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5일 수요일

이토록 사소한 것들

낡은 트럭이 한적한 시골길을 달린다. 배달할 석탄을 싣고 가던 트럭은 기운없이 걷고 있는 소년을 지나친다. 트럭을 모는 남자와 같은 마을에 사는 소년이다. 아이에겐 가족을 돌보지 않는 술주정뱅이 아빠가 있다.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운전석의 남자는 아이가 자꾸 신경쓰인다.

그러니까 이것은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담긴 클레어 키건의 소설은 내게 일찌감치 올해의 책으로 자리매김한 상태였으니,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소식에 곧바로 예매를 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원작 소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아쉽게도 영화에서 소설만큼의 풍부한 감정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소설의 이야기가 스크린으로 옮겨지고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은유와 상징이 줄어들고 서사의 구체성은 커진 결과일 것이다. 어쩌면 시와 같은 아름다운 문장들을 오롯이 스크린에 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인 빌 펄롱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이 소설에 비해 단선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펄롱의 아내, 단골 식당의 주인, 수녀원장 등의 인물들은 각자 위치는 다르지만 영화에선 모두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이들과 주인공 사이의 거리는 소설보다 영화에서 더 멀어졌다. 결과적으로 인물의 입체성은 줄어들었다. 감독은 관객들이 다른 인물보다 펄롱의 내면에 집중하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제한된 시간 내에 펄롱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고뇌와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선 다른 인물들에 대한 아웃포커싱이 어느 정도 필요했을 것이다.

사소한 아쉬움을 날리는 것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다. 그의 연기는 추앙받아야 마땅하다. 영화에서 그는 빌 펄롱 그 자체이며, 흔들리는 눈빛과 표정을 통해 유약함과 강인함이 복잡하게 포개진 인물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낡은 외투에 싸인 굽은 등과 어깨만으로 일상의 고단함과 삶의 무게를 절절히 깨닫게 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펄롱의 아내는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라고. 가진 거 잘 지키고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살면 우리 아이들은 험한 일을 겪지 않을 거라고. 현실에서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대개는 이렇게 산다. 적당히 연민하고 적당히 외면하면서.

하지만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했다.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까지 증명해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연민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행동은 어디에서 기인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도 소설의 주인공인 펄롱처럼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리고 이들이 외면하지 못해 행했던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큰 변화를 목격하기도 한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가 광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소설과 영화의 결말에서 펄롱이 선택한 행동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란 제목은 펄롱의 행동을 만들어낸,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뜻할 것이다. 펄롱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찰스 디킨스의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받고 싶다고 하는데, 소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소한 것들이 모여 인생의 총합이 된다 (Trifles make the sum of life)'.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고 했던 한강 작가의 말처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수많은 선의가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설도, 영화도, 현실도 모두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야말로 이런 사실을 떠올리기 적당한 때 아닌가. 그러니 아직 보지 않은 분들께 올해가 가기 전에 추천한다. 개인적으론 영화보다 소설이 나았지만 어느 쪽도 좋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2024년 12월 19일 목요일

R.I.P. 서동욱님

전람회 1집을 다시 들었다. 서해 바다까지 한 시간 반, 운전을 하며 앨범 전체를 듣기에 마침 적당했다. 

이 음반은 수백 번쯤 들었을 것이다. 앨범 전체로만 따지면 지금까지도 아마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이 아닐까. 그래서 모든 곡들이 각별하다. 

지금도 이 음반을 듣던 1994년의 어느 밤들이 생각난다. 

치기로 가득하고 여리고 어설프기 짝이 없던 때였지만, 전람회의 노래들은 엉망이었던 하루도, 비루한 영혼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느껴지게 해주곤 했다.   

이 앨범엔 서동욱의 목소리가 담긴 트랙이 두 개 있다. '여행'과 '향수'가 그것인데, 그의 목소리는 보컬이 아닌 대화와 나레이션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여행'의 첫머리에 담긴 대화에선 신해철의 목소리도 잠깐 등장한다. 그는 마지막 곡인 '세상의 문 앞에서'에도 김동률과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때의 세 사람 중 십 년 전에 한 사람이, 어제 또 한 사람이 그가 썼던 노래 가사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떠났다. 모두가 내 청춘을 지탱해주었던 이들이었다.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12.13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광장엔 일찍부터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의료 지원 활동은 오후 5시부터로 예고되어 있었다. 서울시 의사회에서 전문의 두 분과 전공의 한 분이, 우리쪽에선 두 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널찍한 천막을 준비해주어서 의료진과 도움을 주시는 분들 모두 천막 안에서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서울시 의사회에서 의료 장비와 의약품을 넉넉하게 가져오셨다. 의원 하나를 차려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겨우 가방 하나에 혈압계와 약품 몇 개를 챙겨간 우리가 면목이 없을 정도였다. 서울시 의사회에선 평소 쪽방촌 봉사를 정기적으로 나가기에 의약품과 장비가 세팅되어 있다고 했다. 모두에게 감사했다.

