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2일 금요일

병아리 키우기

삐약이 입주 3주째.

며칠 전 아침에 머리를 감고 있는데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욕실로 뛰어들어왔다.
"탈출했어! 탈출했다구!"

아내는 처음부터 병아리를 탐탁치 않아했다. 아니, 탐탁치 않아했다기 보다 무서워 했다는게 맞겠다. 운동회 날 아이가 졸라 사오긴 했지만 곤충과 조류를 끔찍히 싫어하는 지라 병아리 곁엔 가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삐약이라고 이름붙인 병아리를 데리고 노느라 매일 신이 났다. 산책시킨다고 상자 밖에 풀어놓을 때면 깔깔거리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아이 친구들의 병아리는 며칠만에 죽었다고 했다. 추우면 죽는다길래 상자에 백열 전구를 켜두었더니 삐약이는 별 탈 없이 잘 커갔다. 똥을 얼마나 자주 싸는지 하루 한 번씩 상자 바닥의 신문지를 갈아주어야 했다. 문제는 이녀석이 하루가 다르게 너무 빠른 속도로 자란다는 것이었다. 솜털이 빠지고 날개부터 깃털이 제법 자리를 잡으면서 병아리인지 닭인지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 2주째부터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그날 아침 드디어 제 힘으로 상자를 탈출한 것이다.

탈출한 병아리는 다시 잡혀서 상자로 들어갔고, 그날 이후 상자엔 비닐 천장이 씌워졌다. 병아리 모이만 먹었을 뿐인데 2주 남짓한 기간에 부쩍 커진 녀석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병아리 때의 귀여움이 줄어든게 아쉽기도 했다. 조만간 어딘가로 보내야할 듯 싶다.

*

매주 한 번 정도 오전 진료가 없을 때면 첫째 아이와 함께 출근을 해왔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엔 집을 나서는 시간이 다소 일러졌고 어린이집 대신 학교를 들르게 되었지만 아침 풍경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와 잠깐이나마 함께 걷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같이 어린이집에 갈 때면 손을 꼭 잡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던 아이가 입학 후 두 달쯤 지나자 등교길에 이전보다 말수가 적어졌다. 같은 반 친구를 따라 앞으로 종종걸음을 쳐 뒤에서 슬금슬금 따라가야 하는 일도 잦았다. 급기야 지난 주엔 교문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서 머뭇거리더니 아빠는 이제 가라고 눈치를 준다. 그러고보니 혼자 등교하는 남자 아이들이 많다. 제딴에는 친구들은 혼자 오는데 아빠가 교문 앞까지 따라오는게 멋적었나 보다.

혼자 하려는게 또 늘었구나 싶어 기특하기도 하고 벌써 쑤욱 커버린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아이들이 크면 막상 시간이 나서 함께하려 해도 쉽지 않으니 힘들더라도 어릴 때 부대끼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데. 아이들이 커갈수록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순간이 늘어나지만 늘 변화는 갑작스레 찾아온다. 이번 주부턴 당장 작은 즐거움 하나가 없어질 것 같아 걱정이다.


2015년 5월 14일 목요일

5월 이후

"일어나봐."

어머니가 어깨를 가만히 흔드셨다. 단잠을 자던 소년은 영문을 모르고 눈을 떴다. 아직 안방에 텔레비젼이 켜져있는 모양인지 두런두런 소리가 들렸다. 수명이 다된 형광등 빛이 파르르 떨렸다.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큰일이 나부렀어야..."

어머니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걱정으로 가득해보였지만 어머니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셨다. 소년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자고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긴걸까. 1987년 겨울, 소년은 열네살이었다. 텔리비젼에선 밤늦게까지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날은 새 대통령이 선출된 날이었고, 뉴스의 내용과 어머니의 어두운 표정이 무언가 관련이 있을거라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새 대통령은 '보통 사람'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그날 이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날 밤의 일은 소년의 기억에 봉인되었다. 소년은 몇 년이 지나 성인이 되서야, '보통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날 어머니의 표정이 왜 그리 어두웠는지 알게 되었다.

80년 5월에 소년은 국민학교 1학년이었다. 탄광촌에서 약국을 하시던 아버지는 소년이 입학하던 해에 시내로 이사를 했다. 새로 이사온 집은 시의 가장 변두리였기 때문에 늘 조용한 편이었다. 5월의 그 열흘간이 어떠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휴교를 했기에 동네 친구들과 늘 하던 술래잡기나 구슬치기 같은 걸 했을 것이다. 부모님이 함부로 나다니지 않도록 주의를 주셨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저녁, 약국 앞길을 지나던 트럭에서 내린 청년들에게 아버지가 박카스 몇 박스를 주었던 것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것은 시커먼 총을 든 청년들의 비장한 표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소년이 모르고 있었지만, 그 열흘간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했다. 10년쯤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 금남로 지하도를 지나던 소년이 본 시뻘건 사진들은 그때 죽은 사람들이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시내 지하도 벽엔 비슷한 사진들이 붙었다가 떼어지길 반복했다. 그 사진 앞을 지날때면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처음 멋모르고 다가가 사진을 보고 메슥거림을 느낀 뒤로, 소년은 다신 그 사진들 가까이 가지 않았다. 80년 5월에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게된 것은 광주를 떠나 대학에 들어간 이후였다.

