고 내 믿음을 계속 시험대에 올리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 나같은 범인에겐 지적 중노동이 되고 만다. 관습을 거부하고 매 순간 개별성을 발휘하라는 권유 역시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현실에선 구름 위 이야기처럼, 때로는 그가 무엇보다 경계한 도그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천재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이만큼 까마득한 지적 거리감이라니.

그래도 올해 처음 읽은 것이 이 책이어서 다행이었다. 천재 철학자의 가르침을 이생에서 다 실천하긴 글렀으나, 올해를 살면서 작은 선택 몇 가지 정도는 관습의 독재를 따르지 않고 온전히 내 기질과 선호에 따라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정도면 올해의 목표로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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