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12.13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광장엔 일찍부터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의료 지원 활동은 오후 5시부터로 예고되어 있었다. 서울시 의사회에서 전문의 두 분과 전공의 한 분이, 우리쪽에선 두 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널찍한 천막을 준비해주어서 의료진과 도움을 주시는 분들 모두 천막 안에서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서울시 의사회에서 의료 장비와 의약품을 넉넉하게 가져오셨다. 의원 하나를 차려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겨우 가방 하나에 혈압계와 약품 몇 개를 챙겨간 우리가 면목이 없을 정도였다. 서울시 의사회에선 평소 쪽방촌 봉사를 정기적으로 나가기에 의약품과 장비가 세팅되어 있다고 했다. 모두에게 감사했다.

구호와 외침, 겨울의 대기를 울리는 음악과 군중의 함성으로 바깥 공기는 달아올랐지만 천막 안은 내내 대체로 평온했다. 환자는 뜸했다. 혈압을 재러 들르신 어르신 한 분이 커프를 팔에 두른채 한참 넋두리를 하다 가셨고, 감기 증상을 호소한 환자 서넛이 있었다. 표결 당일이 아닌 전날이라, 모인 이들의 숫자가 지난 토요일만큼은 아니어서일 것이다.

한 쌍의 남녀가 천막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와 토퍼를 기증해도 되느냐 물었다. 의료 부스라 환자용 베드가 필요할 것 같았나 보다. 천막 한쪽에 얇은 캠핑용 매트리스가 있었는데, 그 위에 토퍼를 올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래지않아 두 사람이 돌돌 말린 새 토퍼를 가져왔다. 두께가 꽤 도톰해서 쓸만해 보였지만 설마 환자가 저기 누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엔 괜한 생각이었다.

8시가 넘어 공식 집회가 끝나고, 근처 2차 집회와 공연 장소로 옮아가는 사람들이 천막 앞을 지났다. 이제야 도착해 집회 장소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회 앞에 남은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탄핵 구호를 외쳤다. 국회 앞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지킨다고? 언제까지?

의료 지원 부스는 10시까지 운영될 예정이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강해졌다. 바깥을 지나는 사람들도 잔뜩 웅크린 자세였다. 의약품과 장비를 박스에 넣고 자리를 마무리하던 때였다. 젊은 여성 한 명이 비틀거리며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이십대 초반쯤 되었을까. 기운이 없는지 의료진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었지만 다행히 혈압은 정상이었다. 앉아있기 힘들어하는 환자를 부축해 구석의 토퍼-아까 그 토퍼다-에 눕히고 전기난로를 환자 쪽으로 옮긴 뒤 팔다리를 주물렀다. 손발이 얼음처럼 찼다. 탈수가 심했고, 과호흡으로 호흡곤란도 있는 상태였다. 천막엔 수액 세트가 없었기에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한 뒤 손발과 등에 핫팩을 붙이고 두꺼운 옷으로 덮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순간 119를 부를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환자 상태가 나아지면서 그간의 사정도 들을 수 있었다. 함께 집회에 나온 또래들을 안내하고 연락하는 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감기가 심하게 걸렸는데 약을 먹으면 너무 졸릴까 걱정이 되어 먹지를 못했다고 했다. 졸린 걸 왜 걱정을 할까 의아했는데, 이 친구들이 국회 앞에서 릴레이로 밤새 농성을 한단다. 하루종일 뛰어다니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로 조금전까지 무거운 시위 용품을 옮기다가 기운이 빠지고 쓰러질 것 같아 앞에 보이는 천막에 무작정 들어왔다고 했다.