열네살 소년이 단잠을 깨던 날, 어머니의 불안 가득한 표정은 7년 전의 일이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7년 전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죽음을 당했고, 그날은 그 군인들이 다시 통치권을 쥐게 된 날이었다. 되돌아보면 지나친 걱정이었지만, 그 도시에서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었던 이들이라면 당연히 가질 법한 공포였다. 어머니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밤 불안은 도시 전체를 진득하게 뒤덮고 있었을 것이다.

1987년 겨울,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밤 어머니가 했던 말은 아이에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그것을 알게된 뒤로 해마다 5월이 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을 오랜 세월동안 괴롭혔을 악몽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모와 삼촌,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 모두가 그런 불안과 공포를 십수년간 느꼈을 것이란 사실은 소년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곤 했다. 아직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총성을 직접 듣지 않은 소년에게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은 그런 것이었다. 

2015년 5월 13일 수요일

진짜 문제는 가짜 백수오가 아니다.

최근 백수오 파동으로 매스컴이 뜨겁습니다. 모 회사에서 백수오 대신 이엽우피소를 제품 원료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해당사의 주가는 곤두박질하고 홈쇼핑 업체엔 환불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엔 유행이 있습니다. 홍삼이나 종합비타민 등 꾸준히 인기가 있는 스테디셀러도 있지만, 특정 제품이 갑작스레 인기를 끌었다가 또 금새 사그러들기도 합니다. 그 인기에는 대개 책이나 매스컴의 보도 등이 영향을 미칩니다. 백수오의 인기가 늘었다고 느낀 것은 1-2년 전부터였습니다. 백수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년 여성 환자들이 부쩍 많아진게 그쯤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백수오 파동의 핵심이 해당 회사가 백수오라고 믿고 구입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저버렸다는데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백수오는 확실히 효과가 있고 이엽우피소는 효과가 없을까요? 백수오는 여성 갱년기 증상 개선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백수오(cynanchum wilfordii)와 이엽우피소(cynanchum auriculatum) 이름으로 국내, 국제 학술지 데이터베이스(RISS, Pubmed, Embase, Cochrane Library)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보인 실험실 연구나 동물 연구들이 있었지만, 사람에게도 같은 효과를 보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의약품이 출시되기까지 여러 차례의 사람 대상 임상 시험을 거치고, 건강기능식품의 허가에 최소한의 임상 시험 결과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내 학술지 164건 중 해당 물질과 관련한 논문은 총 21편이었으며 이 중 19편은 실험실 연구나 동물실험 연구였고 단 2편 만이 사람을 대상으로 시행된 임상 시험이었습니다. 이중 1편은 20대 여성의 월경전증후군에 대한 것이었고, 나머지 1편이 갱년기 여성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이 연구는 2003년 한국생물공학회지에 발표되었으며, 백수오 효능에 대한 첫 임상 시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48명의 폐경기 여성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은 백수오, 속단, 마른 생강, 당귀, 대두, 해조칼슘, 아미노산, 다양한 종류의 비타민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복합추출물을, 다른 그룹에게는 가짜약을 투여했습니다. 3개월 뒤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을 섭취한 그룹은 58.3%가 폐경 증상 호전을 보인 데 비해 대조 그룹은 21.7%만 증상 호전을 나타내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이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국제 학술지로 검색된 논문 중 백수오는 20편, 이엽우피소는 42편이었습니다.(이엽우피소의 효과에 대한 연구가 오히려 더 많습니다.)

이중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2012년 Phytotherapy Research에 발표된 논문이 유일합니다. 64명의 폐경기 여성을 둘로 나누어 각각 백수오, 당귀, 속단의 3가지 혼합물인 에스트로지-100(EstroG-100)와 가짜약을 12주간 복용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에스트로지-100 그룹은 가짜약을 복용한 그룹에 비해 폐경기 증상이 유의하게 개선되었습니다.

이들 연구는 N사가 백수오 제품의 건강기능식품 허가를 받고 백수오의 효과를 홍보할 때 활용해온 연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연구 모두 연구 대상자 수가 적어 이 결과를 일반화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효과를 보인 성분이 백수오인지, 백수오와 함께 투여된 기타 성분 중 하나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다른 문제는 두 연구 모두 N사의 지원으로 이루어졌거나 이 회사의 대표가 공동 저자로 포함된 연구라는 것입니다. 의학 연구에서 이해관계(conflict of interest)는 연구의 신뢰성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 현재까지 백수오와 갱년기 여성에 대한 연구는 2편에 불과합니다. 
- 두 연구 모두 연구대상자 수가 작아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 두 연구 모두 백수오를 단독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갱년기 증상 완화에 백수오가 도움이 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 두 연구 모두 백수오 제조 회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었습니다.

