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세 명 중 한 명은 사는 동안 한 번은 암에 걸린다. 신규 암 발생자 수는 2015년 22만명에서 2019년 25만명으로 늘었으며 최근 매해 꾸준히 증가해 왔다. 예전엔 암이라 하면 죽을 병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조기 발견과 치료법의 발전으로 암 생존율은 크게 늘었다. 2019년 기준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7%로, 십 년 전보다 5퍼센트 가량 높아졌다. 암에 걸려도 열 명 중 일곱 명은 5년 이상 생존하는 것이다. 같은 해 기준 암 유병자(암을 진단받고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사람)는 215만명이다. 우리나라 국민 25명 중 한 명이 암을 앓았던 사람인 셈이다.
암 환자가 늘어나면서 암 생존자의 삶의 질과 건강 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암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들은 간병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로 암 환자 못지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환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염려해 자신의 문제를 참거나 숨기는 경향이 있다.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가족은 대부분 보호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끼며, 죄책감을 갖는 경우도 흔하다. 예전에 잘못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가족이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행동이 가족을 암에 걸리도록 만든 것은 아니며, 가족이 암에 걸리는 것을 내가 막을 수도 없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은 환자에게나 환자를 돌보아야 할 가족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환자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평소 환자와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가족이 갑자기 나타나 의료진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다 해달라"고 하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된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데다 환자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이 더해진 것이 이런 행동의 이유일 것이다. 더 이상의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음에도 가족간의 갈등으로 연명 치료를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빗댄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 신드롬(Daughter from California Syndrome)'이라는 표현이 있는 걸 보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위중한 병을 앓는 환자의 가족이 느끼는 죄책감은 그만큼 보편적인 감정인 것이다.
암 치료라는 힘든 여정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환자와 가족 모두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가족이 건강해야 환자도 치료를 잘 받고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암 환자를 돌보는 가족 세 명 중 두 명이 우울 증상을 겪으며, 실제로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도 1.6배 높았다. 전문가들은 가족 모두에게 역할을 분배해서 한 명이 전담하는 독박 간병을 피하도록 하며, 주 간병인 역할을 맡더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자신을 위해 쓰라고 조언한다. 아파하는 환자를 두고 내 시간을 챙기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자신을 위한 휴식은 환자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 Rhee YS, Yun YH, Park S, Shin DO, Lee KM, Yoo HJ, Kim JH, Kim SO, Lee R, Lee YO, Kim NS. Depression in family caregivers of Cancer patients: the feeling of burden as a predictor of depression. J Clin Oncol. 2008;26(36):5890–5895.
* 조영대, 전용우, 장성인, 박은철. Family Members of Cancer Patients in Korea Are at an Increased Risk of Medically Diagnosed Depression. 예방의학회지 2018;51(2):1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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