따뜻한 물과 초콜릿을 먹고 기운을 좀 차렸는지, 조금만 더 있다가 동료들이 있는 집회 장소로 다시 가겠다고 한다. 병원이나 집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고개를 젓는다. 그냥 기운이 빠져서 그런 거고 본래 건강하다고. 삼십분만 쉬면 괜찮다고. 지난 주말에도 밤샘 시위를 했었기에 내 상태는 잘 안다고. 다음 차례에 시위를 이어갈 사람들이 올 때까지는 있어야 한다고. 밤이 늦은 시간이라 연락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결연한 표정에 절박한 말투였다. 결국 우리는 그를 더 말리진 못했다. 그는 자신 때문에 부스를 닫지 못하는 상황인 것을 알았는지 연신 우리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돌아오는 길의 9호선 지하철은 시위를 마친 군중으로 가득했다. 군중의 다수는 젊은 여성이었다. 상기된 표정의 얼굴들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절박하게 만들었나?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절실하게 만들었나?




2024년 11월 28일 목요일

번식에 관한 단상

바다에 사는 모기인 폰토마이아의 생활 주기는 극단적이다. 유충은 수중에서 1년을 살고, 고치를 거쳐 성체 모기가 된다. 성체의 생애는 겨우 3시간이며 이 짧은 생애 동안의 유일한 임무는 짝짓기이다. 그래서 폰토마이아의 몸은 짝짓기에 필요한 것만 갖추었다. 생식기관, 다리, 날개다. 이것도 수컷의 경우이고, 암컷은 생식기관을 가득 달고 수면 위를 떠도는 벌레 모양의 자루에 불과하다.

Male Pontomyia natans (from Wikipedia)

최근 읽은 해양생물에 관한 책의 일부이다. 책을 읽으며 문득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생존과 번식은 동물의 본능이라고 한다. 자연 다큐멘터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물의 짝짓기 장면을 보다 보면, 후손을 남기기 위한 다양하고 수고로운 노력에 감탄하곤 한다. 진화생물학의 계통수를 거꾸로 따라가 아래쪽 뿌리에 가까운 동물-말미잘이나 촌충 같은-일수록 단순한 번식 외의 존재 의미가 희미해지는데, 이를 보면 번식이란 수억 년 전 태초부터 부여된 본능임이 분명하다. 이들보다 한참 상위에 위치한 곤충쯤 되면 번식 행위에 고차원적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지만-짝짓기 임무를 마친 뒤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수컷 사마귀나 거미의 희생적 결말이라던가-, 위의 책에서 소개한 바다모기의 예만으로도 근본적인 가르침을 주기엔 충분할 것 같다. 3시간의 짝짓기를 위해 1년 동안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생이라니, 이쯤 되면 본래 동물의 생애는 번식을 위해 프로그래밍 되어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인간은 본능대로만 살지 않는다. 모두가 본능을 충실히 따르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태초부터의 본능이 사라졌을 리는 없다. 그래서 출산율 0.7을 찍고 있는 이 나라에선 본능을 거스르게 만드는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도 드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생존과 번식 두 가지 본능을 모두 챙기는 것이 지나치게 고단한 일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바다 모기처럼 인생 모두를 바칠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출산과 육아는 참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겨우 오십 년 넘게 살았을 뿐이지만 내 인생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또한 그보다 더 특별한 일도 없었다는 것 역시. 세상엔 의미있는 일이 많을 것이나, 타인의 인생 첫날부터 시작해 가장 가까이에서 매일을 목격하고 함께 겪는 경험을 대신할 만한 일이 있을까. 사랑, 기쁨, 행복감, 충만함, 기대와 실망, 공허함, 자괴감, 불안, 분노, 괴로움. 아이들과 함께 하는 매일매일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것과 같았다-두 아이가 십대가 된 지금은 불안과 짜증의 업힐을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다 동의하진 않지만 그 경험을 거쳐온 지금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나를 둘러싼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경이로운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특히 돌이 되기 전까지는 매 순간이 그랬다. 눈맞춤만 해도, 웃기만 해도, 옹알이를 하거나 뒤집기만 해도 머릿 속에선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팡팡 탄성이 터졌다.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가족 친지 모두가 호들갑을 떨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이 훌쩍 커가면서 불꽃이 터지는 빈도는 줄었지만 지금도 종종 경이로운 순간이 예고없이 찾아온다.