이번 논란으로 진짜 백수오의 인기가 더 높아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백수오나 이엽우피소나 그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저마다의 속도



아이는 본래부터 물을 무서워했다.


머리를 감을 때면 얼굴에 물이 흐르지 않을까 걱정하며 주먹을 꼭 쥐고 온몸에 힘을 주었다. 친구들과 욕조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도 물이 눈에 들어갔다고 자주 울음을 터뜨렸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워터파크에서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물에 몸도 제대로 못 담그고 나올 때면 괜히 아이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커가면서 예전처럼 욕조에서 울음을 터뜨리진 않고 유아용 풀에선 제법 놀 줄도 알게 되었지만, 가슴 깊이 정도의 풀 앞에선 늘 잔뜩 긴장을 했다.

따뜻한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한 것은 마침 아내가 잠깐 일을 쉴 수 있게 되어서였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와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 학부형이 되는 부모들이 으레 그렇겠지만, 우리도 앞으로 경험할 일들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되면 달라져야 한다고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는 통에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를 탄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난번엔 첫 날 리조트 수영장에 들어가지도 않겠다고 하던 아이가 막상 좀 적응이 되어 놀 만한 상태가 된 건 떠나기 전날이었다. 이제 좀 더 컸으니 작년보단 더 금방 적응해 놀거라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아이는 물에 이전보다 빨리 친숙해졌다. 둘째 날이 되자 허리 깊이 키즈풀 안을 뛰어다녔다. 조금이라도 깊어보이는 곳엔 가까이 가지도 않았지만.

리조트 풀 가까이엔 해변이 있었고, 산호 바다 특성상 얕고 잔잔했다. 물이 맑아 바깥에서도 다리 옆을 헤엄치는 열대어들을 볼 수 있었다. 물고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신나할 것 같아 풀로 돌아와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 저기 옆에 바다에서 놀지 않을래? 

잠깐 망설이던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 저기 깊지도 않고 물고기도 많아. 

- 싫어. 난 여기서 놀래. 

어르고 달래기를 몇 차례 했지만 아이는 고집을 부렸다. 순간 열이 확 올랐다. 몇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 겨우 아이들 풀에서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아빠가 이렇게 여러번 이야기하면 좀 들어야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아이는 풀이 죽어 걸음을 옮겼다. 손을 붙잡고 바닷물에 들어와선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며 깊이를 확인하더니 안심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변 얕은 바다엔 스노클링을 즐기는 아이들이 많았다. 내친김에 이번 기회에 우리 아이에게도 가르쳐보기로 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오는 길에 어느 아빠와 아이가 눈에 띄었다. 남자 아이가 우리 아이 또래여서 눈길이 갔나보다. 아빠가 아이를 물 위에 눕히려는 듯 했다. 물에 뜨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이리라. 

여기 이렇게 누워봐. 
아빠한테 매달리지 말고. 아빠가 잡아준다니까. 
괜찮으니까 한 번만 해보라고. 

점점 커져가는 남자의 목소리엔 답답함과 짜증이 묻어있었고, 표정에선 아이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느껴졌다. 오늘 아이가 물에 뜨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일까. 그는 그순간 너무 앞서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아이가 겁에 질려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사람은 그 애의 아빠 뿐이었다. 

그날 아이에게 스노클링을 가르치는 것은 포기했다. 아이는 스노클링 대신 물안경을 쓴 채 코를 붙잡고 얼굴을 물에 담그어 물고기들을 보길 반복하며 한참을 놀았다. 겨우 몇 초쯤 수면 아래에 머물 뿐이었지만 아이는 잠수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 봤어? 봤어? 저 물고기 말이야. 아이가 얼굴을 스스로 물에 담그며 노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노클링은 언젠가 때가 되면 배우게 될 것이다. 아이가 저만의 속도로 천천히 커가고 있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내가 해야할 일은 아이의 옆에서 얼굴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함께 들어주는 것. 때론 너무 앞서가서 아이의 부름을 듣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 

늦었지만 입학 축하해 아들.




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목욕 봉사

목욕을 마치고 나온 할머님의 젖은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말려드리고 조심조심 빗질을 한 뒤 무릎을 굽혀 눈을 맞춘다.
"이쁘시네요."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눈매가 가늘어지며 새초롬하게 웃는다.
"이쁘다고 해준께 좋네."

"할머니, 우리 같이 사진 찍어요."
손녀 뻘의 우리 병원 직원들이 양쪽에 착 앵겨붙는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할머니 얼굴도, 조금 전까지 그분 몸을 밀어드리던 직원들 얼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힌채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잠깐만, 내가 요 마후라 목에다 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겉옷 색깔과 맞춘 분홍색 머플러를 주섬주섬 챙겨 목에 두르신다.
"어르신, 멋쟁이시네요."
"그럼, 내가 얼마나 팻숀에 신경을 쓰는디."
할머님들도 천상 여자이시다.

