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일 토요일

ChatGPT 딥리서치를 활용한 논문 작성 후기

ChatGPT plus를 몇 달째 사용하고 있다. 개인적인 후기. 


- 문과적 느낌을 첨가한 대중적인 글을 쓰는 데는 아직 한계가 많다고 느낀다. 뻔한 내용과 밋밋하고 재미없는 문장의 글이 되는데, 학생이나 비전문가의 간단한 리포트 수준을 넘어서진 못한다. AI 도구 별로 성향이 다르다고 하는데, 다른 도구들은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현재로선 이과 성향일 수밖에 없는 생성형 AI의 특성 탓에 아주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 진료 준비에도 가끔 활용한다. 다른 과의 복잡한 의무기록 내용이나 치료 상태를 파악해야 할 때인데, 의무기록의 주요 내용이나 검사 결과를 넣으면 GPT의 해석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직 진단이 되지 않은 경우 가능한 진단명과 다음 단계에 해야할 결정을 알려주는데, 솔직히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어떨 땐 나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고. 

- 내 경우엔 그간 논문 읽기와 논문 심사에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읽어야 할 논문은 많고, 에디터나 리뷰어로 심사해야 할 논문이 매일 한두 편씩 쌓이는 현실에서 유용한 비서이다. 제목과 초록을 보고 살펴봐야 할 논문이라면 일단 ChatGPT에 요약과 평가를 맡긴다. 괜찮은 논문이란 판단이 서면 전체 원고를 읽는다. 논문의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고 읽어야 할 논문을 선별하는 데에 도움을 받아서 해당 업무에 쓰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 정도만으로도 월 22달러의 비용이 아깝지 않다. 

- 지난 주엔 GPT를 활용해 논문을 썼다. 논문 작성에 본격적으로 활용한 것은 처음인데, 간단한 연구계획서와 원자료를 올리고 논문 초안 작성을 시켰더니 제법 그럴듯한 원고를 써냈다. 간단한 통계 분석과 표 작성까지 GPT가 알아서 했다. 피드백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내가 해석하는 방향에 따라 논리가 전개되도록 유도했다. 그런데 참고문헌의 경우엔 여전히 hallucination 문제가 많았고 GPT-4도 마찬가지였다(대부분의 참고문헌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논문이었다). 허나 이 문제는 며칠 전 오픈된 딥리서치 기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Plus 사용자의 경우 월 10회 사용 가능하다). 나도 참고문헌의 절반은 딥리서치로 원고를 수정하면서 삽입했고, 딥리서치가 삽입한 문헌에는 hallucination 문제가 없었다. 딥리서치는 고찰의 내용도 이전보다 훨씬 풍부하게 수준을 높여주었는데, 내 요구사항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GPT-4가 학생이라면 딥리서치는 대학원생 정도라 할까. 

애초에 연구로서 한계가 커서 논문화할 생각이 없는 자료였고 디자인과 분석도 매우 간단했다. 그래서 가볍게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연구 계획을 제외하고 전 과정에 활용한 셈인데, 더 복잡한 연구라면 쓰임새가 줄어들 것 같긴 하지만 어떤 논문이든 쓰는 시간을 비약적으로 절약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영문 작성 실력은 나보다 열 배쯤 빠르다. (비인간적으로 말해서)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부려먹을 수 있고 일처리가 빠른 대학원생을 둘 수 있는 셈이다. 딥리서치가 스스로 검색해 찾아낸 29개의 후보 논문을 다시 검토하고 그 중 6개를 참고문헌으로 삽입하면서 원고를 수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5분이었다. (딥리서치를 돌리면 사이드 바에서 얘가 뭘 하는지 실시간 현황을 볼 수 있다.)

