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5일 목요일

회식 잦은 연말연시, '밀크씨슬'만 믿고 달리는 당신에게

그 영양제, 정말 먹어도 될까? 의사가 알려주는 12가지 장기별 건강기능식품 가이드 ① 간

: 회식 잦은 연말연시, '밀크씨슬'만 믿고 달리는 당신에게 


새해가 밝았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진료실 풍경은 사뭇 진지해집니다. 연말연시 잦은 술자리와 모임으로 몸을 혹사시킨 후, 새해 결심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부쩍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검진 결과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교수님, 제가 이번에 간 수치가 좀 높게 나왔던데요. 간에 좋다는 영양제를 좀 챙겨 먹으면 도움이 될까요?”

영양제, 정확하게 말하면 ‘건강기능식품’이라고 하지요. 이런 분들이 흔히 먹는 건강기능식품 성분이 밀크씨슬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의 식탁 위나 서랍 속에도 밀크씨슬 영양제 한 통쯤 놓여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양제 중 하나이자, 피로 회복과 간 건강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밀크씨슬. 과연 이 작은 알약이 지친 간을 되살리는 구원투수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의학적 근거를 통해 그 진실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 효과는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밀크씨슬은 간에 도움이 됩니다. 밀크씨슬의 핵심 성분인 실리마린(Silymarin)은 엉겅퀴라고 불리는 국화과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항산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세포의 외부 막을 튼튼하게 해 독소 침투를 막고 단백질 합성을 촉진해 손상된 간세포의 재생을 돕는 역할을 함으로써 간 기능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학계에 보고된 연구 결과들은 꽤 긍정적입니다. 2024년 Canadian Liver Journal에 발표된 최신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지방간 환자가 실리마린을 꾸준히 복용했을 때 간 세포 손상 지표인 ALT와 AST 수치가 10~20 정도 유의하게 줄어드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즉, 검진표에 찍히는 빨간 숫자를 정상 범위로 돌려놓는 데 효과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실리마린 성분은 전문의약품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 건강기능식품이 술을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환자를 만날 때 우려하는 지점은 밀크씨슬의 효능 자체가 아닙니다. 이것을 술에 대한 면죄부처럼 여기는 심리입니다.

“요즘 밀크씨슬 먹고 있으니까, 술 좀 더 마셔도 덜 취하겠지?” 

“영양제 챙겨 먹으니까 간은 보호되고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은 위험합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신뢰받는 의학 근거 분석 기관인 코크란(Cochrane) 리뷰에 따르면 밀크씨슬이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의 사망률을 낮추거나 간경변증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막아준다는 근거는 미미합니다. 쉽게 말해, 불이 난 집(음주로 손상된 간)에 물 한 바가지(밀크씨슬)를 끼얹는다고 해서 불길이 잡히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름(술)을 계속 붓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밀크씨슬이 검사 수치 상의 염증을 조금 줄여줄 수는 있어도, 술이 가하는 타격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흔치는 않지만 밀크씨슬이 위통, 설사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복용 후 불편이 생기면 바로 중단해야 합니다.

- 2026년 새해, 간을 위한 처방 

그렇다면 간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간을 살리는 1순위 치료법은 우루사나 영양제가 아니라 절주를 비롯한 생활습관 교정과 체중 감량입니다. 과음과 비만이 불러온 지방간의 치료법은 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며, 간장약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간에 낀 지방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비싼 영양제를 사 먹는 것보다 오늘 저녁 술잔을 내려놓고 밥 한 숟가락을 덜 먹고 운동화 끈을 매는 것이 간에게 훨씬 더 강력한 치료제인 셈입니다. 바로 그게 어렵다구요? 이런.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은 비싼 운동화와 같은 존재입니다. 좋은 러닝화를 신으면 발의 피로를 조금 덜어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신발을 신어도 결국 내 두 다리로 뛰지 않으면 살은 빠지지 않습니다. 신발장에 명품 운동화를 진열해 두고 소파에 누워 치킨을 먹으며 건강해지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명품 운동화가 없어도 뛸 수 있지만, 뛰지 않는 사람에게 비싼 운동화는 그저 장식품일 뿐입니다.

검진 결과표의 간 수치가 걱정되시나요? 그렇다면 영양제를 찾기 전에 오늘 밤 술잔부터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체중계 위에 올라가십시오. 그것이 2026년 새해, 여러분의 간이 바라는 진짜 처방전입니다.

(그림: Google Gemini)



2026년 1월 6일 화요일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대해

올해 첫 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고전임에도 막상 읽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책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된 건 우습게도 아들이 학교에 제출할 독서 감상문 때문이었다. 같은 조에 속한 괴팍한 취향의 친구 때문에 아이에겐 어렵기 짝이 없는 이 책을 고르는 재앙스러운 일이 생겼단다. 미궁에 빠진 감상문에 대해 이야기하다 무심코 펼친 책의 첫 장 머리말에 빠져들어 나머지 네 개의 장과 해제까지 이어서 읽고 말았다.

1859년에 쓰여진 책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 쓰여진 책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이 가득한 글이다. 책에 좋은 글귀가 너무나 많았다. 줄을 그어가며 읽은 책은 정말 오래만이었다. 인상적이지 않은 구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 글귀를 옮기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다. 

밀은 세살 때 그리스어를, 여덟살 때 라틴어를 배웠다고 하는데, 천재였음에 틀림없다. 책을 읽으면서 감탄했던 점은 그가 자신의 주장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펼치고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게 아니라 거대하고 정교한 사유의 건축물이 세워지는 과정을 목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주로 선택하는 증명 방식은 반대 의견의 강화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논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날카로운 비판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걸 다시 논파하곤 한다. 그 치열한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주장이 책에 담겼기에 17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그 견고함에 감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는 '관습의 독재'란 표현을 사용해 사회의 눈치와 관습이 개인의 개성을 말려 죽이는 상황을 경계했다. 더불어 유럽이 발전한 이유를 다양성에서 찾으면서 그 반대 사례로 중국을 비롯한 동양 국가들을 언급하는데, 이 지점에서 제국주의와 유럽 우월주의적인 시각이 엿보인다는 것이 흠이라면 유일한 흠이었다. 지금 보기엔 동양은 관습에 얽매여 있고 서양은 자유롭다는 식의 이분법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편향되게 느껴지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순응이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본질적인 메시지의 가치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하긴 19세기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서 일을 했고 전 생애를 유럽에서 보냈던 그가 당시의 시각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천재인 그도 인간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이겠지.  

그가 구축한 지적인 논리 유희를 좇는 즐거움이 컸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거대한 천재를 접하는 평범한 인물임을 스스로 실감하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가 택한 방식처럼 모든 의견에 반론을 허용하고 내 믿음을 계속 시험대에 올리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 나같은 범인에겐 지적 중노동이 되고 만다. 관습을 거부하고 매 순간 개별성을 발휘하라는 권유 역시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현실에선 구름 위 이야기처럼, 때로는 그가 무엇보다 경계한 도그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천재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이만큼 까마득한 지적 거리감이라니.

그래도 올해 처음 읽은 것이 이 책이어서 다행이었다. 천재 철학자의 가르침을 이생에서 다 실천하긴 글렀으나, 올해를 살면서 작은 선택 몇 가지 정도는 관습의 독재를 따르지 않고 온전히 내 기질과 선호에 따라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정도면 올해의 목표로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