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9일 수요일

걱정과 불안이 병원을 찾게 한다.

50대 여성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건강 검진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왔다.

건강 검진을 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요즈음은 특별히 불편한 곳이 없어도 1-2년에 한번씩 때가 되면 건강 검진을 챙겨 받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개는 역시 건강 검진을 위해 병원을 방문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최근 위경련이 자주 있어 걱정임.’ 

미리 흝어본 환자 관련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일상적인 질문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이번에 건강 검진 받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불안한 표정의 그녀가 마주앉은 의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다짜고짜 묻는다. 
“위 조직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어떤가요?”
"위에 염증이 있어서 확인차 조직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도 뭔가 찜찜한 표정인 그녀에게 한마디 더 덧붙였다.
"전체적인 결과도 괜찮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들으시면 되요."
그제서야 그녀의 굳어있던 얼굴이 좀 부드러워지고, 본인도 어색함을 느꼈는지 멋쩍게 웃는다.
"검사 받고 불안해서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잤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그녀의 아버지는 위암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그녀 역시 젊어서부터 조금만 신경을 쓰면 소화가 안되곤 했다. 그럴 때면 명치 아래에 돌덩이가 놓여있는 느낌이었다. 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며 대개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럴 때면 꼭 꾀병 환자 취급을 받은 듯해 기분이 상하기 일쑤였다. 용하다는 한의원에서는 비위가 약한 체질이라고 했다. 이곳 저곳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먹었지만 그때 뿐, 시간이 지나면 명치 끝의 돌덩이는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남편은 소화불량을 달고 사는 아내를 보고 예민한 그녀의 성격 탓이라 했다. 결혼 초기와는 달리 그녀의 증상에 심드렁하거나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는 남편에게 종종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녀 자신도 스스로의 성격이 문제겠거니 생각했다. 아버지의 병명을 알게 된 이후로 증상은 더 심해졌고, 이전보다 더 걱정이 되었음에도 한편으론 겁이 나기도 해서 부러 병원을 찾지 않았다. 

위에 무언가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고교 동창의 병문안을 다녀온 날 밤이었다. 명치 끝이 뒤틀리는 통증에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깼고, 결국 구급차를 불러 근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수액과 진경제를 맞고 통증이 가라앉았지만 그날 밤의 경험으로 그녀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응급실 의사는 스트레스로 인한 위경련이라고 했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몸이니 자신의 위에도 암세포가 자라고 있을 것 같았다. 결국 큰맘 먹고 종합 검진을 신청했다. 위내시경 검사가 끝나고 조직검사를 했다는 설명을 듣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에는 불편한 증상이 생겼을 때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만나야할 사람도 많고 보고 들어야 할 매체도 많은 요즘에는 병원을 찾는 이유가 꼭 특정 증상 때문만은 아니다. 증상보다 걱정과 불안 때문에 외래 진료실을 방문하거나 건강 검진을 신청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불안을 키우는 것이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건강 문제일 때도 있고 대중 매체의 잘못된 정보일 때도 있다. 

물론 그녀처럼 원래 있던 증상이 걱정과 불안 때문에 더 심해지기도 한다. 위경련은 위장이 과도하게 수축해서 명치 끝을 비트는 통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위장의 본래 운동 기능이 어그러져서 생기는 증상이다. 우리가 모르는 와중에도 위장은 자율신경의 명령을 받아 열심히 소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걱정과 불안으로 신경 계통의 명령 체계가 흐트러지면 위장도 제대로 운동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종종 위경련이나 기능성 위장장애, 과민성 장질환과 같은 흔한 질환으로 나타난다. 

위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체 장기의 기능성 질환은 대부분 걱정과 불안으로 인해 악화된다. 긴장성 두통, 어지럼증, 근막통, 불면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암과 같은 위중한 질환은 치료가 가능한 초기엔 대개 증상이 없어 병원을 찾지 않는다. 반면에 기능성 질환은 위중하진 않지만 오히려 환자 입장에선 때론 죽을만큼 괴로운 병이기에 병원을 찾는 훨씬 흔한 원인이 되곤 한다.

