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감염병의 연이은 유행으로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의 신종 감염병은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이 대부분이라, 세균을 치료하는 항생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지만 감염병의 치료와 예방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생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항생제의 개발은 현대 의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다. 1940년대에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를 이용한 페니실린을 개발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언젠가 감염병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세균은 내성을 통해 항생제에 대응하는 법을 빠르게 터득했다. 이후의 감염병 치료 역사는 항생제 내성 세균과의 싸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기존 항생제 내성균을 퇴치하는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면 수 년 내에 새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이 출현한다.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 속도에 비해 세균이 내성을 획득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항생제 내성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보건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가장 강력한 항생제 중 하나인 반코마이신에 대한 내성균은 국내에서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항생제 내성의 주요 원인으로는 오남용이 꼽힌다. ‘오용’은 잘못 사용하는 것, ‘남용’은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국내 인체 항생제 사용량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하며, 2021년 발표된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에서는 항생제 사용량을 5년 내 20퍼센트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항생제의 남용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오용을 피하고 정확히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데, 항생제를 처방대로 복용하지 않고 불충분하게 먹는 것이 오용의 대표적 예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선 항생제 내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내성은 견딜 내耐, 성품 성性으로 적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뜻 풀이는 다음과 같다.
1. 약물의 반복 복용에 의해 약효가 저하하는
현상
2. 생명 세균 따위의 병원체가 화학 요법제나 항생 물질의 계속 사용에 대하여 나타내는 저항성
3. 생명 환경 조건의 변화에 견딜 수 있는 생물의 성질. 내열성(耐熱性), 내한성(耐寒性) 따위가 있다.
많은 이들이 이중 첫 번째와 두 번째 개념을 혼동한다. 첫 번째는 사람의 몸이 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세균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항생제 내성은 두 번째 개념, 즉 세균에 생기는 변화이다. 항생제를 반복해 쓰면 약이 내 몸에 쌓여 약효가 줄어든다는 믿음 때문에 복용을 꺼리는 경우가 있지만 이런 식으로 내 몸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부작용과 내성을 걱정해 항생제를 부적절하게 복용한다. 충분한 기간을 복용하지 않고 조기에 중단하면 당장 병은 낫더라도 살아남은 균이 내성을 획득하고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7년과 2019년 일반인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증상이 나아지면 항생제 복용을 중단해도 된다.’고 답해 인식 개선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번역가인 강병철 작가는 이러한 현상은 부정확한 개념어가 일으킨 촌극이며, 잘못된 인식을 줄이기 위해 내성이란 용어보다 ‘(항생제) 저항성’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영어의 예를 보자면 위의 첫 번째 개념에 대한 단어는 ‘tolerance’, 두 번째 개념에 대한 단어는 ‘resistance’로 전혀 다르다.
* 질병관리청. 내 몸을 위한 항생제, 건강을 위해
올바르게 써주세요! 2021.11.18 보도자료
* 강병철. 무엇이 아이의 건강을 위협하는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비판. 스켑틱 7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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