일과시간 틈틈이 썼는데도 논문을 완성하는데 겨우 일주일 걸렸다. 이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체감하기론 논문을 작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절반 이상 줄어든 것 같다. 처음부터 딥리서치를 활용했다면 더 줄었을 것이다. 예상은 했으나 직접 써보니 더 놀랍다. 지금도 많은 연구자가 생성형  AI를 사용하지만, 과학 분야의 경우 빠른 속도로 AI 활용이 대세가 되고 딥리서치가 게임 체인저로 자리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2025년 2월 19일 수요일

가장 강력한 저속 노화법

노화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이다. 누구나 늙고, 그 과정 속에서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을 어떻게 지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수명''건강수명'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수명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기간을 말하며, ‘기대수명이라고도 불린다. 1970년에 62.3년이었던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2023년 기준 83.5세로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OECD 국가 중 50년 만에 기대수명이 20년 이상 늘어난 나라는 대한민국뿐으로, 우리는 일본과 스위스 다음인 세계 3위의 장수 국가이다. 반면에 건강수명은 질병이나 신체적, 정신적 장애 없이 활동적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며, 같은 해를 기준으로 73.1세이다(WHO 통계). 이 지표도 자료가 있는 나라들 중에서는 높은 순위이므로 우리나라 국민의 노년은 꽤나 건강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사이에 여전히 10년의 차이가 있음을 고려하면, 우리 국민은 생의 마지막 10년을 질병과 장애에 시달리며 힘든 노년을 보내는 셈이다.

건강수명을 단축시키는 주된 두 가지 요인은 인지력 쇠퇴와 신체 기능 쇠퇴이다. 인지력 쇠퇴는 기억력 감소, 판단력 및 학습 능력 저하 등을 포함하며, 신체 기능 쇠퇴는 심폐지구력과 근력 감소, 관절의 유연성 저하 등을 의미한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신체 기능의 쇠퇴는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 글에선 주로 신체 기능의 쇠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앞에서 언급한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사이의 10년은 통계에 따른 평균적인 수치이므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생의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큰 어려움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이런 사람은 기대수명만큼의 건강수명을 누린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 노년에 건강과 신체 기능이 망가진 상태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길고 힘든 세월을 보내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커다란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나는 비슷한 나이인 두 명의 환자를 떠올리곤 한다. 80대 초반 나이인 A20년 전부터 고혈압을 앓았지만 약을 복용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혈압을 잘 관리해 왔으며, 무릎과 손가락에 퇴행성 관절염이 있지만 일상생활을 하기 위한 신체 기능은 잘 유지하고 있다. 혼자서도 식사를 준비하고, 장을 보고, 짧은 계단을 오르고, 나들이를 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종종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저녁엔 공원을 걷고, 주말엔 성당에 나간다. 이전에 영위하던 개인적,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환자 B의 경우 역시 나이는 80대 초반으로 비슷하지만 일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역시 오랫동안 고혈압을 앓고 있던 그는 60대 중반에 뇌졸중을 경험했다. 다행히 회복되어 일상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약간의 편마비가 남아 이전과 같은 수준의 활동을 하긴 어려웠다. 요추 협착증으로 인한 통증도 운동이나 활동적인 일을 피하는 원인이 되었다. 진료실에서 그는 종종 기운이 없고 어지럼증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건강 상태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70세 때 욕실에서 넘어져 생긴 대퇴골 골절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한동안 자리에 누워 지내야 했는데, 회복 이후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는 있었지만 근력과 신체 기능이 급격히 약해져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전에 즐기던 정원을 가꾸는 일이나 강아지와의 산책을 못하게 되면서 우울감도 깊어졌다. 그는 지금 요양시설 입소를 생각하고 있다.

두 환자의 사례는 생의 마지막까지 신체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신체 기능의 쇠퇴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 ‘급격한 쇠퇴는 외부로부터 온 사고나 급성 질환, 예기치 않은 중증 질환으로 인한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발견된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겪는 변화가 예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큰 기능 저하를 일으키지만 치료와 재활을 통해 이전 수준에 가까운 회복이 가능하다. 두 번째 유형은 이와 달리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점진적 쇠퇴이다. 심폐기능이 떨어지고, 근육의 힘이 약해지고, 관절의 유연성과 가동 범위가 줄어드는 변화를 말한다. 둘 중에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점진적 쇠퇴이다. 급격한 쇠퇴는 누구나 겪는 것은 아니고 언제 찾아올지 예상할 수 없기에 예방도 어렵지만, 점진적 쇠퇴는 모두가 예외 없이 겪게 되며 어느 정도 예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수명을 깎아먹는 주범이 바로 이 느린 쇠퇴라고 생각한다.


