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해외 연수가 확정되었다. 현재로선 시기는 8월, 장소는 미국 샌디에고가 될 예정이다. 연수 준비를 할 때 연수 기관을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초청장을 보내줄 외국 기관 연구자와의 친분을 이용하거나 다른 이를 통해 소개를 받는 것이 수월한 방법이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방문하고 싶은 기관의 연구자에게 직접 문의를 해야한다. 메일을 보내도 감감무소식인 경우도 많다. 승낙을 해주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은 방문을 받기 어렵다고 공손히 거절 의사를 보내주기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거절이 반복되면 기한 내에 연수 기관을 정해야 하는 입장에선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연수 기관 매칭에 어려움을 겪은 분들 이야기도 들은 바 있어서, 좀 이른 시기인 지난 3월에 첫 번째 문의 메일을 보냈다. UCSD의 A선생님은 WHI, MESA 등 유명 코호트에 참여했고 지금까지 4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분으로, 관심을 두고있는 영양역학 연구를 함께 하기에도 적당할 것 같았다. 하지만 첫 문의에 일이 쉽게 풀리랴 싶어 토요일에 CV를 첨부한 메일을 보내면서도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런데 웬걸, 하루 뒤 일요일(!)에 바로 답신이 왔다. 내년 8월까진 자리가 찼고 이후에는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1월에 연수를 시작할 수 있는 다른 곳을 찾을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더 적당한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샌디에고란 도시에 대해서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에 아내와 상의 후 다음날 바로 다시 답신을 보냈다. (할 수만 있다면 달려가 손편지를 봉투에 넣어 직접 두손으로 공손히 드리고 싶었다.)
그 뒤로 한달간 열 통이 넘는 메일을 보내고 답을 받으며 연구 주제를 상의하고, MESA 코호트 연구자 웹사이트에 접근할 권한을 얻었다. 3주 전 내년 연수 대상자 명단이 공식 발표되었고, A선생님께 다시 그 소식을 알렸다. 코호트 데이터 신청을 위한 두 개의 연구계획서를 함께 첨부했다. 내용을 본 A선생님이 휴스턴 베일러의대 W선생님을 공동연구자로 추천해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었다. W선생님은 프로필 사진만으론 나보다 나이가 십년은 적어보이지만 영양역학 논문 수만 언뜻 세어도 내 전체 논문 수를 가볍게 넘기는 훌륭한 연구자이다. 계획서를 보자마자 분석 방법 변경의 필요성에 대한 깨알같은 강의와 네 가지 질문이 담긴 장문의 메일을 보내셨다. 긴 금발의 전형적인 청순 미인이신데 랩 이름이 dark matter lab. 앞으로 발표할 논문들로 온 우주를 가득 채우실 생각인가보다.
아뭏든 그렇게 당분간 두 선생님의 지도 편달을 받으며 연구와 연수 준비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메일을 보낼 때마다 광속으로 돌아오는 답메일에 어지럼증을 느끼곤 하는데, 샌디에고와 휴스턴을 거친 연구 계획이 남은 10개월이 지나 내년 8월이 되었을 때 어디까지 진행되어 있을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