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4일 토요일

영화 '다음 소희'를 보았다.

일주일 전 나는 베를린에 있었다.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모두가 한 번은 들른다는 브란덴브루크문 광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옛 동독의 영토였던 광장에서 프로이센군의 개선문이었던 브란덴브루크문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은 뒤 광장 옆의 홀로코스트 기념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식 명칭은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로, 높이가 다른 직육면체 돌들이 빽빽이 들어선 공간이다. 돌들은 마치 관이나 비석처럼 보여서 중앙의 키보다 높은 돌들 사이를 지날 때는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은 유대인 학살의 기록으로 가득한 지하 기념관을 둘러보는 내내 이어졌다. 거리로 나와 바깥 공기를 쐬고서야 답답함을 떨칠 수 있었다. 이월의 바람이 아직 찼다. 우울한 기운을 내치듯 일부러 크게 심호흡을 했다.

기념관의 남쪽 경계는 한나 아렌트 거리라 이름붙은 길이다. 나치를 피해 고국인 독일을 버렸던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을 통해 악인은 생각보다 평범하고 흔히 행하는 일도 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그는 "그런 악한 행위는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데서 나온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비판적 사고가 없다면 상황에 따라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평론가 신형철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썼던 다음의 문구도 비슷한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현장 실습생의 사망 사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장 최근은 2021년 여수에서 요트 바닥 청소를 하던 고등학생이 익사한 사건이었던 것 같다.(기사를 찾아 연도를 확인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엔 현장 실습을 둘러싼 문제를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일부 업체의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아이의 죽음을 적당히 안타까워 하며 넘겼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서야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대부분의 사고가 그렇듯, 문제는 구조적이고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현장 실습생을 저렴한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회사, 실습을 보내는 데만 급급한 학교, 평가를 소홀히 한 교육부, 관리 감독을 외면한 고용노동부 모두가 가해자였다. 하지만 등장 인물 중 누구도 대단한 악인이라 할 만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평범한, '복잡하게 나쁜' 사람들이다. 콜센터는 실적을 이유로, 교육부와 학교는 취업률을 이유로 아이들을 구석으로 내몰았다. 사실 이런 건 우리 모두에게 퍽 익숙한 평가 잣대들 아니던가. 책임을 묻는다면 모두가 그저 자기 일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따져 묻는 형사에게 교육부 장학사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벽면 가득한 취업률 평가 도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적당히 좀 하십시다."

영화를 보며 소희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어른이 없었다는 점이 가슴 아팠다. 부모, 선생님, 회사 상사, 어느 누구도 소희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나 회사 그만둘까, 하는 소희의 말은 부모 앞에서도 혼잣말이 될 뿐이다. 아이의 말을 들어준다고 현실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꽃같은 아이의 죽음은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소희의 옆엔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만으론 부족하다. 정글같은 사회를 살아내려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이 꼭 필요한 것이다.

얼마 전 김장하 선생의 다큐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반면에 나는 살면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법적으로 어른이 된 지 삼십 년이 되었지만 다큐를 보는 내내 내가 어른이란 확신이 들지 않아 자괴감도 들었다. 선생의 발끝을 따라가기도 어려울 것이나, 그래도 내 입장에서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곳에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른의 역할을 조금은 할 수 있겠다는. 그리고 어른을 필요로 하는 순간과 장소를 지나치거나 외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애쓰지 않는다면 금새 잊을 것이다. 나 역시 복잡하게 나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

콜센터 근무 환경이나 현장 실습생 제도의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조금은 변화도 있었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걸로 보인다. 아이들의 죽음은 해를 거르지 않고 반복된다. 그러니 소희가 일했던 콜센터가 지금도 어디에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보고 일주일 전 베를린에서의 시간을 떠올리게 된 건 홀로코스트 기념관 안에 적혀있던 문구 때문이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의 말이 그것이다.

"It happened therefore it can happen again: this is the core of what we have to say."

2023년 3월 2일 목요일

음식은 약이 아니다

오십대 남자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하던 중이었다. 혈당 수치 오른쪽에 정상 범위보다 높음을 의미하는 붉은색 화살표가 선명했다. 

“혈당이 높습니다. 작년보다 더 높아졌어요. 지금 수치는 당뇨병에 해당합니다.”  

공복 혈당 장애라 불리는 당뇨병 전 단계에 접어든 지도 벌써 몇 년 되었으니 당뇨병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되풀이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통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뇨병이 온 건 아니겠지요?”

일찍이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 감정을 차례로 겪는다고 했다. 죽음의 경우만큼 강렬하진 않겠지만 만성 질환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도 비슷한 감정의 수순을 거친다. 지금은 그중 첫 번째인 부정 단계라 할 수 있다. 환자들은 대개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그와 눈을 맞추고 천천히 설명했다. 

“아뇨. 당뇨병이 온 겁니다. 이제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죠.”

“제 가족 중에 당뇨병 환자도 없는데 왜 저만 당뇨병이 생겼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두 번째, 분노의 단계다.

“유전적인 원인 외에도 다른 여러 원인들이 있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내게 왜 당뇨병이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사실 지금은 왜 당뇨병에 걸렸는지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럼 이제 약을 먹어야 하나요? 당뇨병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고 들었는데요.”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죠. 하지만 당뇨병 초기이고 심하지 않은 상태니 먼저 생활 습관을 바꿔서 조절해 봅시다. 변화가 없으면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침울한 표정을 짓던 그가 조금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뇨병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 대부분은 평생 약을 먹기를 부담스러워 한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그럼 당뇨병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요?”

우울과 타협 단계. 다섯 단계 감정이 반드시 순서대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중간 단계를 건너뛰기도 하고 타협을 했다가 다시 분노 단계로 돌아가기도 한다. 지금은 잠시 앓고 지나갈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자연스레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이를 것이다. 그때까지는 해야할 일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운동은 걷기를 하고 계시니 조금 더 늘려보지요. 속보로, 숨이 차고 땀이 날 정도로 강도를 높여서 빨리 걷는 게 좋습니다. 매일, 최소한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은 해야 합니다.”

“펜을 빌릴 수 있을까요?”

모니터 옆 철제 펜꽂이에서 볼펜을 꺼내 환자에게 건넸다. 그는 혈당 검사 수치 옆에 방금 들은 말을 기록했다. 반듯한 글씨였다. 나는 그가 기록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다음은 체중 감량입니다. 한 달에 일 킬로그램씩. 석 달에 삼 킬로그램만 줄여보세요.”

그는 선생님의 강의를 요점 정리하는 학생처럼 볼펜을 부지런히 놀렸다. ‘체중 줄이기, 3킬로 / 3개월’이라 적고 앞쪽의 숫자 3에 동그라미를 두 번 그렸다. 

