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2일 화요일

팬데믹 시대, 다시 돌아보는 손 씻기의 역사

이 년이 넘도록 이어진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역사적으로 감염병 예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해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있을까 싶다. 코로나19와 같이 전파력이 높고 단기간에 감염자 수의 폭발적인 증가를 일으키는 질환은 전파를 막는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스크를 비롯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백신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마스크와 백신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이들 못지않게 강조되어야 할 예방법이 손 씻기이다. 기침과 재채기를 할 때 침 방울(비말)에 섞여 외부로 나온 바이러스가 타인의 손에 묻어 전파되는 것이 주요 감염 경로이기 때문이다. 손에 묻은 바이러스는 코와 입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 증상을 일으킨다.

손을 잘 씻는 것만으로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질환과 감염성 위장 질환의 절반 이상을 예방할 수 있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성 호흡기 질환도 20퍼센트를 줄일 수 있다. 예방법으로써 손 씻기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용은 기껏해야 비누 부스러기 정도에 불과하다. 백신의 경우 델타, 오미크론 등 새로운 변이가 등장할 때마다 예방 효과가 떨어질 것을 걱정하지만, 손 씻기는 어떤 변이에도 효과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장점도 있다.

손 씻기가 미생물에 의한 감염을 막는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불과 150년 전만 해도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세균이 아니라‘미아즈마’라고 불리는 나쁜 공기와 악취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공기가 아닌 다른 매개체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학자들은 무시와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대의 세균 학설이 미아즈마 학설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개의 질병이 산욕열과 콜레라이다. 

출산 후 6주의 기간을 일컫는 산욕기에 열이 나는 것을 산욕열이라 부른다. 분만 과정에서 생긴 감염이 원인이며, 현재는 감염 예방 조치와 항생제의 역할로 선진국에서 이 질환으로 죽는 산모는 거의 없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에는 산모 네 명 중 한 명이 산욕열로 사망할 만큼 흔하고 무서운 병이었다. 특이한 점은 집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출산한 산모에 비해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의 산욕열 발병 확률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모들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는 것을 기피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의료진은 병원에서 산욕열이 더 잘 생기는 것이 비좁고 환기가 잘 안 되는 환경에서 나쁜 기운이 산모들에게 옮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나쁜 공기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당시 학계의 정설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원인을 찾고자 한 이들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의사인 알렉산더 고든은 1795년의 보고서에서 산욕열의 원인이 공기의 해로운 성분이 아니라 의료진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료를 본 환자로부터 의사 자신에게 있는 무엇인가를 통해 새 환자에게 열이 전파된다고 믿었다. 1843년 미국의 수필가이자 의사인 올리버 웬델 홈스는 <산욕열의 전염성>이란 책에서 고든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하지만 반세기 간격으로 등장했던 두 의사의 파격적인 학설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당시는 미생물의 존재까지 알진 못했고, 다른 의사들은 자신이 질병을 옮긴다는 주장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등장한 이가 헝가리 의사인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였다. 오스트리아 빈 종합 병원에서 일하던 그 역시 산욕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산모들은 두 개의 병실에 입원했는데 한쪽은 의대생이, 다른 쪽은 산파가 산모를 돌보았다. 그런데 병실의 시설은 의대생이 담당한 쪽이 더 좋았음에도 사망률은 무려 세 배나 높았다. 동료들은 산파에 비해 남학생들이 환자를 더 거칠게 다루기 때문이라고 여겼지만 제멜바이스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시신 해부를 하다가 곧바로 산모를 돌보러 오는 의대생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시신의 감염성 물질이 의대생을 통해 산모에게 전파되어 산욕열이 생긴다고 추정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염소 처리를 한 물통을 설치하고 의대생들로 하여금 해부실에서 병실로 가기 전에 손을 씻도록 했다. 그러자 이전에 18.3퍼센트였던 사망률이 넉 달 만에 1.9퍼센트로 떨어졌다. 이 실험을 통해 제멜바이스는 접촉을 통한 오염이 산욕열을 일으킨다고 주장했고 1861년에는 이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주장 역시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빈 종합병원의 산욕열 환자 사망률
손 씻기를 시작한 1847년 5월 이후 급격하게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 영국 런던에서는 콜레라가 맹위를 떨쳤다. 1854년의 유행에 의해 영국에서만 이만 명 이상이 콜레라로 사망했고 그 중심에 런던이 있었다. 당시 학자와 주민들은 기존의 미아즈마 학설에 따라 템즈강의 더러운 물에서 나오는 유독한 공기가 원인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 의사가 현대 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스노였다. 그는 1854년 런던 소호 지역에서 발생했던 콜레라를 조사하면서 환자가 발생한 곳을 지도에 표시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감염 지도를 통해 환자 대부분이 브로드가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콜레라가 공기에 섞인 유독한 기체가 아니라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지역 당국을 설득해 브로드가 우물 펌프의 손잡이를 떼어냈다. 그러자 그 지역의 콜레라 유행이 곧바로 수그러들었다. 브로드윅으로 이름이 바뀐 거리에는 지금도 존 스노의 이름을 딴 술집과 과거의 우물 펌프를 본딴 모형이 있다. 