전반적인 컨디션이 나아지면 밀물에 암초가 잠기듯 증상은 수면 밑으로 자연스레 가라앉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능성 질환의 경우 증상 자체를 없애려 애를 쓰기보다 스스로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과로를 피하고 운동을 통해 체력을 늘리는, 어찌 보면 뻔한 방법이 다양한 기능성 질환의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4년 4월 4일 금요일

아버지의 전화

휴대폰에 아버지의 전화번호가 뜨면 설핏 긴장하게 된다. 아버지가 먼저 전화 하시는 일은 일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고, 뭔가 특별한 용건이나 부탁이 있을 때 뿐이다.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는 어색하다. 기껏해야 1-2분 남짓한 대화도 중간에 끊기기 일쑤이다. 뜨뜻미지근한 안부 인사 뒤에 본론이 불쑥 튀어나오고 용건에 관한 대화가 끝나면 성급하게 마무리되는 식이다. 아버지와 다 큰 아들 사이는 다 그런거라고, 시시콜콜 무슨 말이 필요있냐고 하지만 몇년 전까지 내게 그 말의 속뜻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에 더 가까웠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는 그저 어머니와 우리들 곁에 무심코 서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문득 문득 아버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됨을 깨닫는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더 많아지거나 아버지를 더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물이 흐르듯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일이다. 내가 처음 서게 된 자리에 이미 아버지의 발자국이 수없이 찍혀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내가 처음 알게된 것들 역시 이전에 아버지가 수없이 고민했던 것이란 걸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불혹이 넘은 나이이지만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갈팡질팡 할 뿐인데, 아버지처럼 삼십년을 더 살면 세상의 이치를 더 깨닫게 될지는 모르겠다. 단지 내가 당신의 뒤를 잘 따라가고 있다고, 십년 전보다 당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더 늦기 전에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내가 아버지를 이전보다 더 많이 이해하는 것처럼,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벌써 다 알고계실 것 같지만.

2014년 4월 3일 목요일

고백

- 왼쪽 눈꺼풀이 자주 떨려요.

- 주로 언제 그러세요?

- 피곤하거나 신경 많이 쓸 때 더 그런 것 같아요.

- 저도 종종 그래요. 눈꺼풀 떨림증이라고 하는데... $%#!&...

진료실을 찾는 이들은 다양한 증상을 이야기하지만 그 증상들이 모두 큰 병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또 막상 증상으로 인한 불편함보다 큰 병에 대한 걱정으로 의사를 찾는 경우도 흔하다.

증상 자체보다 걱정과 불안때문에 여러 병원을 전전하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환자를 볼 때면,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영화 제목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증상에 대해 공감하고 중풍이나 암과 같은 큰 병이 아니라는 것을 잘 이해시키는 것이 곧 치료가 된다.

설명할 시간이 충분치 않을 때 내가 종종 쓰는 방법은 스스로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가 되는 것이다.(물론 상당수의 증상은 실제 경험이기도 하다.) 한참 걱정스런 얼굴로 스스로의 증상을 설명하던 그는 앞에 있는 의사도 같은 증상이 있다는 고백에 한결 편안한 표정이 되곤 한다.

이번 주만 해도 진료실에서 눈꺼풀 떨림증, 수족 냉증, 손발 저림, 흉통 환자임을 고백했다. 때론 그 고백이 내가 처방한 진통제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앞으로도 고백은 계속될 예정이다.

그나저나 그 어떤 증상보다 더 확신을 가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고백하며 환자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증상은 역시 건망증이다. 가끔은 환자와 누구의 건망증이 더 심한지 배틀이 붙을 정도인데, 급속 냉동 수준으로 굳어져가는 이 뇌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칼슘 보충제, 먹어야하나?

칼슘 보충제를 먹는 이유는 대개 뼈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최근 개정된 미국질병예방서비스특별위원회의 권고에 따르면 칼슘 보충제 복용이 골절을 예방한다는 과학적 증거는 확실치 않습니다. http://www.uspreventiveservicestaskforce.org/uspstf/uspsvitd.htm

개정된 권고안을 보면, 골다공증이나 골절이 특히 문제가 되는 폐경 후 여성에서 1000mg 이하의 칼슘 보충제와 400IU 이하의 비타민 D 보충제는 골절 예방의 근거가 없으므로 복용하지 않도록 권고했습니다. 

그 이상 용량(1000mg 이상의 칼슘 보충제, 400IU 이상의 비타민 D 보충제)을 복용하는 경우나 폐경 전 여성, 남성의 경우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최근 칼슘 보충제가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된 바 있는데,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위험에 대한 연구 결과가 추가로 발표되었습니다.(아래 링크) 그간 논란을 일으켰던 보충제 뿐만 아니라, 식사로 인한 섭취까지 다 고려해서 연구를 진행한 점이 특징적입니다. 보다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한 연구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결론을 보면, 남자에서는 하루 400mg 이상의 칼슘 보충제는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에서는 특별한 영향이 없었구요. 총 칼슘 섭취량의 경우 남성에서 하루 1500mg 이상을 섭취했을 때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이 높아졌습니다. 사실 칼슘 보충제를 먹지 않는 경우 하루 1500mg 이상을 먹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 연구 결과들은 우리보다 칼슘 섭취가 많은 서구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한국 성인의 칼슘 권장 섭취량은 하루 700mg 정도(미국인의 경우 1000-1200mg)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실제 섭취량은 450~500mg 정도로 권장 섭취량의 70% 수준이므로 섭취를 늘려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고려하면, 역시 칼슘은 보충제로 먹는 것 보다는 식품에서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히 남성의 경우 칼슘 보충제로 인한 심혈관계 부작용이 더 클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유 1컵은 200mg, 치즈 1장은 100mg의 칼슘이 들어있습니다. 칼슘 강화 제품의 경우 2배 가량 더 들어있으므로 칼슘 강화 우유 한 잔을 더 마시면 대부분의 경우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습니다. 달래, 무우청, 고춧잎 등의 채소도 1회 분량당 100mg이 넘는 칼슘이 들어있는 좋은 급원 식품입니다. 멸치나 뱅어포 등 뼈째 먹는 생선도 좋습니다. 

