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1일 목요일

80년, 82년, 그리고 타이거즈

나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국민학교 입학 전의 일들은 거의 생각나지 않고 앨범 사진같은 몇 개의 이미지가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도 80년과 82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였다.

80년은 탄광촌 마을에서 대도시인 광주로 이사를 온 해이자 국민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그래선지 그때부터는 조금은 더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릴 수 있다. 아버지가 일하시던 가게, 흐리게 생각나는 등하교길이나, 담임선생님의 얼굴 같은 것들. 그중엔 그해 5월 어느 날인가의 기억도 있지만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해에도 우리 가족은 비교적 안온한 일상을 지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건 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의 어렴풋한 기억일 뿐이다.

82년은 프로야구가 시작된 해다. 왜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엔 남자아이들이 모이면 으레 고무공이나 테니스공으로 주먹야구를 했고, 나도 그중 하나였기에 다른 스포츠보다 익숙해서였을 것이다.(광주에선 주먹야구를 '하루'라고 불렀는데 다른 지역에선 '짬뽕'으로 불렀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유야 뭐였던간에 아이들은 새로 출범한 프로야구와 TV에서 볼 수 있는 야구 중계에 금새 빠져들었다. 팀이 지역을 연고로 했다는 것도 인기의 이유였을 것이다. 우리 동네 야구팀이라니, 당연히 응원할 수밖에.

아이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모든 팀이 어린이 회원을 모집했고, 해태 타이거즈 회원증은 내게 인생 첫 멤버십이었다. 어린이회원 가입 장소는 해태제과 공장이었는데, 5천원짜리 지폐를 들고 황량한 논밭길을 버스로 지나 작은 사무실을 방문했던 기억, 야구모자와 티셔츠, 사인볼과 스티커 사은품에 두근두근하던 기억이 난다.

이듬해인 83년, 해태 타이거즈가 첫 우승을 했다. 공터에서 고무공을 치고 던지는 동네 아이들은 모두가 김봉연이었고 이상윤이었다. 한국시리즈 때는 온 도시가 들썩였다. 우승 후 겨울에 해태제과에서 광주 시내에 우승 기념 전단지를 뿌렸는데, 전단지 하나를 슈퍼에 가져가면 누가바 하나와 바꿔주었다. 부라보콘이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누가바라도 어딘가. 동네 아이들과 아파트 우편함에 꽂힌 전단지를 여러 장 모아 한꺼번에 누가바 다섯 개쯤을 받기도 했다.(한꺼번에 더 많이 가져가면 슈퍼 아저씨가 눈총을 주었던 것 같다.) 마침 하늘에서 싸락눈이 펑펑 내려서 길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눈보라가 치는 아파트 단지 안 길을 강아지마냥 마구 뛰어다녔던 기억.

그날은 마침 휴일 아침이었을 것이다. 잔뜩 고양된 아이들은 내친김에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 사인을 받기로 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선수들이 몇 있었는데, 우리가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차영화, 김성한, 김무종 선수였나? 김성한 선수에겐 호통만 듣고 도망쳐 나왔고, 김무종 선수에겐 사인을 받았던 아이들도 있었던 것 같다. 휴일 아침에 다짜고짜 집에 쳐들어와 사인을 내놓으라 하는 꼬마들이 선수들에겐 얼마나 짜증스러웠을까. 그럼에도 그해엔 그래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구단이 매각되기 전 20년 동안 아홉 번 우승했다. 해마다 봄이면 집단 우울증을 앓던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 해태 타이거즈는 잠시나마 트라우마를 잊게 해주는 프로작과 같은 존재였다. 당시 경기 후반부에 울려퍼지던 응원가가 '남행열차'가 아니라 처량하기 짝이 없는 '목포의 눈물'이었다는 것, 2000년 이전까지 5월18일에 단 한 번도 홈경기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엔 모기업도 바뀌었고, 새 홈구장도 생겼고, 이제는 예전만큼 밥먹듯이 우승하던 시절도 지났다. 나도 이제는 어렸을적 무등경기장만큼 야구장에 자주 가지 못하지만, 지금도 야구장을 보면 조금은 마음이 설렌다.

한명재 캐스터의 우승콜이 화제다. 어떤 이는 그 우승콜을 듣고 뭐 그리 유난이냐고, 프로야구 출범하기도 전의 일을 왜 끄집어오냐고, 왜 야구장에서 정치질이냐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그 해설이 타이거즈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던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보편타당한 헌사로 들렸다.


"광주,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에서, 타이거즈는 운명이자 자랑이었습니다. 그런 KIA 타이거즈가 7년 만에 프로야구 챔피언에 오릅니다."