요즘 그런 순간은 주로 아이들이 겪는 관계에 대한 것이다. 큰애는 고등학생이다. 얼마 전 학원 수업을 마친 아이를 데려오며 같은 반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는 그 친구는 그나마 아들과 가까운 편이란다. 문제는 아들도 막상 그 친구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들어보니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아들은 그 친구를 싫어하는 스스로의 감정이 편견 때문은 아닌지, 감정을 드러내고 친구를 멀리해도 되는 괜찮은지를 자문하고 있었다. 딴에는 친구에 대한 부정적인 속마음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았었나 보다. 그날 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고민을 털어놓은 아들은 마음이 가벼워졌다며 후련한 얼굴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려서 엄지손가락을 빨던 아이가 이만큼 컸다는 게 신기하고, 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일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어려선 부모가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서 가르침에 따라 평화롭게 생활했지만, 지금은 울타리를 넘나들다가 언젠가는 아예 떠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어놓은 복잡한 선으로 가득한 바깥 세상에서 그 선을 따라갈 것인지, 넘을 것인지를 지금처럼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발자국이 새로운 선을 만드는 경험도 할 것이다.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든 그 과정을 목격하고 동참하는 것은 부모로서 경이로울 따름이다.

바다모기의 생애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지금이야 한밤중에 눈이 쌓인 창밖을 보며 차분히 감상에 젖어있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런 평화로운 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당장 이틀 전만 해도 기말고사를 앞두고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겠다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다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으니. 인생을 게임에 비유하자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메인퀘스트이고 나머지는 서브퀘스트라는 말도 있는데, 메인이든 서브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역시나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과거의 부모님들과 지금 퀘스트 엔딩을 향해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부모들은 존경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2024년 10월 31일 목요일

80년, 82년, 그리고 타이거즈

나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국민학교 입학 전의 일들은 거의 생각나지 않고 앨범 사진같은 몇 개의 이미지가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도 80년과 82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였다.

80년은 탄광촌 마을에서 대도시인 광주로 이사를 온 해이자 국민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그래선지 그때부터는 조금은 더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릴 수 있다. 아버지가 일하시던 가게, 흐리게 생각나는 등하교길이나, 담임선생님의 얼굴 같은 것들. 그중엔 그해 5월 어느 날인가의 기억도 있지만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해에도 우리 가족은 비교적 안온한 일상을 지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건 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의 어렴풋한 기억일 뿐이다.

82년은 프로야구가 시작된 해다. 왜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엔 남자아이들이 모이면 으레 고무공이나 테니스공으로 주먹야구를 했고, 나도 그중 하나였기에 다른 스포츠보다 익숙해서였을 것이다.(광주에선 주먹야구를 '하루'라고 불렀는데 다른 지역에선 '짬뽕'으로 불렀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유야 뭐였던간에 아이들은 새로 출범한 프로야구와 TV에서 볼 수 있는 야구 중계에 금새 빠져들었다. 팀이 지역을 연고로 했다는 것도 인기의 이유였을 것이다. 우리 동네 야구팀이라니, 당연히 응원할 수밖에.

아이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모든 팀이 어린이 회원을 모집했고, 해태 타이거즈 회원증은 내게 인생 첫 멤버십이었다. 어린이회원 가입 장소는 해태제과 공장이었는데, 5천원짜리 지폐를 들고 황량한 논밭길을 버스로 지나 작은 사무실을 방문했던 기억, 야구모자와 티셔츠, 사인볼과 스티커 사은품에 두근두근하던 기억이 난다.