“마지막으로 식단입니다. 체중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먹는 양을 줄여야 합니다. 지금 먹는 양에서 삼분의 일을 덜어내고 삼분의 이만 먹는다고 생각하세요. 단맛이 나고 당분이 많은 간식은 피하되, 무엇보다 골고루 드시는 게 중요합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정중하게 물었다. 나는 설명을 멈추고 그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의 얼굴에 기대 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다음에 이어질 질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뭘 먹으면 혈당이 내려갈까요? 당뇨병에 도움이 되는 식품 같은 게 없을까요?”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다. 이 질문은 만성 질환 환자와의 대화 중에 주로 타협 또는 수용 단계에서 등장한다. 내게는 어렸을 적 그림책에서 보았던 전래 동화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옛날 어느 마을에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가 딸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엄동설한에 딸기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딸기를 먹으면 병이 나을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말에 효심이 깊은 아들은 딸기를 구하기 위해 눈 덮인 산을 올랐다. 추위를 무릅쓰고 산 속을 헤매던 효자 앞에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등에 태우고 딸기가 있는 곳에 데려다 주었다. 아들이 구해온 딸기를 먹은 어머니는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어서 어떤 때는 효자가 효녀로, 호랑이가 산신령으로, 딸기가 봄나물이나 홍시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도 주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호랑이를 감동시킨 효심은 놀랍지만 효심에 대한 설화는 많기에 이 이야기가 특별하진 않다. 내가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음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로워서이다. 한해 동안 병치레를 피하기 위해 대보름날에 오곡밥이나 부럼을 먹던 풍습을 보면 음식이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개념이 꽤나 오래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래 전 약도 의학 지식도 부족했던 시대엔 음식과 약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당시엔 풀뿌리를 빻거나 나무 열매를 달여서 약으로 쓰기도 하고, 관절이 아픈데 좋다는 음식을 기침이나 두통에 쓰기도 했을 것이다. 우연이든 아니든 이렇게 만든 약을 먹고 어떤 이의 병세가 좋아졌다면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거나 책으로 쓰이기도 했을 것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약과 음식은 그 근본이 동일하다는 뜻으로, 기원전 중국 진한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의서 <황제내경>에 적힌 말이라 한다. 그러니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예수의 탄생만큼이나 오래된 셈이다. 조선 선조 때 허준이 집필한 <동의보감>에서도 같은 말을 찾을 수 있다. 중국과 한국 등 동양 의학에선 체질과 음식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해서인지 음식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개념도 일찍부터 더 깊게 뿌리내렸던 것으로 보인다.(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는 설도 있지만 출처가 확실치 않다.) 쑥이나 냉이, 도라지, 더덕 등의 식재료는 한약재로도 알려져 있다. 심지어 이런 약재를 넣어 담근 술도 약(藥)주라고 부른다. 

음식과 관련된 믿음은 지금도 흔하다. 가끔 가는 동네 콩나물국밥 집 벽엔 메뉴판과 함께 염증을 억제하고 대사를 촉진한다는 콩나물의 놀라운 효능에 대한 설명이 걸려있다. 어떤 질병이든 좋다는 음식이 있다. 책이나 방송은 이를 되풀이해 재생산한다. 고향을 소개하는 다큐에서도, 자연인이 등장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어느 병에 좋다는 음식을 만들고 먹는 모습은 빠지지 않는다. 오죽하면잘 먹고 잘 사는 법이란 이름의 프로그램도 있었을까. 요즘은 유튜브가 한몫 한다. 조회수를 위한 자극적인 제목은 필수이다. 어떤 음식은 먹으면 큰일날 것처럼, 또 어떤 음식은 안 먹으면 큰일날 것처럼 말한다. 이 과정에선 종종 식품의 종류보다 구체적인 개별 식품이 강조된다. 그냥 채소보다는 브로컬리가, 그냥 견과류보다는 브라질너트가, 그냥 가금류보다는 오리고기가 특효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는 식이다. 당뇨병을 예로 들면 여주, 돼지감자, 노니, 누에 등, 스테디셀러만 해도 여러 가지이다. 다들 각각은 흠잡을 데 없는 음식이지만 따로 찾을 만큼 병을 치료하는 특출난 효과는 없다. 하지만 음식점 벽 메뉴에서까지 음식의 효험에 대한 과장된 설명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보니 진료실에선내가 어디가 안 좋은데 뭘 먹어야 좋아지느냐는 질문도 흔히 접한다. 건강기능식품의 과도한 인기 이면에도 음식이 약이 된다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음식은 건강에 중요하다. 하지만 음식으로 모든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 관리에 있어 식이 요법은 약물 치료 못지 않게 중요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식이는 개별 음식 한두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음식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식단 전체를 의미한다. 기존의 잘못된 식단은 그냥 두고 특정 음식만 더해 먹는다고 마법같은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 음식만 과하게 먹으면 균형이 깨지거나 영양실조가 생긴다. 그러니 내 답을 기대하는 환자에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뇨병에 특효인 식품 같은 건 없습니다. 음식은 약이 아니에요.”

2023년 1월 24일 화요일

중용을 지키는 건강 습관

<논어(論語)> 선진편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성어가 있다. 자공이 공자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한지 묻자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럼 자장이 더 낫다는 뜻입니까”라 다시 물었고 이에 대한 공자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논어와 더불어 사서에 속하는 <중용(中庸)>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중용은 군자의 예(禮)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한결같은 마음을 의미한다. 

옛 현인들의 말씀 중에 틀린 게 없다는 걸 종종 깨닫는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삶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하지만 그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해가 갈수록 더 깊이 실감하게 된다. 공자는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 할 도리로 중용을 말했지만 중용의 이치는 사람의 말과 행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춘 생리 기능도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온은 36-37도 가량을 유지하고 안정 시에 심박수는 60에서 100회 사이에 있다. 굶거나 과식을 해도 건강한 사람의 혈당은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고혈당과 저혈당을 일으키는 당뇨병에서 볼 수 있듯이, 중요한 생리 기능과 관련된 수치가 지나치거나 모자란다면 대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이다.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은 혈액 검사 결과에서 지나치거나 모자란 수치에 붉은색 화살표를 붙여 표시해주는데, 환자의 검사 결과를 열었을 때 붉은색이 보이면 순간 긴장하게 되고 반대의 경우엔 마음이 편안해진다. 공자가 인체의 생리 기전을 알았다면 적정 범위의 검사 결과를 유지하는 것 또한 예(禮)라 칭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건강과 관련된 생활 습관에서도 중용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식습관이다.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활 습관으로 식습관과 더불어 흡연, 음주, 운동, 수면 등이 흔히 꼽힌다. 모두가 다 중요하지만 건강한 식습관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본다. 담배와 술은 피할 수록 건강에 좋고, 수면이나 운동의 경우엔 부족했을 때가 문제다. 애초에 답은 한쪽 방향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니 어떤 게 좋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알고 있는 정답을 실천하기 어려울 따름이다. 하지만 음식이나 영양소의 경우엔 지나쳐도 문제, 모자라도 문제이다. 중용을 지키는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건강에 이롭거나 해롭다는 음식은 수없이 많아서 골라 먹기가 쉽지 않다. 건강에 좋은 음식이나 식단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나, 무엇을 얼마만큼 먹어야 할지 모르니 다른 생활 습관과 달리 일단 정답부터 고민이다. 적당히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하지만 그 ‘적당히’의 기준도 음식에 따라, 영양소에 따라, 내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지니 더 어렵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중용의 실천은 우선 매일 먹는 음식의 양에서 시작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음식의 열량이다. 내게 필요한 적절한 열량은 기초 대사량과 활동에 의한 대사량을 합친 것과 같은데, 여러 계산 방법이 있지만 대개 하루에 여성은 2000칼로리, 남성은 2500칼로리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운동량이 많거나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 등 신체 활동량이 많다면 이보다 더 많은 열량을, 반대로 주로 앉아서만 생활하는 사람은 더 적은 열량을 필요로 한다. 하루이틀 폭식을 한다고 체중이 쉽게 늘진 않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열량보다 더 많이 먹는 습관을 오랫동안 유지하면 체중이 늘어 비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필요한 열량보다 적게 먹는 습관을 유지하면 체중을 줄일 수 있다. 보통 다이어트 식단에서 하루 1500-1800칼로리 정도를 처방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내가 하루에 먹는 음식의 열량이 궁금하다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식단 분석 기능을 갖춘 애플리케이션만 해도 수십 종류이다. 먹은 음식을 기록하면 열량뿐 아니라 영양소별 섭취량까지 분석해준다. 식사를 일일이 기록하기 번거롭다면 음식 사진만으로 분석을 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식단 전체의 열량을 확인했다면 다음은 개별 영양소를 돌아볼 차례이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뇌와 장기의 활동, 근육의 움직임을 위한 연료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를 생성하는 영양소는 3대 영양소, 흔히 탄단지라고 부르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1그램에 4칼로리, 지방은 1그램에 9칼로리의 열량을 만들어낸다. 비타민, 미네랄과 같은 영양소에 비해 섭취량이 많아 이들을 다량영양소(macronutrient)로 분류하는데, 이들 영양소에 대해선 에너지 적정 비율(acceptable macronutrient distribution ranges, AMDR)을 두고 있다. 총 에너지(열량)에서 해당 영양소가 차지하는 비율의 적정 범위를 말하며, 탄수화물 55-65%, 단백질 7-20%, 지방 15-30%이다. 이 수치는 범위를 벗어났을 때 만성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들을 기반으로 정해졌다. 세 영양소 간의 비율과 균형이 깨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해야 하니 여기서도 중용의 이치가 적용된다 하겠다.