2024년 8월 19일 월요일

멸종 위기를 대하는 자세

영화 '돈룩업'은 우연히 발견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6개월 뒤 혜성 충돌로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 천문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백악관에 보고할 기회를 갖지만 대통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당장 있을 중간 선거에만 관심을 보인다. 언론과 방송에도 사실을 제보하지만 역시나 토크쇼의 가십거리 정도로 치부될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치적 위기에 빠진 대통령이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핵폭탄이 탑재된 우주 로켓으로 혜성의 궤도를 변경하겠다는 발표를 하지만, 이 계획은 거액후원자인 IT 사업가에 의해 중단된다. 알고보니 혜성에는 엄청난 양의 희귀 광물이 묻혀 있었고, 이 광물에 눈이 먼 사업가가 드론을 보내 혜성을 작은 조각들으로 쪼개 떨어뜨리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드론 발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모두가 지구의 멸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영화 속 과학적 계산에 따르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99.78%이다. (과학자는 본래 100%란 말을 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확신을 갖고 말하지만 이 수치 앞에서 정치인은 계산의 정확도를 의심하고, 토크쇼 진행자는 오히려 과학자의 정신 상태를 트집잡는다. 온라인의 댓글들은 과학자들을 조롱한다. 주인공은 이런 반응이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지구 멸망이 6개월 뒤란 확실한 근거가 있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지? 하지만 과학적 추론과 점쟁이의 예언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혜성의 충돌로 인한 인류의 멸종은 한때 유행했던 종말론과 다를 게 없다. 누군가는 기후 위기로 인한 북극곰의 멸종보다도 시덥잖은 주장으로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북극곰은 대표적인 멸종 위기 동물로 꼽히지만, 다른 수많은 멸종위기종에 비하면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는 멸종 위기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고 한다. 북극곰은 위기 등급이 가장 낮은 '취약' 단계의 동물이다. 이보다 위기 등급이 높은 '위기' 단계엔 아시아코끼리, 갈라파고스펭귄 등이 있고, 전 세계에 남은 개체수가 수백 마리 뿐으로 가장 등급이 높은 '위급' 단계엔 벵골대머리수리나 수마트라코뿔소와 같은 동물이 있다. 

오래 전부터 의료계에는 멸종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하는 소아흉부외과 의사가 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소아흉부외과 전문의는 33명이고 10년 뒤엔 17명으로 줄어든다. 비슷한 처지의 소아외과나 소아비뇨의학과 의사 역시 멸종위기종에 속한다. 최근엔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의사(산부인과는 산과와 부인과로 나뉜다)나 뇌혈관 개두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도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해 멸종위기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앞에서의 국제 분류에 비유하면 소아흉부외과 의사는 벵골대머리수리, 뇌혈관외과 의사는 갈라파고스펭귄쯤 될까. 소아청소년과나 응급의학과는 조만간 북극곰 수준이 될 것 같다. 이러한 멸종 위기는 주로 당직이나 응급콜이 존재하는 과의 문제이므로 내가 속한 과의 의사들은 다행히도 멸종위기종에 포함되지 않지만, 나와 무관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미래에 내 뇌혈관이 터지면 과연 나는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종에 대한 경고는 오랫동안 무시되었다. 영화에서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들의 경고처럼. 6개월 전 갑작스레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멸종위기종 구제책이 발표되었으나, 오히려 이 구제책은 멸종 위기를 급격하게 키우는 결과를 낳아버렸다. 혜성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나 오히려 혜성의 가속페달을 밟은 셈이다. 혜성은 더 빠르게 다가오고 절멸의 시간도 그만큼 당겨졌지만, 이후에도 혜성의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책임자들은 다가오는 거대한 혜성은 그냥 두고 열심히 지상에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다. 그러니 예상된 멸종을 앞둔 우리는 실존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 고민의 과정이 지난 6개월 동안의 시간이었다. 

영화 후반부, 혜성이 가까워지면서 천체망원경으로만 보이던 혜성이 육안으로도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운전 중이던 주인공 과학자는 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세우고 하늘을 가리키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외친다. 

"저거예요! 저게 그 혜성이예요. 저기 있다고! 내내 말했잖아요. 저기 있다고!"

며칠 전 모 대학병원 응급실 폐쇄 기사를 보며 영화의 그 장면이 생각났다. "그렇게 될 거라고, 우리가 내내 말했잖아요!"

