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진학이 목표라는 네 명의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멀리 대구에서부터 찾아왔다. 앳된 얼굴이지만 뽀얀 피부에 가벼운 화장을 하고 비슷한 색깔의 틴트를 바른 입술이 요즘 학생들다웠다.
내가 할 일은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것 뿐이었다. 아이들이 준비한 질문은 다양했다. 전공을 선택할 때 뭘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 의대 졸업 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문제점이나 의사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한계 등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것들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눈높이에 맞지 않는, 너무 주관적이고 지엽적인 내용만 꼰대처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의사가 되길 준비하면서 읽었으면 싶은 책 리스트를 뒤늦게 문자로 보내주었다. 아이들은 오늘 처음 만난 의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이내 잊을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문답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 대학 생활을 하면서, 수련을 받으면서 꼭 해야할 활동이 있나요?
- 구체적인 활동을 추천하긴 어렵지만 의사가 될 분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어요. 학교와 병원에서 배우고 공부할 것들이 많아 힘들거에요. 그래도 학교와 병원 밖에서 생기는 일들에 대해서 관심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의사가 된 다음,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해 좌절도 하고 때로는 분노를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병원과 의료계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더 많은 부조리와 문제들이 있고, 내 문제만큼이나 타인의 문제도 중요하다는 걸 잊으면 안됩니다. 적절한 균형 감각이 필요해요.
지금 의사를 둘러싼 여러 문제는 저를 포함한 의사들이 나와 타인의 문제 인식에 있어 균형 감각을 잊은 채 살아온 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내 문제야 나만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없지만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는 그렇지 않을테니,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금새 균형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다양한 책을 읽어도 좋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도 좋아요. 어떤 방식이든 외부에 대한 관심의 끈, 그걸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