이 그래프는 나이에 따른 신체 기능의 변화를 표현한 것이다. 70대 초반까지 완만한 하강을 보이다 이후 기울기가 가팔라지는 것이 일반적인 곡선이다. 반면에 앞에서 예로 든 환자 A는 노년에도 큰 변화가 없으며 80대에 들어서서야 기울기에 변화가 생긴다. 이와 달리 환자 B60대부터 기울기에 변화가 생기고 이후 몇 차례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한다. 가장 큰 하락은 낙상으로 대퇴골 골절이 생긴 시점이다. 이것은 사고라 볼 수도 있지만 만약 그의 신체 기능-근력이나 균형 감각, 순발력과 같은-이 더 좋았다면 낙상과 골절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점진적 쇠퇴급격한 쇠퇴의 원인이 될 수 있어 더욱 중요하다. 악순환을 부르는 것이다.

쇠퇴의 기울기를 완만하게 줄이고 신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운동이다. 어떤 운동이든 도움이 되지만 심폐기능 유지를 위한 유산소운동, 근력과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을 병행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근력 운동은 바디프로필을 찍는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중년 이상의 나이에서 오히려 더 중요하다. 다양한 운동을,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 규칙적으로 꾸준히 해야 한다. 운동은 신체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양호하게 유지된 신체 기능은 운동을 할 수 있게 허락한다. 선순환이 유지되는 것이다. 환자 B의 사례는 이러한 선순환이 깨진 전형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저속노화법이 유행이다. 식단, 운동, 금연, 명상, 독서 등등 해야 할 것은 많은데 딱 한 가지만 선택한다면 무엇일까. 장수의학 전문가인 피터 아티아 박사는 그의 책 <질병해방>에서 운동은 월등한 차이로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장수 약물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이 견해가 옳다고 확신한다. 다른 사람보다 천천히 나이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장 운동을 시작하자

2025년 1월 15일 수요일

항상성과 질병 치유력: 항상성의 바다 위를 항해하는 법

우리 몸은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내부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부르는데, 이 능력은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에 대처하며 회복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항상성은 체온, 혈압, 혈당, 체액의 농도와 같은 중요한 생리적 상태를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하려는 몸의 자동 조절 메커니즘이다. 이 조절은 신경계, 내분비계, 순환계, 면역계를 비롯한 다양한 시스템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체온이 높아지면 땀이 나고 피부 혈관이 확장되어 열을 방출하고, 반대로 체온이 낮아지면 근육이 떨림으로써 열을 생성한다. 또다른 예로 자율신경계를 들 수 있다. 교감신경은 활동 시에 심장의 박동수를 높이고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올리며, 소화관의 운동을 감소시킨다. 부교감신경은 주로 휴식 시에 활성화되며, 심장의 박동을 느리게 하고 혈관을 확장시키며 혈류를 늘려 심신을 이완 상태로 유도한다. 적을 만났을 때나 위험에 부딪혔을 때와 같이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선 교감신경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상태가 평상시에도 지속된다면 우리 몸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협력으로 혈압과 심장의 운동이 일정 범위 이내로 적절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이렇게 항상성에 기반한 조절 능력 덕분에 우리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신체 기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항상성이 깨어지면 우리 몸은 본래의 기능을 잃게 되고, 이러한 변화는 질병으로 발현된다. 건강한 사람의 혈당 수치는 공복 시 70~100mg/dl 사이에 있고, 식후 2시간 기준 140mg/dL를 넘지 않는다. 하루쯤 금식을 하거나 반대로 설탕 범벅인 음식을 먹는다 해도, 혈액 내 포도당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항상성 능력에 따라 혈당 수치는 이 좁은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혈당 항상성을 유지하는 기능이 깨지면 공복이 길어질 때 저혈당 증상이 생기고 식후에는 혈당이 치솟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우리는 당뇨병이라 부른다. 혈압도 마찬가지이다. 휴식 시에 혈압은 수축기 120mmHg, 이완기 80mmHg 미만의 수치를 보이지만, 고혈압 환자의 경우 이 범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수축기 140mmHg 또는 이완기 90mmHg 이상으로 높아지게 된다.