일흔 여덟 김복례 할머님은 관절염으로 보행기에 기대 걷는다. 욕실에서 나올 때도 행여 넘어지시기라도 할까 싶어 부축을 해야 했다. 머리를 말려드리겠다니 극구 사양을 하다 못이기는 척 의자에 앉으신다.
"어르신도 혼자 사세요?"
복지관에 목욕 봉사를 받으러 오는 할머님들은 대부분 독거 상태이다. 수십번 들은 질문이었을텐데, 목욕 후 노곤한 마음에 '혼자'란 단어가 갑작스레 사무치게 들리셨을까. 하던 말씀을 뚝 끊고 고개만 주억거리신다. 지난 주에 동네 미장원에서 했다는 빠마머리에 물기가 사라지는데 유난히 오래 걸리는 듯 느껴졌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할머님들께 병원 봉사단 소식지에 실을 글을 한마디씩 부탁드렸다. 백지 한 장이 돌아가고, 할머님들은 모나미 볼펜을 꼭 붙잡고 시험 답안이라도 작성하듯 정성스레 쓰신다. 종이가 얼추 한 바퀴 돌았을 때쯤, 한 분이 종이를 들고 다가오셨다.
"여그다 내 이름 좀 써 주시요잉. 박월순이요."
가져오신 종이를 보니 정중한 감사 인사를 쓰신 분도 있었지만 몇 분은 본인 이름만 겨우 적기도 하셨다. 할머님은 다른 분들 이름 아래 빈 곳을 가리키며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글을 못쓰요. 그래도 감사 편지에 내 이름은 꼭 넣어야것기에..."
삐뚤빼뚤한 할머님들의 글씨 사이에 쓰인 멀끔한 글씨체가 어색하다. 채워넣은 자신의 이름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려는 듯 찬찬히 쳐다보던 할머님은 만족한 표정으로 종이를 건네주시며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허리를 굽히셨다.
"복 받으시요잉."


2015년 1월 20일 화요일

환자의 마음, 부모의 마음

- 마포 사무실 이사.

"새로 옮기신 사무실은 맘에 드세요?"
당뇨병으로 세 번째 진료를 받는 50대 환자였다. 사람좋은 웃음을 띄고있던 표정이 더 한껏 밝아지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나이 들어 변화가 생긴다는게 쉽지 않네요."

- 남편 위암 수술.

"남편분 건강은 어떠세요?"
여느 때처럼 고혈압 약 처방을 받고 일어서던 참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내 환자가 아니었지만 지난번에 남편의 암 진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터였다. 눈빛에 울듯 말듯한 기운이 스친다.
"이제 많이 안정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 부서 이동. 스트레스.

"새 부서에 적응하느라 힘들진 않으세요?"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생각해서인지 환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패션 업체의 과장이었다. 심장병에 대한 불안이 많은 편이었고 오늘도 진료 중에 걱정을 내비친 뒤였지만, 질문에 대답하는 그의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았다.
"이쪽 일이 그렇죠. 3D 업종입니다."

환자에 대해 기록할 때 병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을 종종 적어둔다. 사람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는데 소질이 없는 편이라 환자를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까싶어 적는 것이다.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주치의가 나에 대해 잘 알고있길 바라는 환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다른 방법으로나마 채우고자 하는 얄팍한 바램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런 기록을 적절히 활용하는 순간 진료실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진다. 환자는 종종 약간의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하는데, 그 순간 나에 대한 신뢰도 게이지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차트에 짧게 기록된 내용 중엔 가족이 병에 걸렸거나 직장을 옮겼다거나 하는 큰 변화도 있지만, 악기 연습을 시작했다거나 강아지를 새로 키운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들도 있다. 효과는 사소한 일들에서 더 크게 발휘된다. 의학적으로도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가 치료 효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론 기억하지 못하면서 기억하는 척 하며 환자의 마음을 받는 것이 꼼수를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땐 환자의 치료에도 도움이 될거라 합리화 해본다.

환자가 꺼내는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대개는 알고 있었던 것처럼 슬쩍 넘어가지만 눈치빠른 환자의 경우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는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그 이면에는 그저 수많은 환자 중의 하나에 그치지 않고 내게 보다 특별한 환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속내를 넌지시 비출 때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지상정인 것을.

*

둘째는 갓난아기 때부터 울음이 많은 아이였다. 한번 울음보가 터지면 쉽게 그치지 않았다. 예민하기도 해서 밤에 자주 깨 엄마 아빠의 수면 사이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낮잠을 재울 때에 잠든 아이를 조심조심 눕히면 등이 땅에 닿는 순간 자지러지게 울어서 다시 안아야 잠이 들곤 했다.

8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을 보내야하는 상황이 되면서 까탈스런 아이를 선생님께서 어떻게 감당하실까 걱정이 많았다. 매일 등원을 시킬 때마다 교실이 떠나가라 울었고 중간중간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독 자주 보채 첫 선생님이 애를 먹었다.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아이는 조금씩 어린이집에 익숙해졌다.