식품의 칼슘 함량

골다공증과 같이 골절 위험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보다 적극적인 칼슘 보충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의사와 상의를 해 칼슘/비타민D 보충제 복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참고 문헌

Xiao Q, Murphy RA, Houston DK, Harris TB, Chow WH, Park Y. Dietary and supplemental calcium intake and cardiovascular disease mortality. JAMA Intern Med 2013; DOI:10.1001/jamainternmed.2013.3283. 
http://archinte.jamanetwork.com/article.aspx?articleid=1568523

유방암 고위험(BRCA 유전자 변이)군에서 예방적 유방 절제술의 효과에 대해

유전성 유방암 전문가는 아니지만 관련 사안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 개인적인 의견을 정리합니다
예방적 유방절제술의 효과와 관련된 연구 결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은 고위험군 214명 중 3(1.4%)에서 유방암이 발생했고, 이들의 자매(가족력상 고위험군이지만 수술을 받지 않은 사람들) 403명 중 156(38.7%)에서 유방암이 발생. (상대위험도 감소는 약 90%)
* 이 연구에서 고위험군은 BRCA 변이 양성이 아니라 가족력으로 정의한 것입니다. 2년 뒤 같은 연구자가 BRCA 변이에 따른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은 고위험군 176명 중 26명이 BRCA1 또는 BRCA2 변이 양성이었고, 13.4년 추적 관찰 기간 동안 BRCA 변이가 있는 사람들 중 유방암 발생은 0 (기존 데이터에 의한 모델로 추정한 예상 발생 건수는 6~9명이었으며, 상대 위험도 감소는 89.5~100%)
* 위의 연구는 대상 수가 너무 작고, 위험도 감소가 추정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근 아래 연구가 발표된 바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와 관련된 연구 중엔 끝판왕인 것 같습니다.

1974~2008년까지 BRCA 검사를 받은 22개 센터, 2,482명을 대상으로 합니다.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은 247명 중 유방암이 발생한 사람은 0, 수술을 받지 않은 1372명 중 유방암이 발생한 사람은 98명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유방절제술보다 예방적 난소절제술의 사망 예방 효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유방절제술의 사망 예방 효과를 따로 분석하진 않았습니다.

물론 이 연구들로 유방암 발생이 아닌 궁극적인 사망 예방 효과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BRCA 변이가 있는 고위험군에서 예방적 유방절제술의 사망 예방 효과에 대해선 보다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위의 절대 수치 감소 역시 충분히 의미있는 수치가 아닐까요? 게다가 고위험군은 대부분 유방암 환자를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에게 유방암이 주는 무게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특히나 안젤리나졸리와 같은 당사자 개인에게 충분한 정보가 전달되지 못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옹호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근거를 중시하며, 전립선암 검진에 있어 PSA의 역할에 부정적인 입장인 미국암연구소에서는 BRCA 변이가 있는 고위험군이 선택할 수 있는 3개의 옵션 중 하나로 예방적유방절제술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http://www.cancer.gov/cancertopics/factsheet/Risk/BRCA

위에 링크한 BRCA 관련 Domchek의 연구에서 BRCA 변이 고위험군 100명당 발생 건수는 10명 이내였고, 이들 중 30%가 사망한다고 가정하면 3명 정도이니 예방적 유방절제술로 얻을 수 있는 사망에 대한 절대위험도 감소분도 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명을 수술해 한 명이 유방암에 걸리는 것을 더 예방하고, 30명을 수술해 한 명이 유방암으로 사망하는 것을 예방하는 수술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겠지요. 30명 중 한 명에 속할 것인지 29명에 속할 것인지 판단해야 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는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더 열심히 유방암 검진을 하거나 예방적 화학치료를 하는 옵션이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유방암이 진단된 이후에 수술할 때는 졸리와 같은 유방재건술을 하기 더 여의치 않을 것이란 문제도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론 BRCA 변이 고위험군에 대해 수술을 추천한다면 예방적 유방절제술보다 수술로 인한 부담이 적은 난소절제술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체중 감량 시 칼슘, 비타민D 보조제를 먹는 것이 좋을까?

