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5일 화요일

영양제 어떻게 먹어야할까?


좀더 건강해지고자 하는 바램을 갖고 있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에 자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은 예전같지 않고 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운동할 시간은 부족합니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기도 하고, 이전에 없던 두통이나 어지럼증도 자주 느끼곤 합니다. 주변에서 이런 저런 병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내가 너무 건강을 챙기지 않고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영양제를 포함한 건강기능식품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건강기능식품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국내에 출시된 건강기능식품은 수천여 종에 달하며,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비타민이나 미네랄 등의 ‘영양제’입니다. 이외에 홍삼, 오메가-3, 감마리놀렌산, 글루코사민, 프로폴리스 등이 대표적인 인기 품목입니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매출이 총 2조원에 육박한다고 하니, 우리나라 일년 의약품 소비량이 20조원인 것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규모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건강식품의 종류가 많다 보니 어떤 제품을 선택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좋다는 것을 다 구입해 먹기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어떤 영양제를 먹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건강기능식품이 인기가 많은 것은 비방이나 약초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약과 달리 건강기능식품은 부작용이 없다는 생각도 원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간에 부담을 주어 독성 간염과 같은 심각한 질환도 생길 수 있습니다. 건강기능식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타민이나 미네랄에 있어서도 부작용에 있어 예외는 아닙니다. 2007년 덴마크 연구진이 세계적 권위의 의학저널인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발표한 후 큰 반향을 일으켜 ‘코펜하겐 쇼크’라 불렸던 연구 결과는 비타민A, 베타카로틴, 비타민E, 비타민C, 셀레늄 같은 항산화비타민을 알약 형태로 복용하면 사망 위험이 5% 이상 높아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이와 비슷하게 부작용이 있다는 결과를 보인 다수의 연구들이 발표되었지만, 부작용이 없다는 반대 내용의 연구 결과도 역시 많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르지만, 현재는 적어도 영양제가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영양제도 과량을 먹었을 때 건강에 해가 될 수 있고, 알약 형태의 보충제보다 같은 영양소를 음식을 통해 먹는 것이 더 낫다는 것 역시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통해 음식으로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먹고 있다면 대개 추가적인 건강기능식품 복용은 불필요합니다. 하지만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면 부족한 영양소의 보충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단백질, 칼슘, 칼륨, 비타민D 등의 영양소 섭취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 전반에 대한 결과이므로 나와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의 질병 상태에 따라 필요한 영양소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건강기능식품을 올바르게 먹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나의 건강상태와 식습관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평가입니다. 이는 의사, 영양사 등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보다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부족하거나 과한 부분이 있다면 먼저 식습관 교정을 통해 건강하게 먹는 법을 배우고, 나의 질병 상태와 식습관 평가 결과에 따라 부가적으로 영양제를 비롯한 건강기능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연말 건강한 음주문화를 위해

술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소비되는 기호식품이다. 많은 경우에 사교적 소통과 인간관계를 증진시키는 촉매제가 될 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 가족 의식의 목적으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어 이미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깊이 뿌리내려져 있다. 하지만, 술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가족적인 측면에서 볼 때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성격이 있어 적절한 음주를 할 경우 여러 가지 득을 주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해악을 주는 경우가 많다.
OECD 'Health Data 2007' 음주관련 지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주류 소비 수준은 OECD 30개국 중 22위에 해당한다. 또 우리나라의 1인당 음주량은 8.1L OECD 국가의 평균인 9.5L에 못 미치는 수준이나, 폭음하는 비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술 마시는 문화가 사회적으로 조성된 우리나라는 음주에 대해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직장 생활을 하려면 술은 마실 줄 알아야 하고, 남자라면 술을 잘 먹는 게 자랑할만한 일이 되는 게 우리나라 문화이다. 진료실에서도 알코올 중독 수준의 음주를 하면서 스스로는 전혀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환자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음주로 인한 영향은 개인 삶의 모든 측면뿐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며,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비용도 크다. 직장인의 경우 음주로 인한 업무능력 저하, 지각, 결근, 직무수행 차질 및 생산성의 손실, 의료비용과 사회비용의 증가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며, 2007년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교통사고의 13%, 교통사고 사망의 16.1%가 음주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모임과 행사가 많은 연말에는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을 해치지 않는 음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것이 어떨까. 음주와 건강에 대해 흔히 궁금해하는 내용을 문답식으로 구성해보았다.