해가 바뀌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던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두돌이 지나고 말문이 트이면서 늘어난 떼와 고집에 아이와 실랑이를 해야하는 일이 잦았지만, 선생님은 늘 아이를 귀여워해주었다. 어린이집 수첩엔 매일 그날 찍은 아이 사진과 함께 아이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가 꼼꼼히 적혀있었다. 저녁에 아이의 어린이집 수첩을 펼쳐보는 것은 우리 부부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했던 말과 행동을 읽고 가끔은 놀라기도 했고, 그럴 때면 우리 아이가 특별할지도 모른다는 팔불출같은 기대도 했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얼마 전, 여느 때처럼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열었는데 수첩이 2개 들어있었다. 다른 아이의 수첩이 함께 딸려온 것이었다. 선생님이 다른 아이에게 어떤 이야길 적어주셨는지 궁금했다. 다른 아이의 사적인 부분을 엿보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결국 조심스레 몇 장을 흝어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수첩의 내용은 우리 아이 것과 대동소이했고, 복사한 것과 같은 문장도 군데군데 있었다.
- 오늘 그림 그리기 활동을 했는데 너무 잘그려서 깜짝 놀랐어요.
- OO이는 피카소가 되려나봐요.

선생님이 아이들을 똑같이 대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선은 안도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선생님에게 있어 우리 아이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 살짝 아쉽기도 했다. 부모의 못난 욕심이겠지만 어쩌겠는가. 인지상정인 것을. 내 진료실을 찾는 환자의 마음도 이와 비슷한게 아닌가 싶다.


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벌써 일 년

"3월로 시계를 돌린다면 어떤 과목을 열심히 하고 싶은가요? 이 질문에 상위권 학생들은 수학, 영어, 탐구 순을, 중위권 학생들은 영어, 수학, 탐구 순을 선택했습니다."
수능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곱창집 기름내 섞인 연기 사이로 보이는 티비 화면의 뉴스에선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그래픽을 써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기자는 곱창집의 시끌거림을 이겨내기라도 하겠다는 듯한 말투로 수학, 영어, 탐구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우스웠다. 아홉시 뉴스 꼭지로 이런 내용이라니. 의미없는 질문과 답이 전파를 낭비하는 동안, 내일 하루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될거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지난 일 년의 시간을 어떻게 떠올리게 될까를 잠시 생각했다. 

곱창집을 나서는데 바람이 옷깃 사이를 매섭게 파고들었다. 올해도 수능 한파라고 했다. 며칠 새에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
매년 이 시기가 되면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진료실도 바빠진다. 다음날 방문할 이들의 작년 검사 결과를 미리 검토하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이름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지난번 그와 상담을 했던 때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난 것이다. 설마 그 사람일까. 동명이인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차트를 열어보지만 대부분 기대를 벗어나고 만다. 요즘 그런 일이 부쩍 늘었다.

그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룬 것 없이 또 한 해가 훌쩍 지나버렸다는 것. 연초에 다짐했으나 행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곤 스스로의 모자란 실천력에 좌절감을 느끼며 이제라도 무언가 해야하지 않나 하는 마음에 괜히 조급해지기도 한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의미있고 멋지게 시간을 소비하며 발전해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과 SNS에 가득한, 반짝반짝 빛나보이는 그들의 스토리를 접할 때면 괜한 질투심이 일기도 하고 그에 비해 해야할 일들만 허덕허덕 반복해온 내 지난 일 년의 시간은 밋밋하고 비루하게 느껴졌다. 

벌써 일 년이 되었네요. 
그러게요. 시간이 참 빠르지요. 

진료실에서 인사를 나누고 검사 결과를 설명하기 전에 멋적은 듯 허허 웃는 그를 보며, 그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것을 느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일요일, 아이의 두 번째 국기원 심사였다. 작년에 한번 경험을 했다해도 역시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국기원에 모인 많은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다. 1품 심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아이는 도장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대기석에 먼저 도착해서 2품 심사 대상인 자기 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장내 방송을 통해 아이의 번호가 속한 조가 불리고,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달리 한껏 굳어있던 얼굴은 품새와 겨루기, 격파까지 그럴듯하게 해내고 나서야 다시 환해졌다.

그날 밤 휴대폰으로 찍은 심사 동영상을 정리하다 일 년 전 이맘 때의 1품 심사 영상을 발견했다. 일 년 전의 영상 안에선 지금보다 한 뼘은 작아보이는 아이가 어설프게 주먹을 지르고 발차기를 했다. 그에 비해 오늘 찍은 영상 속 발차기의 매서움은 차원이 달랐다. 어느 새 이렇게 컸었나.

앞차기와 얼굴 막기, 그리고 몸통 지르기. 입술을 꼭 다문 아이의 절도있는 동작을 되풀이해 돌려보며 엉뚱하게도 나는 내 지난 일 년의 시간을 떠올렸고, 비루했던 그 시간에 대해 관대해짐을 느꼈다.

