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45세 직장인 K씨는 회사를 통해 시행한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높으니 재검 후 진료를 받으라는 권유를 들었다. 사실 K씨에게 이 같은 결과는 처음이 아니었다. 3-4년 전부터 검진을 받을 때마다 같은 권고를 받곤 했지만, 특별히 불편한 증상이 없었기에 무심코 넘겨버리곤 했던 것이다. 부친이 오랫동안 고혈압을 앓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병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고혈압관리의 필요성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고혈압 약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약을 먹기가 부담스럽다. 이번엔 꼭 운동을 시작하고 뱃살을빼보리라 생각하고 회사 근처의 헬스클럽에 등록했지만, 이전에도 운동을 오래 지속하진 못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술을 줄이려 생각해보지만 업무관련 회식자리가 많아 걱정이다.
사례 2. 50세 주부 L씨는 최근 피로가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가 당뇨 진단을 받았다. 남편의 퇴직이후 최근 몇 년간 가계를 돌보느라 건강관리를 할 여력이 없었으며 폐경을 겪으면서 체중이5kg 이상 늘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어머니가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기에본인도 같은 과정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우울해졌지만, 주치의와의 충분한 상담을 거치며 긍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주치의는 적극적으로 체중을 줄일 것을 권유했으며, 이후 3개월간 식습관관리와 운동을 꾸준히 해 이전 체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6개월 후에는 그동안 복용하던 당뇨약을 먹지 않고도 정상혈당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는 바뀐 생활습관을 유지하며 이전보다 더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환자들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이른바 '생활습관병'으로 불리는 만성질환을 가진 분들입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10명 중 1-2명이 고혈압을 가지고 있으며, 10명중 1명이 당뇨병을 가지고 있을 정도인데, 이렇게 과거에 비해 이들 질병이 흔해진 것은 무엇보다 고령화로 인해 노인인구가 늘어났으며, 국민의 식습관이 서구화되고 신체활동이 줄어드는 등 건강을해칠 수 있는 생활습관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3대 사망원인질환은 암, 뇌졸중, 심장병입니다. 이중 뇌졸중과 심장병은 고혈압,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발생하는 경우가가장 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만성질환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의 관리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흔히 실제 고혈압 환자 중 절반 정도만 발견이 되고, 발견된 환자의 절반 정도만 치료를 받으며, 치료를 받는 환자의 절반 정도만 혈압이 정상으로 조절된다고 합니다. 결국 만성질환 환자 열 명 중 만족할 만큼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경우는 1-2명에 불과하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만성질환에 대한 관리가 어려운 이유는 질병 자체가 늘어나고 있기도 하지만, 질병이 진단된 이후에도 선뜻 적극적인 치료를 받기를 꺼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진단을 받는다해도 초기에는 대개 본인이 느끼는 불편한 증상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치료를 권유 받아도 차일피일 미루게 됩니다. 더군다나 일단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뚜렷하게 필요성을 못 느끼는 상황에서는 치료를 안 해서 생길 수 있는 먼 훗날의 합병증의 문제보다 약을 복용했을 때 곧바로 생기는 불편함과 부작용 등을 먼저 걱정하게 되는 것이죠.
또한 고혈압이나 당뇨로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일종의 패배감과 같은 감정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약들은 나이 드신 분들만 먹는 것’이라던가, ‘약을 먹는 것은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이라던가 하는 생각들로 어떻게든 약을 안 먹고 버티려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분들은 본인이 꾸준히 해야 하는 생활습관에 대한 변화와 관리 역시 지속하지 못하는경우가 많습니다.
앞에 예로 든 통념들은 대부분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혈압이나 혈당이 지속적으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생활습관 관리로 해결하려 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는 질병에 대한 관리를 한다고 자위하지만 훗날 뇌졸중이나 심장병 등의 중한 합병증이 생길 위험을 키우고 있는 상태입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만성질환에 대해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를 할수록 향후 합병증과 사망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약을 먹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본인이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관리 방법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물론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본인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약을 먹지 않고 조절하는 것이겠죠. 처음 진단받은 뒤 2-3개월 간은 적극적인 생활습관 관리를 하며 경과를 관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권고된 목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적절한 처방을 받아 약을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혈압이나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합병증의 위험은 늘어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해서 이를 평생 지속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단 혈압이나 혈당이 정상화되고 안정적으로 지속된다면 주치의와의 상의 하에 천천히 약 감량이나 중단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만성질환 상태에 영향을 주는 다른 조건들이 그대로라면 약 용량을 줄이거나 끊었을 때 십중팔구는 다시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결국 약을 평생 먹지 않기 위해서는 소식, 싱겁게 먹기, 꾸준한 유산소운동, 체중 감량 등으로 약이 해결해주고 있던부분들을 대신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생활습관이 영향을 미치는 대부분의 만성질환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만성질환 환자분들이 약을 중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약을 감량하거나 이후 약 용량이 늘어나는 것을 늦추는 것은 가능합니다. 많은 환자분들이 당뇨는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완치’가 약을 안 먹고 혈당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면 이러한 의미의 완치 역시 충분히 가능합니다. 또한 완치 여부를 떠나 이러한 생활습관의 변화가 향후 결국 문제가 되는 중한 합병증의 위험을 낮추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치료에 대한 회피로 합병증의 위험을 키우는 것,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로 합병증의 위험을 줄이고 나아가 약을 먹지 않고도 완치하는 것, 이중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200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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