한국인의 일반적인 식단은 대개 이 적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202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전체 열량에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60:16:24로 적정 범위 내에 있었다(그림). 하지만 이는 평균 수치일 따름이며 모두가 적절히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정 범위를 넘어서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먹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세 영양소의 비율은 특히 나이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노인 연령에선 탄수화물 섭취가 늘고 단백질과 지방의 비율이 줄어든다. 낮은 가계 수입, 사회적 고립, 건강 문제 등으로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노인의 식단이 단순, 빈약해지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로 서양에선 이를 ‘tea and toast syndrome’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밥, 국, 김치와 밑반찬 등으로 식사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육류나 생선이 없으므로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 된다. 실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도 60세 이상에선 탄수화물의 비율이 65%를 초과하고 70세 이상이면 더 높아진다. 이렇게 탄수화물 비율이 너무 늘면 대사증후군, 당뇨병 등의 위험이 커진다. 근육량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 섭취가 줄어 노인의 근감소증 위험도 높아진다. 

그림. 한국인의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섭취 비율 변화
(2011-2020 국민건강영양조사)

지방 섭취가 많은 서양 기준에서 보면 한국인의 식단은 저지방, 고탄수화물 식사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탄수화물 섭취량은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다. 10년 전에 비하면 탄수화물의 비율이 5퍼센트 정도 줄었다(그림).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단백질과 지방 비율이 높아지는데, 이러한 변화는 젊은 연령층에서 더 뚜렷하다. 특히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포화 지방의 섭취량이 젊은 연령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노인의 경우는 탄수화물 과잉과 단백질 섭취 부족이, 청년층에선 단백질과 포화 지방 섭취 과잉이 빈번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서구식 식생활로의 변화와 더불어 체중 감소 목적의 저탄수화물 식단이 유행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은 단기적으론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나 포화 지방의 섭취가 지나치면 나쁜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는 이상지질혈증과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적정 비율을 지켜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다. 식품군에 따라 곡류, 고기와 생선류, 채소류가 하루 식사에 골고루 포함되도록 한다. 적당한 양을 먹으려면 식사를 천천히 하고, 한끼를 과하게 먹었다면 다음 끼니는 다소 모자란 듯 먹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내 어머니께서는 늘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도록 하라는 공자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군자의 예를 체득하는 것이 어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던가. 이번 설 명절에 친가에 갔을 때도 팔순이 가까운 노모께서는 당신 말씀과 달리 끼니마다 음식을 지나치게 차려 주셨다. 음식 맛은 두말해 무엇하랴. 매번 과식을 하고 말았으니, 중용의 실천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참고문헌

* Oh SW. Current status of nutrient intake in Korea: focused on macronutrients. J Korean Med Assoc. 2022 Dec;65(12):801-809.


2022년 12월 23일 금요일

기술의 발전을 생각하다.

최근 갑상선 기능 항진증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에서 호르몬을 과하게 만들어내는 병이다. 평소보다 피로가 심해 검사를 했지만 과로 때문으로 생각했고, 채혈을 할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호르몬 수치에 이상이 있을 거라 예상하진 않았다. 다른 증상들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상선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체중이 줄고 심박수가 빨라지며 숨이 차거나 손이 떨린다. 불면증을 겪기도 하고 설사와 같은 위장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몇 시간 뒤 확인한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정상 범위보다 훨씬 위쪽에 있었다. 그제서야 최근에 증상이 있었던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체중이 1-2킬로그램 정도 줄긴 했다. 평소보다 잠을 설쳤던 것도 같고, 짜증이 늘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것이 과도한 호르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갑상선 이상을 의심하지는 못했으니 아내가 검사를 받아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면 증상이 더 심해진 뒤에야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진료실에서 익숙한 질병임에도 막상 내 문제는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처방전을 챙겨 퇴근을 준비하는데 아이폰 건강 어플리케이션의 알림이 떴다. 애플 워치와 연동된 스마트폰은 가끔 건강 관련 지표의 추세 변화를 알려준다. 대개는 걷기, 운동량, 소비 칼로리 등에 대한 것이고, 지난 달에 비해 걷기 양이 줄었다며 가벼운 경고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 보는 내용이었다.

‘지난 5일 동안 휴식기 심박수가 평균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래프는 최근 닷새 동안의 분당 심박수가 늘었음을 보여주었다. 큰 변화는 아니었다. 겨우 10회도 안 되는 변화였고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니 스스로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그 미묘한 변화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갑상선 이상을 진단받은 날에 알림이 온 것은 그저 우연일 수도 있지만 조금은 놀라웠다.


겨우 분당 69회에서 77회로의 변화였다.

심장 박동에 이상이 생기는 병인 부정맥을 진단하는 표준 검사는 24시간 심전도(홀터 검사)이다. 이 검사는 장비를 받고 반납하는 과정에서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검사 하는 날은 샤워나 운동 등 일상 생활에도 제약이 있어 여러모로 번거롭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부정맥의 속성상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최근엔 가슴에 붙여 일주일 이상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작은 패치 형태의 기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그리고 편하게 측정 가능한 방법일수록 심장 박동의 변화를 발견해내기에 용이하다. 심전도 측정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워치가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마트 워치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부정맥을 직접 발견한 환자의 사례는 이제 흔한 뉴스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애플 워치와 핏빗의 심방세동 진단 기능을 확인한 연구가 각각 NEJM과 Circulation 저널에 발표되기도 했다. 조만간 심장 박동을 읽는 기능에 관한 한 디지털 기기가 의사의 진단을 대체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며칠 전엔 디지털 기기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있었다. 고혈압 환자에게 생활습관 관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저염식을 권하자 환자의 아내가 잘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염도 측정기 이야기를 꺼냈다. 사나흘에 한 번씩 남편의 소변을 받아 염도를 측정한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싱겁게 먹기 위해선 우선 내가 얼마나 짜게 먹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지만 사람의 입맛엔 차이가 있어 스스로 정확히 알기 어렵다. 싱겁게 먹는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이러한 이유로 병원에서는 환자의 24시간 소변을 모아 나트륨 함량을 측정한다. 섭취한 나트륨의 대부분은 소변으로 배설되므로 이는 싱겁게 먹는지 묻는 것보다 훨씬 정확한 방법이다. 하지만 일상 생활을 하면서 하루 동안 소변을 모으기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염도 측정기는 소변을 받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훨씬 간편한데다 매일의 식단에 따른 변화까지 알 수 있다. 앞의 환자의 경우에도 외식을 한 다음날엔 매번 소변의 염도가 높아져서 되도록 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내가 먹는 음식에 따른 소금 섭취량 변화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으니 저염식을 실천하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나중에 검색을 해보고 염도 측정기 종류가 제법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과 연동이 되는 제품도 보였다. 대개는 음식의 염도 측정에 쓰이지만 소변의 염도를 측정하는데 활용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진료실에서 이런 환자를 만난 건 처음이었기에 저염식을 위한 노력을 칭찬하고 격려해야 마땅했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순간 머리 속에 염도 측정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컵에 샛노란 소변을 받아 조심스럽게 측정기를 담그는, 약간은 민망한 그 광경이. SF 영화 ‘아일랜드’의 첫머리에는 주인공이 소변을 보자 곧바로 변기 위의 스크린이 나트륨 과다를 경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언젠가는 이렇게 염도를 분석해주는 변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고혈압 환자들은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자연스레 전날 먹은 소금의 양을 알게 될 것이고, 나도 민망한 광경을 떠올리지 않고 소변의 염도를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불안 때문에 검사를 자주 받기도 한다. 일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고 유방외과를 다니는 내 환자 한 분은 다른 병원에서도 추가로 두세 달마다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있었다. 최근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검사를 너무 자주 받을 필요 없다고 충고했는데, 내 말이 유난스런 행동을 나무라는 듯이 들렸는지 그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나는 환자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지 못한 데에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불안하니까요. 마음 같아선 집에다 기계를 두고 매일 검사하고 싶어요.” 