영화의 마지막,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종말을 받아들인다. 파티를 하고,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평소와 같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아이를 목욕시킨다. 주인공은 가족과 함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다. 그리고 혜성 충돌로 쓰나미가 닥치기 직전 아내의 손을 잡고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생각해보면, 우린 정말 부족한 게 없었어. 그렇지?" 

종말의 상황이라면 나도 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역시 가족인 것이다. 그러니 절멸의 위기가 닥칠 의료 환경에서 나도 가족도 크게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현재의 실존적 고민은 멸종위기종에 대한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나흘 전 아내가 여행을 갔고, 나와 아이들만 보낼 시간이 아직도 사흘이 더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미래의 위기에 대한 부질없는 넋두리보다 당장의 생존을 고민해야 할 때란 의미다. 

애들 밥이나 챙기러 가야겠다.





2024년 8월 17일 토요일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변한다.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길이었다. 아파트 상가 앞을 뛰어다니는 꼬마들이 소란스럽다. 단지 입구에서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서넛이 엉덩이를 치켜들고 쌩 하니 지나간다. 입구를 지나 단지 안을 나른하게 걷는다. 인공잔디가 깔린 공터에선 남자 아이들이 야구 경기 중이다. 인라인장에서 헬멧과 보호대를 차고 수업 중인 아이들이 올망졸망 귀엽다. 여름이 되면서 가장 소란스러워진 곳은 단연 바닥 분수가 있는 놀이터이다. 분수가 솟아오를 때마다 까르륵 아이들 웃음소리가 기분좋게 퍼진다.

십 년이 넘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멀리 여러 번 이사를 다니지 않은 것만 해도 운좋은 일이다. 주변 환경이 좋은 대단지 아파트라 아이들이 많다. 해지기 전에 거실 창을 열면 늘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린다. 늘상 경험하는 일이라 그간 으레 그러려니 생각해왔는데, 아이들이 많은 풍경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언젠가 같은 단지에 사는 이웃의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지방에 사는 부모님이 가끔 집에 오시면 신기한듯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여기는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구나.'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면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단지 안에만 초등학교가 두 개고 가장 가까운 중학교는 늘 과밀학급이다. 그러나 출산율 0.6을 찍는 현실에서 서울이라고 다 같을까.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풍경이 달라질 것이다. 학생이 줄어 문을 닫는 학교들도 생겨나고 있는데 십년 뒤 서울의 초등학생 수는 반토막이 날거라고 하니 폐교는 더 빠르게 늘 것이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서 학교는 둘째치고 마을과 도시 전체의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원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출근해 아이들이 가득한 동네로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문을 닫는 학교나 지역 소멸은 그저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지게 된다. 멀리 떨어진 곳의 뉴스보다 휴일마다 막히는 집 근처 백화점 앞 사거리 교통 문제나 중학교 신설, 이웃 아파트 재건축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많아도 다행히 아파트 단지 단골 소아과엔 오픈런 같은 문제도 없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이 이곳이 아니었다면 일상의 문제들의 경중은 달라졌을 것이다. 서울 변두리였다면, 지방 광역시였다면, 그보다도 더 작은 도시였다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각자가 자신에게 가까운 문제를 자신이 서있는 시선에서 생각하고 사는 것은. 웹툰 <송곳>에서 주인공 구고신의 명대사,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는 말은 그래서 진리다. 하지만 가까운 풍경만을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편협해진다. 때로는 내 시선이 다른 각도가 되도록 서 있는 자리를 바꾸어보기도 하고, 더 먼 곳을 보기 위해 관심과 노력도 해야 한다. 타인의 글을 읽든, 이야기를 나누든,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든.

어느 분의 페이스북 글을 보았다. 이번 의료대란 사태를 겪으며 사회적 편견을 억울해하는 의사들의 심정을 공감하고 다독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그런 정도의 억울함이 없는 집단은 없다는 것도 의사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억울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에 맞이할 억울함들은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도 했다. 동의한다. 세상에 만연한 억울함들에 관해선 어린아이 수준의 경험만을 가지고 있는지라, 내가 모르는 억울함들이 어디에나 있고 내가 무얼 생각하든 그 무게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되새기곤 한다. 다섯달 전 내가 서명한 사직서의 무게와 전장연의 오체투지 시위의 무게는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진료만 잘 하면, 수술만 잘 하면, 의학적으로 최선의 처방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동료들을 종종 만난다. 직업인으로서의 지식과 역량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각자의 날을 갈고 닦는다고 모든 톱니가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는 안타깝지만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식과 역량의 부족을 나무라는 것만큼 우리에겐 태도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시민의식같은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가 서있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미지의 풍경에 겸허한 태도를 가지는 것, 우선 그 정도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