Map of cholera cases in Soho, London, 1854. Source: Wikimedia Commons

이러한 사례와 근거가 쌓이면서 공기나 악취가 아닌 접촉을 통해 질병이 전파된다는 이론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1867년에는 영국 외과의사인 조지프 리스터가 석탄산을 사용해 소독을 하는 살균 수술법을 학술지 ‘랜싯’에 발표했다. (구강청결제의 대명사 격인 리스테린은 1879년에 리스터의 이름을 따 살균소독제로 개발된 것이다.) 이후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와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가 주도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비로소 감염병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미생물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병원 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손 씻기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없애려면 흐르는 물과 비누를 이용해 손바닥, 손등, 손가락 사이까지 꼼꼼히 씻는 것이 좋다. 횟수는 하루에 여덟 번 이상을 권하며 이와 별도로 음식을 먹기 전이나 용변을 본 후에도 씻어야 한다. 질병관리청의 감염병 예방 행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손 씻기 실천율은 최근까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외출 후 손을 씻는 비율은 2013년 81.9퍼센트에서 2019년 85.5퍼센트로 높아졌고,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97.6퍼센트까지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자가 보고와 관찰 조사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올바른 손씻기를 실천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87.3퍼센트인데 반해 실제 관찰 조사에서 용변 후 손을 씻는 비율은 75.4퍼센트에 그쳤다. 또한 관찰 조사에서 용변 후 비누를 사용해 손을 씻은 비율은 37.1퍼센트에 불과했다. 손을 씻지 않는 이유로는 습관이 안 되어서, 귀찮아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참고문헌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Show Me the Science - Why Wash Your Hands? Available from: https://www.cdc.gov/handwashing/why-handwashing.html

조경숙. 2013-2020년 손씻기 실천율의 변화. 주간 건강과 질병 2021;14(42):2972-87.

린지 피츠해리스. 수술의 탄생. 열린책들; 2020.


2022년 6월 30일 목요일

손 저림의 원인에 대하여

손발 저림은 흔한 증상이다. 손발이 저리면 혈액 순환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혈관에는 동맥과 정맥이 있다. 동맥의 경우 동맥경화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면 혈류에 장애가 생기고,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주로 통증이다. 해당 부위에 혈액이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 동맥이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이 통증의 이유이다. 평소엔 괜찮다가 일정 거리 이상을 걸을 때 종아리에 통증이 생긴다면 하지의 동맥 문제를, 숨찬 운동을 할 때 명치 부위에 통증이 생긴다면 심장 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 동맥이 좁아졌음을 의심할 수 있다.

큰 혈관이 아닌,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말초 동맥의 경우엔 주로 추운 날씨와 같은 특정 상황에서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해서 통증이 생긴다. 추울 때 혈관이 수축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피부가 창백해지거나 통증이 생길 정도로 심하면 이를 레이노드 현상 (Raynaud’s phenomenon)’이라고 부른다. 찬물에 손을 담갔을 때 손가락의 혈색이 사라지면서 통증이 생기면 진단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심하면 류마티스 질환이 원인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단순히 손발이 찬 정도라면 추운 날씨에 피부의 노출을 피하고 모자, 장갑과 따뜻한 양말 등을 사용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습관만으로도 증상을 줄일 수 있다. 반신욕이나 족욕도 도움이 된다.

정맥의 경우 혈관이 좁아지는 게 아니라 혈관 벽과 판막이 약해지는 것이 혈류 장애의 원인이다. 중력을 거슬러 심장으로 혈액을 되돌려 보내려면 혈관 벽의 탄력과 역류를 방지하는 판막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증상은 주로 부종으로 나타난다. 가장 흔히 나타나는 다리의 경우, 증세가 심하면 혈관이 튀어나오는 정맥류로 발전할 수 있다.