물론 암 수술을 받은 환자라 해도 매일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의 바램과 같이 환자 스스로 스캔할 수 있는 기기가 나올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검색대를 통과하거나 거울 앞에 서는 것처럼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이라면, 매일 검사를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주, 그리고 스스로 검사할 수 있는 기기라면 연속혈당측정기를 빼놓을 수 없다. 손가락 끝을 침으로 찔러 혈액으로 검사하는 기존 방법은 통증과 번거로움으로 검사 횟수에 한계가 있다. 반면 팔뚝에 붙이는 이 조그만 기기는 피부 아래 삽입된 센서를 통해 혈당 수치를 5분마다 자동 측정해 스마트폰에 전송하고, 이를 통해 환자는 일상 생활에 따른 혈당의 변화를 즉각 알 수 있다. 혈당을 많이 올리는 음식이나 운동의 효과를 실감하게 되어 자연스레 생활 습관의 중요성도 깨닫는다. 연속혈당측정기는 국내외 당뇨병학회의 진료 지침에도 포함될 만큼 효과를 입증했다3). 측정기를 처음 시험 삼아 사용했을 때 나는 하루 열 번 이상 혈당 수치를 확인했다. 예전이라면 그만큼 손가락을 찔러야 했겠지만 이 기기라면 몇 번을 확인하든지 스마트폰을 팔뚝에 살짝 대기만 하면 된다. 현재는 1-2주 동안 사용하는 제품이 대세지만 6개월까지 사용할 수 있는 이식형 제품도 개발되었으니 앞으로 편의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눈부시다. 손가락만 대어도 심전도를 그려내는 시계와 실시간으로 혈당을 기록하는 측정기는 그 자체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기술이 만들어낸 진정한 성취의 지점은 의료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관계와 역할의 변화에 있다. 병원을 방문하고 의사를 만나야 가능했던 많은 일들이 이제 환자 손에서 이루어진다. 의료 공급자에게 쏠려있던 헤게모니는 점점 소비자인 환자에게로 이전될 것이다. 일찍이 미래 의학 전문가 에릭 토폴은 “The doctor will see you now. (의사 선생님께서 지금 진료해 주실 거에요.)”란 말은 미래에 “The patient will see you now.”로 바뀔 것이라 했다. 이 전망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가 언제 실현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삼십 년 전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금새 가능해질 거라 기대했던 암과 난치병 정복은 유전체 지도가 완성된 지금도 요원하다. 그렇다 해도 유전체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체에 대한 지식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해진 것은 분명하다. 과거 유전체 프로젝트에 쏟아지던 기대와 찬사는 이제 디지털 기술을 향하고 있다. 그러니 기대만큼의 변화가 없더라도 서두르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변화가 지속되리란 사실은 확실하다. 우리는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술이 만들어가는 성취를 즐기면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Perez MV, Mahaffey KW, Hedlin H, et al. Large-scale assessment of a smartwatch to identify atrial fibrillation. N Engl J Med 2019;381:1909-17.

2. Lubitz SA, Faranesh AZ, Selvaggi C, Atlas SJ, McManus DD, Singer DE, et al. Detection of Atrial Fibrillation in a Large Population Using Wearable Devices: The Fitbit Heart Study. Circulation. 2022;146:1415-24.

3. 에릭 토폴.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 (The Patient Will See You Now: The Future of Medicine Is in Your Hands). 청년의사. 2015.


2022년 10월 10일 월요일

애주가를 위한 변론

학회에서 음주를 주제로 한 세션을 듣던 중이었다. 마지막 강의는 심뇌혈관 질환 환자에 대한 상담이었는데 적정 음주 기준에 대한 설명에 이어 ‘술을 끊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슬라이드가 등장했다. 심뇌혈관 질환, 예를 들어 뇌졸중을 앓고 회복한 환자가 이전에 과음을 해왔다면 의사는 당연히 술을 끊도록 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적정 음주를 해왔다면 그 경우에도 술을 완전히 끊도록 해야 할까.

일단 ‘적정 음주’의 기준부터 알아보자. 술의 종류에 따라 도수가 다르므로 적정 음주의 기준을 계산할 때는 표준잔(standard drink)을 이용한다. 1 표준잔은 알코올 14그램에 해당하는 양으로, 주종 별로 맥주 350 cc, 포도주 150 cc, 소주 100cc, 양주 40 cc 가량이다.주1) 각각 맥주 1캔, 포도주 1잔, 소주 2잔, 양주 1잔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한국인에서 적정 음주의 기준은 남성의 경우 일주일 평균 8 표준잔 이하이다.주2) 이 기준을 넘어서면 과음(heavy drinking)이 된다. 그러니 일주일에 맥주로는 여덟 캔, 소주로는 두 병을 넘기면 과음이 되는 것이다. 여성 또는 65세 이상 남성의 경우 그 절반인 일주일에 4 표준잔, 65세 이상 여성의 경우엔 또 그 절반인 2 표준잔이 적정 음주의 기준이다.

폭음(binge drinking)에 대한 기준도 있다. 한 번에 4 표준잔(맥주 4캔, 소주 8잔) 부터는 폭음이다. 소주 한 병을 넘게 마시면 폭음인 셈이다.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과 가끔씩 많이 마시는 것 중 어떤 게 건강에 더 안 좋은가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결론적으론 둘다 해롭다. 이런 질문은 대개 술을 즐기는 분이 하는데, 어떻게든 술을 마실 수 있는 구실을 찾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래도 덜 해로운 방향으로 술을 마시겠다면 낫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조금씩’이 실제로는 조금이 아니고 ‘가끔씩’도 실제 가끔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게 문제이다.

글 첫머리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음주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는 것이다. 술을 즐기시는 장인께서는 적당히 마시는 술은 몸에 좋은 약주(藥酒)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는데, 소량의 음주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은 오래되었고 근거도 많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하루 한두 잔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에 비해 사망 위험이 낮다. 적정 음주를 하는 경우 관상동맥질환과 뇌졸중, 심장 돌연사 위험 역시 낮아진다는 연구도 많다. 심뇌혈관질환 예방에는 술이 도움이 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알코올이 HDL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혈액응고인자 농도를 낮춰 혈전 생성을 줄이는 것이 기전으로 꼽힌다. 단, 이 모든 긍정적인 결과는 과음이 아니라 적정 음주에서 그친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다. 과음을 하게 되면 위험은 오히려 훌쩍 높아진다.

음주와 사망 위험의 관련성에 대한 메타분석 결과. 적정 음주에서 위험도가 낮아지고 이후 높아지는 J-shape 곡선을 그린다. (출처: Arch Intern Med. 2006;166(22):2437-45)

적정 음주라고 모든 질환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같은 심장 질환이라 해도 부정맥의 경우엔 과음이 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소량의 음주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찾아볼 수 없다. 알코올은 직접적으로 심장 근육 세포에 독성을 끼쳐 심방 세동과 같은 부정맥을 일으킨다. 주말이나 크리스마스, 신년 등의 시기에 과음으로 인한 부정맥이 늘어나는 현상을 빗대어 휴일심장증후군(holiday heart syndrome)이란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가벼운 음주도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면서 음주에 대한 허용 기준도 보다 엄격해지는 추세이다. 2016년에는 국민 암 예방 수칙이 '술은 하루 두 잔 이내로 마시기'에서 '암 예방을 위해 하루 한두 잔의 소량 음주도 피하기'로 개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적정 음주라도 질환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영향이 모두 있으므로 술을 안 마시던 사람이 심뇌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굳이 한두 잔을 일부러 마실 필요는 없다. 특히 부정맥이나 간 질환, 암 등 알코올에 민감한 질환을 앓고 있다면 금주가 필수이다. 이런 질환이 없고 과음이나 폭음을 하는 경우엔 적정 음주량 이내로 술을 줄이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슬라이드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강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음주와 심뇌혈관질환의 관련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조금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절주를 강조하기보다는 소량의 음주가 괜찮다는 걸 확인하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본인도 맥주를 즐긴다는 강사의 고백을 듣고서야 그 느낌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심뇌혈관질환이 있다 해도 하루 한두 잔까지는 괜찮다는 결론에선 마치 경범죄를 저지른 이의 죄를 사면하는 선고를 듣는 것 같았다. 적정 음주의 기준을 따른다면 술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아도 되니 다행스런 일이다. 호부호형을 허락 받은 길동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강사께서는 딱딱한 연구 결과보다 스스로의 음주 습관에 대한 설명을 할 때 훨씬 활기차 보였다. 요즘은 술을 줄이기 위해 무알콜 맥주를 즐겨 한다는 말씀에선 애잔함과 함께 동질감이 느껴졌다.

