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주인공인 중년 남자는 조직폭력배이면서 가정을 건사하느라 하루하루 애쓰는 평범한 가장이다. 영화는 직업인으로서의 조직폭력배,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빠의 역할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는 주인공의 비루한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가족을 캐나다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가 된 그가 혼자 라면을 먹다 흐느끼는 장면은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 중 하나다. 2017년 개봉한 ‘싱글 라이더’의 주인공 역시 기러기 아빠이다. 비극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가족을 지키고 싶어했던 주인공은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갈 비행기표만 사두고 약물과 알코올 남용으로 쓸쓸히 죽는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떨어져 사는 가족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조기 유학 관련 통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숫자를 짐작할 수 있다. 조기 유학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인데, 한국교육개발원의 유학생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경우 2000년 705명에서 2006년 13,814명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조기 유학생 중 절반 정도에서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으로 추산하며, 이들 중 대부분은 엄마와 아이들만 외국에 나간 케이스이다.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그 즈음이다. 이후에는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와 조기 유학의 인기 감소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 수도 줄었다. 교육통계서비스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는 초중고생 8,458명이 외국 유학을 떠났는데,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전년도에 비해 절반 정도로 감소한 숫자이다. 하지만 올해는 판데믹 상황이 나아지면서 다시 숫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해외 유학이 줄고 대신 국내 유학이 늘어나면서 최근엔 국제 학교가 있는 제주도와 같은 지역에 가족을 보낸 국내 기러기 아빠도 많다.
기러기 아빠는 대개 4-50대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인데다 혼자 지내며 생활 습관이 나빠져서 관련 질병에 취약해질 수 있다. 불규칙한 식사와 과음으로 중성지방이 높아지는 이상지질혈증이나 간기능 이상, 위장 질환이 생기는 것이 흔한 예이다. 이러한 신체 질환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외로움을 겪으면서 생기는 우울증 역시 큰 문제인데, 악화될 경우 자살 등 극단적 선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가족과 떨어져 장기간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기상과 취침 시간을 일정하게 하고 간단하게라도 아침 식사를 한다. 규칙적인 운동은 필수다. 특별히 불편한 증상이 없더라도 건강검진을 빼먹지 않고 받아야 한다. 외로움은 회식이나 술을 통해 해결하기보다 취미 생활과 운동을 매개로 한 동호회 활동을 통해 달래도록 한다. 친구나 동료, 친지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외로움과 고민을 해소할 필요도 있다. 가족을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스마트폰, 컴퓨터를 이용해 자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 한국의 아빠들은 대부분 자신의 힘든 모습이나 못난 모습을 가족, 특히 자녀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가족과도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고통과 어려움을 숨기고 의연한 척하는 것보다는 지금 내가 힘들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유를 가족과 공유하고 해결책을 함께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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