평소에 조금씩 꾸준히~음주를 하는 것과 연말연시 등으로 일년에 몇 번 폭음을 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건강에 위험한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적절한 음주량은 65세 미만의 성인 남성의 경우 일주일에 평균 14잔 이하, 1회 최대 음주량 4잔 이하이며 여성이나 65세 이상인 경우는 그 절반 정도입니다. 표준 1잔은 알코올 10-14g에 해당하는 양으로, 맥주 340 cc, 포도주 140 cc, 소주 70cc, 양주 40 cc 가량이며 각 술의 술 종류에 맞는 술잔으로 한잔에 해당합니다.(맥주의 경우는 캔 맥주 1, 알코올 함유량이 21%인 소주의 경우 보통 크기의 소주잔으로 1.5) 그 이상을 마시면 과음, 또는 폭음이 되는데 이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음주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적절한 음주는 심혈관 계통에 일부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과음은 관상동맥질환, 부정맥 등의 심장병,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간경화, 치매, 등의 위험을 높이며, 암의 경우 구강, 인후, 식도, 간암을 1012배 이상, 대장, 유방, 난소암 위험도 1.23.5배 높입니다.
폭음은 급성 알코올 독성으로 인한 증상, 사고로 인한 사망률을 높이고, 폭음이 반복되면 알코올 남용이나 알코올 의존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폭음과 장기적인 과음이 미치는 영향은 다르겠지만, 모두 건강에 유해한 것은 분명합니다.

술을 자주 마시면 주량이 늘어나나요?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는 두 가지 효소가 작용을 합니다. 흡수된 대부분의 알코올은 아세트알데하이드탈수소효소(ALDH)의 역할로 분해되는데, 술을 자주 꾸준히 마시게 되면 이 효소 이외에 마이크로좀에탄올산화효소(MEOS)의 활성이 증가됩니다. 알코올 분해에서 가장 중요한 ALDH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며 그 양이 변하지 않지만, MEOS는 술을 자주 마시면 활성이 약간 증가하게 되므로 술이 약한 사람도 자주 술을 마시게 되면 평소의 주량에도 취기가 오르지 않아 술이 세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MEOS라는 효소는 간이 담당하는 다른 대사작용에도 관여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약물인데, 결국 약물을 분해, 대사하는 과정에 영향을 주어 알코올-약물 상호작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알코올성 간질환의 진행에도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술을 자주 마셔서 주량이 세졌다고 느낀다면 간기능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미 간 건강에 위험이 오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는 것이지요.

술 깨는 약, 숙취방지약 등은 효과가 있습니까?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것들은 어떻게 도움이 되는 것이고, 어느 정도 효과가 있나요?

일정량의 술을 섭취한 이후엔 충분한 시간이 지나기 이전까지 숙취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숙취는 알코올이 분해될 때 생기는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독성 물질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자율신경계통에 강한 영향을 미쳐 오심/구토, 과호흡, 기면, 혈관확장, 빈맥, 저혈압 등을 일으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술 깨는 약이나 숙취방지약은 이러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는 효소의 활성을 도와주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 효과가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큰 것은 아닙니다. 알코올의 효과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숙취로 인해 생기는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대증치료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음주 측정을 할 때 재는 혈중알코올 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성인 남성이 1잔의 술을 마시고 알코올을 완전히 분해하려면 일반적으로 1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이미 혈액으로 흡수된 알코올을 분해하는 속도는 알코올의 양에 무관하게 일정하기 때문에, 결국 술이 깨는 시간은 얼마나 많은 알코올을 섭취하였는가에 정비례합니다. 두 잔을 마시게 되면 한 잔을 걸칠 때 보다 두 배의 시간이 흘러야 술이 깨게 됩니다
일단 혈중에 흡수된 알코올 농도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음주 측정기는 호흡 속에 있는 알코올 농도를 감지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껌, 구강청정제, 물 등으로 입 안을 청소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음주측정과 상관없이 술에서 깨고 숙취를 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알코올은 그 자체로 이뇨작용을 일으키고,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는 수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탈수가 되면 숙취로 인한 증상 역시 심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일단 혈액으로 흡수된 알코올을 분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실 때 알코올이 덜 흡수되도록 하는 것도 좋습니다. 섭취한 알코올의 20%는 위 점막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천천히 마셔서 위 배출 시간을 늦추거나 음식을 함께 먹어서 위의 알코올 농도를 희석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도수가 높은 술일수록 흡수가 잘 되기 때문에 폭탄주는 삼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술 마신 다음날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이유는?