고백하자면, 나도 맥주를 좋아한다. 종종 적정 음주 기준을 넘기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캔맥주를 홀짝이고 있음도 함께 고백한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장기 연수를 갔다가 올해 돌아왔는데, 좋은 기억이 많지만 사실 무엇보다 그리운 것은 그곳의 다양한 로컬 맥주이다. 자타 공인 맥덕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하루 끝자락에 마시는 차가운 맥주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동감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맥주는 일반 냉장고보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더 차갑고 맛있다. 하루키도 이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아직까지 내 건강에 문제가 없어 맥주의 시원하고 쌉싸름한 맛을 즐기며 하루를 정리할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적정 음주 한도를 존중하는 선에서 말이다. 그러니 이제 김치냉장고 서랍을 열고 두 번째 맥주 캔을 꺼내와야겠다. 


주1) 알코올 양은 WHO의 환산 공식 ‘술의 양(cc)*도수(%)*알코올 비중(0.79)=알코올 양(g)’으로 계산한다. 계산이 번거롭지만, 주종 별로 잔의 크기가 다르므로 과거보다 도수가 낮아진 소주를 제외하면 각각 한 캔, 또는 한 잔이 대략 1 표준잔이 된다.

주2) 미국의 National Institute on Alcohol Abuse and Alcoholism (NIAAA)에서는 남성의 경우 하루 2 표준잔, 일주일에 14 표준잔 까지를 적정 음주의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체구가 작고 알코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인은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최근 권고안에서는 일주일에 8 표준잔을 기준으로 삼았다.


참고문헌

* 정진규, 김종성, 윤석준, 이사미, 안순기. 음주 진료 지침. Korean J Fam Pract 2021; 11(1): 14-21.

* Di Castelnuovo A., Costanzo S., Bagnardi V., Donati M.B., Iacoviello L. and de Gaetano G. : "Alcohol dosing and total mortality in men and women: an updated meta-analysis of 34 prospective studies". Arch Intern Med 2006; 166: 2437.


2022년 9월 12일 월요일

자연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자연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이 인기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하루 세끼를 지어 먹거나, 산속에서 캠핑을 하거나, 논밭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연예인 출연자의 하루를 담는 등 종류도 내용도 다양하다. 너무 많은 프로그램이 나오다 보니 최근엔 오히려 식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또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은 아직 식지 않은 듯 하다.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이른바 자연인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은 첫 방영 후 십 년이 된 지금도 시청률이 높기로 손꼽힌다고 한다.

산에서 약초나 나물 캐고, 텃밭에서 채소 따고, 삼시세끼 해먹는, 어찌 보면 심심하고 재미없을 법한 내용으로 가득한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 것은 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돌아가고픈 현대인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이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돌아가고픈 고향이며, 매일 콩나물 시루 버스나 지하철에 실려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에겐 힐링을 느끼는 대상이며, 아파트와 빌라촌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겐 언젠가 살아보고 싶은 공간이다. 무엇보다 자연은 건강을 선사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각종 질병이 생겼다가 산 속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면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경험담은 자연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내러티브이다. 자연인이 숲에서 직접 채취하는 약초도 그가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 한몫 했던 것으로 그려진다.

자연을 가까이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증명하는 연구 역시 차고 넘친다. 녹지가 많은 곳에 살수록 심혈관 질환, 비만, 당뇨, 천식으로 인한 입원, 심리적 스트레스, 나아가 사망 위험까지 줄어든다. 2만 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일주일에 120분 이상을 공원, 숲, 해변 등 자연 속에서 보낸 사람들은 자연과 전혀 접하지 않은 이들에 비해 스스로 건강하고 삶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이 현저하게 높았다(그림). 집 근처에 녹지가 얼마나 많은지는 현재뿐 아니라 먼 미래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덴마크에서 9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어렸을 때 살았던 집 주변의 녹지 비율과 청소년, 성인이 되었을 때 정신 건강 사이의 관련성을 분석했는데, 녹지 비율이 가장 낮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가장 높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에 비해 정신 질환 발생률이 최대 55퍼센트 높았다. 이쯤 되면 도시에서 살면서 망가졌던 건강을 산에서 회복한 자연인의 이야기에도 나름 근거가 있는 셈이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낄 확률은 자연과 접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120분에 이를 때까지 급격히 높아지고 200∼300분 이후부턴 차이가 없어진다. 가로축은 일주일 동안 자연과 접한 시간(분), 세로축은 건강하다고 느낄 확률.

그러나 자연을 직접 가까이 할 여유가 없는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자연을 느끼려 한다. 마트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고, 옷 가게에선 합성 섬유보다는 천연 섬유 옷을 고르고, 횟집에서도 양식보다는 자연산을 찾는다. 일반 채소보다 비싼 유기농 채소를 찾는 것은 농약이나 화학 비료와 같은 인공 물질을 쓰지 않아서 건강에 더 좋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영양 성분에 차이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유기농 채소가 일반 채소보다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는 빈약하다. 일반 당근이나 유기농 당근이나 당근은 그저 당근인 것이다. 농약의 성분이 건강에 좋을 리는 없겠지만 이는 잘 씻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농사란 행위가 근본적으로 인공적인 것이다. 진정한 자연 식품만 골라 먹으려 한다면 원시 시대처럼 수렵 채집한 음식으로만 오롯이 식탁을 채워야 할 것이다. 영양실조에 걸릴 위험은 덤이다.

우리는 흔히 자연에서 얻은 천연 물질은 건강에 이롭고 안전한 반면, 인위적으로 합성한 것은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백여 년 전 영국의 화학자 플레밍이 처음 발견해 페니실린이란 이름을 붙인 화학 물질은 패혈증으로 꼼짝없이 사망했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류가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처음으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도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한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이후로 개발된 다양한 항생제는 인류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렸다. 근래엔 항생제의 오남용과 내성 문제가 더 심각하게 대두되지만 의료 자원이 부족한 최빈국의 경우엔 항생제가 없어 사망하는 환자가 여전히 많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후원한 연구에서는 아프리카의 5세 미만 아이들에게 일 년에 두 번 경구 항생제를 주는 것만으로 사망을 13.5퍼센트 줄였다. 물론 모든 항생제는 공장에서 합성된 인공 물질이다. 하지만 패혈증이 왔을 때 옆에 항생제를 두고 염증 완화에 좋다는 약초를 달여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공로로 2005년 노벨상을 수상한 배리 마셜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항생제를 투여함으로써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그러나 항생제를 먹지 않아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다.”