하루하루 해야할 일들을 하는 동안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들이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변화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지만 그 변화를 느끼기는 어렵고, 작은 변화는 흔히 대단찮은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인생은 중요한 시험에서 성공을 거두거나 훌륭한 성과를 내는 것과 같은 끝내주는 경험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작은 변화들을 관찰하고, 스스로가 이룬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감탄해주는 것이다.
퍽퍽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니까.



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나이 든다는 것

- 이젠 수영을 하지 않아요.

당뇨병이 있었지만 운동으로 조절을 잘 하는 50대 여자 환자였다. 수영은 그녀가 십여년째 꾸준히 하던 운동이었다. 잠깐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전 수영을 잘했어요. 수영 클럽에서 여자 회원들 중에 저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제가 뒤쳐지기 시작하는거에요. 예전만큼 속도를 내기 힘들고 숨도 차고... 다른 젊은 회원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나이가 들은거죠. 근데 그게 싫었어요.

누구나 나이를 똑같이 먹지만 나이듦의 방식은 제각각 다르다. 

모두가 그 과정에서 소쩍새의 울음 소리와 천둥 먹구름을 뒤로 하고 거울 앞에 선 중년의 여성을 떠올리는 시인처럼 평온함과 성찰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종종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둘 잃어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흰머리는 늘어나고 머리칼은 더 듬성듬성해지는 것, 책의 작은 활자가 이전만큼 또렷이 보이지 않게되는 것, 가까운 사람의 이름이 문득 생각나질 않는 것, 이전보다 더 자주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가야하는 것, 짧은 계단을 오를 때도 무릎이 뻐근해지는 것, 피부가 쉽게 말라서 가려움증이 생기는 것, 잇몸이 퇴축되고 잇새가 떠서 치솔질을 더 꼼꼼히 해야하는 것, 가슴이 처지고 폐경을 겪는 것, 발기했던 성기가 결정적인 순간에 사그라들어 버리는 것, 그런 경험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소설 '은교'에서 칠십대의 시인 이적요는 삼십대 제자의 젊음을 질투하고 열일곱 소녀의 젊음을 욕망한다. 그는 늙는다는 것의 추함을 서러워하며 항변하듯 이야기했다.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

누구나 나이를 똑같이 먹지만 나이듦의 방식은 제각각 다르다. 

내가 나이 먹었음을 진정으로 실감한 순간은 이전과 같이 노래부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음역이 높은 편이라 대개 테너 파트를 맡았고 즐겨 부르는 곡들도 그런 노래들이었다. 제작년이었나, 아주 오랜만에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었는데 이전처럼 고음을 낼 수 없었다. 목에 잠깐 문제가 생긴건가 싶었지만 그 뒤로도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내 음역에서 몇 개의 콩나물 대가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상실감은 꽤 컸다. 수백 번은 불렀음직한 노래들은 그 이후로 예전의 그 노래가 아니었고, 콩나물 대가리 일부가 사라진 세상은 내게 더이상 이전과 같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게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거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 사람이 내게 가까운 존재라면 내 특별한 상실감을 알아주지 않음에 조금은 서운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상실의 지점과 정도는 제각각인 것이다. 그에게는 그만의 콩나물 대가리가 있을 것이고 그가 내 콩나물 대가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그의 콩나물 대가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콩나물 대가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콩나물 대가리를 그리워하지만 그 상실에 그럭저럭 익숙해지며 살아가고, 그것이 어려워질 때 가끔은 병원을 찾기도 한다. 그녀에게 수영은 나의 콩나물 대가리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고, 내가 그런 것처럼 그녀도 그럭저럭 잘 적응해갈 것이다.

수영을 앞으로도 안할거냐는 질문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네, 당분간은요. 대신 이젠 등산을 다녀요.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맥가이버 아저씨

맥가이버 아저씨라 불리는 분이 우리 동네에 계시다는 걸 알게된 건 얼마 전이었다.

어느 집에서 고장난 전자기기를 봐달라 출장 요청을 했는데, 오신김에 그 기기 뿐 아니라 고장난 전등, 망가진 주방용품까지 그동안 애먹이던 것들을 모두 말끔히 고쳐주셨단다. 그 집 엄마는 놀라운 경험을 아파트 맘카페에 공유했고, 그 글을 본 다른 집 엄마들이 하나둘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그는 맥가이버 아저씨로 불리게 되었다.
아파트가 6, 7년쯤 되면 비치된 집기들이 말썽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브랜드 제품이라면 해당 회사에 유상 수리를 요청하겠지만, 아파트의 집기들은 요청을 해도 함흥차사에 수리를 의뢰할 다른 곳도 마땅치않은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전파사가 있었지만 요즘이야 어디 찾기가 쉬운가.
이사를 앞두고 삐걱이는 침대를 어떻게 처리할까 아내와 상의를 하는데 아내가 그 맥가이버 아저씨를 불러보자 한다. 이런 것도 고쳐주실까 싶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전화를 했다. 삐걱이는 침대와 알미늄 관절에 문제가 생긴 스탠딩 조명, 서랍 하나가 닫히지 않는 아이방 서랍장 수리를 요청했는데 흔쾌히 와서 봐주시겠다고 한다.