음주 후에는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간의 본래 업무인 포도당 생성 작용이 방해를 받으므로 공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갈증은 알코올의 분해 과정에서 수분을 소비하고, 알코올 자체가 이뇨작용이 있어 소변 배출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주독을 푸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은 무엇이 있나요?

주독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증거가 충분한 음식은 없습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휴식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콩나물이나 북어 등은 경험적으로 해장국 재료로 많이 쓰이며 포함된 성분이 알코올 분해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효과가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단지 과음 후의 불편한 증상들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요.

술을 마실 때 여자라서 더 주의해야 하는 점이 있나요?

여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주량이 약하고, 알코올에 취약합니다. 몸무게가 적게 나간다는 것 이외에도, 몸 안에 수분이 적기 때문에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 이유입니다. 여성호르몬이 알코올 분해 효소의 작용을 억제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결국 장기적인 음주로 인한 신경계, 심혈관계, 간 질환 등이 남성에 비해 쉽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의 경우 적정 음주는 남성의 절반 정도로 정해두고 있습니다.
특히 임산부의 경우 술은 금기인데, 태아가 적은 양의 알코올에 노출되더라도 저체중, 낮은 지능지수, 기형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건강검진 잘 받게 해드리려면


웰빙 바람을 타고 건강검진이 효도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정의달인 5월이면 빠지지 않고 발표되는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 선물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현금과 함께 1, 2위를 다투는 것이 건강검진이다. 하지만 막상 이런 저런 건강문제를 갖고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떤 검진센터의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할지, 다양하고 많은 개별 검사항목들 중에선 또 어떤 항목을 추가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어떤 질병에 대해 검진을 받아야 하나?

부모님들의 연세인 50~60대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나쁜 생활습관과 만성질환으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하는 시기이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증상이 없는 만성질환으로 인해 생기는 중풍이나 심혈관질환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사망원인 1위인 암 역시 50대 이후에 급격하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므로 50~60대 이후의 부모님 검진 시에는 기본 검사 이외에 위, 대장, 유방, 자궁경부암 등의 주요암검진이 항목에 포함되어야 한다. , 대장내시경과 유방촬영, 초음파, 부인과 검사 항목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생활습관과 만성질환 등 위험요인에 따라 뇌혈관과 심혈관에 대한 검진항목이 적절히 포함되어야 하는데, 운동부하검사, 동맥경화검사 등 혈관 상태를 알 수 있는 검사가 해당된다. 최근에는 심장의 관상동맥 컴퓨터촬영(Cardiac CT), 뇌 혈관자기공명촬영(MRA) 등의 첨단 검사를 통해서도 이전보다 혈관 상태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첨단 검사는 비교적 고가이기 때문에 검사를 선택하기 전에 상담을 통해 검사의 의미와 검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잘 따져보는 것이 좋다.

 
관상동맥 컴퓨터촬영 사진
뇌혈관 자기공명촬영 (MRA)


어떤 검진센터를 선택해야 하나?

50-60대 이후의 나이에 많이 발생하는 질병과, 질병에 대한 개인의 위험 정도를 고려한 검진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요즈음은 많은 검진센터들이 나이에 따른 검진프로그램을 마련해두고 있는데, 이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선택 과정에서 상담을 통해 과거력, 생활습관 등을 고려한 검진항목 조정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또한 부모님이 걱정을 하는 질병에 대한 충분한 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검진센터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르신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은 자식에게 짐이 되는 암과 중풍, 치매이다. 치매의 경우는 뇌 자기공명촬영(MRI)나 컴퓨터촬영(CT)만으로 진단할 수 없으며 의료진에 의한 인지기능평가와 상담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치매에 대한 검진을 원한다면 이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와 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검진 당일, 검사를 진행하기 전에 의사와 예비상담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패키지형 검진프로그램에는 본인에게 필요한 검사가 누락되거나, 맞지 않는 검사가 포함된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검사 항목 구성이 똑같다 하더라도 검사의 품질이 차이가 날 수도 있으므로 병원 시설과 의료진을 체크해보는 것이 좋다. 또한 연세가 많으신 경우 많은 검사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 자체가 고생스러운 일이므로 필요한 항목들을 한 곳에서 모두 검사받을 수 있는지, 검사 과정에서 직원들의 배려나 휴식공간이 충분히 제공되는지도 중요하다.