항생제 못지 않게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킨 인공 화합물은 또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 최악의 전염병으로 손꼽히는 천연두를 박멸한 주인공은 백신이었다. 과거 미국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흔했던 홍역 감염도 1960년대에 백신이 개발된 후 매년 수십만 건에서 수백 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들어가는 화학 첨가물이 자폐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잘못된 학설이 퍼지면서 백신 접종이 감소했고, 그 결과 거의 사라졌던 홍역이 다시 활개를 치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백신 반대론은 최근 유전자 재조합 방식인 코로나 백신을 두고 다시 부상했다. 백신 반대론에서도 합성물에 대한 불신과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을 찾을 수 있다. 백신에 의한 면역과 자연 면역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제로섬이 아니지만, 합성 물질인 백신을 피하고 자연스럽게 병에 걸려 면역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신 반대 운동과 자연 면역에 대한 맹신이 결합해 수두 파티(수두에 걸린 아이를 초대해 다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수두에 걸리게 하는 것)같은 어이없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천연 식품과 합성 식품은 또 어떤가. 천연 식품이라고 다 건강에 이롭지 않고 합성 식품이 무조건 해롭지도 않다. 적절한 허가를 받아 합성 식품에 들어가는 첨가물은 대부분 안전하다. 첨가물이 알레르기나 과민 반응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이는 견과류나 계란과 같은 천연 식품도 마찬가지이다. 천연 식품인 밥이나 과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이 생길 수 있다. 당뇨병이 있어 설탕이 든 음식은 피하면서도 천연 꿀은 건강에 이로울 거라 생각하고 매일 먹어서 혈당이 높아진 환자도 종종 만난다. 꿀의 성분인 과당 역시 간에서 포도당으로 바뀌어 혈당을 높인다. 설탕보다 혈당을 천천히 올린다 해도 당뇨병 환자에게 장려할 음식은 아닌 것이다. 천연 빵, 천연 주스, 천연 비타민 등 천연이란 단어만 붙으면 질이 높고 건강에도 좋다는 느낌이 들지만 역시 근거는 빈약하며 대부분 마케팅의 영향을 받은 막연한 기대에 불과하다. 천연 식품이든 합성 식품이든, 무엇보다 과하지 않고 적당히 먹는 것이 좋다.

자연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지만 먼 곳에 있지 않다. 앞에서 예로 든 영국의 연구에서 자연에 해당하는 환경은 숲, 강이나 해변, 시골 농장 등 외에 도심의 야산이나 공원도 포함되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만 가까운 공원이나 산에서 보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는 것이다. 어느 도시에 살든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자. 


참고문헌

* White MP, Alcock I, Grellier J, Wheeler BW, Hartig T, Warber SL, et al. Spending at least 120 minutes a week in nature is associated with good health and wellbeing. Sci Rep 2019;9:1–11.

* Engemann K, Pedersen CB, Arge L, Tsirogiannis C, Mortensen PB, Svenning JC. Residential green space in childhood is associated with lower risk of psychiatric disorders from adolescence into adulthood. Proc Natl Acad Sci U S A. 2019;116(11):5188-93.

* Mie A, Andersen HR, Gunnarsson S, Kahl J, Kesse-Guyot E, Rembiałkowska E, et al. Human health implications of organic food and organic agriculture: a comprehensive review. Environmental Health. 2017;16(1):1–22.

* Keenan JD, Bailey RL, West SK, Arzika AM, Hart J, Weaver J, et al. Azithromycin to Reduce Childhood Mortality in Sub-Saharan Africa. N Engl J Med. 2018;378(17):1583-92.

2022년 8월 4일 목요일

코로나 백신과 노시보 효과

고혈압으로 외래에 다니는 50대 남성이 진료실을 나가기 전에 머뭇거리다 걱정스런 말투로 묻는다. 

“한 달 전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나서부터 가슴이 답답해서 자꾸 심호흡을 하게 되네요. 백신 부작용으로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요?”

요즘 진료실에서 종종 겪는 일이다. 코로나 백신이 심근염이나 심낭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 뒤에는 이러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더 늘었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과 같은 mRNA 백신 접종 후 실제로 심근염이나 심낭염이 생길 수는 있지만 30만 명당 1명 꼴로 극히 드물다. 물론 질문을 한 50대 남성의 심장은 멀쩡했다. 마찬가지로 진료실에서 가슴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 대부분은 심장에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이 환자들이 단체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약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경우 약의 효과가 적게 나타나거나 부작용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고 한다. 노시보의 어원은 라틴어로‘해를 끼치게 한다’라는 뜻이다. 다소 생소한 용어일 수 있지만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역시 '기쁨을 줄 것이다'라는 라틴어 플라시보가 어원으로, 의학적인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이나 치료를 받은 환자가 병세의 호전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위약(僞藥) 효과라고도 부른다.

노시보 효과나 플라시보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는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행하는 임상 시험에서 찾을 수 있다. 약의 효과를 확인하려 할 때 약을 먹기 전후만을 비교하면 질병의 자연 경과가 결과에 영향을 미쳐서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작위 배정 임상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이다. 환자를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신약과 위약(placebo)을 먹도록 배정하는 방법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약에 의한 효과나 부작용은 진짜 약을 먹은 환자에서만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실제 연구에선 위약을 먹인 그룹도 병세가 나아지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를 흔히 본다. 위약을 먹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는 플라시보 또는 노시보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 개발한 약이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위약의 효과를 확실히 뛰어넘는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플라시보 효과는 실제로 얼마나 흔할까.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위약으로 2-30퍼센트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2011년에 최고 권위의 학술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위약의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40여 명의 천식 환자들을 상대로 치료제와 위약의 효과를 비교했다. 진짜 천식 치료 흡입제, 가짜 흡입제(위약), 가짜 침 치료를 교대로 받게한 뒤 환자가 느끼는 증상(주관적 지표)과 폐기능 검사 결과(객관적 지표)가 얼마나 좋아지는지를 확인했다. 객관적 지표인 폐기능 검사 수치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20퍼센트 좋아졌지만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에는 치료를 안 한 것과 같은 7퍼센트 호전에 그쳤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50 퍼센트,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는 45퍼센트 좋아졌다. 진짜 치료든 가짜 치료든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은 똑같은 정도로 좋아진 것이다. (참고) 

이렇게 위약은 경우에 따라 실제 치료와 맞먹는 효과를 보이는데, 객관적인 질병의 경과보다는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가짜 약임을 알고 복용하는 경우엔 어떨까. 언뜻 생각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데, 관련 연구에 따르면 위약임을 알고 먹어도 증상이 나아질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를 믿는 사람에게 이러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최근에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과 같은 첨단 장비를 이용해 뇌 어떤 부위의 활동이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뇌과학 연구를 통해 이러한 효과를 일으키는 뇌 부위를 밝힐 수 있다면 이를 이용한 치료도 가능할 것이다.