이듬해인 83년, 해태 타이거즈가 첫 우승을 했다. 공터에서 고무공을 치고 던지는 동네 아이들은 모두가 김봉연이었고 이상윤이었다. 한국시리즈 때는 온 도시가 들썩였다. 우승 후 겨울에 해태제과에서 광주 시내에 우승 기념 전단지를 뿌렸는데, 전단지 하나를 슈퍼에 가져가면 누가바 하나와 바꿔주었다. 부라보콘이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누가바라도 어딘가. 동네 아이들과 아파트 우편함에 꽂힌 전단지를 여러 장 모아 한꺼번에 누가바 다섯 개쯤을 받기도 했다.(한꺼번에 더 많이 가져가면 슈퍼 아저씨가 눈총을 주었던 것 같다.) 마침 하늘에서 싸락눈이 펑펑 내려서 길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눈보라가 치는 아파트 단지 안 길을 강아지마냥 마구 뛰어다녔던 기억.

그날은 마침 휴일 아침이었을 것이다. 잔뜩 고양된 아이들은 내친김에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 사인을 받기로 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선수들이 몇 있었는데, 우리가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차영화, 김성한, 김무종 선수였나? 김성한 선수에겐 호통만 듣고 도망쳐 나왔고, 김무종 선수에겐 사인을 받았던 아이들도 있었던 것 같다. 휴일 아침에 다짜고짜 집에 쳐들어와 사인을 내놓으라 하는 꼬마들이 선수들에겐 얼마나 짜증스러웠을까. 그럼에도 그해엔 그래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구단이 매각되기 전 20년 동안 아홉 번 우승했다. 해마다 봄이면 집단 우울증을 앓던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 해태 타이거즈는 잠시나마 트라우마를 잊게 해주는 프로작과 같은 존재였다. 당시 경기 후반부에 울려퍼지던 응원가가 '남행열차'가 아니라 처량하기 짝이 없는 '목포의 눈물'이었다는 것, 2000년 이전까지 5월18일에 단 한 번도 홈경기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엔 모기업도 바뀌었고, 새 홈구장도 생겼고, 이제는 예전만큼 밥먹듯이 우승하던 시절도 지났다. 나도 이제는 어렸을적 무등경기장만큼 야구장에 자주 가지 못하지만, 지금도 야구장을 보면 조금은 마음이 설렌다.

한명재 캐스터의 우승콜이 화제다. 어떤 이는 그 우승콜을 듣고 뭐 그리 유난이냐고, 프로야구 출범하기도 전의 일을 왜 끄집어오냐고, 왜 야구장에서 정치질이냐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그 해설이 타이거즈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던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보편타당한 헌사로 들렸다.


"광주,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에서, 타이거즈는 운명이자 자랑이었습니다. 그런 KIA 타이거즈가 7년 만에 프로야구 챔피언에 오릅니다."




2024년 8월 19일 월요일

멸종 위기를 대하는 자세

영화 '돈룩업'은 우연히 발견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6개월 뒤 혜성 충돌로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 천문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백악관에 보고할 기회를 갖지만 대통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당장 있을 중간 선거에만 관심을 보인다. 언론과 방송에도 사실을 제보하지만 역시나 토크쇼의 가십거리 정도로 치부될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치적 위기에 빠진 대통령이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핵폭탄이 탑재된 우주 로켓으로 혜성의 궤도를 변경하겠다는 발표를 하지만, 이 계획은 거액후원자인 IT 사업가에 의해 중단된다. 알고보니 혜성에는 엄청난 양의 희귀 광물이 묻혀 있었고, 이 광물에 눈이 먼 사업가가 드론을 보내 혜성을 작은 조각들으로 쪼개 떨어뜨리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드론 발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모두가 지구의 멸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영화 속 과학적 계산에 따르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99.78%이다. (과학자는 본래 100%란 말을 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확신을 갖고 말하지만 이 수치 앞에서 정치인은 계산의 정확도를 의심하고, 토크쇼 진행자는 오히려 과학자의 정신 상태를 트집잡는다. 온라인의 댓글들은 과학자들을 조롱한다. 주인공은 이런 반응이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지구 멸망이 6개월 뒤란 확실한 근거가 있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지? 하지만 과학적 추론과 점쟁이의 예언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혜성의 충돌로 인한 인류의 멸종은 한때 유행했던 종말론과 다를 게 없다. 누군가는 기후 위기로 인한 북극곰의 멸종보다도 시덥잖은 주장으로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북극곰은 대표적인 멸종 위기 동물로 꼽히지만, 다른 수많은 멸종위기종에 비하면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는 멸종 위기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고 한다. 북극곰은 위기 등급이 가장 낮은 '취약' 단계의 동물이다. 이보다 위기 등급이 높은 '위기' 단계엔 아시아코끼리, 갈라파고스펭귄 등이 있고, 전 세계에 남은 개체수가 수백 마리 뿐으로 가장 등급이 높은 '위급' 단계엔 벵골대머리수리나 수마트라코뿔소와 같은 동물이 있다. 