검진비용은 어느정도?

검진항목과 서비스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대학병원 검진센터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질병에 대한 검진프로그램 비용은 100만원대 초중반 정도이며 MRI 등의 고가 검사가 포함된다면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종합병원의 경우 일반적으로 100만원 미만의 비용에서 비슷한 항목의 검진을 받을 수 있다.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암검진을 이용하는 것도 현실적인 좋은 방법이다. 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에 대한 기본적인 검진을 2년마다 무료로 받을 수 있으므로 이를 기본으로 필요한 검진 항목을 추가한다면 검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부모님의 나이에 따른 공통적인 기본 검진항목은 정해져 있으나 이에 더불어 개별 건강상태에 맞는 구체적인 검진 항목을 결정하는 데에는 전문가의 맞춤 권고가 필요하다. 또한 일회적인 건강검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검진 결과 발견된 질환이나 건강위험요인에 대한 사후관리와 치료가 잘 이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무엇보다 건강검진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검진에서 사후관리까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서비스를 받는다면 부모님의 건강을 보다 잘 지킬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영화 <인사이더>와 담배 소송


"인사이더"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99년 마이클만 감독이 만든 영화로 담배회사에서 판매량을 늘일 목적으로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의도적으로 담배에 포함시켜 담배를 제조하였다는 사실을 방송을 통해 폭로하고자 하는 PD와 그에 협조하는 담배회사의 중역에 관한 내용입니다. 알파치노와 러셀크로의 연기가 볼만했던 영화이죠.

 같은 해 7월 미국 플로리다주 법원은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의 유족 등 흡연피해자 50만명이 필립모리스 등 5개의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에서 원고들에게 2천억달러(약 240조원)를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배상금이며 담배 소송상 가장 큰 승리를 이끌어 낸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당시 담배 회사들은 <인사이더>가 평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배심원들이 이 영화를 보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여 법원의 승낙을 얻기도 했습니다.

 1994년 이전까지의 미국의 담배소송은 원고패소 판결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 피고측인 담배회사들이 폈던 전술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담배가 해롭고 흡연하면 폐암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제조자인 담배회사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상당히 효과를 발휘하여 여러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이를 받아들여 피고측의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둘째는 담배가 해롭다는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운 것은 본인의 잘못이라는 주장입니다. 당시만 해도 니코틴 중독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피고측의 주장이 판결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담배회사들의 이러한 전술은 1994년 Brown & Williamson사의 비밀문건이 공개되면서 위기에 처합니다. 이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외부 발표와는 달리 담배회사는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둘째, 담배는 마약인 니코틴의 전달 물질이기 때문에 니코틴의 함량을 늘리거나 또는 니코틴의 효과를 상승시키기 위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실시하여 제품 생산과 판매에 활용하였습니다.
 셋째, 미래의 담배회사의 운명은 청소년과 여성이 얼마나 담배를 피워주는가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집중적인 광고와 판촉을 실시하였습니다.
 넷째, 제3국가에 담배를 수출하기 위하여 정치가들과 고급 공무원을 매수하여 제3국에 공정무역거래라는 논리를 내세워 압력을 가하여 담배의 수입을 자유화하도록 하였습니다.
 다섯째, 각 국가의 학자들을 매수하여 담배가 별로 해롭지 않다 또는 간접 흡연의 피해는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주장하게 하였습니다.
 여섯째, 덜 해로운 담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지만 담배회사 스스로 담배가 해롭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됨으로써 이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영화 <인사이더>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언론에 폭로한 Brown & Williamson 사의 Jeffrey Wigand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Jeffrey Wigand 

 담배에 수많은 발암물질과 독성물질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담배를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회사들이 훨씬 오래 전부터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숨겼으며 오히려 의존성과 중독성을 강화시켜 흡연자로 하여금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끊기 힘들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담배는 내가 끊으려면 언제든 끊을 수 있다.”라거나 “흡연은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담배회사가 만든 교묘한 전술의 성공적인 결과겠죠. 생각해보면 정말 괘씸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강에 폐수를 몰래 버리는 것은 범죄이고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발암 물질을 직접 들이마실 수 있도록 잘 포장해 만들어 파는 것은 여전히 합법적입니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국영사업이었고 현재 민영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공기업이나 마찬가지죠. 유해성이 분명함에도 담배 판매로 인해 생기는 이득이나 세금이 너무나 커서 주체가 국가이든, 기업이든 건드리지 못하는 현실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2004.8.13

만성질환, 생활습관 관리로 완치할 수 있다.