통증이나 부종과 같은 혈류 장애의 주된 증상 없이 손발 저림만 있다면 혈관보다는 말초 신경의 이상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바닥에 앉아 있었거나 엎드려 잠들었을 때 손발이 저리는 것은 말초 신경이 체중에 의한 압력으로 눌리면서 생기는 증상이다. 이 경우엔 자세를 바꿔 신경에 가해지는 압력이 사라지면 금새 나아진다. 하지만 만성적으로 신경이 눌리는 상황이라면 저림 증상도 사라지지 않고 반복해 나타난다.

손발로 내려가는 말초 신경의 뿌리는 척추에 있다. 척추의 뿌리에서 시작한 신경 줄기는 팔, 다리를 거쳐 잔 가지로 갈라지고 가지의 끝은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닿는다. 신경의 뿌리와 줄기, 가지 어디서든 눌릴 수 있다. 척추관 협착증이나 추간판(디스크) 탈출증이 신경 뿌리가 눌리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경추()에서 발생하면 팔과 손이, 요추(허리)에서 발생하면 다리와 발이 저리게 된다.

손 저림의 가장 흔한 원인은 신경 가지가 손목에서 눌리는 것으로,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손목 터널 증후군은 손바닥과 손끝이 저리고 밤에 저림 증상이 심해진다. 손을 많이 쓰는 경우에 흔히 발생한다. 집안일을 많이 하는 주부, 미용사, 피부관리사 등에게 많이 생기는 이유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원인이 된다. 임신 중에도 몸이 붓고 손목 터널이 좁아져 더 잘 생긴다. 그 외에도 만성 신부전으로 투석을 받는 환자나 류마티스 관절염, 갑상선 기능 저하증, 당뇨병을 앓는 경우에도 흔히 발생한다.

이렇게 말초 신경이 눌려서 생기는 저림 증상은 대개 한쪽에만 생긴다. 만약 양쪽 손과 발이 동시에 저리다면 여러 신경을 함께 침범하는 전신 질환을 먼저 의심한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이 가장 흔한 원인이다. 손발 저림이 뇌졸중(중풍)의 전조 증상이라 생각해 불안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뇌졸중 때문에 저린 증상만 생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뇌졸중은 갑자기 발생하는 급성 질환이며 오랫동안 손발이 저리다가 발병하지는 않는다.

손목 터널 증후군의 치료 방법은 증세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심하지 않다면 부목 기능이 있어 손목을 고정하는 보호대를 쓰게 하고 약물 치료를 한다. 손목에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치료 효과가 충분하지 않거나 손바닥 근육이 약해질 정도로 증세가 심하면 손목의 인대를 절제하는 수술 치료를 한다. 적절한 치료를 하면 대부분 나아질 수 있지만 증세가 오랫동안 진행될수록 치료의 효과는 덜하다. 그러므로 반복적인 손 저림이 있다면 혈액 순환을 좋게 한다는 은행잎 성분이나 마그네슘 따위를 먹으며 나아지길 기대하기보다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rpal_Tunnel_Syndrome.png


2022년 6월 29일 수요일

집에 가고 싶어

"아빠, 나 집에 가고 싶어."

밤에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데 딸이 말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우리 집의 지 방 침대에 누웠는데 집에 가고 싶다니. 딸과 몇 마디 더 나누고서야 그 의미를 알았다. 

"지금 우리 집에 있잖아. 근데 왜 집에 가고 싶어?"

"내일이 주말인 집에 가고 싶어."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날은 수요일 밤이었고, 다음날 아침엔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가야 했다. 아침엔 여러 번 깨워야 일어나고 주말엔 항상 늦잠을 자는 아이다. 다짜고짜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 뒤에도 딸은 종종 비슷한 말을 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 앞엔 다양한 내용이 감추어져 있었다. 어떤 때는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집에 가고 싶었고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는 딸을 말리지 않으면 매일 저녁마다 함께 넷플릭스를 봐야 한다), 또 어떤 때는 '맛있는 젤리가 있는'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좋아하는 간식이 떨어졌을 때였다). 약속이 있어 집에 늦게 들어간 어느 날 밤엔 ‘아빠가 있는’ 집에 가고 싶디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네, 저는 딸바보입니다).