체중 감량을 도와준다는 보조제들은 매우 많지만 대부분은 근거가 빈약하다. 최근 칼슘과 비타민D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비만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들도 꽤 많이 발표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다음과 같은 기사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비만 여성 살 빼려면 '칼슘, 비타민 D' 보충 필수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1/24/2007012400190.html

비만 환자와 비타민 D
http://www.newswire.co.kr/newsRead.php?no=378725


하지만 칼슘과 비타민D 보조제가 체중 감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은 일관된 결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반드시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관찰 연구를 통해 칼슘이 풍부한 식사를 하는 것이 지방의 생성을 줄이고 장을 통한 지방 배출을 늘리며, 장내 호르몬에 영향을 주어 식욕을 억제한다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비타민 D 의 경우 인슐린 민감성을 향상시키고 배고픔을 억제해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비만 환자는 음식을 통한 칼슘 섭취가 부족한 경우가 흔하고 비타민 D 결핍에도 취약하다. 이러한 근거를 기반으로 칼슘과 비타민D 보충의 체중 감량 효과에 대해 다수의 연구가 시행되었으나 그 결과는 다양하다.

2011년에 발표된 리뷰 논문에 의하면 체중 감량 시 칼슘 보충의 부가적인 효과에 대한 2001~2011년까지의 15개 무작위 대조 연구 중 2개의 연구에서 1.8~2.2kg의 체지방이 더 감량되었으나 나머지 연구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같은 논문에서 비타민D 보충과 관련된 연구의 경우에는 그 수가 더 적어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 2012년에 발표된 무작위 대조 연구에서는 체중 감량 과정에서 칼슘 350mg, 비타민D 100IU가 포함된 오렌지 주스를 하루 세 차례 마신 군이 일반 오렌지 주스 군에 비해 내장 지방 감소 폭이 더 컸다.

칼슘과 비타민D 보충이 체지방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 근거는 확실치 않다. 비만 환자가 칼슘 섭취 부족과 비타민D 결핍에 취약함을 고려할 때 체중 감량 과정에서 보조적으로 고려할 수 있겠으나 개개인의 칼슘 섭취와 비타민D 부족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평가가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참고문헌 

1. Soares MJ, Chan She Ping-Delfos W, Ghanbari MH. Calcium and vitamin D for obesity: a review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Eur J Clin Nutr. 2011;65(9):994-1004.  
2. Rosenblum JL, Castro VM, Moore CE, Kaplan LM. Calcium and vitamin D supplementation is associated with decreased abdominal visceral adipose tissue in overweight and obese adults. Am J Clin Nutr. 2012 Jan;95(1):101-8.

2013년 9월 14일 토요일

비만 치료에서 요요 현상을 예방하는 방법



많은 체중을 한꺼번에 줄여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처음엔 체중이 잘 빠지다가 빠지는 속도가 줄어드는 정체기를 겪어보았을 것이다. 대개 정체기에 접어들면 내 마음이 좀 느슨해졌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식사량을 더 줄이거나 과도한 운동을 하게 되지만, 이전만큼 효과는 없으며 조금 줄어든 체중도 다시 며칠 전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 동안 줄어드는 체중계 눈금과 허리띠 사이즈를 보며 느꼈던 즐거움과 보람은 사라지고, ‘지금까지 해 왔던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해진다. 이러한 시기가 지속되면 내 한계는 여기까지 인가보다하고 자책감도 들고, ‘또 실패했구나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기도 한다.


체중을 뺄 때 시간이 지날수록 체중 감량의 속도가 줄어드는 것은 다이어트 방법과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거치는 과정이다. 저열량식사(1200-1500kcal) 6개월 하면 체중은 5-6% 정도 빠지고, 초저열량식사(800kcal 미만)의 경우는 10-12% 정도 빠지는데, 이때 다시 정상적인 식사를 하게 되면 체중은 1년 이내에 다시 체중 감량 전, 또는 그 이상으로 찌게 된다. 저열량식사를 계속한다고 해도 체중은 대개 다시 증가하여 4년이 지나면 원래 체중으로 거의 돌아오게 된다. 요요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체중 감량 후 줄어든 체중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체중을 10% 이상 감량한 후 최소 1년간 감량한 체중상태를 유지했을 때성공적으로 감량 체중을 유지했다고 말한다. 외국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체중 감량에 성공한 사람들 중 이러한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은 대개 20% 미만이었다. 결국 원래 체중의 10% 이상을 뺐다고 하더라도 1년이 지나면 이중 8-9명이 원래 체중에 가깝게 돌아간다는 말이다.
다이어트를 했을 때 체중이 빠지는 속도가 느려지고, 체중이 빠졌다가도 결국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우리 몸 안에 체중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조절 시스템이 존재하며, 체중이 변화 했을 때 이러한 조절 시스템의 스위치가 켜지기 때문이다.