사례 1. 45세 직장인 K씨는 회사를 통해 시행한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높으니 재검 후 진료를 받으라는 권유를 들었다. 사실 K씨에게 이 같은 결과는 처음이 아니었다. 3-4년 전부터 검진을 받을 때마다 같은 권고를 받곤 했지만, 특별히 불편한 증상이 없었기에 무심코 넘겨버리곤 했던 것이다. 부친이 오랫동안 고혈압을 앓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병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고혈압관리의 필요성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고혈압 약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약을 먹기가 부담스럽다. 이번엔 꼭 운동을 시작하고 뱃살을빼보리라 생각하고 회사 근처의 헬스클럽에 등록했지만, 이전에도 운동을 오래 지속하진 못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술을 줄이려 생각해보지만 업무관련 회식자리가 많아 걱정이다.


사례 2. 50세 주부 L씨는 최근 피로가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가 당뇨 진단을 받았다. 남편의 퇴직이후 최근 몇 년간 가계를 돌보느라 건강관리를 할 여력이 없었으며 폐경을 겪으면서 체중이5kg 이상 늘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어머니가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기에본인도 같은 과정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우울해졌지만, 주치의와의 충분한 상담을 거치며 긍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주치의는 적극적으로 체중을 줄일 것을 권유했으며, 이후 3개월간 식습관관리와 운동을 꾸준히 해 이전 체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6개월 후에는 그동안 복용하던 당뇨약을 먹지 않고도 정상혈당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는 바뀐 생활습관을 유지하며 이전보다 더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환자들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이른바 '생활습관병'으로 불리는 만성질환을 가진 분들입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10명 중 1-2명이 고혈압을 가지고 있으며, 10명중 1명이 당뇨병을 가지고 있을 정도인데, 이렇게 과거에 비해 이들 질병이 흔해진 것은 무엇보다 고령화로 인해 노인인구가 늘어났으며, 국민의 식습관이 서구화되고 신체활동이 줄어드는 등 건강을해칠 수 있는 생활습관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3대 사망원인질환은 암, 뇌졸중, 심장병입니다. 이중 뇌졸중과 심장병은 고혈압,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발생하는 경우가가장 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만성질환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의 관리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흔히 실제 고혈압 환자 중 절반 정도만 발견이 되고, 발견된 환자의 절반 정도만 치료를 받으며, 치료를 받는 환자의 절반 정도만 혈압이 정상으로 조절된다고 합니다. 결국 만성질환 환자 열 명 중 만족할 만큼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경우는 1-2명에 불과하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만성질환에 대한 관리가 어려운 이유는 질병 자체가 늘어나고 있기도 하지만, 질병이 진단된 이후에도 선뜻 적극적인 치료를 받기를 꺼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진단을 받는다해도 초기에는 대개 본인이 느끼는 불편한 증상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치료를 권유 받아도 차일피일 미루게 됩니다. 더군다나 일단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뚜렷하게 필요성을 못 느끼는 상황에서는 치료를 안 해서 생길 수 있는 먼 훗날의 합병증의 문제보다 약을 복용했을 때 곧바로 생기는 불편함과 부작용 등을 먼저 걱정하게 되는 것이죠.

또한 고혈압이나 당뇨로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일종의 패배감과 같은 감정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약들은 나이 드신 분들만 먹는 것’이라던가, ‘약을 먹는 것은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이라던가 하는 생각들로 어떻게든 약을 안 먹고 버티려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분들은 본인이 꾸준히 해야 하는 생활습관에 대한 변화와 관리 역시 지속하지 못하는경우가 많습니다.