구호와 외침, 겨울의 대기를 울리는 음악과 군중의 함성으로 바깥 공기는 달아올랐지만 천막 안은 내내 대체로 평온했다. 환자는 뜸했다. 혈압을 재러 들르신 어르신 한 분이 커프를 팔에 두른채 한참 넋두리를 하다 가셨고, 감기 증상을 호소한 환자 서넛이 있었다. 표결 당일이 아닌 전날이라, 모인 이들의 숫자가 지난 토요일만큼은 아니어서일 것이다.

한 쌍의 남녀가 천막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와 토퍼를 기증해도 되느냐 물었다. 의료 부스라 환자용 베드가 필요할 것 같았나 보다. 천막 한쪽에 얇은 캠핑용 매트리스가 있었는데, 그 위에 토퍼를 올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래지않아 두 사람이 돌돌 말린 새 토퍼를 가져왔다. 두께가 꽤 도톰해서 쓸만해 보였지만 설마 환자가 저기 누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엔 괜한 생각이었다.

8시가 넘어 공식 집회가 끝나고, 근처 2차 집회와 공연 장소로 옮아가는 사람들이 천막 앞을 지났다. 이제야 도착해 집회 장소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회 앞에 남은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탄핵 구호를 외쳤다. 국회 앞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지킨다고? 언제까지?

의료 지원 부스는 10시까지 운영될 예정이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강해졌다. 바깥을 지나는 사람들도 잔뜩 웅크린 자세였다. 의약품과 장비를 박스에 넣고 자리를 마무리하던 때였다. 젊은 여성 한 명이 비틀거리며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이십대 초반쯤 되었을까. 기운이 없는지 의료진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었지만 다행히 혈압은 정상이었다. 앉아있기 힘들어하는 환자를 부축해 구석의 토퍼-아까 그 토퍼다-에 눕히고 전기난로를 환자 쪽으로 옮긴 뒤 팔다리를 주물렀다. 손발이 얼음처럼 찼다. 탈수가 심했고, 과호흡으로 호흡곤란도 있는 상태였다. 천막엔 수액 세트가 없었기에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한 뒤 손발과 등에 핫팩을 붙이고 두꺼운 옷으로 덮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순간 119를 부를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환자 상태가 나아지면서 그간의 사정도 들을 수 있었다. 함께 집회에 나온 또래들을 안내하고 연락하는 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감기가 심하게 걸렸는데 약을 먹으면 너무 졸릴까 걱정이 되어 먹지를 못했다고 했다. 졸린 걸 왜 걱정을 할까 의아했는데, 이 친구들이 국회 앞에서 릴레이로 밤새 농성을 한단다. 하루종일 뛰어다니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로 조금전까지 무거운 시위 용품을 옮기다가 기운이 빠지고 쓰러질 것 같아 앞에 보이는 천막에 무작정 들어왔다고 했다.

따뜻한 물과 초콜릿을 먹고 기운을 좀 차렸는지, 조금만 더 있다가 동료들이 있는 집회 장소로 다시 가겠다고 한다. 병원이나 집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고개를 젓는다. 그냥 기운이 빠져서 그런 거고 본래 건강하다고. 삼십분만 쉬면 괜찮다고. 지난 주말에도 밤샘 시위를 했었기에 내 상태는 잘 안다고. 다음 차례에 시위를 이어갈 사람들이 올 때까지는 있어야 한다고. 밤이 늦은 시간이라 연락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결연한 표정에 절박한 말투였다. 결국 우리는 그를 더 말리진 못했다. 그는 자신 때문에 부스를 닫지 못하는 상황인 것을 알았는지 연신 우리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돌아오는 길의 9호선 지하철은 시위를 마친 군중으로 가득했다. 군중의 다수는 젊은 여성이었다. 상기된 표정의 얼굴들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절박하게 만들었나?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절실하게 만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