체중 감량 이후 5년 동안의 체중 변화 * 출처: Wadden T. A., 1993

(VLCD : 초저열량식사, BMOD: 행동수정요법, Combined: 초저열량식사+행동수정요법)

왜 체중이 더 줄지 않을까?


우리 몸은 기존의 체중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실제로 체중이 변화할 만한 장기적인 원인이 없는 이상 성인에서 체중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며칠간 감기 몸살이나 장염을 앓고 체중이 빠졌더라도 병이 나은 다음 1-2주 이내로 빠진 체중이 회복되며, 시험 기간에 스트레스로 밥을 잘 못 먹어 체중이 빠졌더라도 시험이 끝나면 금새 원래 체중으로 돌아간다. 매일매일 먹는 음식과 양이 다르고 활동량도 같을 수 없을 터인데 말이다. 일반적으로 성인은 20년간 10% 가량의 체중이 증가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일반적으로 근육량이 조금씩 줄어들고 지방이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매우 적은 변화이다.

-       에너지 섭취와 소비의 균형

일정한 체중은 에너지 섭취량과 소비량 사이의 균형의 산물이다.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60-70%는 숨을 쉬고, 혈액을 순환시키고, 위장을 움직이고, 체온을 유지하는 등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쓰이며, 의도적인 활동에 의한 소비는 30%에 불과하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늘릴 수 있는 에너지 소비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쓰이는 에너지 소비량을 휴식기 에너지 소비량(Resting Energy Expenditure, REE)이라 부르는데, 이는 흔히 말하는 기초대사량과 비슷한 개념이다. 에너지 소비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휴식기 에너지 소비량(REE)의 경우 작은 변화도 에너지 균형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적게 먹어서, 즉 에너지 섭취를 줄여서 살을 뺐을 때 생기는 문제는 체중이 줄어듦에 따라 이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휴식기 에너지 소비량(REE)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몸은 이러한 변화를 비상 사태로 받아들이고 에너지를 적게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소비량의 감소로 에너지 대사는 균형을 맞추고 이에 따라 체중은 감소를 멈춘다. 다시 식사를 줄이면 체중 역시 줄어들 수 있지만, 곧 에너지 소비량이 다시 감소해 에너지 대사의 균형을 맞추므로 체중은 얼마간 감소하다 또 다시 정지한다. 체중을 뺄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중 감량 속도가 줄어드는 일차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하면 체중을 뺄 때 동시에 에너지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휴식기 에너지 소비량(REE)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제지방량(fat-free mass)이다. 제지방량이란 우리 몸에서 지방을 제외한 부분인데, 근육이나 뼈가 여기에 해당한다. 뼈는 의도적으로 줄이거나 늘릴 수 없기 때문에 근육량 변화가 휴식기 에너지 소비량(REE) 변화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똑같이 10kg를 빼더라도 근육량을 유지해준다면 에너지 소비 감소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체중 감량을 할 때 적절한 근력 운동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호르몬에 의한 항상성 유지

최근의 많은 연구 결과들을 통해 여러 종류의 호르몬이 에너지 대사와 체중을 조절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렙틴(leptin)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며 뇌에서 일종의 식욕억제호르몬으로 작용한다. 체중이 증가해 지방세포가 늘면 렙틴 분비도 늘어, 배고픔 신호를 감소시켜 음식 섭취가 줄고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도록 한다. 렙틴의 이러한 작용은 체중과 에너지 균형을 유지하는데 필요하지만, 결국 체중 감량 후 줄어든 체중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체중 감량을 하게 되면 그에 대한 보상 작용으로 렙틴 분비가 줄면서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고 배고픔 신호가 강해진다.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본능적 반응을 잘 극복해야 요요현상을 막을 수 있는데, 방법은 음식을 조금씩 자주 먹는 것이다. 이전에 먹던 양을 절반 정도로 줄이고, 중간에 배가 고프면 간단한 간식을 먹어 하루 5-6끼를 먹는다. 이렇게 하면 우리 몸은 위기감을 덜 느끼고, 기초대사량 역시 떨어지는 폭이 작아진다. 동시에 빠르게 걷기와 같은 적절한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면 렙틴의 작용을 개선시켜 요요현상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