앞에 예로 든 통념들은 대부분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혈압이나 혈당이 지속적으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생활습관 관리로 해결하려 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는 질병에 대한 관리를 한다고 자위하지만 훗날 뇌졸중이나 심장병 등의 중한 합병증이 생길 위험을 키우고 있는 상태입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만성질환에 대해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를 할수록 향후 합병증과 사망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약을 먹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본인이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관리 방법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물론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본인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약을 먹지 않고 조절하는 것이겠죠. 처음 진단받은 뒤 2-3개월 간은 적극적인 생활습관 관리를 하며 경과를 관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권고된 목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적절한 처방을 받아 약을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혈압이나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합병증의 위험은 늘어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해서 이를 평생 지속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단 혈압이나 혈당이 정상화되고 안정적으로 지속된다면 주치의와의 상의 하에 천천히 약 감량이나 중단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만성질환 상태에 영향을 주는 다른 조건들이 그대로라면 약 용량을 줄이거나 끊었을 때 십중팔구는 다시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결국 약을 평생 먹지 않기 위해서는 소식, 싱겁게 먹기, 꾸준한 유산소운동, 체중 감량 등으로 약이 해결해주고 있던부분들을 대신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생활습관이 영향을 미치는 대부분의 만성질환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만성질환 환자분들이 약을 중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약을 감량하거나 이후 약 용량이 늘어나는 것을 늦추는 것은 가능합니다. 많은 환자분들이 당뇨는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완치’가 약을 안 먹고 혈당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면 이러한 의미의 완치 역시 충분히 가능합니다. 또한 완치 여부를 떠나 이러한 생활습관의 변화가 향후 결국 문제가 되는 중한 합병증의 위험을 낮추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치료에 대한 회피로 합병증의 위험을 키우는 것,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로 합병증의 위험을 줄이고 나아가 약을 먹지 않고도 완치하는 것, 이중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2009.8.5

내 환자이자 스승인 그녀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유, 뭐 그냥...... 애기 잘 크지요? 일전에 핸드폰에 보내주신 사진 본께 많이 컸던디요."
"네, 요즘은 고집이 세져서 엄마 아빠 말을 잘 안들으려고 하네요."
"고 나이 애들이 다 그렇지요. 시골에서 개가 새끼를 낳았는디 엄청 귀여워서. 가져다 키우시믄 애기가 좋아할 것 같은디....." 
"아이구, 애기 엄마가 질색이에요. 바깥 분은 좀 어떠세요?"
"고만고만혀요. 선생님은 지난 번에 뵐 때보다 얼굴이 나으시네."

두어달에 한번씩 만나는 그녀와의 진료실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의학적인 내용보다 일상에 대한 것이 더 많고, 때로는 내 가족의 근황을 이야기하느라 짧은 진료시간을 써버리기도 한다. 덕분에 막상 증상에 대한 이야기는 늘 함께 오시는 따님과 따로 통화를 해서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은 다른 환자를 만날 때도 종종 있는 일이지만, 애초부터 환자와 편안하게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의과대학 교과서는 증상의 원인을 진단하고 검사 결과를 해석하는 법으로 가득하지만, 환자와 교감을 나누는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의사로서 첫걸음을 뗀 뒤 환자와 그 가족의 감정을 직접 마주하는 순간에는 막상 어쩔 줄 몰라하다 오히려 한걸음 뒤로 물러나버리기도 한다. 초보 의사였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맡았던 환자의 사망이 주는 상실감과 무력감은 마음을 많이 나누었던 환자였을수록 더 컸고, 몇 차례의 그런 경험은 환자와 가까워지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경계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내 마음에 상처가 생길까 두려워 움츠러들었던 것이다.

그녀를 만난 것은 그렇게 내가 적당하다고 생각한 만큼의 거리를 두면서 환자를 대하는데 익숙해져 가던 전공의 시절이었다. 60대의 나이에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을 앓고있던 할머님은 오래 전부터 지속된 요통과 다리로의 방사통을 호소했다. 근래에 들어 부쩍 심해진 통증은 일상 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을 주고 있었다. 오래된 통증이었지만 그녀와 가족들은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어했고, 입원 후 여러가지 검사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정밀 검사로도 심한 척추신경절병증 상태라는 것 이외에 근본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그녀는 결국 통증만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약을 처방받고 퇴원했다. 워낙 지병이 많은 환자였기에 통합적인 관리가 필요했고, 입원 당시 담당 의사였던 나는 퇴원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주치의가 되었다. 그녀를 치료하는데 있어 교과서적인 접근법의 한계를 깨달은 것은 오래지 않아서였다. 워낙 질병이 많아 각각에 맞는 처방약만 해도 매일 먹기 힘든 정도의 양이었고, 이전부터 있던 위장 장애가 약을 먹을 때마다 구토를 할 정도로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두세달에 한번씩 그녀를 만날 때마다 한 번에 한 움큼씩 되는 처방약을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 매번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봐야 했다. 진료 전날이면 조금이라도 더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다. 통증이 일반 진통제로 조절이 안되는 상황이 되자 나는 가족들과 상의해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고, 다행히 이 처방은 그녀가 휠체어보다 지팡이를 좀더 자주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후덕한 생김새에 수줍음을 많이 타는 할머님은 스스로 마음에 들어한 의사가 아니면 아무리 유명한 의사라도 더이상 찾아가지 않는, 아주 고집스런 분이었다. 그녀와 가족들은 늘 내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럴 때마다 수줍은 웃음을 짓곤 했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하루종일 통증에 시달리는 그녀를 잠시나마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다음날이 되면 늘 잊어버리곤 했고, 2년 후 나는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다른 대학병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녀는 내가 병원을 옮긴다는 사실을 알려준 몇 안되는 환자들 중 하나였고, 이후엔 훨씬 먼 길이었음에도 내 진료실을 찾았다.