노시보 효과도 플라시보 효과만큼 흔하게 나타날까. 영국 임페리얼 대학 연구팀은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에 대한 임상 시험 부작용 사례를 분석해 2020년 같은 학술지에 발표했다. 스타틴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약 중 하나이나 근육 손상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진은 60명의 환자에게 무작위로 스타틴이 든 병, 위약이 든 병, 그리고 빈 병을 한 달씩 교대로 나누어주고 복용하게 하면서 부작용을 관찰했다. 1년 동안 관찰한 결과 부작용 증상 점수는 스타틴이 16점, 위약이 15점, 빈 병은 8점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스타틴과 위약 간에 부작용 정도에 큰 차이가 없으며 스타틴 부작용의 90퍼센트가 노시보 효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도 비슷한 연구를 찾아볼 수 있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코로나 백신 관련 열두 개의 임상 시험을 모아 재분석한 결과 위약(식염수 주사)을 접종한 대상자의 35퍼센트에서 두통이나 피로와 같은 부작용이 생겼다. 반면 진짜 백신을 맞은 군에서는 46퍼센트에서 부작용이 생겼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코로나 백신 부작용을 겪는 사람 네 명 중 세 명은 노시보 효과가 원인이 되었으리라 추정했다. 주사 전에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 미리 안내하는데 이것이 부정적인 기대나 불안을 일으켜 노시보 효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부작용의 경우 백신 자체보다 백신에 대해 가진 생각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백신 접종 시에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감추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 대신 노시보 효과에 대한 정보를 함께 주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긍정적인 반응을 더 일으키는 것처럼 불안과 걱정이 일으키는 노시보 효과에 대해 이해한다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백신을 맞은 뒤 생기는 증상이나 변화에 대해서도 좀더 차분하게 지켜보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일반 대중을 향한 정보도 중요하다. 노시보 효과를 피하려면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과도한 불안을 줄일 필요가 있다. 작년 코로나 백신 접종 초기에 혈전증 등 심각한 부작용 사례에 초점을 맞춘 언론 보도가 많았는데, 그에 반해 부작용의 객관적인 빈도와 과학적 근거를 균형 있게 다룬 기사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과학적 근거를 담은 기사에 비해 부작용 사례에 대한 기사는 쉽게 관심을 끌고 독자의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우리에겐 특정 사건이 눈에 많이 띄거나 감정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경우 해당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견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이라고 한다. 대중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객관적인 판단에 필요한 경험이나 정보가 부족할 경우 치우치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심각한 부작용만을 다룬 기사가 늘어날수록 백신 접종에 대한 판단에 부작용 사례가 많은 영향을 미치며 내가 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역시 커진다. 이러한 부정적인 믿음은 노시보 효과를 통해 실제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모르는 게 약이다’, 그리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모순되게 들리지만 플라시보와 노시보 효과의 의미를 생각하면 두 속담 모두 맞는 구석이 있다. 아는 것이 힘이 되지만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지만 세상의 이치는 다 알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서든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고 소셜미디어나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접하는 지금은 오히려 정보의 과잉과 잘못된 정보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아는 것은 힘이 되지만 잘못된 정보는 모르느니만 못하다. 그러니 ‘제대로’ 아는 것이 힘이다. 


참고문헌

Wechsler ME, Kelley JM, Boyd IO, Dutile S, Marigowda G, Kirsch I, Israel E, Kaptchuk TJ. Active albuterol or placebo, sham acupuncture, or no intervention in asthma. N Engl J Med. 2011 Jul 14;365(2):119-26.

Wood FA, Howard JP, Finegold JA, et al. N-of-1 trial of a statin, placebo, or no treatment to assess side effects N Engl J Med. 2020 Nov 26;383(22):2182-4.

Haas JW, Bender FL, Ballou S, Kelley JM, Wilhelm M, Miller FG, Rief W, Kaptchuk TJ. Frequency of Adverse Events in the Placebo Arms of COVID-19 Vaccine Trial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AMA Netw Open. 2022 Jan 4;5(1):e2143955. 

2022년 7월 12일 화요일

팬데믹 시대, 다시 돌아보는 손 씻기의 역사

이 년이 넘도록 이어진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역사적으로 감염병 예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해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있을까 싶다. 코로나19와 같이 전파력이 높고 단기간에 감염자 수의 폭발적인 증가를 일으키는 질환은 전파를 막는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스크를 비롯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백신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마스크와 백신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이들 못지않게 강조되어야 할 예방법이 손 씻기이다. 기침과 재채기를 할 때 침 방울(비말)에 섞여 외부로 나온 바이러스가 타인의 손에 묻어 전파되는 것이 주요 감염 경로이기 때문이다. 손에 묻은 바이러스는 코와 입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 증상을 일으킨다.

손을 잘 씻는 것만으로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질환과 감염성 위장 질환의 절반 이상을 예방할 수 있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성 호흡기 질환도 20퍼센트를 줄일 수 있다. 예방법으로써 손 씻기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용은 기껏해야 비누 부스러기 정도에 불과하다. 백신의 경우 델타, 오미크론 등 새로운 변이가 등장할 때마다 예방 효과가 떨어질 것을 걱정하지만, 손 씻기는 어떤 변이에도 효과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장점도 있다.

손 씻기가 미생물에 의한 감염을 막는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불과 150년 전만 해도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세균이 아니라‘미아즈마’라고 불리는 나쁜 공기와 악취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공기가 아닌 다른 매개체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학자들은 무시와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대의 세균 학설이 미아즈마 학설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개의 질병이 산욕열과 콜레라이다. 

출산 후 6주의 기간을 일컫는 산욕기에 열이 나는 것을 산욕열이라 부른다. 분만 과정에서 생긴 감염이 원인이며, 현재는 감염 예방 조치와 항생제의 역할로 선진국에서 이 질환으로 죽는 산모는 거의 없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에는 산모 네 명 중 한 명이 산욕열로 사망할 만큼 흔하고 무서운 병이었다. 특이한 점은 집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출산한 산모에 비해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의 산욕열 발병 확률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모들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는 것을 기피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의료진은 병원에서 산욕열이 더 잘 생기는 것이 비좁고 환기가 잘 안 되는 환경에서 나쁜 기운이 산모들에게 옮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나쁜 공기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당시 학계의 정설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원인을 찾고자 한 이들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의사인 알렉산더 고든은 1795년의 보고서에서 산욕열의 원인이 공기의 해로운 성분이 아니라 의료진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료를 본 환자로부터 의사 자신에게 있는 무엇인가를 통해 새 환자에게 열이 전파된다고 믿었다. 1843년 미국의 수필가이자 의사인 올리버 웬델 홈스는 <산욕열의 전염성>이란 책에서 고든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하지만 반세기 간격으로 등장했던 두 의사의 파격적인 학설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당시는 미생물의 존재까지 알진 못했고, 다른 의사들은 자신이 질병을 옮긴다는 주장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등장한 이가 헝가리 의사인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였다. 오스트리아 빈 종합 병원에서 일하던 그 역시 산욕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산모들은 두 개의 병실에 입원했는데 한쪽은 의대생이, 다른 쪽은 산파가 산모를 돌보았다. 그런데 병실의 시설은 의대생이 담당한 쪽이 더 좋았음에도 사망률은 무려 세 배나 높았다. 동료들은 산파에 비해 남학생들이 환자를 더 거칠게 다루기 때문이라고 여겼지만 제멜바이스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시신 해부를 하다가 곧바로 산모를 돌보러 오는 의대생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시신의 감염성 물질이 의대생을 통해 산모에게 전파되어 산욕열이 생긴다고 추정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염소 처리를 한 물통을 설치하고 의대생들로 하여금 해부실에서 병실로 가기 전에 손을 씻도록 했다. 그러자 이전에 18.3퍼센트였던 사망률이 넉 달 만에 1.9퍼센트로 떨어졌다. 이 실험을 통해 제멜바이스는 접촉을 통한 오염이 산욕열을 일으킨다고 주장했고 1861년에는 이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주장 역시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빈 종합병원의 산욕열 환자 사망률
손 씻기를 시작한 1847년 5월 이후 급격하게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 영국 런던에서는 콜레라가 맹위를 떨쳤다. 1854년의 유행에 의해 영국에서만 이만 명 이상이 콜레라로 사망했고 그 중심에 런던이 있었다. 당시 학자와 주민들은 기존의 미아즈마 학설에 따라 템즈강의 더러운 물에서 나오는 유독한 공기가 원인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 의사가 현대 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스노였다. 그는 1854년 런던 소호 지역에서 발생했던 콜레라를 조사하면서 환자가 발생한 곳을 지도에 표시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감염 지도를 통해 환자 대부분이 브로드가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콜레라가 공기에 섞인 유독한 기체가 아니라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지역 당국을 설득해 브로드가 우물 펌프의 손잡이를 떼어냈다. 그러자 그 지역의 콜레라 유행이 곧바로 수그러들었다. 브로드윅으로 이름이 바뀐 거리에는 지금도 존 스노의 이름을 딴 술집과 과거의 우물 펌프를 본딴 모형이 있다. 