그러니 딸이 말하는 '집'이란, 닿을 수 없는 이상향. 유치환의 깃발에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향한 '푸른 해원', 최인훈의 광장에서 명준이 선택한 '중립국', 이창동의 박하사탕에서 영호가 돌아가고자 했던 ‘순수한 과거’와 비슷한 존재였던 것이다. 매번 그 이상향의 모습이 바뀌긴 하지만. 

아빠는 내일 출근 안해도 되는 집에 매일 가고 싶단다. 

2022년 6월 11일 토요일

당뇨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일곱 명 중 한 명이 당뇨병 환자이며, 이를 전체 인구로 환산하면 494만명에 달한다. 국민 전체의 건강에 영향을 줄 만큼 흔한 질환이지만 당뇨병 환자 열 명 중 네 명은 스스로 당뇨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정도로, 관리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당뇨병을 진단받는 순간이 환자에겐 삶의 위기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부정(denial)은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다. 당뇨병은 대개 서서히 진행한다. 대표적인 증상인 3다(多) 증상, 즉 다음(물을 많이 마시는 것), 다식(많이 먹는데 체중이 늘지 않는 것), 다뇨(소변 양이 많아지는 것)는 심한 당뇨병에서 나타나므로 초기 환자는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당뇨병에 걸렸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부정은 정서적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적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분노, 죄책감과 우울 역시 당뇨병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정서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이러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면 질병을 인정하는 수용(acceptance)의 단계로 나아가기 힘들다. 수용은 당뇨병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질병 관리를 위한 치료와 생활 습관 변화를 실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당뇨병을 친구처럼 받아들이고 조급함 대신 멀리 보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건강하게 당뇨병을 관리하고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부정적 감정은 게으름이나 자기 관리 실패가 당뇨병의 원인이라는 편견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편견은 자신이 당뇨병 환자임을 숨기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환자가 자신이 당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꺼려한다. 하지만 당뇨병 관리를 위해선 식이 요법과 운동을 비롯해 생활 습관의 변화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선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신이 당뇨병 환자이고 생활 습관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변에 알리는 것은 성공적인 당뇨병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2022년 5월 30일 월요일

기러기 아빠의 건강

2007년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주인공인 중년 남자는 조직폭력배이면서 가정을 건사하느라 하루하루 애쓰는 평범한 가장이다. 영화는 직업인으로서의 조직폭력배,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빠의 역할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는 주인공의 비루한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가족을 캐나다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가 된 그가 혼자 라면을 먹다 흐느끼는 장면은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 중 하나다. 2017년 개봉한 ‘싱글 라이더’의 주인공 역시 기러기 아빠이다. 비극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가족을 지키고 싶어했던 주인공은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갈 비행기표만 사두고 약물과 알코올 남용으로 쓸쓸히 죽는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떨어져 사는 가족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조기 유학 관련 통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숫자를 짐작할 수 있다. 조기 유학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인데, 한국교육개발원의 유학생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경우 2000년 705명에서 2006년 13,814명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조기 유학생 중 절반 정도에서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으로 추산하며, 이들 중 대부분은 엄마와 아이들만 외국에 나간 케이스이다.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그 즈음이다. 이후에는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와 조기 유학의 인기 감소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 수도 줄었다. 교육통계서비스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는 초중고생 8,458명이 외국 유학을 떠났는데,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전년도에 비해 절반 정도로 감소한 숫자이다. 하지만 올해는 판데믹 상황이 나아지면서 다시 숫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해외 유학이 줄고 대신 국내 유학이 늘어나면서 최근엔 국제 학교가 있는 제주도와 같은 지역에 가족을 보낸 국내 기러기 아빠도 많다.

기러기 아빠는 대개 4-50대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인데다 혼자 지내며 생활 습관이 나빠져서 관련 질병에 취약해질 수 있다. 불규칙한 식사와 과음으로 중성지방이 높아지는 이상지질혈증이나 간기능 이상, 위장 질환이 생기는 것이 흔한 예이다. 이러한 신체 질환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외로움을 겪으면서 생기는 우울증 역시 큰 문제인데, 악화될 경우 자살 등 극단적 선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가족과 떨어져 장기간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기상과 취침 시간을 일정하게 하고 간단하게라도 아침 식사를 한다. 규칙적인 운동은 필수다. 특별히 불편한 증상이 없더라도 건강검진을 빼먹지 않고 받아야 한다. 외로움은 회식이나 술을 통해 해결하기보다 취미 생활과 운동을 매개로 한 동호회 활동을 통해 달래도록 한다. 친구나 동료, 친지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외로움과 고민을 해소할 필요도 있다. 가족을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스마트폰, 컴퓨터를 이용해 자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 한국의 아빠들은 대부분 자신의 힘든 모습이나 못난 모습을 가족, 특히 자녀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가족과도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고통과 어려움을 숨기고 의연한 척하는 것보다는 지금 내가 힘들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유를 가족과 공유하고 해결책을 함께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2년 5월 23일 월요일