오래 전부터 의료계에는 멸종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하는 소아흉부외과 의사가 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소아흉부외과 전문의는 33명이고 10년 뒤엔 17명으로 줄어든다. 비슷한 처지의 소아외과나 소아비뇨의학과 의사 역시 멸종위기종에 속한다. 최근엔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의사(산부인과는 산과와 부인과로 나뉜다)나 뇌혈관 개두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도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해 멸종위기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앞에서의 국제 분류에 비유하면 소아흉부외과 의사는 벵골대머리수리, 뇌혈관외과 의사는 갈라파고스펭귄쯤 될까. 소아청소년과나 응급의학과는 조만간 북극곰 수준이 될 것 같다. 이러한 멸종 위기는 주로 당직이나 응급콜이 존재하는 과의 문제이므로 내가 속한 과의 의사들은 다행히도 멸종위기종에 포함되지 않지만, 나와 무관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미래에 내 뇌혈관이 터지면 과연 나는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종에 대한 경고는 오랫동안 무시되었다. 영화에서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들의 경고처럼. 6개월 전 갑작스레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멸종위기종 구제책이 발표되었으나, 오히려 이 구제책은 멸종 위기를 급격하게 키우는 결과를 낳아버렸다. 혜성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나 오히려 혜성의 가속페달을 밟은 셈이다. 혜성은 더 빠르게 다가오고 절멸의 시간도 그만큼 당겨졌지만, 이후에도 혜성의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책임자들은 다가오는 거대한 혜성은 그냥 두고 열심히 지상에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다. 그러니 예상된 멸종을 앞둔 우리는 실존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 고민의 과정이 지난 6개월 동안의 시간이었다. 

영화 후반부, 혜성이 가까워지면서 천체망원경으로만 보이던 혜성이 육안으로도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운전 중이던 주인공 과학자는 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세우고 하늘을 가리키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외친다. 

"저거예요! 저게 그 혜성이예요. 저기 있다고! 내내 말했잖아요. 저기 있다고!"

며칠 전 모 대학병원 응급실 폐쇄 기사를 보며 영화의 그 장면이 생각났다. "그렇게 될 거라고, 우리가 내내 말했잖아요!"

영화의 마지막,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종말을 받아들인다. 파티를 하고,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평소와 같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아이를 목욕시킨다. 주인공은 가족과 함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다. 그리고 혜성 충돌로 쓰나미가 닥치기 직전 아내의 손을 잡고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생각해보면, 우린 정말 부족한 게 없었어. 그렇지?" 

종말의 상황이라면 나도 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역시 가족인 것이다. 그러니 절멸의 위기가 닥칠 의료 환경에서 나도 가족도 크게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현재의 실존적 고민은 멸종위기종에 대한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나흘 전 아내가 여행을 갔고, 나와 아이들만 보낼 시간이 아직도 사흘이 더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미래의 위기에 대한 부질없는 넋두리보다 당장의 생존을 고민해야 할 때란 의미다. 

애들 밥이나 챙기러 가야겠다.





