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토요일, 진료 중에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딸은 심심하다고 전화하기도 하지만 아들은 필요한 경우에만 전화를 한다. 학교를 안가는 토요일 아침이라 늦잠을 잤을텐데, 여느 토요일보단 이른 시간이다. 이럴 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마음 한켠이 덜컹한다. 마침 다음 환자가 들어오기 전이라 급히 전화를 받았다.
조급한 내 마음과 달리 아들 목소리는 느긋하다. 그날 오후에 기차를 탈 예정이었는데, 기차 시간과 언제 출발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막상 별것 아닌 용건임을 확인하자 긴장이 풀리며 살짝 짜증이 났다. 간단히 출발 시간을 이야기해주고 끊으려는데 아들이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지 말끝을 흐리고 우물쭈물한다.
"아빠 진료 중인데, 더 할 말 있니?"
"응...... 그게...... 이상한 꿈을 꾸었어."
"무슨 꿈인데?"
아들이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꿈을 꿨길래.
"꿈에서...... 아빠가 죽었어. 아빠가 죽는 꿈을 꿨어."
그러더니 서럽게 운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좀 우습기도 해 뭐라 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엔 환상과 실재가 뒤섞여 실제로 겪은 일보다 더 생생하고 또렷하게 각인되기도 한다. 구체적인 내용이 잊혀진 뒤에도 그때 느꼈던 감정과 기분은 오래 남는다.
훌쩍임은 이내 잦아들었다. 중학교 3학년. 터져버린 울음이지만 악몽을 꾸었다고 계속 울기엔 너무 커버린 아이다.
아빠 괜찮다고, 좀 이따 집에서 보자고 아이를 다독이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정신없이 진료를 마치고 집에 가면서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종종 자는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었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는 행복과 동시에 소멸과 부재에 대한 불안을 느끼게 한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트로트 가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마음을 노래했는데 아이들의 자는 모습이 딱 그랬다. (물론 깨어 있을 땐 반대의 경우도 자주 있다.)
좀 유치하지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수백 번은 느꼈을 그 아이러니한 감정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받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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