암 검진 몇 살까지 받아야 할까

우리 나라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암으로 죽는다. 암은 사망 원인으로 수십 년째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 비율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로 인해 암 검진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암 종류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암 발생과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 40대부터 정기적인 암 검진을 권한다. 그렇다면 몇 세까지 검진을 받아야 할까?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검진을 받는 것이 좋을까?

암 검진은 이득(benefit)과 위해(harm)가 모두 존재한다. 암 검진의 이득은 해당 암으로 인한 사망의 감소이고, 위해는 거짓 양성 결과로 인한 추가 정밀 검사, 정신적 스트레스, 서서히 진행하는 암에 대한 과진단(overdiagnosis)과 과치료(overtreatment) 등이다. 대개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칭하며, 75세 이상을 고령 노인, 85세 이상을 초고령 노인으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75세 이상의 고령 노인에서 암 검진의 이득과 위해의 크기는 건강한 장년 성인과 다르다. 암의 경우 사망 감소라는 가장 중요한 이득이 발생하기까지는 대개 10년 이상이 걸린다. 기대여명이 이보다 적은 경우에는 이득은 확실치 않은 반면 검사와 치료 합병증 등의 위해는 커질 가능성이 많다. 고령 노인에서 수술이나 항암 치료 등의 효과는 떨어지는 반면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은 높아지는 것이 예이다. 그러므로 미국 암 협회를 비롯한 많은 전문 학회들이 기대여명이 10년 이하인 경우 암 검진을 받지 않도록 권한다. 

국내 지침도 마찬가지이다. 2015년 발표된 국립암센터 권고안의 경우 위암은 74세까지 2년마다 내시경으로 검진을 받도록 하지만 75-84세에는 실익을 따져본 뒤 결정하도록 하며 85세 이상에선 검진을 권고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대장암은 80세, 유방암은 69세, 폐암은 74세까지만 검진을 권장한다. 암 검진에도 은퇴 나이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다르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기대여명이 9년 미만 노인의 절반 이상이 전립선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대장암 등의 검진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무료로 암 검진 사업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2021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75세 노인의 기대여명은 13.2년이다. 75-80세 이상의 경우 암 검진의 이득보다 위해가 클 수 있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 암 검진에는 검진 종료 연령이 없으므로 본인이 원한다면 연령에 관계없이 검진을 받을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암검진 수검 대상자 중 75세 이상은 2,662,759명이었고 그 중 1,012,215(38%) 명이 검진을 받았으며, 이중 85세 이상도 90,132명에 달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나이에 상관 없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만, 암 검진에서 나이는 중요하다. 고령 노인은 조기 발견과 치료로 얻는 이득보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기대여명을 낮추는 병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건강 상태가 나쁜 경우엔 더 그렇다. 그럼에도 건강보험공단에선 나이 제한 없이 암 검진 안내문을 보내고, 90세가 넘는 노인이 부축을 받으며 내시경을 받으러 오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종종 생긴다. 국가 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시혜나 복지로 여기는 인식은 이러한 문제를 부채질한다. 이득보다 해가 클 수 있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므로 “이제 암 검진은 그만 받아도 됩니다.”란 말을 들었을 때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의료진 입장에선 “나이 들었다고 검진도 받지 말라니 죽으란 말이냐”는 원망을 받을 것이 염려되어 암 검진 중단을 권하지 못하는 일이 많은데, 암 검진의 근거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검진 중단에 대해 상의할 필요가 있다.


* Statistics Korea. Korean Statistical Information Service [Available from: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350&tblId=DT_35007_N010

* 위암 74살, 대장암 80살… 암 검진 ‘은퇴 나이’ 생겼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708988.html

* [김철중의 생로병사] 노년기에 너무나 많이 행해지는 검사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8/2017082803248.html