2024년 8월 17일 토요일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변한다.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길이었다. 아파트 상가 앞을 뛰어다니는 꼬마들이 소란스럽다. 단지 입구에서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서넛이 엉덩이를 치켜들고 쌩 하니 지나간다. 입구를 지나 단지 안을 나른하게 걷는다. 인공잔디가 깔린 공터에선 남자 아이들이 야구 경기 중이다. 인라인장에서 헬멧과 보호대를 차고 수업 중인 아이들이 올망졸망 귀엽다. 여름이 되면서 가장 소란스러워진 곳은 단연 바닥 분수가 있는 놀이터이다. 분수가 솟아오를 때마다 까르륵 아이들 웃음소리가 기분좋게 퍼진다.

십 년이 넘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멀리 여러 번 이사를 다니지 않은 것만 해도 운좋은 일이다. 주변 환경이 좋은 대단지 아파트라 아이들이 많다. 해지기 전에 거실 창을 열면 늘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린다. 늘상 경험하는 일이라 그간 으레 그러려니 생각해왔는데, 아이들이 많은 풍경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언젠가 같은 단지에 사는 이웃의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지방에 사는 부모님이 가끔 집에 오시면 신기한듯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여기는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구나.'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면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단지 안에만 초등학교가 두 개고 가장 가까운 중학교는 늘 과밀학급이다. 그러나 출산율 0.6을 찍는 현실에서 서울이라고 다 같을까.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풍경이 달라질 것이다. 학생이 줄어 문을 닫는 학교들도 생겨나고 있는데 십년 뒤 서울의 초등학생 수는 반토막이 날거라고 하니 폐교는 더 빠르게 늘 것이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서 학교는 둘째치고 마을과 도시 전체의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원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출근해 아이들이 가득한 동네로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문을 닫는 학교나 지역 소멸은 그저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지게 된다. 멀리 떨어진 곳의 뉴스보다 휴일마다 막히는 집 근처 백화점 앞 사거리 교통 문제나 중학교 신설, 이웃 아파트 재건축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많아도 다행히 아파트 단지 단골 소아과엔 오픈런 같은 문제도 없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이 이곳이 아니었다면 일상의 문제들의 경중은 달라졌을 것이다. 서울 변두리였다면, 지방 광역시였다면, 그보다도 더 작은 도시였다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각자가 자신에게 가까운 문제를 자신이 서있는 시선에서 생각하고 사는 것은. 웹툰 <송곳>에서 주인공 구고신의 명대사,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는 말은 그래서 진리다. 하지만 가까운 풍경만을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편협해진다. 때로는 내 시선이 다른 각도가 되도록 서 있는 자리를 바꾸어보기도 하고, 더 먼 곳을 보기 위해 관심과 노력도 해야 한다. 타인의 글을 읽든, 이야기를 나누든,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든.

어느 분의 페이스북 글을 보았다. 이번 의료대란 사태를 겪으며 사회적 편견을 억울해하는 의사들의 심정을 공감하고 다독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그런 정도의 억울함이 없는 집단은 없다는 것도 의사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억울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에 맞이할 억울함들은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도 했다. 동의한다. 세상에 만연한 억울함들에 관해선 어린아이 수준의 경험만을 가지고 있는지라, 내가 모르는 억울함들이 어디에나 있고 내가 무얼 생각하든 그 무게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되새기곤 한다. 다섯달 전 내가 서명한 사직서의 무게와 전장연의 오체투지 시위의 무게는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진료만 잘 하면, 수술만 잘 하면, 의학적으로 최선의 처방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동료들을 종종 만난다. 직업인으로서의 지식과 역량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각자의 날을 갈고 닦는다고 모든 톱니가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는 안타깝지만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식과 역량의 부족을 나무라는 것만큼 우리에겐 태도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시민의식같은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가 서있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미지의 풍경에 겸허한 태도를 가지는 것, 우선 그 정도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