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내부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부르는데, 이 능력은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에 대처하며 회복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항상성은 체온, 혈압, 혈당, 체액의 농도와 같은 중요한 생리적 상태를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하려는 몸의 자동 조절 메커니즘이다. 이 조절은 신경계, 내분비계, 순환계, 면역계를 비롯한 다양한 시스템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체온이 높아지면 땀이 나고 피부 혈관이 확장되어 열을 방출하고, 반대로 체온이 낮아지면 근육이 떨림으로써 열을 생성한다. 또다른 예로 자율신경계를 들 수 있다. 교감신경은 활동 시에 심장의 박동수를 높이고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올리며, 소화관의 운동을 감소시킨다. 부교감신경은 주로 휴식 시에 활성화되며, 심장의 박동을 느리게 하고 혈관을 확장시키며 혈류를 늘려 심신을 이완 상태로 유도한다. 적을 만났을 때나 위험에 부딪혔을 때와 같이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선 교감신경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상태가 평상시에도 지속된다면 우리 몸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협력으로 혈압과 심장의 운동이 일정 범위 이내로 적절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이렇게 항상성에 기반한 조절 능력 덕분에 우리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신체 기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항상성이 깨어지면 우리 몸은 본래의 기능을 잃게 되고, 이러한 변화는 질병으로 발현된다. 건강한 사람의 혈당 수치는 공복 시 70~100mg/dl 사이에 있고, 식후 2시간 기준 140mg/dL를 넘지 않는다. 하루쯤 금식을 하거나 반대로 설탕 범벅인 음식을 먹는다 해도, 혈액 내 포도당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항상성 능력에 따라 혈당 수치는 이 좁은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혈당 항상성을 유지하는 기능이 깨지면 공복이 길어질 때 저혈당 증상이 생기고 식후에는 혈당이 치솟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우리는 당뇨병이라 부른다. 혈압도 마찬가지이다. 휴식 시에 혈압은 수축기 120mmHg, 이완기 80mmHg 미만의 수치를 보이지만, 고혈압 환자의 경우 이 범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수축기 140mmHg 또는 이완기 90mmHg 이상으로 높아지게 된다.
항상성과 질병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나는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를 떠올리곤 한다. 소설의 주무대인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항해 도중에 폭풍우에 휘말리기도 하고 암초를 만나기도 한다. 중반부에는 잠수함이 호주 근처의 좁은 해협을 지나다 산호초에 좌초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해협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쉽게 빠져나가기 어렵고 위험한 지형으로 묘사된다. 위기에 빠진 승무원들은 동요하지만 노틸러스호의 선장인 네모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수면이 높아질 때를 기다리면 산호초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달의 공전 주기에 따라 인력이 변하면서 조수 간만의 차도 커지는데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선장의 말처럼 며칠이 지나 바다 수위가 높아지면서 노틸러스호는 산호초를 벗어나 항해를 계속하게 된다.
인체를 항상성이라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라고 생각해보자. 적당한 날씨와 평온한 바다라면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고 순조로운 항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배가 항해를 하면서 크고 작은 파도나 암초를 만나게 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우리가 만나는 스트레스는 항상성이라는 바다의 평온을 깨뜨리는 바람과도 같다. 거센 바람으로 파도가 사나워지면 순조로운 항해를 하기 어려운 것처럼, 외부의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커지면 건강의 필요조건인 항상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Captain Nemo Takes the Altitude of the Sun', from the book Twenty Thousand Leagues Under the Seas |
항해를 하면서 필연적으로 폭풍우나 암초를 만나게 되듯 우리가 살면서 항상성이 깨어지는 순간도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무사히 항해를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다음의 두 가지를 기억해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튼튼한 배와 항해 실력이다. 튼튼한 배라면 웬만한 파도에도 끄떡없이 헤쳐나갈 수 있겠지만 배가 부실하거나 항해 실력이 부족하다면 항로를 잃고 헤매거나 파손을 겪기도 할 것이다. 튼튼한 배와 항해 실력은 우리 몸으로 치면 기초 체력과 같은 것이다. 건강한 식단,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을 통해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것이 항상성이 흔들리는 순간을 견디고 지탱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둘째, 항상성이라는 바다의 수위를 유지해야 한다. 자연에서 바다의 수위는 시시각각 달라지지만 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는 없다. 암초에 걸린 노틸러스호가 항해를 재개하기 위해 며칠을 기다려야 했던 이유이다. 그러나 인체의 항상성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위가 낮아질 수도, 높아질 수도 있다. 습관적인 과로와 만성 스트레스는 항상성의 수위를 낮추는 주범이다. 바닷물이 빠지듯 항상성의 수위가 낮아지면 숨겨져 있던 암초가 모습을 드러내고 항해 중인 배를 위협한다. 배가 암초에 걸린 이후에야 우리는 건강에 이상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눈에 드러난 암초는 우리가 뒤늦게 느끼는 증상과도 같다. 당장 눈에 드러난 증상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닷물의 수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기초 체력을 키우는 건강한 생활습관은 여기서도 중요하다. 항상성을 고갈시키는 흡연, 과음을 피하고 과로와 지나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도 해당된다.
물론 중요한 부품의 고장으로 배의 작동이 멈추거나 선체가 파손되어 물이 차오르는 상황이라면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당장 수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돛을 올리고 수위가 높아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 이상이 느껴질 때 가까운 의원이나 병원을 찾는 것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전문가의 점검을 받고 수리가 필요한 문제가 발견되었다면 그에 맞는 처방과 도움을 받도록 하자.
항상성의 수위를 높이기 위해선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습관과 같은 기본적인 건강 관리법은 힘들기도 하고 효과도 금방 나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성을 키우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썰물 때 드러났던 암초가 밀물이 되면 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것과 같이, 항상성의 수위가 충분히 높아진다면 우리를 괴롭히던 증상도 자연스레 가라앉고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성은 우리 몸이 가진 가장 강력한 치유 도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항상성이라는 바다의 수위를 잘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항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