2022년 5월 20일 금요일

항생제 내성에 대해

신종 감염병의 연이은 유행으로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의 신종 감염병은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이 대부분이라, 세균을 치료하는 항생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지만 감염병의 치료와 예방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생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항생제의 개발은 현대 의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다. 1940년대에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를 이용한 페니실린을 개발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언젠가 감염병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세균은 내성을 통해 항생제에 대응하는 법을 빠르게 터득했다. 이후의 감염병 치료 역사는 항생제 내성 세균과의 싸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기존 항생제 내성균을 퇴치하는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면 수 년 내에 새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이 출현한다.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 속도에 비해 세균이 내성을 획득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항생제 내성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보건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가장 강력한 항생제 중 하나인 반코마이신에 대한 내성균은 국내에서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항생제 내성의 주요 원인으로는 오남용이 꼽힌다. ‘오용은 잘못 사용하는 것, ‘남용은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국내 인체 항생제 사용량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하며, 2021년 발표된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에서는 항생제 사용량을 5년 내 20퍼센트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항생제의 남용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오용을 피하고 정확히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데, 항생제를 처방대로 복용하지 않고 불충분하게 먹는 것이 오용의 대표적 예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선 항생제 내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내성은 견딜 내耐, 성품 성性으로 적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뜻 풀이는 다음과 같다.

1. 약물의 반복 복용에 의해 약효가 저하하는 현상

2. 생명 세균 따위의 병원체가 화학 요법제나 항생 물질의 계속 사용에 대하여 나타내는 저항성

3. 생명 환경 조건의 변화에 견딜 수 있는 생물의 성질. 내열성(耐熱性), 내한성(耐寒性) 따위가 있다.

많은 이들이 이중 첫 번째와 두 번째 개념을 혼동한다. 첫 번째는 사람의 몸이 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세균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항생제 내성은 두 번째 개념, 즉 세균에 생기는 변화이다. 항생제를 반복해 쓰면 약이 내 몸에 쌓여 약효가 줄어든다는 믿음 때문에 복용을 꺼리는 경우가 있지만 이런 식으로 내 몸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부작용과 내성을 걱정해 항생제를 부적절하게 복용한다. 충분한 기간을 복용하지 않고 조기에 중단하면 당장 병은 낫더라도 살아남은 균이 내성을 획득하고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7년과 2019년 일반인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증상이 나아지면 항생제 복용을 중단해도 된다.’고 답해 인식 개선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번역가인 강병철 작가는 이러한 현상은 부정확한 개념어가 일으킨 촌극이며, 잘못된 인식을 줄이기 위해 내성이란 용어보다 ‘(항생제) 저항성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영어의 예를 보자면 위의 첫 번째 개념에 대한 단어는 ‘tolerance’, 두 번째 개념에 대한 단어는 ‘resistance’로 전혀 다르다.

 

* 질병관리청. 내 몸을 위한 항생제, 건강을 위해 올바르게 써주세요! 2021.11.18 보도자료

* 강병철. 무엇이 아이의 건강을 위협하는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비판. 스켑틱 72017.

2022년 5월 19일 목요일

내 가족이 암에 걸렸을 때

한국인 세 명 중 한 명은 사는 동안 한 번은 암에 걸린다. 신규 암 발생자 수는 201522만명에서 201925만명으로 늘었으며 최근 매해 꾸준히 증가해 왔다. 예전엔 암이라 하면 죽을 병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조기 발견과 치료법의 발전으로 암 생존율은 크게 늘었다. 2019년 기준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7%, 십 년 전보다 5퍼센트 가량 높아졌다. 암에 걸려도 열 명 중 일곱 명은 5년 이상 생존하는 것이다. 같은 해 기준 암 유병자(암을 진단받고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사람)215만명이다. 우리나라 국민 25명 중 한 명이 암을 앓았던 사람인 셈이다.

암 환자가 늘어나면서 암 생존자의 삶의 질과 건강 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암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들은 간병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로 암 환자 못지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환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염려해 자신의 문제를 참거나 숨기는 경향이 있다.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가족은 대부분 보호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끼며, 죄책감을 갖는 경우도 흔하다. 예전에 잘못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가족이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행동이 가족을 암에 걸리도록 만든 것은 아니며, 가족이 암에 걸리는 것을 내가 막을 수도 없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은 환자에게나 환자를 돌보아야 할 가족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환자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평소 환자와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가족이 갑자기 나타나 의료진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다 해달라"고 하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된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데다 환자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이 더해진 것이 이런 행동의 이유일 것이다. 더 이상의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음에도 가족간의 갈등으로 연명 치료를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빗댄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 신드롬(Daughter from California Syndrome)'이라는 표현이 있는 걸 보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위중한 병을 앓는 환자의 가족이 느끼는 죄책감은 그만큼 보편적인 감정인 것이다.