Map of cholera cases in Soho, London, 1854. Source: Wikimedia Commons

이러한 사례와 근거가 쌓이면서 공기나 악취가 아닌 접촉을 통해 질병이 전파된다는 이론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1867년에는 영국 외과의사인 조지프 리스터가 석탄산을 사용해 소독을 하는 살균 수술법을 학술지 ‘랜싯’에 발표했다. (구강청결제의 대명사 격인 리스테린은 1879년에 리스터의 이름을 따 살균소독제로 개발된 것이다.) 이후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와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가 주도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비로소 감염병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미생물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병원 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손 씻기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없애려면 흐르는 물과 비누를 이용해 손바닥, 손등, 손가락 사이까지 꼼꼼히 씻는 것이 좋다. 횟수는 하루에 여덟 번 이상을 권하며 이와 별도로 음식을 먹기 전이나 용변을 본 후에도 씻어야 한다. 질병관리청의 감염병 예방 행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손 씻기 실천율은 최근까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외출 후 손을 씻는 비율은 2013년 81.9퍼센트에서 2019년 85.5퍼센트로 높아졌고,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97.6퍼센트까지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자가 보고와 관찰 조사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올바른 손씻기를 실천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87.3퍼센트인데 반해 실제 관찰 조사에서 용변 후 손을 씻는 비율은 75.4퍼센트에 그쳤다. 또한 관찰 조사에서 용변 후 비누를 사용해 손을 씻은 비율은 37.1퍼센트에 불과했다. 손을 씻지 않는 이유로는 습관이 안 되어서, 귀찮아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참고문헌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Show Me the Science - Why Wash Your Hands? Available from: https://www.cdc.gov/handwashing/why-handwashing.html

조경숙. 2013-2020년 손씻기 실천율의 변화. 주간 건강과 질병 2021;14(42):2972-87.

린지 피츠해리스. 수술의 탄생. 열린책들; 2020.


2022년 6월 30일 목요일

손 저림의 원인에 대하여

손발 저림은 흔한 증상이다. 손발이 저리면 혈액 순환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혈관에는 동맥과 정맥이 있다. 동맥의 경우 동맥경화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면 혈류에 장애가 생기고,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주로 통증이다. 해당 부위에 혈액이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 동맥이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이 통증의 이유이다. 평소엔 괜찮다가 일정 거리 이상을 걸을 때 종아리에 통증이 생긴다면 하지의 동맥 문제를, 숨찬 운동을 할 때 명치 부위에 통증이 생긴다면 심장 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 동맥이 좁아졌음을 의심할 수 있다.

큰 혈관이 아닌,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말초 동맥의 경우엔 주로 추운 날씨와 같은 특정 상황에서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해서 통증이 생긴다. 추울 때 혈관이 수축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피부가 창백해지거나 통증이 생길 정도로 심하면 이를 레이노드 현상 (Raynaud’s phenomenon)’이라고 부른다. 찬물에 손을 담갔을 때 손가락의 혈색이 사라지면서 통증이 생기면 진단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심하면 류마티스 질환이 원인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단순히 손발이 찬 정도라면 추운 날씨에 피부의 노출을 피하고 모자, 장갑과 따뜻한 양말 등을 사용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습관만으로도 증상을 줄일 수 있다. 반신욕이나 족욕도 도움이 된다.

정맥의 경우 혈관이 좁아지는 게 아니라 혈관 벽과 판막이 약해지는 것이 혈류 장애의 원인이다. 중력을 거슬러 심장으로 혈액을 되돌려 보내려면 혈관 벽의 탄력과 역류를 방지하는 판막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증상은 주로 부종으로 나타난다. 가장 흔히 나타나는 다리의 경우, 증세가 심하면 혈관이 튀어나오는 정맥류로 발전할 수 있다.

통증이나 부종과 같은 혈류 장애의 주된 증상 없이 손발 저림만 있다면 혈관보다는 말초 신경의 이상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바닥에 앉아 있었거나 엎드려 잠들었을 때 손발이 저리는 것은 말초 신경이 체중에 의한 압력으로 눌리면서 생기는 증상이다. 이 경우엔 자세를 바꿔 신경에 가해지는 압력이 사라지면 금새 나아진다. 하지만 만성적으로 신경이 눌리는 상황이라면 저림 증상도 사라지지 않고 반복해 나타난다.

손발로 내려가는 말초 신경의 뿌리는 척추에 있다. 척추의 뿌리에서 시작한 신경 줄기는 팔, 다리를 거쳐 잔 가지로 갈라지고 가지의 끝은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닿는다. 신경의 뿌리와 줄기, 가지 어디서든 눌릴 수 있다. 척추관 협착증이나 추간판(디스크) 탈출증이 신경 뿌리가 눌리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경추()에서 발생하면 팔과 손이, 요추(허리)에서 발생하면 다리와 발이 저리게 된다.

손 저림의 가장 흔한 원인은 신경 가지가 손목에서 눌리는 것으로,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손목 터널 증후군은 손바닥과 손끝이 저리고 밤에 저림 증상이 심해진다. 손을 많이 쓰는 경우에 흔히 발생한다. 집안일을 많이 하는 주부, 미용사, 피부관리사 등에게 많이 생기는 이유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원인이 된다. 임신 중에도 몸이 붓고 손목 터널이 좁아져 더 잘 생긴다. 그 외에도 만성 신부전으로 투석을 받는 환자나 류마티스 관절염, 갑상선 기능 저하증, 당뇨병을 앓는 경우에도 흔히 발생한다.

이렇게 말초 신경이 눌려서 생기는 저림 증상은 대개 한쪽에만 생긴다. 만약 양쪽 손과 발이 동시에 저리다면 여러 신경을 함께 침범하는 전신 질환을 먼저 의심한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이 가장 흔한 원인이다. 손발 저림이 뇌졸중(중풍)의 전조 증상이라 생각해 불안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뇌졸중 때문에 저린 증상만 생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뇌졸중은 갑자기 발생하는 급성 질환이며 오랫동안 손발이 저리다가 발병하지는 않는다.

손목 터널 증후군의 치료 방법은 증세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심하지 않다면 부목 기능이 있어 손목을 고정하는 보호대를 쓰게 하고 약물 치료를 한다. 손목에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치료 효과가 충분하지 않거나 손바닥 근육이 약해질 정도로 증세가 심하면 손목의 인대를 절제하는 수술 치료를 한다. 적절한 치료를 하면 대부분 나아질 수 있지만 증세가 오랫동안 진행될수록 치료의 효과는 덜하다. 그러므로 반복적인 손 저림이 있다면 혈액 순환을 좋게 한다는 은행잎 성분이나 마그네슘 따위를 먹으며 나아지길 기대하기보다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rpal_Tunnel_Syndrome.png


2022년 6월 29일 수요일

집에 가고 싶어

"아빠, 나 집에 가고 싶어."

밤에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데 딸이 말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우리 집의 지 방 침대에 누웠는데 집에 가고 싶다니. 딸과 몇 마디 더 나누고서야 그 의미를 알았다. 

"지금 우리 집에 있잖아. 근데 왜 집에 가고 싶어?"

"내일이 주말인 집에 가고 싶어."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날은 수요일 밤이었고, 다음날 아침엔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가야 했다. 아침엔 여러 번 깨워야 일어나고 주말엔 항상 늦잠을 자는 아이다. 다짜고짜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 뒤에도 딸은 종종 비슷한 말을 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 앞엔 다양한 내용이 감추어져 있었다. 어떤 때는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집에 가고 싶었고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는 딸을 말리지 않으면 매일 저녁마다 함께 넷플릭스를 봐야 한다), 또 어떤 때는 '맛있는 젤리가 있는'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좋아하는 간식이 떨어졌을 때였다). 약속이 있어 집에 늦게 들어간 어느 날 밤엔 ‘아빠가 있는’ 집에 가고 싶디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네, 저는 딸바보입니다).

그러니 딸이 말하는 '집'이란, 닿을 수 없는 이상향. 유치환의 깃발에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향한 '푸른 해원', 최인훈의 광장에서 명준이 선택한 '중립국', 이창동의 박하사탕에서 영호가 돌아가고자 했던 ‘순수한 과거’와 비슷한 존재였던 것이다. 매번 그 이상향의 모습이 바뀌긴 하지만. 

아빠는 내일 출근 안해도 되는 집에 매일 가고 싶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