어느 날 늘 할머님을 모시고 오는 따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머님이 갑작스런 질출혈로 부인과 진료를 받았는데, 자궁내막암인 것 같으니 정밀검사를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서 연락을 한 것이었다. MRI 검사는 악성자궁내막암, 그중에서도 예후가 좋지 않은 종류의 암종이 의심되는 결과였다. 수술을 통해 자궁을 적출해 확진과 치료를 동시에 하는 방법이 최선이었지만, 오랜 통증으로 지쳐있던 그녀는 수술을 받고싶어 하지 않았다. 주치의로서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 같아 자책감이 들었고, 무엇보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녀에게 또 너무 큰 짐이 지워진 것이 안쓰럽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큰 수술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하는 그녀와 가족들을 설득해 수술을 받도록 하고 일정을 주선했다. 

"선생님께서 수술을 받으라고 하시니 받지요."

그 와중에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진단과 수술 모두 내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던지라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난처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수술 후 최종 병리 결과는 악성종양이 아니었다. 방사선치료를 비롯한 힘든 치료들을 추가로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수술 후에 기력이 부쩍 떨어지고 수술로 인한 새로운 통증이 생긴 그녀의 상태를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은 수술을 받기로 한 결정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해야 했다. 원래 예약된 날짜가 훌쩍 지나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에 들어오는 쇠약해진 그녀를 보면서, 나 역시 당시로선 최선이라 생각했던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는 그녀를 더 힘들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통증이 심해져 힘들어하면서도 꿋꿋하게 내 진료실을 찾았지만, 약해진 그녀의 몸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의 진료 후 다음 예약 날 그녀는 방문하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나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가끔 따님과 통화를 했고, 여전히 기력이 좋지 않으며 최근 생긴 치주염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그녀의 상태를 전해들었을 뿐이었다. 그녀를 보지 못하는 동안, 함께 식사하고 싶다는 그녀와 가족들의 바램에 응하지 못한게 늘 마음에 걸렸다. 혹시 앞으로는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는게 아닐까, 너무 늦어버린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진즉 시간을 내지 못한 걸 후회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오랜만에 그녀가 방문했다. 그동안 잇몸 치료를 받느라 다른 병원에 다녔고 이제는 좋아져서 다시 이 병원으로 다닐 거라며 예의 그 수줍은 미소를 지으신다. 이전보다 핼쓱해진 얼굴에 수술받은 부위가 여전히 불편하고 다리 통증도 여전하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뻤던 건 휠체어가 아닌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들어오는 모습 때문이었다. 일단 부족한 약들을 처방하고 한달 뒤에 간단한 검사 후 처방을 조정해드리로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전 진료를 끝내고 세미나에 참석해 졸음을 참고 앉아있는데 따님에게서 문자메세지가 왔다. 

'선생님. 오랜만에 뵈서 반가웠습니다. 선생님께서 살도 빠지고 피곤해보이신다고 어머님이 걱정을 하시네요. 늘 건강하세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스스로의 몸을 가누기도 힘겨워하는 그녀가 오히려 나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와 가족들은 늘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받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녀는 교과서적인 치료에 대한 관심이 전부였던 때에 환자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고, 주치의로서 환자와 가족들과 진실된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 이후로 또 몇 년이 지났다. 여전히 통증과 이런저런 문제들에 힘들어하는 그녀는 아직도 내게 어렵고 고민스런 환자이지만, 이젠 종종 전화로 안부를 묻고 휴대폰으로 사진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문득 지금보다 훨씬 겁 많고 유약한 초보 의사였던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환자와 가족들의 감정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어루만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지금, 내 환자이자 소중한 스승이었던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