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이다. 누구나 늙고, 그 과정 속에서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을 어떻게 지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수명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기간을 말하며, ‘기대수명’이라고도 불린다. 1970년에 62.3년이었던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2023년 기준 83.5세로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OECD 국가 중 50년 만에 기대수명이 20년 이상 늘어난 나라는 대한민국뿐으로, 우리는 일본과 스위스 다음인 세계 3위의 장수 국가이다. 반면에 건강수명은 질병이나 신체적, 정신적 장애 없이 활동적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며, 같은 해를 기준으로 73.1세이다(WHO 통계). 이 지표도 자료가 있는 나라들 중에서는 높은 순위이므로 우리나라 국민의 노년은 꽤나 건강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사이에 여전히 10년의 차이가 있음을 고려하면, 우리 국민은 생의 마지막 10년을 질병과 장애에 시달리며 힘든 노년을 보내는 셈이다.
건강수명을 단축시키는 주된 두 가지 요인은 인지력 쇠퇴와 신체 기능 쇠퇴이다. 인지력 쇠퇴는 기억력 감소, 판단력 및 학습 능력 저하 등을 포함하며, 신체 기능 쇠퇴는 심폐지구력과 근력 감소, 관절의 유연성 저하 등을 의미한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신체 기능의 쇠퇴는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 글에선 주로 신체 기능의 쇠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앞에서 언급한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사이의 10년은 통계에 따른 평균적인 수치이므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생의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큰 어려움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이런 사람은 기대수명만큼의 건강수명을 누린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 노년에 건강과 신체 기능이 망가진 상태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길고 힘든 세월을 보내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커다란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나는 비슷한 나이인 두 명의 환자를 떠올리곤 한다. 80대 초반 나이인 A는 20년 전부터 고혈압을 앓았지만 약을 복용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혈압을 잘 관리해 왔으며, 무릎과 손가락에 퇴행성 관절염이 있지만 일상생활을 하기 위한 신체 기능은 잘 유지하고 있다. 혼자서도 식사를 준비하고, 장을 보고, 짧은 계단을 오르고, 나들이를 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종종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저녁엔 공원을 걷고, 주말엔 성당에 나간다. 이전에 영위하던 개인적,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환자 B의 경우 역시 나이는 80대 초반으로 비슷하지만 일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역시 오랫동안 고혈압을 앓고 있던 그는 60대 중반에 뇌졸중을 경험했다. 다행히 회복되어 일상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약간의 편마비가 남아 이전과 같은 수준의 활동을 하긴 어려웠다. 요추 협착증으로 인한 통증도 운동이나 활동적인 일을 피하는 원인이 되었다. 진료실에서 그는 종종 기운이 없고 어지럼증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건강 상태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70세 때 욕실에서 넘어져 생긴 대퇴골 골절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한동안 자리에 누워 지내야 했는데, 회복 이후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는 있었지만 근력과 신체 기능이 급격히 약해져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전에 즐기던 정원을 가꾸는 일이나 강아지와의 산책을 못하게 되면서 우울감도 깊어졌다. 그는 지금 요양시설 입소를 생각하고 있다.
두 환자의 사례는 생의 마지막까지 신체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신체 기능의 쇠퇴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 ‘급격한 쇠퇴’는 외부로부터 온 사고나 급성 질환, 예기치 않은 중증 질환으로 인한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발견된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겪는 변화가 예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큰 기능 저하를 일으키지만 치료와 재활을 통해 이전 수준에 가까운 회복이 가능하다. 두 번째 유형은 이와 달리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점진적 쇠퇴’이다. 심폐기능이 떨어지고, 근육의 힘이 약해지고, 관절의 유연성과 가동 범위가 줄어드는 변화를 말한다. 둘 중에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점진적 쇠퇴’이다. 급격한 쇠퇴는 누구나 겪는 것은 아니고 언제 찾아올지 예상할 수 없기에 예방도 어렵지만, 점진적 쇠퇴는 모두가 예외 없이 겪게 되며 어느 정도 예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수명을 깎아먹는 주범이 바로 이 느린 쇠퇴라고 생각한다.
이 그래프는 나이에 따른 신체 기능의 변화를 표현한 것이다. 70대 초반까지 완만한 하강을 보이다 이후 기울기가 가팔라지는 것이 일반적인 곡선이다. 반면에 앞에서 예로 든 환자 A는 노년에도 큰 변화가 없으며 80대에 들어서서야 기울기에 변화가 생긴다. 이와 달리 환자 B는 60대부터 기울기에 변화가 생기고 이후 몇 차례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한다. 가장 큰 하락은 낙상으로 대퇴골 골절이 생긴 시점이다. 이것은 사고라 볼 수도 있지만 만약 그의 신체 기능-근력이나 균형 감각, 순발력과 같은-이 더 좋았다면 낙상과 골절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점진적 쇠퇴’는 ‘급격한 쇠퇴’의 원인이 될 수 있어 더욱 중요하다. 악순환을 부르는 것이다.
쇠퇴의 기울기를 완만하게 줄이고 신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운동이다. 어떤 운동이든 도움이 되지만 심폐기능 유지를 위한 유산소운동, 근력과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을 병행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근력 운동은 바디프로필을 찍는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중년 이상의 나이에서 오히려 더 중요하다. 다양한 운동을,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 규칙적으로 꾸준히 해야 한다. 운동은 신체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양호하게 유지된 신체 기능은 운동을 할 수 있게 허락한다. 선순환이 유지되는 것이다. 환자 B의 사례는 이러한 선순환이 깨진 전형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저속노화법이 유행이다. 식단, 운동, 금연, 명상, 독서 등등 해야 할 것은 많은데 딱 한 가지만 선택한다면 무엇일까. 장수의학 전문가인 피터 아티아 박사는 그의 책 <질병해방>에서 ‘운동은 월등한 차이로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장수 약물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이 견해가 옳다고 확신한다. 다른 사람보다 천천히 나이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장 운동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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