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길이었다. 아파트 상가 앞을 뛰어다니는 꼬마들이 소란스럽다. 단지 입구에서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서넛이 엉덩이를 치켜들고 쌩 하니 지나간다. 학원 수업이 끝났는지 제 몸만큼 큰 가방을 메고 무리 지어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지나 단지 안을 나른하게 걷는다. 인공잔디가 깔린 공터에선 유니폼을 입은 어린 야구 팬들이 한참 경기 중이다. 인라인장에서 헬멧과 보호대를 차고 수업 중인 아이들이 올망졸망 귀엽다. 놀이터는 봄이 되면서 소란스러워졌다. 까르륵 아이들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퍼진다.
십 년이 넘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단지 안에서는 두어 번 이사를 했지만,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멀리 동네를 옮겨다니며 이사를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주변 환경도 나쁘지 않은 대단지 아파트라 그간 아이들 키우며 살기에도 좋았다. 그래서인지 이 아파트엔 어린 아이를 키우는 집이 많은 편이다. 해지기 전에 거실 창을 열면 항상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린다. 늘상 경험하는 일이라 으레 그러려니 생각해왔지만, 이런 풍경이 마냥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은 언젠가 같은 단지에 사는 이웃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지방에 사는 부모님께서 가끔 서울에 오시면 신기한 듯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여기는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구나.'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면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단지 안에만 초등학교가 두 개고 가장 가까운 중학교는 늘 과밀학급이다. 그러나 출산율 0.7명을 찍는 현실에서 서울이라고 다 같을까.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풍경이 달라질 것이다. 서울 변두리엔 학생이 줄어 문을 닫는 학교들도 생겨나고 있는데, 십년 뒤 서울의 초등학생 수가 반토막이 날 거라고 하니 폐교는 더 빠르게 늘 것이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서 학교는 둘째치고 마을과 도시 전체의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내에서 만원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출근해 아이들이 가득한 동네로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문을 닫는 학교나 지역 소멸은 그저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지게 된다. 멀리 떨어진 곳의 뉴스보다 휴일마다 막히는 집 근처 백화점 앞 사거리 교통 문제나 중학교 신설, 이웃 아파트 재건축이 더 중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많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세 개라 오픈런 같은 문제도 없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이 이곳이 아니었다면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의 경중은 달라졌을 것이다. 서울 변두리였다면. 지방 광역시였다면. 그보다도 더 작은 도시였다면.
대형마트에서 벌어지는 노동운동을 다룬 웹툰 <송곳>에서, 프랑스와 같은 노조 우호적인 나라로부터 파견된 경영진이 왜 노조를 탄압하는지 묻는 질문에 주인공인 노무사 구고신은 이렇게 답한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라고. 그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면 보편타당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각자가 자신에게 가까운 문제를 자신이 서있는 시선에서 생각하고 사는 것은. 그렇지만 내 눈에 비치는 가까운 풍경만을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편협해진다. 때로는 내 시선이 다른 각도가 되도록 서 있는 자리를 바꾸어보기도 하고, 더 먼 곳을 보기 위해 관심과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타인의 글을 읽든, 이야기를 나누든,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든.
의대 증원으로 시작된 혼란이 지속되던 작년 언젠가 어느 분의 페이스북 글을 보았다. 정부와 사회에 대해 분노와 비판이 섞인 의사들의 비아냥이 넘치던 때였다. 그 글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지나친 편견을 억울해하는 의사들의 심정과 분노를 공감하고 다독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그런 정도의 억울함이 없는 집단은 없다는 것도 의사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마무리되었다. 억울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에 맞이할 새로운 억울함들은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도 했다. 동의한다. 세상에 만연한 억울함들에 관해선 어린아이 수준의 경험만을 가지고 있는지라, 내가 모르는 억울함들이 어디에나 있고 내가 무얼 생각하든 그 무게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되새기려 한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온라인에 개진하는 시대를 살다 보니 동료 의사들의 생각을 자주 보고 듣게 된다. 열린 태도와 훌륭한 식견에 감탄하며 배우기도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끔은 진료만 잘 하면, 수술만 잘 하면, 교과서적인 처방만 최선을 다해 하면 그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한 동료들도 만난다. 직업인으로서의 지식과 역량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면 오만이 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도 그것만이 전부가 되어선 안될 것이다. 각자의 날만을 갈고 닦는다고 모든 톱니가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는, 안타깝게도 복잡한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식과 역량의 부족을 나무라는 것만큼 우리에겐 태도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시민의식같은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가 서있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미지의 풍경에 겸허한 태도를 가지는 것, 우선 그 정도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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