감량 체중 유지를 위한 생활 습관


어떻게 하면 요요현상 없이, 빠진 체중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앞에서 본 우리 몸의 체중 유지 기전을 잘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체중 감량이라는 과제가 장기전을 필요로 한다면, 평소 어떠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느냐가 그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감량한 체중을 성공적으로 유지한 사람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생활습관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이러한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든다면 요요현상 없이 체중을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l  열량과 지방이 적은 식사를 한다.
칼로리를 적게 섭취하는 것은 물론 가장 중요한 습관이지만 과도한 칼로리 제한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저지방 식사를 하는 것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l  자주, 나누어, 천천히 먹는다.
배고플 때 먹고 포만감을 느끼면 그만 먹는다. 우리 몸이 이러한 변화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천천히 먹으면 많은 양을 먹기 전에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l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공복 시간이 길어지면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생겨 단기적인 비상사태와 같은 상황이 된다. 배고픔 신호가 강해지고 에너지 소비는 줄어들어, 이후의 식사로 인해 체중이 늘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l  일관된 식습관을 유지한다.
주중에는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고 주말 내내 과식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일주일에 한끼 정도는 먹고 싶은 근사한 음식을 먹는 것은 다이어트로 인한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l  매일 30분 이상 운동한다. 운동을 할 수 없다 해도 가능한 한 많이 움직여 신체활동량을 늘린다.
장기적으로 일상 생활에서 신체활동량을 늘림으로써 칼로리를 소비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또한 기초대사량을 유지하려면 유산소운동 이외에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l  체중을 정기적으로 측정한다.
스스로의 체중에 관심이 많을수록 빠진 체중을 잘 유지한다. , 강박적으로 매일매일의 체중계 수치에 얽매여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금물.


감량된 체중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려면


우리 몸은 변화된 환경에서 스스로 안정적인 체중 상태를 유지하려는 생체항상성(homeostasis)을 지니고 있다. 체중 감량 후 발생하는 생리적인 변화 역시 대부분 기존의 안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우리 몸의 적응 과정이며, 이러한 면에서 체중을 감량하는 것보다 감량된 체중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임은 당연하다. 감량한 체중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량한 상태에 맞춘 새로운 생체항상성이 생길 때까지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비만 바로알기(보건복지가족부)' 집필 원고

2013년 8월 27일 화요일

어디서 공을 던지더라도 (Wherever I wind up)




어렸을 적엔 야구를 소재로 한 만화가 참 많았다. 이상무 화백의 만화에서 주인공 독고탁은 뱀처럼 에스자로 휘어 들어가는 드라이브 볼이란 마구를 던지는데, 그 만화를 읽던 당시에는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라도 당장 이런 공을 던지는 투수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물리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공이지만 그때는 드라이브 볼을 던지겠다고 독고탁과 같은 폼으로 쓰러지며 테니스공을 던지는 연습을 하곤 했다. 이제 그런 볼은 실제 경기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현재도 변화가 심한 공을 일컬어 마구(魔球)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실제 구종 중 마구에 가까운 것을 꼽는다면 단연 너클볼이 될 것이다.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배트에 맞은 공이 쭉 뻗어나갈 때의 청량감,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호수비가 주는 카타르시스, 역전 홈런의 짜릿함... 야구가 주는 매력은 다양하지만, 95마일(시속 152.9km)이 넘는 공을 포수 미트에 꽂아대며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수야말로 그중 제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느리게 춤을 추는 너클볼은 애초부터 이런 호쾌한 속도의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공이다. 이 책은 메이저리그에서 그저 그런 선수 생활을 하다 30세가 넘어 너클볼 투수로 변신을 하고, 마침내 최고의 영예인 사이영상까지 받게 된 한 투수의 이야기이다. 그의 인생은 변화무쌍한 너클볼처럼 굴곡이 심했고 옛날 야구 만화의 주인공처럼 드라마틱했다.

# 2013년 4월 2일 6.0이닝 4실점 패전: 2012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새로 계약한 팀에서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개막전에 등판한 그의 첫 경기 성적 