"아이 아빠가 얼굴은 동안인데 머리는 나만큼 허옇네요. 이래도 되는건가? 허허." 60대쯤으로 보이는 사람 좋은 인상의 아저씨는 공구 가방을 들고 농담을 건네며 들어오셨다. 삐걱이는 침대를 이리저리 돌아보며 소리가 나는 부분을 확인하고, 매트리스를 치운 뒤 프레임을 살펴보던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레임을 연결하는 쇠가 헐거워져서 마찰이 생긴거네요. 집에 바셀린 있나요?"

기름이나 구리스(물론 그런건 우리집엔 없었지만)도 아니고 바셀린이라니. 갑자기 빰빰빰빰빰빰빰 빰 빰빠빰~ 맥가이버의 테마 음악을 배경으로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로 시작하는 리차드 딘 앤더슨의 대사가 배한성씨 음성으로 들리는 듯 했다.
프레임 연결부위에 바셀린이 쓱쓱 칠해진 침대는 언제 삐걱였나 싶게 조용해졌다. 60대 맥가이버가 침대에 이어 스탠딩 조명과 서랍장을 수리하는 동안 나는 그의 우아한 손놀림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에게서는 약간의 금속 냄새와 묵은 먼지 냄새가 났고, 손톱 밑엔 기름때가 끼어있었다. 의뢰했던 임무가 끝난 뒤 비타500 한 병을 드린 것은 순수한 경의의 표시였다. 거실에 나와 짧은 대화를 하며 한쪽 구석에 놓인 턴테이블을 본 맥가이버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한 번 틀어봐요."

언뜻 그의 눈빛이 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턴테이블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때때로 오른쪽 스피커 소리가 죽곤 했는데, 턴테이블의 스피커 출력 부분에 접촉 문제가 생긴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던 차였다. 증상을 들은 맥가이버는 스피커 출력 선이 아닌 턴테이블 바늘을 암에서 분리한 뒤 말했다. "신문지 있나요?"

이번엔 신문지다. 나는 그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잘 훈련된 강아지처럼 주방 수납장에 접혀있던 신문지를 얼른 가져왔고, 맥가이버는 바늘의 분리된 면을 그 신문 지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접촉 문제는 대부분 여기서 생겨요. 신문지에는 기름 성분이 있어서 접촉 부위 때정도는 다 벗겨주죠." 신문지로 몇 번 문지른 턴테이블 바늘을 다시 끼웠을 때, 난 양쪽 스피커가 문제없이 작동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바늘을 분리해 꼼꼼히 살펴보고는 핀셋으로 바늘의 위치를 조심스럽게 바로잡았다.(물론 도구가 된 속눈썹 핀셋은 현장에서 조달했다.) 바늘을 끼우고 암을 조정해 수평을 맞추는 그의 손길은 마치 애인을 쓰다듬듯 부드러웠다.

"좋은 제품이에요. 이때만 해도 일본 제품들이 최고였죠. 제대로 만들었으니까."

테크닉스 SL1900 모델에 대한 맥가이버의 평이었다. 턴테이블에 올려진 Enya의 LP 한 면이 끝까지 도는 동안 나는 그에게 턴테이블의 원리와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또한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 전파사 앞에 버려진 흑백 텔리비젼을 집에 가져와 고치곤 했고, 진공관 앰프와 튜너에 빠져 몇 달치 월급과 새 기기를 바꾸곤 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전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버려진 앰프(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델인)를 주워 수리했는데 멀쩡히 소리가 잘 나더라며, 마누라는 또 애물단지를 가져왔다고 타박을 하지만 오늘은 카세트 데크를 수리해야겠다며 말할 때는 재미난 장난감 포장을 막 뜯은 소년처럼 조금은 들떠 있었다.

그 순간 그가 참 행복해 보였다.

지금 그는 30년째 같은 곳에서 전파사를 하고 있다. 언젠가 퇴근길에 한번쯤 그의 작업대를 구경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맥가이버 아저씨의 짧은 강의 흔적.


2014년 9월 6일 토요일

시간

컴퓨터 촬영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안좋았다.

대장의 커다란 종양은 단층 이미지에서도 뚜렷하게 눈에 띄었고 복강 내에 다발성 림프절 전이가 있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의 촬영 결과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폐에도 전이가 의심되는 소견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다시 정밀 검사가 필요하겠지만, 복강 내 상태를 볼 때 십중팔구는 폐 전이일 것이다.

대장암이 다른 장기에 원격 전이 되었을 때 5년 생존율은 일반적으로 20% 미만. 불안한 표정으로 앞에 앉아있는 이 40대 여성을 5년 뒤에도 볼 수 있는 확률이 20%가 채 안된다는 뜻이었다. 부인과 검사 결과를 흝어보았다. 자녀는 2명. 5년 뒤면 아이들이 몇 살이 될까. 아마 성인은 아닐 것이다.