항상성과 질병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나는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를 떠올리곤 한다. 소설의 주무대인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항해 도중에 폭풍우에 휘말리기도 하고 암초를 만나기도 한다. 중반부에는 잠수함이 호주 근처의 좁은 해협을 지나다 산호초에 좌초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해협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쉽게 빠져나가기 어렵고 위험한 지형으로 묘사된다. 위기에 빠진 승무원들은 동요하지만 노틸러스호의 선장인 네모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수면이 높아질 때를 기다리면 산호초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달의 공전 주기에 따라 인력이 변하면서 조수 간만의 차도 커지는데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선장의 말처럼 며칠이 지나 바다 수위가 높아지면서 노틸러스호는 산호초를 벗어나 항해를 계속하게 된다.

인체를 항상성이라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라고 생각해보자. 적당한 날씨와 평온한 바다라면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고 순조로운 항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배가 항해를 하면서 크고 작은 파도나 암초를 만나게 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우리가 만나는 스트레스는 항상성이라는 바다의 평온을 깨뜨리는 바람과도 같다. 거센 바람으로 파도가 사나워지면 순조로운 항해를 하기 어려운 것처럼, 외부의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커지면 건강의 필요조건인 항상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Captain Nemo Takes the Altitude of the Sun', from the book Twenty Thousand Leagues Under the Seas

항해를 하면서 필연적으로 폭풍우나 암초를 만나게 되듯 우리가 살면서 항상성이 깨어지는 순간도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무사히 항해를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다음의 두 가지를 기억해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튼튼한 배와 항해 실력이다. 튼튼한 배라면 웬만한 파도에도 끄떡없이 헤쳐나갈 수 있겠지만 배가 부실하거나 항해 실력이 부족하다면 항로를 잃고 헤매거나 파손을 겪기도 할 것이다. 튼튼한 배와 항해 실력은 우리 몸으로 치면 기초 체력과 같은 것이다. 건강한 식단,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을 통해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것이 항상성이 흔들리는 순간을 견디고 지탱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둘째, 항상성이라는 바다의 수위를 유지해야 한다. 자연에서 바다의 수위는 시시각각 달라지지만 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는 없다. 암초에 걸린 노틸러스호가 항해를 재개하기 위해 며칠을 기다려야 했던 이유이다. 그러나 인체의 항상성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위가 낮아질 수도, 높아질 수도 있다. 습관적인 과로와 만성 스트레스는 항상성의 수위를 낮추는 주범이다. 바닷물이 빠지듯 항상성의 수위가 낮아지면 숨겨져 있던 암초가 모습을 드러내고 항해 중인 배를 위협한다. 배가 암초에 걸린 이후에야 우리는 건강에 이상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눈에 드러난 암초는 우리가 뒤늦게 느끼는 증상과도 같다. 당장 눈에 드러난 증상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닷물의 수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기초 체력을 키우는 건강한 생활습관은 여기서도 중요하다. 항상성을 고갈시키는 흡연, 과음을 피하고 과로와 지나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도 해당된다.

물론 중요한 부품의 고장으로 배의 작동이 멈추거나 선체가 파손되어 물이 차오르는 상황이라면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당장 수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돛을 올리고 수위가 높아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 이상이 느껴질 때 가까운 의원이나 병원을 찾는 것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전문가의 점검을 받고 수리가 필요한 문제가 발견되었다면 그에 맞는 처방과 도움을 받도록 하자.

항상성의 수위를 높이기 위해선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습관과 같은 기본적인 건강 관리법은 힘들기도 하고 효과도 금방 나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성을 키우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썰물 때 드러났던 암초가 밀물이 되면 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것과 같이, 항상성의 수위가 충분히 높아진다면 우리를 괴롭히던 증상도 자연스레 가라앉고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성은 우리 몸이 가진 가장 강력한 치유 도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항상성이라는 바다의 수위를 잘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항해할 수 있을 것이다.