R.A. 디키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 때 이혼을 했고, 양육권을 가졌던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시작하는 가정이라면 아이의 인생은 여간해서 잘 풀리기 어려운 법이지만, 고교 시절 야구 팀의 주전이 된 이후 그의 삶은 야구 선수라는 확고한 정체성 아래 비교적 순탄했다. 야구 선수로서 그의 재능은 뛰어난 편이어서 대학 진학 이후에는 미국 대표 선수로 애틀랜타 올림픽에까지 출전하는 영예를 얻게 되며, 이후 1996년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에 1순위로 드래프트 된다. 하지만 신체 검사 과정에서 우측 팔꿈치 측부인대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애초의 81만 달러가 아닌 7만 5천 달러에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 2013년 4월 18일 6.0이닝 7탈삼진 2안타 무실점 (2승) / 5월 4일 6.0이닝 3피홈런 7실점 (5패)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면서 고교 친구의 여동생이자 첫사랑과 결혼을 한다. 착실히 마이너리그 경력을 쌓던 중 다섯 시즌만에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지만 18일 동안 네 경기, 12이닝을 던지고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된다. 골프장의 악어가 사는 연못에 빠진 골프공을 몰래 수거해 팔고, 물리치료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야구 외 일을 병행하며 생계를 꾸리기도 한다.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30세가 되던 2005년까지 아홉 시즌 동안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15승 17패, 평균자책점 5.48이었다. 스타 플레이어가 즐비한 그곳에서 성공적인 성적이라 말하기 어려운 수치이다. 

# 2013년 5월 14일 6.0이닝 10탈삼진 3실점 (3승) / 5월 30일 6.0이닝 11안타 6실점 (7패)

그저 그런 선수로 끝날 가능성이 많았던 그의 선수 생활에서 큰 전환점이 된 순간은, 코치진의 권유에 따라 너클볼 투수로 변신을 택했을 때였다. 고된 연습 끝에 너클볼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2006년 드디어 메이저리그 선발진에 합류하지만 첫 경기에서 홈런 여섯 방을 내주며 패전 투수가 되고 곧바로 마이너리그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숨겨왔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아내와의 결혼 생활에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이로 인해 별거를 하는 등 가정과 일 모두에서 힘든 시간이 계속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미주리 강을 수영으로 건너는 충동적인 도전을 하며 익사 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 2013년 6월 10일 5.0이닝 10안타 7실점 (8패) / 6월 26일 9이닝 2안타 무실점 완봉 (7승)

생사를 넘나든 경험 이후 그의 투구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지만 팀에서 그의 위치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한국 프로야구 팀으로부터의 계약 제의를 고민 끝에 뿌리치고 난 이후에도 두 개의 팀을 더 거쳐 2010년에 와서야 뉴욕 메츠에 정착하지만 기쁨도 잠시, 35세 노장 투수는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스프링캠프에서 가장 먼저 마이너리그로 강등된다. 실망 끝에 야구 선수가 아닌 영어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기도 하지만, 1안타 완봉승을 거둔 이후 다시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는다. 이후 두 시즌 동안 선발로서 안정적인 성적을 올리고, 마침내 2012년에는 20승 6패 평균자책점 2.73의 성적으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다. 

투수도 자신이 던진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공이 너클볼이다. 그는 너클볼 투수가 되길 결심한 뒤 겪은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공을 천천히 던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속 140킬로미터 중반을 넘는 공 수천 개를 평생 던져온 내가 이제 거의 시속 100킬로미터짜리 공을 던지고 있다. 마치 스포츠카를 팔고 세발자전거를 산 느낌이다." (240p)

"똑같은 동작으로 똑같은 지점에서 공을 놓아도 각각의 너클볼은 모두 다르게 날아간다... 너클볼 투수는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함께 작용하여 만들어지는 너클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투수는 자신도 예측하지 못하는 공에 당황하고 만다."(257p)

완봉승을 거둔 바로 다음 게임에서 홈런을 서너개씩 맞고 패전 투수가 되는 경험을 흔히 해야하는 너클볼 투수의 숙명은 마치 굴곡진 우리네 인생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너클볼 투수끼리의 유대감은 팀 동료 이상이라고 한다. 너클볼로 통산 200승을 거둔 팀 웨이크필드의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필 니크로, 조 니크로, 찰리 허프, 톰 캔디오티 등 선배 너클볼 투수에게 감사를 전하며 R.A. 디키를 너클볼의 명맥을 이어갈 선수로 언급한다. 

다큐멘터리 'Knuckleball!' 시사회에서의 전, 현직 너클볼 투수들. 
Charlie Hough, R.A. Dickey, Tim Wakefield, Jim Bouton
(Photo by Craig Barritt/Getty Images)

좋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란, 팔꿈치 인대가 없는 야구 선수가 수많은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과 종교, 그리고 인생의 갈림길마다 지침이 되어 준 멘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야구 선수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해준 프레드 포핸드 감독, 자신의 어릴적 상처와 아내와의 불화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상담사 스티븐 제임스, 그리고 선배 너클볼 투수 찰리 허프와 필 니크로가 그들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73승을 거뒀으며 명예의 전당 첫 멤버로 이름을 올린 전설적인 투수 크리스티 매튜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You can learn a little from victory. You can learn everything from defeat. (승리를 통해서는 조금 배울 수 있지만, 패배로부터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빛나는 승리보다 패배가 훨씬 많았고, 마이너리그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이 명언에 적합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간결한 문장과 흥미로운 구성은 공동 집필자인 웨인 코피의 도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이 던지는 공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와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없었다면 이 책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회고하는 기간의 절반 이상이 흑역사에 가깝지만 그는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삶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한 사람에게 감동을 느낄 것이고, 야구를 모르는 독자라도 R.A. 디키의 팬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 