  검사 결과가 좋지 않네요.

잠깐의 침묵. 그리고 검사 결과와 앞으로의 대략적인 과정을 조목조목 알려주었다. 환자는 외과에 입원을 하게 될 것이고, 몇 가지 검사 후에 치료 방침이 결정될 것이다. 수술로 어느 정도 절제가 가능한 상태라면 생존율은 꽤 높아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좋은 예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떤 상태이든 항암 요법은 필수일 것이다.

  완치는 가능한 건가요.

지금은 치료 결과에 대해 확실한 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일단 외과에서 정밀 검사를 해봐야 좀더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수술을 하면 괜찮은 거겠지요?

애가 타는 표정으로 앞에 앉은 낮선 의사로부터 무언가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기대하며 떨리는 말투로 되풀이해 묻는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갑작스런 결과에 힘드실걸로 알아요. 앞으로 저희 의료진이 치료에 최선을 다할겁니다. 최대한 빨리 치료를 받으실 수 있도록 해드릴거에요.

황망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가는 환자를 보며 생각했다. 그녀의 일생에 있어 가장 충격적일 수도 있었던 대화를 나눈 시간은 십오분 남짓. 앞으로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

오전 진료를 끝내고 연구실에서 밀린 잡무를 하는데 문자메세지 알람이 울렸다. 오랜 친구 P의 문자다.

그는 기숙사 생활을 함께 했던 대학 친구였다. 전공은 달랐지만 일년간은 함께 살았었고, 대학 시절엔 꽤 친한 사이였다. 종종 밤을 새워 함께 술을 마시는게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그가 오랜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졸업을 할 무렵이었다. 자가면역질환이었는데 최종적으로 밝혀진 진단은 그 중에서도 질이 좋지 않은 종류였다. 그 계통의 병이라는게 원래 전신에 시도때도 없이 다양한 증상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는 자주 아파했고, 늘 약을 먹었고, 평생 그런 상태를 안고 살아야할지 모른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쾌활한 편이었다.

졸업 후엔 한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몇 년이 지나 뜬금없이 그가 연락을 해왔고, 그날 우리는 이전처럼 또 밤을 새워 술을 마셨다. 앞으로는 자주 좀 보자고 다짐했지만 그날 이후에도 일년에 고작 한두차례 보는게 전부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 사이의 관계란게 그렇다. 가끔 잊을만할 때 쯤이면 그에게 전화가 왔고, 약속을 정해 얼굴을 보곤 했다. 그러고보니 최근 몇 년간 내가 먼저 연락은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요즘 몸은 좀 어때?

  좋진 않아. 뭐 늘 그렇지. 그 병이 낫는게 아니잖아.

  난 이번 달엔 좀 바쁜데. 다음 달에나 시간이 날 것 같네. 넌 스케줄이 어때?

  난 요즘 아무때나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고 너 편할 때로 해.

  어쩐 일로 그리 한가하셔?

  요즘은 바쁘게 살면 뭐하나 싶네. 허무하기도 하고. 몸이 아파서 그런가.

짧은 문자였지만 어째 느낌이 이상했다. 병세가 많이 심해진건가. 그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왔기에 가끔씩 그가 본인의 검사 결과나 질병 상태에 대해 궁금해할 때는 전자 차트의 기록을 확인하고 다시 설명해주곤 했다. 내가 담당 의사는 아니었지만, 대학병원의 외래 진료 시간은 환자 입장에선 늘 부족하기 마련이니까.

차트를 열어 P의 최근 진료 기록을 살펴보았다. 원래 앓고있던 병의 상태는 이전보단 나빴지만 예상할 수 있는 정도였다. 괜한 걱정이었나. 조금 더 과거의 기록을 보기 위해 마우스의 스크롤을 내렸다. 늘 진료받는 류마티스내과 외에 소화기내과 진료 기록이 눈에 띄었다. 진료 시기는 몇 개월 전이었는데, 진단명을 보고 가슴이 덜컥했다.

HCC (Hepatocellular Carcinoma). 간암이었다. 이미 진단 후 한 차례 고주파열치료를 받은 상태였다. 그러고보니 그가 간염 보유자였던게 생각났다.

  그런 거였구나.

그가 보낸 짧은 문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자신이 건강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병이 조금씩 조금씩 진행하는 걸 느끼면서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견뎌왔는데, 지금 이런 소식을 알게 된다는 건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지.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아이 둘의 아빠이고, 내 기억이 맞다면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다. 몇 년 전 봤던 그의 아내와 아이들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에게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생의 남은 시간은 몇 년이나 될까.

문득 내가 앞으로 P를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캘린더를 열어 앞으로의 일정을 확인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예정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메일을 보낼 참이었다. 굳이 기존에 잡힌 일정을 취소하려 한 것이 그동안 내가 먼저 연락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아님 몇 년이 지난 후에 지금보다 더할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려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다음 월요일 저녁의 몇 시간이 나보다는 그에게 훨씬 더 의미있는 순간이 되리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