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엔 일찍부터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의료 지원 활동은 오후 5시부터로 예고되어 있었다. 서울시 의사회에서 전문의 두 분과 전공의 한 분이, 우리쪽에선 두 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널찍한 천막을 준비해주어서 의료진과 도움을 주시는 분들 모두 천막 안에서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서울시 의사회에서 의료 장비와 의약품을 넉넉하게 가져오셨다. 의원 하나를 차려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겨우 가방 하나에 혈압계와 약품 몇 개를 챙겨간 우리가 면목이 없을 정도였다. 서울시 의사회에선 평소 쪽방촌 봉사를 정기적으로 나가기에 의약품과 장비가 세팅되어 있다고 했다. 모두에게 감사했다.
구호와 외침, 겨울의 대기를 울리는 음악과 군중의 함성으로 바깥 공기는 달아올랐지만 천막 안은 내내 대체로 평온했다. 환자는 뜸했다. 혈압을 재러 들르신 어르신 한 분이 커프를 팔에 두른채 한참 넋두리를 하다 가셨고, 감기 증상을 호소한 환자 서넛이 있었다. 표결 당일이 아닌 전날이라, 모인 이들의 숫자가 지난 토요일만큼은 아니어서일 것이다.
한 쌍의 남녀가 천막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와 토퍼를 기증해도 되느냐 물었다. 의료 부스라 환자용 베드가 필요할 것 같았나 보다. 천막 한쪽에 얇은 캠핑용 매트리스가 있었는데, 그 위에 토퍼를 올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래지않아 두 사람이 돌돌 말린 새 토퍼를 가져왔다. 두께가 꽤 도톰해서 쓸만해 보였지만 설마 환자가 저기 누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엔 괜한 생각이었다.
8시가 넘어 공식 집회가 끝나고, 근처 2차 집회와 공연 장소로 옮아가는 사람들이 천막 앞을 지났다. 이제야 도착해 집회 장소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회 앞에 남은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탄핵 구호를 외쳤다. 국회 앞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지킨다고? 언제까지?
의료 지원 부스는 10시까지 운영될 예정이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강해졌다. 바깥을 지나는 사람들도 잔뜩 웅크린 자세였다. 의약품과 장비를 박스에 넣고 자리를 마무리하던 때였다. 젊은 여성 한 명이 비틀거리며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이십대 초반쯤 되었을까. 기운이 없는지 의료진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었지만 다행히 혈압은 정상이었다. 앉아있기 힘들어하는 환자를 부축해 구석의 토퍼-아까 그 토퍼다-에 눕히고 전기난로를 환자 쪽으로 옮긴 뒤 팔다리를 주물렀다. 손발이 얼음처럼 찼다. 탈수가 심했고, 과호흡으로 호흡곤란도 있는 상태였다. 천막엔 수액 세트가 없었기에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한 뒤 손발과 등에 핫팩을 붙이고 두꺼운 옷으로 덮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순간 119를 부를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환자 상태가 나아지면서 그간의 사정도 들을 수 있었다. 함께 집회에 나온 또래들을 안내하고 연락하는 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감기가 심하게 걸렸는데 약을 먹으면 너무 졸릴까 걱정이 되어 먹지를 못했다고 했다. 졸린 걸 왜 걱정을 할까 의아했는데, 이 친구들이 국회 앞에서 릴레이로 밤새 농성을 한단다. 하루종일 뛰어다니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로 조금전까지 무거운 시위 용품을 옮기다가 기운이 빠지고 쓰러질 것 같아 앞에 보이는 천막에 무작정 들어왔다고 했다.
따뜻한 물과 초콜릿을 먹고 기운을 좀 차렸는지, 조금만 더 있다가 동료들이 있는 집회 장소로 다시 가겠다고 한다. 병원이나 집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고개를 젓는다. 그냥 기운이 빠져서 그런 거고 본래 건강하다고. 삼십분만 쉬면 괜찮다고. 지난 주말에도 밤샘 시위를 했었기에 내 상태는 잘 안다고. 다음 차례에 시위를 이어갈 사람들이 올 때까지는 있어야 한다고. 밤이 늦은 시간이라 연락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결연한 표정에 절박한 말투였다. 결국 우리는 그를 더 말리진 못했다. 그는 자신 때문에 부스를 닫지 못하는 상황인 것을 알았는지 연신 우리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돌아오는 길의 9호선 지하철은 시위를 마친 군중으로 가득했다. 군중의 다수는 젊은 여성이었다. 상기된 표정의 얼굴들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절박하게 만들었나?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절실하게 만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