그의 인생을 엿보고 난 지금, '어디서 공을 던지더라도' 그가 최선을 다할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의 메이저리그 통산 승수는 올해 8월까지 71승으로, 필 니크로의 318승은 물론 팀 웨이크필드의 200승을 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야구 팬으로서, 유일하게 남은 너클볼 투수인 그의 투구를 오랫동안 보고 싶다. R.A. 디키는 올 시즌 8월 마지막 경기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6.1이닝 2실점으로 10승째를 거둬 2년 연속 10승 투수가 되는 소중한 기록을 세웠다. 이번 시즌 그의 성적은 현재까지 10승 12패로 여전히 승보다는 패가 더 많다. 

2013년 4월 1일 월요일

아이의 배앓이

주말 내내 아들이 아프다.

금요일에 어린이집에서 구토를 하더니 열이 오르락내리락해서 약을 먹였다. 장염이 아닐까. 병치레를 안하는 편이고 감기를 앓더라도 하루이틀 정도면 나아지곤 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헌데 이번엔 쉬 나아지질 않는다. 주말동안 배가 아파 밥을 거의 먹지 못했고 어제 밤에도 물을 마시고 구토를 했다. 아침에 퀭한 눈을 깜빡이면서 배가 아프다고 울먹거리는 걸 두고 출근을 하는데 발걸음이 무겁다.

"엄마 아빠는 안아프게 해줄 수 있는데..." 

금요일에 아이가 도우미 아주머니께 했던 말이란다. 이전부터 가끔 배가 아프다고 하면 배를 문질러주면서 예전 어머니가 해주시던대로 '아빠 손은 약손'이라 나지막히 읊조리곤 했다. 감기든 장염이든 약을 먹이면 이내 좋아졌고 오래 앓진 않았기때문에 아이는 아픔이란 엄마 아빠가 옆에 있으면 금새 나아지는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주말엔 엄마 아빠가 줄곧 함께 있었음에도 사흘 밤이 지나도록 낫지 않았다. 약을 먹이고 뜨거운 물을 부은 주머니를 배에 대어주며 이제 곧 나아질거야, 라고 이야기했을 때, 여느 때처럼 편안한 표정을 짓지 않았던 아이의 눈엔 언뜻 불안한 기색도 비쳤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옆에 있는데도 아픔이 계속될지 모른다는 느낌. 세상은 불확실한 것이고 엄마 아빠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을 제 몸을 통해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대단치 않은 병이고 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아이에게 받아오던 무조건적인 신뢰가 무뎌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내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는 점점 더 많아지겠지. 슈퍼맨처럼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로 오래도록 남아있고픈 것은 애초에 유효기간이 정해진 바램일 뿐일 것이나, 갑작스레 그 유효기간을 확인하게 되는 오늘같은 날엔 조금은 서글퍼진다.

2013년 2월 6일 수요일

WHO의 소금 섭취에 대한 새로운 지침

WHO에서 나트륨과 칼륨 섭취에 대한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http://www.who.int/mediacentre/news/notes/2013/salt_potassium_20130131/en/index.html

성인은 하루 sodium 2g (salt로 5g) 미만, potassium 3.5g 이상 섭취해야한다는 내용.

sodium의 경우 이전 지침과 큰 변화는 없지만, 소아에서 에너지 섭취를 고려해 성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제한해야한다는 내용이 추가되었고, potassium에 대한 지침은 이번에 새로 추가되었네요.

기사에서 sodium과 potassium이 많은 음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Sodium- rich foods: bread (approximately 250 mg/100 g), processed meats like bacon (approximately 1,500 mg/100 g), snack foods such as pretzels, cheese puffs and popcorn (approximately 1,500 mg/100 g), as well as in condiments such as soy sauce (approximately 7,000 mg/100 g), and bouillon or stock cubes (approximately 20,000 mg/100 g).

Potassium-rich foods: beans and peas (approximately 1,300 mg of potassium per 100 g), nuts (approximately 600 mg/100 g), vegetables such as spinach, cabbage and parsley (approximately 550 mg/100 g) and fruits such as bananas, papayas and dates (approximately 300 mg/100 g)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나트륨의 주된 급원식품은 라면, 김치, 찌개, 젓갈 등이고 신라면 1개에는 sodium 1930mg, 나트륨을 줄였다는 신라면블랙의 경우 1790mg 들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