암 치료라는 힘든 여정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환자와 가족 모두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가족이 건강해야 환자도 치료를 잘 받고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암 환자를 돌보는 가족 세 명 중 두 명이 우울 증상을 겪으며, 실제로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도 1.6배 높았다. 전문가들은 가족 모두에게 역할을 분배해서 한 명이 전담하는 독박 간병을 피하도록 하며, 주 간병인 역할을 맡더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자신을 위해 쓰라고 조언한다. 아파하는 환자를 두고 내 시간을 챙기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자신을 위한 휴식은 환자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 Rhee YS, Yun YH, Park S, Shin DO, Lee KM, Yoo HJ, Kim JH, Kim SO, Lee R, Lee YO, Kim NS. Depression in family caregivers of Cancer patients: the feeling of burden as a predictor of depression. J Clin Oncol. 2008;26(36):5890–5895.

* 조영대, 전용우, 장성인, 박은철. Family Members of Cancer Patients in Korea Are at an Increased Risk of Medically Diagnosed Depression. 예방의학회지 2018;51(2):100-108.


2022년 4월 9일 토요일

오랜 환자들

진료 전날 예약 환자 명단을 살피다 보면 이름 석 자만으로 파노라마처럼 얼굴과 병력이 떠오르는 분들이 있다. 십 년이 넘게 같은 방에서 환자를 만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한 환자를 오랫동안 만나다 보면 좋은 점이 많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잘 알고 있으니 그에게 새로 생긴 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수월하게 판단할 수 있다. 증상의 원인은 무엇인지, 의학적인 의미는 어느 정도인지, 걱정을 해야할 문제인지 아닌지에 관해서. 일주일 전부터 명치에 생긴 답답함의 원인이 심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다른 환자의 경우엔 위산 역류, 또 다른 환자에겐 직장에서 겪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비슷한 증상이라도 환자에 따라 진단이 달라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고, 그에 대해 더 잘 알 수록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다. 환자와 함께한 시간의 무게는 치료 효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랜 세월만큼 쌓인 신뢰가 있는 환자는 내가 내리는 별것 아닌 처방도 잘 따르게 되니, 이 역시 좋은 점이다.

오랜 환자를 만나는 게 좋지만은 않다. 만성 질환은 나이가 들면서 나빠지기 마련이다. 당뇨병 약 하나를 쓰다가 두 개를 쓰게 되고, 당뇨병 약만 먹던 환자가 고혈압 약도 먹게 되는 식이다. 무릎에 관절염이 있던 환자는 해가 가면서 허리에, 손가락에도 통증이 생긴다. 시간을 가로축, 환자의 건강 상태를 세로축으로 나타낸다면 그래프는 하강하는 곡선을 이룰 것이다. 의사는 그 방향을 바꾸지 못한다. 기껏해야 곡선의 기울기를 조금이나마 완만하게 하려 노력할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외과 의사가 부러워진다. 건강 문제가 생기는 족족 수술로 종양을 떼듯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속시원한 해결이 가능한 문제는 많지 않다. 의무기록에 적힌 환자의 문제 리스트는 점점 길어진다. 환자의 기록을 살피다 보면 보증 기간을 훨씬 넘긴 자동차를 함께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낡은 부품이 돌아가며 문제를 일으키는 걸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면서.

무엇보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은 환자의 믿음만큼 도움을 주고 있는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을 때이다. 오래 만날 수록 환자의 신뢰는 깊어지지만 나를 향한 신뢰가 깊어질 수록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은 잦아진다. 고혈압 약이 뇌졸중을 예방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증거는 오직 익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뿐이다. 내가 처방한 고혈압 약이 없었다면 그에게 뇌졸중이 생겼을지, 내가 처방한 약이 뇌졸중을 실제로 막아주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래된 요통이나 관절염은 어떤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운동을 권하는 것, 그리고 소염진통제와 같은 대증 처방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경험을 매일 겪으면서 무기력함과 함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했다. 연수를 떠나기 전엔 그 우울감이 꽤나 커진 상태였다.

일 년 만에 앉은 외래 진료실에선 반가운 인사가 오간다. 익숙한 이름과 얼굴을 다시 보는 나도 물론 반갑지만, 반가움의 크기는 항상 환자 쪽이 더 크다. 늘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환자가 감정을 담뿍 담은 눈빛으로 그동안의 기다림을 어색하게 고백할 때면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나도 어색한 웃음만 짓게 된다.

지난 주였다. 다음 날 진료를 미리 준비하는 중에 눈에 띄는 환자가 있었다. 당뇨병이 있는 50대 여성 환자로 내 외래를 다닌지는 다섯 해쯤 되었다. 고도비만에 가까운 체중이라 매번 체중을 줄이기로 약속했지만 지난 해까지 몸무게 수치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마지막 진료 기록엔 5kg을 줄인 것으로 적혀 있었다. 워낙 간식을 좋아하는 분이라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음 날 환자를 만나 체중을 어떻게 줄였는지 묻자 그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이 막상 가시고 나니 이제 진짜 건강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안 계시는 동안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면 안되니까요. 그래서 매일 한 시간씩 걸었지요."

환자가 진료실을 나간 뒤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지난 오 년 보다 내가 없었던 일 년이 환자에게 더 큰 변화를 준 셈이다. 주치의로서 그동안 뭘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부지불식간에 내가 그에게 끼친 영향이 생각보다 컸었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진료실에 돌아온지 한 달이 지났다. 환자를 만나는 하루하루의 일상은 이내 익숙해졌다. 그래도 무력함이나 회의감은 이전보다 줄어든 것 같다. 의사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님에도, 돌아보면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에게 지나친 바램을 가졌었단 생각도 든다. 일 년 전과 그다지 변한 건 없다. 여전히 환자와 만나는 시간은 어렵고 고민스런 순간의 연속이고, 내 결정이 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사실을 좀더 여유롭고 담담하게 받아들여 보려고 한다.

2022년 3월 27일 일요일

익숙함과 생소함

샌디에고에서 새로 계약한 집은 이층 건물 아파트의 일층이었다. 첫 며칠 간은 여기저기 생소하고 어색한 것들 투성이였다. 차고와 이어진 현관, 카페트가 깔린 방, 벽지 대신 페인트가 발린 벽, 벽난로가 있는 거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에 적응이 되었지만 화장실 안에 있는 전등 스위치는 한동안 익숙해지지 않았다. 미국 집의 화장실은 대부분 전등 스위치가 문 안쪽 내부에 있다. 물론 화장실엔 창문이 없다. 화장실에 들어가 깜깜한 벽을 더듬거리며 전등 스위치를 찾을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왜 스위치를 바깥에 만들지 않은걸까?

일 년이 지났다. 귀국 첫날 한국 집에 돌아와 화장실에 처음 갔을 때, 먼저 든 생각은 ‘왜 화장실 안에 전등 스위치가 없지?’ 였다. 무심코 화장실 안에서 스위치를 찾고있는 걸 깨닫고 헛웃음이 나왔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화장실 밖에서 스위치를 켜고 들어가는데 익숙해지기까지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우스운 것은 그 기간 동안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어색함과 불편을 느꼈다는 점이다. 평생 화장실 밖에서 미리 불을 켜고 들어갔었고, 그 순서가 바뀐 것은 겨우 일 년 뿐인데도.

미국에서 외식을 할 때야말로 한국이 그리웠다. 뉴욕이나 LA와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면 맛집을 찾긴 쉽지 않고, 진짜 맛집은 그만큼 비싸다. 차곡차곡 붙는 택스와 팁의 부담도 크다. 한국처럼 다양한 식당과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접할 수 없다. 귀국이 다가오면서 아이들과 한국에서 먹을 음식들을 손으로 꼽아가며 즐거운 상상을 했다. 식사가 끝나고 계산서를 가져다 줄 직원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일년이 지나도록 익숙해지지 않았다.

자가 격리가 끝나고 아이들과의 첫 외식은 예전 자주 가던 집 근처 양꼬치 식당이었다. 소박한 식당 내부도, 음식 맛도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반찬 좀 더 가져다 주세요, 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꼬치 추가를 시키자 서비스로 나오는 만두가, 이곳이 한국임을 실감하게 했다. 오랜만에 진정 만족스런 외식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계산서를 가져다줄 직원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카운터로 가 계산을 했다. 이 가격에 이 정도의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딸려붙는 세금도, 팁도 없이 메뉴판 가격 그대로인 영수증은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졌다.

화장실 문 밖에 있는 스위치도, 동네 허름한 맛집에서의 외식도 금새 다시 익숙해졌다. 하지만 문득문득 생소하고 다르게 느껴졌던 그 순간의 기억은 잊지 않으려 한다. 그동안 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은, 응당 그래서야 해서가 아니고 그저 익숙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걸 깨달을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